블루 델피니움 인 블루
- 감독
- 성경환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정서윤
라이브 클럽 ‘그레이하운드’에서 내달 무대에 설 뮤지션의 오디션을 갖는 중이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대 앞에 여유롭게 앉아 있고, 바텐더이자 덩치로 보이는 남자는 다소 성마른 표정으로 바 너머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휑뎅그렁한 플로어에는 몇몇 뮤지션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섰다. 그러다 모던락을 연주하는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무대는 조용해진다. 내공을 겨루기 전 실력을 가늠하려는 걸까, 무대 주변은 흡사 고수들이 무협을 겨루는 객잔을 방불케 한다. < 라이브 클럽 그레이하운드 >라는 제목으로 먼저 소개된, <라이브하드>의 ‘겨울 편’의 풍경은 그러하다. ‘머저리클럽’의 두 멤버와 그들의 친구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으나, 영화는 오디션 무대에 선 뮤지션들의 연주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모던락에 이어 헤비메탈이 무대를 뒤흔들고, 여성 재즈 듀오가 퓨전의 아름다움을 펼치는가 하면, 흑인 블루스 연주자가 기타 연주와 노래로 흑인의 영혼을 전한다. 마침내 등장한 머저리클럽이 펑크를 연주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실패의 판정을 받고 만다. 그들의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뒤늦게 나타난 플라밍고 기타 연주자가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황량했던 무대는 점차 음악의 전시장으로 변한다. 흑백의 이미지 위로 색채를 입히는 것은 음악의 색깔들이다. 어지간한 음악 프로그램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듣는 맛이 눈길을 끄는 영화인 셈이다. <라이브하드>의 ‘겨울 편’은 제천영화제에서 단편으로 앞서 소개된 바 있고, 황욱 감독은 앞과 뒤에 ‘늦가을 편’과 ‘봄 편’을 덧붙여 부천영화제의 장편 섹션에 초대받았다. 만들어진 시기가 다른 만큼 오리지널 단편과 새로 추가된 파트는 촬영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어두운 지하의 공간에서 주로 촬영된 겨울 편이 인물 가까이 긴밀하게 접근한다면, 늦가을 편과 봄 편의보다 넓은 앵글은 느슨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오디션과 해프닝의 기록에 가까운 겨울 편과 비교해, 인물의 배경이 추가된 장편 버전이 오밀조밀한 이야기의 구조를 갖춘 것은 물론이다. 덕규(크리스 라이온 분)는 멀리 한국에 와 블루스를 연주하려고 했으나 그에게 요구되는 건 인기 있는 힙합이다. 겉보기에 그는 흑인이기 때문이다. 머저리클럽의 베이스 주자인 철( 이재호 분)은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베이스나 잘 치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 그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머저리클럽의 리더인 임재(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자취를 감추었고, 남은 멤버인 철과 섭(갈치 분)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은정( 공민정 분)은 임재를 사랑하는데 그는 매번 다른 여자와 놀아난다. 여자들이 떠나면 그가 언제나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음악에 관한 영화였던 ‘겨울 편’은 ‘가을’과 ‘봄’ 편을 얻으면서 가난하고 쓸쓸한 청춘의 이야기로 화한다. 황욱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결합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다. 그가 그것을 의도한 것인지 앞으로도 그런 스타일을 유지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지금까지 소개한 두 편의 영화 - < 개 >(2015)와 < 라이브하드 >의 스타일은 그러하다. 한국에서 근래 발표된 음악영화들이 대부분 다큐멘터리였던 상황에서 <라이브하드>의 형식은 괜히 낯설다. 두 편의 필모를 가진 감독답지 않게 황욱은 배우들의 연기 연출에 단연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뮤지션인 사람과 뮤지션이 아닌 사람, 배우인 사람과 비전문 배우인 사람이 뒤섞여 있으면 영화가 뒤뚱거리기 마련인데, <라이브하드>는 그런 단점 따위는 없다는 양 자유롭다. 뮤지션들의 연주 부분과 이야기를 맡은 배우들의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돼 단순한 영화 너머로 일상의 한순간을 완성한다. 전작 <개>가 마치 사건 르포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듯이, <라이브하드>는 가난한 뮤지션들이 처했음 직한 상황에 세세한 마음을 쓴다. 그것으로 현실감을 득한다. 그게 전부다. 그들을 대변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거나 그들을 위로하는 척하는 태도가 없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위대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라이브하드>는 차가운 현실을 차갑게 그린 영화일까. 차가운 현실을 차갑게 그린 영화는 적지 않다. 거꾸로, 차가운 현실을 따뜻하게 포장한 영화는 더 많다. <라이브하드>는 좀 이상한 영화다. 차가운 현실을 애써 포장하지 않아 뮤지션의 하루를 절감하게 하면서도 마냥 우울하지는 않다. 차가운 방에 작은 스토브를 켜놓아 온기를 나누는 느낌이랄까. 천사처럼 한 남자가 그들 곁에서 계속 춤을 추며 기운을 북돋우기 때문일까. 세 번째 이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영화에서 뮤지션과 친구들은 각자 거울을 바라본다. 헤비메탈 밴드의 리더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는다. 덕규는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이 거울 앞에서 얼굴을 씻는다. 철은 현실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거울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앞에는 그들 자신밖에 없다, 당연히. 그렇다면 <라이브하드>는 그들의 자화상을 그리는 영화일까?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화가들이나 할 짓이다. 뮤지션들은 자화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무대 앞의 관객을 바라보며 연주를 해야 한다. <라이브하드>에서 관객에 해당하는 사람은 클럽 ‘라이브 와이어’의 사장이다. 카메라는 문득, 기타를 들고 포크를 부르는 여자 싱어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포착한다. 그는 분명 무대를 바라보고 있으나 그의 눈길은 어딘가 다른 곳을 응시한다. 홀로 객석을 지키는 남자인 그의 눈길은 현실의 슬픔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관객은 혼자 남았고, 뮤지션은 그를 보며 슬픔을 연주한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슬픔을 위로하는 존재다. 그게 작은 불씨를 만든다. 그 불씨를 간직한 사람이라면 <라이브하드>의 마지막 장면에 초대받을 자격이 있다. <해피투게더 독립영화> 상영작: 2018.9.29.(토) 17:00 시네마테크KOFA 2관(GV)
어느 영화나 다 기구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 터커 >를 만들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우여곡절을 넘겨야 했다. 애초 계획은 < 대부 2 >가 끝나는 대로 말론 브란도를 주연으로 촬영할 생각이었으나, 이는 < 지옥의 묵시록 >으로 인해 바뀌고 만다.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의 좌절과 전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기치가 전쟁의 광기와 내재된 악마적 본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코폴라는 두 번째 터커 역으로 버트 레이놀즈를 낙점하지만 배역을 맡기에 너무 어렸고, 시나리오가 지연되고 다른 프로젝트가 개입되면서 <터커>가 재개되었을 땐 불행히도 그 역을 맡기에 너무 늙어버린다. 최종 촬영이 들어갔을 때 터커 역을 맡은 이는 <지옥의 묵시록> 오디션에서 떨어진 바 있던 제프 브리지스였다.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 청춘낙서 > 때와는 반대로 조지 루카스가 제작을 책임지며 간신히 영화를 마칠 수 있었지만, 2,300만불의 제작비를 들인 <터커>는 본전도 회수하지 못한 채 망해버렸고, 이 실패로 코폴라는 16년 만의 속편, < 대부 3 >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코폴라의 꿈의 프로젝트였지만 좌초해버린 영화의 운명은 기가 막히게 실제 주인공인 프레스톤 터커의 삶과 닮았다. 1940년대 장삿속 위주로 판매에 몰두하던 미국 자동차 빅3, GM과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항해 순수한 열정으로 안전과 편의에 입각한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던 터커는 사기혐의로 몰려 오랜 기간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고, 간신히 재판에서 이기지만 그로부터 6년 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 도전의 좌절과 시련을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활력 넘치게 그려내는 코폴라의 유려하고 리드미컬한 연출은 인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저평가되고 대중들마저 외면해 쓸쓸히 잊혀진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터커에 의해 처음 주창되고 채택한 안전벨트와 연료분사장치, 디스크 브레이크와 패디드 대쉬가 현대 자동차의 기본 장비로 쓰이고 있고, 혁신적인 공기역학 스타일의 디자인 역시 현재 유행이 되었듯, 코폴라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창조적인 열정과 무한한 도전정신, 그리고 꿈과 아이디어는 생생히 남아 두고두고 곱씹게 만든다. 물론 조 잭슨이 담당한 들썩들썩 흥겨운 영화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조 잭슨.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라 느껴진다면, 맞다. 그는 펑크와 뉴웨이브가 약동하던 1970년대 후반 신성처럼 등장해 세련되고 도시감각 넘치는 스타일로 단숨에 주목받은 영국의 뮤지션이다. 펑크, 뉴웨이브, 스카와 레게, 팝, 블루스 그리고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재해석하고 혼합해 자신만의 사운드를 창조한 그는 뛰어난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로, 어린 시절부터 로큰롤과 베토벤,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심취해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고 작곡했던 수재였다. 영국 왕립음악 아카데미를 장학금 받고 다녔고, 졸업 후 연주활동을 하던 그의 데모 테이프가 듀란듀란과 트레이시 채프먼, 브라이언 아담스 등과 작업한 바 있는 음반 제작자 데이비드 커센바움 눈에 들며 데뷔하게 되었다. 고전을 경배하지만 한 장르에 안착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꺼리지 않는 그의 과감하고 진보적인 사운드는 익숙하면서도 모던한 경향을 띠는데, 90년대 이후 클래식과 연주 음악으로도 행보를 넓히며 더욱 원숙해진 음악성을 발휘하고 있다. 처음 영화음악을 담당한 건 1984년 <마이크의 살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영화가 재편집되며 존 배리의 음악으로 대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잭슨 자신도 영화 후반의 타이트한 작업일정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터커>에선 원래 내정됐던 존 윌리엄스를 제치고 그의 스코어가 간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 잭슨 Joe Jackson 그래서 그런 걸까. <터커>는 일반적인 스코어와는 조금 다른, 자유분방함과 실험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 복고 지향적인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같다. 빅밴드와 스윙, 딕시랜드, 랙타임 그리고 부기우기 등 초기 뉴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기조로 밝고 명랑한 사운드를 영화 전반에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암울하고 무거운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터커의 실패담을 희망차고 상징적인 신화로 반전, 격상시키는 효과를 준다. 담합과 관료주의 앞에 무릎 꿇은 시련에 찬 기업가 모습을 담기보다 낭만적인 영웅의 도전기로 비치길 원했던 코폴라의 감상적인 연출은 그래서 조 잭슨의 고색창연하지만 감미로운 사운드와 더 잘 어울린다. 만약 존 윌리엄스의 고전적인 심포닉 스코어였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색다른 분위기로 전환하거나 변화를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과거 뉴스릴이나 징글(이른바 CM송)에서 쓰였던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장기인 블루스와 뉴웨이브 등을 가져와 재즈와 결합시키며 조 잭슨이란 이름을 명확하게 각인시킨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을 인수해 자신의 터전으로 삼게 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Factory’는 여백과 퍼커션, 공장에서 들릴법한 소음들로 공간감을 극대화시킨 상상력이 돋보이는 큐이고, 하워드 휴즈와 만나는 짧은 씬에 흘러나온 ‘Hangin’ in Howard Huges’ Hanger’는 그 당시 SF영화에서 유행처럼 사용된 테레민 사운드를 흉내 낸 센스가 일품인 트랙이다. 여기서 코폴라는 거대 세력에 맞선 고독한 영웅의 심리를 앙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모노톤의 표현주의 스타일을 활용해 인상적인 씬을 만들어냈다. 터커가 자신의 주제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며 호랑이 힘(?)을 불어넣는 ‘Tiger Lag’은 밀즈 브라더스나 루이 암스트롱이 불러 유명해진 올드 넘버를 잭슨 자신이 직접 부르고 있으며, 그 외 아들 영화라면 빠짐없이 작곡가든 지휘자로 참여하는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가 작곡한 ‘Tuker Jingle’도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이전부터 재즈의 매력에 빠졌던 잭슨이지만, 이 사운드트랙이 기점으로 보다 진일보한 인스트루멘털 앨범들을 선보이며 아티스트 반열에 올라선다. 실패한 영웅이자 아메리칸 드림의 다른 신화 프레스톤 터커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비록 코폴라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이처럼 훌륭하고 뛰어난 응원가를 남겨주었다. 그해 그래미상 최우수 영화음악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던 조 잭슨의 긍정적이고 희망찬 스코어는 타인에게 쉽게 전염되는 달콤한 꿈처럼 강렬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성공의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찬가로 더할 나위 없다. Track List 1. Captain of Industry (Overture) 2. The Car of Tomorrow-Today! 3. No Chance Blues 4. (He's A) Shape In a Drape 5. Factory 6. Vera 7. It Pays To Advertise 8. Tiger Rag 9. Showtime In Chicago 10. Lone Bank Loan Blues 11. Speedway 12. Marilee 13. Hangin' In Howard Hughes' Hanger 14. Toast of the Town 15. Abe's Blues 16. The Trial 17. Freedom Swing / Tunker Jingle 18. Rhythy Deliv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