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김병욱 사단의 <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 제작발표회 (2)
- 제작년도
- 2010
영화를 제작하다 보면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떤 질문이 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등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편집 중인 타임라인 위의 영상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할 경우 제작하던 영화가 엎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몇 년 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술사를 영상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이 영상이 원하는 메시지가 당연하게 생각됐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할머니들의 기억들을 마구 파헤쳐 현재화하려 했던 것 같다. 대의를 생각하게 되고, 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올바름 등에 대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며, 보는 사람들이 동일화할 수 있는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 영화가 갖고 있을 어떤 세계의 본질을 이야기하기는커녕 기본도 안 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의를 생각하다 보니 당연히 말 되어지고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말하고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는 형태가 된다. 좀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거나 비슷한 태도의 서사 구조를 선호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치부를 감추기 위해 얄팍한 작가 윤리의식이니 도덕 수준이니를 운운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실패했으니, 일단 과정으로 생각하고 다음에는 좀 더 열심히 해 보자’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갖게 됐던 것 같다. 201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상영될 박수남 감독의 < 침묵 >이라는 영화의 제작 일을 돕게 되었다. 올해 81세의, 재일교포(감독님은 재일교포로 불리시기를 바란다) 2세 박수남 감독은 평생 위안부, 원폭 피해, 오키나와 전쟁, 강제 징용 문제 등 일본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 왔다. 영화 <침묵>은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 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제기했던 오키나와의 배봉기 할머니로부터 1996년 국민기금(아시아 여성기금) 반대투쟁까지의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2014년 박수남 감독이 한국을 찾아, 생존해 계신 속리산의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고 인터뷰하는 이야기이다.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일본에서 수많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던 박수남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자기와 같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언니(실제로 감독은 이들을 언니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들을 기록하고 영화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을 들썩였던, 하지만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투쟁과정을 밀착해 기록한 이 소중한 영상들은 할머니들 한 분 한 분을 생동하는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라 외쳐대는 일본의 사죄, 국가의 법적 배상, 재발방지 대책 등의 구호에 빠져 있었다고 생각했던 바로 ‘사람(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이야기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와서 일본사람들이 너무 무서워 감독의 집 피아노 밑에 숨어 지냈다던 하수임 할머니가 당차게 발언을 하시는 모습에서, 전쟁 당시를 증언하려 하면 말문이 막혀 아무 이야기도 못 하시던 유복선 할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시는 모습에서, 분을 못 이겨 실신하시기를 거듭하시던 이옥선 할머니가 일본의 고등학생들과 장난 치고 함께 하는 모습에서. 영화 제작자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일방향적인 대의가 아니라 영화 속 인물, 사건, 상황, 증언들이 스스로 이야기가 되어 만들어 내고 있는 큰 의미의 실천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인지 90세의 이옥선 할머니와 81세의 박수남 감독이 손을 잡고 걸으며 ‘수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뒷모습에서, 이어지는 2015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만적인 한일합의에 대한 자막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나의 문제로 가져오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과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구구절절한 감독 자신의 인생 이야기 혹은 당연한 것들을 강조하고 전달해 눈물을 짜내게 하는 자의적 영화 장치 없이도 담담하게 풀어지고 있는 영화 속 이야기의 빈자리를 나 스스로 채우게 된다. 작업을 함께하면서 박수남 감독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준비된 질문을 드렸다. “영화 < 침묵 >은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오시면서 차별받으셨던 이야기, 그 마이너리티(소수자)의 이야기가 다른 마이너리티와 연대하는 이야기인 거죠?” 했더니, 즉각 그리고 단호하게 돌아오는 답이 “아니라요! 소수자는 또 다른 소수자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구조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요! 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였다. 아팠을 이야기 그리고 용기와 위로를 받고 싶었을 이야기임에도 이를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쳐다볼 수 있는 노감독의 힘을 느낀다. 자신감을 느낀다. 커다란 영화다! 많은 분들이 경험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