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슈퍼맨의 귀향
- 감독
- 임종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영화계, 특히 극장 관람 문화가 빠르게 위축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다양한 문화생태계 구성원을 연결하는 영화제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대부분의 영화관 상영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대체되고 ‘관객과의 대화’와 같은 부대행사는 길고 짧은 인터뷰 영상콘텐츠로 전환되었다. 나는 상반기 영화제에서 생산된 “온라인 GV”를 보면서, 영화제 참여자를 향한 감사함과 별개로, 그것에 대한 기획과 설계가 얼마나 오랜 시간 안일했는지 다시금 느꼈다. 매개에 대한 고민이 누락된 배치 위에서 성사된 관객과 대화하지 않는 ‘관객과의 대화’들이다. ‘질문하기’에 대한 논쟁도 합의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제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관객은 기꺼이 그 자리에 참여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관습적인 어떤 것의 질긴 생명력을 질문할 때 그 대답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과의 대화’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가급적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변하고 싶다. 여전히 영화를 두고 궁금한 것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계속 물어야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모든 관객과의 대화에서 제기되는 질문이야말로 어떻게든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가? 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 작품을 기획한 의도는 무엇인가? 이렇게 몹시 진부한 질문들을 다시 읽어본다. 이 질문은 대화의 시작점인 동시에 도착점이며, 모든 사람이 물어볼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2017년 봄과 여름 사이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재중동포 영화감독 이홍매 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그곳에는 < 명태 >(2017)가 있었다. 가상의 재중동포 김수가 한국 정착을 시작하는 시기의 짧은 구간을 재구성한 영화다. 한편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 마이 리틀 텔레비전 >(2019)은 김씨 성을 가진 또 다른 주인공이 한 재중동포 가정을 방문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편의 영화는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이홍매 감독은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도저히 비평을 시작할 자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민은 아래와 같다. <명태> 하나는 재현의 정치학 관점에서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레이어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우선 <명태>의 김수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김명학은 이홍매 감독과 성별이 다르다. 여성 영화감독은 여성 주인공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연출자 본인과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을 공유하는 인물을 구성하는 과정 안에서 꼼꼼한 자기 반영을 의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반영성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성립시키지 않도록 서사를 만든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김수와 김명학 모두 영화배우 강길우 가 맡았다는 것 또한 보다 섬세한 응시를 요구한다.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제작순서에 맞추어 하나의 타임라인에 놓아서 보면 배우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두 작품은 강한 연결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가령 <명태>의 마지막 장면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첫 번째 장면은 조형적으로 흡사하다. 하지만 두 이미지 속에서 유일하게 같은 얼굴을 가진 김수와 김명학은 사실상 모든 지점에서 충돌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홍매 감독은 어디에 있는가. 인식할 수 없는 작품 속 어딘가에서 스크린 너머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가 항상 나를 비평의 시작점으로 돌려보내는 또 다른 이유는 스스로 비평의 자격을 점검할 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 완결시킨 디아스포라 재현체제 안으로 <명태>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포섭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그것에 대항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욕망을 키우고 있지는 않나. 나는 두 작품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인가. 번역의 선행조건으로서 충분한 성찰과 자기비판의 시간을 가졌는가. 나는 이 글이 하나의 포부로 읽혔으면 한다. 작은 두드림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기다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어디에서 온 바람일까. 어디에 있는 식물일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여기 경계인 한 명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 용왕궁의 기억 >은 그렇게 시작된다. 연출자 김임만 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재일조선인 2세이고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영화 연출과 제작이 본업은 아니며 수입이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의 경제적인 문제는 그가 지속적으로 부모와 갈등을 맺는 원인 중 하나다. 혼인을 하고 슬하에 자녀를 두고 있으나 배우자가 재일조선인인지 혹은 지금까지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정보가 영화 안에서 생략되어 있는데, 대신 영화는 김임만과 그의 부모의 관계, 즉 재일조선인 1세와 2세의 관계에 집중한다. 영화가 전면화하는 문제는 김임만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소통 불가능성이다. 소통은 언어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김임만과 어머니의 언어가 다르다는 게 문제다. 이는 재일조선인 2세가 보편적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재일조선인 1세는 한국어로 말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2세는 제1언어(생활 언어)로 일본어를 사용한다. 여러 조선학교 다큐멘터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 2세와 3세 등 후세대도 한국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이러한 언어 교육 기회가 모든 재일조선인에게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김임만의 경우 집안 문제로 유년기 혹은 청소년기에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부모는 일상에 필요한 일본어는 할 줄 알지만, 그가 영화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를 완전하게 구사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영화에서 그들은 서로 한국어로 대화한다. 여기서 김임만과의 단절이 발생한다. 그는 부모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제외되고 소외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용왕궁의 기억>은 김임만 감독이 재일조선인 2세로서 경험하는 딜레마와 어머니와의 대화의 어려움에서 오는 상처를 고백하고 토로하는 사적 다큐멘터리다. 김임만이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물론 재일조선인을 향한 일본 당국의 차별과 억압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가 고백하는 일종의 수치는 어머니에 대한 것이다. 가령 그녀의 외적인 초라함이나 능숙하지 못한 일본어 등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그녀가 집에서 벌였던 굿판이다. 김임만은 어린 시절 어디선가 굿판 소리가 들려오면 혹시 자기 집에서 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고 회상한다. 재일조선인임을 숨겨야 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울리는 굿판의 소란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굿판을 벌이는 심방이 주로 활동했던 장소가 바로 용왕궁이다. 용왕궁은 재일조선인 1세 여성들이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굿판을 벌였던 굿당이자, 정신적으로 한반도와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용왕궁의 기억>은 이곳에 대한 아카이브 영화이기도 하다 1) <용왕궁의 기억>은 김임만이 부모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드라마를 지향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단언컨대 그들의 갈등은 해결되기 어렵다. 소통 불가능성의 원인인 언어의 장벽은 쉬이 극복되지 않는다. 김임만이 한국어를 학습한다고 해서 일본어로 이루어지는 사고가 온전히 번역되는 것도 아니다. 이 불가능성이 재일조선인 사회의 비극임을 그는 순응하고 있다. 오히려 이 사실을 전면에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점에 있다. 그가 부끄러워했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고 쇠약해져 끝내 언어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더는 ‘제주도에 가자’는 그의 제안에 반응할 수 없다. 표정이나 행동을 통한 소통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과하고 애도하는 일이다. 그는 끝내 어머니가 알려주지 않았던 과거의 상처를 직접 추적해나간다. 김임만이 용왕궁을 기록하거나 제주도로 이동해 제주 4.3사건의 기억을 탐색하는 일련의 과정은 어머니와의 단절을 극복하기보다는, 어머니와 연관된 공간과 기억들로 우회하여 그것의 근원에 조심스레 다가가는 일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어머니의 상처와 염원이 잔존한 사물과 장소에 접속하는 주술로서 김임만은 영화 제작에 임하고 있다. <용왕궁의 기억>이라는 영화를 만드는 일은, 사라진 어머니의 기억에 가까워지고 그녀를 비롯한 다수의 국가폭력 희생자를 애도하는 일종의 굿판이 된다. 앞서 재일조선인 1세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염원을 담아 한반도와 일본을 연결했던 정신적 공간이 용왕궁이라 했다. 그렇다면 영화 <용왕궁의 기억>이 그 자체로 용왕궁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임만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1)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용왕궁은 모두 철거되었다. 용왕궁에서 심방이 사용했던 도구나 그곳에 있었던 물건들은 현재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에서 보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