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 감독
- 임필성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이재경, 이원두
< 괴물 >(2006)은 서울 도심의 한강에서 거대한 돌연변이 생물이 나타나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을 날뛰다가 여중생을 꼬리에 움켜쥐고 납치하는 기둥 설정 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장르에 대한 성공적인 전복의 사례인 < 살인의 추억 >(2003)과 마찬가지로 장르의 꼴을 갖추고 있는 <괴물>에서 봉준호는 괴수영화의 관습을 이용하여 현대 한국의 사회, 정치적 현실을 다룬다. 미군 기지를 발원지로 하는 환경 사고의 산물인 괴물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쉽게 읽히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더 복잡한 그림이 드러난다. 납치된 소녀 현서(고아성)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경제 기적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박씨 집안의 구성원이다. 현서의 가족은 느리지만 헌신적인 아버지 강두(송강호)와 강변 매점을 강두와 함께 운영하는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으로 구성돼 있다. 결정적인 순간 얼어붙는 버릇이 있는 양궁 선수 이모 남주(배두나)와 한때 급진주의자였으나 지금은 실직한 주정뱅이인 삼촌 남일(박해일)도 있다. 국가는 이 가족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괴물의 공격이 있은 후 정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숙주라며 가족을 비롯한 괴물과 접촉한 모든 사람을 격리한다. 하지만 강두는 괴물에게 납치당한 뒤 한강을 따라 배치된 미로 같은 하수구에서 노숙자 소년과 함께 숨죽이고 있는 현서의 전화를 받는다. 박씨 가족 일행은 아둔한 병원의 통제 시스템을 벗어나 현서를 찾기 위한 자경단의 여정을 시작한다. <괴물>은 장르와 양가적 관계를 구현한다. 봉준호는 괴수 장르의 발전 도상위에서 자신의 영화를 할리우드와 더 밀착시키고자 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괴물의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운 등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위기에 처한 여러 인물들의 예상치 못한 용감한 행동으로 절정에 이르는 고전 괴수영화의 시각적, 서사적 관습을 따른다. 스토리는 전국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무대, 즉 수도 서울의 상징인 한강변을 배경으로 한다. 시각효과 스튜디오 오퍼니지와 협력한 할리우드 수준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퀄리티 이면에 놓인 봉준호의 야심은 괴수영화와 슬랩스틱 코미디의 관습이 충돌하는 장르의 미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노란색 방호복을 입은 방역 요원이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강두에게 총알이 한 발 남았다는 말을 들은 희봉이 아들이 총알의 수를 잘못 세었다는 것을 깨닫고 괴물에게 최후를 맞는 장면 등에서 이런 충돌이 가시화된다. 봉준호는 괴물의 실체를 초반에 드러내거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괴물의 입에서 빠져나온 현서가 가족의 간청에 화답하지 않고 비극을 맞이하는 가슴 아픈 장면 등에서 할리우드 주류 장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장르의 관습을 전복한다. 봉준호는 장르 관습의 조각들을 한국적 문맥에 맞게 배열하는, <살인의 추억>에서 시작한 연출 전략을 이어간다.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중 하나는 클라이맥스, 거리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강두의 가족들이 한강변의 노숙자(윤제문)와 함께 괴물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는 신이다. 정치적인 함의가 강력하게 폭발하는 이 장면에서 노숙자는 남일이 배낭을 벗어 던지고 불타는 화염병을 던질 준비를 하는 동안 괴물의 목구멍에 휘발유를 붓고 병이 손에서 미끄러져 발밑에 부딪히자 놀란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때 남주가 활을 들고 나타나 절묘한 타이밍에 화염이 이는 화살을 괴물의 입을 향해 발사하고 강두는 쇠파이프로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이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할리우드의 장르 관습과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불덩어리가 되어 쓰러지는 괴물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은 괴수 영화의 전형적인 관습 아래 있다. 괴물을 처단하는 공격의 수단은 너무나 한국적이다. 배낭을 멘 청년이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은 민주화시대를 통과한 한국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선명한 도상은 1980년대 민주화 시위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 세계화 및 자유무역 반대 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참여했던 20여 년간의 거리 시위를 환기한다. 이러한 시위 중 상당수가 억압적인 군사정권을 지지하거나 점령군의 부당한 지위를 남용하고, 신(新) 자유주의 경제 의제를 추진한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저류에는 뚜렷한 반미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활과 화살을 든 남주의 이미지에는 한국의 여성 양궁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해 온 국가적 색채도 담겨 있다. 괴물과 미국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이 장면들은 글로벌한 미국인-타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치적 주장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것은 노숙자, 실직자, 정치적 액티비스트, 삼류 운동선수 등 사회적, 경제적 주변성과 실패한 인물들을 통해 한국성을 표현하려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봉준호는 국가의 대리인이 아닌 이들을 도덕적으로 정당한 한국성의 구현으로 지지한다. 범죄 드라마가 아닌 괴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표면적 범죄와 심층적 범죄라는 <살인의 추억>의 구조를 이어받는다. 납치와 실종의 상황은 <괴물>에서 반복되는데 괴물은 내러티브에 구조를 부여하는 장치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초점은 아니며 실제로 괴물은 플롯이 전개되는 동안 점차적으로 중요성을 상실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도시의 표면 아래 숨겨진 현서를 찾는 가족의 여정이 현대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범죄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박씨 일가가 관료 조직과 자본에 얼키고 설키면서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상징물인 한강 다리 아래를 전전할 때 그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고 그저 경멸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경찰은 현서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병원은 현서를 찾기 위해 격리를 해제하지 않으며, 강변을 소독하는 방역 요원들은 쉽게 뇌물에 굴복한다. 남일은 급진주의 액티비스트 시절의 정치적 이상을 고액 연봉과 교환한 친구 뚱게바라(임필성)에게 배신을 당한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경제적 성공을 연상시키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 있는 통신회사 사무실에서 뚱게바라는 휴대폰 추적을 통해 현서의 위치를 찾아내지만 카드빚을 갚기 위한 신고 포상금을 노리고 경찰에 남일을 신고한다. 이러저러한 삽화들을 통해 봉준호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환상을 야유하고 경제적 기적을 돌연변이 괴물로 재탄생시켜 근대화를 얻기 위해 지불한 사회적, 도덕적 비용의 크기를 가늠하고자 한다. <괴물>이 폭로하고자 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범죄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프롤로그는 돌연변이 생물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장면은 주한미군 사령부이자 서울 중심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이곳 근처에 현재 한국 정부가 터를 잡았다는 사실도 기이한 반향을 불러온다)의 영안실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한국인 부하 직원에게 포름알데히드 병을 하수구에 버리라고 명령하고, 소극적으로 항의하던 부하는 이내 순순히 복종하여 수백 병의 독극물을 싱크대에 쏟아 붓는다. 이 장면은 고전 공포영화의 클리셰인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더 미묘한 공포는 부하가 미친 과학자의 명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불안을 조성하는 이 장면은 자국민에 극도로 해로울 수 있는 범죄를 종용하는 미국의 명령에 순응하는 한국 정부의 종속성을 재현한다. 한 병원 장면에서 기괴한 방호복을 입은 미국 관리가 한국인 의사에게 강두의 뇌를 뚫으라고 명령하는데 이 가학적이고 비논리적인 행위를 한국인 의사는 묵묵히 수행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괴물이 자연이나 과학, 심지어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종이라는 정치적 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주장한다. 괴물을 만드는 것은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아니라 한국인 조수이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인 ‘숙주’는 미국에 기생하는 한국의 지위를 가리키면서 심오한 범죄의 본질을 암시하는 셈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60년대 이후 한국영화, 하면 ‘충무로’였잖아요. 근데 지금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가 거의 없거든요.”(임필성 감독) “충무로란 단어가 주는 올드함, 다가가고 싶지 않은 비호감의 이름을 껴안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고, 이날치의 국악 공연이 주는 신선함처럼 즐길 수 있는 ‘힙함’을 만들고 싶었죠.”(민규동 감독) ‘THE CMR-디렉터스 위크’. 올해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새롭게 손잡고 출범한 제5회 충무로영화제(12월 1~5일)의 새 이름이다. 왕년의 한국영화 1번지 충무로의 재탄생이란 의미로 영어 첫 글자만 따온 ‘THE CMR’에 국제영화제란 명칭일랑 떼고, ‘감독주간’이란 뜻의 영문부제(Directers Week)를 달았다. 국내 전무후무한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감독의 영화제’(슬로건)다. 중구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프로그래머를 자처한 ‘허스토리’의 민규동 감독, ‘마담 뺑덕’의 임필성 감독을 24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충무로엔 2007년 고전영화의 ‘발견, 복원, 창조’를 내걸고 나선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2016년 새 장르로 갈아입은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출범했지만 모두 4회 만에 수명을 다한 터. 올해 제5회 영화제가 성사될 수 있었던 건, 앞서 두 영화제를 각각 운영위원장, 예술감독으로서 이끈 김홍준 감독이 개최시기를 두 달여 앞두고 다급히 감독조합 문을 두드리면서다. 윤제균 감독과 더불어 감독조합 공동대표인 민 감독은 “온전히 장르를 감독으로 설정하고 이름도 바꾸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했다”면서 1998년부터 개최해온 감독들이 서로 한해 영화들을 돌아보는 시상식 ‘디렉터스 컷 어워즈’가 토대가 됐다고 했다. “오프라인으로 부딪혀야 재밌는 행사여서 올해 디렉터스 컷 어워즈는 내년으로 넘겼지만, 감독이 중심이 돼서 주차관리, 티켓발급, 테이블세팅, 음식준비, 청소 같은 작은 일까지 직접 호스팅하는 전통이있거든요. 이번(THE CMR)에도 감독들이 전면에 나섰어요. (코로나19로) 좀 세포가 죽어있던, 짓눌렸던 감독님들이 몸 움직이면서 감독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워밍업하고, 그런 시기라고 생각했죠.” 영화제는 1일부터 닷새간 네이버TV, 네이버 시리즈on, 틱톡(TikTok), 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열린다. 구석구석 창작자들다운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개막작 ‘The CMR’은 중구 15개동을 감독 15인이 각기 세로 화면의 단편에 담은 옴니버스 프로젝트. 올해의 장편영화 9편, 단편 10편을 각기 선정한 상영 프로그램 ‘쌀롱 드 씨네마’엔 상영 후 각각을 연출한 감독에게 또 다른 감독이 진행을 맡아 질문하는 관객과의 대화(GV) ‘감감묻(감독이 감독에게 묻다)’도 마련했다. ‘충무로 클라쓰’ 섹션에선 이경미 감독 등이 OTT 오리지널 작품 연출에 대해 말하는 ‘극장을 탈출한 감독들’, 연기자로 출발한 감독들의 체험을 나누는 ‘감독이 된 배우들’, 최근 시나리오 작법서를 낸 오기환 감독의 강연 ‘흥행하는 글쓰기’를 진행한다. ‘한숨 토-크’ 섹션에선 윤제균‧이준익 등 올해 신작 개봉을 연기해야 했던 굵직한 감독들의 ‘코로나 시대 감독살이’, 개막작으로 신개념 세로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분투기도 들을 수 있다. 나원정: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상했나. 임필성: 일정이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영화제고 감독들이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는 얘기를 주로 하니까,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별로 없잖나(웃음). 고민의 핵심은 감독들이 중심이 된 영화제에서 영화 좋아하는 관객들, 영화학도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였다. 두 번째는 저희 감독조합 회원이 370명 정돈데 감독들도 다른 감독들의 작업에서 어떤 걸 궁금해 할까. 마스터클래스(충무로 클라쓰)도 원래 영화감독인데 OTT 화제작을 찍은 이경미 감독을 모셔와서 어떤 일이 있었나 저부터 궁금했다. 마스터클래스는 사전 녹화했는데 촬영하던 강대규 감독도 도중에 진지한 질문을 막 하더라. CG가 많지않은 영화를 주로 찍던 이경미 감독이 한 에피소드에 CG 몇백컷짜리 작품을 찍었잖나. 젤리 괴물의 첫 소스는 뭐였고 창작 과정에 어떤 괴로움이 있었는지 저부터 궁금했으니까. 또 배우와 감독을 겸업하거나 아예 감독 변신한 배우들이 많아지니까, 왜 오게 됐을까 묻고 싶었다. 한국 감독의 80% 이상이 시나리오를 겸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얘기하면 재밌지 않을까. 상영 프로그램도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대표작, 상업영화 흥행작과 영화제 수상 단편 및 해당 감독의 전작 단편까지 한눈에 정리할 수 있게 마련했다. 색깔은 좀 없을지 몰라도,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영화제에 쫓아가서 볼 수 없었던 감독, 관객들 한번에 보면 소위 얘기하는 충무로 정신, 충무로의 문화와 이어지는 면이 있지 않을까. 내년을 위한 일종의 ‘프리 페스티벌’로 준비했다. 민규동: 게으른 자들을 위한 컴필레이션인 셈이다(웃음). 나원정: 감독조합은 올해 OTT SF 시리즈 ‘SF8’, 여성주의적 영화를 고찰한 ‘벡델데이’ 등 새로운 플랫폼, 인식에 꾸준히 도전해왔는데, 이번 개막작도 세로란 점이 신선하다. 민규동: 영화제도 새로워지고 공간도 새로워지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새로, 새로’ 하다가 ‘세로로 찍자’고 결정했다(포스터에 적힌 ‘충무로, 새(세)로 보다’에도 ‘새’와 ‘세’를 합한 형태의 글자가 사용됐다). 감독조합 밴드에 공고를 받아서 추첨을 통해 4대 1 경쟁을 뚫고 당선된 15명에게 행정동을 추첨으로 나눠주고 영화 ‘사랑해, 파리’처럼 미션을 주고 찍었다. 제작비 300만원 주고 한 달 동안 알아서 찍으랬다. 세로란 느낌이 특화된 영화도 있고 여전히 가로와 세로가 구분되지 않는 영화도 있다. 다들 고민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대화샷을 못 찍고 풀샷의 개념이 달라지니까. 위아래조차 달라지기 때문에 자기가 익숙한 언어를 뒤집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한 번도 안 찍어본 감독님이 강의를 듣고 공부해서 시작한 작품도 있다. 이옥섭 감독님의 ‘동화동’은 구교환 배우가 나와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신아가 감독님의 ‘신당5동’도 몰입감이 굉장하다. 임필성: 2분이든, 3분이든 짧은 작품이라도 감독한테 좋다고 생각한다. 정규 영화 하겠다고 5년, 10년 기다리면 감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이번 개막작도 일종의 짧은 작품이라도 만들 기회를 주는 일종의 수요 창출이다. 네이버TV는 전체 15편을 각 4분짜리 풀 버전으로 개막일부터 볼 수 있고 틱톡에선 3분짜리 재편집된 버전을 개별 관람할 수 있다. 나원정: GV와 토크 관람은 무료지만 직전에 상영되는 장‧단편 상영작 온라인 관람은 1,000원(장편 기준)가량 결제해야 한다. 상영작을 행사 스케줄에 맞춰 실시간 온라인 상영하는 점도 새롭다. 앞서 국내 비대면 영화제들에선 잘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다. 민규동: 신개념 시도다. 코로나에서 살아남은 영화들, 개봉 성공했다고 하지만 직접 GV, 무대인사를 못 했잖나. 또 단편은 1+1로 감독의 전작까지 튼다. 모두 한 시간씩, 원하는 스태프, 배우 다 데려와서 모든 진행은 감독조합 소속 감독이 맡는다. 감독들이 딱 한 주간만이라도 자기 정체성이 존중받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밀도 있게 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각 제작사와 협의해서 성사했다. 나원정: 장편 상영작은 독립영화 ‘69세’ ‘남매의 여름밤’ ‘찬실이는 복도 많지’부터 상업영화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케이 마담’ ‘반도’ 등 선정 폭이 넓다. 민규동: ‘SF8’처럼 플랫폼은 다변화되는데 그런 작품이 갈 수 있는 영화제 성격은 정해져있더라. 이번 선정작엔 영화제 환영작뿐 아니라 아주 대중적인 영화도 담았다. 임필성: 상업영화는 나름의 신선한 시도를 하고 관객한테 의미 있는 평가를 받아도 비평가가 인정하지 않거나 흘러가버리곤 한다. 어떤 배우의 오랜만에 너무 의미 있는 복귀작이라거나, 기술적으로 굉장히 새로운 제시를 했다거나, 흥행성이 아쉬워도 최소 100명은 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들이 감독 입장에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종합상차림처럼 됐는데 개성 없는 게 개성인 것 같다. 민규동: 뮤지컬, 건축, 무용…. 넘치는 영화제 속에서 또 하나의 영화제가 공해가 되지 않으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감독 자체를 장르로 삼는 영화제는 무한한 확장성이 있다고 본다. 프로듀서, 배우 등도 모두 감독의 관계망으로 풀어갈 수 있으니까. 이번 영화제에선 ‘오케이 마담’의 주연 배우 엄정화, ‘담보’의 성동일처럼 평상시 GV에서 잘 만나기 어려운 배우들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눈다. 민규동 감독은 이전에도 감독들의 비전을 담은 영화제를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등에 제안하며 고민해왔다고 했다. 부산영화제에서 신인감독에게 주는 감독조합상 ‘비전상’이 그런 결과물의 한 예다. 하지만 단순한 시상을 넘어 기존 프로그래머, 평론가와 다른 시선으로 작가, 감독의 영화를 프로그래밍하는 다른 성격의 비전을 새로이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프리 페스티벌’ 이후 내년엔 어떤 영화제의 모습을 꿈꿀까. 코로나 상황이 개선된단 가정 하에 그가 답했다. “큰 영화제와 작은 영화제의 갈림길이 오프라인 행사죠. 상황이 가능해진다면 대면 방식의 정통 영화제 형식을 확장시켜보고 싶은 몇몇 아이디어가 있어요.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극장을 벗어나 맛집, DDP, 덕수궁, 남산타워도 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식에 엄숙주의를 최대한 빼고 좀 더 즐길만한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2002년 | 싸이더스 감독, 각본 : 조민호 | 제작: 차승재 | 촬영: 이두만 | 음악: 김재원 박영 | 미술: 이대훈 CAST 기태: 장혁 | 철수: 이범수 | 멕: 전혜진 | 민철: 손창민 | 악어: 김뢰하 | 땅개: 봉태규 | 이 형사: 박원상 큰 흥행을 기록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 정글쥬스 >는 이른바 ‘양아치 영화’ 장르의 대표작입니다. 청량리 출신의 두 루저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 그들은 우연히 마약을 손에 넣지만 쫓기는 신세가 되죠. 그 끝은 부산 태종대. 2001년 초겨울, 그곳 현장에 갔습니다. 마약을 빼앗긴 조직 보스 민철(손창민)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두 주인공에게 총을 겨눕니다. 이 날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데요, 영화에선 꽤나 절박한 장면이지만 정작 현장 분위기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크랭크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랬던 것 같네요. 위의 롱 숏을 앵글을 달리 해 두 개의 숏으로 쪼개 보면 이렇습니다. 뒷모습으로 보이는 손창민은, <정글쥬스>에서 ‘빡빡 머리’로 밀며 인상적인 변신을 보여줍니다. 한편 기태와 철수는 태종대 자살바위 끝까지 몰렸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기태는 철수를 이끌고 벼랑 끝으로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뛰어 내립니다. 혹시 이 장면… <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리들리 스콧, 1991)의 마지막 장면을 패러디 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두 배우는 실제로 큰 액션과 함께 뛰어 내렸고, 아래 쪽엔 라면 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든든한 안전 장치였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시야에 바다가 걸리는 장소에서 벼랑 아래로 뛰어내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두 배우는 몇 번에 걸쳐 반복했습니다. 안 그래도 아찔한 벼랑 위의 촬영에, 더 아찔해 보이는 크레인이 동원됐습니다. 이두만 촬영감독은 정지우, 김용균, 임필성 감독 등과 함께 1990년대에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활동했고, < 눈물 >( 임상수 , 2000)로 장편영화 촬영감독이 되었습니다. <정글쥬스>는 두 번째 장편인데요, 서른 즈음의 젊은 촬영감독답게 활기 찬 화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컷!” 소리가 나자마자 배우들은 모니터 앞으로 달려옵니다. 중요도가 높은 장면이라, 꼼꼼하게 체크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죠. 조민호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내도, 배우들의 요구로 더 찍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은 조민호 감독은 김영빈 , 이민용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정글쥬스>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 강적 >(2006) < 10억 >(2009) 등의 작품을 내놓았고요. 기태와 철수, 두 루저 캐릭터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매우 컸습니다. “나는 <정글쥬스>에서 양아치들 바로 옆에 따라 붙고 싶었고, 그래서 핸드헬드 카메라를 많이 사용했다. 그것이 관객들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정글쥬스>엔 인물이 없는 컷이 한 컷도 없다. 나는 인물들과 같이 호흡하고 느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현장은 열기로 넘쳤지만, 초겨울에 여름 의상을 입은 배우들은 추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배우는 점퍼를 입거나 하지 않고, 영화 속 의상 그대로 현장에 있었습니다. 조민호 감독은 “양아치 인생을 그렸지만 어두운 영화는 아니다. 밝게 찍어야 한다”고 배우들에게 주문했습니다. 한편 이범수에게 <정글쥬스>는 첫 주연작이었는데요, 그는 “이 영화를 찍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장혁은 이범수와 호흡을 맞추며 “만만한 셋째형을 건졌다”고 표현했는데요. “범수 형은 큰형이나 둘째형보다 조금 만만한 셋째형 같은 느낌이다. 콤비 플레이가 중요한 영화라서 핑퐁을 하듯 재미있게 연기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보스 민철의 피 묻은 손과 옷, 그리고 권총은 이 장면의 격렬한 느낌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어느덧 점점 어두워지는 태종대. 그래도 빛이 허락할 때까지 촬영은 이어집니다. 마치 벌레들처럼 바글거리며 살아가는 두 청춘의 이야기 <정글쥬스>. 조민호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글쥬스>의 기태와 철수는 낮에는 유치찬란한 양아치고 밤에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 아이들은 청년 실업자들이고 경제적 이해 관계로부터 소외된 하층 계급이다. 하지만 그 양아치들에겐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도둑고양이들처럼 말이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