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팩트
- 감독
- 자레드 레토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샤논 레토, 토모 밀리세빅
할리우드 기획물의 변화하는 한 축을 가늠하고 싶다면 배우 ‘멜리사’들의 행보를 관찰해 봐도 좋겠다. 먼저 멜리사 맥카시. <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 >(2011)에서 친구 들러리로 활약할 때만 해도 플러스 사이즈 배우가 가진 익숙한 코믹이 적중한 정도라 생각했다. < 스파이 >(2015)에서 마치 본처럼 종횡무진 하는 CIA 요원이 되어 액션을 구가할 때는 그 위력이 점점 실감됐다. 급기야 < 고스트버스터즈 >(2016)에서 여성 헌터로 활약하는 모습에 이르면 이제 이 배우가 가지 못할 길은 어디일까 싶다. 맥카시를 보고 있노라면 플러스 사이즈라고 사이드로 밀려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때로 귀엽고, 때로 도발적이며, 때로 과격한 맥카시 본연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이 끊이질 않는다. 관객의 반응이 있는 이상, 배우의 영역은 지금보다 더 넓어질 게 확실하다. 멜리사 버글랜드는 그런 의미에서 앞선 멜리사의 전철을 밟는 호주 출신의 배우인데, < 렉시의 행복 레시피 >로 들어가자면, 먼저 버글랜드를 좀 알아가는 것도 좋겠다. 버글랜드는 2011년도부터 방영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미드 <위너스&루저스>에서 플러스 사이즈의 귀여운 캐릭터 ‘제니 그로스’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제니처럼 실제로도 플러스 사이즈인 그녀는 “스칼렛 요한슨처럼도, 샤를리즈 테론처럼도 생기지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 이상하고 웃긴 내 모습을 오히려 사랑스럽고 귀엽게 봐주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더 이상 그녀가 배우 활동을 하며 날씬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 업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버글랜드의 인기를 감지한 할리우드 에이전시 ‘언타이틀드 엔터테인먼트’가 발 빠르게 계약을 맺었는데, 이곳은 마돈나, 애쉬튼 커쳐, 힐러리 스웽크, 다니엘 데이 루이스, 나오미 왓츠, 자레드 레토, 페넬로페 크루즈 등이 소속된 전도유망한 곳이기도 하다. < 렉시의 행복 레시피 >는 앞서 말한 버글랜드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코드들을 적극 활용해 만든 로맨틱 코미디다. 이 영화는 캐나다 버전의 < 브리짓 존스의 일기 >라는 수식이 잘 어울린다. B&B를 운영하는 서른 살 렉시 아이비는 성격도 꽤 괜찮고, 요리도 수준급인데 연애가 잘 풀리지 않아 고민 중이다. 여동생 결혼 준비로 집안은 분주하고, 투숙객인 커플은 밤새 섹스를 하느라 삐걱거리는 탓에 외로운 렉시의 밤잠을 설치게 한다. 맞춘 결혼식 드레스는 작아서 수선을 해야 할 판이고, 결혼식에 같이 갈 파트너가 없어서 엄마한테 닦달을 당하는 것도 괴롭다. “백마 탄 왕자님은 그만 좀 기다려”라는 친구의 충고에 “자전거 탄 왕자님이야”라고 정정할 정도로 그녀의 이상형은 자전거 탄 훈남.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자전거를 타고 온 미남자가 도착해 며칠 묵어갈 방을 구한다. 렉시가 사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담으러 이곳에 온 자유로운 영혼의 사진작가 애드리안(조나단 소우사)이다. 물론 <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속 ‘마크 다아시’같은 완벽하고 친절한 남자가 나타난 판에, 그녀의 속을 사사건건 긁는 ‘다니엘 클레버’가 없으면 심심할 거다. 이 경우에는 물새는 B&B의 지붕을 고쳐주러 온 친구의 친구인 남자 조스(아론 폴, < 브레이킹 배드 >의 그 아론 폴이다)가 얄미운 클레버다. 오랜만에 완벽한 이상형을 두고 핑크빛 멜로를 꿈꾸는 렉시에게 더러운 신발을 신고 마룻바닥을 저벅저벅 밟아 다니고, 땀내 나는 데다 능글맞은 조스는 지붕만 수리만 끝내면 사라져 줘야 할 눈엣가시다. 하지만 영화는 조스가 ‘처한’ 위치를 완벽하게 활용하는데, 연일 계속되는 지붕 수리 도중, 본의 아니게 조스가 렉시의 실수들을 유독 많이 보게 되고, 그녀의 귀여움에 눈을 뜨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령 렉시가 혼자 흥에 겨워 막춤을 추는 것 같은 장면들이나, 애드리안과 겪는 온갖 민망한 순간들을 모두 지켜보는 순간들. 한창 판타지에 빠져든 렉시의 연애가 엉망진창 산산조각이 나는 사건이 전개되는데, 결혼을 앞둔 동생과 푹 빠져버린 애드리안이 눈이 맞았다는 청천벽력이 그 시작이라고 할까. 블루베리 케?이나 크림 뷜레 같이 렉시가 만든 수준급의 요리들이 사건의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윤활유가 되지만 이 영화에 ‘음식=힐링’이라는 공식을 적용하긴 힘들다. 그러니 트렌디한 음식 영화 같은 제목 대신, 이 영화의 원제인 ‘상대적인 행복’이란 뜻을 가진 ‘Relative Happiness’를 끄집어 내보는 게 더 어울리지 싶다. 마치 이영자 와 신동엽 , 컬트멤버들이 나란히 앉아 일반인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토크쇼 <안녕하세요>에나 나올법한 사연처럼, 고상한 엄마, 우아한 언니, 아름다운 동생에게 주눅 들어 살았던 렉시는 모든 게 무너지는 순간, 자신이 이상적으로 바라보던 그 ‘아름다운’ 관계들이 그리 완벽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 렉시의 행복 레시피 >는 전작 <비트 다운>(2012)을 비롯해 코믹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여성감독 딘느 폴리의 영화로 뭐 그리 별스럽지도 않거니와 다소 뻔해 보이기까지 한 소소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앞서 말한 버글랜드의 능청맞고 귀여운 면모가 주는 재미가 크다. 극의 초반, 동생 결혼식용 피로연 드레스 생각에 그래도 살을 좀 빼볼까 TV를 보며 요가를 따라 하던 렉시가, 금새 포기하고 TV를 끄고 먹을 걸 먹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시작은 플러스 사이즈의 미운 오리로 하되 끝은 각고의 노력으로 체중감량을 해 백조가 되는 판타지는 이 영화에는 없다. 렉시가 날씬한 집안 누구와도 다르게 혼자 플러스 사이즈인 것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도 애초 없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렉시의 몸무게는 그대로 유지되며, 그러니 렉시는 가장 코믹한 순간에도, 가장 로맨틱한 순간에도 ‘그녀인 채’로 승부를 볼 뿐이다. 뭣보다 <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의 르네 젤위거가 브리짓을 연기하기 위해 엄청나게 체중을 불렸다가, 연이어 < 시카고 >(2002)를 찍기 위해 트레이너의 훈련 아래 혹독하게 체중감량을 해야 했던 그 고통을 <렉시의 행복 레시피>의 주연배우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건 2001년에 시작된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시리즈를 거듭해 <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2016)로 나오기까지 지난 십 수년간 일어난 이 업계의 괄목할 만한 변화다. 그녀가 맥카시와 견주어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머리와 예쁜 프린트가 가미된 귀여운 스타일의 패션을 소화하는 렉시처럼, 버글랜드 역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배우로 영역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