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사비호
- 감독
- 박종훈, 시암술 푸아드
- 제작년도
- 1978
- 출연
- 신일룡, 왕도, 데비, 박동룡, 조영희, 권오상, 이중형, 최재형, 김영일, 최무웅, 최남현
2002년 | 강제규 필름 감독: 정초신 | 시나리오: 박채운 | 제작: 최진화 | 촬영: 서정민 | 프로덕션 디자인: 서명혜 | 음악: 이영호 이소윤 CAST 병철: 이범수 | 유리: 김선아 | 동현: 노형욱 | 석구: 전재형 | 상민: 정재훈 | 영재: 안재홍 아마 이 영화가 전국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한참 성적 호기심에 불타는 남자 중학생들과 여자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였던 < 몽정기 >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슬리퍼 히트’, 즉 ‘예상치 못했던 흥행작’입니다. <몽정기>의 촬영이 있던 2002년 8월 부산의 한 여중 교실은 영화 현장이라기보다는 생기 넘치는 교실 같았습니다. 창 밖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그러들 줄을 몰랐습니다. 교생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 장면. 도시락 세대의 추억이기도 하죠. “선생님,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애는 어떻게 생겨요?” 녀석들은 ‘성’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묻지만 꿈 많은 소녀 표정의 선생님은 풋고추를 좋아한다느니 하며 아이들의 짓궂은 질문을 가볍게 넘어버립니다. 겉모습은 조금 궁상맞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선생님 역은 이범수. 교생이자 과거 제자였던 김선아는 그를 사랑하는데요, 이범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스 라인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총각 병철을 짝사랑하는 유리. 그녀에게 그는 ‘영원한 테리우스’지만, 병철은 그녀에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아이들과 너무 허물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아무리 그래도 교생도 선생이야”라며 엄하게 충고합니다. 유리의 친구이자 동료 교생인 소정 역을 맡은 배우는 김기연 . < 노랑머리 >(김유민, 1999)의 상희 역으로 알려진 배우죠. 소정은 유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테리우스가 어딨니?” 짬을 내 네 명의 ‘중딩’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조숙한 아이 상민(정대훈), 그나마 똑똑한 영재(안재홍), 어리숙한 석구(전재형) 그리고 교생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 동현(노형욱)입니다. 영화에선 중학교 2학년 설정이지만, 영재 역의 안재홍(14살)을 제외하곤 나이를 꽤 먹었습니다. 정대훈과 노형욱은 18살, 전재형은 성인인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들이 모두 30대가 되었네요.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석구 역의 전재형은 이 영화의 ‘신 스틸러’였죠. 첫 영화였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 몽정기 2 >(정초신, 2005)에도 출연합니다. 노형욱은 <몽정기> 개봉 즈음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시작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졌죠. <몽정기> 전엔 < 깊은 슬픔 >( 곽지균 , 1997)에서 김승우 의 아역이었고요. 이후 < 효자동 이발사 >( 임찬상 , 2004)에선 송강호 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상민 역의 정대훈은 ‘여관집 아들 상민’ 역을 맡았습니다.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천혜의 환경인 셈인데요, 그래서 <몽정기>의 인상적인 여관 에피소드가 가능했죠. 안재홍은 < 악어 >( 김기덕 , 1996)의 ‘앵벌이 꼬마’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죠. 묘한 표정의 김선아. 이때만 해도 그녀는 영화계에선 신인급이었죠. < 예스터데이 >( 정윤수 , 2002)의 여전사 메이가 첫 영화였는데요, ‘포텐’이 터진 건 <몽정기>였습니다.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범수. 이 시기 그는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 < 정글 쥬스 >( 조민호 , 2002) 등으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흥행작 <몽정기>를 통해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잡습니다. 메이크업 중인 이범수와 김선아의 모습입니다. 이범수는 촌스럽게, 김선아는 귀엽고 청순하게 보이는 것이 컨셉트였습니다. 1988년이 배경인 만큼, 교실 뒤편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들은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소품들이었죠. 그 옆에 당시 남자 아이들이 즐겼던 종이 축구 게임판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출신으로 첫 연출작 < 자카르타 >(2000)에서 흥행을 맛 본 정초신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몽정기>를 선택했고, 흥행세를 이어갑니다. <몽정기>에 대해 “오프라인 세대의 청소년기를 위한 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종의 ‘노스텔지어 무비’라는 거죠.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1934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68세의 노익장이셨죠.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 마의 계단 >(1964) < 만추 >(1966) 등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루며 스타일리시한 촬영을 보여주었던 그는 대규모 스펙터클부터 섬세한 감성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80년대엔 이장호 감독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1990년대엔 < 개 같은 날의 오후 >( 이민용 , 1995) 같은 코미디부터 <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 신승수 , 1992) 같은 로맨스, 그리고 < 손톱 >( 김성홍 , 1994) 같은 스릴러와 < 여고괴담 >( 박기형 , 1998) 같은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셨고요. 놀라운 건 <몽정기> 이후 칠순의 연세에 < 어린 신부 >( 김호준 , 2004) 같은 ‘뽀사시’한 영상을 만드셨다는 점인데요, 서정민 촬영감독에게 불가능한 장르와 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5년, 위대한 카메라맨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001년 < 친구 > 이후 한국의 영화 현장에 ‘현장 편집’이라는 게 생겨 급속하게 보급됩니다. <몽정기> 현장에선 그 장비가 매우 간소해졌더군요. <몽정기>의 콘티 북입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콘티 북이, 어떨 땐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정교했는데요, <몽정기>의 콘티 북은 거의 ‘졸라맨’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몽정기>는 제작 초기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갑자기 투입된 정초신 감독은 시간이 없어 꼼꼼하게 콘티를 그릴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충 그린 콘티 북이 탄생했는데요, 그럼에도 영화는 ‘대박’을 기록했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개회식에 입장하는 한국 선수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개최되었던 제18회 아시안게임이 2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9월 2일 폐회했다. 인도네시아는 1962년 제4회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이후 두 번째로 대회를 개최했다. 올림픽과 2년 차로 열리는 아시안게임인데 이번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은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년 후인 1964년 제18회 도쿄올림픽이 개최되었는데 이번에도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46년 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연이어 같은 개최지가 선정된 것은 우연일 것이다. 그런데 두 대회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그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남북 단일팀 역사의 흔적이다.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남북 단일팀 협상은 2018년 현재 상황과 대비되어 더욱 흥미롭다.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개회식(좌), 1964년 도쿄 올림픽 폐회식(우) 아시안게임은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6개국 대표가 아시아 선수연맹을 창설해 올림픽처럼 4년마다 국제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시작되었다. 1950년 제1회 대회가 준비 미비로 1951년으로 연기되어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2회 필리핀 마닐라 대회부터 참가하기 시작했고, 1986년 서울, 2002년 부산, 2014년 인천 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1950~1960년대 저개발국 지원에 경쟁을 벌였던 미소 간 냉전정책으로 아시아 각 지역에서 다양한 국제행사들이 개최되었는데 스포츠 행사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공연대로 묶여 정치‧사회 국제회의뿐만 아니라 서구의 행사들을 모델로 하는 영화제, 예술제 등의 문화행사까지 다양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이러한 국제대회 참가 소식들은 당연히 프로파간다의 최전선에서 활용되었다.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 소식은 미국 선전기관인 미 공보원의 ‘세계뉴스’를 통해 전쟁 중인 한국에도 전해졌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이 시기 아시안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서야 독립된 나라들로서 신생의 국가기반을 수립하려 하였으나 또다시 뜻하지 않은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공동의 운명” 1) 을 갖고 있는 참가국들의 ‘스포츠 민족주의’에 적극 활용되었다. 제1회 뉴델리 아시안게임 현판(좌), 시상식에서 선수들을 축하하는 네루 수상(우) 그런 면에서 196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회는 냉전체제 하 열강 속 아시아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대회였다. 아시안게임 뉴스는 대회의 위용과 스포츠 정신의 고귀함 그리고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위주로 대중에게 전달되었지만, 물밑으로는 대회를 둘러싼 정치적 이슈가 뜨거웠다. 이 대회에서 당시 중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던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위치로 인해 중공과 중화민국,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남한과 북한의 갈등이 전면에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중공과 북한은 참가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가 중화민국과 이스라엘의 참가를 불허함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한 스포츠 세계 기구의 관여와 냉전의 양 진영에서 정치적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IOC는 아시안게임에 대한 후원을 철회할 거라고 경고했고, 자카르타 대회에 아시안게임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관해서도 결정이 번복되는 등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진통을 겪었다. 이스라엘 선수단 자리가 비어있는 개회식장의 모습 1962년 자카르타로 출발하는 한국 선수단 김포공항에서 한국 선수단을 배웅하는 시민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 스포츠대회의 남북한 단일팀 문제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북한의 참가 문제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남북 단일팀의 문제는 남한과 북한 양쪽이 당시 확산되고 있던 각종의 국제 스포츠 행사에 참여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미소 양 진영이 ‘세계화’를 목표로 경쟁적으로 펼치는 국제 대회들에서 정치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는 남북한의 문제는 동서독의 문제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를 표방하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남북한과 동서독의 단일팀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중에서도 남북한 단일팀 문제는 냉전체제 하 동아시아의 정세와 긴밀히 연관된 정치적 문제였기 때문에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1964년 시민회관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출정식 하네다 공항에서 한국 선수단을 환영하는 재일교포 인파 남북한 단일팀의 문제는 1957년 제53차 IOC 회의 안건에 상정되며 불거지기 시작했다. 1958년 제3회 도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시작된 IOC의 남북한 단일팀에 대한 권고는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강도가 높아졌다. IOC는 남북 단일팀 협의에 남한이 불응하면 북한을 단독으로 올림픽에 출전시키겠다며 남북한의 합의를 촉구했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육상, 권투 등 개별 종목의 국제협회에서도 남북한 단일팀 사안을 내세우며 전방위로 압박을 가했다. 남북한 단일팀 협상은 2년여에 걸쳐 중립지역인 홍콩과 스위스에서 이루어졌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1963년 8월 협상은 완전히 결렬되었고, 1963년 10월 IOC는 남북한이 개별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승인했다. 결국 열강들이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내세워 프로파간다의 최전선에서 활용하려 했던 남북한 단일팀 구성은 성사되지 못했다. 따라서 도쿄 올림픽과 관련해 급증한 뉴스 영상 중에 남북한 단일팀에 관한 뉴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963년 남북 단일팀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황엽 단장(좌), 협상 결과를 보고하는 황엽 단장(우) 결국 올림픽이라는 ‘국제‧스포츠‧대회’를 통해 냉전의 한복판에서 아직 전쟁 중인 남북한을 ‘코리아’라는 단일 명칭 아래 잠시 감춰보려던 프로파간다는 실패로 돌아갔다. 도쿄 올림픽 뉴스는 단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 대회의 위용과 위상,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알리는 데 활용되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이후에도 올림픽, 월드컵을 이유로 여러 차례에 걸쳐 제안되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냉전 종식 후에야 성사되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1991년 4월 일본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코리아’ 팀이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장 앞에서 단일팀을 환영하는 재일교포들(좌), 시상대 위에서 한반도기를 바라보는 단일팀(우) 1) 『경향신문』, 1954년 5월 3일 자 2면. 출처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 <코리안뉴스>(제441호, 제442호), <리버티뉴스>(제474호, 제582호, 제588호)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제380호, 제389호, 제429호, 제488호, 제1851호)
<대불 +> 작년에는 전반적으로 흉작 또는 주목할 만한 영화가 없었다는 평들이 많지만, 아시아(독립)영화들로 보자면 나름대로 의미 있고 흥미로운 한 해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성장하는 영화산업 규모와 더불어 급격하게 변화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의 아시아 영화들 또는 주목할 만한 감독들, 혹은 어떤 경향을 보여주는 몇몇 작품을 통해 돌아보는 2017년 아시아독립영화에 대한 일종의 일람표이자 짧은 코멘트. 올해 중화권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는 <대불+>이다. 동명의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하면서, 아이폰과 아이폰 플러스의 차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불+>로 타이틀을 붙인 이 대담하고 어두운 블랙코미디 영화는 대만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던 후앙신야오 감독의 첫 번째 장편극영화인 <대불+>의 탄생과정에는 <일로순풍>과 <실혼>의 감독 청몽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추앙신야오의 단편을 본 청몽홍 감독이 자신이 제작자로 참여할 테니 장편 버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던 것. 각본가이자 감독인 청몽홍이 촬영감독으로 참여할 때는 ‘나카시마 나가오Nakashima Nagao’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대불+>에는 제작자로 그리고 촬영을 맡으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리고 <일로순풍>에 출연했던 배우 대립인(다이리 런, 레온 다이-배우 계륜미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홍콩 우산혁명에 대한 적극적 지지 이후 중국에서의 활동에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불상공장의 사장 케빈 역으로 출연해 중심을 잡아주었다. 영화는 거대한 청동 불상을 제조하는 공장이 배경이다. 공장 야간경비원 피클은 고물수집상이자 친구인 벨리 버튼과 함께 매일 밤 도색잡지나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무료해진 둘은 공장 사장인 케빈의 고급차량에 달려있던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보기 시작하는데, 사장의 은밀한 사생활과 불륜이 담긴 영상을 보던 중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우연히 스치듯 만난 적이 있는 사장의 내연녀와 한밤의 살인사건, 사라진 그녀, 최근 공정보다 훨씬 빨리 완성된 거대한 불상, 그리고 피클과 벨리 버튼에게 다가오는 위협의 그림자. 세련된 만듦새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대담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는 <대불+>은 대만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코엔 형제를 연상시키는 블랙코미디,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확장하는 사건의 고리 등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두 가지 정도를 언급하자면 우선, 흑백과 컬러의 대비를 통한 계급 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 피클과 벨리 버튼이 등장하는 비루한 일상은 흑백으로, 사장 케빈이 등장하는 블랙박스 영상은 컬러로 처리하는데, 소외계층의 파토스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설명처럼, 영화는 둘의 비루함과 무력감은 단조로운 모노톤으로 담아내고, 사장 케빈의 일상이나 정치인, 종교인, 지역 유지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선명한 컬러로 담아내면서 분명한 의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관음증의 세계. 자동차에서 벌어지는 내연녀와의 불륜 장면, 고속도로에서 싸우는 장면이나 러브호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장면 등은 실제 블랙박스 영상처럼 보이는데, TV에서나 접하던 가진 자들과 유한계급들의 은밀한 세계를 피클과 벨리 버튼과 함께 엿보면서 관객들도 두 세계를 함께 오가는 영화적 체험을 하게 된다.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017년 단연 주목받았던 국가는 인도네시아다.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몰리 수리야 감독의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은 한 여성이 자신이 살해한 남성의 잘린 머리를 들고 경찰서로 가서 자수한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거장 가린 누그로호가 작업한 3페이지의 트리트먼트로 시작된 프로젝트이자 부산국제영화제 APM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작품. 인도네시아 동부 숨바섬의 아름답지만 황량한 느낌의 사막을 공간으로, 복수와 구원이라는 서부극의 전통적인 모티브를 살짝 변형하고 여러 장르를 혼합한 독특한 형식과 색깔로 올해 최고의 아시아영화로 호평받았다. 잘린 남성의 머리를 들고 경찰서에 가기 위해 황토색 사막을 가로지르는, 서부극 카우보이 같은 말리나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영화로 인도네시아 예술영화를 주도하는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해 프로덕션 디자인, 촬영, 음악까지 최상의 결과물로 완성했다. 상반기에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이 있었다면 하반기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로 세계를 매혹했던 카밀라 안디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단연 주목을 받았다. 병상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쌍둥이 남동생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어린 동생을 떠나보내야 하는 누나 탄트리의 내면과 불안한 심리가 춤과 노래, 그리고 놀이를 통해 환상적이고 마법적인 이미지들로 펼쳐진다. 3년전 론칭한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첫 경쟁부문인 플랫폼은 주로 서양권 영화들로 채워지는데(<문라이트>와 <재키>와 같은 영화들이 여기서 경쟁했다) 아시아영화로는 드물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초청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인도네시아 독립 예술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든든한 후견인을 자임하는 가린 누그로호의 딸로도 잘 알려져 있는 카밀라 안디니는 족자카르타에서 감독, 제작자인 이파 이스판샤와 함께 족자카르타 영화학교에서 강의와 연출지도를 하고 있다. 족자카르타에서는 매해 12월이면 족자-넷팩아시아영화제가 열리는데, 가린 누그로호와 이파, 그리고 감독 이스마일 바스베스(<회전목마는 멈추지 않는다>)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16년에 4천 명 정도에 불과했던 관객 수가 올해의 경우, 3배 가까운 12,000명 정도로 증가했고, 무엇보다 관객들이 대부분 20대나 대학생들이어서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특별전 <가린과 넥스트 제너레이션: 인도네시아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서 가린 이후 그의 제자, 후배 감독과 제작자들이 새로운 산업적 토대와 미학구축을 통해 성과를 거뒀고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하나의 주요한 경향이자 동력으로 언급했던 ‘여성파워’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는 2017년이었다. <섹시 두르가> <뉴턴> 마지막으로 인도영화. 방대한 시장에 비해 독립. 예술영화는 여전히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도영화는 2013년 <런치박스>의 국제적 성공(2008년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미친 영화도 아주 크다) 이후 새로운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발리우드 상업영화의 자장 아래서 예술. 독립영화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테스트가 활발한데, 2017년의 경우는 그 가능성의 희망을 본 해이기도, 절망을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시작은 로테르담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한 사날 쿠마르 사시다란 감독의 <섹시 두르가 Sexy Durga>다. 시나리오는 물론 스토리도 없이 배우와 소규모 팀을 꾸려 22일 동안 촬영한 이 저예산 말라야람어 영화는 인도 북부출신 여성과 케랄라 출신 남성이 야반도주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둠이 짙게 내린 도로를 따라 역을 향해 걷는 커플에게 지나가는 승합차의 남성들이 합승을 제안하고, 차량에 올라탄 이들은 지옥을 경험한다. 다문화, 다인종으로 구성된 인도 사회에 내재된 공포를 그로테스크하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은 영화지만, 오랫동안 인도 영화계를 짓눌러온 검열의 날을 비껴가진 못했는데, <S. Durga>로 제목을 바꾸고 일부 장면을 덜어냈지만 지금까지 자국 내 상영은 물론 개봉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다. 2017년 인도독립영화인들에게 가장 큰 희망과 기대를 안겨준 작품은 아미트 마수카 감독의 <뉴턴>이다.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첫 공개된 이 영화는 마오주의 반군과 정부군이 대립하고 있는 차티스가르주 분쟁지역을 배경으로, 갓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대기 중인 뉴턴이 이 지역주민들의 투표지원 업무에 자원하면서 생기는 과정을 따라간다. 강직하지만 융통성 없는 공무원 뉴턴과 지역을 관할하는 정부군 소속 군인들, 그리고 선거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변방 마을 주민들을 통해 인도 사회를 재치 있게 풍자하는 이 블랙코미디는 인도독립영화인들과 시네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대안 영화로까지 평가를 받은 작품. 이후 개봉을 통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며 특히 쟁쟁한 상업영화들을 제치고 2018년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부문 인도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다. 아쉽게도 <섹시 두르가>는 아직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없으며, <뉴턴>의 경우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