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 이야기
- 감독
- 최윤서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신민서, 김지한, 강유진, 김명선
켈리 라이카트(Kelly Reichardt) 감독의 < 퍼스트 카우 >(2019)는 오프닝 타이틀 후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로 영화를 시작한다.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라는 한국어 번역은 자연스럽지만, ‘man’은 한국어로 번역할 때 그 함의를 옮기기 위해 고심하게 하는 단어이다. man이 인간이라면 남성으로서(만) 인간이며, man이 남성이라면 인간 대표로서 남성(만)이다. <퍼스트 카우>는 블레이크에게,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1820년대 서부 개척지라는 시공간에게 아무런 모순 없이 당연했을 인간-남성이라는 전제를 문제시하고 해체하는 시도를 한다. 규범적 남성성 외부의, 즉 ‘인간’ 밖의 남성의 우정이 전면화 되고, 그 우정은 (개, 도마뱀, 올빼미, 고양이, 소와 같은) 동물과 여성, 즉 비남성-비인간들과 관계를 맺는다. <퍼스트 카우>는 “인간에겐 우정이”라는 진술을 긍정하지만 동시에 의심한다. 쿠키의 첫 등장은 단순하지만 다정하고 경쾌한 선율의 피아노 소리와 함께 버섯을 채집하는 섬세한 손으로 제시된다. 노란 버섯들 사이로 몸이 뒤집혀 노란색 배를 드러낸 작은 도마뱀을 조심스럽고 친절한 손길로 도와준다. 이 다정하고 충만한 분위기는 곧 외부의 사운드에 의해 깨진다. 쿠키는 떠돌이 모피 사냥꾼들의 무리에 고용된 요리사다. 사냥꾼들은 쿠키가 정성스레 채집한 버섯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동물들을 잡아서 먹을 것을 만들어 달라고 위협하듯 말하거나 툭하면 주먹 다짐을 한다. 쿠키가 이 ‘남자’들의 세계에서 환영 받지 못 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쿠키 자신도 비규범적 남성으로서 자신을 비애적으로 대하거나 이 세계에 안달복달하며 적응하고자 하지 않는다. 우물쭈물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남자들을 대충 따돌리고 자신만의 텐트로 숨어들거나 도망가버린다.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 부츠를 장만해 신고 남자-인간들의 미개척지를 걷는다. 한편, 쿠키와 우정을 나누는 킹 루는 상승을 향한 도전에 불타는 기업가 기질로 충만해 있다. 개척지의 남성으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 성정을 갖추고 있지만, 인종적으로 남성-인간의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 한다. 킹 루는 올빼미가 쿠키 일행의 텐트를 내려다 보는 날 밤 벌거벗은 채 나타나고, 쿠키로부터 온기와 먹을 것, 쉴 곳을 제공 받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연히 쿠키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의 작은 집으로 초대한다. 한참 숲길을 걸어 도착한 오두막에서 둘은 술을 나눠 마시고 킹 루는 장작을 패러 나간다. 오두막에 남겨진 쿠키는 잠시 어색해하다가 곧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쓴다. 이불을 털고 꽃을 구해와 오두막을 장식한다. 이후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이 둘의 이러한 작은 일상들이다. 같이 먹을 것을 채집하고 집을 돌본다. 한 명이 빨래를 하면, 한 명은 낡은 옷을 기운다. 서부 개척 시대 백인-남성-인간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인간-남성성 구현의 실패나 그 폭력성과 야만성을 보여주는 영화는 이전에도 많다. 그러나 그 실패를 보여주는 과정은 종종 이상적 남성성에 대한 매혹이나 열렬한 열망, 그리고 실현될 수 없음에 대한 비애, 자기연민을 동시에 노출한다. <퍼스트 카우>는 결론적으로 실패든 비애든 그러한 이상적 인간-남성 규범을 통한 남성성 탐구에 관심이 없다. 영화는 이 두 남자의 이러한 필요에 의한 일상 노동으로 채운 시간을 보여주고, 애정 어린 다정함이 기반이 된 관계에 집중한다. 이 다정함의 관계는 인간- 남성의 규범적 관계를 전복하거나 감화시키기 보다, 즉 휴머니즘의 가치를 대체하기 보다 그 주변의 비인간적인 것들을 향한다. 쿠키는 ‘첫 번 째 소’(영화의 타이틀 롤!)의 우유를 자신의 필요를 위해 매일 밤 짜러 가지만, 소를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것이 아닌 의존하는 공존의 자세로 소를 대하고 둘 사이에 애착이 형성된다. 영화에서 관객이 제일 먼저 보는 생명체는 개이다. 그리고 그 개 옆에는 여자가 있다. 개가 가장 먼저, 그리고 다음으로 여자가 이 둘의 오래 된 과거의 물질적 증거를 발굴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소년들이었던 것이 (감독의 전작 <웬디와 루시>(2007)를 떠오르게 하는) 개와 여자로 바뀌었다. 영화는 종종 개와 소, 고양이, 올빼미와 같은 동물들이 무엇을 바라보는 눈이나 얼굴, 그리고 그들 시선의 반대편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진행과 전혀 상관은 없지만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의 원주민 여성들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얼굴도 종종 포착한다. 즉, <퍼스트 카우>에서 보여지는 풍경들에는 동물들과 원주민 (여성들)의 시점이 포함되어 있다. 쿠키와 루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는 않지만, 영화에는 원주민 말을 하는 여성 두 명이 등장한다. 원주민 촌장의 아내와 영국에서 온 지역 권력자이자 ‘퍼스트 카우’의 소유자인 팩터의 아내이다. 두 여성은 서로 긴장 관계인 남편들 사이에서 말을 전달하는 도구거나 이국적 장식품처럼 기능하다가, 남자들이 방에서 사라지자 마자 자리를 옮겨 가까이 앉고 긴장이 전혀 없는 친밀하고 즐거운 얼굴로 대화한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번역되지 않는다. 그 둘 사이의 공기는 짐짓 대접하는 척하지만 허세와 과시, 긴장으로 가득 찬 남자들 사이의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퍼스트 카우>는 이러한 다정함 관계와 비인간-남성적 시선들을 결코 이상화하지 않는다. 서부 개척 시대의 시간을 정복이 아니라 다정한 공존의 관계 비인간-남성적 시선들로 채우지만, 이것은 곧 부서지며, 영화의 시작부터 예정되어 있다. 1820년대로 가기 전, 영화는 현대를 경유한다. 관객은 두 주인공의 시체를 미리 보고서야 1820년대의 시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개가 시체를 발견하기 앞서, 제시되는 것은 넓은 강에 굉음을 내는 거대한 증기선이 지나가는 모습이다. 광활한 자연 속에 기차나 마차가 지나가던 풍경을 포착하는 오프닝은 감독의 전작들과 겹쳐지며, 또한 영화의 끝에 감독이 경의를 표했던 피터 허튼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이미지들은 자본주의 산업화에 의해 침범된, 조직된 자연이다. 그리고 ‘퍼스트 카우’가 배를 타고 지주 팩터의 소유지에 도착하는 모습은 이 증기선이 움직이는 모습과 겹친다. 쿠키가 공존과 애착의 관계를 소와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이 소는 등장할 때부터 개인의 사유재산, 가’축’으로만 의미를 가지며 소유권으로 통제된다. 킹 루의 동물과 자연에 대한 관점은 쿠키의 관점과는 달랐다. 비버를, 소의 우유를 가공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가공되지 않은 채로 있는 미개척 서부는 킹 루에게 아직 역사가 시작되지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팩터를 비롯한 제국주의의 약탈권과 소유권은 보호되지만, 인종적 약자인 킹 루의 초기 자본축적을 위한 약탈은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 영토와 자원에 대한 독점 소유권과 강탈이 중요한 축을 이루는 초기 미국 개척 신화, 그리고 서부극과 다른 자리에서 서서 다른 시선들을 보여주지만, 역사의 진행에 대한 비관은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종착점은 개와 함께 떠도는, 최종적으로는 그마저 함께 할 수 없는 <웬디와 루시>의 삶이다. 초기축적에 있어 불평등한 관계로 출발했던 자본주의는 소유권과 그 침탈에 있어서는 “모두에게 규칙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웬디와 루시>에서 웬디의 좀도둑질에 대한 마트 직원의 대사)며 웬디의 삶을 인간의 룰에서의 안착보다는 비인간 개와의 관계에서 애착으로 향하게 한다.
“나는 본디 활동사진을 좋아하는 터에 단성사 신파 활동사진을 요새 가 보니까 참 조선에 처음 되는 것으로 어찌 마음에 상쾌하고 좋은지 모르겠어요.” -애활가(愛活家), 《매일신보》 1919년 10월 31일자 4면. 1919년 10월 《매일신보》의 독자 한 사람이 단성사에서 공개된 조선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김도산, 1919)를 관람한 후, 연쇄극에 삽입된 활동사진에 대한 감격을 신문에 투고했다. 그는 자신을 “애활가(愛活家)”라고 소개했다. 애활가란 ‘활동사진 애호가’를 가리키는 말로, 종로와 본정(本町)을 중심으로 극장이 들어서고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구경꾼이 늘어난 1910년대 중후반부터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용어다. 《매일신보》에 투고한 이 애활가는 연극과 영화가 결합한 연쇄극 <의리적 구토>에서 전성기를 지나 저물어가는 신파극의 긴 그림자보다 조선 사람들도 활동사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여명(黎明)을 보았다. 같은 해 12월 어느 날, ‘예술잡지’ 『녹성(綠星)』(편집 겸 발행인 이일해)이 발간되었다. ‘경성 죽첨정 1정목 39’에 발매소를 둔 『녹성』은 원래 문예지로 기획되었지만, 사정상 첫 호는 영화 분야의 재료만 다루었다. 근대 초기의 불안정한 출판 환경 속에서 나온 잡지들이 그렇듯 『녹성』도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는 불운에 처했고, 그러다 보니 『녹성』 창간호는 본의 아니게 ‘애활가’에 의한, ‘애활가’를 위한, ‘애활가’의 잡지가 되었다. 환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여배우를 표지 모델로 내세우고, 제럴딘 파라(Geraldine Farrar), 그레이스 커나드(Grace Cunard), 몰리 말론(Molly Malone)과 에디 폴로(Eddie Polo) 등의 권두 화보를 넣어 만들었지만, 본문 중에는 화보가 거의 없어서, 구경하기 좋아하는 애활가들의 욕구를 만족스럽게 채워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 애활가들을 실컷 울렸던 블루버드 영화사(Blue Bird Photoplay Inc.)의 신파영화 해설부터 “아무리 큰 우수(憂愁)를 안고 있는 우려객(憂慮客), 아무리 사경에 빠진 병자라도 그의 동작에는 큰 소리로 웃지 아니치 못”하는 중절모의 ‘잡후린(雜侯麟, Charlie Chaplin)’ 선생까지 모두 이 한 권의 책 속에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으리라.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으로서 극장의 출현이 중요했듯이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관객 집단의 등장 역시 주목할 장면이다. ‘애활가’라고 밝힌 이가 자신의 감상평을 직접 신문에 투고하고 애활가 집단을 겨냥한 잡지가 출간되는 등 1910년대 말과 1920년대 초 서울의 분위기는 소박하나마 적극적인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애활가들은 문명국가에서 온 박래품의 신기함 때문에만 극장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활동사진 그 자체에 매료된 이들이었고, 그러한 스스로를 특별히 ‘애활가’라 칭함으로써 다른 관객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라면 『활동사진계(活動寫眞界)』, 『활동화보(活動畵報)』, 『영화세계(映画世界)』와 같은 일본 영화잡지를 보고,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나 더글라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gbanks) 등 외국 배우들의 이름을 곧잘 입에 주어 담으면서 은근히 뽐낼 줄도 알았다. 영화를 보고 비평하며 그 자신의 고급한 취향을 과시하는 애활가. 이런 애활가가 된다는 것은 근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체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1920, 30년대의 잡지에는 애활가가 되려면 그에 앞서 극장에서 지켜야할 예법(禮法)을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마냥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十則)」 1 이나 ‘극장 예법’을 다루는 ‘모던 생활 강좌’ 2 같은 글이 잡지에 실리곤 했다. 조선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과잉의 형식을 설명하고 있는 예법 강의는 그런 매너가 몸에 배어야 ‘고급(high and noble)’한 모던 라이프를 진정 향유할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극장을 찾는 자신을 특별히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글이지만, 애활가가 되고 싶은 이들의 귀는 이런 글에도 제법 솔깃했을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애활가의 일은 먼저 신문광고에서 볼 만한 영화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애활가는 그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 스틸 컷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고 극장을 찾아야 하며, 극장에서 받아보는 프로그램 순서지의 도움 없이도 영화의 플롯이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영사가 시작되었는데도 불빛을 훔쳐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는 사람은 ‘영화팬’의 기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릇 애활가라면, 이미 본 영화를 또 보더라도 옆 사람에게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며 프로그램 진행 중에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간혹 박수를 칠 만한 장면에서도 너무 흥분하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그치기 전에 박수를 끝내는 것이 좋다. 프로그램 중간 ‘10분 휴식’ 시간에는 극장의 전속 악단이 음악을 연주해 주는데, 이때는 휴식 시간이므로 연주가 끝났다고 해서 손뼉을 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이거나 “헐하게 감격”하지 않는 것이 요점이다. 극장의 스크린 옆에는 유리등을 끼워놓고 호출할 사람의 이름을 적어 신호하는 통고등(通告燈)이 있는데, 여기에 이름이 비치면 전화가 왔거나 일행이 찾는 것이니 조용히 일어나 나가면 된다. 스스로가 활동사진 애호가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공공질서를 지켜가면서 조용히 영화를 즐기고 감상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사실 극장 예법을 잡지에서 배운 사람이 조선에서 그의 이상대로 조용하고 우아하게 영화라는 예술을 ‘고급하게’ 감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그려진 극장의 풍경은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시대의 극장이 온전히 감상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을 암시한다. 변사는 때로 영화와 무관하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자막을 잘못 해설하기도 한다. 그런 변사의 해설에 관객들은 울고 웃고, 때로는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입에 손가락을 넣고 휘파람을 불어대거나 손뼉을 치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관객들이 한바탕 법석을 벌이는 것이다. 영화 상영 중에도 과자를 파는 사람이 객석을 돌아다니고, 전화 온 손님의 이름을 버럭 부르는 직원도 있다(극장의 전화 교환은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위해서 점차 통고등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자주 정전이 발생하고, 영사가 돌연 중단되는 일도 많다. 어떤 관객은 옆 사람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히는 듯 했을 것이다. 냉난방 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극장에서는 여름이면 겨우 몇 개의 부채, 겨울이면 화로 몇 점으로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했을 것이다. 결국 애활가의 극장 예법이란 극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노하우, 그런 매너를 갖춘 관객이 되는 법이었다. 1) 스크린 빨-쥐, 『별건곤』 제 29호(1930년 6월), 108~11쪽. 2) 청의아(靑衣兒) 생, 「현대 신사 숙녀로서 알아 둘 모던 생활 강좌」『조광』 1936년 1월호, 222쪽. 상단 그림. 극장 안 풍경 출처: 석영 생, 「서울행진(5) 480석, 5년간 중학생 학비」 《조선일보》 1928년 11월 7일자 3면.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1. 「극장만담」『별건곤』 제5호(1927년 3월), 94~5쪽. (부분 발췌) 근일에는 극장을 가보면 관객의 변천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장내가 소란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유년 관객이 적어진 것이니 그것은 입장료가 고가이고 예전과 다른 정도 높은 영화를 해득하기에 어려운 까닭이라 할지 가정에서 감독이 심한 까닭인지는 모르나 비판력이 모자라는 그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특별히 변한 것은 희소하던 부인석에 남자석 이상으로 매일 만원인 것이다.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그리고 여학생들인데 진기한 일은 그중에서 성에 갓 눈뜬 여학생이 반 수 이상을 참렬한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경악할 인은 ‘키쓰’하는 장면–그 순간에는 반드시 질식할 듯한 외마디 소리가 부인석에서 의례히 돌발한다. 그런데 부인석 중에도 머리 틀어 얹은 젊은 여인들 모여 앉은 곳에서. 이 말은 거짓말인가. 거짓말이 아닌 것은 극장 출입 잦은 이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어쨌든 세상은 변하였다. 극장 간판―이 간판도 수년 전에 비하면 여간 발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늘 보면 그 간판의 그림은 그림으로 보아서는 덜 추하나 그 영화 중에 그 영화 전편을 통하여 제일 주요한 신을 빼놓고 영화 자체에 있어서도 제외하여 버려도 실패가 안될 장면만을 그리는 때가 많은 것이 그 간판, 더욱이 극장 간판의 임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러한 극장 간판 중 좀 미안한 말이지만은 우미관 간판이 좀 천한 느낌이 있다. 그 간판은 입장료를 5전씩 받던 옛날 그 시절과 현재와 별반 차도가 없는 것이 그 관을 위하여 좀 불안하다는 말이다. 극장 내부―근일에는 단성사의 영화막(스크린) 상하좌우의 장치가 예전보담은 색채라든지 구성이 좀 아담한 듯하다. 그리고 조선극장은 옛날과 그리 현격한 변화가 없지만은 그저 추하지는 않다. 우미관도 그저 그러하다. 10분 휴식―10분 휴식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관객의 피로한 뇌를 쉬게 하는 데는 퍽 유효할 것 같다. 그러나 그때에 변사가 나와서 잔소리하고 서있는 것이다. 한마디도 들어서 유리할 데 없는 자기의 회포를 천 명이나 오백 명의 청감을 가진 관객에게 늘어놓아서야 미안치 않은가? 다음번에 갈릴 영화 예고를 한다는 목적이라 하더라도 무대 위에 예고간판을 세워놓고 프로그램지에 적어놓고 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물어본다. 그리고 10분 휴식 간에 오케스트라도 있으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경영난인 현금의 극장에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도나 독창이나 독주나 있었으면 10분 휴식하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음악―어느 극장이나 오케스트라는 좀 변화가 지체되는 감이 있다. 영화 차환할 때마다 새 곡조로 갈았으면 어떨지. 너무 들어서 도리어 감정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좀 정도를 높였으면 어떨지 물어본다. 변사―변사 제군에 하나 제안한다. 다른 게 아니라 그 ‘하얐다’, ‘하얐었다’가 글 쓰는 데는 모르겠지만 말로 하는 때에 듣는 사람으로서는 어떨지? 처음 극장가는 노인은 대분개할 것이다. 그 조(調)를 고치고 ‘하였습니다’, ‘하였었습니다’ 하면 어른에게나 어린이에게나 퍽 다정하게 들릴 것이다. 더구나 인정극에리오. 그리고 변사계에 한 가지 유행이 있으니 ‘마음자리’라는 말이다. ‘마음자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마음의 돗자리라는 말인지, 마음이 깔고 자는 자리인지 어쨌든 해석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한참 긴장한 장면에 가서 농담(醜談)을 탁 터뜨리는 변사가 있다. 그 변사는 원래, 희극에는 더 우는 조로 하는 이인데 청승맞은 것은 좋으나 너무 그 음성이 청승맞아서 너무 천하게 들린다. 그리고 한 가지 우스운 일이 있으니, 어떤 변사는 한참 자기도취로 “자연의 의지와 우주의 이성이 아–슬프다!” 하니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러한 고상한 문자를 안 써도 능히 할 수 있는데 얼토당토않은 문자를 쓰는 것이 도리어 자기 폭로에 지나지 않을 줄 안다. 그리고 장면이 벌써 지났는데 지난 장면을 가지고 떠들고 섰으니, 그것도 자기 취미지만 관자(觀者)는 그러한 변사를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점에 생각 좀 하여 주었으면 고맙겠다. 전화―극장에 온 손님에게 전화가 올 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소리를 버럭 질러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당자는 (더구나 여자) 퍽 불쾌할 것이다. 여기에는 완전치는 못하나마 조선극장에서 하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스크린 옆 기둥을 뚫고서 유리등을 끼워놓고 그 유리에 부를 사람의 이름을 써놓고 전등으로 신호하는 방식이다. 1-2. 「극장만담」『별건곤』 제6호(1927년 4월), 108~9쪽. (부분 발췌) 모든 것이 구각(舊殼)을 벌어 젖히고 자체로부터 신생물의 싹을 좇는 이 봄에 근일에 각 극장에서는 2, 3년 전에 수입되었던 영화를 다시금 되풀이하고 있으니 여기에 극장경영자의 몰상식을 규시(窺視)할 수 있다. 설령 2, 3년이나 1, 2년 전에 일반 팬에게 호감을 산 영화이어서, 그것을 수십 차라도 되풀이하여도 매야(每夜) 만원의 성황을 이룰 수 있다치더라도―원래 수입되는 서양영화는 대개가 3, 4년 전 혹은 5, 6년 전 심지어 십 년 전 제작된 영화가 (기적적으로 1년 이내에 수입되는 것도 간혹 있지만) 상장되는 것인 그만큼, 먼 과거에 제작된 영화인 터에도 그것을 재삼 상장한대서야 시대 변천에 너무나 몰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영업 편으로 보아서는 유리한 방책이라 하더라도 일반팬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말이다. 여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경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팬보다도 더 앞서 나아가지 않으며 어느 시기에든지 큰 실패를 맞이하리라. 근일에 영화열이 팽창함에 따라서 팬의 수효도 배전(倍前)으로 증가되어 어느 날이든지 극장은 대만원의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말할 것은 그러한 때에 좌석이 참도 불고(不顧)하고, 그저 공간만 있으면 관객의 눈에 스크린의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더라도 불고하고, 그저 우릿간에 송아지 몰아넣듯이, 막 쓸어 넣는다 하면 너무도, 관객에게 불친절이 지나치지 않는가? 그뿐 아니라 젊은 색시들이 남자의 틈에서 비명을 질러도 그저 쓸어 넣어서 한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여서야 될 수 있는가? 그러한 까닭에 종차(從次)로는 입장권에 좌석 순차표를 첨부하여서 누구든지 먼저 입장한 이를 제일 좋은 자리에 앉히고 그 다음 순차대로 좌석을 정돈시킨 후 좌석만 차면 문을 닫아버리면 어떨까 하는 것을 참고로 말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관객의 피로를 덜어 주었으면 좋을 줄 안다. 그리고 입장권 매팔구(賣捌口) [필자 주: 판매소] 에는 써 붙이지 않고 내용으로 특등석을 설치하여 놓고 돈을 더 받으니, 이것은 경찰과 무슨 약속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경찰의 허가도 없이 비밀히 하는 일인가? 우리로서는 그 진의를 알 수가 없다. 그이들의 것 무슨 구실이 있다 할지라도 이상에 말한 방법으로 한다면, 특등석도 없어질 것이요, 따라서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당하는 창피도 없어질 것이다.(상층 하층을 구별치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변사와 대(對) 관객(특히 남녀 학생과 소년)과의 관계를 말하려 한다. 변사들이 영화대본(설명서)을 보지 않는지, 영화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추담을 베푸는 변사가 많은데, 항용 청소년 혹은 남녀 학생들의 염서(艶書)나 담화에까지 그 추담병이 전염된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서 희극변사 최병룡 군(단성사)의 추담 없이도 점잖게 웃기는 그 비결을 좀 배웠으면 어떨지? 그리고 변사의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영화에 역할된 인물의 성명(영어나 기타 외국어에)을 어떤 나라말이든지 발음의 만능인 조선말을 하는 사람이 그대로 못하느냐, 모르면 누구에게든지 물어볼 수 없을까. 예(例)하면, ‘짹크’를 ‘짯구’라니 외국인의 웃음거리를 장만할 필요는 무엇 있는가. 일본 것이 아무리 좋대도 나쁜 것은 배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강사 스크린·빨-쥐,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별건곤』 제29호(1930년 6월), 108~11쪽. 현대청년이란 그 언어에 있어 행동에 있어 처신에 있어, 아니 손가락 한 개를 놀리는 데 있어서도 모름지기 고급이어야 한다. 고급! 얼마나 입맛이 당기는 말이냐! high and noble. 존 바리모어(John Barrymore)의 프로필과 같은 noble. 미국이면 마천루 꼭대기와 같은 high. 그러한 것을 집어삼킨 듯한, 자신과 같은 풍도(風度)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점잖으면서도 완미(頑迷)한 구석이 없고 경쾌연미(輕快軟美)하면서도 부경(浮輕)한 맛이 없어야만 소위 고급에 속하는 영광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고급의 시대 철학적 해석은 다음 강의에 미루고 오늘은 제군들 앞에서 영화의 고급팬 되는 비결을 해설하는 영광을 내가 먼저 가지기로 한다. 1 대개 수요일이나 목요일 석간신문에는 각 영화관의 사진 교체 광고가 다투어 난다. 제군이 고급영화팬이 되려면 먼저 그러한 광고 가운데서 한번 감상할 가치가 있음직한 영화를 선택한 다음에 그 영화의 감독이며 주연배우 등의 이름을 외워두고 사진 내용에 들어가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다소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연만한 영화이면 봉절하기 전에 신문이나 잡지에서 「시사실에서」란 제(題)로 간단한 비평 비슷한 것이 실리는 법이다. 제군은 무엇보담도 먼저(1면 기사보담도) 그 기사를 통독해 두어야한다. 그러고 보면 제군이 제군의 연인과 더불어 산보를 나왔다가 “차나 한잔 마시려오, 극장엘 가시려오?” 할 때도 그러한 예비식견이 여간 유효한 게 아니다. 더구나 여자들이란 사진이 좋지 못하면 그 사진을 같이 간 사나이가 만들기나 한 것처럼 짜증을 내고 책망을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가령, 이를테면 “이까짓 걸 다 사진이라고 구경 오랬어요! 당신두 참 딱도 하시우!” 혹은 “인젠 두 번두 당신하고 같이 극장에 오진 않을 테야요. 내가 그래 겨우 이 따위 사진을 보러 왔단 말이요……?” 이런 매서운 선고 등이다. 무섭지 않느냐!? 또 설사 이러한 연애, 구애 관계 등의 이득을 도외시하고도 노상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질문에 응하여 시방 아무 영화관에서는 무슨 영화를 상영 중인데 그 영화는 운운, 이렇게 즉석에서 대답할 수 있는 이익이 따르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즉석에서 남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고 간에 남의 찬탄을 받는 법이다. 또 그리고 만약 제군이 극이나 영화의 기맥에 다소간 통하는 바가 있다면 그 답을 할 때 살짝살짝 첨부 삽입 작용을 하고 보면 효험이 더욱 날 것이 틀림없다. 2 자, 그러면 제군이 광고의 안내로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의 요청에 응해서든지 상관이 없지만) 이제 영화관의 한 좌석을 차지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때 제군이 가장 먼저 취할 방법 이 무엇일까? 제군은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그저 변소에 가라는 게다. 우스운 말 같으나 이 변소에 가라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다음 방책을 세우는 데도 필요한 것이다. 사진관에 들어가 보아서 시작하기까지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변소에 갔다 나와서 유유름름(悠悠凜凜)한 태도로 당하나 통로 같은 데를 거니는 것도 흥이 있다. 이때 태도는 아주 침착하고도 무게 있게 보여야 하나니 하여간 일견지하에 남들이 짐짓 아마 놈이 영화계 명사인가 보다 하고 남에게 경계와 찬미의 탄사가 흐르게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지루해 못 견디어 하는 얼굴로 하품을 하는 것도 남의 주의를 끌기는 하나 이 방법은 도로히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가 쉬우니 이 방법을 택할 때는 기미를 잘 보아서 하지 않으면 실패다. 그리고 만약 제군이 사진관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는 사진쯤 상관할 것 없이 자리를 잡아 모자나 외투를 놓아두고는 변소부터 먼저 가야 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사진일 것 같으면 2, 3분 동안 더 보나 덜 보나 마찬가지다. 그것보다는 변소에 다녀오는 게 더 필요하다. 한 사진이 끝나고 다시 다른 사진이 시작되는 짧은 휴식 시간에 부리나케 변소에 갔다가 황급히 자리에 돌아오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그것은 극히 졸렬한 행동이요, 적어도 고급에 있어서는 물론 사회도덕의 관념에서 말하더라도 그리 칭찬할 바 행동이 못된다. 3 그리고 사진이 시작되기 전에 급해 빠져서 프로그램이나 『위클리』에 쓰인 플롯을 읽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 대관절 영화를 보기 전에 그런 류의 해설을 읽지 않고는 영화의 스토리나 연락을 모른대서야 영화팬으로서 적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영화팬의 자격은 완전히 상실된다고 각오하고 있어도 좋다. 크게 주의할 일이다. 프로그램 같은 것은 집에 돌아가서 눈을 한번 거치면 그만이다. 더구나 기막히는 것은 사진이 시작되어 전등이 꺼진 뒤에도 그 캄캄한 불빛을 훔쳐서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고 있는 친구들이다. 이렇게 되면 비참 우(又) 참담, 실로 언어도단이다. 영화란 원래 그 first scene과 아울러 최초에 나오는 자막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 제작역할을 일별하고는 미소를 띠어서 아래턱을 쓰다듬게쯤 되지 않고는 아직도 고급팬 되기는 멀었다. 그리고 모르는 친구들은 hero와 heroine이 서로 껴안기만 하면 벌써 다 된 줄 알고 일어나서 무엇이 그리 급한지 출구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적지 않은 실책인 것이, 영화란 그 뒤에도 사건이 시작되는 수가 있으며, 첫째 last scene을 보지 않고 일어선다는 것은 영화팬으로 용서치 못할 일이다. 어떠한 일이고 첨이 있고 끝이 없는 법은 없다. first scene과 last scene은 영화를 논함에 있어서 반드시 팬들의 입에 오르는 것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4 그 다음 휴식 시간에 주악(奏樂)이 있을 때는 그것을 들어도 좋고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단지 요점은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구나 끝난 뒤에 감격해서 손뼉을 치든지 하고 보면 남의 조소를 받을 우려가 많은 것이니 주의할 일이다. 하여튼 고급영화팬이란 그리 헐하게 감격해서는 견뎌나갈 수 없는 처세술(?)이다. 무엇이고 “정말 우스워 못 보겠네”라든지 “나 원, 기가 막혀 이걸 어떻게 듣고 있어”라든가 “이건 지독한데” 등등의 능청스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늘 머릿속에 명념(銘念)해 두어야 한다. 5 그러면 제군! 영화 중에 돌연히 필름(film)이 끊어질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때는 크리스트와 같은 얼굴을 하고 묵묵히 앉아 있어야 한다. “사진 망했다”, “불 켜라” 하고 노호한다든가 영사실을 힐끗힐끗 들여다보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또 정전이 되었을 때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다. 그렇다고 너무 생각하는 척 하노라고 눈을 감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면 야단이다. 6 다음 해설자가 쓸데없는 것을 늘어놓는다든지 자막 같은 것을 오역했을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면, 그때는 아주 무서운 얼굴로 해설자가 서있는 편을 노려보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주관적 견지에서 본다면 정의의 열혈이 끓어오르는 지사와 같은 흥분을 느끼게 되어 다시 없이 마음이 쾌(快)한 것이다. 7 자! 제군은 인제 영화를 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비평할까가 나머지 문제일 것이라. 스토리는? 시나리오는? 감독은? 배우는? 이렇게 판에 박은 듯한 비평을 한다면 벌써 제군은 고급영화팬이 못된다. 그런 것을 지껄이는 도배(徒輩)를 가리켜 제군은 식소사번(食少事煩) [필자 주: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다’는 뜻.] 의 주문돌이 [필자 주: 미두장 등에서 주문을 대행해주는 브로커.] 라고 비소(鼻笑)하고 있어도 좋다. 그보다는 경구(警句)를 토해야 한다. 한 말로 그 영화를 차 던져야 한다. 기다란 변설(辯舌)을 농(弄)하여 내용의 공허를 폭로시킨다든지 자기의 부족처를 남에게 보이든지 하는 것은 모던 고급팬들의 관여할 바 못된다. 무엇이고 Make believe의 세상이니 말이다. 8 그리고 보면 금세의 고급영화팬 된 자 반드시 이름 있는 영화를 전부 다 보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니, 보지 않더라도 고급팬으로 통할 수 있다. 그 대신 신문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었다가 다른 사람들이 왜 안보느냐고 물을 때는 그 비평의 공격 부분만을 외워두어서 “결국 허잘 것 업는 스토리에 좌우된 영화였지 뭐야! 흥, 그까짓 걸 누가 보러간단 말이야” 하고 한마디로 격퇴해 버리면 고만이다. 그러고는 외국 영화잡지 등을 일별해두었다가 “그러나 이번 미국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란 영화만은 나로서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걸! 그것이 건너오기만 하고 보면 억만 사(事)를 제처 놓고도 보러 가겠네만은……”하고는 슬쩍 영화통인 점을 보여서 상대자의 간을 주물러 놓는 것도 속 시원한 노릇 아니냐. 9 복색은 너무 혼란해서는 못 쓴다. 너무 지나치게 화려하다든지 제법(製法)이 별나고 보면 부랑자나 모뽀로 잘못 보이기가 쉬워서 헛되이 명성을 떨어트리게 된다. 영위계구(寧爲鷄口)일지언정 불위우후(不爲牛後) [필자 주: 혹은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勿爲牛後)’.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으로 큰 집단의 말석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의미이다. 줄여서 ‘계구우후’라고도 한다.] 로 맑스·뽀이로 보일지언정 모뽀로 잘못 보여서 쓸까보냐다. 또 그러고 촬영감독이나 카메라맨으로 보여서도 안 된다. 고급영화팬은 촬영소 인종들과 혼동되는 것을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피해야 한다. 비평가 부류의 인종하고도 혼동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촬영소 인종들을 자본가의 영리한 주구(走狗)로 보아 경멸하고 비평가를 기생충이나 어용 매문업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고 영화잡지 같은 것은 외국 것이면 몰라도 절대로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된다. 요컨대 고급영화팬은 시네아스트의 긍지를 가지고 스넙 [필자 주: snob] 하면서 우울하여야 하고, 경멸할 줄을 알고 천학박식(淺學博識)이어야 하며, 또한 교묘한 궤변가여야 하며, 기타 여러 가지여야 한다. 10 끝으로 한 가지 부언해 둘 것은 요사이 유행 영화인 토키(talkie)에 대한 것인데, 우리 고급영화팬들은 그것이 사운드·픽처이면 상관이 없지만 불행히도 토킹·픽처일 때는 근신을 해야 한다. 하고(何故) 하면 제군이 뛰어난 어학자이거나 기막힌 즉흥시인이 아닌 이상 동반자(예컨대, 군들의 연인)의 질문에 응하지 못하여 천추에 회한을 남길 염려가 없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노니 고급영화팬은 광범 심원한 지식과 교양을 요하는 것은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덮어놓고 경이원지(敬而遠之)하고 그 대신 매멸(罵蔑)하는 것을 유일한 Motto요, 철학이요, 전술로 알고 굳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2015년 KMDb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는 제목 가나다 순서대로 꼽았다. 보고 나서 잠을 설쳤지만 명단에 넣지 못한 영화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고, 보고 싶었지만 놓친 작품들이 아쉽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했던 두 여성 감독의 신작을 보지 못했다. 쿠웨이트 태생 팔레스타인계 작가 바스마 알샤리프의 작품을 기회가 닿는 대로 챙겨보았지만, 신작 <깊은 잠Deep Sleep>(2014) 상영을 놓쳤다. 그런가 하면 샹탈 아커만의 < 노 홈 무비No Home Movie >(2015)는 학수고대했지만 국내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 뉴스 프롬 홈News from Home >(1977) 이나 <레터스 홈Letters Home>(1986) 등을 잊을 수 없기에, 그녀의 영화는 늘 ‘집에서 온 소식’과 같았다. 한데, 최근작이 유작이 되고 그 제목이 ‘집이 없는 영화’라니.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키노」에 기고한 인터뷰를 위해 2003년에 방문했던 파리 서쪽 끝 그녀의 작은 집을 기억하며, 새해에는 <노 홈 무비>를 꼭 보려 한다. 2015년 영화관에서 가장 황홀했던 순간은 오쿠야마 준이치의 < 휴먼 플릭커 >를 본 날이었다. 1975년 야스다 홀에서 초연했다는 이 작품은, 각각 뜬 눈과 감은 눈 이미지를 스크린에 투사하는 두 대의 영사기 앞에 양손에 부채를 든 감독이 서서 왼쪽과 오른쪽의 영사기 렌즈를 번갈아 가리며 영화의 광학적 원리를 일깨우는 필름 퍼포먼스다. 깜빡이는 눈이 영사되고 있는 스크린 위에서 ‘인간 셔터’가 된 오쿠야마 감독의 그림자가 나비처럼 춤추는 광경을 체험하는 찰나, 빛과 그림자가 직조하는 이미지의 비의에 가닿는 듯했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는 많은 평자들이 다룬 바 있다. 그중 사막에 숨어있는 샘 같은 영화의 어떤 기원source을 더듬어 찾는 유운성 평론가의 글(‘사막은 보이지 않는다: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인문예술잡지 F」 18호)을 읽으시길 권한다. 고전과 현대 영화의 아름다움이 한 몸에 거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 스파이 브릿지 >도 적잖이 놀라웠다. 이러니 올해도 할리우드에 경배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스위스 연방이 주는 영화상을 받게 된 장 뤽 고다르는, 수상 소감을 대신하여 만든 단편 < 인사말: 스위스상(賞) / 나의 사의(謝意) / 생사를 막론하고 >(mubi.com에서 불어·영역 대본과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다.)에서 스위스 영화는 필름일 뿐 시네마가 없고, 미국 영화는 시네마라고 말한다(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다니엘 슈미트, 알랭 타네 등이 버티는 스위스 영화의 무게를 상기하노라면, 이 질문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시상식 불참 사유로 건강 핑계를 대면서도 <오른쪽에 주의하라Soigne ta droite>(1987)에서 필름 통을 안고 바닥을 굴렀던 자신의 연기를 온몸을 던져 재연하는 노 거장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한편으로 스위스 역사가 흘린 피를 머금고 있다. 또 하나의 ‘만년의 양식’은, 고다르보다 세 살 적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근작 < 코뮤니스텐 >이다. 지금은 지구 위에서 사라진 독일민주공화국 국가였던 노래,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하고 요하네스 로베르트 베허가 가사를 쓴 ‘폐허로부터 부활한Auferstanden aus Ruinen’이 흐르는 검은 화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두 독일 공산주의자가 나치에게 고문을 당하고 귀향하는 1934년을 담은 앙드레 말로 작 「모멸의 시간Le temps du mepris」의 일부를 2014년에 연출한 장면과 더불어, 다니엘 위예와 공동 연출한 과거 작품 <노동자, 농민>(2001) < 너무 일찍, 너무 늦게 >(1981) <포르티니/시나이의 개들>(1976) <엠페도클레스의 죽음>(1986) <검은 죄>(1988) 일부 장면을 발췌 편집했다. 해방 전후의 이탈리아, 공장을 나서는 이집트 노동자들의 식민해방투쟁, 나치가 민간인을 학살한 아푸아네스 산맥의 1967년 풍경들 사이에 존재하는 검은 화면의 심연은 ‘폭력의 예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횔덜린의 ‘새로운 세계’를 말하는 고(故) 다니엘 위예의 출현과 함께 ‘겨우 선 결심’이라는 표제가 붙은(‘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라는 악보의 부기로도 유명한)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16번 Op.135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스트라우브는 아직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감독의 뜻대로, 2분 길이의 단편 < 알제리 전쟁La guerre d’Algerie >(2014)와 함께 상영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파트리시오 구즈만도 여전하다. 아타카마 사막 천문대를 배경 삼았던 전작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2010)에 이어, < 자개 단추 >에서는 카웨스카 족과 함께 물길을 타고 파타고니아까지 내려와 깊은 바닷속에 잠겼던 궤조강軌條鋼에 붙어있는 자개 단추를 건져 올린다. 이 단추는 먼 은하계의 소용돌이를 거쳐, 이를테면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창 어느 골짜기에서 발굴된 양복 단추와도 공명한다. 그들보다 젊은 왕빙도 한결같다. < 세 자매 >(2012)를 찍으며 감독이 알게 된 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 숙소에서 지내는 ‘아들’들의 2014년 2월 2일 일과를 기록하며 시작된 < 아버지와 아들 >은, 나흘 뒤 공장주가 촬영을 중단시키며 마무리되었다. 세간이라곤 화덕과 침상 하나뿐인 거처에서 오락기와 TV를 유일한 낙으로 삼는 일가의 생활을, 카메라는 꼼짝 않고 종일 함께한다. 북경영화아카데미에서 촬영을 전공하기 전에 미술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던 왕빙은,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과 공간을 사진으로도 기록하고 전시했다. 비디오 아트 페스티벌 ‘비디오릴레이 탄산’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하는 강정석의 < 시뮬레이팅 서페이스 A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에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처음 취업한 친구의 출근길을 아침마다 배웅한 7개월 동안의 영상 기록을 편집한 이 작품은, 친구가 해고당하면서 촬영이 종료됐다 한다. 친구의 삶과 노동에 보내는 우정과 지지의 정동은,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작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서울 풍경의 표면 위로 미끄러져 내린다(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때엔, ‘서페이스’의 더욱 본격적인 ‘시뮬레이션’인 B면 <시뮬레이팅 서페이스 B>와 출판 작업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가 함께 보여졌다). (태국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따이끼 삭삐싯이라 표기해야 할) 타이기 삭피싯의 < 불안의 시기 >는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무시무시한 작품이었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여전히 상상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원념이 플리커로 번뜩이는데, 궁중사극 호러 장르가 리얼리즘이 되어가는 상황은 아시아에선 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시나무처럼 떨며 볼 수밖에 없었다. 동병상련의 상념은, 국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라브 디아즈의 < 에레미아스, 1권: 도마뱀 공주의 전설 > 말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들을 보며 되살아났다. 감독의 신작 < 아 프리오리 >에서 목도하듯, 살육에 맞서 고개 드는 인간의 오연함이 더욱 긴급한 시절일 테지만, 그저 바람 속을 걸어 사라져 간 에레미아스의 ‘두 번째 책’이 전할 이야기가 하릴없이 기다려졌다. 이 기다림에 응해준 작품이 미겔 고미쉬의 < 천일야화 >였다. 특히 3부 ‘마법에 걸린 자’의 마지막 장면은 <에레미아스, 1권> 대단원 롱숏에 담겨있던 바람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천일야화> vol 1, vol 2, vol 3 미겔 고미쉬는 해직자를 포함한 기자들로 팀을 만들어, 경제 위기가 깊어진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근년의 사건을 모아 현장 조사를 마치고 < 천일야화 > 시나리오를 사건별로 나누어 개발했다 한다. 현실의 불투명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는 하나, 완결된 시나리오가 없어 이야기 전개를 알지 못한 채 장면을 나누어 촬영을 진행하며 배우와 제작진이 불안해 할까 봐 현장에서의 부담도 늘어갔다고 고미쉬는 여러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급기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버리는 감독으로 직접 분한 그는, 셰에라자드가 아버지와 관람차를 타는 놀이공원 장면에서 옛 아라비아 의상을 입고 다시 등장하지만 여전히 담배만 피울 뿐이다. 줄행랑을 놨다가도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는 이야기하는 자의 숙명을 사는 것일 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천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이야기를 계속하는 셰에라자드를 자신의 영화를 위한 복화술사로 불러들여, 고미쉬는 포르투갈의 현재라는 ‘사태’와 「천일야화」라는 ‘픽션’을 섞는다. 셰에라자드는, 이야기가 인간의 욕망과 공포에서, 죽은 자들과 도래할 자들에게서 온다고 말한다. 때로 거짓말이기도 한 이야기가 진정 우리를 생존하게 해준다고 여기는 그녀는, 고미쉬의 전작 <타부>(2012)의 벤투라처럼 이야기 속 이야기, 영화 속 영화를 짓는다. 「천일야화」원작에서 셰에라자드는 밤마다 새로운 화자를 새워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그러니까 두 번째 탁발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 <천일야화>에도 많은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벌을 치는 양봉업자,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도주 중인 탈주범, 딸의 가정생활을 보살피는 판관에게 진술하는 소, 새를 길들여 노래를 가르치는 남자와 마주친 그물에 갇힌 사내, 여행을 왔다가 경찰을 만나 임신한 중국 여인, 법정에 서는 닭…. 이야기는 인간에게서 동물에게까지 뻗어 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낳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이미지 속에서는 다른 영화가 태어난다. 미겔 고미쉬는 세 편인 동시에 한 편인 < 천일야화 >의 이야기가 성부-성령-성자의 삼위일체와 같다고 칸 영화제 때 수차례 밝혔다. 돌이켜보면 고미쉬의 장편 영화들은 늘 둘 이상의 이야기를 안고 있었다. <천일야화>도 각기 고유한 리듬과 소제목을 지닌 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이 작품인 공동제작국인 프랑스에서는, 칸 영화제가 끝난 뒤 세 편을 나누어 약 한 달 간격으로 순차 개봉했다. 1부는 2015년 6월 24일, 2부는 7월 29일, 3부는 8월 26일에). 1부 ‘불안해하는 자’는 포르투갈 중공업을 대표하던 비아나두카스텔루 조선소 폐업 때 촬영했다. 작금의 포르투갈이 처한 위기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이 물질과 연결되어 있는 양상은 경제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를 다시 묻고 역사를 되새긴다. 고미쉬에 따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개별자들만이 아니라 ‘공동체’이기도 하다. 2부 ‘비탄에 잠긴 자’는 법정, 아파트 등 실내를 주 무대로 삼는데, 연극적 장치와 조명을 채용하여 야외 촬영이 많은 1부보다 어둡다. 이야기도 그렇다. 원형극장에 세워진 법정은 조정하는 힘을 잃었고, 저소득 임대 아파트 주민은 돈이 없어 죽음을 택한다. 한데, 주인과 거처가 잇달아 바뀌어도 개 딕시만은 근심이 없다. 3부 ‘마법에 걸린 자’에는 변두리에서 되새를 길들여 노래를 가르치며 소일하는 남자들이 나온다.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일상의 매끈한 표면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내레이터가 들려주는 그들의 사연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우화인지 실화인지 알 도리는 없다. 한데 무슨 영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바그다드가 바다에 면했던 시절을 살며 사막화를 근심하는 셰에라자드의 옛이야기보다 현대 포르투갈 교외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지내는 이들의 일상이 지극히 초현실적으로 여겨지고, 새 노래 경연 대회가 종교나 정치 결사체의 비밀 회합처럼 보인다. 35mm와 16mm 필름으로 이 영화를 촬영한 사욤부 묵디쁘롬은, < 징후와 세기 >(2006) <나부아의 유령들>(2009) < 엉클 분미 >(2010) 등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대표작을 찍었던 태국 촬영감독으로, < 천일야화 > 제작을 위해 리스본에 1년 정도 살았다 한다(그와 고미쉬는 70mm로 촬영할 것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예산과 기동성 등 몇 가지 문제로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부산영화제에서 러닝타임이 381분인 <천일야화>를 본 날, 이웃한 상영관에서 연이어 < 찬란함의 무덤 >을 보았다. 사욤부 묵디쁘롬이 <천일야화>를 찍은 것도 <찬란함의 무덤>을 디에고 가르시아가 촬영한 것도 모른 채, 같은 날 상영하는 두 영화의 표를 우연히 구했다. 역시 우연이겠지만, 두 작품에는 모두 동물이 여럿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종들 외에, <천일야화> 1부에는 고래도 나온다. 해고자 루이스는 고래 뱃속에서 심장을 치료받고, 바닷가에서는 고래 심장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고래가 해변으로 나오는 건 실수가 아니라 아파서인 경우가 많은데, 바다로 밀어 넣어도 대개 다시 나와 죽는단다.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를 먹은 고래 몸속에는 중금속이 쌓이는데, 보통은 지방층에만 축적되어 문제가 없지만 먹이를 제대로 못 먹는 상황에서는 지방을 에너지로 쓰는 대사가 일어나 온몸에 독이 퍼진다. 물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피하지방을 유지해온 고래가 빈사 상태로 물 밖에 나오면, 온 몸이 열로 펄펄 끓다 급기야 내장이 밖으로 터져 나온단다. 뱃속 같은 이야기의 심층에서 불안으로 윙윙대기만 하던 ‘사태’들의 소음도, 임계점을 넘으면 표면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 ‘사건’이 된다. <천일야화>가 전하는 이야기의 표면에는 포르투갈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 인류의 수런거림이 모이고, 의미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들·인물들·동물들이 공존하는 셰에라자드의 시공은 무한히 나뉜다. 이들이 모여 내는 목소리는, 인간의 언어보다는 되새의 노래에 가깝다. 들풀을 흔드는 바람 속에 새들의 노래가 들리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