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계절
- 감독
- 박배일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허순남, 박상건, 강병문, 이봉주, 류석진, 강향순
부산의 독립영화계에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바람이 생겨났다. 그들은 30대 전후의 젊은 감독들이고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조성봉 감독이 제주 4.3 학살에 대한 도전적인 기록인 < 레드 헌트:빨갱이 사냥 >(1997), < 레드 헌트 2: 국가범죄 >(1999)를 제작했고, 계운경 감독이 장애 여성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 팬지와 담쟁이 >(2000)를 만들었다. 기채생 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부산, 광주 등의 지역 인디씬의 성립과 변화, 와해의 지점을 오랜 기간 기록했다. 새롭게 등장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주축이 된 집단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나 시점에 차이가 있고,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수사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만 부산독립다큐멘터리의 층이 세분화되는 지점은 이들로 인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오지 필름’은 박배일 이 주축이 된 집단으로, 이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장에 찾아가 함께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박배일은 <제제에게 가는 길>(2007), <내 사랑 제제>(2008), < 나비와 바다 >(2013)를 통해 장애인의 연애와 사랑,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그들의 곁을 지켜보았다. 소외된 이웃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그들만의 크리스마스>(2007), < 잔인한 계절 >(2010)은 이웃집 할머니, 분주한 도시의 후미진 곳에서 노동하는 환경미화원의 열악한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못 본 척 지나치는 그 지점을 찾아가 새벽과 밤의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했다. 이후 박배일은 다른 지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옴니버스로 제작한 4대강 문제, 제주 강정 마을의 문제 등을 담은 영화를 거친 후에 < 밀양전 >(2013), < 밀양 아리랑 >(2014)에 이르렀다. 밀양 송전탑 설치를 맨몸으로 막기 위해 산을 오르는 밀양의 할머니들과 함께하기 위해 밀양에 머물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할머니들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면서 밀양에서 살아온 시간에 대해 기록하고 증언한다. 박배일의 카메라가 충돌의 현장을 마다치 않고 종횡무진하면서 관찰한 사건들은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기본적인 인권이나 행복하게 살 권리를 함부로 훼손시키면서 공동체의 가치까지 허물어뜨리는지 낱낱이 폭로한다. < 밀양 아리랑 >( 박배일 , 2014) < 악사들 >( 김지곤 , 2014) ‘탁주조합’은 김지곤 과 그의 조연출을 맡았던 오민욱 이 함께 만든 집단이다. 이들은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예민한 영화적 감각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직조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지곤은 쇠락해가는 극장을 좁은 영사실을 통해서 바라본 < 낯선 꿈들 >(2008)과 극장 바깥에 존재하는 삶의 터전을 기록한 < 오후 3시 >(2009)를 통해 사라질 공간, 매혹으로서의 극장에 대해 접근하는 그의 감수성을 드러냈다. 이후 제작된 < 할매 >(2011), < 할매-시멘트 정원 >(2012) 연작은 우연하게 만난 산복도로의 할머니들의 삶과 무자비한 도시개발의 파괴력, 그로 인해 흩어져야 하는 할머니들의 친근한 공동체의 와해 과정을 기록한다. 김지곤의 카메라는 할머니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순간을 중심축으로 구성해낸다. < 악사들 >(2014)은 속칭 ‘오부리’라고 불리는 악사들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면서 이들이 다시금 연주를 들려주는 순간을 기록한다. 오민욱 은 < 1987061020080610 >(2008), < 상 >(2012)을 통해 부산민주화운동의 뜨거웠던 투쟁을 과거와 현재의 시점에서 환기시키고 있다. 특히 <상>의 오래된 사물을 통해 그 순간의 기억이 현재 공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존재하는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오랜 기간 인간의 눈과 관심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던 사물을 통해 역사와 기억에 대해 미학적인 접근을 하는 방법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 재 >(2013)와 < 범전 >(2015)은 부산의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 시선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 현재 그곳을 채운 개발의 흔적과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실험적인 이미지와 바라봄의 체험이라는 감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재 >( 오민욱 , 2013) <사냥>( 김영조 , 2013) 이 외에도 김영조 의 제작사 ‘월요일 아침’은 다큐멘터리의 활성화와 후배 육성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김영조의 < 가족 초상화 >(2007), <목구멍의 가시>(2009)는 가족의 숨겨진 비밀과 가족사를 관통하는 문제들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이 증폭시키는 감정이 인상 깊다. < 태백, 잉걸의 땅 >(2008), <사냥>(2013)은 한국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담백하게 관찰하는 사람 중심의 영화다. 또 현재 영화 제작보다 미디어 운동이나 풀뿌리 운동과 연관된 실천을 중심에 둔 ‘미디토리’의 대표인 박지선의 <전설의 여공>(2012), < 그림자들의 섬 >(2014)을 제작한 김정근 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시선과 묵직한 삶이 교차하고, 미학과 정치가 예리하게 맞물리기도 하는 부산의 독립다큐씬의 활력은 감독들의 차기작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 김지곤은 할매 연작의 마지막 편을 제작 중이고, 김정근은 지하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찾아다닌다. 박배일은 막걸리 생탁의 노동쟁의를 기록하고 있고, 오민욱 역시 부산의 잊힌 공간을 부지런히 오간다. 김영조는 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중이다. 이들의 카메라가 운동으로 향하건, 투쟁이나 사색의 현장을 지칭하건 그들 모두는 부산이라는 지역과 장소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카메라의 태도에 대해 고군분투한다. * 사진설명: 좌측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배일 , 김지곤 , 오민욱 감독
“좋은 구도는 없다. 그러나 나쁜 구도는 있다. 나쁜 구도는 작위적인 것이다.” 영화 초반에 카메라는 부산의 어느 도로 위에 박혀있는 상기 문구를 오랫동안 응시한다. 아마도 그것은 < 잔인한 계절 >을 연출한 박배일 감독 역시 영화를 만드는 태도에 있어 위의 문구에 동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의문을 갖는다. 작위적인 것을 배제하겠다는 감독의 의지와 이 영화가 선택한 연출 스타일의 관계. 두 요소는 무리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감독에 의하면 이 영화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요청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이 상징적으로 내건 “샤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에는, 탈의실과 샤워시설 등 기본적인 노동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각종 오염물질과 세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고 이들의 삶을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어루만지고 싶다는 것이 작품을 만든 감독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가 이들의 삶에 깊이 있게 접근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 카메라는 집회장면을 담기위해 거리로 달려가지만 경찰의 저지로 집회는 흐지부지된다. 결국 집회장면을 화면에 담지 못한 감독은 촛불집회 장면 대신 촛불시위와 열흘 간격으로 벌어진 거리 축구응원을 찍은 뒤에 노동자들의 육성과 축구 응원 화면을 교묘하게 편집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해 나간다. 월드컵 현장에서 울려 퍼졌던 “대한민국!!” 구호가 촛불집회 화면 위에 덮이고, 시위현장에서 들려오는 사운드는 붉은 악마들의 응원 이미지에 입혀진다. 이렇게 상이한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사운드와 이미지를 오버랩하는 영화의 연출전략은 꽤나 경쾌하고 재기발랄하며 경제적인 영화 만들기의 사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집은 눈치 빠른 관객에게는 감독이 자신이 촬영하는 대상들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구나, 라는 점을 쉽게 간파하게 한다. 이 영화는 무척 매끄럽고 흥미롭지만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도 관공서에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업체에 하청을 주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토록 열악한 노동환경에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 감독은 자신의 일차적 관심은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삶, 인간적인 면”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눈으로 깊이 있게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탐구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 결과상으로 화면에 직접 삽입되지는 않더라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관공서의 입장을 듣고 그 허실을 따져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이다. 설령 최종 버전에서 편집 될지라도, 사안에 대한 감독의 이해와 입장이 분명해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휴머니즘적 시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기본적인 절차인 구청 측과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온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본다. 애초 영화를 시작한 동기가 지나치게 약화된 영화. 어쩌면 그것은 감독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관심보다 감독 본인의 ‘작품’에 대한 열망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서두에 감독이 인용한 “나쁜 구도는 작위적인 것”이라는 언명이 어쩌면 자신을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 영화 창작자들이라면 누구나 독창적인 스타일에 대한 욕심이 있고 실제로 작품 속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다양하게 실험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스타일이란 결국 대상과 최선의 관계맺는 방식을 선택해가는 과정 아닌가? 그렇다면 감독이 이 영화에서 진정, 스스로 납득할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어진다. (말이 자꾸만 꼬이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히 나는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약간의 이물감에 대해 질문하려던 것이 마치 이 영화 전체를 무척 안 좋게 본 듯한 느낌을 주는듯하다. 독자 여러분의 지혜로운 읽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