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팟]독립잡지 세번째 이야기, 잡담잡지 〈?〉
- 제작년도
- 2011
이와사키 아키라 환영회 중 문예봉(좌)과 한은진(우) 다시 만난 세계: 식민지 조선의 극장문화 이야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하는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를 바탕으로 역사의 지층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와 행간 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재조명합니다. 영화의 발흥 이래 재현의 사실성에 대한 추구는 극장가의 화두로 떠올랐다. 카메라가 구현해 낸 재현의 정밀성은 실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선행매체인 연극 역시 사실적 환영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연극과 영화가 하나의 공간을 함께 점유하며 관객을 나눠 가졌던 식민지 조선의 극장 속에서 그 영향관계는 훨씬 긴밀했을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획득한 ‘여배우’는 재현의 사실성에 대한 식민지 조선 극장문화의 지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존재였다. 재래의 관습이었던 여형배우는 여배우의 등장과 함께 전근대적 유습으로 낙인찍혔다. 이것은 배우와 배역의 생물학적 동일성이 여성성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어 근원적인 조건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였다. 무대와 스크린의 주역으로 급부상한 여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공의 시선 속에 노출된 육체의 감각적 즉물성이야말로 여배우의 지위를 굳건한 지반 위에 올려놓은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시각적 쾌락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었으며, 여배우들의 육체는 관객의 관음증적 욕망 앞에서 품평의 대상으로 격하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욱이 여배우들을 향한 응시는 극장 속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모든 이들은 직업적 영역에서의 공공적 삶뿐 아니라 일상을 영위하는 개인으로서 사적인 삶 또한 살아간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표현이 함의하듯 두 영역의 분계선을 명확히 하는 일은 누구라도 품을 법한 보편적 욕망이겠지만, 유독 여배우에게만큼은 직업과 일상의 분리가 허용되지 않았다. 우수진이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여배우가 문화적으로 ‘ 구성 ’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주1 육체를 통해 현시된 여배우의 존재감은 재현의 사실성을 담보했지만, 그로 인해 생겨난 강력한 동일시의 기제와 이에 기반한 극장 체험의 여파는 관객들로 하여금 허구적 배역과 실제 배우의 삶을 혼동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배우의 사생활은 ‘스캔들’의 형식으로 소비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여성의 사회활동을 억압했던 전통적 관념이 맞물린 결과, 여배우의 ‘사생활’은 단순한 관심거리의 수준을 넘어 도덕적 단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식민지 조선 사회에 여배우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이월화 또한 이러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배우 활동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웠던 그는 기생과 여급 일을 병행한 바 있다. 이월화에게 사치와 허영심이 강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한편 토월회가 해산한 후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던 복혜숙 은 ‘비너스’라는 카페를 직접 운영하면서 마찬가지로 비난의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좌) 이월화 (사진: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우) 복혜숙 특히 성욕이 강한 여성이나 신여성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경우, 사생활 또한 문란할 것이라는 의혹의 시선에 둘러싸였다. 이러한 시선은 비단 식민지 조선의 배우들뿐 아니라 할리우드의 영화 스타들에게도 투사되었는데, 그들의 사생활을 다룬 가십성 기사들이 신문 연예란의 단골 메뉴였던 것은 대중적 관심의 향배를 잘 보여준다. 여배우들은 수없이 애인을 갈아치우는 왕성한 남성 편력을 지닌 이들로 지목되었으며, 사소한 이유로 이혼을 일삼는 부도덕한 존재라 낙인찍혔다. 물론, 스타의 화려한 삶과 막대한 재력에 대해 찬탄하는 시선도 엿볼 수 있다. 전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던 그들의 천문학적 주급이나 으리으리한 대저택은 물론이고 사치스러운 취미활동 등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열악한 조선의 연예계에서 여배우는 헐리우드 스타와 같은 동경의 대상으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즉, 여배우는 자신의 힘으로 직업적 성취를 이뤄낸 당당한 여성이 아닌, 생활난에 시달리는 가련한 존재이거나 끝내 ‘첩살이’ 신세를 피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을 지닌 이들로 인식될 따름이었다. 여배우의 전도, 남배우의 전도- 이것이야말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이다. 오늘날 만사가 초창 혁신기에 잇는 조선에 잇서서 더 크게 더 탐탁하게 바랄 수는 업다고 치드라도 인생의 흥망을 기약하는 청춘기에 잇서서 다시 돌이키기 쉽지 않은 직업에 몸을 붙이게 되는 때 장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없을 수는 없다. 우선 여배우 여류 무용가가 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 대답은 극히 간단하다. 『아무래도 시집을 가야지』 여자로서는- 더욱히 경제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자립하기가 어려운 조선의 여성에게는 마지막 닥치는 문제는 반드시 이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에게로 가게 될까. 『첩!』 그것이야 참으로 참으로 예술가를 극도로 모욕하는 말이다. 『재산가의 부인!』 그것은 좋기는 하나 졸연히 얻어 걸리기가 어려운 사정이 있으니 재산가치고 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여배우니 무엇이니 하는 동안에 어느덧 이십이 넘고 나서 사면을 둘러보아야 모두가 기혼 남자들뿐이다. 『그러면 착실한 신사』 아직도 조선서는 소위 착실하다는 청년 쳐 놓고는 사리 잡힌 가정 쳐 놓고는 배우 안해이나 여배우 며느리 얻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머리 길게 기르고 누더기 가튼 양복을 입고 다니는 같은 경우 같은 식경에 도취되어 있는 예술가이나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는 펄펄 뛰다가도 나중에는 하는 수 업시 『하는 수 있나. 사랑만 해 주면 그만이지. 첩 노릇이라도 해야지!』 눈물겨운 탄식이나 나아올 것이다. 이미 여배우 노릇을 하든 사람이 그러하였으며 장차 나아올 여배우의 운명이 그러하다. 이것은 여배우 자신의 잘못도 아니요 그 단체 그 사회의 죄도 아니다. 오직 조선의 민도가 일반의 머리가 아즉도 예술- 더욱히 무대예술에 존경을 갖지 못한 탓이다. 그러함으로 적어도 배우 노릇을 하고자 나서는 분은 우선 이담에 크게 고려를 하야 사랑에서 사랑으로 자유스럽게 날아다니랴는 무거운 결심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더라도 상당한 배우자가 나기까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기막힌 결심을 갖든지. 『잘 놀면 그만이지』 여배우 노릇을 부자의 눈을 호리는 수단으로 알고 무대를 매음부의 전람회 같이 알든지 이 세 가지 길의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 -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9 』, 1035쪽 이춘풍, “ 생활로 본 그들의 내막 - 배우, 레뷰껄, 딴써 등등 ”(5), 《중외일보》, 1929. 11. 12. 이춘풍이 연재한 글은 사뭇 직설적이면서도 신랄하다(‘이춘풍’은 이서구 의 필명으로 추정된다). 그는 여배우를 비롯하여 여류 무용가나 레뷰걸과 같은 여성 연예인들의 생활상을 자조섞인 어조로 소개했다. 그의 글 속에서 여성 연예인의 생활상은 사실상 성노동자의 삶과 유비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자립하기 어려운” 조선 여성의 처지에서 결혼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재산가의 부인”이 되자니 그들은 대부분 조혼을 해서 본부인이 있는 상태이고, “착실한 신사”에게 시집가자니 집안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여배우들의 사정을 이해해 줄 법한 이들은 “가난한 예술가”들뿐이겠지만, 그게 싫다면 누군가의 “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여배우들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서구는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한 식민지 조선 사회 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던 여배우의 처지를 동정한다. 그가 보기에 결국 여배우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뿐이었다. 방종한 여성이 되어 자유를 구가하거나, 결혼 자체를 포기하거나, 아예 대놓고 “부자의 눈”을 홀리기 위해 극장을 “매음부의 전람회”처럼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영화 < 아리랑 >(나운규, 1926)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일선 은 배우 활동을 오래 이어나가지 못하고 능주(전남 화순군) 지역 부호의 자제인 양승환과 결혼하게 된다. 이른바 ‘신일선당’이라고 불렸던 열성팬들은 그의 결혼 소식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정성껏 행복을 빌어 주었다. 이는 신일선이 <아리랑>에서 쌓아올린 이미지와도 관련된 반응일 것이다. 신일선은 주인공 영진( 나운규 )의 여동생 영희 역을 맡았는데, 호색한의 위협을 받는 순진무구하고 어린 여동생의 모습이 관객들의 동정심을 유발했기에 그러한 이미지가 배우 신일선에게도 겹쳐졌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다만, 양승환에게는 본처가 있었기에 결국 신일선도 ‘첩살이’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게다가 신일선이 가난한 집안살림을 돕기 위해 친오빠의 강권으로 양승환과 결혼하게 된 것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정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기도 했다.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떠났지만 신일선의 근황, 특히 그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뎌내고 있다는 소식이 지속적으로 전해졌던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신일선 이야기는 여배우의 박복한 운명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 사례로 거론되었던 것이다. 신일선 반대로 사랑을 쟁취하려 하는 여배우의 적극성은 어디까지나 남성 편력에 불과하다고 치부되는 데 그쳤다. 잔인하게도 여배우의 사랑이 진실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사 사건’과 연관되었을 때, 즉 죽음을 담보로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했다. 조선의 유명 성악가이자, 토월회에서 배우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윤심덕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는 다수의 연애 스캔들에 휩싸여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지나, 극작가이자 연극운동가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실종된 이후 ‘낭만적 사랑’의 화신으로 재규정되기에 이른다. 영화 < 아리랑 후편 >(이구영, 1930)에서 신일선의 뒤를 이어 ‘영희’ 역으로 출연했던 임송서 역시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음독자살을 택한 바 있다. 미수 사건에 그치진 했지만 이애리수 의 ‘정사 사건’도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유행가 가수이자 배우로 인기가 높았던 이애리수는 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배동필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했으나, 배동필의 부모는 여배우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며 극력 반대했고, 결국 그들은 다음 생에서라도 못 다한 사랑을 이루고자 동반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들의 소식은 신문 지상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결국 배동필의 부모가 이애리수의 연예계 은퇴를 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러나 훗날 배동필의 본처가 찾아오게 되자 위협을 느낀 이애리수는 재차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으며, 작고할 때까지 자신의 연예계 활동 이력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고 전해진다. (좌) 윤심덕 (우) 이애리수 이처럼 여배우를 둘러싼 시각은 냉랭했으며, 때로는 음험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배우들은 대상화된 육체의 지위에 머물기보다 예술의 주체 로 거듭나기 원했으며,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담론장에 기입하기 시작한다. 변화의 전조는 1930년대에 접어들며 점차 가시화되었다. 1931년에는 ‘Y.Y생’이라는 필명을 내세운 필자가 《동아일보》를 통해 “여배우 언 파레이드”라는 제목으로 식민지 조선의 여배우들을 소개하는 장문의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주2 비슷한 시기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무대 스타- 순방기”는 매 회차마다 남성 배우와 여성 배우를 한 쌍으로 묶어 주요 활동이력과 연기의 고유한 스타일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1934년에 서광제 는 《조선중앙일보》 지면을 빌려 헐리우드의 여배우들을 다룬 “세계영화계 행각”을 연재했는데, 이 글들은 여배우를 가십의 대상으로 다루기보다 예술의 완성을 위해 정진하는 직업적 전문인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춘풍이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여배우는 이제 공공적 담론장에서 ‘예술가’로 조명받게 된 것이다. 특히 ‘여배우’가 타고난 외형이나 신체적 조건을 전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기예’를 연마하기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을 전경화 한다는 점에서 시각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여배우들의 목소리가 인터뷰나 대담을 통해 노출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신카나리아 는 유명 여성인사들의 새해 포부를 밝히는 지면을 통해 장차 연극을 연구하며 일생을 배우로 살아가리라 다짐했으며, 새해에는 연극 이론서를 집중적으로 독파할 것이라 밝혔다. *주3 1933년에 《매일신보》가 개최한 신년 좌담회에 참석했던 이경설과 이애리수는 여배우의 사생활이 난잡할 것이란 세간의 추측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여배우가 오히려 남배우들보다 “책임 있게 일을 잘 한다”고 주장했다. *주4 최초의 조선어 발성영화 < 춘향전 >(이명우, 1935)의 주역이었던 문예봉 은 발성영화에 좀 더 “적합한 억양”을 연구하겠다고 밝혔으며, 극예술연구회의 대표적 여배우인 김복진 또한 “어린애 역부터 늙은이 역까지” 어떠한 역할이 주어지더라도 철저히 연구하여 제몫을 해낼 것이라 다짐했다. *주5 1937년에 《동아일보》를 통해 장기간 연재된 “스타의 기염” 시리즈에서도 여배우들의 포부를 엿볼 수 있다. 차홍녀 , 한은진 , 남궁선과 같은 연극배우는 물론이고, 문예봉, 김소영 을 비롯한 영화배우들까지 총망라된 이 시리즈에서 여배우들은 자신이 곧 예술의 주체라는 자의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좌) “여배우 언 파레이드”에서 다뤄진 복혜숙 (사진: “ 여우언파레이드 영화편 (9) 인기도 한떄런가 복혜숙양 ”, 《동아일보》, 1931. 8. 9.) (우) "스타의 기염"에서 다뤄진 남궁선 (사진: “ 스타의 기염 (2) 그 보푸계획자랑야심 극은 일생사업연극인 남궁선 ”, 《동아일보》, 1937. 11. 25.) 같은 맥락에서 < 미몽(죽음의 자장가) >(양주남, 1936)의 한 장면에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발성영화로 알려진 이 작품의 주연배우는 당대의 최고 인기스타였던 문예봉이었다. <미몽>의 주인공 애순(문예봉)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나머지 가정까지 버렸던 인물로, 그의 일탈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어찌보면 이른바 ‘신여성’에 대한 처벌 서사처럼 보이는 작품이지만, 실제로 <미몽(죽음의 자장가)>을 둘러싼 해석의 결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래의 쇼트들은 내연남인 창건과 함께 무용 공연에 참석했던 애순이 박경림( 조택원 )의 독무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구성한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은 <미몽(죽음의 자장가)>에서 온전한 형태의 시선 편집(eyeline match)이 거의 유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선의 주체와 시선의 대상을 연속적으로 배치하게 될 경우, 시각 주체의 욕망과 그것이 투사된 대상의 정체를 가리키게 된다. 그렇다면 <미몽(죽음의 자장가)>에서 이 장면만큼 주인공 애순의 욕망이 직설적으로 노출된 순간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몽(죽음의 자장가)> 중 이 장면이 문제적인 것은 시선의 엇갈림을 통해 식민지기의 극장 속에 착종된 욕망 들을 압축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객석에 앉은 애순의 모습은 시선의 주체인 동시에 시선의 대상으로서 포착된다. 시선의 주체로서 애순은 무용가의 춤에 대한 애호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주변 남성들의 시선 속에서 대상화된 존재로 재현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의 응시는 창건이 자리를 비운 직후부터 보다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객석에 앉은 애순을 향한 남성들의 응시는 부재하는 창건의 자리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이 남성의 울타리를 벗어날 경우, 무제한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은 애순의 주체성을 훼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순은 시각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잡담을 주고받는 산만한 남성들과 달리 무용가의 춤에 집중하면서 극장의 본래 취지에 걸맞는 ‘이상적 관객’의 형상을 드러낸다. 이 장면이야말로 <미몽(죽음의 자장가)>이 지닌 미묘한 해석의 결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데, <미몽>은 ‘신여성’을 부정적 표상으로 낙인찍고 대상화하려는 사회적 시각을 보여주면서도, 이러한 시각으로 결코 포합될 수 없는 여성의 주체성 또한 재현해 내기 때문이다. ‘애순’의 모습처럼 식민지 조선의 여배우들은 그들을 둘러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폭압적인 시선을 예술적 주체를 향한 주목으로 바꿔놓기 원했던 이들이었다. 사회의 무지함에 대해 항변하는 대신 그들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겸허히 채우고자 했으며, 극장문화의 공진화적 발전을 목표로 삼았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영화가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한 바 있다. 기계장치의 냉혹한 메커니즘 속에 짓눌린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인간성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지만 영화를 통해 해방의 서사를 발견한다. 즉, 배우는 카메라라는 기계장치 앞에서 끊임없이 시험받게 되지만, 그 가혹한 테스트를 의연하게 버텨낼 뿐 아니라 적극적 상호침투를 통해 가장 인간다운 형상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대상화된 육체의 지위를 넘어 예술적 주체로 발돋움하기 원했던 식민지 조선 여배우들의 인정투쟁이야말로, 영화를 현대사회의 냉혹한 논리에 ‘복수’를 가하는 장치라고 보았던 발터 벤야민의 생각과 상통하는 대목이 아닐까? *** 주1. 우수진, 「여배우의 사회문화적 구성과 이월화」, 『현대문학의 연구』 82, 한국문학연구학회, 2024. 주2. ‘Y.Y생’은 김유영의 필명으로 추정된다. 주3. 기사, “직업여성의 가두에서 맛는 1931년 - 신산한 그들의 생활에서 새해의 출발을 보자!”, 《조선일보》, 1932. 1. 2. 주4. 기사, “직업여성의 좌담회”, 《매일신보》, 1933. 1. 3. 주5. 기사, “백화요란한 음악, 미술, 극, 영화, 무용 각계의 성관 - 예원에 활약하는 여성들”, 《동아일보》, 1936. 1. 1. 이광욱(극장문화사 연구자) l 읽고 생각하며, 말하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뒤적이고 오늘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미래를 고민한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조교수(동화 한국어문화학과), 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드라마, 일상성의 미학』(2024) 공저, 「카프 연극대중화론의 전개와 송영 풍자극의 매체미학」(2018), 「도달한 임계점과 보존된 미래 – 발성영화의 정착과 경성 소재 조선인 극장의 연쇄 반응」(2021), 「표류하는 조선영화 : <임자 업는 나루배>에서 <정춘삼>으로 – 최초의 영화 판권 소송과 식민지 조선영화 시장의 추이」(2022) 집필.
“영화란 말야…..” < 찬실이는 복도 많지 >( 김초희 , 2019)의 첫 대사는 마치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이 던진 일생의 프로젝트, “영화란 무엇인가?”(What Is Cinema?)에 대한 거대한 답변으로 시작을 하려는 듯 하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다소 허망한(?) 에피소드들은 영화의 존재론적 사유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찬실이의 일상은 유쾌한 잡담에 가깝다. ‘잡담’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우리 모두가 늘상 나누고 공유하는 보편적인 일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흔살, 찬실이( 강말금 )는 영화 프로듀서다. 맞다,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줘도 극중의 주인집 할머니( 윤여정 )가 그렇듯, “그래서 그게 뭐하는 일인데?”라며 무한반복 같은 질문이 되돌아오는, 그 정체성 제로의 직업말이다. 특히 감독이 갑자기 죽고 나선 더 그러하다. 더 이상 할 일도, 불러주는 사람도 없이 수입이 끊긴 찬실이를 친한 배우 동생, ‘소피’( 윤승아 )는 가사도우미로 고용한다. 아침마다 소피의 술병을 치우는 일에도 보람이 느껴질 무렵, 찬실이는 단편영화 감독이자 소피의 불어 선생, ‘영’( 배유람 )에게 빠져들게 된다. 영을 짝사랑 하면서부터 그녀의 삶은 새로운 활기가 넘친다. 데면데면하던 주인집 할머니와 우정도 나누고, 수호천사인 장국영( 김영민 )이 필요할 때 마다 나타나 고민도 들어준다. 이 가운데 찬실이는 정말 복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영에게 거절을 당하면서 그녀는 좀 전의 지지리도 ‘없는 삶,’ 즉 갈데도,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복 많은 찬실이는 서서히 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이 ‘없는 것들’ 사이를 뺴곡히 채우고 있는, 수 많은 ‘있는 것들’이다. 삶에 찌들어 미처 들여다 보지 못했던 일상엔 딸이 “꽃 처럼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웃의 아픔이 있고, 발연기로 욕만 얻어먹는 후배의 웃픈 푸념도 있으며, 찬실이의 재기만을 기다리는 동료들의 응원이 있다. 마침내 이 풍성한 찬실이의 일상은 스크린 속 누군가의 그것으로 영화적 환생을 맞는다. 이쯤 되면 정말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난제에 대해 바쟁조차도 만족스러워할 답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란 우리에게 없는 것들, 즉 결핍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비추고 의미를 메기는 일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찬실이의 시나리오 노트가 그녀의 ‘없는 삶’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재발견은 영화적 발견임과 동시에 영화의 소임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꽤 영리한 방법으로 삶과 영화를 도치시킨다. 이를테면 삶을 영화의 언어로, 영화을 삶의 언어로 말이다. 쥐뿔도 없지만 잘난 척 좀 하고 싶을때는 ‘오즈 야스지로’가, 초라한 서가를 메울 만한 서적으로는 ‘키노’가, 푸념상대가 필요할 땐 난닝구 바람의 ‘장국영’ 만한 것이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세상 밖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불안과 혼란의 최절정을 지나는 한가운데에 개봉했다. 그럼에도 3월 중순 기준 관객수 만 칠천명을 넘어서며 썰렁한 극장들로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치유의 힘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주체할수 없을 만큼 웃어보고, 혼잣말을 해 봤으며,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오즈 야스지로도, 키노도, 장국영도 분명 그것을 가능케한, 반가운 아이콘이었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영화적인 아이콘은 역시 찬실이를 연기한 강말금 배우다. 그녀의 얼굴에는 우리 모두의 결핍과 바램 그리고 환희가 있다. ‘말금’이라는 이름처럼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일상에 담궜다 빼낸 리트머스 종이같이 분명하고, 즉각적이다. 동시에 간간히 드러나는 그녀의 ‘시네마틱한’ 표정은 이야기의 에너지를 환기하는 유일무이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든 것, 즉 영화적이고 세속적인것을 발견하고 조합해낸 김초희 감독의 공이 크다. 2020년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봄 가운데, 그녀의 영화가, 그리고 찬실이가 이 난세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왜 이 판자 쪼가리에 미치는지 알아요?” “fuck shit!”을 입에 달고 살아 그것이 별명이 되어버린 한 소년(영화 안에서 그의 별명은 ‘존나네’라고 번역되어 나온다.)이 스케이트보드를 응시하며 말한다. 공터에는 그와 같은 소년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고, 노숙자로 보이는 이들이 무료하게 햇볕을 쬐며 그 광경에 어우러진다. 나른한 오후의 장면이지만, 이곳은 법원 앞, 그러니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일이 금지된 제도와 규율의 장소다. 경찰들이 들이닥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평화는 이내 깨진다. 소년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뿔뿔이 흩어지는데, 더러는 달아나는 데 성공하고 더러는 붙잡힌다. 신기한 건 이 대목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이다. 강제적이고 다급한 도주의 순간이 어쩐지 유희의 리듬으로 충만하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들에게는 경찰에게 쫓기는 한바탕의 소동도 스릴 넘치는 놀이와 다름없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이 순간을 그렇게 찍었다. 영화는 내화면의 소란스러운 노이즈를 외화면의 경쾌한 음악으로 침묵시키고 아수라장이 된 공간 속 충돌들을 부드러운 운동으로 다시 표면화한다. < 미드 90 >(조나 힐, 2018)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들과 자주 마주한다. 이를테면 ‘땡볕’이라 불리는 스티비(서니 설직)가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낙담한 장면에서 그가 줄곧 동경해온 레이(나 켈 스미스)는 자신과 친구들의 만만치 않은 가정사를 언급하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둘은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양쪽으로 차들이 달리는 도로 중앙의 경계선 위를 스케이트보드에 올라선 두 소년이 화면 후경으로부터 전경 쪽으로 유영하듯 점차 가까워지다가 곧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감행하는 위태로운 행동이지만, 차들의 소음 대신 음악의 활기로 채워진 장면 안에서 두 소년의 움직임은 공간의 한계를 자체적인 리듬으로 유연하게 돌파한다. 그들이 도심의 텅 빈 공원에서 오직 스케이트보드 하나와 자신의 육체만으로 곳곳을 오르내리며 묘기를 부릴 때, 그것이 쇠락한 공간을 독창적으로 다시 감각하며 그곳에 숨을 불어넣는 행위라고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 장면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스케이트보드 위에 오른 소년들의 운동은 물론이고 <미드 90>이 그 순간을 ‘영화적으로’ 가공하는 방식은 섬세하게 아름답다. 도시의 보잘 것 없는 풍경들과 그곳에서 근근이 버티는 청춘들의 빈곤한 시간이 이 매끈한 움직임들로 인해 잠시나마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는 데 성공하며 빛날 기회를 갖게 된다. 물론 이 순간이 자아낸 감상이 실은 환상에 빚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이 장면들은 현실의 시간을 중지시키고 풍경의 얼룩과 충돌을 미학화한 결과물일 것이다. 대다수의 하위문화가 결국 체제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그저 체제 안에서의 또 다른 소비양식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스케이트보드의 운동성으로 유려하게 구축한 장면들은 적어도 ‘존나네’와 같은 청춘들이 “판자 쪼가리”에 거는 마음의 풍경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그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소년들이 법원 앞 공터에서 만난 어느 노숙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거리에서 탈출하려고 노력 중이야. 이 거리가 나를 먹어버리기 전에.” 그는 거리로 내몰린 자신이 거리의 죽은 사물이 되어 더 이상 어떤 가능성도 없이 붙박인 채, 그곳의 가난과 폭력과 체념에 ‘먹히는’ 상태를 염려하고 있다. 그는 거리를 사는 주체가 아니라 그 거리에 잡아먹히는 대상이 될 위험을 감지한다. 그와 같은 맨몸의 노숙자들에게 이 거리는 오직 생존의 문제와 결부된다. 그러나 적어도 스케이트보드를 가진 소년들에게 이곳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절실한 문화와 취향의 공간이다. 그들의 지식이 아니라 육체가 (아마도 그 거리를 설비한 자들보다 더) 거리의 구조와 생리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자연스레 터득하고 이해한다. 그들에게 그 거리는 가정, 학교, 사회 등과 같은 ‘중심’ 혹은 ‘내부’의 균열을 고스란히 외면화한 바깥이지만, 그들의 열악한 현실을 상기하는 동시에 그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육체의 활력을 키우는 유동적이고 모험적인 바깥이기도 하다. 레이는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 중인 스티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처럼 세게 부딪치는 놈은 처음 봐. 그럴 필요 없어.” 형 이언(루카스 헤지스)이 일상적으로 가하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온 이 작은 소년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종종 일삼는 방식으로 현실을 견뎌왔다. 그러나 레이의 말대로 거리의 스케이트보드와 함께라면, 소년은 더 이상 갑갑한 집 안에서 세게 자학하지 않고도 삶을 버티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상처 입은 소년들은 총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겨드랑이에 끼고 매일 거리로 나온다. 이 영화는 주인공 스티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소년들의 암울한 집으로 카메라를 들이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바깥의 폭력에 잠식되지 않고도 바깥의 리듬을 자기 식대로 체화해가는 순간들에서 분노나 좌절과는 다른 감정적 교류를 응시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위험한 농담을 나누고 서로 치고받으며 치기어린 사고를 내고, 결국 죽음 문턱에까지 접근해도, 어찌되었든 이들이 이룬 공동체의 풍경은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안도를 안긴다. 자동차 사고 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스티비가 입원한 병원 휴게실 의자에서 상처 난 얼굴로 널브러져 잠이 든 소년들의 모습이 그 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 공동체의 일부가 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영화에서 퇴장하는 스티비의 형 이언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맥락이 필요할 것 같다. 그는 영화 속에서 상스러운 말과 행동들을 일삼으며 자신을 과시하는 그 어떤 소년들보다도 음산한 기운을 퍼뜨리며 스티비의 장면을 찢고 들어온다. 요컨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언은 좁고 긴 복도에서 스티비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이후에도 우리는 이언이 스티비를 무시하고 이용하며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스티비가 몰래 훔쳐보는 이언의 방에는 최신 음악 씨디들과 옷, 모자 등 당대의 유행품들이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안이 그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혼자다. 집에서 혼자만의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몸은 스케이트보드와 하나가 된 소년들의 육체와 확연히 달라 보인다. 그것은 거리와 호흡하며 끊임없이 놀이를 고안하는 생기로운 몸이 아니라, 자기방어를 위해 단련하고 공격을 준비하는 것만 같은, 우월감에 도취된, 실은 불안을 은폐하는 몸이다. 우리는 이안의 폭력성이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기인한다고 짐작하지만, 영화는 그에 대한 그 이상의 관심을 요청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굴욕적인 순간은 동생을 그토록 때리던 이안이 ‘존나네’ 무리들과 맞닥뜨린 장면에서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할 때인데, 이안과 관련된 일련의 장면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미국사회가 낳은 특정 유형의 인물을 상기시킨다. 섣부른 일반화가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는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소외시켜 폭력을 내면화하며 결국 왜곡된 방식으로 분노를 폭발하고 마는 이들의 기운을 잠재한다. 더욱이 그가 빌 클린턴의 얼굴 캐리커처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혼자 밥을 먹거나 한밤 중 자고 있는 스티비를 급습해서 구타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 난데없는 풍경의 기괴함과 끔찍함은 그저 무의미한 장난으로 치부해버리기 어렵다. 이런 설정을 당대 정치사회에 대한 영화의 코멘트로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 장면들에서 우리는 그가 키워가고 있는 망상의 그림자를 예감할 수밖에 없다. 극우주의, 백인우월주의 등과 같은 혐오의 단어가 이 장면을 무섭게 스쳐간다. 영화의 후반, 이안이 온 몸에 깁스를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스티비를 말없이 지켜보다 음료수 두 개 중 하나를 나눠주는 장면이 있다. 둘에게 주어진 짧은 휴전의 순간인지, 사과와 용서의 순간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장면은 별다른 대화나 감정의 해소 없이 금세 끝나버리고 이안이 사라진 자리는 어느새 거리의 친구들로 꽉 채워진다. 다정한 친구들의 왁자지껄함으로 가득한 장면은 이안의 부재를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함께 보낸 날들이 비디오로 상영되는 동안, 이안은 그 화면 속 거리의 추억에도, 화면 밖 병실의 친구들 틈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두드러진 인물이지만, 그 존재감이 가장 미약한 자다. <미드 90>은 그 시절, 거리의 유희와 청춘의 리듬을 탐색했던 사고뭉치 소년들의 유일무이한 시간과 함께, 그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어느 소년의 스산한 시간 또한 기억에 남겨 두려한다. 찬란하고 아련하지만 암울하고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