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 바람
- 감독
- 장건재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서준영, 이민지, 권혁풍, 한나, 최효상, 최현숙, 박문아, 백성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동안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것에 혈안이었다. 자그마치 10년이란 시간 동안 감별사를 자처했다. 영화를 보며 “이건 진짜야! 저건 가짜야!”라고 생각했다. 그 시작은 < 잠 못 드는 밤 >(장건재, 2012)이었고 같은 해 < 사랑에 빠진 것처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2) 덕분에 감별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분별하려 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급하게 촬영을 미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다시 시나리오를 썼다. 나의 이야기였다. 이 방식이 진짜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을 연기할 배우를 찾았고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엄마였다. 영화 속 엄마는 내 생각보다 더 철이 없었고 불쌍해 보였다. 진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진짜를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래방에서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엄마에게 연기를 제안했다. 이번에는 제법 진짜 같았다. 하지만 아직 이상했다. 영화 속 엄마는 마치 해탈한 사람 같았다. 다시 한번 엄마와 영화를 찍었다. 상조 회사가 배경이었다. 회사 사람들과 일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했다. 결과는 여태까지 내가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엄마였다. 영화 속 혜정(김혜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만든 것은 무엇일까? 진짜도 가짜도 아닌, 이곳도 저곳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0) 중 그러던 중 < 낭트의 자코 >(아네스 바르다, 1991)를 만났다. 감독은 아네스 바르다로 자크 드미(아네스 바르다의 배우자이자 영화감독)의 어린 시절을 재현했다. 영화의 구성은 극으로 재현된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실제 자크 드미의 모습,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 일부가 삽입되어 있다. <낭트의 자코>는 자크 드미가 성장하며 영향 받은 것과 그것이 어떻게 영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컬러와 흑백이 섞여 있는 점이 내게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재현된 어린 시절은 대부분 흑백이었고 삽입된 영화는 대부분 컬러였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손가락 표시와 중간에 삽입된 영화들이 일정한 기준이 없어 보였기에, 하나의 맥락으로 묶기는 어려운 영화였다. 제일 먼저 컬러와 흑백의 기준을 알고 싶었다. 온전한 것들은 컬러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흑백이라는 추측을 했다. 자크 드미의 얼굴이 모두 컬러인 것이 근거였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형극(예술)은 컬러이지만 바라보는 아이들(픽션)이 흑백으로 표현되거나, 극장의 포스터(물질)는 컬러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자코(픽션)가 흑백이라는 점은 얼추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대화 장면에서 컬러와 흑백이 섞여 있는 장면도 있었다. 이런 장면은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였기에 온전함의 문제로 해석하기에는 정확하지 않았다. 그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이 지났다. 인형극(컬러)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흑백) 사진: "Jacquot de Nantes", IMDb ( 좌 , 우 ) 한참 뒤에야 <낭트의 자코>가 다시 떠올랐는데 바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고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 한 번도 보지 않은 아버지였다.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건 생선이었기에 뽀얀 피부에 정장을 입은 영정사진이 제법 멋있어 보였다. 장례식이 끝나도 계속해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편히 감은 눈이었다. 오히려 죽고 나니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는데 바로 자크 드미였다. 어딘가 모르게 둘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큰 눈이나 오뚝한 코가 그랬다. 그렇게 <낭트의 자코>가 다시 궁금해졌다. 다시 본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자코로 시작하여 자동차 정비소의 전경을 담는 카메라가 시작이었다. 카메라가 사람이 되어 그곳을 두리번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문 너머에서 바라보는 볼뽀뽀 장면도 그랬다. 그러다가 어떤 장면을 마주하고 꼬인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화면 가득 보이는 자크 드미였다. 자크 드미의 하얀 머리카락에서 시작하여 얼굴의 주름을 지나 그의 눈동자로 도착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어떤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그 움직임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와 닮아있었다. 누워있는 머리부터 시작하여 편히 감은 눈을 지나 목에 둘러진 삼베와 그의 손가락까지. 그제야 모든 것들이 감독 아네스 바르다의 기어코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이는 카메라가 담은, 자크 드미의 주름과 눈동자 사진: "Jacquot de Nantes", IMDb ( 좌 , 우 ) 자코와 친구들이 창문에 모여 낙하산을 탄 군인을 바라보는 장면(흑백)이 떠오른다. 이어서 현재의 자크 드미(컬러)가 등장하고 그날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면은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고 자크 드미의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이전과 같은 장면임에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군인은 컬러로 표현된다. 같은 장면이 자크 드미의 발화로 인해 색상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영화가 운동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크 드미와 다른 장면 사이에서 무언가가 오고 가는 움직임을 느꼈다. 더 나아가 감독 아네스 바르다와 자크 드미 사이에서 오고 가는 운동 자체가 곧 <낭트의 자코>였다. 이제야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이곳과 저곳 사이를 가로지르는 무언가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군인(컬러)과, 장면과 장면 사이의 손가락 사진(좌): " Jacquot de Nantes ", moving pictures / 사진(우): " Jacquot de Nantes ", IMDb 끝으로 영화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모래와 바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이내 사라지는 모래와 바다였다. 이처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컬러가 되거나 또 흑백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시선-관계의 문제였다. 더 이상 진짜와 가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모든 것은 진짜이기도 가짜이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만든 애매모호한 것이 실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었다. 나중에야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합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준비된 사진이 없었다고 했다. 겨우 찾은 증명사진이 티셔츠를 입은 사진이었고 그 위에 정장을 덧씌워 그럴듯한 모습을 만든 거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엄마와 영화를 찍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영정사진이라니 나름 근사했다. 해리포터가 생각나기도 했고 뤼미에르가 생각나기도 했다. 산 자의 죽음을 미리 애도하는 꼴이 우습지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이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찍으면 찍을수록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고 내 욕심인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아네스 바르다의 영화를 보며 방향을 점검한다. 그러면 길이 보이는 것도 같다. *** 사진(마지막): " Jacquot de Nantes ", IMDb(상) / " Jacquot de Nantes ", moving pictures(하) 신동민(영화감독) l 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뭘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2020), < 당신에 대하여 >(2020), < 당신으로부터 >(2023) 연출.
야심한 밤의 주유소, 프레임 오른쪽에 도열한 급유기들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흰색의 사각형, 후경의 도로 뒤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프레임을 수직으로 가르며 달려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프레임 왼쪽에서 주유원이 프레임 인하여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깊은 공간의 가장 앞쪽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주는 긴 쇼트가 지속되는 동안 주유가 끝나고 오토바이의 라이더가 시동을 걸자 카메라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넓어진 화각의 카메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도로, 전반적으로 컴컴하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건물들, 황녹색 신호등 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인도하는 것 같다. 하나의 쇼트로 서술되는 이 신에서 영화의 주인공 태훈(서준영)이 막 도착했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짐작한다. < 회오리 바람 >(2009)은 기대감을 형성하는 설정의 기능을 통해 서사의 심부(深部)로 관객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플롯을 주재하는 모티프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구조이다. 태훈과 그의 동급생 여자 친구 미정(이민지)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초여행을 다녀오는데, 이 일탈적 여행이 초래한 여파, 악화하는 관계의 추이가 내러티브의 골간을 이룬다. 서로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실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소년 소녀에 관한 이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이와 같은 유서 깊은 스토리 유형의 장점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은 모두 그런 장면들이다. 장건재 감독의 성취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부유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요동하는 존재의 상태를 시청각적인 기술(記述)을 통해 서술해낸 것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 이후 ‘3개월 전, 고2 겨울방학’으로 시간이 점핑하여 속초여행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플롯은 저들의 존재와 앞날을 암시하는 한 신을 제시한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태훈과 미정은 각각 흰색 콘크리트 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쓰레기통에 담배를 비벼 끄고 프레임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태훈을 카메라가 따르는 동안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외면하는 자세로 선다. 짙은 그림자가 잠식한 프레임 뒤편에서, 숨겨져 있던 쇠기둥들을 걸치고 태훈은 한 사내에게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여비를 구걸한다. 태훈은 서울로 돌아가 계좌로 빌린 돈을 붙여드리겠다고 청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사내는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곤란한 표정의 태훈이 대합실 입구에서 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미정은 그가 다음 상대를 골라 프레임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태훈은 일군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지만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냉랭한 거절의 답을 듣는다. 다시 프레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대합실에서 나오는 중년의 여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때 상황이 반전된다. 태훈의 기색을 살피던 여인은 “얼굴이 아주 심각하구만”이라고 관심을 보이더니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붙여준단 소리 하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인상이 좋아서 꿔주는 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구제의 가능성이 보이자 “도착하는 대로 꼭 붙여드릴게요”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태훈에게 이 구원자는 “믿어보는 거지 뭐, 진짜 줄래나 안 줄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태훈의 이동 경로를 따라 프레임 앞으로 슬그머니 이동한 미정은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태훈과 여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공유한다. 물경 2분 20여 초 간 지속하는 기나긴 이동 쇼트는 불안한 구도와 기우뚱한 자세로 선 소년 소녀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호의를 보인 구원자의 바람과 달리 태훈이 빌린 돈을 돌려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태훈에게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여비가 있었으나 다만 초코바와 우동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가벼운 배신의 삽화는 다소간 약삭빠른 태훈의 성격을 암시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의 일관성은 PC방에서 마주친 건달들을 속이려다 숨겨둔 돈과 신발을 모두 빼앗기고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신은 마치 선의의 구원자를 배신한 이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섬세하게 유지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태훈의 움직임과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가담하지도 못하는 미정의 제스처를 한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쇼트는 이후에 진행될 서사의 궤적을 지시한다. 저들은 이 즉흥적인 바다 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이별하게 될 운명이다. 소년은 변덕이 있고, 즉흥적이며,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비해 소녀는 주변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소년은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지만 소녀는 이미 결단을 내리고 그를 외면한다. 태훈은 새로운 관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미정의 침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은밀하게 뒤를 밟아 알아둔 학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태훈의 불쾌한 행동과 그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미정의 절교 선언은 겨울 바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예견된 바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선택은 미세하게 갈라지게 된다. 표면적인 이야기 너머를 향하면서 영화의 의미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영화적 묘사의 힘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여주는 후속 신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일탈을 눈치챈 미정의 부모가 태훈과 그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얼마간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가진 미정의 아버지(최효상)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두 아이에게 각자의 행적을 적게 하고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려 한다. 범죄 조서를 꾸미듯 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스토리를 적어 냈을 때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발목에서 칼을 꺼내 나무 탁자 위에 꽂는다. 핸드헬드 쇼트는 극도의 혼란을 전달하고, 점프 컷은 미정의 뺨을 때리고 골프채로 장식장 유리를 부수는 아버지의 광란의 퍼포먼스를 단속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을 향한 아버지의 욕지기는 별안간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 것임이 밝혀진다. 상이한 타임 라인을 잇는 사운드의 연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회오리 바람>의 특이점은 소년, 소녀가 그해 겨울의 체험을 겪어야 했던 이전의 상황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그들을 둘러싼 주변이나 세계와의 접점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로 표랑하는 열여덟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 상황, 캐릭터,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의 스타일 전략, 디테일은 잘 조율되어 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만개하던 시절 DV 캠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생생함, 시간과 주의를 낭비하지 않는 촬영, 섬세한 연기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빈번한 롱테이크는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기여하고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 묘사는 반항심에 찌든 십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바람의 이미지, 텍스처는 거칠지만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에 관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의 무드와 잘 어울린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훈의 오토바이가 행인을 친 뒤 급격히 암울해지는 분위기는 텅 빈 겨울 바다를 무대로 들려오는 태훈과 미정의 화면 바깥 대화와 대비를 이룬다. 지나 버린 시절의 격정 안에 영화가 포괄하고자 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실해진다. 험준한 산길과 사막을 걷는 태훈이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황이 오래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시간이 다시 점핑하여 ‘3개월 후, 열아홉’이 된 미정은 진즉에 상실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목엔 태훈이 준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얼마 후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바람을 맞은 듯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두 사람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간은 겨울 바닷가 여행이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의 이미지는 백사장을 덮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내며 태훈이 움직일 때 매섭게 부는 바람의 사운드로 이어진다. 미정 역시 태훈과 마찬가지로 잘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유소, 터미널, 미정의 집, 바닷가 눈밭에서의 움직임과 정지, 동요는 영화가 묘사하고자 한 ‘바람’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바람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광기를 부리고, 차분하고, 들떠 있고, 안정을 주고, 불안하고, 차갑고, 따스하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과 존재를 흔드는 바람의 색깔은 열여덟의 고뇌와 황홀경, 삶의 혹독함을 이기는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07년 10월은 첫 장편영화 < 회오리바람 >을 준비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영화진흥위원회, 지역 영상위원회 등에서 제작지원을 받았고 그 돈을 밑천 삼아 항해 중이었다. 돌이켜보면 제작지원은 너무 많이 떨어져서, 항상 얼마라도 받을 수 있을까 포기하는 심정으로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맞다. 그런 운은 자주 따라주지 않는다. <잠 못 드는 밤>은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해 생활비를 털어 만든, 내 영화 중 가장 가난한 작업이었다) 돈 백이라도 절실히 필요할 땐 기회가 오지 않더니… 그땐 제법 운이 따라주었다. < 회오리바람 >은 지나온 나의 십 대를 반추하며 쓴 시나리오라 대중적인 가능성보다는 온전한 나만의 이야기로 완성하고 싶었다. 당시엔 장편영화로 데뷔한다는 거창함보다는 학교를 벗어나 작업하는 첫 영화라는 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학생으로서 영화를 만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스트푸드 가게의 한가한 자리를 차지하고 하루 종일 스태프 회의를 하거나 배우들과 좁은 자취방에서 다리를 오므리고 리허설을 했다. 함께 한 동료들 누구도 주도적으로 장편영화를 이끈 경험이 없었다. 반백수 상태로 서른을 넘기고 있었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순간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대학원 졸업영화를 만들면서 생긴 빚을 막 청산한 때였고 공부를 길게 하면서 생긴 학자금 대출도 아직 남아 있었다. < 회오리바람 >은 그로부터 3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개봉했다. 개봉하던 날 밤 무대 인사를 위해 배우들과 대기실에 앉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던 때가 떠오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고, 불이 켜지고, 배우들과 무대에 올랐을 때 객석엔 오직 한 명의 관객이 있었다. 두터운 목도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이제 막 극장을 나가려던 그를 붙잡고 한참을 신나게 떠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꽉 찬 객석을 상대하는 사람들처럼 충만한 마음으로 관객과의 대화에 임했다. 한 명의 관객을 위해 공연을 올렸다는 어느 연극배우의 쓸쓸한 일화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지난하게 작업했던 영화를 개봉관에 선보인다는 사실이 더 기뻤던 것 같다. (3년 뒤 여름, < 잠 못 드는 밤 > 개봉 무대인사 땐 아예 관객이 없어 행사 자체가 취소된 적도 있다. 주연배우 김수현 선배와 마케팅 팀장님과 그냥 돌아서기가 헛헛해 아리랑 고갯길을 걸어 내려와 돈암 시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오이채 잔뜩 올린 시원섭섭했던 콩국수의 기억…) 그래서인지 영화를 만들 때마다 어떻게 시장에서 비용을 회수(해 다음 작업에 투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흘러왔다. 나는 그저 쉬지 않고 작업한다는 마음뿐이었고 그저 실낱같은 행운이 조금씩 따라주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3년에 한 편씩,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 한여름의 판타지아 >를 마치고 나서는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숨을 고르면서 지냈다. 다시 원점에 선 느낌이다. 스물두 살 때 뵌 적이 있는 한 중견 감독께서는,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어 와서 이제 좀 수월해질 법도 한데 만들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야, 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당시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거기에 내 고민을 조금 덧대어 보면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할 것 같은 것’ 사이에서 종종 길을 헤맨다. 그럴 때면 매번 영화 만들기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내게 ‘하고 싶은 것’은 작업자로서의 영화 만들기다. 단 한 점의 시나 그림 또는 음악으로 완성되는 예술가가 없듯이 작업으로서의 영화 만들기란 반복되는 일상처럼 매일 비슷한 노동을 이어가며 조금씩 완성에 다다르는 일이다. 거기에 낭만이 깃들 자리는 없다.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사람은 없지만 오로지 본인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 그건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로서의 ‘영화감독’과는 조금 다르다. 직업인으로서의 영화 만들기는 ‘해야만 할 것 같은 것’이다. 거대 투자 자본의 욕망과 창작자의 열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대중을 상대하는 일로서의 영화 만들기. 말하자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영화. 이야기를 찾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큰 자본이 필요한 지점과 만나게 되고 어느 경계를 넘어서면 어느새 영화는 자본의 편에 서 있다. 매번 그 언저리에서 돌아 나와 하던 대로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다. 대기업 회사원과 골목길 자영업자의 차이 같은 거라고 봐도 될까. 그래서 내 작업을 독립영화라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자본과 예술의 욕망을 모두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있다. 그리고 대개는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요즘 준비하는 영화는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다. 아직 시나리오는 마무리되지 않았고 가능성은 여러 갈래로 열려 있다. 많은 사람들과 회의도 하고 공동작업도 한다. 명성 있는 배우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함께 작업하는 걸 상상해보기도 한다. 수십억 단위의 예산도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다 문득 어? 이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걸까, 반문한다. 나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엄살을 부리는 건 아니다. 모든 영화감독들의 숙명이니까. 그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라고 순진한 표정을 짓기엔 자본의 힘은 무지막지하고 극장 생태계는 거의 파괴 직전이다. 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위험한 길이라도 감수할 생각이다. 그리고 언제든 돌아 나와 내 방식대로 새길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완전히 새롭게 해보고 싶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