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낚시]장대 쉽게 투척하는 방법
- 제작년도
- 2010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1978년 3월 16일 아침 9시 10분. 이탈리아 총리를 2번이나 역임한 기독교 민주당 대표 알도 모로가 붉은 여단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날은 기독교 민주당이 서구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공산당과의 연합정부를 구상하고 신임투표에 들어가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일명 ‘역사적 타협’의 설계자였던 모로는 당 안팎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납치, 살해, 테러, 총격전이 횡행했던 이탈리아의 가장 어두운 시기, 이른바 ‘납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좌우간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가장 폭력적인 시대의 희생자 아이콘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모로는 납치 당한 지 55일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다. 다섯 명의 경호원이 죽고 모로가 납치된 그날로부터 빨간색 르노 자동차 트렁크에서 모로의 시신이 발견되는 날까지,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TV에 붙어 있던 55일 간의 일을 벨로키오는 오랫동안 곱씹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로 사망 40주기가 되던 해에 그는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그 55일의 이야기를 다성적이고 기념비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모두의 간절한 바람과 기도를 저버리고 거대한 비극을 상영했던 (벨로키오의 비유에 따르면) ‘거대한 TV 극장’은 실제 사건으로부터 44년 후에 (이번에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이탈리아 TV를 통해 다시 한번 송출된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 익스테리어, 나잇 >(2022)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첫 시리즈 작품이다.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러닝타임 330분에 이르는 이 시리즈는 애초 TV 방영을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극장용 영화로 확장되었다. 제작 방식뿐 아니라 작품의 릴리스 방식 또한 무척 이례적이고 예언적이다. 시리즈물로서는 영화제부터 극장, TV, 무료 스트리밍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배급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고, 이 사례가 예외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예언적이기도 하다. 사실 시리즈물이 유수 국제영화제의 한 섹션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2022년 칸영화제는 <익스테리어, 나잇>을 칸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했다. OTT 영화에 대한 거부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온 칸일지라도 83세 이탈리아 거장의 시리즈물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익스테리어, 나잇>은 칸에서의 프리미어 상영 즈음에 두 파트로 나눠 이탈리아 극장에 순차적으로 개봉됐고, 이탈리아 TV에서 방영된 다음 이탈리아 넷플릭스와 무료 플랫폼 라이플레이(RaiPlay)에서 다시 공개되었다. 적어도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언제나, 쉽게, 다양한 통로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럼 그들은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1978년의 TV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엇을? 벨로키오는 2003년에 모로 사건을 이미 한차례 영화로 만들었다. < 굿모닝, 나잇 >(2003)은 붉은 여단의 관점으로 밀실에 감금된 모로를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내부 시선의 영화라면, <익스테리어, 나잇>은 시선을 외부로 전환하고 확장한, 리버스 버전의 영화다. 자연스럽게 여기엔 주인공이 여럿이다. 벨로키오는 정치인, 교황, 가족, 붉은 여단원을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 삼아 사건에 얽힌 그들의 내면 풍경을 자꾸만 반복 변주되는 악몽의 사이클로 재현한다. 에피소드 1에서는 기독교 민주당과 공산당의 연립정부를 구상하는 모로의 정치적 이상 뒤에 숨겨진 그의 불면과 연약함, 관용과 사랑을 그린 다음, 에피소드 2에서는 그의 정치적 동지인 내무부 장관 코시가의 죄책감과 정신분열적 망상을, 에피소드 3에서는 모로를 구하기 위해 온갖 방도를 강구하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절박한 무력감을, 에피소드 4에서는 붉은 여단 내부에 번져가는 정치적 의심을, 에피소드 5에서는 모로의 아내 엘레오노라의 고통과 소외를 거쳐 에피소드 6에 이르러 환상과 상상, 꿈으로는 바꿀 도리가 없는, 총체적인 파국으로 맺는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IMDb (촬영: Anna Carmerlingo) 에피소드마다 불현듯 끼어드는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꿈이 구현하는 것은 대개 알도 모로의 환생이다. 역사적 비극을 다각도로 재고하는 벨로키오의 상상력은 불가역적인 역사의 결말을 그렇게 뒤집는다. 공히 모로 사건을 다룬 <굿모닝, 나잇>과 <익스테리어, 나잇>에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그 점이다. 역사에 환상과 상상, 그리고 꿈의 이미지를 덧대어 숨겨진 진실의 일단을 들춰 보이는 것. 어쩌면 결론이 바뀔 수도 있었다는 깨달음. 그 환영의 세계에서 모로의 운명은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익스테리어, 나잇>은 그렇게 <굿모닝, 나잇>의 엔딩에서 다시 시작한다. <굿모닝, 나잇>은 감금된 밀실에서 탈출한 모로가 새벽 거리를 비척대며 걸어가는 몽환적인 장면으로 끝나고, <익스테리어, 나잇>은 로마 병실에 누운 모로가 문병 온 동료 정치인들에게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우 초현실적이고 거의 신화적이기까지 한 이 오프닝의 환영은 러닝타임 330분을 관통하는 일련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거기서 모로는 코시가의 방음된 밀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침실 의자에 앉아 불면의 밤을 보내고, 홀로 십자가를 진 채 고난의 길을 걷고, 동료 정치인들과 함께 익사한 시신으로 강물에 떠내려가고, 르노 자동차 트렁크에서 마침내 눈을 뜨고 걸어 나온다. “그 남자는 그리스도처럼 죽어야 했다.” 벨로키오는 감독 노트에 그렇게 적어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의 수사가 아니라 실제의 이미지로 우리 눈앞에 재현해 보인다. 그는 아무것도 새롭게 밝히지 않으면서도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허구를 통해, 오직 상상력만으로. (좌) <굿모닝, 나잇> 중 / (우) <익스테리어, 나잇> 중 / 사진: IMDb( 1 , 2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탈리아가 기묘한 열병을 앓고 있던 시기다. 벨로키오는 그 시대의 풍경을 장대한 프레스코화처럼 펼쳐놓고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걸어 나온 듯한 인물들을 차례로 무대 중앙에 세웠다. 1막이 오르고, 2막이 오르고, 3막에서 또다시……. 그렇게 여섯 개의 장에 3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모로의 정치적 동지와 정부가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낮은 톤으로 서늘하고 선명하게 우리에게 일러준다. “이 영화, 아니, 시리즈, 이게 뭐라고 불리든 간에” 벨로키오는 자신의 첫 시리즈물을 만들면서 그걸 무어라 규정하든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이 영화, 아니, 시리즈, 이게 뭐라고 불리든 간에’ <익스테리어, 나잇>은 영화제와 극장 스크린, TV와 OTT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시네마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를 즐겁게 상상하도록 부추긴다. 완전한 몰입의 330분이 지나고 나면, 이걸 뭐라고 부르든 간에 저 멀리 제 길을 가는 시네마의 발걸음을 좇느라 바빠진다. 실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영화는 매번 시네마의 경계를 탐문하느라 머뭇대는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 간다. 강소원(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l 영화제에서 일한다. 매년 엄청난 편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올드보이>의 시그너처 장면. 장도리를 든 오대수(최민식)는 장엄한 롱테이크 액션 신을 펼친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산업 드디어 한국영화는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100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바라마지않던 영화기업화의 실현을 목전에 둔 것이다. 2000년대 한국영화는 1990년대 후반에 감지된 르네상스의 기운을 주저 없이 밀고 나갔다. 무엇보다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이와 연동해 전체 산업 규모까지 확대되었다. 먼저 지표상의 수치를 확인해보자. 1999년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49편, 평균 제작비가 19억 원이었는데, 2003년부터 제작 편수는 80편을 넘었고 편당 제작비도 40억 원을 넘겼다. 영화산업의 기반인 전국 스크린 수는 1998년 507개, 1999년 588개에서 2003년 1132개, 2004년 1451개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국의 영화관이 속속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전환되며 스크린 숫자가 급증한 것이다. 이에 외국영화를 포함한 전체 관객 수는 1999년 5472만 명에서 2003년 1억 1947만 명, 2004년 1억 3517만 명으로 두 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였다. 주목할 부분은 전체 관객 수 중 특히 한국영화 관객이 증가한 것이다. 1999년 2172만 명에서 2003년 6391만 명, 2004년 8019만 명으로 매년 폭증하면서, 제작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99년 <쉬리>(강제규)가 만들어낸 한국영화 붐과 포스트 <쉬리> 효과로 인해 1998년 25.1%에서 1999년 39.7%로 상승했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1년 50%를 넘어서더니 2004년에는 59.3%에 달하며 60%대를 넘보게 된다(영화진흥위원회 각 연도 ‘한국영화산업결산’ 참조). 비록 스크린 수익에 한정되긴 했지만, 한국영화의 흥행 수익이 제작 비용으로 선순환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영화산업은 충무로 토착 자본의 약화 그리고 대기업 자본의 지배력 강화로 설명할 수 있다. 새판을 짜기 시작한 대기업의 과감한 행보에 충무로 영화인들이 주도권을 내준 것이다. 사실 1998년 IMF외환위기 여파로 시장에서 한차례 철수했던 대기업들은, 영화산업 규모가 커지고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부가 시장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다시 흥행 게임에 나섰다. 바로 CJ엔터테인먼트(2000년 제일제당에서 독립), 오리온 계열의 쇼박스(2002년 설립) 그리고 롯데엔터테인먼트(2005년 설립)가 대표 주자들이었다. 2002~2003년은 충무로 토착 자본을 상징하는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의 2강 체제가 이루어졌고,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를 위시로 쇼박스가 두각을 나타내며 3강 체제로 재편되었다. 우선 각 회사를 살펴보자. 강우석 프로덕션이 모태인 시네마서비스(1994년 설립)는, 서울극장의 전국 배급망과 투자 배급에 대한 강우석의 뛰어난 감각이 만난 결과였다. CJ엔터테인먼트(현 CJ ENM)는, 1998년 CGV강변11을 위시로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에 진출하며 배급과 흥행 기반을 닦아온 CJ가 만든 미디어 기업이다. 쇼박스는, 2000년 삼성동 코엑스에 메가박스를 지으며 멀티플렉스 사업에 뛰어든 오리온그룹이 출범시킨 투자배급사였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시네마서비스(2002년 플래너스로 사명 변경)는 각각 CGV, 메가박스, 프리머스시네마라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망을 확보하며 제작?투자-배급-상영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2004년 CJ가 시네마서비스의 프리머스를 인수하고 시네마서비스가 다시 프로덕션의 역할로만 물러난 것은, 한국영화산업이 기존의 충무로 질서가 아닌 대기업 자본 체제로 재편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이후 2010년대로 이어지는 CJ의 독주를 예견한 사건이기도 했다. <올드보이> 촬영현장. 왼쪽부터 대수 역의 최민식, 우진역의 유지태 그리고 감독 박찬욱 21세기 한국영화의 핵심 가치 한국 영화산업에서 2000년대 초중반 시기가 중요한 것은, 영화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이 과감히 시도되고 또 이것들이 성과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키워드는 산업의 양적 성장을 대변하는 ‘천만 영화’, 질적 성장을 상징하는 ‘웰메이드 영화’ 그리고 글로벌 영화로 도약을 예견하는 ‘한류’ 등이다. 천만 영화의 기운을 만들어낸 것은 단연코 <쉬리>의 공이 크다. 1999년 ‘단돈’ 28억 원의 제작비로 전국 6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산업의 파이를 확장했다. 이어 한국영화산업은 2001년 810만 관객을 동원한 <친구>(곽경택)의 경험을 디딤돌 삼아, 2004년 두 편의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낸다. 2003년 12월에 개봉한 <실미도>(강우석)와 2004년 2월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가 각각 4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해 1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다. 이는 분명 그전의 한국영화산업이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 편이 촉발한 천만 관객 시대가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산업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슈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이때 시작되었다. 영화 한류(韓流) 역시 <쉬리>의 역할이 컸다. 남북 관계를 첩보액션 장르로 밀도 있게 연출한 <쉬리>는 2000년 일본의 전국 150개관에서 동시개봉하며 130만의 관객을 동원한다. 잇달아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 <엽기적인 그녀>(곽재용, 2001)가 흥행에 성공했고 <내 머리속의 지우개>(이재한, 2004)가 30억 엔 수익을 올리며 한류 열풍의 정점을 찍었다. 드라마와 공조한 영화 한류는 한국영화 수출의 일등 공신이었고, 이후 2010년대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글로벌 영화를 꿈꾸는 시험 무대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 한류 또한 명암이 존재했는데, 영화의 주요 수출 지역이 아시아 권역, 특히 일본에 집중된 것이 한계였다. 2005년 말부터 일본 시장에서 한국영화 흥행이 참패하자 해외 수출액 자체가 급감한 배경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붐을 일으킨 한류가 글로벌 한국영화를 시도하는 한 축이었다면, 또 다른 축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지역의 관심이었다.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등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가 예술영화 배급 라인을 타고 한국영화의 미학을 알렸다. 전자의 두 감독이 많은 관객을 목표로 하지 않는 순수한 예술영화 진영인 데 비해, 후자의 두 감독은 대중과의 접점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장르영화로 승부를 내며 스타 감독으로 등극했다. 박찬욱, 봉준호는 각각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3년 <살인의 추억>을 내놓으며 ‘대중적 작가주의’라는 새로운 인식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웰메이드(well-made) 영화’ 논의로 연결된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이다. <살인의 추억>(봉준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올드보이>(박찬욱), <장화, 홍련>(김지운) 네 작품 모두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5위권에 들자, ‘돈 버는 영화’와 ‘공들여 잘 만든 영화’의 간극이 없어진 것을 포착한 영화 저널과 비평가들이 내놓은 용어다. 특히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올드보이>(326만 명 동원)가 이듬해 제5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까지 받은 것은 웰메이드 담론의 핵심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덕분에 2000년 흥행 1위를 차지한 박찬욱의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583만 명)는 한국영화의 웰메이드 시대를 연 것으로 재정의되기도 했다. 상업영화라는 한계를 안고서도 감독의 연출력을 최대한 밀어붙여 만든 영화가 작품성도 인정받고 흥행에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영화산업의 가장 건강한 모습일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박찬욱 영화가 자리한다. 그는 21세기 한국영화가 세계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세계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감독이 되었다. 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찬욱은 서강대 철학과 재학 시절 히치콕의 <현기증>(1958)을 본 뒤 영화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영화광으로 살아가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충무로 현장으로 뛰어든다. 충무로 시절은 그에게 시련을 안겼지만, 단련과 성장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장호 감독의 ‘판영화사’가 제작한 <깜동>(유영진, 1988)의 연출부를 거쳐, 곽재용 감독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맡았다가 중도 하차했다. 그리고 <달은…해가 꾸는 꿈>(1992)으로 비교적 빨리 감독 데뷔를 했지만, 소수 마니아들만의 지지로 그친다. 이후 영화평론가로 살던 그는 다시 <3인조>(1997)를 내놓았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그가 비주류 감독에서 흥행 감독으로 단박에 올라선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다. 충무로에 새로운 바람이 불던 시기, 명필름의 프로듀싱 능력과 장르영화에 대한 그의 감각이 행복하게 조우한 결과였다. 그리고 복수 3부작이 펼쳐진다.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다시 대중적 화법과 멀어지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올드보이>에서는 대중성과 작가주의 미학의 접점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2005)로 대중의 영화 감각을 끌어올리는 그만의 연출력을 각인한다. 이후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에서 디지털 영화 미학을 실험한 뒤, 2009년 <박쥐>로 다시 칸영화제의 선택(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영어 영화 <스토커>(2013)를 내놓았고, <아가씨>(2016)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과 428만의 관객 동원으로 대중적 성공까지 동시에 이뤘다. 영국과 북미에서 크게 성공한 이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영국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한다. 몬스터의 기억을 지운 오대수는 다시 미도와 만난다 <올드보이>가 개척한 대중미학적 경지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사는 남자, 오대수(최민식)는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옥에 갇혀 군만두만 먹고 지낸다. 15년 되던 해 겨우 벽을 뚫어 바깥 공기를 쐬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세상에 내보내진다. 우연히 들른 일식집에서 미도(강혜정)를 만난 그에게 이우진(유지태)의 전화가 걸려온다. 왜 갇혔는지 알고 싶으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것이다. 복수의 몬스터가 된 대수는 사설 감옥의 위치를 찾아내 스무 명도 넘는 패거리를 혼자서 상대하며,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신을 펼친다. 수평 트래킹 기법으로 완성된 2분 40초에 달하는 롱테이크는 이제 세계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하지만 감옥방 사장(오달수)은 진정한 복수 상대가 아니었다. 우진이 대수를 찾아와 말한다. 복수하면 즉 자기를 죽이면, 갇혀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없지 않으냐며 5일의 시간을 줄 테니 이유를 알아내라고 한다. 그러면 스스로 죽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우진이 대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설계한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대수와 미도는 관계를 가지고, 대수는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이우진, 이수아 남매의 관계를 기억해낸다.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 그의 복수가 시작된다. 하지만 우진은 미도가 그의 딸임을 알려주고, 대수는 스스로 혀를 잘라 사죄한다. 결국 대수의 복수는 실패한 것이다. 우진 역시 완전한 복수에는 실패한다. 남매에 관한 소문의 근원인 대수를 단죄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지만, 누나를 죽인 것이, 정확히 말하면 죽도록 방조한 것이 우진이라며 대수가 그의 무의식에 새겨진 죄의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우진은 미도에게 대수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스스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최면술사의 도움으로 기억을 지운 대수는 미도와 다시 조우한다. 이제 그는 미도가 딸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수는 몬스터의 기억을 완전히 지웠을까? 영화는 스릴러에 액션을 가미한 장르를 취하고 시종일관 관객의 눈을 사로잡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또 장면 장면에 정교하게 설계된 블랙 유머로, 관객과의 소통에도 성공한다. 특히 대사와 내레이션을 오가는 대수의 문어체 화법과 이에 조응하거나 어긋나는 장면들이 그렇다. 영화는 지극히 폭력적이지만 영리한 연출 덕분에 고어(gore)적 이미지가 직접 제시되는 것은 피해가고, 이 역시 블랙 유머와 결합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대수와 감금방 사장이 등장하는 신들이 인상적인 이유다. 또 이 영화에서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운을 뗀 그의 양식적 미장센이 본격적으로 발화한다. 이제는 박찬욱 사단이 된 미술감독 류성희, 촬영감독 정정훈 등이 합류한 덕분인데, 이후 그의 영화 세계가 공고해지는 결정적인 기반이 된다. 작가주의적 인장이 새겨진 공들인 미장센과 더불어 대중영화 특유의 몰입감까지 만들어내는 한국영화, 바로 <올드보이>가 출발점이었다. 웰메이드 영화의 또 다른 경지 2006년 한국영화는 최고의 호황을 기록하며 산업의 최대치를 보여줬고, 박찬욱이 선취한 대중적 작가주의는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한 봉준호의 <괴물>이 또 다른 수준으로 확장했다. 2000년대 이후 박찬욱, 봉준호가 구축해온 영화 세계는 진지한 관찰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이후 2010년대 한국영화는 산업적으로 더욱 성장했음에도 시스템의 안락함에 매몰돼, 2000년대 한국영화가 개척한 ‘대중적 작가주의’라는 야심만만한 시도를 더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엄밀한 학술 용어는 아니지만, ‘웰메이드’를 2000년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어로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숏을 찍는다는 것 “하스미 선생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실 최근에 고민이 하나 생겼는데요. 숏을 찍을 때, 한 컷을 찍을 때 어느 정도의 힘을 들이는 게 좋을까 하는 겁니다. (중략) 영화는 숏이 생명이지요. 제가 가진 기술이란 그것밖에 없어요. 그것 외에 제가 잘하는 게 없는 거죠. 그렇지만 숏으로 어디까지 승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거에요.” “열심히 숏을 찍으려는 노력은 어디까지 전달될까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모르는 채로 두는 게 좋은 건지, 억지로라도 알아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은 건지 항상 고민됩니다.” 올해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책 중에 한 권인 『영화 장화』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일본 영화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와 그의 제자이자 일본 영화계의 작가주의를 대변하는 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그리고 아오야마 신지가 나누는 긴 대담집이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일본 영화 내 영향력은 대단했다. 70-80년대 그가 대학에 개설해 강의했던 “영화 표현론”은 영화를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고, 그의 평문들은 젊은 영화광들에게 거의 교본처럼 낭독되었다(심지어 그의 글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당시 이 수업을 통해 구로사와 기요시와 아오야마 신지가 영화계로 입문하였다. (나는 이 두 감독에게 도대체 하스미 시게히코의 강의 방식과 내용이 무엇이었기에,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열광했는지 물은 바 있다. 아오야마 신지는 관념을 구체화시키는 쇼트를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영화 속에 구축되는지, 그 구성원리를 발견했던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최근에 만났던 구로사와 기요시 역시 쇼트의 원리에 관해 이야기 했다. 경제적이고 기술적으로 가능한 쇼트를 통해 영화의 의미와 형식을 축적해 나가는 방법들, 그것은 그가 현재 일본 대학에서 영화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영화 장화』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담은 때론 당혹스러우리만치 담대하고 솔직하다. 그들이 존경해마지않는 감독과 작품들에 대해서는 찬탄과 동경을 쏟아내지만, 반면 그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영화와 감독들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과 조소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에 관한 날카로운 시선과 언어들을 가진 이들의 거침없는 이 대화는 오래전, 스승과 제자로 만나 긴 시간을 함께해온 이들이 나눌 수 있는 아주 사적이고 주관적인 취향의 고백이자, 이론과 현장을 넘나들며 체화되고 정립된 영화 존재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들, 변화하는 영화의 위상과 환경에 대한 불안과 매혹을 모두 포함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다 불현듯, 가장 겸손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자신의 오랜 스승에게 새삼 진지하고도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쇼트를 만든다는 것.” 무려 사십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고 고민해왔던 세계적인 거장에게도 영화는 여전히 변화와 질문으로 가득 찬 모호한 대상인 것이다. 숏을 찍을 수 있는 자 하스미 시게히코는 구로사와 기요시를 당연히 ‘숏을 찍을 수 있는 감독’이라고 칭한다. 단순히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컷들이 아니라, 의미와 형식을 갖춘 가장 영화적인 언어를 구축할 수 있는 예술가인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에게는 분명 그만의 언어와 모드가 존재한다. 설혹 크레딧을 보지 않고 마주하게 된 영상이라 할지라도, 보는 순간 ‘기요시의 영화구나, 내적 불안과 위기를 파고드는 기묘한 세계가 곧 시작되는구나’를 알아보게 하는 그런 영화적인 언어들이 있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영화관 체험을 어둠과 빛이 교차하며 시작되는 부두교 주술사의 환각적 제의에 비유하듯(영화관에 드리워진 어둠 사이로 스크린에 빛이 투사되는 순간, 부두교 주술사의 제의가 시작될 때 비현실적 사태를 기대하는 참여자의 흥분이 시작되는 것과 흡사하다고 비유하는 것),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는 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묘한 매혹과 설렘, 긴장과 공포를 수반한다. <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 予兆 散歩する侵略者 劇場版>(2017)의 오프닝도 바로 그렇게 시작된다. 하스미 시게히코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표현대로 ‘숏을 찍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붉은빛의 철제 안전망이 둘러진 공동주택의 현관 앞 계단. 안전망 저편으로는 도시 외곽의 주택들이 보이고, 이내 한 여성이 계단을 올라와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측면으로 비춘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는 것. 기요시 영화에서 ‘문이 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만지는 행위’(접촉)와 더불어 가장 큰 사건의 추동 행위로 쓰인다) 다음 컷은 현관 입구에 놓인 켤레의 남성 구두, 그리고 조금 전 실내로 들어선 그녀의 발과 다리. 우리는 여전히 여성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영화 속 여성은 남성 신발을 통해 집안에 남편이 귀가해 와 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의 다음 컷. 이 쇼트야 말고 첫 번째 붉은 철제 안전망이 드리워진 현관 밖 전경을 포착한 장면과 더불어 기요시의 영화적 이미지와 카메라 움직임 모든 것을 망라한다. 기요시의 많은 영화에서 그러하듯, 집안 내부는 여러 격자로 구분되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열린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마치 생명을 지닌 듯 텅 빈 공간에서 너울거리는 커튼의 형상. 창밖에서 비추는 부드러운 햇살과는 대조적으로 죽은 듯이 가라앉은 실내 분위기. 이 화면 내 공간 안으로 현관을 통과한 여성이 거실로 들어와 집 안을 살피다 문득 뒤쪽 커튼 너머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남편을 부른다. 이때 프레임 외부 공간을 향한 그녀의 시선과 몸짓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한 듯 잠깐 멈춘 채 지속되고, 이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화면 밖 공간으로 빠져나간다. 이때까지 관객은 그녀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다. 그녀가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간 뒤,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여 (흡사 유령적 시선처럼) 그녀가 머물러 응시했던 시점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렀던 커튼 너머의 공간에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남자가 있다. 매우 천천히 그러나 불길한 기운을 암시하며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 발견되는 남자의 형상은 빛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그림자와 더불어 기괴하고, 그것은 흡사 기요시의 전작 < 회로 >(2001)에서 목격했던 유령의 형상을 연상케 한다.(벽이나 난간에 서 있다 얼룩으로 변하며 유령이 되어갔던 형상들). 잠시 뒤, 멈춰 선 화면 안으로 여성이 다시 들어와 남자의 뒷모습을 길게 바라본다. 유령과도 같은 존재감으로 움직이는 카메라가 운동과 정지, 시선과 응시를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요시가 시작하는 이 새로운 영화적 세계에서, 저 남자에게 이미 무언가 사건이 도래했으며 여자는 이 짧은 순간에 그 모든 불안을 감지했음을 알게 된다. (기요시의 이러한 쇼트에서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은 할리우드 고전기에 구축된 제도적 재현 양식으로서의 촬영과 편집의 비가시적 메커니즘처럼 인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카메라의 유동적 시선과 위치의 전능성을 가시화하며, 영화적 디제시스와 관객, 그 사이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며 내레이션을 전개하고 분위기를 형성하는 주체가 된다) 여자가 한참이나 남자를 말없이 응시하고 나서야, 뒤늦은 대답을 하며 뒤돌아서는 남자는 조금 전의 이상한 기운과는 달리 금새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아내를 맞이한다. 여자는 남편의 응답을 듣고서야 방향을 돌려 현관 옆에 있는 주방으로 건너간다. 카메라는 천천히 그녀의 동선을 쫓아 그녀가 주방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을 비춘다. 조금 뒤 남편이 그녀 곁을 지나 화면 밖 방안으로 빠져나가면, 조금 전 밝은 테라스와는 대조적인 어둠에 가라앉은 주방 안 그녀 모습 좌측으로 천천히 이 영화의 타이틀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가 제시된다. 타이틀이 사라지면 여자는 문득 하던 동작을 멈춘 채 의심 어린 시선으로 남편 쪽을 바라보다 천천히 테라스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곤 남편이 서 있던 자리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었을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는 길게 비춘다. 이때 시작되는 그녀의 내레이션, “그것은 정말 사소한 위화감으로 시작되었다” 기요시의 전형적인 롱테이크 쇼트라 할 수 있는 이 세 번째 컷은 아파트 실내 공간을 좌우와 전후경으로 구분하는 카메라 워킹, 테라스의 밝은 빛과 주방과 복도의 어두움, 등장인물의 생명력 있는 움직임과 죽은 듯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정지된 순간의 대비. 아파트 외부 공간에서 들려오는 각종 소음들(외화면 소리, 그러나 논리적 근거가 없는 소리들까지 망라하는 기괴함. 기요시는 외화면 공간의 소리 활용에 대해 질문하자 인과론적 출처가 없는 소리들을 영화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즐긴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가령 현장의 스텝들이 실수로 자아내는 소리들, 엔지 사운드, 건물 밖에서 영문 모르게 들려오는 기계음 같은 소리들을 그는 녹음하여 보관하고 영화에 삽입하며 재창조하는 것이다)과 내화면 사운드를 조율하며 그로테스크하고 언캐니(uncanny 두려운 낯설음)한 기요시 특유의 영화적 세계를 안내한다. 예조와 산보 발터 벤야민의 근대적 주체, ‘산보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공연된 바 있는 미에카와 모토히로의 동명 작품 < 산책하는 침략자 散歩する侵略者>(2017)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개념을 상실하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본질, 불안과 해방에 관한 은유와 풍자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의 기본 설정은 구로사와 기요시 작품과도 잘 맞닿아 있다. 그러나 원작을 각색하기보다는 스스로 시나리오를 써왔던 그의 작품 성향대로 기요시의 <산책하는 침략자> 시리즈는 오롯이 그만의 작가주의적 세계 안으로 흡수되어 재창조되었다. 특히 전작 <산책하는 침략자>가 외계인들의 개념 수집과 살상, 침략과 그 후의 과정까지 묘사된다면,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는 전작에 등장하지 않았던 다른 인물들을 중심으로 침략의 예조(징조)와 과정, 그리고 침략 직전까지의 과정을 이면화처럼 제시한다. 전작이 침략자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예조>는 발생하지 않은 사건, 혹은 드러나지 않은 실체를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지구 여성의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전작은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 존재에 대한 개념적 이해 과정이라면, <예조>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회피하거나 방어하자고 하는 인간 내부의 불안과 공포, 윤리적 갈등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작품은 큰 틀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영화이다. ‘언어’라는 외부적 질서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주체성을 학습하며, 동물적인 생존 본능으로 위기에 반응하는 인간들은 때로는 소멸해도 무방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이며, 또 때로는 치명적인 자기 결함과 트라우마, 불안과 공포로 점철된 나약한 존재이고, 또 때로는 외계의 타자조차 감화시켜내는 사랑과 공존의 존재이자, 윤리적 존재이기도 하다. 언어와 주체성, 자아와 타자, 의식과 무의식 등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 기호학의 기본 개념을 영화적인 사건으로 묘사한 듯한 이 작품에서 외계인들이 수집하는 기본 개념이 가족, 소유, 자아, 노동, 과거, 미래, 공포 그리고 사랑으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게임을 통해 주체 혹은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기요시 영화에서 이미 낯설지 않다. 그의 걸작인 1997년작 < 큐어 CURE, Kyua >에서 우리는 이미 언어와 목소리라는 권력을 통해 타인을 지배하고 공포와 욕망, 불안과 적대를 끄집어내며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했던 기요시의 테마를 본 적이 있다. 정신의학을 공부하다 초월적 능력을 지닌 극 중 연쇄살인범 마미야는 빛과 목소리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고, 그들 내면의 억압된 적대를 폭력과 살인으로 끄집어낸다. 그와 동시에 윤리적 갈등을 제거한다. (<큐어>에서 최면에 걸린 인간들은 억압된 불만을 끄집어내 살인을 저지르고도 윤리적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큐어>의 명장면 중 하나는 경시청에서 경찰 간부와 마미야가 벌이는 설전이다. 마미야는 자신을 비난하며 취조하는 경찰간부에서 반복적으로 ‘당신은 누구인가?’를 질문한다. 경찰 간부(오스기 렌. 이번 영화<예조>에서는 후생성 간부로 출현해 외계인과 비슷한 심문을 벌인다.)는 그 질문에 자신의 직함과 이름을 대지만, 마미야는 지속적으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을 설명하며 이름과 직함을 대지만, 그것이 과연 인간의 본질적인 자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예조>에서 외계인들은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는 방법으로 <큐어>에서의 그것처럼 언어적인 목소리의 권능을 이용한다. 빛과 목소리를 통한 질문들, 그리고 무력하게 응답하고 순응하는 인간. 특정 개념이 상실된 이후 대부분 인간들은 오늘날 인간 사회의 ‘정상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행위와 불안 혹은 해방적 쾌감을 맞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보태어, <예조>는 외계인들의 가이드로 활동하는 자들의 윤리적 불안을 역시 중요한 테마로 다룬다. 개념을 빼앗을 대상을 선정할 수 있는 권력. 그러나 그 선택 능력은 이내 타인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죄의식이 육체적 통증으로 발현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언캐니와 유령 그리고 영화 <예조>의 초반부, 주인공 예츠코의 공장 동료가 그녀에게 불쑥 이상한 이야기를 꺼낸다. 집에 유령이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면 안 되는 존재, 그런데 늘 곁에 머무는 존재, 얼핏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더 공포스러운 존재가 집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상함을 느낀 예츠코는 다음 날 동료의 집을 직접 방문하게 되고, 동료가 유령이라 지칭했던 존재가 그녀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동료는 ‘가족’ 개념을 빼앗긴 이 영화 서사의 첫 번째 희생자이다. 친숙하지만 낯선 존재, 이 언캐니한 공포는 1950년대부터 숱하게 변주되며 만들어진 < 신체 강탈자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1956)의 설정으로부터 시작된다. 형상은 같지만 분명 다른 존재, 돈 시겔로부터 시작되는 <신체 강탈자의 침입>에서 외계인에게 가족의 신체를 강탈당한 사람들은 영문 모를 이질감과 친밀감(언캐니. 두려운 낯섬. 분명 같은데 같지 않은 듯한 느낌이 주는 공포) 속에서 존재의 불안과 공포를 훨씬 크게 체감한다. 이러한 설정은 <예조>에서 비슷하게 변주된다. 어딘지 익숙하기 때문에 더 큰 공포. 예츠코의 동료가 ‘유령’이라고 단정한 그것은 기요시 영화의 공포를 연장한 개념이기도 하다. 예전에 진행됐던 기요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유령을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영화 속에서 유령을 표현할 때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죽음은 현실세계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 바로 옆에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죽음은 결국 세계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영화라는 픽션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까 영화란 무엇인가를 질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현실적이면서 현실에는 없는 것이, 바로 죽음과 영화의 양면성이다. 유령은 죽음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유령이라는 것의 어려운 문제는 그것이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즉 인간이 죽어서 유령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연장으로서 유령이 존재하는 가. 사실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은 길지 않다. 죽고 난 유령이야말로 사실은 인간의 본질일 수 있다. 그래서 유령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고 진정한 본질이다. 또 사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 자신을 유령으로 결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과연 인간을 유령으로 상상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결국 나에게 유령이란, 영화의 존재론이자 인간의 존재론을 고민하게 만들고 출발하게 만드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로프트> 상영 후 나눈 인터뷰) 그의 이러한 유령적 세계관은 <예조>의 후반부, 외과의사 마카베의 신체를 빌어 존재했던 외계인이 죽음 직전에 하는 대사에서 다시금 드러난다. 이미 타인을 살해하면서 공포와 죽음이 연관되어 있음을 터득한 그는 자신이 죽어가는 순간, “나에게도 죽음이 찾아오는구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하지만 죽음은 언제든 바로 옆에 있어. 이건 운명이야. 받아들이자”라고 말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인간-죽음-유령--영화는 긴밀하게 연결되는 실체이다. <산책하는 침략자>와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 모두는 기요기가 최근 가장 다루고 있는 ‘사랑’의 테마를 관철시키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기요시와 러브스토리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는 확실히 < 해안가로의 여행 岸辺の旅 >(2015)에서부터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인간 존재의 힘으로서 ‘사랑’을 묘사한다. 산책 시리즈 모두 결국 인류를 구원하거나 혹은 죽음 앞에선 개인의 공포를 극복하게 하는 유일한 원천은 사랑이라고 그는 피력한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감상주의나 낭만이 아니라,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기요시 감독이 느끼는 책무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인터뷰에서 했던 어른으로서의 책임감 발언(그가 왜 <밝은 미래> 이후 더 다크한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나빠지는 사회에 대한 불안을 언급했다)은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소유 개념을 빼앗긴 히키코모리 청년과 가이드가 광장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하는 연설 내용, 즉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장면과 겹쳐진다. 그러나 영화 속 군중들은 이내 그러한 연설을 외면하고 무시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극 중 캐릭터들 혹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발견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인류의 공존을 위한 사랑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두 편의 장대한 지구 종말 서사로 구축된 개념적 SF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와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는 개별적 사건을 추적하던 그간의 미시적 스릴러 서사를 넘어, 장구한 인류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로 확장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상상하는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시각화하는 디지털 영화의 전능적 시대에, 여전히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상상할 수 있는 것과 재현할 수 없는 것, 영화적인 시간과 공간의 창조능력,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화의 존재론적인 언어, 쇼트의 개념과 한계를 사유하는 감독의 흥미롭고 실험적인 인류학 에세이는 여전히 흥미롭고 매혹적이며 원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