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보단 3
- 감독
- 장민
- 제작년도
- 1998
- 출연
- 양가령, 서금강, 소전용, 종진, 동이
< 둥글고 둥글게 >(2020)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중심에 두면서 1980년대를 조망하는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역사적 영상물들을 편집한 파운드 푸티지 필름으로 단순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 이미지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환기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장민승은 <보이드>(2016), <보이스리스>(2019), < 오버 데어 >(2019) 등에서처럼 음악감독 정재일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이 작품에서도 ‘빛과 소리’의 특별한 시공간 체험을 선사한다. 여기서 ‘빛’은 ‘빛고을(光州)’이라는 이름을 가진 광주와 그 역사적 존재들이 남긴 흔적인 만큼, 차원들을 넘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와 그 역량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소리’는 기도와 종교음악이 그래왔던 것처럼 역사적 존재들과 현재의 관객이 만나 신에게 고통을 하소연하고 죽은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제의적 공간을 형성한다. <둥글고 둥글게>는, < 박하사탕 >이 가장 순수했던 ‘나’를 찾기 위해 5.18 광주 직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했던 것처럼, 시청각적 이미지와 역사의 잠재성을 재차 질문하고 그 역사-영화로부터 고통 받고 소외당한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 작품은 5.18 광주를 한국 근대사의 기원이나 갑작스러운 독립된 사건으로 부각하지 않는다. <둥글고 둥글게>는 88올림픽부터 시작해 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까지 시민과 기자들이 찍은 사진, 전두환 정권이 정권홍보를 위해 만든 뉴스영화, 텔레비전 뉴스보도영상 등을 현재에 촬영한 이미지 컷들과 교차편집하며 차근차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88올림픽의 아이콘이었던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뿐만 아니라 지금은 텅 비어있는 올림픽 스타디움이며, 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끈 시위대뿐 아니라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익명의 사람들의 일상의 감정과 노동환경, 작은 정치적 움직임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5.18 광주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고 5.18 광주는 1980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역사들에 다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기억하려 한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는 ‘Memorare(기억하라)’라는 합창이 반복해 울려 퍼진다. ‘Memorare’는 기존에 이미 기억된 것을 넘어서 기억하려는 의지이자 염원이다.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한 88개의 피아노 건반이 모두 자기 소리와 존재의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역사관을 전달하기 위해 <둥글고 둥글게>가 지속적으로 각인하는 것은 존재의 본질 혹은 물질의 기본 요소이다. 오프닝 장면부터 작디작은 빛의 입자, 사라져가는 연기, (피아노 건반과 공장의 기계음을 비롯한 여러) 소리의 파동을 가능한 개별적으로 또렷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을 최대화하기 위해 장민승 작가는 전통적 영화 방식을 버린다. 빛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프로젝터가 아니라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유기물 고체를 이용해 자체 발광하는 디스플레이 OLED를 선택한 것이다. OLED는 빛의 전달 속도가 빨라 잔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선명한 화질을 제공한다. 이는 매우 작은 입자들까지도 그 존재를 도드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빛은 빛으로, 어둠은 어둠으로 그 본질을 감각하게 하며 전기적 운동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영화의 새로운 존재방식까지 고민하게 한다. 빛은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고 역사적 존재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시공간의 차원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해왔다. 87년 민주항쟁 당시 시위대가 고가도로에 올라가 아래쪽에 있는 전경들을 방해하기 위해 거울을 들어 빛을 반사시키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매우 SF 영화적인 순간을 만든다. 이때 시위대의 시선에서 관객은 프레임 아래쪽에 배치된 전경과 유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반사시키는 거울 빛은 스크린을 넘어서 관객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효과를 만든다. 2차원에서 3차원, 과거에서 현재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반사된 빛은 ‘기억하라’는 기호를 전송하는 조난신호처럼 보인다. 오프닝에서 5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하나의 초가 타오르고 꺼지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이명박 정권 당시 용산참사의 망루 이미지를 구김이 있는 반투명한 스크린에 투사해, 제사에서 죽은 자를 위로하기 사용되는 종이인 소지(燒紙)처럼 태워 버리는 장면 역시 거기와 여기를 연결하는 빛들을 전면화한다. 이러한 영화적 순간들은 극장상영이 아니라 무대가 있는 공연형식(2020.11.28.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으로 상영되었을 때 더 극적인 방식으로 연출된다. 87년 민주항쟁 당시 최루탄이 터지는 장면에서 스크린과 관객 사이의 무대에 연무가 뿌려지고, 5.18 광주 당시의 흑백 필름이 현재 광주의 공간과 교차편집 될 때 여러 개의 핀조명이 무대에 떨어지면서 2차원의 스크린과 관객이 있는 3차원의 공간의 경계는 무너진다. 이미지로 표현되는 역사적 존재와 현실의 관객은 ‘둥글고 둥글게’라는 제목처럼 사이-공간에 공통의 대기로 감싸 안아지게 된다. 5.18 광주의 파운드 푸티지 영상이 본격적으로 삽입되는 영화의 후반부는 죽은 자들의 말을 대신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씻김굿에 가깝다.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운명을 원망하는 구절로 가득한 시편을 후반부에 삽입하며, 당시의 광주시민들을 영웅적 투사로 세워 기념하기보다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더불어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항쟁을 ‘소요와 난동’으로 규정하는 <국립영화제작소>의 뉴스영화로 시작하는 후반부는 영화라는 매체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다.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고 그렇지 않아왔는가? 광주를 비롯한 역사적 비극들에 영화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후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폭행·살해당하고 부모들이 죽은 자식의 관을 붙잡고 우는 모습이 담긴 네가 필름들이 그 사건이 일어났던 현재의 공간과 함께 교차편집 된다. 계엄군에 의한 온갖 폭행과 고문이 일어났던 옛 광주교도소와 국군광주병원은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자연의 침입과 보호를 동시에 받고 있다. 카메라는 수평으로 뼈대만 남아있는 문과 문, 창문과 창문, 기둥과 기둥, 벽과 벽 사이를 이동한다. 이 움직임은 빛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플리커링(flickering) 효과를 만들며, 이 사적지들을 영화관 그 자체로 만든다. 레퀴엠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현재 카메라의 움직임과 과거의 촬영된 흑백의 푸티지들이 교차편집 되며 관객들은 과거와 현재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체험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공간 이동은 현존과 부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어서게 한다. 장민승 작가는 ‘작가와의 대화’(진행 이은선)에서 ‘둥글고 둥글게’라는 제목에 대해 순환과 반복의 메타포이며, 광주시민들이 전라남도청 분수대를 에워싸고 있던 사진의 모양이고, 80이라는 숫자의 기호이고, 돌고 돌아 역사가 자꾸 제자리로 회귀하는 것에 대한 허망함이며, 한국 근대사의 경제성장에서 쇳물을 부어 제련하던 사람들의 노동을 가리킨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그것은 영화의 가장 기본 요소인 빛의 모양이기도 하다. <둥글고 둥글게>는 마지막 시퀀스에서까지 88개의 건반을 모두 보여주고 들려주며 그 존재들, 그리고 그 존재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까지 모두 기억하려 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유물론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역사와 영화를 제련하여 그 존재를 다시 묻고, 잊지 않으려 하고, 그들이 부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대기 중에 남아있는 빛의 입자와 미세한 숨결을 매개해 위로하려는 의지, 그것이 88분간 이 프로젝트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빛의 입자와 미세한 숨결은 단순히 수동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곳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증거이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의 사건과 존재들을 체험하게 하는 역사의 행위소(actant)가 된다.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겟 아웃>은 어두운 날 밤, 어떤 흑인 남성이 납치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점이 바뀌고 흑인인 남자친구 크리스는 백인인 여자친구 로즈가 함께 로즈의 본가인 '아미타지'가 에 가기로 하였는데, 자신이 흑인이라는 점을 여자친구의 가족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로즈에게 털어놓는다. 그러자 로즈는 크리스를 괜찮다며 안심시킨다. 크리스는 흑인 친구인 교통 경찰관 로드에게 강아지를 맡기고 둘은 로즈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가는 길에 사슴을 로드킬 하게 되고, 경찰이 부르게 된다. 백인이었던 경찰은 운전자였던 로즈 뿐만 아니라 크리스까지도 신분증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자 로즈는 그것을 인종차별로 여긴 건지 경찰들의 행동을 지적하게 되고 결국 경찰들은 크리스의 신분증을 받지 못한 채 부숴진 전조등과 백미러를 고치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로즈의 본가에 도착하게 된 크리스는 로즈의 가족들에게 환대를 받게 된다. 크리스는 로즈의 아버지인 딘에게 집을 소개받으면서 집의 사용인들이 하나같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딘은 백인 가족과 흑인 피고용인 조합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알지만, 오래 전부터 이 집안과 함께해 온 사람들이라 내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딘의 말에 크리스는 납득한다. 영화 <겟 아웃>은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조던 필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조던 필 감독은 미국의 세컨 시티 코미디 극단 출신으로, FOX의 ‘Mad TV’에서 만난 키건 마이클 키와 결성한 Key & Peele 콤비로 미국의 코미디 전문 방송국인 코미디 센트럴에서 본인들의 이름을 건 쇼를 진행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래서 조던 필 감독을 코미디언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영화 <겟 아웃>의 감독이 조던 필이라는 것을 알고는 많이 놀란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조던 필 감독은 젊어서부터 영화를 찍고 싶어 했으며 감독으로 입봉하기 위한 일종의 과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인 코미디언을 택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겟 아웃>의 중심이 되는 인종차별이라는 주제에 전부터 매우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코미디언 시절부터 자주 인종차별에 관한 주제로 개그를 짜기도 했으며,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내재된 고정관념적 인종차별, 그리고 흑인 사회 속에서조차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해 자주 미디어에서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꿈과 생각을 실현시킨 조던 필의 연출 입문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저예산 영화인 <겟 아웃>은 무려 1억 2400만 달러의 수익을 챙겨 흑인 감독의 연출작 중 영화사상 최대 흥행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며, 평론가들과 각종 영화 평가 사이트들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코미디언 출신 감독의 데뷔작이 이토록 흥행하고 좋은 평가까지 챙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겟 아웃>은 치밀한 복선의 설계와 메타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 시작부터 건장한 흑인 남성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실 납치 당한 흑인은 영화 중반쯤에 나오는 이미 백인에게 몸을 빼앗긴 안드레이며 그와 전화를 하던 여자친구는 사실 안드레를 납치하기 위해 접근했던 크리스의 여자친구 로즈였다. 이 장면으로 흑인도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후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미타지 가족들의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흑인 월터는 밤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기도 하며, 작중 크리스의 여자친구인 로즈를 예쁜 아이라며 칭찬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육상선수였던 딘의 아버지가 월터의 몸을 빼앗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딘은 자신의 아버지가 베를린 올림픽 미국 대표 선발 예선 대회에서 흑인 육상선수였던 제시 오언스에게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 크리스가 "그 분에게는 아픔이었을 것이다"라고 할 때 딘이 "그러셨지. 하지만 극복하셨어"라는 현재 진행형 대사를 넣어 아버지가 살아있는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딘이 크리스에게 "어머니가 이 주방을 너무 좋아하셔서 물건을 그대로 남겨놓았다"고 할 때 바로 흑인 하녀인 조지나가 나온다. 조지나가 사실 자기 어머니라는 것을 은근히 암시한다. 그리고 파티를 할 때 크리스에게 로즈와의 밤자리에 대해 물어보거나 타이거 우즈를 언급하며 크리스의 운동 능력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언뜻 봤을 때, 단순한 노파심에 던지는 오지랖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크리스의 몸을 빼앗기 위해 그를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로즈의 부모님이 계속해서 크리스에게 금연을 권유하는 것도 크리스의 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상품 가치의 하락을 걱정하는 것이다. 로즈의 아버지 딘은 로즈와 크리스로부터 차를 타고 길을 가던 중 사슴을 쳤다는 소리를 듣고는 사슴은 죽어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미국 재건기 때 백인에게 협력하지 않는 흑인들을 가리켜서 이들을 검은 사슴이라고 하였다. 사실 딘의 말에서 사슴은 흑인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겉으로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과하다 할 정도로 흑인을 두둔하는 딘이 사실은 흑인을 멸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겟 아웃>은 줄거리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인종차별이라는 정말 오랫동안 숱하게 대두되어 왔던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영화에 사용했다. 그리고 스토리는 비교적 평화롭게 시작되어서 점점 고조되며 공포스러워지는 분위기와 주인공의 위기, 그리고 위기의 극복, 다소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겟 아웃>의 전체적인 흐름까지, 정말 무난한 스릴러 영화의 표본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보면 영화 <겟 아웃>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뻔한 스릴러 영화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겟 아웃>을 실제로 본다면 영화 그저 그런 뻔한 영화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겟 아웃>은 특별하다. 그렇다면, <겟 아웃>이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소재를 다루면서도 같은 소재를 다룬 여타 영화들와 다르게 신선하고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겟 아웃>이 사회적으로나, 영화의 소재로서나 우리에게 익숙한 인종차별을 다루었음에도 신선하고 특별한 이유는 역사 속 인물의 서사나 사건을 주로 다루는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영화 중 흔치 않은 장르인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라는 점도 큰 몫을 하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고정관념을 가지고 인종차별적 시선으로 영화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 함정적인 요소들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초반에 크리스와 로즈가 그녀의 본가로 향다던 중 백인 경찰들이 갑자기 크리스와 로즈가 타고 있는 차를 검문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로즈는 마치 경찰들이 흑인인 크리스를 흑인이라는 이유로 검문하려 한다는 듯 크리스를 두둔하였고, 경찰들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물러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당연히 경찰들이 크리스가 흑인인 탓에 검문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영화 속 설정을 살펴보면 로즈의 본가 근처 흑인의 실종 사고가 많아서 경찰들이 흑인인 크리스를 불러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흑인인 크리스의 얼굴에 발리는 새하얀 면도 크림,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백인들, 하나같이 모두 검은 차에서 내리는 백인들, 빨간색 장신구들을 하고 있는 백인들과 작중 혼자서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크리스 등 색깔을 대비시키는 의도된 연출도 영화를 보는 우리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스릴러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귀신과 같은 소재들을 사용한 것이 아닌 최면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하고 귀신보다도 무서운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로 공포를 자아냈다는 점은 <겟 아웃>을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영화들뿐만 아니라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겟 아웃>에서도 작은 아쉬움이 존재한다. 바로 크리스의 친구 로드이다. 작중 로드는 등장할 때마다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작품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크리스를 구해내는 데 결과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현실성과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앞에서 이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할 때, 개연성과 현실성에 관해 말한 것도 이 이유에서 말한 것이기도 하다. 로드는 연락이 되지 않는 크리스를 구하려 경찰서로 가지만, 경찰들은 흑인들을 붙잡아 최면을 통해 성노예로 만드는 마을에서 크리스가 실종되었다는 로드의 주장에 로드의 말을 비웃는다. 그래서 결국 로드는 혼자 크리스를 구하러 가, 결국은 크리스를 구해내게 되지만, 로드가 크리스를 구하러 가는 과정과 그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 이 점이 <겟 아웃>에서 아쉬운 점이었다.
[사진] 영화 <불멸의 밀사>(1947, 서정규)에 출연한 한림(사진 제공: 김종원) 한림(韓霖)은 <자유만세>의 김승호에 이어 해방 후 두 번째 배출된 영화배우이다. 1947년 4월 21일 우미관에서 상영된 서정규 감독의 <불멸의 밀사>(1947)가 그 발판이 되었다. 고종의 특사로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돼 을사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에 대한 열강의 지원을 요청하다가 순국한 이준 열사의 이야기이다. 바로 이 16밀리 무성영화에 한림이 주연을 맡은 것이다. <자유만세>와 마찬가지로 애국심을 자극하는 내용의 특성상 전국적인 학생 단체 관람이 가능했다. 그런데 한림은 이에 앞서 김소동 감독의 <목단등기(牧丹燈記)>(1947)로 먼저 나올 뻔했다. 다음의 기사가 이를 말해 준다. “해방 후 첫 걸음을 내는 전혀 새로운 신인이다. 작품에는 내월 공개 예정인 <목단등기>, 또 제작 중에 있는 <불멸의 밀사> 등 함남 원산에서 출생하여 일본에 가서 일대 상경과를 마친 인텔리, 신장 5척7촌 어깨가 긁고 남성미의 넘버원! 지금 세상이 요구하는 남성에 딱 들어맞는다.(중략) 33세라면 늦은 감도 있지만 성격배우로서 등장하려는 씨의 배우생활은 아직도 장구하다. <목단등기> <불멸의 밀사> 양 작품의 주연인 씨는 조선의 획기적인 16밀리 탄생과 아울러 씨 역시 새로운 연기인으로서 탄생한 것은 16밀리 발전과 더불어 씨도 발전이 약속된 것 같다. 주로 연출자 김소동씨와 일을 하여 왔고 금후도 역시 김씨와 함께 일할 생각이라고 한다. 김씨와 관계는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어 예술 방면에 전적으로 지도를 받아왔고 일상 존경하고 있다고 한다.” - 홍병삼, 「신성(新星)을 차저서(3)」 , ≪예술통신≫, 1947.12.7. - 1946년 ‘영화과학연구소’를 설립한 김소동이 벼른 끝에 첫 작품으로 선택한 <목단등기>는 한을 남기고 죽은 처녀 귀신(이정순)이 성불하기 위해 한 남자(한림)와 동침한다는 내용의 괴기물로, 중국소설 전등야화(前燈夜話)에서 소재를 빌려 왔다 .(김소동, 「나의 이력서(47) 영화편력 절정기」, ≪한국일보≫, 1982.5.20) 김소동이 녹음기사와 함께 직접 만든 녹음기로 도전한 이 데뷔작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세 살 아래의 신인을 기용한 배경에는 전공학과는 달라도 동경의 일본대학 후배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후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시골청년(현인)이 청운의 꿈을 펼쳐나가는 음악영화 <푸른 언덕>(1948, 유동일)의 보조 역할을 했으나 8년 가까이 영화와 멀어졌다. <백치 아다다>로 존재감 드러내다 활동을 재개한 것은 사극영화 <단종애사>(1956, 전창근)의 사육신 중 한 명인 하위지 역할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몇 달 뒤 출연한 이강천 감독의 <백치 아다다>(1956)가 집중적으로 매스컴의 조명을 받으며 그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높아졌다. 그 첫 반응이 시사회장으로부터 나왔다. 미국공보원 영화과장 데일. E 하스 ( 「한국 최고작 ‘백치 아다다’」, ≪동아일보≫, 1956.11.22.) 는 “한국 농촌생활은 물론이려니와 극적 씬, 희비극의 교차 및 인간생활을 파고 들어간 현실주의적인 감각이 가득 찬 영화로서 확실히 한국영화 최우수 작품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고 했고, 작가 이봉구( 「신영화, 이상심리의 표현 ‘백치 아다다’의 예술성」, ≪조선일보≫, 1956.11.23)도 “오랜만에 보는 향토적인 서정과 날카로운 화면 정리와 이동에서 오는 정감이 영화를 성공케 한 바탕이 되어 주었다”며 “이 가운데서도 한림, 장민호의 연기는 페이소스하면서 박력이 있었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영화평론가 이청기 (「신경지의 발견, 영화 ’백치 아다다‘의 예술성」, ≪조선일보≫, 1956.11.26) 역시 “대담한 터치로 아다다의 생태를 해부하고 내면세계에 파고들어 내면의식의 흐름을 극히 감각적인 수법으로 추구한 작품”이라며 한림의 연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수룡 역의 한림은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으나 생리적 조건 탓인지 머슴 성격으로는 지나치게 유약한 인텔리전스가 풍겼다”고 아쉬움도 곁들였다. [사진] 이강천 감독의 <백치 아다다>(1956)에 출연한 한림, 왼쪽은 나애심(사진 제공: 김종원) 한림은 그 뒤에도 <마인>(1957, 한형모)을 비롯한 <아리랑>(1957), <돈>(김소동), <형제>(김성민), <길 잃은 사람들>(이상 1958, 김한일), <외로운 사람들>(박충현), <언제까지나 그대만을>(이상 1959, 권영순). <지상에서 맺지 못할 사랑>(김성민) <사랑해선 안 될 사랑을>(이상 1960, 이봉래) 등 13편에 출연했으나 <백치 아다다> 경우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로운 사람들> 등 한 두 편을 빼고는 거의가 조연급이었다. 그 가운데는 <돈>의 김순경과 같은 단역급도 있었다. 역할에 대한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사진] 한형모 감독의 <마인>(1957)에 출연한 한림, 앞의 여배우는 이빈화 한림은 1914년 12월 26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했다. 그의 본명은 한정국(韓正國)이다. 일본대학 산업경영과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비애, 실연이 담긴 감상적 인정극을 하고 싶어 했으나 그 희망이 얼마나 관철됐는지는 회의적이다. 간헐적으로 채운 12년의 배우생활 동안 대한영화배우협회 창립(1955년 4월16일)에 참여한 일 외에는 외부 활동이 거의 없었다. 프랭크 보재이즈 감독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1937)를 본 후 그 주인공인 샤를르 보외이에를 좋아하게 됐다는 한림은 젊은 시절엔 주량이 거의 무한대, 담배는 ‘전매국 굴뚝처럼 코에서 연기가 나올 정도’의 애연가였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영화계와 절연 상태에서 1994년 7월 28일 팔순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 영화 <돈>(1958, 김소동)에서 단역인 순경으로 출연한 한림 1. <불멸의 밀사>의 감독에 대해 『한국영화총서』를 비롯한 국내의 모든 저작물이 김명순 감독으로 기재 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1947년 1월 14일자 ≪예술통신≫ 2면 「영화 ‘불멸의 밀사’ 남한 로케 견문기」에는 분명히 서정규(徐廷奎) 감독으로 명기돼 있다. 필자가 유족으로부터 받은 당시의 앨범 사진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이 영화를 제주극장에서 단체 관람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