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장님인지도 모른다
- 감독
- 장형윤
- 제작년도
- 2002
2017년 인디애니페스트 대상인 인디의 별은 이규태 작가의 최신작인 < Here Winter >가 수상했다. 나는 그의 첫 애니메이션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졸업작품, 러닝타임 8분짜리 단편 < 돌아보다 >(2008)부터 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는데 첫 작품부터 연출과 작화가 뛰어난 작품으로 유명했다. 이후 그는 많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그 중 <더 빅보이>(2013, 6분), <Each Other>(2014, 6분), <Here Winter>(2017, 6분) 등이 주요 작품이다. 이규태 작가에게는 특히 ‘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데 그것은 그가 일러스트 작가로서 더 유명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작가로서의 이규태는 인상파라고 할 수 있다. 색연필로 빛을 구현하는 그의 작품들은 삶의 어떤 인상적인 순간들을 포착하듯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을 색연필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혹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색연필을 잘 쓰는 작가라고도 말한다. 한결같은 일러스트 작업에 비해 애니메이션 작업은 작지만 착실하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이야기 구조에서, < 돌아보다 >와 <더 빅보이>까지는 확실하고 명확하지만 <Each Other>와 < Here Winter >쯤 가면 모호해진다. 작품은 인과 관계에서 설명이 생략된 좀 더 시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실험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전통적인 실험 애니메이션이 주로 음악을 기준으로 영상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 Here Winter >도 반쯤은 음악을 영상 전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히 실험 애니메이션으로 기울지 않는 것은 이규태 작가가 그리는 캐릭터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생긴 느낌부터 이중적인데, 뭐랄까... 포동포동한 귀여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그 안에 안쓰러움과 슬픔, 아련함 등이 공존한다. 이규태 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언제나 사실 안쓰럽다. 괴물을 잡기 위해 전 인생을 보내고 나서야 소중한 사람을 깨닫게 되는 < 돌아보다 >의 사냥꾼 남자나 여린 마음에 거대한 몸집을 가진 <더 빅보이>의 거인, 그리고 <Each Other>의 소년까지. 이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이 가여운 사람들이다. 게다가 감독은 해피엔딩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캐릭터의 성질은 이규태 작품을 관객들이 쉽게 즐기게 해주는 장치가 된다. 생각해 보니 그런 장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음악이다. 이규태의 모든 작품의 음악을 만든 신현모 의 음악은 이번에도 아련하고 캐릭터에 빠지게 되는 좋은 울림을 만들었다. 애니메이터로서 이규태 의 재능은 무척 뛰어나다. 형태를 변화하면서 주인공이 달리는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Each Other>의 마지막 장면은 동시에 주인공의 내면도 보여준다. 형태를 무조건 변화시킨다고 그런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규태는 인물의 움직이나 동물, 자연의 움직임을 묘사하는데도 뛰어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추상의 움직임에서도 생명체의 느낌을 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컷과 연출은 어울리지 않는 두 컷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동시에 음악적인 템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이규태 작가의 최근 작품의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광경을 즐기듯이, 그의 작품을 보고 즐기면 된다. 아름답고 따듯한 이미지와 아련한 음악의 조화. < Here Winter >는 작품에 나오는 눈처럼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아래의 작가의 공식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kokooma.tumblr.com/ https://www.instagram.com/kokooma
하얀 피부에 내성적이고 예쁘장한 명이. 그리고 구릿빛 피부의 호쾌한 미남자 선호. 두 사람은 동창회에서 재회한다. 명이는 내성적인 성격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데 선호가 따라 나온다. 그런데 명이를 바라보는 선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담뱃불을 붙여주는 명이에게 닿을 듯이 접근하는 선호. 왠지 보는 관객의 마음까지 심쿵하게 만든다. 순정만화 풍의 아름다운 그림체, 섬세한 연출. 국내 최고의 BL이라는 말을 들으며 DVD 출시를 앞두고 있는 작품. 바로 6화까지 공개된 웹 애니메이션 < 과호흡 >이다. 네이버 TV에 공개된 웹 애니메이션 < 과호흡 >은 공개 즉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12만 뷰에 이르는 재생수를 기록했다. 이는 작가가 따로 공개한 유튜브와 합산되지 않은 숫자로 최근 발표된 국내 단편으로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원래 브로맨스, BL 작품은 여성들의 영역이라 남성 독자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일반 남성 독자인 나 역시 그간 접했던 브로맨스, 이른바 야오이 작품으로는 작품성이 우수하면서 야오이 성격은 많이 약하다는 만화 ‘뉴욕 뉴욕(라가와 마리모)’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도 < 과호흡 >은 재미있게 다가왔다. BL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설정과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수위 높은 러브씬을 무기로 넓은 스펙트럼의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중이다. 이 작품이 웹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으로 공개된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웹 애니메이션은 TV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보통 개인이나 소규모 창작자에 의해 연재의 개념으로 웹상에 발표된다. 최근 웹 애니메이션은 여러 가지 대안으로 시도되고 있는데, 오래전 인기를 모았던 <엽기토끼>나 <5인용>과 같은 작품이 한국 웹 애니메이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해외에서는 유튜브에서 연재 중인 <사이먼 캣>과 같은 작품이 유명하다. TV애니메이션이 주로 유아용만을 생산하고 극장용 또한 큰 규모의 제작비 때문에 현실 반영이 느리며 성인 관객과의 소통이 어려운 것이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현실이다. 웹툰은 여러 장르에서 두터운 시장을 가지고 청소년과 성인을 아우르는 폭 넓은 독자들과 소통하며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많은 애니메이션 관련 업계는 성인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으로 웹 애니메이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 과호흡 >이 그러한 관심을 현실적인 수입으로 이끌어내는 첫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과 헤어진 것은 싫어져서가 아니야.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행 같은 거야.” 남자는 우주를 떠다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초현실주의 같은 장면은 박지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 낙타들 >(2011)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작품의 남자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 원래는 진짜 배우가 연기하기 전 가이드 녹음이었지만 적당한 배우를 구하지 못한 감독의 결단으로 나의 목소리 연기가 작품에 남게 되었다. 사실 내가 목소리 연기 했다는 이유 말고도 이 작품은 무척 뛰어난 작품이다. 마치 관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는 여자. 이 집은 텍사스의 어느 모텔처럼 사막과 같이 덥고 황량하다. 그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전 애인은 냉장고에 앉아 있다. 남자는 “당신과 같이 있지 않을 때 당신이 더 그립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면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 얼굴 안에 들어 있는 앵무새이다. 남자 안에 있는 앵무새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이 작품은 감독의 전작 <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2008)과 마찬가지로 남자와의 연애와 이별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박지연 감독의 희소성은 그녀가 다루는 사랑의 일면이 성숙하다는 데에 있다. 성숙하다는 의미는 우리가 많이 보는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이다. 국내의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은 많이 있는 편이다. 그러다 대부분의 작품이 사랑이나 이별을 TV 드라마와 다르지 않은 깊이에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는 창작자들이 주로 대학생들이고 20대 초중반의 나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은 이별을 하고 새로운 좋은 남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오해를 풀고 재회를 하는 정도의 패턴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 낙타들 >에 나타난 여자 주인공은 다르다. 많은 상처 때문에 메말라 버린 주인공은 그렇다고 남자를 욕망에 사로잡힌 나쁜 존재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다시 달콤한 사랑을 꿈꾸기보다는 관같이 생긴 냉장고를 타고 우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박지연 감독 본인은 자신의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의 내면을 이렇게 건조하면서 시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드물다. 또한 이 작품의 이미지와 상징 또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앵무새가 들어 있는 얼굴을 가진 남자. 앵무새는 남자의 욕망을 상징하는데, 앵무새가 날갯짓을 시작하면 남자는 정신없이 방안을 날아다닌다. 여자는 “내가 구해 줄게” 하며 밧줄을 던진다. 그리고 밧줄에 잡힌 남자는 시계추처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러다가 앵무새는 얼굴에서 나와 남자의 몸을 완전히 먹어 버린다.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힌 남자의 모습을 이토록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독특한 스타일 때문인지 이 작품은 부산 국제영화제와 4대 애니메이션에 페스티벌로 불리는 안시, 자그레브, 오타와를 포함한 해외 많은 영화제에 상영되었다. 박지연 감독의 신작이 곧 나오는데 어떤 이야기와 이미지로 신작을 만들었을지 무척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