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H/S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 감독
- 제이 칠, 크리스찬 롱, 조던 다우니, 저스틴 롱, 저스틴 마르티네즈, 버랏 팔, 케이트 시겔
- 제작년도
- 2025
- 출연
- 브라이언 베이커, 트레버 도우, 게리 엥, 샘 고르스키, 필립 안드레 보텔로
태양계 궤도를 도는 에베레스트 크기만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다른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가운데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궤도 계산을 하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6개월 안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딪치는 순간 종말이 펼쳐질 게 명백한 상황이기에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NASA에 보고하는데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개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법하지만, < 돈 룩 업 >은 그 쉽고 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의 고전적인 마스터피스 <세계가 충돌할 때>나 < 지구의 대참사 >도, 할리우드 스케일의 위력을 담은 < 아마겟돈 >이나 < 딥 임팩트 >도, 운명적인 < 너의 이름은 >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 세상 끝까지 21일 >도, 그리고 암울한 아트하우스의 < 멜랑콜리아 >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태 풍자에 집중한다. 무능한 정부는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 중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언론은 심각한 분위기를 피해 가십으로만 소비하려 한다. 여기에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외면하고 기만하는 대중들이 가세하며 환장의 대(大)콜라보를 이룬다. SNL 작가 출신으로 윌 페럴과 함께 많은 코미디를 작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기후 환경 문제와 막장의 끝을 달린 트럼프 정부 그리고 제작과정 중 실시간으로 터진 코로나 상황을 혜성에 빗대 마치 실제 인류의 대위기 앞에서 벌어질 법해 정말로 무서워(!)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조나 힐, 마크 라일런스,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티모시 살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쿠디, 히메시 파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서 성공의 지표로 뽑는 “공개된 지 28일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 레드 노티스 >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다. 비판의 대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플롯과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렸지만, 2021년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후보에 오르며 완성도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극찬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풍자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지만, 이 극도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명민한 음악 덕분이다. 니콜라스 브리텔 배리 젠킨스의 < 문라이트 >와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으로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니콜라스 브리텔은 1980년대생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뉴욕의 유대 가정에서 자란 브리텔은 피아노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고교 시절 줄리어드 음대의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왜 인간이 음악에 매료될까에 궁금증을 느껴 하버드 심리학과에 지원할 정도로 괴짜이자 수재였다. 학부 시절 내내 힙합 연주그룹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의 하버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연출한 단편 <EVE>에서 그의 소품 “Forgotten Waltz No.2”가 쓰이며 영화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포트만이 참여한 < 뉴욕 아이 러브 유 >의 한 꼭지를 비롯해, 각종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텔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고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외환 딜러로 활동했는데, 그가 결국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 < 노예 12년 >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부탁으로 한스 짐머가 <노예 12년>의 스코어를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삽입될 소스 음악들에 대해선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로 외부 음악가를 수혈했는데, 그게 바로 니콜라스 브리텔이었다. 그는 전혀 녹음된 바 없고, 제대로 전승되지도 못한, 잃어버린 노예들의 음악을 위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제 유행하던 스타일에 맞춰 철저한 고증 끝에 새롭게 만들어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노예 12년> 음악의 비밀병기”란 극찬을 받았다. 금융권 출신답게 브리텔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제작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 영화에 제작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그게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 위플래쉬 >였다!), 후에 이 영화가 장편화되며 음악에서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확고히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와 아담 맥케이와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이 성공한 덕분이 크다. < 빅쇼트 > 때 브리텔의 대본에 적힌 전문적인 금융(음악이 아니라!)업계 용어 메모에 놀라 아담 맥케이가 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미 <빅쇼트>와 < 바이스 >를 통해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와 정치 생태계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음악적으로 정리한 바 있는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번 <돈 룩 업>에서도 멸망을 앞둔 경박한 사회적 혼란과 진실이 잘못된 정보 앞에 덮이는 아이러니, 무능한 정부를 비꼬는 다양하고 세련된 스코어들을 들려준다. 신랄한 풍자와 날 선 묘사들로 불쾌해질 수 있는 영화의 공격성을 최대한 무마하고, 널뛰는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여러 고민 끝에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 유행한 업 템포의 빅밴드 사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메인 테마의 색채로 잡는다. 광기와 혼돈을 묘사하면서 멸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앞의 우울함과 슬픔을 내재해야 하고, 동시에 코미디 음악으로서 희극적인 면모도 갖춰야 하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브리텔은 절규하듯 울부짖는 브라스섹션에서 절묘한 부조리의 묘미를 찾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혜성 충돌을 경고할 때마다 빅밴드 사운드는 더 처절하게 조증 기조를 발하고, 격렬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는 이들이 무기력하게 실패할 때마다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영화 속 대기업 BASH의 다양한 징글(방송이나 광고, 벨소리에서 쓰이는 짧은 곡)을 배치해 공허한 낙관론과 가짜 희망주의를 조롱하며 음악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를 위해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핸드폰 벨소리와 기업 프레젠테이션 속 영상, 방송 시그널과 CF 음악들을 일일이 작업했다. 여기에 영웅적인 블록버스터 사운드(물론 이마저도 비웃기 위해 사용되었다!)나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까지 활용하며 음악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장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악기에서도 베이스, 드럼, 트럼펫 그리고 색소폰 트리오 등의 빅밴드나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는 물론, 밴조와 만돌린, 토이 피아노, 첼레스타, 파르피사 오르간, 차임벨, 힙합 비트를 포함한 각종 일렉트릭 효과까지 특이하고 독특한 종류를 혼합해 유희적이고 절충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인다. 일견 스코어만 듣고 있으면 짧은 큐들에, 워낙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응집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각각 장면마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또한 영화 내에선 니콜라스 브리텔이 공동으로 참여한 두 곡의 노래도 흘러나오는데, 극중 커플로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가 영화 중반 소행성과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Just Look Up”과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지구인들의 쿠키를 담은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Second Nature”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의 듀엣송으로 전통적인 사랑 노래처럼 시작하는 “Just Look Up”은 후반 2절에 이르러서 무지한 대중들의 계몽을 일깨우는 과격한 가사로 영화의 조롱 강도를 더한다. 아름다운 파워 발라드에 이질적인 가사가 던지는 격차야말로 이 노래의 백미로, 2021년 강력한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Second Nature”는 브리텔과 인디 밴드 본 이베어의 리더인 저스틴 버논이 함께 만든 곡으로, 혜성 충돌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먹먹해진 감성과 풍자로 쓰린 속을 다스리기에 좋은 몽환적인 포크송이다. 권력과 재력으로 새로운 세상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현시점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과 희망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응원가이자 송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장의 OST 중 하나였던 <돈 룩 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지명된 니콜라스 브리텔은 아담 맥케이와 함께 HBO에서 4시즌까지 방영된 드라마 <섹세션>과 디즈니 플러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 안도르 >를 통해 안방 데뷔에도 성공했으며, 24년 배리 젠킨스와 새롭게 도전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화 속편이자 프리퀄인 <무파사: 더 라이언 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Track List 1. "Just Look Up" by Ariana Grande & Kid Cudi 2. Discovery 3. Ephemeris 4. On Hold 5. The Call 6. C-5 Galaxy 7. Don't Look Up (Main Title Theme) 8. BASH Corporate Ident ("Liif") 9. Hyperobject Approaches 10. My Boyfriend Broke Up With Me 11. The Arrest 12. It's A Strange Glorious World 13. The Launch 14. The BASH Presentation 15. Kate Goes Home 16. FEMA-BASH Commercial 17. Arrival At The Hangar 18. There Is A Comet 19. The Comet Appears 20. The Prayer For Stuff 21. The BASH Launch 22. Twenty-Four Drones Is Enough 23. It All Comes Down To This 24. Thanksgiving (Overture To Logic And Knowledge) 25. The End? 26. Memento Mori 27. Don't Look Up (End Credits Suite) 28. Logic Waltz In B Major (Bonus Track) 29. Don't Look Up (Main Title Suite; Bonus Track) 30. Ode To Science (Bonus Track) 31. "Second Nature" by Bon Iver
한국영상자료원에서 3년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와 그 중 한 작품에 관해 쓰는 ‘사사로운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지난 한 1년 간 웨인 왕 감독의 <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 >이라는 영화에 어쩌다 익세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괜히 자기 영화 홍보하는 것 같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올해 나에게 이보다 더 사사로운 영화는 없다. 솔직히 ‘홍보라고 해 봤자’라는 생각도 든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한 후로 각처의 영화제 초청과 언론의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각처의 수입사와 배급사에서는 지금까지 고사하는 상황이니 뭐…… 그래, 그냥 주제에 맞게 ‘사사롭게’ 쓰자. 지금 다른 영화 얘기할 머리 상태도 안 된다는 것도 인정하자. 거의 1년 간 내가 사는 서울과 감독님이 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차 17시간을 두고 일하다 보니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면역성은 물론이요) 뇌세포도 많이 상한 것 같다. 한창 후반작업 중일 때는 거의 잠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 관타나모 같은 데서 나 보고 테러리스트라고 고백을 하라고 부추겼더라면 당연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해 없이 8시간만 쭉 자게 해주세요” 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자처했을 법한 정신적 누더기 상태가 됐다. (문제는 내 본업이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이자 한국 통신원이라는 것 – 그러잖아도 낮에는 아시아 일을, 저녁에는 런던 본사와 소통을, 아주 늦은 밤에는 새벽 잠이 없는 감독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깨셔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급한 불 끄고 해놓을 수 있는 연락은 일단 다 취해놓고 서울 시간 새벽 5~6시쯤 지쳐서 ‘그만!’ 하고 외치고 서너 시간 자던가 말던가 하고 다시 일과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볼까 한다. 웨인 왕 감독을 만난 건 작년 이맘때 ‘사사로운 영화’ 원고를 쓸 때 즈음, 도쿄 필름엑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같이 하면서였다. 아마 심사위원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영화와 커리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들을 깊이 공유하고 논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연출하신 예술영화도 좋고 할리웃 대중영화들도 다 뭔가 결이 다른 데가 있어 좋아요”하는 정도의 말쯤은 했었겠지만, 영화제 카타로그에 내 약력이 나온 걸 보고 한때 LJ 필름이 CJ 엔터테인먼트와 합병했을 때 글로벌 프로젝트팀 프로듀서였다는 것에 대해 감독님이 추가 질문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사를 같이 하다가 밥도 같이 먹고 리셉션도 같이 가고 하면서 그냥 저냥 얘기하다 “왜 프로듀싱을 계속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때 기획개발에 일조는 해도 과연 이 영화들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느냐, 필요로 한다 쳐도 내가 몇 년 동안 그 영화에 110%를 바쳐도 보람이 느껴질까 하는 두 가지 질문을 하다가 ‘스크린 인터내셔널’ 한국 통신원 자리가 열려서 원래 하고 싶기도 했던 기자 일을 택했다”고 했다. 그게 2005년이었는데, 그 사이 출판업계 상황이 한창 안 좋아진 것도 당연하지만, 나란 인간에게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분도 감지하셨을 것 같다. 요즘 영화인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웨인 왕 감독의 < 스모크 Smoke >’(1995)는 제 인생의 영화예요!”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할리웃 최초로 아시아계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 조이 럭 클럽 Joy Luck Club >(1993)이나 제니퍼 로페즈와 레이프 파인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 러브 인 맨하탄 Maid in Manhattan >(2002)으로 웨인 왕 감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 영화들 다 좋아한다. (특히 <러브 인 맨하탄>은 비슷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로맨틱 코미디로 따지자면 더 유명한 <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낫다 생각한다. 이 쟁점을 갖고 가볍게 한판 붙을 자신은 있다. 잠 좀 자고 뇌세포가 회복되고 나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왕 감독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천년의 기도 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그 작품과 짝으로 만들어진 <네브라스카의 공주 Princess of Nebraska>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이윈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두 편인데, 2007년 하와이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으로 나란히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걸 감독께 말씀 드렸었다. 그래서 그러셨나?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의 자전적인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있다고 귀띔해주셨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이창래 작가의 <생존자 The Surrendered>나 <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 <가족 Aloft>, <척하는 삶 A Gesture Life>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니고, 저명한 <더 뉴요커 The New Yorker> 잡지에 실렸던 단편 에세이 같은 것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때 동경 오기 전에 며칠 만에 찍고 가편집본을 만들고 있는데 한 번 보겠냐고 하셔서 당연히 영광이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얼마 후,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는 간단히 말씀 한 줄 적고 스크리너 링크가 든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색보정이나 사운드 등등 후반작업은 하나도 안된 가편집본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위암을 앓는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월 스트리트의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샌프란시스코 고향집으로 돌아온 아들 ‘창래’의 이야기였다. 창래는 자라면서 엄마가 늘 - 특히 미대륙을 횡단해 있는 엑서터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 해주던 갈비며 전, 잡채 등의 한국 전통 요리를 죽어가는 엄마에게 배우면서 마지막 섣달 그믐날 가족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위암 말기의 엄마는 씹어서 삼켜도 바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아들은 자기가 차린 음식을 엄마가 먹어주길 바라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창래 역에는 <트와이라잇 Twilight>에 개구장이 십대로 나왔던 저스틴 전 (Justin Chon)이 다 자라서 나왔고, 엄마 역에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 하고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등의 테레비젼 드라마 조연으로 출연했던 재키 정 (Jackie Chung)이 절제된 명품 연기를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죽어가는 부모를 간호 하면서 희생하기도 하고, 음식을 배우면서 소통을 하기도 하는, 그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동안 쌓여있었던 가족 간의 갈등도 회상으로 나오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아직은 젊은 엄마를 잃을 것을 당면한 자녀의 자기중심적인 잔인함도 깃들여 있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거나 이타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심사위원을 함께 하면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간단히 “잘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자세한 피드백을 솔직히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위의 얘기를 하면서 친척 중에 항상 명절 때 손수 모든 요리를 하시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던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옆에서 봤던 가족들의 모습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면한 본인이 어떨 지에 대한 생각보다 자기가 곧 직면할 상실감을 감당 못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 모습들, 당시엔 납득할 수 없어 긴 세월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는 걸 말씀드렸다. 그리고 영화 속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나서 살기만 한 한국인과는 좀 다른 행동과 반응을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때 미국에서 한 8년 자라면서 봤었던 이들이 스크린에 살아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예를 들어, 가정 방문한 교회 아줌마들의 성경찬송과 H-라인 스커트와 브로치 – 너무 전형적으로 익숙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는 익숙한 기독교적 위안에 전형적으로 착한 한국인 아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는 창래의 반응이 신선하고 좋았다. 캐스팅도 대사도 연기도 너무 훌륭해서 아빠로 나오는 존 리 (John Lie)가 처음 나와서 “창래야” 하는 순간부터 이 인물이 누군지 파악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나름 미국 사회에서 많은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권위가 있으나 집에서는 라면 하나 못 끓여먹는 한국 남자 어른. 이런 심각한 감정적인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 남자 어른. 한때 이문세 노래 하나로 불륜이 걸렸음에도 계속 학자적인 ‘썰’을 푸는 한국 남자 어른. (코미디가 아님에도 이 영화에서 제일 코믹한 인물이기도 하다.) 누나로 나오는 크리스티나 줄라이 김 (Christina July Kim)도 화면에 나오는 순간부터 완벽한 인물 재현을 한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꾸리다가 비행기 타고 날라와 엄마의 치료를 끊겠다는 결심을 반대하며 항상 자기 보다 총애를 받던 남동생에게 편들어 달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딸. 곧 비행기 타고 가부장제의 나라에 돌아가서 또 진급을 투쟁하듯이 찾아나서야 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 딱 아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났더니 감독님과 <커밍 홈 어게인>의 국제 영화제와 시장에서의 난점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와 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도 공유했다. 절제된 표면 밑에 깊은 감정들이 흐른다는 점이 강점이지만, 절제성 때문에 폭넓은 대중성을 갖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얘기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프로듀서 도날드 영의 돌아가신 할머니 댁이었던) 한 아파트 안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 작품을 ‘체임버 피스’라고 좋게 말할 수 있으나 ‘스펙타클’하지 않다고 흠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얘기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수입사에서 얘기 한 것처럼,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내용은 보통 사람들이 이런 데서 기대하는 한국적 멜로나 신파가 아니어서 마케팅하기 애매하다’는 평도 예상 했으나, 어쨌든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있는데 스크린에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좋았다는 것도 얘기했다.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신뢰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램을 공유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감독님은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본 촬영이 끝난 작품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그런 크레딧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직 기자 일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쏘시어트 프로듀서’나 ‘공동 프로듀서’ 또는 ‘컨설턴트’ 같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만한 크레딧을 차라리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렇게 합의하고 전화 끊은 후 이메일 몇 번 더 주고 받으면서 샌프란시스코 팀은 추가 씬 촬영과 후시녹음 등을 한 후 새로운 편집본을 보내왔다. 이번엔 간단히 "언짢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에 네 이름을 넣었다”는 한 줄이 들어간 이메일에 스크리너 링크가 왔다. 솔직히 좀 곤란한 건 사실이었으나 웨인 왕 감독 같은 거장이 분명 다른 프로듀서들과 논의 끝에 결정해서 크레딧에 넣었을 것을 알면서 거기에다 대고 뭐라 말하겠는가? "영광입니다. 크레딧에 부합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엮인 거다. 그 후로 후반 작업에 의견을 내는 일 외에 크게는 이문세 ‘옛사랑’ 노래 판권을 구하는 일, 국제 세일즈사를 구하는 일, 영화제 출품을 돕는 일 등을 맡게 됐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다간 편집장에게 양해를 받았다. 리뷰를 쓰고 에디팅 하는 동료들은 기사가 완성 되고 나서야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리뷰에 대한 걱정은 안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 동료는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가죽을 벗겨 회를 치는데’ 하는 노파심이 살짝 든 건 사실이다. 나중에 영화를 너무 잘 봐주고 좋은 평 써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네가 관여한 작품인지 몰랐다’며 진정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할 때 여러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평론가 중의 한 명이 기자 시사 나오면서 트위터에 ‘눈물을 양동이로 들고 나오느라 동료 기자들에게 사과해야만 했다’는 식의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남자들이 엄청 울었다는 반응이 기억난다. 상영 전에 왕 감독이 “내가 할리웃 영화 만들 때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편집의 속도를 점점 급하게 가자고 다그쳤었다. 잠시라도 관객이 숨을 들이쉬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못하게 강요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숨쉬는데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겪게 됐다. 의사한테 가보니 요가를 해보라고, 숨쉬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고, 각자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등장 인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 소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호흡하고 생각할 겨를을 많이 주는 영화다. 아시아 프리미어는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하게 됐다. 그런데 마지막 후반작업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으시고 토론토에서 두 번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한 끝에 집에 돌아가신 왕 감독은 발병해 결국 부산에 못 오셨다. 솔직히 프로모션 측면에서 말하자면 재앙 같았다. 부산 영화제 24년 역사에 갈라 상영 때 감독이 안 나타난 일은 우리 영화가 처음이었다. 항상 젊게 사시는 왕 감독이 1949년생이라는 걸 이때 상기했다. 그래도 명품 연기를 한 재키 정이 임신중임에도 보석 같이 나타나서 부산 상영 때 ‘가족 영화인데 남편과 아들과 곧 태어날 아들과 함께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상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관객들을 사로 잡기도 했다. 남편은 <커밍 홈 어게인>의 중요한 조연으로도 나온 루이 오자와 장치엔 (Louis Ozawa Changchien)이다. 곧 아마존 프라임에 나올 <헌터스 Hunters>’이라는 아카데미상 후보자였던 조던 필 (Jordan Peele)이 제작하고 알 파치노 (Al Pacino)가 나오기도 하는 나치 추적 시리즈에서 볼 수 있게 될 배우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고 나름 프로덕션과 영화제 입장에서도 큰 일이었기에 뱃속 아기가 몇 주 빨리 나오면서 부산에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됐다는 점을 안 쓸 수 없다. ‘부산 국제 영화제 1호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산에서의 많은 일은 프로듀서 스쿨에서 배운 적이 없는,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하겠다.) 그리고 유럽 프리미어는 11월 말, 에스토니아의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했다. 여기 다녀오느라 이 원고가 좀 늦어진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혼자 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등등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4시간 반, 비행기로 50분 가량 떨어진) 같은 발트해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는데 “만세! 빨리 탈린으로 돌아와”라며 우리 영화 리챠드 웡 (Richard Wong) 촬영감독이 최고 촬영감독상을 타게 됐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다. 빨리 미국에 있는 리챠드한테 비디오 인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얼른 탈린으로 돌아와 대리 수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촬영은 현재 시점의 장면들은 다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와이드 샷으로 찍었고, 회상 장면은 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가까이 다가가 찍었다. 색깔도 회상 장면들은 조금 더 따뜻하게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첫 테이크였던 것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은 <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3) 마이크 뉴웰 (Mike Newell)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평에 “우아한 미니멀리즘으로 스토리의 긴장과 드라마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좁은 공간을 통해 프레이밍하여 인물들의 절망을 신중한 눈으로 옮기고,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을 높이 사 시상한다고 했다.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한다”고들 한다. 시장성이 어떻던 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영화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내 생각이다.
번역 제목에 왜 오바마를 넣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흑인과 백인의 설전 도중에 오바마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소수집단 우대정책이 있었기에 오바마가 하버드를 갈 수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지금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고등교육 받은 백인 남자라고, 아이비리그의 윈체스터 대학을 다니는 학장 아들 커트 플레처가 말한다. 어디선가 듣던 말 같다. 여성이나 특정 지역이나 소수자들이 지나치게 이득을 취해서 조용히 있는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다. 진짜 희생자는 우리다, 라고 떠드는 집단들은 어디에나 있다. 오바마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로 보이고,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의 실제 내용은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이다. 2015년인 지금도 미국에 인종차별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1960년대 말에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흑인혁명조직인 블랙 팬더 등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지만 세상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인용되는 스파이크 리의 < 똑바로 살아라 >(1989)가 나온 지 20년이 훨씬 넘었어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은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 똑바로 살아라 >처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기는 했다. 더 이상 대중은 정치적 구호에 휘둘리지 않는다. 같은 흑인이라도 그들의 사회적 처지는 천차만별이다. 성과 인종의 유리 천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별적으로는 상층에 올라갈 수 있다. 이미 대통령이 흑인이다. 반만 흑인이고, 진보적인 인사이더이긴 하지만. 그런 점까지 생각해 보면 <캠퍼스 오바마 전쟁>이란 제목도 역설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린다. 흑인이 대통령이 될 정도로 미국은 인종차별이 사라진 나라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인종 간의 갈등과 전쟁은 지금 이곳,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들이 있어야 할 아이비리그의 대학에서 첨예하고도 유치하게 진행되고 있다. 흑인인 저스틴 시미엔 감독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분명하다. 다만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일방적으로 누가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흑인이 등장한다.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는 흑인 여학생인 샘 화이트는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디어 화이트 피플 Dear White People’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흑인학생연합 소속인 샘은 미국 사회의 흑백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치밀하게 전파한다. 백인들에게 전하는, 인종차별 이야기. 샘의 동료인 레지는 흑인학생연합을 이끄는 과격파다. 반면 흑인 학생들만 사는 기숙사인 암스트롱 파커 하우스의 학생 대표 트로이 페어뱅크스는 학생처장의 아들이고, 백인 학장의 딸과 연애를 하고 있다. 흑인 배신자라고 불린다. 코코 코너스는 베셋 하우스에서 백인과 연애하고, 리얼리티쇼를 통해 스타가 되기를 원한다. 코코는 ‘디어 화이트 피플’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동영상을 올려 인기를 얻는다. 그들의 사이에 있는 아웃사이더는 철학과 학생인 라이오넬 히긴스다. 동성애자이기에 고등학교 때는 흑인 남자애들의 괴롭힘을 더 심하게 당했고, 지금은 어디에도 끼이지 못한 채 기사를 쓴다. 마침 학교 신문인 버글에서 샘 화이트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샘과 흑인학생연합은 시위를 준비한다. 학장이 시도하고 있는, 기숙사를 무작위 배정하려는 방침에 반대하는 것이다. 흑인들만 있는 암스트롱 파커 하우스에서 20여 년간 쌓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무수려 한다는 것이다. 갈등이 격화되자 샘과 흑인 학생들은 암스트롱 파커 하우스의 식당을 이용하는 백인과 외부인을 모조리 쫓아내 버린다. 식당에서 쫓겨난 커트 플레처는 매년 주최하는 할로윈 파티를 ‘흑인 코스프레’로 주제를 잡는다. 지금 학내의 최고 ‘또라이 집단’은 흑인들이라면서 공격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코코는 방송 매체인 파스티쉬에 들어가 인기를 얻기 위해, 파티를 블로그로 생중계하는 역할을 자원한다. 학생 대표 트로이도 주류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파티의 홍보문구를 작성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정치도, 사회도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 입장의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샘도, 레지도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개인의 소소한 이익은 거대한 혐오 혹은 분노와 맞닥뜨리는 순간 힘을 잃고 방황한다. 흑인 코스프레 파티는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2010년 이후 미국 대학들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이다. 백인들이 검은 분장에 힙합 차림을 하고 랩을 부르면서 프라이드 치킨과 퍼플 드링크를 마셔대는 파티. 현실의 대학생들이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캠퍼스 오바마 전쟁>에서 백인 남학생들은, 흑인이 소수자인 것을 이용해서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차별당한다고, 희생자라고 떠든다고 생각한다. 흑인 코스프레 파티를 주최한 백인이 말한다. 이런 표현도 마음대로 못한다면 그게 바로 언론탄압 아닙니까? 나도 희생자라고요. 하지만 엄연히 차별은 존재한다. 학생처장은 아들인 트로이에게 말한다. 학장과 나는 1년 차이이고, 나는 최우등 졸업생이고 그는 보통 학생이었다고.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백인인 그는 학장이고, 나는 그의 아래에 있다고. 네가 백인 뒤를 따라다니면 그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마침 커트도 트로이에게 말한다. 너는 장기판의 졸일 뿐이라고. 커트의 아버지인 학장은 지금 미국에 인종차별은 존재하지 않고 기껏해야 멕시칸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인식은 그렇다. 아니 현실을 지우고, 자신들의 이익에 필요한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내고 지배한다.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격파 레지의 방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대항문화를 만들어 주류를 일깨우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이미 주류는 너무나 세분화되었고 흩어져 있다. 필요한 것은 흑인 전체의 고함이 아니라 개인의 목소리다. 샘이 수업시간에 만든 무성영화는 정치적 선동으로 가득하지만 날것의 주장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샘이 카메라를 들고 흑인 코스프레 파티를 찍으면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자 관객이 공감한다. 흑인과 백인으로 태어났기에 한쪽의 입장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이 있고, 차별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흑인 코스프레 파티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주장은 명징하지만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한다. 저스틴 시미엔은 다큐멘터리 아니 리얼리티 쇼 스타일로 대학 내의 자잘한 갈등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존재’에 대한 차별이 명백하게 있다. 나와는 다른, 우리와는 다른 어떤 존재들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악인들이 있다. 개인은 무력하지만 결국은 행동을 해야만 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마틴 루터 킹과 < 똑바로 살아라 >와 <캠퍼스 오바마 전쟁>이 말하는 것은 같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