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 감독
- 강서곤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조수열, 손기성, 박건주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서울 한복판의 예술영화 전용관 씨네큐브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광화문역과 서대문역 사이 흥국생명 빌딩 지하 2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머링 맨’이라는 랜드마크적인 큰 조각상이 있는 건물이다. 광화문역에서 도보로 6분, 서대문역에서 도보로 9분이며 영화를 관람하면 3시간까지 무료로 주차가 지원된다. 개관 당시부터 영화인들은 물론 관객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이러한 씨네큐브의 접근성이다. 자동차로 오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서울 내에서 접근하기 쉬울뿐더러 비서울권 관객들도 찾아오기 쉽다. 출입 경로는 세 가지인데, 하나는 흥국생명 빌딩 1층 로비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경로로 ‘해머링 맨’ 전시물 바로 뒤 돌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돌계단 아래 있는 전시물들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번 더 내려가면 영화관이 나온다. 영화관 안에는 매점이 없으며 상영관 내에는 생수 외의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영화관 로비에 들어서면 포스터와 매표소, 쾌적한 휴게 공간이 눈에 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일행들과 한참 동안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씨네큐브 로비 씨네큐브는 2000년 12월 2일 개관했다. 태광그룹이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했는데, 운영은 예술영화 배급사인 백두대간이 대행했다. 2009년부터는 태광그룹의 계열사인 티캐스트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현재 티캐스트 안에 씨네큐브 팀이 별도로 있으며 팀원은 총 9명이다. (총괄 팀장, 팀원인 사원 두 명, 자사 수입 영화 근무자 두 명, 영사실 한 명, 현장 매니저 세 명) 개관 당시 씨네큐브는 영화팬들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갖춘 고급 영화를 접하는 통로가 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목표는 현재까지도 동일하다. 씨네큐브는 293석(1관), 72석(2관)의 좌석을 갖춘 2개의 상영관을 가지고 있다. 1관의 293석 중에서 3석은 휠체어석이며 2관은 1개의 휠체어석을 보유하고 있다. 연중 무휴로 운영되는 영화관 씨네큐브는 출범부터 ‘영화 상영의 최고급화’를 지향했다. 관람 좌석을 재배치하느라 개관이 지연되었다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일반 영화관의 앞뒤 의자 열 간격이 95cm였는데, 기존에 설치했던 것을 모두 폐기하고 좌석 열 간격을 110cm로 넓혀 새로 설치하는 바람에 개관이 2개월여 지연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안락한 영화관이라는 칭송과 함께 예술영화 애호가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충성도 높은 관객들을 만들어냈다. 씨네큐브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자립 경영을 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된 데에는 교통의 편의성, 상영작의 높은 수준과 함께 상영관에 대한 높은 만족도도 한몫 한 것으로 판단된다. 씨네큐브 1관 내부 관객들을 위해 단 하루의 휴관도 하지 않는 것을 운영방침으로 했으나, 2023년 11월 매표소를 리뉴얼하면서 5일간 임시 휴관을 가졌다. 2021년에는 임시 휴관 없는 리뉴얼과 재개관이 있었는데, 이때 개관 20주년을 맞아 전 좌석 의자 교체와 좌석 높이 조정으로 스크린 시야를 개선했으며, 로비 내 휴게 공간도 개편해 편의시설을 증대했다. 특히 가죽 소재의 좌석 시트로 교체해 위생적이고 청결한 관리가 더욱 용이해졌으며, 좌석 쿠션을 보강해 쾌적하고 편안한 상영관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23년 내내 업무를 맡아오고 있는 오랜 경력의 영사기사와 필름 영사기를 보유하고 있어 필름 상영이 가능하다. 필름 상영에 있어서 장비와 기술자가 모두 있는 극장인 것이다. 교통의 편의성과 시설의 쾌적함 등으로 인해 영화제들도 씨네큐브에서 많이 열리는데, 대표적으로 2022년까지 진행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를 들 수 있다. 자체적인 기획전으로는 씨네큐브 프리미엄 페스티벌이 있는데, 2009년부터 시작한 정기 기획전으로, 씨네큐브 개관 기념일인 12월 2일이 껴 있는 주를 기준으로 해서 전후 7일에서 10일 정도 진행한다. 페스티벌 기간 이후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본 기획전에서 많이 상영되기에 상영작들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이다. 팬데믹 이후 예술영화 전용관의 활로 찾기 씨네큐브의 전성기는 2011년부터 2013년 정도로 본다. 당시 예술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 타 예술영화관에 비해 좋은 입지 조건과 시설로 인해 상대적으로 많은 관객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2012년은 씨네큐브 역대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한 해로 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시기 <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 아무르 >(미하엘 하네케, 2012), < 우리도 사랑일까 >(사라 폴리, 2011),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등 예술영화계의 히트작들이 다수 개봉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개관 이후 최고로 힘든 시기가 찾아왔는데, 이 기간 동안 극장의 상영 시간에 제약이 생기고 좌석 수에도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22년에는 11만 명 정도의 관객이 씨네큐브를 찾았고, 현재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씨네큐브 로비의 키오스크, 전단지 및 굿즈 전시대 씨네큐브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예술영화 전용관의 기준으로 정한 전체 상영작의 60%를 훨씬 넘어서는 90%를 예술영화로 채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증하는 서울 내 가장 큰 규모의 예술영화 상영관이기도 하다. 주요 관객층으로는 예술영화를 오래 관람해 온 중장년층 여성들이 많은 편이다. 티캐스트가 운영을 담당한 2010년도부터 멤버십 회원 제도가 운영되었는데, 2023년 현재 활성화된 회원은 6만 명 정도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자체적인 매거진 제작과 뉴스레터 발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추가로 카카오톡 채널의 메시지와 SNS를 통해 오래된 관객들은 물론 신규 관객들과의 소통도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 씨네큐브의 지향점은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좋은 영화들을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경우에 따라 10개가 넘는 상영관을 가지고 많은 회차를 상영하고 있지만, 영화의 다양성 측면으로 봤을 때는 한두 작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관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시간대에 볼 수 있는 선택지가 좁은 편인 것이다. 이에 씨네큐브는 멀티플렉스에는 없는 상영작들을 볼 수 있는 공간, 낯선 타인들과 함께 영화를 몰입해서 보는 경험을 주는 공간이라는 차별성을 무기로 예술영화 전용관의 활로를 찾고자 한다. 씨네큐브 1관 영사실 작업공간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1가 226 흥국생명 BD 지하 2층 2. 설립일 : 2000년 12월 2일 3. 대표자 : 엄재용 4. 규모 :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내 위치 (건축면적 : 2,133.03㎡, 연면적 72,054.16㎡) 5. 극장 구성 : 1관 293석(휠체어석 3석), 2관 72석(휠체어석 1석) 6. 운영시간 : 09:00–23:00 (영화 상영 시간에 따라 다름) 7. 입장료 : 성인 평일 10,000원, 주말 11,000원, 학생 평일 8,000원, 주말 9,000원 (우대 및 조조할인 있음) 8. 조직 구성 : ㈜티캐스트 내 씨네큐브팀 및 현장 직원으로 구성 9. 구성원 : 씨네큐브 팀장, 과장, 사원, 영사실 및 현장 매니저 4인 글/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취재 일자: 2023년 11월 24일 올해도 한국영화현장기록사업은 새로운 영화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역량을 갈고닦으면서, 그리고 개성과 신념을 꾸준히 지켜나가면서 영화 기획과 제작, 상영에 기여하고 있는 장소들을 찾아 내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한국)영화를 주제로, 어떤 현장에서 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많이 기대해주세요!
영화 <낙동강>과 교향시 <낙동강의 시(詩)> <낙동강의 시(詩)>는 윤이상의 미발표곡이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17년에 자필 악보가 발견되어 2018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공연 프로그램으로 추진되었고, 2018년 4월 5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한스-크리스티안 오일러가 지휘한 하노버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세계초연했다. 윤이상이 1956년 11월 30일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윤이상은 한국에서 <낙동강의 시>를 작곡하다가 1악장과 2악장을 파리에서 완성했고 그곳에서 3악장을 써서 11월 29일 저녁에 전곡을 완성했다[편지상의 제목은 '낙동강시'이며 자필악보상의 제목은 'Poems of the Nak-tong River'이다]. 윤이상은 같은 해 4월 <현악사중주 1번>으로 서울시문화상을 받고 6월에 유학길에 올랐으며, 처음에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유학하다가 서베를린 국립음대(현 베를린 예술대학)로 옮겨서 그곳에서 학업을 마쳤다. 제목과 작곡 시기 등을 고려하면,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와 영화 < 낙동강 >의 관련성을 의심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낙동강의 시>가 초연되던 2018년 당시에는 영화 필름이 유실된 상태였으며, 인터넷 검색으로 접근 가능했던 주변 정보에는 영화 음악을 담당한 사람이 김동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낙동강의 시> 세계초연을 앞두고 쓴 프로그램 노트에서, 글쓴이는 영화 <낙동강>과 교향시 <낙동강의 시> 사이에 간접적인 관련성 정도가 의심된다고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혹을 남겼다. "1악장은 웅장한 팡파르로 시작하고, 핵심이 되는 4도 상행 음형이 악곡 전체의 씨앗이 됨으로써 작품을 지탱하는 형식적 일관성을 확보한다. 이 팡파르와 그에 이어지는 선율 사이의 급격한 텍스처 대비는 마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에서 실제 영화로 이어지는 장면전환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이 과연 영화 <낙동강>과 무관한지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유실된 영화 필름을 발굴함으로써, 이제 기존의 잘못된 정보를 다음과 같이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 오해 ①: 영화 <낙동강>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김동진이다. ☞ 진실: 영화 크레딧에 김동진 이름이 없으며 '음악·작곡: 윤이상'이라고 되어 있다. • 오해 ②: 영화 <낙동강>에 나오는 윤이상 작곡 <낙동강>은 오늘날 알려진 <낙동강>과 다른 곡이다. ☞ 진실: 영화 <낙동강>에는 오늘날 알려진 곡과 동일한 윤이상의 <낙동강>이 사용되었다. • 오해 ③: 윤이상이 <낙동강> 제목으로 쓴 노래는 두 곡이며, 윤이상의 또다른 <낙동강>은 '경남도민의 노래'처럼 불렸다. ☞ 진실: '경남도민의 노래'처럼 불렸던 노래는 윤이상 곡이 아닌 박태현 곡이다. • 오해 ④: 영화 <낙동강>과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 사이에는 간접적인 관련성 정도가 의심된다. ☞ 진실: 영화 <낙동강>에 사용된 음악은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확인된다. 영화의 도입부와 교향시의 도입부 영화 <낙동강>은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하며, 그 주제선율은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의 1악장 도입부 주제와 사실상 동일하다. 4도 상행 음정을 핵심으로 하는 팡파르 주제는 영화 곳곳에서 변형·반복되며 국면 전환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팡파르와 함께 화면에 나오는 짧은 시는 이은상 시 <낙동강>의 3연 구조와 호응한다. (윤이상 <낙동강의 시> 1악장 팡파르 주제) 낙동강 / 흐르고 흘러서 / 쉬임 없는 낙동강 겨레의 전통을! / 겨레의 승리를! / 겨레의 희망을! 한줄기 물결에 / 담아싣고 / 오늘도 / 낙독강은[sic] 흘러간다 팡파르에 이어서 윤이상 작곡 <낙동강>이 합창으로 나온다. 이때 화면으로는 무용수의 춤, 강변의 풍경 등과 더불어 '구상 양성봉, 원작 이은상, 음악·작곡 윤이상' 등의 크레딧이 나온다. 이은상 시 <낙동강>은 ① 전통의 낙동강 ② 승리의 낙동강 ③ 희망의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3연 구조로 되어 있고, 영화 <낙동강>의 플롯 구조는 이은상 원작시와 호응한다. 윤이상의 <낙동강>은 이은상 시 <낙동강>을 가사로 하며, 3절까지 이어지는 노래가 영화 도입부에 모두 나옴으로써 이은상 시 전체를 노래하는 동시에 영화 전체 내용을 개괄한다. 이것은 오페라에서 서곡(overture)이 오페라 전체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것과 비슷하다. (윤이상 <낙동강의 시> 2악장 오보에 주제) 영화 <낙동강> 제1절: 전통의 낙동강 보아라 신라 가야 빛나는 역사 흐르듯 담겨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마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줄을 오 낙동강 오 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윤이상 곡 <낙동강>이 3절까지 끝나면, 음산한 현악 트레몰로 음형과 더불어 구슬픈 오보에 독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때 오보에 주제와 현악 음형은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 2악장 주제와 사실상 동일하다. 강변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과 더불어 '낙동학원' 현판이 보인다. 남녀 주연인 박일령(이택균 분)과 백옥남(최지애 분)이 등장하고, 옥남이 낙동학원 홍보물로 짐작되는 전단지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때 어린이들이 배를 타고 노래하는 모습을 일남이 지켜보는 장면이 지나가듯 나온다. 노래는 이은상 시 <낙동강>을 가사로 하며, 1절 전체와 2절 일부가 영화에 나온다. 작곡자는 알 수 없다. 박일령이 낙동학원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낙동강의 문명사적·문화사적 의미에 관해 강의한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변하며, 관객은 마을사람의 일부가 되어 수업을 듣게 된다. 이때 <영산회상(靈山會相)>을 비롯한 한국 전통음악이 배경으로 나온다. 영화 <낙동강> 제2절: 승리의 낙동강 산 돌아 들을 누벼 일천 삼백리 구비 구비 여흘 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 낙동강 오 낙동강 소리치며 흐르는 승리의 낙동강 아이들이 전쟁놀이를 하고, 실제 전쟁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일령과 옥남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발언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식량과 귀중품을 땅에 묻어두고 피난을 떠난다. 피난 장면과 함께 비통한 합창곡이 흐른다. 이 곡의 음 소재와 영화의 다른 곳에서 사용된 관현악 음형이 유사성을 띄는 것으로 보아 이 합창곡은 윤이상이 영화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짐작된다. (가사는 '낙동강'으로 시작하는데, 글쓴이는 그 이상의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령이 옥남에게 입대 결심을 밝히는 듯한 장면과 더불어 이은상 시 <꽃다발>이 자막으로 나온다. "조국을 구하려고 뛰쳐나선 그대앞에 / 황금을 바치리가 진주를 바치리가 / 값주고 못살 꽃다발 한아람을 바칩니다." 일령이 배를 타고 마을을 떠나고, 마을 사람이 태극기를 흔들며 일령을 환송한다. 옥남은 높은 곳에 올라가 마지막까지 일령이 탄 배를 지켜본다. 일령의 입대를 기점으로 전황은 반전된다. 영화 <낙동강> 제3절: 희망의 낙동강 두 언덕 고을 고을 정든 내 고장 불타고 다 깨어진 쓸쓸한 폐허 돋아 오는 아침 햇빛 가슴에 안고 나가라 네 힘으로 다시 세우라 오 낙동강 오 낙동강 늠실늠실 흐르는 희망의 낙동강 군복을 입은 일령이 아내 옥남에게 돌아온다. 옥남이 묘비를 세운 '장송의 무덤' 앞에서 일령이 묵념한다. 마을 곳곳에, 나룻배에, 아이들의 손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연다. 아이들이 박태현 작곡 <낙동강> 중 1절을 부른다. 사람들이 마을을 재건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고, 일령과 옥남이 함께 강물을 바라본다. 윤이상 작곡 <낙동강> 중 3절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가 끝난다. 윤이상의 '영화 주제가' <낙동강>과 교향시 <낙동강의 시> 영화 <낙동강>은 1951년에 제작이 시작되어 1952년에 발표되었고, 음악학자 김용환에 따르면 윤이상이 <낙동강> 노래를 작곡한 것 또한 1952년이다. 또 영화 개봉 당시의 기억에 관한 진의장 전 통영시장의 증언에 따르면, 윤이상이 작곡한 <낙동강>이 영화에 삽입된 사실은 그때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진의장은 박태현이 작곡한 <낙동강>을 윤이상 곡으로 오해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윤이상의 노래가 영화 개봉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윤이상은 처음부터 영화에 삽입할 목적으로 <낙동강>을 작곡했을 가능성이 있다. (좌측 박태현의 <낙동강>, 우측 윤이상의 <낙동강>)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추측하자면, 처음에는 김동진이 영화음악을 맡기로 했다가 영화 제작 도중에 윤이상이 맡는 것으로 바뀌었을 수 있다[김동진은 양명문 시에 곡을 붙인 <낙동강>을 1951년에 남긴 바 있으나 영화 <낙동강>과는 관련이 없다]. 또 영화음악에 관한 전권이 윤이상에게 있었을 것 같지는 않으며, 영화 곳곳에 삽입된 음악의 완성도가 고르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윤이상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이후 그 일부를 따와서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를 별도로 작곡하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낙동강의 시> 자필악보의 목차는 1악장 프롤로그, 2악장 黃昏(황혼)이 물들 때, 3악장 嘉俳節(가배절; 한가위), 4악장 갈대밭, 5악장 豐年歌(풍년가), 6악장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완성된 작품은 3악장 짜임새로 1악장 프롤로그, 2악장 洛東江(낙동강)의 저녁, 3악장 舞曲(춤곡)으로 되어 있다. <낙동강의 시>는 1·2악장과 3악장 사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3악장은 윤이상이 유학을 떠난 이후에 작곡한 것이며, 어쩌면 윤이상이 6악장 구성을 3악장 구성으로 바꾼 것 또한 이와 관련 있을 수 있다. 윤이상이 이은상 시의 3연 구조 또는 영화의 세도막 구조를 의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악곡의 음악적 서사 구조는 영화 또는 이은상 시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윤이상은 파리 시절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때때로 배움에 대한 조급함을 드러냈으며, <낙동강의 시>에 관해서는 "너무 통속성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자신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음악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여기서 '통속성'이란 영어 'conventional'에 대응하는 말로 유럽의 최신 아방가르드 음악이 아니라 전통적인 기능화성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윤이상은 오늘날 서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현대음악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낙동강의 시>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이 서구적 의미에서 전통적인(conventional) 음악 어법으로 작곡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곡가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윤이상은 3악장에 나오는 민요풍 선율을 훗날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에 사용한 바 있다. 백기완의 시를 사용한 해당 부분의 가사는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등이다. 참고문헌 김용환, "윤이상: 그의 삶과 음악." 『음악과 민족』 (부산: 민족음악학회, 1996), 제11권 0호, pp.11-48. 김원철, "윤이상: 낙동강의 시(詩)." 『Returning Home (2018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 (통영: 통영국제음악재단, 2018), p.122. 노동은, "새로 발굴한 윤이상의 50 년대 글과 노래." 『민족음악의 이해』 (부산: 민족음악학회, 1994), 제3권 0호, pp.325-341. 박태현, "낙동강." 『한국애창가곡 88』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3), pp.90-91. 윤이상, Poems of the Nak-tong River. 미출판 자필 악보. 윤이상,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 1956년 11월 30일. 이용민, "영화 <낙동강> 개봉 당시의 기억에 관한 진의장 전 통영시장 인터뷰." 2018년 2월 경. 이용민, "박태현 작곡 <낙동강>에 관한 진의장 전 통영시장 인터뷰: 영화에 삽입된 음원을 듣고 한때 '경남 도민의 노래'처럼 불렸던 노래가 맞다고 증언." 2022년 8월 4일.
한 평생 타인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삶이란 어떤 걸까? 그리고 나의 삶을 규정하는 무수한 명명과 논평들을 뚫고 나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어떤 물질적 조건과 태도가 필요할까? 다큐멘터리 < 나와 부엉이 >(박경태, 2003), < 아메리칸 앨리 >(김동령, 2008), < 거미의 땅 >(김동령·박경태, 2012)을 통해 동두천 기지촌 여성의 삶의 서사화와 그 재현 미학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김동령·박경태 감독의 최신작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2019)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진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주인공이자 영화 속 판타지 서사의 공동 창작자이기도 한 박인순은 소위 ‘양공주’로 칭해져온 ‘미군 위안부’였다. ‘미군 위안부’의 생애는 전쟁과 탈식민,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과 지역 같은 한국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교차하고, 저간의 소문과 험담, 의회와 법정의 증언록, 뉴스보도, 학술저작, 소설·연극·영화 같은 예술매체 등에서 명명되고 의미지어지고 해석되어 왔다. 그러는 동안 정작 당사자들은 각기 다른 서술자들의 관점과 입맛에 맞게 자신들의 삶이 맞춰 깎여나가고 조형되는 것을 목도해왔다. 이렇게 풀려나온 다수의 이야기들은 ‘미군 위안부’에 대한 정형화된 형상을 반복해온 측면이 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그러한 이야기들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박인순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장르와 형식으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갈 방도를 찾도록 돕는다. 한평생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휘둘려온 박인순은 적어도 죽음만은 자신의 의지와 방식대로 선택하고자 한다. 사실 ‘미군 위안부’에게 있어 죽음조차도, 특히 비극적인 사건이 된 죽음들은 다른 쟁점을 선동하는 도구가 되거나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박인순은 적어도 죽음의 방식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죽음의 메신저들과 대면한다. 영화는 박인순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화면 사이즈와 내레이터를 바꿔가며 그녀에 대해 이야기 해온 화자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그 화자들에는 김동령과 박경태 감독도 포함된다. 두 감독은 기지촌 여성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두레방’에서 미술치료에 참가한 모습부터(<나와 부엉이>)부터 매일같이 황량한 산등성이와 동네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미국에 남겨두고 온 딸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낭독하는 풍경까지(<거미의 땅>) 박인순과 20년 가까이 함께 영화작업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자신들의 기존 작업 혹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메타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오프닝에서 박경태 감독은 스스로 다큐멘터리 감독을 연기하며 국가배상소송을 위해 실태조사를 하는 교수(변중희)와 영상촬영을 담당한 신진 미술작가를 박인순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데려가고 엔딩에서는 산을 올라가는 박인순을 뒤따르는 카메라 뒤의 목소리로 두 감독이 등장하며 박인순이 서사를 함께 만들긴 했지만 이 영화 또한 두 감독의 프레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도입부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박감독은 교수와 미술작가와 함께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며 미군기지가 이전된 이후 수년 동안 마을이 재개발되면서 일어난 변화와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박인순과 그녀의 동료들, 이름도 적혀있지 않은 여자들의 무연고 비석, 산과 들판 등-에 대해 설명한다. ‘뺏벌’이라 불리는 그곳은 ‘배밭’에서 기원했다는 사료가 있지만 또한 여자들 사이에선 “한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서도 나가지 못하는 곳”이란 의미로 통용되기도 했다. 셋은 마을 어귀에서 오래된 당산나무를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뺏벌을 지켜봐 온 당산나무는 재개발에 뽑혀나가거나 굿이 금지되어 당산나무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해있다. 당산나무는 액자 속의 액자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입구의 표지가 된다. 변교수는 법정증거로 제출할 ‘미군 위안부’의 피해기록을 박인순에게서 얻어내려 하지만 박인순의 구술은 일관성이 없고 시간대가 잘 들어맞지 않으며 이름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한 기록은 제도권에서 인정받기 힘들다. 교수는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제도권 내에서 일하며 사용가능한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가르고 걸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시를 준비하는 젊은 미술작가는 어떨까? 박인순의 이야기에 매료된 그는 이후 홀로 뺏벌을 방문한다. 그는 언어대신 사람들이 버리고 간 현장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예술적 질료로 사용하려 한다. 미술작가는 폐허가 된 클럽의 사진을 찍고 버려진 컵, 미러볼, 낙서된 전단지 등의 소품을 전시에 사용할 요량으로 챙긴다. 그는 남아있는 것들에 매혹되지만 정작 그 공간과 소품들의 주인이기도 한 꽃분이의 유령이 나타나자 공포에 질려 도망친다. 미술작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하기보다는 이미지와 소품들을 맥락에서 떼어내 자신의 전시공간에 맞춰 놓으려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실태조사를 하는 교수, 기지촌 여성에 관심이 있는 미술작가는 모두 좋은 의도를 갖고 있지만, 자기들만의 틀에 박인순을 맞추려 한다. 여러 화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드는 것에 공조해주던 박인순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자 마침내 직접 스토리텔러로 나서게 된다. 이승에서 배회하는 유령들을 소멸시키고자 저승사자들이 나타나자 박인순도 그들도 함께 동네를 배회한다. 박인순은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려져 자기의 이름과 나이도 모른 채 포주인 수양엄마에게 팔려왔다. 클럽에서 일하려면 ‘패스’라 불렸던 보건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포주는 동네 죽은 여자의 신분을 사서 박인순에게 줬다. 그녀를 가리키는 이름과 나이 자체가 누군가의 이야기 짓기로 구성된 것이다. 화자의 존재 자체가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지표가 된다. 꽃분이를 비롯한 젊은 여자 유령들은 박인순의 젊은 시절인 동시에 죽은 그녀의 동료들이다. < E.T >, <드라큘라>, < 엑소시스트 >를 좋아한 박인순의 취향에 맞게 장르는 호러와 코믹 판타지를 오고간다. 박인순은 자기 죽음의 서사를 원하는 대로 써내려가고자 한다. 방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감독, 교수, 미술작가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와 저승사자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끼어들어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들처럼 논평을 해댄다. 거기에 꽃분이를 찾아온 미군까지 등장한다. 꽃분이와 미군이 ‘윤씨 종친 무덤’에서 함께 잠을 자면서 박인순이 그린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가 연극처럼 상연되기도 한다. 박인순은 로맨틱한 구원자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미군의 목을 꽃분이와 함께 잘라 복수를 하고 그의 목을 끌고 직접 저승길로 향한다. 내레이터는 읇조린다. “저승으로 가는 아홉 고개를 넘기 위해 그들은 남편의 살과 뼈를 고아 감쪽같이 먹어치우고 머리만 끌고 가기로 했다. 잘린 머리는 저승의 문지기에게 뇌물로 바치기로 했다. 저승사자는 이 무모하고 자신만만한 여자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인순이와 꽃분이가 비웃음에 굴하지 않으며 아홉 고개를 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레이터는 그 동네를 지켜보던 당산나무일 수도 있다. 기품 있는 옷을 지어 입은 박인순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활보하며 저승으로 향한다. 박인순은 시작은 그렇지 못했더라도 결말은 자신의 의지대로 맺고자 한다. 박인순의 이야기는 비참에서 비장으로("그런 이유로 나는 죽음을 비장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증언에서 판타지로, 잔여에서 초월로, 운명의 피해자에서 운명의 대결자로, 치유에서 복수로, 이야기 소재에서 이야기하는 자로, 진부하고 교환가능한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단독자 영웅의 극적인 이야기로(“인순은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를 참을 수 없었다”) 이동한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그리고 미술, 연극, 영화, 연구조사 등의 미학형식을 오고 간다. 혼란스러운 비연대기적 기억은 환상성 속에서 예민한 실재적 감각으로 살아나며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 가능하도록 만든다. 영화는 더 나아가 기존 페미니즘 미학에서 금기시되어왔던 것을 가시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페미니즘 미학은 잘 들리지 않고 주변화 되어온 존재 양식을 재현하기 위해 유령, 잔여, 지나간 역사, 재현불가능한 트라우마의 미학을 고안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미학적 형식은 반복되면서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져 그 현존과 물질성이 의도치 않게 지워지기도 했다. 박인순은 여기서 스스로를 통제되지 않고 비규범적이며 제멋대로 구는(unruly) 자신의 신체성을 스펙터클로 내어준다. 카메라는 구석구석 꼼꼼히 씻어 내려가는 목욕하는 나체를 촬영한다. 그 몸은 적당히 살집과 주름이 있어 그 물질성을 묵직하게 감각하게 한다. 성판매를 하며 돈을 벌었던 몸이기도 하다. 박인순의 몸은 단순히 고통과 피해의 증거나 온갖 말들의 전장을 넘어서 팔을 크게 움직이며 동네를 휘젓고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그림을 그리고, 돈을 벌고, 목욕하는 몸이다. 그것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신체적 현존이다. 유령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것 혹은 침전 중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유령과 저승사자들도 어떤 효과도 없이 뻔뻔하게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이 표현되고 구분 없이 돌아다닌다. 심지어 동네 여자들은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옛 친구를 숨겨주기까지 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미군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윤금이의 살인 현장 사진을 사용한다. 미국의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분노를 야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보진영은 한때 윤금이 살인 현장 사진을 공론장에서 사용해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사진의 사용은 여성의 피해사실을 선정적 스펙터클로 전시하는 2차 가해라고 비판해왔다. 그것은 타당한 비판이었고 페미니스트 예술은 피해 사진을 스펙터클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꾸로 그 사진을 스크린에 가시화하며 기존의 관점에 도전한다. 여전히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판단에 있어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음에도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 한국 페미니스트 예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사진의 사용은 고통의 전시가 아닌 이미지 정보 과잉의 시대에 거꾸로 그 여성의 고통의 대면과 물질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말에서 박인순은 마침내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저승사자와 대적한다. 신체성의 감각이 첨예화되는 이 장면은 그로테스크와 어이없는 코믹함이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촛불이 쭉 늘어선 동굴의 연극적인 미장센을 배경으로 “아무도 널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며 “죽어라”라고 명령하는 저승사자에게 박인순은 기합소리 뒤에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인공적인 기이한 웃음소리를 낸다. 그것은 시원하게 터트리는 통쾌한 웃음도 아니도 그렇다고 소리 없는 비웃음도 아니다. 출처도 알 수 없고 누구의 것인지도 알기 어려운 웃음,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의문인 웃음이다. 잌히히히, 앜하하—아앜알, 잌히히키키알앜흐으, 으흐크아하하크오호호. 그러자 화면 밖에서 다른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박인순과 윤금이와 그녀의 동료들이 웃고 운다. 그것은 신체들을 깨우는 오염성 짙은 통제할 수 없고 비규범적이며 제멋대로이고 즉흥적인 웃음이다. 으흐흑아하학, 아하하흑, 이이킥이익. 때로는 울음소리, 분노의 비명소리와 구분되지 않는다. 캐스린 로위는 『제멋대로인 여자: 젠더와 웃음의 장르』(1995)에서 뤼스 이리가레이와 엘렌 시수를 경유해 미하엘 바흐친이 그로테스크의 예시로 든 ‘망령 나서 웃고 있는 임신한 노파 조각상’을 재해석한다. 노파는 왜 웃었을까? 로위는 노파는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몸을 “부적절하게” 노출시켜 “그들 자신을 스스로 스펙터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오래된 금기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 웃음은 소수 집단의 기존 권위와 체제를 향한 분노이다. 그 웃음은 기존의 권위와 체제를 위반하며 공간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점유하고 신체들을 재배치한다. 그것은 천진난만한 때 묻지 않은 웃음이나 남자들에게 반응해주는 수동적인 웃음과는 다르다. 그녀들의 웃음은 “카니발적인 사회적 실천”이며 자기를 향한 응시를 함께 웃을 수 없는 상대방에게 돌려버리는 공격의 웃음이다. 그로테스크한 웃음으로 체제들을 무너트린 박인순에 대해 내레이터는 말한다. “여자는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어둠속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고 창녀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아 좋았다. 모두가 거대한 환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신도 사람들 중 일부가 된 것 같아 그제야 편안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를 이야기이자 스펙터클로 만들며 사각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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