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 감독
- 임상수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서우, 박지영, 안서현, 황정민, 문소리, 김진아, 채태백, 전신환, 노상민, 장순규, 조용재, 임현경, 이금연, 김지선, 한송이, 박지선, 윤선혜, 서하영, 김재현, 우혜선, 김은옥, 한송이, 김지선, 박지선, 신재민
<버닝>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해미( 전종서 )는 조금 뜻밖의 말을 한다. 팬터마임으로 눈앞에 없는 귤을 먹던 그는 종수( 유아인 )에게 마임의 원리를 설명한다.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이 말은 < 버닝 >(2018)의 초반부에 불쑥 건네지고 나서 영화 전체를 실종과 부재의 미스터리로 물들인다. 해미는 갑작스럽게 사라지지만 종수는 해미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종수에게 남겨지는 이 말이 뜻밖인 이유는 이창동 영화 속 인물들이 갈구하던 질문과 정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 밀양 >(2007)에서의 신애( 전도연 )의 비명. “신이 어디에 있어요?” < 시 >(2010)에서의 미자( 윤정희 )의 외침. “시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를 찾아 헤매던 질문들과 다르게, 해미는 세계를 관통하는 자명한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해미의 방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껍질 벗겨진 귤이, 함께 사는 고양이가, 마침내 해미 자신마저도 그곳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다. 하루에 한 번 남산타워 전망대 유리에 햇빛이 반사돼서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곳엔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지만 딱 한 번의 햇빛이 종수의 눈에 보인다. 무언가는 보이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진다. 다른 어떤 것은 잊히지 않고 남겨진다. <버닝>이라는 이 거대한 야심의 영화 속 해미의 작은 방이 한국영화 비평을 말하기 위한 실마리일 수 있다면, 비평은 언제나 특정한 좌표 위에 놓인 공간에 거주하는 일이며 그 안에서 잔존하는 것과 지워지는 것들을 오가며 수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찬욱 은 정성일 , 허문영 평론가와 나눈 긴 대담에서 < 박쥐 >(박찬욱, 2009)와 <밀양>과 < 마더 >(봉준호, 2009)의 주인공들이 모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을 겪은 이후로 망각을 선택한다는 공통점을 지적하는 두 평론가의 말에 “이래서 평론가들이 필요한 거구나!”라고 웃으며 반긴다(언급된 영화의 세 연출자는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버닝>과 < 기생충 >과 < 헤어질 결심 >으로 다시 한번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공통의 우화를 작성한다). 이 일화엔 영화와 비평,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근접조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박찬욱의 농담 섞인 감탄과는 반대로 비평은 망각된 것들을 기억하고 흩어진 기억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아니라 망각 자체에 속하는 일이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행위다. 최근 영화잡지 《씨네21》은 잡지의 30주년을 기념해 1995년에서 2024년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한국영화/해외영화 10편의 베스트 목록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허한 목록의 재생산이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는 영화문화에 과도하게 채워져 있는 목록과 관점을 망각하는 것이다. 영화는 조우가 아니라 사라짐의 체험이고 따라서 비평은 그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버닝>은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그리고 한국영화를 둘러싼 비평의 관습을 정조준한다. 태양이라는 선명한 광원 아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팬터마임으로. 태양을 바라본다는 행위는 21세기 한국영화가 설정한 특별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란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의 부작용을 포착해 온 영화적 관찰기의 다른 말이다. 이는 <밀양>과 <버닝>에서 우리가 머무는 세계 안으로 간신히 전해지는 미세한 빛을 프레임에 담아낸 이창동만의 화두는 아니다. 도망칠 수 없는 두 뱀파이어를 태양에 불태워버리는 <박쥐>, 햇빛을 바라보며 시큰거리는 눈에 안약을 넣는 남자의 비극(<헤어질 결심>)과 태양의 과도한 빛을 피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자의 희극(< 어쩔수가없다 >)을 오가며 끊임없이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를 불러들이는 박찬욱의 영화들. 봉준호 의 <마더>는 오후의 도로를 통과하는 관광버스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광선을 포착해 그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어두운 실루엣으로 덮어버린다. 투명한 유리 사이로 쏟아지는 빛, 어찌할 수 없는 열기. <기생충>은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의 어둠에서 통유리로 태양을 반사하는 거대한 저택으로 이동한 뒤 더 아래에 있는 어둠으로 내려간다. 한국영화의 불길을 통과한 뒤 경력을 중단한 장선우 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짧은 단편은 이장호의 영화 제목을 빌린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2019>였다. 그는 한국영화 100년을 기쁨으로 회고하는 대신 검열과 금기라는 역사의 태양을 공격하고 야유한다. 태양 아래 있는 21세기 한국영화는 언제나 한 가지 특별한 장소와 결부되어왔다. 번쩍이는 태양의 가시광선을 피해 시선을 숨길 수 있는 어둠 속의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빛을 피해 숨을 수 있지만 그곳을 통과해 나오는 순간 눈에 날카롭게 베인 듯한 상처를 입는다. 터널 속에서 영화는 눈빛을 숨기고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좌표를 망각한다. 2000년대를 여는 첫 번째 한국영화로 이창동의 < 박하사탕 >(1999)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영화가 새로운 세기 초입에 새겨둔 터널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에서 공간과 시간을 이행하는 데는 어둠을 통과해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박하사탕>의 기차는 무심한 기계장치처럼 역방향으로 터널을 통과해 나간다. 거기엔 숨겨진 빛이 있고 우리는 그 빛을 잊어버린다. 태양이 가려졌으므로, 영화는 세계를 정확히 보는 것에 실패한다. <박하사탕>,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중 (사진: ㈜이스트필름, ㈜싸이더스, 디씨어터) 21세기 한국영화 전성기의 정점으로 회고되는 2003년에 ‘한국영화’의 외형과 속성을 상징적으로 각인한 두 편의 영화에서 솟아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너무 깊은 어둠으로 인해 보는 것에 실패하는 터널 이미지다. 봉준호의 < 살인의 추억 >(2003)에선 영화의 마지막에 빈 농수로를 보여준다. 전직 형사 박두만( 송강호 )은 과거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시골을 찾아 농수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의 눈앞에 있는 텅 빈 공간은 마치 터널처럼 가을의 태양을 가로막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가 고개를 숙여 농수로 깊숙한 곳에 놓인 여성의 시체를 쳐다볼 때, 어두운 수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근처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주워 빛을 반사해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저편에 있던 어둠은 우리가 있던 곳을 잠식하고 만다. 그리하여 영화의 결말은 살인 용의자가 어두운 터널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터널을 들여다볼 수 없는, 본다는 것의 실패다. 박두만이 다시 용수로를 찾았을 때, 터널은 어둠으로 닫힌 모든 것이 투명하게 열려 있다. 우리는 그 명확하게 빛나는 어둠 앞에서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다. < 올드보이 >(2003)에서 오늘만 대충 살아간다고 다짐하던 오대수( 최민식 )가 감금된 밀실의 복도는 기나긴 터널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곳의 작은 방 한 칸에 갇혀 있던 이 남자가 15년 만에 석방될 때도 그는 조그마한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다. 실은 풀려나는 시점조차 정확히 통제된 것이므로 제대로 풀려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시간의 터널 속을 맴돌고 있다. 밀실에 되돌아온 오대수는 장도리를 들고 수많은 적을 넘어서 터널을 통과하지만, 그 어떤 것도 통과한 적이 없다. 이 영화에서 오대수는 시종일관 태양의 빛과 열기를 피하는 검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다. 그는 영원히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 마주하더라도 회피와 망각을 선택하려 든다. 다시 몇 년이 지나고, 한국영화가 직면하고 응답했던 이 치명적인 곤경은 이창동의 <시>(2010)에서 시인의 말을 빌려 울려 퍼진다. “틀렸어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한국영화비평에 대해 말할 것들이 남았다면, 여기에 제도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는 비판이 아니다.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는 촉구와 반성 역시 아니다. 그 반대다. 해미의 조언처럼 우리는 여기에 무언가 없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을 잊어버리고,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는 영화감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을 잊어야 하며, 새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분류하는 영화제와 개봉 체계의 시각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인식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평의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전개해야 한다. 이창동과 박찬욱과 봉준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걸작들로 비루한 목록을 채우는 대신, 변함없는 명사로 자리 잡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그들이 직면해야 했던 곤경의 장소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들의 곤경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통과하지 않고 그저 걸작으로 남아 있는 영화를 숭배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또 다른 모욕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팬데믹이 초래한 대규모 봉쇄의 기억을 뒤로하고 2020년대의 절반을 지나친 지금 시점에 우리는 한국영화의 ‘장소’가 어디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터널을 지나친 한국영화의 흔적 뒤편에서 우리는 또 어떤 장소를 발명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 비평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 하락에 있지도 한국 작가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에 있지도 한국영화 산업의 붕괴에 있지도 않다. 손쉽게 영화산업 일부분에 기생해버린 비평이 한국영화가 곤경을 투사하고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한밤에 태양을 관측하는 행위에 빗댄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는 두 가지 종류의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강력한 아버지의 규율과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세대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도 지시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버지를 마주해야 하는 세대다. 90년대 후반에 촉발되어 21세기의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단절된 아버지의 강력한 규율에 저항함으로써 그와 연결되려는 절차였다. 지금껏 언급한 한국영화의 ‘걸작’들은 모두 부모가 되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방식에 관한 서로 다른 시도들이고 적잖은 이들이 불필요한 결론이라 비판한 바 있던 <기생충>의 에필로그는 그 연대기의 끝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을 렌즈로 삼아 세계를 인식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들들의 아들은 조그마한 렌즈에 눈을 대고 있는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지켜볼 뿐이다. 우리에겐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겐 ‘한국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기생충> 중 순환어법처럼 들리지만, 한국영화 비평이 성립하기 위해선,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언젠가 특별한 비평의 감각을 자극했던 《씨네21》의 ‘전영객잔’ 코너가 건드린 것은 ‘긴 호흡의 비평이 있어야 한다’라는 하나 마나 한 저널리즘적 진단이 아니라 ‘한국영화에 어떤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가?’라는 특수하고 역사적인 물음이었다. 그 지면에서 다뤄진 것은 넓은 의미의 비평일뿐만 아니라 임권택 , 이만희 , 김기영 , 배창호 , 강우석 , 임상수 , 박찬욱, 홍상수 , 이창동, 봉준호, 그리고 21세기에 새 영화를 만들어낸 한국영화 감독들의 시간에 대한 특수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짧은 호기심과 문답의 시간이 지나고 비평은 너무나 쉬운 관성에 안착해버렸다. 투박한 비교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지금 영화를 해설하고 의미를 발굴하는 비평은 한국영화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구현하고 싶었으며 무엇에 실패하고 어떤 곤경을 직면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업무의 한 부분에서 성실하게 문장을 채우고 완성된 결론을 생산할 뿐이다. 다른 지면에 적었던 이들의 운명을 다시 빌려오자면, “비평이 테러리스트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고작해야 제작사와 수입사의 홍보문장을 작성하는 대리인이거나 이름 있는 연출자의 의도를 정제된 언어로 세공하는 복화술사거나 제도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성실한 일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동시대 한국영화에 어떤 곤경의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시대 한국영화 비평이 영화에 드리운 특수한 곤경에 호기심을 기울이지 않고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어쩌면 한국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조차 그들 자신이 처한 곤경에 응답하지 않는 걸까?). 영화는 세계를 보이게 하는 역량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가 카메라 바깥에 있다. 한국영화는 그것들이 동시에 거주하는 장소다. 비평가들이 이미 결정된 한국영화의 외형과 위계와 비평의 문법을 잊어버린 채로 영화와 만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영화’는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평가받는 모든 영역에서 빈틈없이 완전하게 구성되어 있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그것이 위태롭고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엄습한다. 끝없이 불타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는 비평이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대신 없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지금 한국영화가 이룩한 제도에서 비평은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무는 무언가 부재한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망각해버리는 것이다. 비평의 역량이 약화되었고, 위대한 작가 감독이 존재하지 않고, 경이로운 영화들이 나오던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사라졌다는 자각. 그 사라짐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다. 이는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를 대상으로 하든 비평의 첫 문장이 작동하기 위해선, 어떤 한 가지 장면과 생각을 영화의 나머지 전체보다 앞서서 서술할 수 있다는 믿음, 다시 말해 영화의 나머지 전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임의적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영화는 모든 것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일을 실천할 뿐이라는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비평은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영화비평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비평이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다는 그 부재를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김병규(영화평론가) l 2018년 《Filo》 신인평론가에 선정되고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만든 영화로 단편 < 늦은 산책 >(2023), < 오후 >(2023)가 있다.
지루한 영화를 보는 것만큼 우리를 소외시키는 경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몰입감과 소외감을 동시에 느끼도록 함으로써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길을 잃게도 하며, 끝내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첫 번째 스토리를 해석하는 인지 활동에 몰두하는 것, 두 번째 혼란을 유발하는 퍼즐을 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혼란 자체를 경험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혼란에 투항할 때 발생하는 쾌감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 혼란의 출구를 찾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나, 때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보는 것이 즐거움을 제공할 수도 있다. 방향감각의 상실은 모 아니면 도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어떤 종류의 혼란에 처해 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영화의 성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해피엔드 >(1999)는 이와 같은 관람의 속성 안에서 혼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엿보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외환위기가 조성한 환란의 무드 아래 실업과 파산, 자멸의 사연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세기말의 불확실성과 새로운 세기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던 20세기 말 한국 사회의 공기를 배음으로 깔고 있다. 성별 위계질서의 변화, 여성 권리의 부상, 근대적 국가 정체성과 남성성에 대한 회의(懷疑), 가부장제의 위기 따위로 요약되는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징후들을 드러낸다. 영화의 도입부는 불륜과 추리, 애틋한 로맨스를 골자로 하는 대중 소설에 탐닉하는 남자 서민기(최민식)를 등장시켜 두 가지 중추적인 플롯 포인트를 설정한다. 플롯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은 민기의 부인인 최보라(전도연)와 그녀의 애인 김일범(주진모), 그리고 민기의 뿌리뽑힌 관계 사이에서 벌어진다. 민기는 (아마도) IMF의 여파 속에 실직한 뒤 딸을 돌보고 공원에서 소설을 읽는 한가로움에서 보람을 느끼는 전직 은행원이다. 민기의 아내 보라는 어학원을 운영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군대에 징집되어 몇 년 전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 일범과 혼외관계에 빠져 있다. 처음에는 보라와 민기를 묶는 불운한 결혼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이 거의 교차하지 않는다. 보라와 일범은 열정적인 연애와 사진 촬영에 몰두하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민기는 자신의 도피처인 헌책방에서 매일 탐정 소설과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민기가 탐닉한 세계는 보라와 일범이 누리는 세계와 닮아있는데,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전달받게 될 사연은 바로 이 두 장르(탐정 + 로맨스)를 결합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서로에게 매료된 불륜 커플이 섹스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동안 민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파국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간다. 조용한 탐정의 역할을 수행하던 민기가 평정심을 잃게 되는 이유는 보라가 일범을 만나기 위해 아이에게 수면제를 탄 우유를 먹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이다. 민기의 상처 난 가부장의식이 발동하는 순간 살의도 피어난다. <해피엔드>의 전체적인 톤은 무기력하고 조용히 인간을 갉아먹는 메스꺼움 같은 불안, 때때로 폭발적인 폭력으로 표출되는 비극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극중 보라가 지저분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이 캐릭터에 부여한 감정적 깊이 때문에 우리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라는 항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민기는 금욕적이고 심지어 시들어있는 모습이다. 단란한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보라는 새로 찾은 사랑의 포로가 되었고, 일범은 두 번째 이별을 상상할 수 없다. 민기는 이미 파탄이 난 부부관계에 큰 미련이 없지만, 가정을 파괴할 생각이 없으며 보라가 가족의 안위를 해칠 행동을 했을 때 분노한다. 어떤 캐릭터도 완전히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들의 행동이 완전히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 섹스와 혼외정사, 사진 또는 책을 통해 자신만의 위안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인물들이 거짓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은 거짓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환상(거짓)에 오래 빠져들수록 현실의 위기는 깊어진다. ‘거짓의 위기’를 통과하는 이 인물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해피엔드>는 어떤 의미에서 경제적 몰락이 결혼, 성 역할,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논평이자 심리적 황폐화, 그리고 일부 관객들에게는 가슴 아픈 로맨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라가 떠다니는 풍등을 붙잡으려 애쓰는 <해피엔드>의 몽환적인 라스트 신은 주목할 만하다. 이 장면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아름답고 수수께끼 같은 결말 중 하나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엔딩으로 이어지는 20여 분의 시퀀스는 이전까지 느슨하게 얽혀 있던 서사의 실타래를 태피스트리로 묶어내려는 시도로부터 도리어 멀어진다. 이 신으로 넘어옿기 전 민기는 잔혹한 방식으로 보라를 살해했다. 이야기 안에서 처음으로 응집력 있는 흐름이 발생하고 가시적인 잔학 행위가 벌어지는 국면이다. 촘촘한 형식과 정서적 강렬함을 가진 이 영화의 모호한 결말 구조는 곱씹어볼 만한 여지를 남긴다. 이 혼란스러운 이중 결말은 먼저 민기가 보라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뒤에는 보라의 죽음을 의심하게 하는 호환되지 않는 결말이 이어진다. 혼란, 우발성, 자의성에 기초한 정지우의 영화를 돌이켜보면 이 이중 결말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연결고리를 미묘하게 도입하여 관객의 반응을 수정하게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감독이다. 여기서 정지우는 실패한 관계의 잔해 위에서도 낙관적인 미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 관한 탁월한 미장센을 전개한다. 거울이 놓인 화장실에서 민기가 ‘장미빛 인생’이라고 적힌 성냥 케이스 안에 보관된 은반지를 변기 속에 던져버리고 폴라로이드 사진 안에서 행복하게 웃는 보라의 이미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 녹아내리는 모양으로 타들어 가는 사진은 아파트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보라의 이미지로 오버랩된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보라의 시점으로 주황색 풍등이 바람이 실려 떠오르고 걸쇠에 잠시 걸려 보라의 눈앞에 머무르던 풍등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른다.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는 보라의 제스쳐에도 불구하고 풍등은 잡히지 않는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온화한 햇살 아래 아이와 함께 잠들어있던 민기가 깨어난다. 보라는 그의 곁에 없는 것 같다. 민기는 보라를 살해한 것인가 또는 풍등을 잡으려는 보라의 애절한 몸짓은 민기의 꿈인가? 정지우는 확실히 혼란과 방향 감각의 상실에 관심이 있는 작가이다. < 사랑니 >(2005)와 < 모던 보이 >(2008), < 은교 >(2012)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자의적이고 우발적인 사건들에 직면함으로써 방향 감각을 잃는 인간에 대한 탐구로 요약될 수 있다. <해피엔드>의 결말이 야기하는 혼란과 방향 감각 상실은 영화의 의미와 방법 모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련의 신들의 교환은 현실과 바깥을 왕래하면서 이야기의 목표가 성취되었다는 안도감을 주지 않는다. 결과 없는 원인, 울림 없는 행동, 긴장의 끈이 풀려버리는 이 결론은 민기가 읽고 있는 소설과 비슷하다. 민기의 살인 행각과 소설은 모두 허구이지만 죽음은 실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를 관객들이 모두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예술이 삶을 모방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개념을 가지고 노는 이 영화의 방식이다. <해피엔드>를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불안과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해부도를 제시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교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은 여성 캐릭터가 다양한 비판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실,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후기 자본주의 도식 아래서 곪아 터진 분노의 초상화를 통해 남성 관음증의 폭력성과 여성의 새로운 주체성에 대처하지 못하는 남성의 무능력을 그려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비유적 전략은 허구의 인물에게 우연적인 것이 반드시 관객에게 자의적인 것으로 경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방향 감각 상실은 영화의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증폭시켜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하게 한다. 이보다 더 생산적인 활동이 있을까?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영화적 영감과 휴식, 그리고 소통의 공간을 목표로 문을 열다 2015년 문을 연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은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영화적 영감과 휴식, 그리고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CGV가 2015년 5월 1일 개관한 국내 최초의 영화 전문 도서관이다. 이 글은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라러리 상영관 전체가 아닌 씨네라이브러리관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첫째 영화 전문 도서관인 씨네라이브러리관 외에 다른 상영관은 여타 CGV 상영관과 운영, 설비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고, 둘째 씨네라이브러리관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 공간의 특성을 좀 더 명확히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CGV는 명동 일대에 'CGV명동', 그리고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두 곳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운영 중이다. 인근 지역에 두 곳의 상영관을 둔 이유는 성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의 경우 CGV 아트하우스관을 중심으로 다양성, 예술영화에 집중하는 특화 상영관으로 시작했다. 5개관, 694석의 아트하우스관을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방향성으로 시작했지만 운영은 유동적이었으며 2022년 10월 이후부터는 아트하우스관 2개, 일반상영관 3개로 재편되어 운영 중이다. 5개의 상영관의 경우 여타 CGV 상영관 혹은 아트하우스 상영관과 설비나 운영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점 없이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간판과 외관 1만여 권의 다양한 서적들을 갖춘 영화전문도서관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의 특화 공간, 씨네라이브러리관은 국내 최초의 영화 전문 도서관으로 182석의 상영관을 영화관 구조로 그대로 살려 리뉴얼했다.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독특한 공간으로 꾸민 씨네라이브러리관은 영화 관련 전문 서적 1만여 권을 갖추고 있으며 여러 토크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 중이다. 평상시에는 도심 속 영화 도서관으로서 관람객들이 편하게 영화 도서를 접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으며 영화 상영 후 이어지는 연계 프로그램, 대표적으로 라이브러리 토크를 마련하여 영화 관람 체험이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목표로 한다.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로비 씨네라이브러리관에는 영화 원작 도서, 영화 전문 서적, 국내외 시나리오를 비롯해 영화에 창의적인 영감을 안겼던 미술, 사진, 건축, 디자인, 세계 문학 고전 등 인문, 예술 분야 등을 총망라한 엄선된 장서들이 마련돼 있다. 1만여 권에 달하는 서적에는 영화 전문 서적 외에도 영화와 영감을 주고받은 문학 및 타 예술 분야 서적 등이 망라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소설, 그래픽 노블, 만화, 논픽션 등 영감의 원천이 된 영화의 원작들이 있으며 감독론, 배우론, 영화이론, 시나리오, 콘티북, 아트북 등 영화에 대한 이해와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영화 전문서들도 섹션별로 구비돼 있다.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 사진, 건축 디자인, 기타 예술 및 인문학 등 영화 미학에 영향을 주고받은 각종 예술 분야의 서적들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민음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을유문화사 등 주요 출판사별 세계문학전집도 완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국내외 출간된 주요 감독, 배우 관련 도서 및 영화 전문 서적과 영화화 또는 영화화가 예정된 원작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점이 여타 도서관과 구별되는 특화된 지점이다. 구비된 도서들은 대여는 불가능하고 씨네라이브러리관에서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하다.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지난 10월부터 다시 정상 개방해 일반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CGV 라이브러리관의 장서들. 건축, 예술, 만화, 문학 등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씨네마톡 문화를 이끌다 국내 최초의 영화전문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씨네라이브러리관은 영화관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가능하도록 꾸며진 독특한 공간이다. 아트하우스 상영관과 연결된 도심 한복판의 문화 공간으로서 엄선된 장서와 다채로운 강연을 통해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되는 영화 이야기를 목표로 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영화 감상 후 CGV 씨네라이브러리관에서 감독, 배우, 평론가와 함께 이야기하는 '라이브러리관 톡'이 있다. 라이브러리관 톡은 영화 상영 후 바로 상영관에서 이어서 진행하는 여타 시네마톡과 달리 공연장 같은 환경의 씨네라이브러리관으로 이동해 진행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공연처럼 강연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영화 관람의 체험을 나누는 시간까지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양성 영화들이 시도해야 할 의미 있는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을 독립된 별개의 공간으로 운용한다는 데 특별한 가치가 있다. 관객들이 독립·예술영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화 평론가 및 감독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톡(TALK) 프로그램도 운영해 독립·예술영화를 색다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며, 영화를 넘어 문화 전반을 경험할 수 있는 책, 인문학 등을 아우르는 행사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2010년 이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시네마톡, 라이브톡 프로그램의 제일 앞자리에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특화된 공간을 운영하는 게 멀티플렉스의 대표주자 CGV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현재 CGV는 CGV압구정 등에 이미 시네마톡의 거점 공간을 마련 중이며 그중에서도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은 영화는 물론 인문학 전반의 행사를 아우르는 주요 공간이라 할 만하다. 코로나19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만큼 유지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올해 7월경 만료 예정이었던 건물 임대 계약을 2년 연장하면서 2024년까지는 정상 운영이 가능해졌다. CGV측은 이번 기회를 점검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도 그 고유성을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서울 중구 충무로2가 65-9번지 하이해리엇 건물 10층 2. 설립일: 2015년 5월 1일(상영관(182석)을 영화 도서관으로 리뉴얼) 3. 공간구성 - 186석의 일반상영관을 리뉴얼하여 100석 규모로 변경 -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 10층 내 약 231m² 4. 운영시간: 쉬는 날 없이 매일 09:30~20:30 5. 입장료: 입장은 무료(라이브러리관 톡은 행사에 따라 상이함) 6. 서적: 영화 전문 서적 외 영화와 영감을 주고받은 문학 및 타 예술 분야 서적 망라 - 영감의 원천이 된 영화의 원작들(소설, 그래픽 노블, 만화, 논픽션 등) - 영화에 대한 이해와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영화 전문서들(감독론, 배우론, 영화 이론, 시나리오, 콘티북, 아트북 등) - 영화와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 서적들(미술, 사진, 건축, 디자인, 기타 예술 및 인문학 등) 인터뷰: 황재현(CGV커뮤니케이션팀), 김선경(운영총괄) 송경원 _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재현 _CGV 커뮤니케이션팀 황재현입니다. 회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을 언론을 포함한 외부 이해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선경 _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의 운영총괄을 맡고 있는 김선경입니다. 현장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씨네라이브러리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황재현(왼쪽, CGV커뮤니케이션팀), 김선경(오른쪽, 씨네라이브러리관 운영총괄) 송경원 _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은 언제, 어떤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나요? 황재현 _씨네라이브러리관은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영화적 영감과 휴식, 그리고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CGV가 2015년 5월 1일 개관한 국내 최초의 영화 전문 도서관입니다. 182석의 상영관을 영화관 구조를 그대로 살려 리뉴얼 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독특한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이후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은 상업영화는 물론 독립예술영화까지 즐길 수 있는 아트하우스 상영관까지 갖춰 영화팬들이 즐겨 찾는 도심 속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송경원 _코로나19로 극장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위기를 겪은 지난 2년 동안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의 상황은 어떠했는지요. 황재현 _극장가는 코로나 19로 지난 2년 넘게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극장 매출관 관객 수는 2019년 대비 4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의 경우에도 코로나19 기간 중 일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후 극장 운영은 정상화되었지만 씨네라이브러리관 운영은 최근까지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10월 이후부터 일반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정상 운영 계획 하에 있습니다. 김선경 _새로운 영화들이 매주 개봉하고 활기가 넘치던 이전과 달리 코로나19 기간에는 영화관이 매우 한산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려되는 부분들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기, 시간대를 피해 방문하는 고객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또한 영화관은 주변 상권에서 소비 행위를 하거나 지역 소상공인들이 매출에 많은 도움을 주는 곳인데, 관객 규모가 감소하고 신규 개봉작이 줄어들면서 명동 지역 상권에도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CGV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1관은 "김기영관"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다 송경원 _극장의 특징과 공간 구성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선경 _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은 2015년 영화 관련 전문 서적 1만여 권을 갖춘 국내 유일의 영화 전문 도서관 'CGV 씨네라이브러리관'을 처음 선보인 데 이어 2019년에는 국내 멀티플렉스 중 최초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이루어진 극장으로 전환해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인들의 상징과도 같은 충무로 인근 지역인 명동에 영화와 영화 관련 도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색 문화 공간으로, 지난 9월부터는 상업영화는 물론 독립예술영화, 영화 전문 도서관까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송경원 _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만의 장점과 매력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황재현 _독립·예술영화를 비롯해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서로 소통하고 모이는 공간이자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씨네라이브러리관에서는 전문가들의 큐레이션을 통해 엄선된 1만여 권의 장서를 원하는 대로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원천이 된 원작 소설이나 만화 등을 만나볼 수 있고,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영화 전문서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영화팬들이 많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시나리오나 콘티북, 감독론이나 배우론, 영화 이론 서적들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영화와 영향을 주고받은 미술이나 사진, 건축, 디자인, 인문학 등 다양한 예술 서적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선경 _또한 관객들이 독립·예술영화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영화 평론가 및 감독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톡'(TALK) 프로그램도 운영해 독립·예술영화를 색다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영화를 넘어 문화 전반을 경험할 수 있는 책, 인문학 등을 아우르는 '이다혜의 북클럽', 'CGV아트하우스 클래스' 등 강연 프로그램도 다수 진행하고 있습니다. 송경원 _그동안 많은 시네마톡이 이루어졌고 관객들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는데요, 이런 자료들이 어떤 형태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그렇다면 현재 아카이빙 된 자료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황재현 _시네마톡의 경우 대부분 배급사에서 기획해 요청하면 CGV아트하우스에서 추가 의견을 주고, 시간을 조율하여 오픈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별도로 저희가 기록하거나 아카이빙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씨네라이브러리관 입구 송경원 _이곳에서 영화인들과 네트워킹한 지난 시간들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김선경 _씨네라이브러리관에서는 시네마클래스, 특강, 클래스 프로그램, 라이브러리관 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씨네라이브러리관에서는 다음 영화가 상영되는 상영관이 아니기 떄문에 오랜 시간 평론가들의 강연이 가능합니다. 특별한 에피소드를 꼽자면 데이비드 린치 특별전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트윈 픽스>를 연속 상영하고, 정성일 평론가의 데이비드 린치 강연을 진행했을 때 영화 상영부터 강연 마치는 시간이 장장 11시간 반 정도가 됐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직원과 관객들 대부분이 끝까지 계시는 것을 보고 정말 영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황재현 _<씨네21> 김혜리 선임기자가 진행한 '김혜리의 월간 배우'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김혜리 선임기자가 매월 추천하는 배우의 대표작을 스크린으로 보고, 그 배우의 연기 및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요. 2017년 6월에 진행된 '김혜리의 월간 배우'에 <내 사랑>의 에단 호크가 선정됐습니다. 김혜리 선임기자가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들과 <내 사랑>과 에단 호크에 대해 풍성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가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상대 배우의 연기를 최고로 만들어 주고 더욱 빛나게 해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저 역시 다양한 각도에서 영화를 보면 더욱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사랑>에서 에단 호크는 여주인공 샐리 호킨스의 연기를 최고로 완성시키는 데 충실한 공조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송경원 _영화를 큐레이션하는 프로그래머 혹은 담당자의 안목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반영하고 계신지요. 황재현 _CGV아트하우스의 슬로건은 'A Good Movie, A Better Life'입니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아트하우스 프로그래머들은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재미를 주는 예술영화를 상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편하고 어려운 영화들이지만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라면 함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씨네라이브러리관 도서 열람용 테이블 송경원 _기억에 남는 프로그램과 기획전, 행사가 있으신지요. 김선경 _아트하우스 전체에서 진행했던 기획전으로는 여름 시즌 아트하우스의 대표적인 기획전으로 자리매김한 CAV기획전과 감독들의 다양한 영화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감독 특별전, 특히 2번의 시즌으로 진행했던 히치콕과 왕가위 특별전이 기억에 남습니다. 스크린문학전(책이 원작인 영화 또는 책에 영감을 받은 영화를 소개하는 기획전), CGV 시네마클래스, 이다혜의 북클럽, 김혜리의 월간 배우 등 라이브러리관에서 진행한 많은 행사들도 하나하나 기억납니다. 황재현 _저는 씨네라이브러리관은 공간의 특성을 잘 살린 성기완 교수의 소리의 인문학 강연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총 4회에 걸쳐 진행된, 80명 정원의 인문학 유료 강연이었는데요. 모두 매진됐습니다. 소리의 인문학은 소리를 통해 음악을 이해하고,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강연이었는데요. 특히 '소리 중심의 영화 보기'를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는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나오는 소리가 독특한 의미와 함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감명받았습니다. 강연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 등 거장 감독들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청각 공간을 활용했는지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씨네라이브러리 전도연의 전시 코너 송경원 _팬데믹을 거치면서 영화관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이후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김선경 _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다음에 또 오고 싶은 공간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관이 영화 팬들이 함께 모이고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많은 역할을 헀는데요. 기존에 운영해왔던 톡 프로그램을 비롯해 앞으로도 CGV는 고객들이 원하는 차별화된 즐거움을 어떻게 제공할지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겠습니다. 송경원 _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그리고 씨네라이브러리관에 관해 관객, 또는 영화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황재현 _앞으로도 영화 팬들이 영화도 보고 책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최근 만화나 소설 등 원천 지식재산관(IP)을 갖고 있는 원작들이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고, 그 반대의 경우도 활발해지는 등 콘텐츠가 무한 확장하고 있는데요. 어떠한 형태로든 고객에게는 다양한 즐거움과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와 원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으로 지속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필자: 송경원(씨네21) 사진촬영: 손홍주,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