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송가
- 감독
- 더그라스 서크
- 제작년도
- 1957
- 출연
- 중 쿄오 표, 록 허드슨, 안나 카스리, 댄 두리에, 돈 드포, 마사 하이어, 조크 마호니, 알랜 헤일 주니어, 제임스 에드워즈, 칼 벤톤 라이드, 리차드 루, 필립 안, 바틀렛 로빈슨, 사이몬 스콧, 테루 시마다, 카리튼 G. 영, 아트 밀란, 폴 소렌슨
# 실제 사건 2018년 1월 13일 토요일, 오전 8시 7분. 핸드폰에 긴급재난문자가 울린다. “하와이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위협 발생. 즉시 대피소를 찾으세요. 이것은 훈련이 아닙니다.” 1.4백만 하와이 시민은 임박한 죽음의 공포를 맞닥드리고 공황상태에 빠졌다. 떨어져있던 가족과 친구를 찾고, 대피소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도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하와이 주정부는 13분 뒤 트위터에 미사일 위협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소셜미디어를 쓰지 않는 이들에게 정정 내용이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거렸고, 앞선 문자와 트위터 중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분간되지 않는 순간이 흘렀다. 최초 재난문자 전송 38분 뒤 주비상관리국은 정정내용을 다시 문자로 전송했다. 이 시간동안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장에 있었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미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공격 발생시 대응 계획을 지난 30년간 시험해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방장관은 트위터에 “실수로 인한 핵전쟁 위험성은 가설이 아니다. 사고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인간은 또다시 실수를 할 것이다. 단순 실수가 수백만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더욱 철저하게 점검하고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남겼다. # VR 다큐 <당신이 깨어난 아침(세상의 끝까지)> (이하, <당신이 깨어난 아침>) < 당신이 깨어난 아침 >은 4년 전 하와이를 혼돈 속에 몰아넣은 정부의 가짜 탄도미사일 경보 사건을 다룬 VR 다큐이다. 총 3장으로 나누어진 38분 길이의 디지털 이미지 작업으로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 목소리와 나레이션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장 ‘피신하라(Take Over)’는 사건 당일 아침 유난히 아름답던 하와이 하늘부터 지옥같은 공포에 이르기까지의 순간을 몇 인물의 구체적인 증언으로 담았다. 일터에 가기 전 평온하게 준비를 하던 안지 앤더슨(Angie Anderson)은 핸드폰 알람 소리에 평소처럼 홍수주의보인줄 알고 별생각없이 화면을 보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브루스 알린(Bruce Allyn)은 이 문자가 사실일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지난달 섬전체에서 실시한 대피훈련을 기억하며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서늘함을 마주한다. 하와이 출신으로 프린스턴대학에서 핵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타마라 패턴(Tamara Lilinoe Patton)은 이날 아침 도서관에서 친구들의 겁에 질린 메시지를 연쇄적으로 받으며 마지막일지 모를 사랑의 답변을 보낸다. 실제로 미사일이 발사된거라면 15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고, 평균 크기의 핵이 폭발한다고해도 호노룰루 전체가 시작부터 흔들리고 섬 전체가 유해물질로 뒤덮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 피신처에 겨우 도달한 한 남자는 “여긴 자리가 없으니 다른 데로 가세요!” 라고 소리지르는 군중의 민낯을 마주하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모든 것이 너무도 평화로운 상황이 이상했다. 태평양의 주요 군 핵심시설로 가득한 하와이에서 피신이라는 게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 작가도 등장한다. 이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과연 무엇인지.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피신하라”는 말만 내놓는 것이 대안인지 의문을 가진 젊은 여성은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기도를 하며 바다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간다. 2장 ‘종말의 기계(The Doomsday Machine)’는 문자 발송 직후부터 긴급신고번호로 접수된 문의전화 녹음기록을 공개해 공적 권한을 지닌 이들에게도 정보가 도달하지 않았고 시민들에게 어떤 조언도 제시하지 못한 상황을 드러냈다. 공기관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38분간, 시민들은 자신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믿었던 정부기관에서는 어떤 답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셜미디어로 향한다. 각자의 처지와 정보를 교환하고 개인의 결정으로 대처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인터뷰가 이어진다. 또한 지구 위에 존재하는 14,000개의 핵무기가 지구를 몇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취재했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준비를 하라”던 교사의 지시에 부모의 위안이 필요했던 소녀, 이 속에서 살아남더라도 뱃 속의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 걱정하던 임산부의 증언은 시스템의 실패로 인류가 집단적 죽음을 경험한 사건으로 이 날을 기록하고 있다. 3장 ‘쿨레아나(Kuleana)’ 는 책임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이어로 사건이 종료된 시점부터 그 이후의 변화를 담고있다. “미사일 경고는 잘못된 문자였다” 라는 정정보도에도 사람들의 혼돈은 한동안 지속됐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그 사건 이후 어떤 것도 똑같지 않았다”라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그저 앉아서 언제일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타고 나왔다. 정부는 미사일 경보 오발령의 원인으로 주정부 비상관리국 직원이 작업 교대 중 경보 시스템을 점검하다가 버튼을 잘못 누르며 생긴 개인의 실수였다고 밝혔다.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으며 사건은 종료됐다. 시민들은 “잘잘못을 묻고, 적과 아군을 나누고, 누군가를 해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위험과, 시스템이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함을 가지고 살기보다 다른 대안을 원했다. 그리고 그 답은 기존의 사회작동 방식이 아닌 과거 하와이 선주민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 점점 개별화되는 사회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 공동체로 살아가는 방법을 되찾고 보편적 인간성을 회복해야 가능하다는 목소리로 퍼진다. 타마라 패턴(Tamara Lilinoe Patton)의 증언 장면 트레일러 보기: On The Morning You Wake (To the End of the World) | Meta Quest # VR다큐 미학의 발전 가능성 <당신이 깨어난 아침>의 특이점은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통해 리얼리즘을 추구하려는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2장에 등장한 추억의 가족 비디오를 제외하고는 실제 촬영한 영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현실 이미지를 옮기기보다 디지털 이미지로 당시 일어난 상황을 묘사한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실제 현장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방법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이미지의 힘을 포기한 것이냐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제작진은 표현방식 전략을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핵(이미지)과 목소리(사운드)로 세웠다. 핸드폰이라는 매체 덕분에 무언가를 알리고, 남겨두기 위한 현실 기록으로서 이미지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새로운 이미지는 일상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당신이 깨어난 아침>은 기록 영상과는 반대로 현실을 전제로 하되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야기를 해설하는 이미지도 모두 움직임에 반응하는 입자처럼 최소화해서 그 외 공간을 비우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현실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와이 미사일 오보의 주요 쟁점인 ‘핵'과 그 여파를 이미지화한 그래픽, 모래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날아가는 세계, 하와이 섬의 모습 등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했다. 명백히 인위적인 것임을 선언하는 이 작품의 시각 표현방식은 관객에게 거짓말 같은 실제에 대한 현실 인식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그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허구) 사람들에게는 실제 일어난 일(현실)이었고, 삶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에 ‘가상 현실'이라는 단어가 적합해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제작진은 미사일로 인해 핵폭발이 일어났다면 산산히 부서졌을 세계를 묘사의 한 방법으로 취했다. ‘만약’ 위험 경고가 사실이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증언과 사람들의 공간을 조각내 무너지게 하고 다시 구축하는 방식으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세계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관객에게 가상 현실을 경험하게 해서 ‘정부'의 메시지라는 권위가 우리가 보는 이미지보다 더 허구적이었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언제든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깨치게 하고, 영상이 끝나도 우리의 현실이 여전히 헤드셋 밖에 남아있다고 알리는 장치로 이 디지털 이미지는 작동한다. 이러한 재현 이미지의 인위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에서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힘은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목소리는 음질에 관계없이 일어난 일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제시하고, 이들의 목소리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세상의 끝을 마주한 당일의 감정이 불안하거나, 화를 내거나, 다급하게 온전히 전달되고 있다. 다시말해 <당신이 깨어난 아침>은 청각이 제공하는 강렬한 사실과 감정을 기초로 당시 상황을 디지털 이미지라는 가시적 형태로 표상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디지털 이미지 대신 실제 장면이 들어갔다면, 2D 영화였다면, <당신이 깨어난 아침>이 지금의 결과물과 같은 영향력을 주었을까? # 재난을 재현하는 매체와 이미지 사실을 증명하는 것보다, 리얼리즘 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 작품은 관객이 받아들일 작품의 영향력을 답으로 고려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운동에 동참하세요" 문구가 드러내듯 평화와 비핵화 캠페인에 대한 선명한 의도를 지닌 작업이다. 그러나 <당신이 깨어난 아침>은 전쟁이나 재난의 참혹함을 전시하여 관객에게 충격효과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대신 스스로 질문하게하는 방식을 택했다. 제작진이 선택한 디지털 이미지 활용이라는 전략은 촬영할 수 없었던 지점을 시각화해주는 수단이자, 거짓말 같은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인위성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현실 자각의 도구로(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어요. 당신에게도 이 허구가 사실이 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미학의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사용한 사례였다. 이 작업은 다른 층위의 질문을 연결한다. (하와이 원주민의 지혜가 답이 될 수 있는가하는 순진한 결말은 내용에 대한 것이고, 매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기에 여기서는 제외하겠다.) VR 매체 자체가 지닌 기술이 재난과 같은 사건을 다룰때 이미지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D 영화처럼 타인의 이야기로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닌 VR이 강조해온 몰입을 통한 “현재성"과 “경험”이 내 이야기로 느끼게 해준다면 윤리적 문제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누군가의 절망과 재난을 가상 체험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걸까? 또한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디지털 이미지가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당신이 깨어난 아침>의 경우는 VR로 그 가능성을 선보였다. 왜냐하면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느낀 공포는 실제였기에 ‘가상 현실'이라는 매체를 통과하는 이야기를 제작진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리하게도 참혹함을 전시하지 않고 들려주는 방식으로 재난의 공포를 관객에게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된 논쟁인 재난의 이야기가 아름다워도 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 마무리하며 영화사의 주요한 변화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것이었다. 때론 예술가들의 미학적 측면이 기질을 발휘한 순간들이 있지만 진보의 동반자로서 영화를 이끈 데에는 기술을 사업으로 활용한 이들이 있었다. 관객의 지지와 거부가 영화사의 진행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고 상업적 생존 능력에 따라 영화는 발달되어 왔다. VR이 배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3D 꼴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VR이 꼭 영화가 되어야 하는가? 재간의 산물로 남지 않더라도, 특정한 이야기에 맞는 매체로 ‘새로운 시각화 수단’으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남는다. 어떤 이야기는 영화에, 어떤 이야기는 시리즈로 나누어 가는 것이 더 어울리듯 어떤 이야기는 VR에 맞는 것도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 것이 이미지의 윤리적 문제 모두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특정' 이야기에는 적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리스트가 완벽한 영화를 뽑는 것이 아니듯 내게는 이 작품이 다큐 미학의 새로운 형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과 이미지 매체의 윤리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서보형 감독의 < 탈날 탈 >은 한 남자가 겪는 지각의 오류, 시스템의 오류, 그리고 존재의 오류를 통해서 기이함과 으스스함을 불러일으킨다. 10분 남짓한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어느 아파트에 혼자 사는 한 남자가 야심한 밤중에 겪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다룬다. 남자는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지만, 그가 현관문 바깥을 내다봤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전등 스위치를 누르자 텔레비전이 켜지고, 텔레비전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뜨면서 현관문 도어락의 조작음이 들린다. 기이한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자가 도어락의 조작음을 듣고 현관문을 열면 잘못 배송된 소포가 놓여 있고, 그 소포를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면 소포를 받아야 할 이웃집 주민이 나타나고, 당황한 남자가 황급히 자기 집을 찾은 다음 현관문을 두드리면 묘령의 여자가 나타난다. 이 일련의 상황이 남자의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건 남자의 집에 귀신이 들려 벌어지는 일이건 간에 이 작품 속 세계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각의 오류는 이 작품을 지탱하는 첫 번째 법칙이다. 우선 이 작품의 타이틀 시퀀스에 주목하자. 검정 화면 위로 영화의 제목이 서서히 등장하는 동안 외화면을 통해 단절적인 전자음이 들린다. 여기서 관객은 영화 제목 이외에는 아무런 시각적인 정보도 얻을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의 정체를 감지할 수 있는 청각적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검정 화면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지만, 외화면의 사운드는 무언가가 있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한편으로 지시물이 지시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을 그린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영화 속에서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대응하는 사람의 부재, 도어락의 조작음에 대응하는 사람의 부재 또한 같은 논리가 적용된 경우로 볼 수 있다. 만약 관객인 우리가 이 작품에서 기이한 감각을 느낀다면 그것은 지시물의 불일치 또는 부재의 현존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관객은 이 영화 속 주인공 남자가 감지하지 못하는 이상한 시선 한 가지를 획득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그것은 남자의 시선과 무관한 듯이 자유롭게 아파트 내부를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통상적으로 극영화에서 샷-리버스 샷을 통해 관객이 특정 인물의 시선에 동기화될 수 있게 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의 일부 장면은 주인공 남자의 시선에서 벗어난 상태로 아파트 내부의 변화된 상황을 담는다. 만약 이 예외적인 장면이 주인공 남자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면, 이 작품 속에는 관객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가 부지불식간에 영화 속 현실로 틈입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이지 않으나 그 존재만큼은 분명하게 감지되는 어떤 유령적인 대상들은 시스템의 오류를 통해 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탈날 탈>에서 일상 속 대상들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스위치, 리모컨, 도어락의 기능을 통해서 암시된다. 전등과 스위치, 텔레비전과 리모컨, 현관문과 도어락은 각각 하나의 사물과 그것의 작동을 제어하는 장치 간의 연결을 통해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한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사물을 제어하는 장치들이 오작동을 일으킬 때 그 제어 장치들이 다른 사물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전등의 스위치가 텔레비전과 연결되고, 텔레비전 리모컨이 핸드폰과 연결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배치가 어그러지면서 나타나는 시스템의 오류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품 속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는 제어 장치들이 본래 하나의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의 리모컨은 저기 다른 곳에서 생산된 영상을 여기 이곳으로 전송하기 위한 창을 여는 역할을 하며, 도어락은 외부인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 만약 이러한 제어 장치들이 오류를 일으킨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대신 예측할 수 없는 다른 세계를 맞닥뜨린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어떤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와 다른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가 서로 연결되면서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 세계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 남자가 전등 스위치를 켰을 때 텔레비전 화면에 홈쇼핑 광고가 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어느 휴양지의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그 홈쇼핑 광고는 주인공 남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의 시선으로 새어 들어오고,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가 그 상품을 결제한 것처럼 만들어 놓는다. 이 장면은 주목 경제의 원리가 작동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중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여러 시청각적인 정보에 노출되어 상품을 구매하는 상황을 연상케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오늘날 대중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시스템에 포섭된 가운데 자율적인 감각과 의지를 모두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상황을 우회적으로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지각의 오류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 시스템의 오류에 대한 묘사를 거친 이 작품의 이야기는 존재의 오류를 통해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 작품의 으스스한 감각은 그것을 느끼는 주인공 남자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영화 후반부에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전자의 질문이 자아의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인 오류에서 빚어지는 것이라면, 후자의 질문은 타자의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인 오류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남자에게 잘못 배송된 택배 상자, 남자가 사는 집과 택배 상자의 주인이 사는 집의 위치가 바뀌는 상황, 남자의 집에서 나타나는 묘령의 여인 모두 남자가 속해 있는 현실의 시공간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서사적 장치들을 통해서 이 영화는 주인공 남자가 흡사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서성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주인공 남자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세계가 물샐틈없이 견고하고 안전하다고 믿었겠지만, 이미 그의 세계는 그가 통제할 수 없는 낯선 존재들이 장악한 상태였다. 관객인 우리는 이 모든 기이하고 으스스한 상황이 주인공 남자의 악몽이길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 남자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잠에서 깨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잠을 자고 싶어도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계속해서 유예되는 그 독특한 시공간적 구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령이 지배하는 그 세계에서 인간은 잠을 잘 권리 그리고 꿈을 꿀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 글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기이함과 으스스함은 마크 피셔의 책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구픽, 2019)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참고한 것임을 밝힌다. (관련글) 1.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 <달팽이>(2020), 2022.04.21. 2. 나와 유령이 함께 하는 시간 - <탈날탈>(2018), 2022.05.31. 3. 타인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는 법 - <햄스터 죽이기>(2021), 2022.06.29. 4. 얼굴 없는 영화, 등으로 말하는 영화 - <말투>(2020), 2022.07.27. 5. 사랑의 약속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 <우리의 낮과 밤>(2020), 2022.08.25. 6. 이 몸체의 주인을 찾습니다 - <매미>(2021), 2022.09.23. 7. 이것은 감자인가 아니면 고구마인가? - <감자>(2018), 2022.11.08. 8. 일상을 적시는 시간들 - <햇볕을 볼 시간>(2022), 2022.11.21. 9. 찢김의 고통을 극복할 날을 기다리며 - <자르고 붙이기>(2022), 2022.12.06.
1 인간은 영화관에 가는 동물이다. -조르조 아감벤 2 정상적인 관객은 자신이 욕망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며, 자신이 이미 인생에서 싫어하는 것을 영화관으로 보러 가지 않은 사람이다. -세르쥬 다네 3 일요일의 충무로는 처음이었다.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간 것도 처음… 한때 매일같이 충무로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충정로에 있던 회사에서 퇴근해 7011번 버스를 타고 매일경제본사 앞에서 내려 영한빌딩까지 걸어가 여자친구가 일을 마치기를 기다리던 20대 후반의 몇 년, 그리고 은평구에 있던 집에서 3호선을 타고 6번 출구로 나와 매일경제본사 맞은편에 있던 ‘동화삘딍’ 4층 사무실에서 아저씨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숨과 담배연기를 번갈아 내뱉으며 시나리오를 쓰던 30대 후반의 일 년.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그때 충무로는 내게 해질 무렵의 골목, 커피와 생맥주, 닭꼬치, 돼지껍데기, 철판스테이크, 복지리, 통북어, 하루종일 가시지 않는 지독한 담배 냄새, 낡은 당구장, 서지 않는 택시 같은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영화였고(여자친구가 참여한), 그리고 영화였다(내가 연루된). 그리고 오늘, 40대가 되어 처음 가는 충무로 역시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나를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영화. 영화들. 얼마나 다행인가? 내 영화가 아니라는 게… 4 영화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장 루이 뢰트라와 수잔 리앙드라 기그는 이렇게 요약한다.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악마의 소굴, 왕관을 다투는 시장, 배움의 장소—말하자면 감정교육, 많은 사람들의 오락, 일부 사람들의 직업, 어떤 사람들의 열정, 여기저기서 채취해 온 1-2시간의 소재, 별 아래서 보내는 온종일, 대낮 같은 밤, 어두운 밤으로 빨려드는 불빛, 친구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토론, 계속되는 이야기들, 역사의 단편, 움직임-지속의 덩어리, ‘현실’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 설정(현실을 회피하시오, 그러면 현실이 당신을 따라가고, 현실을 따라가시오, 그러면 현실은 당신에게서 도망간다!), 위험할 정도로 서로가 닮아 있는 영화 속의 얼굴과 신체들, 진부하거나 기상천외한 대상들과 풍경들, 마치 우리가 항상 살았던 듯한 느낌을 갖는 상상 속의 저택과 또 다른 화려한 저택들, 일시적인 경험, 은밀하고 격렬한 열정이나 몸짓들, 나를 끌어들이고 빨려 들게 하는 방식, 또는 단숨에 혹은 한순간에 불확실하거나 형성중인 사고나 상상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사회, 사람들이 말한 것, 타인과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꿋꿋한 시선… 5 나는 이 목록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브루스 윌리스와 니콜라스 케이지. 내게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다. 동시에 내게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기도 하다.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 블록버스터와 컬트무비와 허섭쓰레기를 오가는 그들의 긴-긴 필모그래피에서 함께 출연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그나마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 플래닛 테러 >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 데쓰 프루프 >를 ‘동시상영’으로 묶은 <그라인드 하우스> 중간에 삽입된 4편의 가짜 영화 예고편 중에서 롭 좀비가 연출한 <나치의 늑대여인Werewolf Women of the S.S.>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경우가 가장 근접함). 따라서 브루스 윌리스가 실어증으로 은퇴를 선언한 2022년 3월 31일은 영화가 죽은 날(the day the movie died)이다. 적어도 반쯤은 그렇다… 6 충무로를 다시 찾은 건 『마테리알』이 주최한 릴레이 발표대회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4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모두 여섯 명의 발표자가 발표를 한다고 했다. 토요일 한국 독립 영화 사운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 최지영(사운드 디자이너)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개의 창을 틀어놓고 / 윤원화(시각문화 연구자) 정당화하는 관점: 임흥순에 대한 불만 / 윤아랑(비평가) 일요일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 / 함연선(마테리알 편집인) 문화로서 영화: 누가 도대체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 이야기를 들을까? 당신도 / 강덕구(작가, 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 운영자) 해적질과 영화 문화 / 한민수 모두 매력적인 주제들 가운데서 특히 내 눈을 잡아끈 것은 함연선의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였다. 때마침 JD와 나는 봉준호, 홍상수, 이창동 같은 이름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관객수로 줄을 세우지도 않으면서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그 모든 영화들이 없었던 것처럼 굴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모르는 영화를 우리가 ‘발굴’한 것처럼 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행사 안내 페이지를 캡쳐해서 JD에게 보냈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수학 학원 선생님의 질문에 "화산고"라고 대답한 학생은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차라리 <스파이더맨>이라고 말했다면 괜찮았을까...?' 수치의 순간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한 사춘기 청소년은, 결국 유사-스노브로 성장하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영화 경험의 근원에는 "비천한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원고를 위해 저는 여기에 가야겠어요, 그리고 어쩌면 임창정에 대해 쓸지도 모르겠네요, 쓰고 싶지 않지만요. 쏘옥, 소리와 함께 아이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답장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는 말풍선조차 뜨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오픈 스페이스 날짜가 원고 마감일 이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원고 마감일을 어길 수밖에 없다는 말은… 7 왜 모든 영화 관련 이벤트(GV, 강연, 세미나, 기타 등등)는 내가 가기 힘든 시간만 골라서 열리는지 모르겠다. 씨네필들은 가정이 없나? 아니면 가정이 없는 것처럼 가정하고 살아가거나… 다네는 말한다. “영화 팬은? 헛되이 두 눈을 크게 껌뻑거리는 사람이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며, 프로다운 ‘영화 팬(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는 삶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는 행위들이다.” 뢰트라와 기그는 여기에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을 지으면서 최대한 아주 늦게 도착하는 것이 틀림없이 사람들이 영화 팬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나는 영화-어쩌고가 아니며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영화 팬의 핵심을 수행하긴 했는데, 짧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내가 차를 몰고 갔다는 사실은 앞서 말했다. 오픈 스페이스를 마치고 처갓집으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철거된 동화빌딩과 매일경제본사 사이에 있는 노상공영주차장(주말과 공휴일에는 무료개방)에 주차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빈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저렴한 금액으로) 주차할 곳을 찾아 빙글빙글 돌다보니 시간이 흘렀다. 결국 (구)극동빌딩 (현)남산스퀘어빌딩에 차를 세우고 오픈 스페이스가 열리는 대한극장 뒷골목의 서울지역영화교육허브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도 더 늦은 시간이었다. 문앞에 선 채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일정에 따르면 첫 번째 발표에는 2시간이 배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 을 지으면서 발표회장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설상가상, 빈자리가 없어 발표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맨 앞자리까지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으며… 8 한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발표가 끝나버렸다. 스탠리 카벨은 누구나 자신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자신의 인생이 이 시간과 장소라는 지점에 이르게 된 것, 자신의 역사가 펼쳐져서 이 방에, 이 길에, 이 곳에 이르게 된 것을 잠깐이나마 기이하게 여긴 적이 있을 것이라고 썼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질의응답이 시작되었지만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문윤기를 보았고—나와 그는 JD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실은 나와 ‘트친’인 영화평론가이고, 그밖에도 이 좁은 장소에 내가 타임라인에서 보아 왔던 사람들이 득시글하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기이함the uncanny은 영화에서는 보통의 경험이다, 라고 스탠리 카벨은 계속해서 쓴다. 도주, 구출, 우연의 만남이나 근처에 있는 탓에 인생이 변모해버리는 것—이러한 우연과 만남은 영화의 모든 장르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연한 만남은 우연한 만남일 뿐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건 또 아닌데, 모든 만남은 크건 작건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위대한’ 영화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 편의 ‘비천한 영화’는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제법 높은 확률로… 9 카벨은 음악이나 문학과 달리 영화의 경우에는 보통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를 진정으로 좋아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영화를 모른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통의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다. 카벨 스스로 이미 ‘보통의 영화’와 ‘높은 레벨의 영화’를 구분 짓고 있는 판에 하물며 ‘비천한 영화’는 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질의응답 시간에 이어진 것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몰려 있는 비천한 영화들, 혹자는 OCN 영화들이라고도 부르는 그것들이 영화 경험의 근원에 있다고 해도 그것을 굳이 복원시킬—비평적 공론장으로 끌어올릴—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왔고, 현재의 영화 담론이 특수한 세대적 경험을 보편으로 인준하는 시스템 속에서 작동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영화들을 비평의 언어로 끌어들여 담론장에 균열을 낼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00년생이어서, 02년생이어서, 90년대 후반생이어서 오늘 언급된 < 달마야 놀자 >, < 신라의 달밤 >, < 두사부일체 >, < 조폭 마누라 > 같은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인가?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나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10 항상 12살 짜리가 있는 법이고 그들에게 맞는 책이 역시 있는 법이다. 스탠리 카벨은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걸작이 아닌 다음에야, 예전 그대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어지는 카벨의 목록: 찰스 로튼과 클라크 게이블의 <전함 바운티>, <십자군>, <유니온 퍼시픽>, <새벽의 성찰>, < 캡틴 블러드 >, <알제리>, <찰리 챈>, <폭풍의 언덕>, < 스텔라 달라스 >, <킹스 로우>, <교수와 미녀>, 로날드 콜만의 < 젠다성의 포로 >, < 마음의 행로 >, < 잃어버린 지평선 >, <후아레즈>, <데드 엔드>, <모히칸족의 최후>, <부러진 화살>, <장군, 새벽에 죽다>, <밀드레드 피어스>, <오페라의 유령>, < 스트라이크 업 더 밴드 >, <비에 노래하며>, < 캣 피플 >, <환상의 여인>, <도시의 절규>, <안녕, 내 사랑>, <화이트 히트> 등 그밖에 백 여편의 다른 영화들. 카벨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 영화들과 보낸 시간은 정말 전율의 시간이나 나날이었다. 중대한 순간이었지만 아주 일순간이었다. 기억과 회상에서만 포착 가능한 시간으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다. 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오해하면 안 된다. 카벨은 지금 정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식이나 교양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인의 영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 동감 >, < 번지 점프를 하다 >, < 친구 >, < 엽기적인 그녀 >, < 킬러들의 수다 >, < 공공의 적 >, < 결혼은, 미친짓이다 >, < 후 아 유 >, < 라이터를 켜라 >, < 연애소설 >, < 광복절 특사 >, < 품행제로 >, < 클래식 >, < 동갑내기 과외하기 >, < 선생 김봉두 >, < 와일드 카드 >, < 싱글즈 >, < 오! 브라더스 >, < 황산벌 >,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 어린신부 >, < 효자동 이발사 >, < 늑대의 유혹 >, < 바람의 파이터 >, < 시실리 2km >, < 알포인트 >, < 슈퍼스타 감사용 >, < 귀신이 산다 >, < 말아톤 >, < 잠복근무 >, < 혈의 누 >, < 사랑니 >, < 광식이 동생 광태 >, < 태풍 >, < 작업의 정석 >, < 싸움의 기술 >, < 흡혈형사 나도열 >, < 음란서생 >, < 달콤, 살벌한 연인 >, < 사생결단 >, < 구타유발자들 >, < 천하장사 마돈나 >, < 미녀는 괴로워 >, < 1번가의 기적 >, < 좋지 아니한가 >, < 이장과 군수 >, < 즐거운 인생 >, < 스카우트 > 기타 등등… 이것은 내가 왓챠피디아에 평가한 1499편의 영화 중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구작순으로 필터링한 것 중에서 봉, 홍, 박, 이 등의 작품과 여기에 제목을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작품을 빼고 나열해본 것이다. 모든 영화가 내게 전율을 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한두 장면이라도 재미를 느낀 부분이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나 역시 빙크스 볼링처럼 “못 만든 영화라도 일단 빠져들면 무척 행복”한 관객이기 때문이다. 11 다시. 문제는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말하느냐다. 카벨은 모든 시대의 12살에게 맞는 공통의 책들이 있는 반면, 서로 다른 시대의 12살에게는 그때그때의 영화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걸작 리스트는 공유가 가능하지만 어쩌면 평범하거나 비천한 영화들의 리스트는 공유 불가능한 게 아닐까(“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에 대한 바르트의 구분처럼, 걸작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스투디움의 영역이지만 비천한 영화는 보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푼크툼 같은 게 아닐까? 여기에는 다양한 층위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을 위해서는 또 다른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걸작을 나열하지도, 천만 영화 목록을 훑지도 않으면서. 다시 한 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우리는 한국 사람… 12 우리가 하려는 게 비평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둬야겠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내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라 카메라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다. 오픈 스페이스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오픈 스페이스 현장을 찍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말이다. 에세이 필름을 만들어야 하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영화 그 자체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니콜라스 케이지가. 최근 케이지는 < 참을 수 없는 무게의 미친 능력 >에서 한때 잘나가던 슈퍼스타였지만 이제는 빚더미에 올라 아무 영화나 막 찍는 ‘닉 케이지’를 연기했다. 그가 자신의 광팬이자 억만장자 마약왕인 페드로 파스칼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가 예기치 못한 소동에 휘말리는 이야기라는데 내가 본 건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짧은, 그러나 영감으로 넘치는 클립이다. 으리으리한 페드로 파스칼의 집. 파스칼이 소파에 앉아 있는 케이지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케이지 고마워. (사이) 말 좀 그만 돌리고 대답해봐. 세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가 대체 뭐야?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파스칼, 결심한듯 내뱉는다. 파스칼 패딩턴 2 . 비명을 지르며 잔을 내려놓는 케이지. 케이지 뭐?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랑 <패딩턴 2>?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말은,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파스칼 영화 보는 내내 울었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고. 케이지 야, X까! 장면 바뀌면, 화면을 바라보며 코를 훌쩍이는 케이지의 모습. 나는 JD에게 링크를 보내고, 기다린다. 여전히 답이 없다. 말풍선도… *다음 책들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영화를 생각하다](장 루이 뢰트라.수잔 리앙드라 기그, 김영모 옮김, 동문선, 2005) [눈에 비치는 세계](스탠리 카벨, 이두희.박진희 옮김, 이모션북스, 2014)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