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삼각관계
- 감독
- 전하리, 유승원, 신지혜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나태주, 감태준
작년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김응산 교수 는 작품의 텍스트와 미학적 형식에 집중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퀴어영화를 연구한다. 특히 퀴어에 내재된 시간성을 반영하면서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통해 구현되는 작품들에 관심이 있으며,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의 측면에서 실험을 거듭하는 영화 작업을 포괄해 퀴어영화로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워싱턴대 아시아언어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앞서 이야기한 관점으로 1990년대 이후 퀴어영화를 분석한 결과를 담은 저서 Future Imperfect 를 집필하고 있다. 풍크툼의 관찰자에서, 퀴어영화 연구자로 강연을 제안받은 이후, 영화학자로서의 여정이 시작된 지점을 반추해볼 수 있어 뜻깊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지인께서 주신 무료 관람권을 가지고 형과 지역의 단관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개봉 작품들을 거의 다 봤을 정도로 극장에 자주 갔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영화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보다 일찍부터 영화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이 단관극장 대부분이 아쉽게도 사라졌고, 영화를 접하는 매체마저도 노트북과 태블릿, 스마트폰으로 옮겨갔지만, 극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런 아련한 추억들이 내 영화연구의 출발점이 되어준 것 같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마련해준 단관극장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영화학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준 작품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롤랑 바르트는 보는 이를 ‘찌르는 듯한’ 이미지로서의 풍크툼(Punctum) *주1 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나에게는 두 편의 장르영화가 풍크툼을 경험하게 했다. < 양들의 침묵 >(조나단 드미, 1991)은 포스터 자체가 시선을 사로잡았을뿐더러, 작품 속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인물 설정이 트랜스포비아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음을 알린 한 영화잡지의 기사, 그리고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던 작품 속 일부 장면들까지 작품의 여러 요소가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 영화를 본 후 나는 트랜스나 동성애자 등이 악인으로 등장하는 경향을 꼭 부정적으로만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의구심을 가졌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봤던 < 캐리 >(브라이언 드 팔마, 1976)도 비슷했는데, 흥미롭게도 주인공 소녀의 관점에 공감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소녀가 비극적 운명을 마주하기 전 복수를 감행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관심을 받고 모두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설정이 가슴 아팠다. 그러면서 앞서 두 작품이 안겨준 충격을 풍크툼에 빗댄 것처럼, 영화는 배우거나 보는 것이 아니라 ‘ 느끼는 것 ’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양들의 침묵>과 <캐리> 돌아보니 나는 공포영화를 볼 때 괴물이나 귀신, 복수하는 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했던 것 같다. 흔히 ‘빌런’으로 묘사되는 인물들에 자신을 동일시했던 당시부터, ‘퀴어’와 연관된 생각이나 태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 괴물 >(2023)과 같은 수작들을 지켜보면서도, 퀴어영화는 정체성을 그리는 영화, 미학적 실험을 하는 영화, 혹은 퀴어한 삶을 살아가는 관객들에 의해 재정의되는 영화 중 어떤 것에 해당할지를 깊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성소수자에 관한 서사에 국한하지 않고, 퀴어영화가 얼마나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와 삶 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례가 아직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반복되는 형식적 특징은 발견되지 않기에 이를 ‘장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엄연히 영화의 한 양태로 자리 잡은 퀴어영화를 다각도에서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동아리 차원에서 퀴어영화에 대한 정보를 담은 자료집을 만들고 관련 작품을 선정해 학내에서 상영하는 ‘이반영화제’라는 행사를 기획했다. 영화제에는 놀랍게도 아주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 안토니아스 라인 >(마린 고리스, 1995), < 화분 >(하길종, 1972), 그리고 대사의 구성 등으로 볼 때 퀴어문화의 맥락에서도 무리 없이 해석될 수 있는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등의 작품을 상영했다. 이외에도 즐거웠던 기억이 또 한 가지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 해피 투게더 >(1997)가 1997년 당시 존재했던 검열 제도로 인해 국내 상영이 불허되었을 때, 동아리 구성원들과 어렵게 테이프를 구해 학내 광장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 그러자 퀴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에 수없이 몰려들었다. 아직 영화학을 공부하고 있지 않던 시절임에도, 이렇게 영화 상영을 직접 기획하는 경험을 거듭하면서 영화의 영향력과 효과를 몸소 체험했고, 영화만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을 확인했다. 영화는 문화와 예술, 산업 등 다양한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운동’의 일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강연해주신 교수님들과 달리 나는 영화학계에 다소 늦게 입문했지만, 국내 여러 영화제에 다니며 ‘현장’ 참여를 중심으로 영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산, 전주, 부천을 비롯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와 서울인권영화제 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서울인권영화제는 제2회가 이화여대에서 열렸는데, 퀴어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 하비 밀크의 시간들 >(롭 엡스타인, 1984)을 상영할 때 경찰 인력이 이화여대를 둘러싸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시선을 발전시켰던 시간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지금의 자양분이 되어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도와준 영화제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영화학에 관한 여러 외국 도서가 유입되곤 했는데, 내가 퀴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 관련 내용을 처음 접한 경로 역시 번역서였다. ‘퀴어영화’라는 개념이 논의되기 전 게이·레즈비언 영화를 다룬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로빈 우드, 1993), 『레즈비언 게이 퀴어 영화비평의 이해(호모 PUNK 이반)』(바바라 해머 외, 1999) 등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고, 퀴어영화의 고전을 감상하면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를 관통한 또 다른 풍크툼이 된 작품들을 만났다. 먼저, < 세친구 >(임순례, 1996)는 게이 인물 한 명을 포함한 세 친구의 삶을 보여준다. 친구 한 명의 성적 지향성과 젠더 표현은 이들 사이에서 중요치 않으며, 그들은 절망한 청년들로서 1990년대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가난하고 힘겹게, 하지만 더불어 살아간다. 이를 지켜보면서, (만약 ‘퀴어성’에 대한 정의가 가능하다면) 영화의 퀴어성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성적 지향성만 해당하지는 않으리라는 견해를 갖게 되었다. “퀴어는 연대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야기한 주디스 버틀러의 말처럼, 퀴어성은 ‘누구와 연대하는지’를 결정하고 연대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는 장치 이지 않을까? 퀴어를 둘러싼 맥락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런 영화들에서 벌써 나타나고 있었다. <올리버>(닉 디오캄포, 1983)는 필리핀의 게이클럽에서 유명인을 모사하는 올리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올리버라는 인물은 성소수자이지만, 자녀를 낳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간다. 이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퀴어영화는 대부분 당사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밀도 높게 담고 있었다. 하지만 성소수자 남성이 가정을 형성하고, 그러면서도 게이라는 지향성은 잃지 않는 모습을 기록한 영상은 당시의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 게이클럽에 찾아와 올리버와 같은 필리핀 현지의 성소수자들을 착취하는 제1세계 외국인 관광객들도 카메라 너머에서 등장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관광객의 시선과 일치하고, 아동 성착취 기사와 동성 성매매로 삶을 연명하던 과거 어린 시절 올리버의 고백이 몽타주로 재배치되어 등장한다. 마르코스 치하에서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민중의 모습을 전경으로 삼아 하층민 퀴어들의 인터뷰를 담아내는 장면까지. 영화를 통해 그 착취의 행태를 관찰하다 보면, 식민주의적 억압을 자행하는 태도를 소위 자유롭고 글로벌한 게이라는 이미지로 포장하면서 제3세계 성소수자 집단 위에 군림하는 제1세계 성소수자들과, 빈곤한 현실에 부딪혀 자신의 성적 지향성에 대한 확신을 갖기도 어려워하는 현지 성소수자들이 절대 동일한 층위에서 분석될 수 없음을 지각하게 된다. 이들을 같은 종류의 집단으로 지칭하는 순간, 퀴어정치학의 본질을 망각하게 될 우려가 있다. <올리버>는 퀴어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으로부터 독립된 채 아시아 퀴어영화의 특수성을 보여준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가족 간의 유대, 가족 구성원으로서 이행해야 할 책임 등에 익숙한 아시아의 퀴어는 규범적이지 않은 자신의 정체성 혹은 젠더 표현과 자신이 속한 현실 사이에서 ‘ 타협 (Negotiation)’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퀴어와 관련해서는 자유주의적 측면에서 개인의 권리 문제를 중심으로 담론을 형성하는 서구의 관점에서 이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양태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흥미로워, 아시아 퀴어영화를 서구 이론의 틀에만 가둬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아시아 영화를 주된 연구 분야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세친구>와 <올리버> (사진: " Oliver ", IMDb) 퀴어영화의 각기 다른 얼굴을 찾아 유학 중 영화를 공부한 경험으로 잠시 주제를 옮겨보자. 사실 주전공을 영화학으로 바꾸기 전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미국 워싱턴대로 유학한 이후 퀴어이론을 방법론으로 하여 영미권 영화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토드 헤인즈 등이 이끌고 1990년대 퀴어영화의 대표적 경향으로 자리 잡았던 ‘뉴 퀴어 시네마’를 중심으로 미국의 퀴어영화를 연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토드 헤인즈의 작품 중 퀴어 및 비규범적 성정체성이 분명하게 재현되는 경우보다, 그의 영화적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퀴어미학에 더욱 관심이 갔다. 예를 들어, < 파 프롬 헤븐 >(토드 헤인즈, 2002)에서는 흑인 남성과 사랑에 빠진 여자 주인공이 이별을 통보할 때,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짧은 길이의 로우 앵글 숏으로 보여준다. 샷의 배치 역시 타인의 시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짧으면서도 히스테리컬하게 구성되어 있다. 퀴어한 인물을 바라보는 규범적 이성애자의 시선을 재현하기 위해 기존의 퀴어영화에서 자주 사용했던 공식을, 서로 다른 인종 간의 금기시된 사랑을 묘사한 장면에도 적용한 점이 아주 흥미롭다. 이렇게 영화 속 퀴어적 순간을 보다 다양한 맥락으로 조성하는 시도가 궁금해, 관련 주제로 연구를 이어갔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적 지향성에 대한 논의만으로 요약할 수는 없는 퀴어영화(특히 아시아 퀴어영화)의 미학적 특징 을 발견하고 싶었다. 대학원 과정 중에 출간한 두 편의 영어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을 그 예로 소개하고 싶다. 두 편 모두 영화의 소재를 차별화하고 미학적 실험을 거듭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한국 퀴어영화 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 줄탁동시 >(김경묵, 2011)는 내가 개념적으로만 구상했던 퀴어영화의 이론을 영화적 언어로 이미 구현하고 있었다. 한국의 퀴어영화 역시 성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담론이 아니라 미학적 대상으로 연구될 가능성이 충분함을 확신한 작품이다. 주인공 준( 이바울 )은 탈북 청소년이고, 자신의 성적 지향성과 관계없이 동성 대상 성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그는 타인에게 폭력적으로 착취당한 후 지금 보여드릴 장면에서처럼 청계천을 따라 정처없이 걷는다. 그 옆모습이 계속 롱테이크로 잡힌다. 천의 흐름을 거슬러 청계천의 끝으로 향하는 그를 보면서, 이 장면이 역사적 진보의 흐름, 즉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성애·동성애규범적 시간성의 흐름을 거스르겠다는 의지 를 함축한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특히 서구의 여러 퀴어 담론과 운동들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주의적인 접근을 강조하면서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상황적 진보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학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는 퀴어들의 삶과 미래는 어떠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 롱테이크 장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장면은 종로3가, 즉 게이 유흥업소들과 커뮤니티들이 자리한 일대에 다다르며 끝난다. 퀴어하지만 동시에 탈북 청소년이기도 한 준이, 성소수자의 공동체에 소속되고 구성원들과 소통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성소수자라는 정치화된 집단, 혹은 이들이 속한 사회 공동체를 묘사하는 영화가 ‘퀴어하다’라고 인식되었다면, <줄탁동시>와 같은 작품들은 이를 넘어선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미학적 함의 를 퀴어와 연관지어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시 위 논의를 접한 지도교수님께서도 같은 맥락에서 한국과 아시아 영화를 연구할 가치가 있음에 동의하셨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아시아 퀴어영화 연구를 시작했다. <줄탁동시> 중 <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역시 성 노동자인 여성 노인과 한국계 필리핀인(코피노) 아이의 삶을 중첩해 퀴어영화의 폭을 확장한다. 오프닝 시퀀스가 독특한데, 한국인 산부인과 의사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버리고 온 코피노 소년 민호( 최현준 )는 필리핀인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산부인과(재생산이 이뤄지고, 재생산 정치를 강화하는 장소)를 찾고, 병원 앞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주인공 소영( 윤여정 )이 안부를 묻는다. 작품 전체의 내러티브를 보더라도, 국가의 관심 밖의 영역에서 출생한 코피노가 국내 재상산 정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역설적이게도 그런 그를 거두는 존재가 재생산 정치와 가장 거리가 먼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나이 든 성 노동자라는 설정이 특별하다. 작품 말미에서는 주인공 소영과 트랜스젠더 티나( 안아주 )가 민호를 함께 양육하기도 한다. 미국 퀴어 이론가 리 에델만의 견해를 빌려 설명하자면, 미국은 재생산의 미래지향적인 측면을 이데올로기화 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왔고, 할리우드 영화는 이런 이데올로기를 적극 반영하여 소위 아동들을 죽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존재로, 지속가능한 미래성의 상징으로 그려왔던 것이다. 따라서 재생산의 주체가 될 수 없는 퀴어는 사라져야 마땅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국가의 돌봄을 받지 못한 코피노 아이의 상징적 재생산을 돕는 주체는 퀴어 이다. 미국 내 주류로 자리 잡은 퀴어이론으로 동시대 퀴어영화를 비평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죽여주는 여자> 중 위의 여정을 토대로 정립된, 퀴어영화에 관한 나의 연구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간의 매체인 영화가 ‘퀴어’라는 개념에 반영된 시간성 을 표현하는 방식이 궁금한데, 특히 1990년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의 퀴어영화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미학적 실험 을 분석하고 싶다. 그리고 미국 중심적으로 해석된 뉴 퀴어 시네마 이론을 아시아 퀴어영화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관습에 저항하려고 한다. 최근 대두된 지역 영화 (Regional cinema)라는 개념을 퀴어의 측면에서 구체화해, 아시아 지역의 퀴어영화를 보다 객관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연구할 것이다. 더불어,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공유되는 규범상으로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개념인 퀴어는 영화에서도 절망 또는 실패의 형태로 나타나며, 유토피아적 상상력 을 통해서만 성립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며 그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퀴어만의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변태적 시간성’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성애중심적 가치관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타협 과 돌봄 , 그리고 취약한 타인에 대한 연대 를 실천하는 퀴어의 면모를 영화에서 더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싶다. 미학적 실험, 타협 및 돌봄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아시아 퀴어영화 연구의 방향성 미래불완료의 아시아 퀴어영화, 계속 꿈꾼다 집필 중인 저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 주제를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다. Future Imperfect , 즉 ‘ 미래불완료 ’라는 제목이다. 미래에 완료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를 미래불완료라는 (존재하지 않는) 시제로 설명할 수 있다면, 아시아 퀴어영화의 성격이 이와 유사하리라고 생각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퀴어문화를 제도권 안에서 존중하려는 노력이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어서, 그 안의 퀴어영화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동원한 판타지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의 형식적이고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아시아 퀴어영화는 앞으로의 변화 양상을 짐작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미래불완료 시제의 주체가 되는 영화 양태에 속한다. 그만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방식으로 발전하리라는 기대가 가득하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퀴어는 ‘ 시간 ’과 분리해 논의할 수 없는 개념이므로, 저서에서는 시간을 조작해 선보일 수 있는 매체인 영화가 이를 담기에 아주 적합하다는 점을 설명하려고 한다.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개념으로서의 유토피아가 현실에서 문득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푸코가 제시한 ‘ 헤테로토피아 *주2 ’가 몇몇 퀴어영화에서 공간성으로 구현된 사례도 기록했다. 한편, 파울 클레의 회화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를 본 벤야민은 ‘ 역사의 천사 (der Engel der Geschichte) *주3 ’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진보하는 시대를 따라 날갯짓하면서도 수많은 상처로 얼룩진 과거로 시선이 향해 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천사의 모습에는 동시대 퀴어영화의 숙명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 일종의 진보라고 볼 수도 있으면서 실제로도 진보라는 이름으로 선전되곤 하는 동성혼 합법화 등, 퀴어를 존중하는 제도 한 가지가 합법화된다고 해서 다양한 계급과 차이를 가진 퀴어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가 펼쳐질 수 없고, 그들은 늘 어딘가에서 차별로 인해 고통 받았거나 받을 것이다. 그리고 퀴어 안에서도 계급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거나 혹은 성소수자로서 생활하기에 보다 안락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과, 끊임없는 착취의 굴레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차이는 더욱 도드라질 것이다. 따라서 갈수록 규범화되어 가는 퀴어의 영화적 재현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 상의 실험 을 통해서, 그리고 퀴어라는 개념이 포용할 수 있는 집단 혹은 주체의 저변을 확장 함으로써 퀴어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이렇게 진보적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존재들을 모두 아울러 더 나은 세상을 일구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퀴어의 윤리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에 이 윤리가 상당 부분 구현되었음을 추후 연구와 저서를 통해 계속 전달하고 싶다. 2000년대에 가까워지며 영화 촬영과 감상의 매체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여러 감독이 각자의 특색을 반영한 퀴어영화를 다수 발표해왔다. 아시아 곳곳에서 활동 중인 그들 덕분에,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미학적으로 실험을 거듭하는 작품들이 선을 보일 수 있었다. 특히 태국의 툰스카 판시티워라쿤 감독은 태국의 역사나 현실을 고발하는 장면을 그와 관련 없는 다른 쇼트와 병치하는 등 퀴어성과 정치성을 결합하는 독특한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퀴어가 태국사회에 정착된 규범을 거스르는 데 기여하는 방법을 영화로 탐구하는 흥미로운 창작자이다. 한편, 퀴어한 영화에 대한 작업으로 국내에서 돋보이고 있는 창작자로서 임철민 감독도 언급하고 싶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퀴어한 촬영과 편집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 프리즈마 >(2013)의 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값비싼 촬영기기 없이 단순 용도의 짐벌이나 핸드헬드로 구현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선보이며 부드럽게 유영한다. 사실 촬영 당시 짐벌이 고장 났고, 이를 수리할 여건이 변변치 않았던 임철민 감독은 고장 나서 제멋대로 돌아가는 짐벌을 가지고 하나의 쇼트를 촬영해봤다고 한다. 보시는 바와 같이 결과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임철민 감독은 <프리즈마>를 포함해 이렇게 우연과 실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그 실험성으로 인해 배급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작품들을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작품의 형식뿐만 아니라 유통 면에서도 퀴어한 방식으로 시스템에 저항하면서, ‘ 실패 ’가 곧 미학적 실험의 성과 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이다. <Santikhiri Sonata>(툰스카 판시티워라쿤, 2019)와 <프리즈마> 마지막으로 퀴어영화에 대한 재미있는 리메이크 사례를 소개하며 강연을 마치고자 한다. 이성애자인 남성 주인공의 연인이 숨진 후 남성으로 환생한다는 설정을 가진 < 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2001)는 몇 년 전 국내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원작 시나리오 작가분께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리메이크에 반대하면서 제작이 무산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은 태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서사로 리메이크된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동성으로 환생한 연인과 이성애적 관계를 이어가고자 죽음을 택한다. (사실 동성애 금기에 관한 통념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리메이크작 <듀, 우리 함께 떠나자>(추키얏 삭위라쿤, 2019)에서는 본래 동성 연인이었던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숨진 후 이성으로 환생하고, 이들은 동성 연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고자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인물이 지향하는 관계에 대한 설정을 완전히 뒤바꿨다. 여기서 한국 또는 아시아 퀴어영화의 특징이자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국이 아닌 어딘가에서 얼마든지 퀴어한 영화로 재탄생하며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그 영향력을 이어가는 힘. 한국 퀴어영화에도 그 힘이 가득하다는 점을 믿고, 응원해 주시기 바란다. <번지점프를 하다>와 <듀, 우리 함께 떠나자> * 질문과 답변 * (질문1) 퀴어영화 연구를 위해 영화학과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의 이론을 도입해 간학문적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듯하다. 다만 여전히, 해당 이론들만으로 아시아 퀴어영화를 완벽히 연구하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 도중 이와 같은 이론적 공백 을 발견하게 되신다면 보통 어떻게 대처하시는지가 궁금하다. (답변) 말씀하신 대로 퀴어나 영화이론 자체가 영어권 중심으로 논의되어왔고,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퀴어이론에 대한 영미권 학자들의 저서를 번역하며 느낀 아쉬운 점을 역자 후기에 남기려고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새로운 담론이 원활히 생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곳이 영미권이며 퀴어영화 연구도 거의 미국 중심으로 이뤄져온 터라, 그간 형성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는 이론적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영화의 텍스트 로 돌아간다. 이론 자체는 서구에서 발생한 논의를 참고하더라도, 이를 반박할 근거를 영화 텍스트에서 찾는다. 작품 속 다양한 재현 양상,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영화의 특이성, 한국영화에서 타협과 가족이 중요한 이유 등을 살피다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텍스트는 영화 분석의 필요조건이다. (질문2) 임철민 감독의 작품처럼 미학적 실험으로서의 퀴어영화들의 사례를 알려주셨다. 영화적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작업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상영되는 장소로 ‘ 미술관 ’도 자주 언급된다. 혹시 퀴어를 소재로 한 미술 작업 중 눈여겨보신 사례가 있을까? (답변) 이 자리에 와 계신 김경묵 감독님께서도 몇 년 전 대안공간 탈영역우정국에서 VR과 AR 매체를 이용한 개인전 <QUARANTINE: 독방의 시간>을 개최하신 것처럼, 퀴어영화의 무대가 꼭 영화관이 될 필요는 없다. 임철민 감독 역시도 자신이 제작한 작품들이 ‘퀴어영화’라고 생각하고 영화제에 출품하고자 했지만 퀴어 관련 국내 영화제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퀴어영화의 성립 조건을 주로 동성애나 트랜스 재현 관련 내용으로만 한정하고 있는 국내 영화제의 한계가 드러난다. 임철민 감독도 그랬듯이 이 작품들은 오히려 미술관에서 상영의 기회를 얻었고, 많은 퀴어영화 감독 및 작가들이 미술관과 협업하며 자신의 작업을 공개할 대안적 공간 을 찾고 있다. 이런 기회들이 지속적으로 마련되어야 작품들 간의 유의미한 ‘차이’가 보전 되어 퀴어영화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3) 대학에서 한국영화사 강의와 영화사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계시다고 말씀해주셨다. 영자원의 데이터베이스 KMDb의 영화글 카테고리 중 ‘ 한국영화의 퀴어한 허구들 ’이라는 코너에서는, 그간의 한국영화에서 시대적 한계 등으로 인해 미처 드러나지 못한 퀴어적 측면을 발견해 분석하고 있다. 혹시 선생님께서도, 한국고전영화 작품들 중에서 퀴어와 관련하여 맞닥뜨리게 되신 풍크툼 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신재영) (답변) 현재 집필 중인 저서에서는 1990년대 이후의 영화들만 다루지만, 이후에는 한국영화라는 주제를 더욱 자세히 다루고 싶다. 한국고전영화 중에서도 퀴어한 순간들을 다수 포착할 수 있다. < 화분 >(하길종, 1972)처럼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 여사장 >(한형모, 1959)에서는 규범화되지 않은 여성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성애의 맥락에서만 해석되어온 < 자유부인 >(한형모, 1956)에서도 아주 재미있는 순간이 등장한다. 극중 자유부인 오선영( 김정림 )은 처음으로 비어홀을 찾았다가 서구식 무용을 화려하게 선보이는 무희를 바라보고 크게 놀라며 깨달음을 얻는다. 자유부인이 각성하는 계기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유부인의 내면에 있던 욕망이 여성 무희를 봄과 동시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 이어도 >(김기영, 1977) 역시 재생산을 언급하면서도 작품의 중심에는 여성 집단이 있으며 여기서 길러진 남자 아이들은 출가한다. 이성애를 규범으로 인정하고 재생산을 목표로 삼은 사회의 통념을 역이용한 서사로, 충분히 퀴어적으로 해석될 만한 텍스트이다. 이외에도 퀴어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한국고전영화에서의 순간들이 아주 많다. 여러 연구자분들께서 또 다른 사례를 활발히 발견해주신다면, 후에 이를 성실히 인용하며 연구를 이어가겠다. (상) <자유부인> 중 무희의 춤에 놀라는 오선영 / (하) <이어도> 중 (질문4) 현재 춘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데, 올해(강연일 기준 2024년)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와 < 딸에 대하여 >(이미랑, 2023)를 상영했다. 흥미롭게도, 상영 이후 관객들 대다수가 잘 만들어진 ‘가족영화’라는 감상을 전했다. 강연에서도 말씀해주셨지만 아시아 , 특히 한국 퀴어영화 는 가족 과 연결지어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다.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답변) 가족을 중시하는 아시아 문화를 고려할 때 아시아 퀴어영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겠지만, 한국에서 특히 짙게 나타난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 시인의 사랑 >(김양희, 2017)에서 볼 수 있듯이) 이성애 규범에 따르며 가족을 이룬 이들도 삶의 특정 ‘상황’에서 퀴어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이들을 규범화된 이성애자로만 인식할 수는 없음을 짚고 싶다. 퀴어를 논할 때 오직 당사자의 정체성(이성애자, 동성애자 등)으로만 퀴어 여부를 판단하려고 하는 본질주의적 태도는 지양 해야 한다. 한국 퀴어영화의 가족을 이해할 때 역시, 위와 같이 퀴어적 순간을 경유한 인물이라면 현재 소속된 가족에서 이성애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폭넓은 관점에서 ‘퀴어’로 바라볼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퀴어영화에 관심을 가진 관객들에게, 정체성 정치만으로 퀴어의 영역을 재단하는 경향으로부터 이제는 탈피하기를 권하고 싶다. <시인의 사랑> 중 *** 주1. 롤랑 바르트가 저서 La Chambre Claire (밝은 방, 1980)에서 사진과 관련하여 제시한 개념이다. 바르트는 사진의 관찰자가 지닌 개인적 측면을 건드리며 그를 찌르거나 뚫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우연적 요소로서 풍크툼을 설명한다. 관찰자는 사진 속 풍크툼을 통해 자신을 사적 개인으로 인식한다. 주2. 미셸 푸코가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말과 사물, 1966)에서 처음 설명한 개념으로, 현실의 장소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과 반하는 가치를 가지는, 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현실화된 유토피아’와 같은 의미를 지녔으며, 푸코는 이를 ‘헤테로토피아’라고 명명했다. 주3.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0)’라는 글에서, 파울 클레의 작품에 묘사된 천사는 진보의 폭풍에 떠밀려 날갯짓하고 있기는 하지만, 폐허가 된 과거의 잔해더미를 바라보며 마음 아파한다고 말한다. 미래로 향하는 진보의 흐름이 거세더라도 상처받은 과거는 치유되지 않은 채로 잔존함을 암시한다.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파울 클레, 1920)
(... 전편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돌아가서 인터뷰를 먼저 읽기 바란다. < 몽녀 >에 관한 글은 전편과 후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글은 후편에 해당한다. 나는 같은 설명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음 이어서) 1968년 임권택 은 입체영화 <몽녀>를 찍었다. 나는 만들었다거나, 연출했다거나, 라고 말하는 대신 찍었다, 라고 썼다. 물론 이 말 사이에 어떤 위계 질서를 세우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언가 기술적인 측면에 방점을 찍고 싶다. 무엇보다 먼저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의 절차를 차례로 밟아 볼 생각이다. 먼저 신문광고를 보았다. 그때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첫 번째 순서는 신문 하단에 실려 있는 개봉 광고를 보는 것이었다. 거기 영화제목 <夢女>만큼 큰 글자로 ‘立體映畵’라는 카피가 자리 잡고 있다. 내 눈길을 끈 것은 <몽녀>의 마케팅 포인트가 ‘입체 영상’이 아니라 ‘입체 음향’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그 아래 ‘한국 최초로 시도되는 4본 츄럭 입체음향’ (물론 ‘츄럭’은 ‘트랙’의 당시 표기이다)이라고 ‘기술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문구는 영화광고 지면의 맨 위에도 다른 서체로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이재웅 녹음기사의 이름으로 “관객에게 피로를 주지 않는 선명한 영상에 완벽한 입체화면, 입체 음향. 등골이 오싹하는 장면들이 많은 본격적인 입체음향, 4본 튜럭을 겸한 완전 입체영화이오니 임신부나 심약한 분은 동반하시길...” 이라고 충고하는 카피를 덧붙였다. (아래는 ‘츄럭’이라고 쓰고 바로 위에는 ‘튜럭’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두 가지 이상한 점. 이재웅 녹음기사는 지금이나 그때나 영화 현장에 있는 스텝들 이외에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이름이다. 하긴 그건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 설국열차 > 혹은 < 올드 보이 >, < 밀양 >, < 피에타 >,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의 녹음 기사 이름을 들어는 보았는가. 그런데도 <몽녀>는 주연 배우나 감독의 이름 대신 녹음 기사를 내세워서 광고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경우는 (내가 알고 있는 한) 말 그대로 ‘前無後無’한 일이다. 두 번째, 만일 카피에 내건 이름이 무언가를 보증하는 것이라면 이 문구에는 연출(과 촬영)의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냥 녹음 기사의 이름으로 “오싹하는 장면들과 선명한 영상”을 보증하고 있다. 카피의 목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에게 어떤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카피를 전적으로 믿는다면 <몽녀>는 사운드로 연출된 영화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우리는 지금 <몽녀>를 ‘4본 츄럭 (혹은 튜럭)’으로 감상할 수 없다. 현재 보존하고 있는 네가의 손실에 사운드트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판스코프와 장석준 촬영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두 번째 ‘입체영화’를 찍은 임권택 에게 돌아오고 싶다. 1968년에 임권택은 네 편의 영화를 완성했다. 그런 다음 이듬해에는 6편을, 그리고 70년에는 8편을, 71년에는 7편을 찍었다. 그 자신은 “완성한 영화들이 개봉이 밀려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4년간 25편을 찍은 건 사실이다. 임권택은 창작에 대한 아이디어와 열정에 넘쳐나서 (그의 전 작품 중에)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영화를 이 시기에 찍은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피로에 지친 상태였다. 몸의 피로. 시간의 피로. 지쳐버린 이미지. 무시무시한 속도. 아이디어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도. 막다른 골목. 이어지는 현장. 임권택은 지나간 것에서 나와야했지만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건 그저 그때 그의 영화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 안에 있으면서 임권택은 영화가 무언가에 침범당하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새로운 테크놀로지들. 영화는 테크놀로지가 변하면 문법이 바뀐다. 한국영화는 새로운 스펙터클을 찾고 있었다. 기술의 진보. 기존의 기계를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릴 때 영화는 미래주의의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다.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이동. 그 와중에 놓인 해. 1968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단 한 가지. 그건 그 이전과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다. < 요화 장희빈 >은 이미 임권택이 만들어온 사극이지만 이 영화는 그의 첫 번째 칼라영화이다. 물론 그 새로운 이것임, 이 기술에만 놓여있던 것은 아니다.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반공영화지만 희미하게 구원이라는 테마가 종교의 말씀에 이끌리고 있다. < 돌아온 왼손잡이 >는 임권택의 세 번째 ‘다찌마와리’영화지만 여기서 그의 영화 전체를 뒤덮다시피 하는 신체훼손의 테마가 불려 나온다. 만일 이 또 다른 새로운 이것임, 에 대한 새로운 짝이 없었다면 < 잡초 >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위험한 가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화 안에서 느껴지는 영화 자체의 감각에 대한 불안이다. 새로운 시스템. 잘 작동되지 않기 시작하는 영화의 지각 장치들. 그 사이를 에워싼 다음 무언가 닫혀버린 듯한 장치들. 자기 앞에 놓인 영화의 구역이 자기에게 친숙함 속에서 낯설어지는 경험. 임권택은 그것을 익혀야만 했다. 무언가 그가 여기서 새로운 것을 해냈다기보다는 어쩐지 이 영화들에는 배움의 태도가 느껴진다. 그리고 3D 영화 < 몽녀 >가 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나는 아직도 3D 영화에 대해서 적대적이다. < 아바타 >에 대해서 일제히 흥분했을 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단지 영화가 너무 시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 영화가 보여준 3D에서 어떤 영화적 흥분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공격처럼 느껴질 것이다. 천만의 말씀. 나는 논쟁을 하기 위해 지금 이 말을 꺼내든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반문하고 싶다. 3D는 영화에 무엇을 부여하였는가? 생명? 글쎄. 상상? 천만에. 거기엔 정반대의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 그건 당신도 알고 있다. 사유? 어쩌면. 그렇다면 어떤 사유? 여기엔 다시 어떤 관념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무엇인가를 말하는 대신 무언가를 보여주려들 때 나타나는 그저 물리적 운동들, 드러난 흔적선, 거기서 나는 단지 프레임의 변주를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대신 어디에선가 쇼트가 중단되었음을 느꼈다.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너무 섣부른 것이라면 적어도 영화라는 시간의 멈춤, 거기서 비롯된 모종의 고통, (그렇다) 무언가 멈춰버린 답답한 쇼트 안에서 다소의 피로를 경험하였다. 나는 여전히 3D를 볼 때마다 두리번거린다. 좌표체계들의 질서로 다시 배치된 프레임. 새로운 조건, 이때 내가 여기서 보는 질서는 동시에 (재난이라는 의미에서의) 카오스이다. 새로운 질서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창조를 보는 대신 무언가 떠오르다가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어떤 실패를 본다. 나는 아직 이 실패를 설명할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때 무엇이 어른거리는가. 새로운 이미지? 아, 이미지. 그런데 어떤 이미지? 공간의 새로운 경험. 그렇게 다시 경험이라는 말이 영화에서 우리들의 중심에 들어섰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기술의 경험이라는 문제는 영화에서 까다로운 질문이다. 만일 누군가 3D 효과의 가장 훌륭한 예를 요구한다면 (3D기술로 찍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힛치콕의 < 현기증 >에서의 줌 인 트랙 아웃을 선택할 것이다. 역사적 전환기에서 현재의 생산조건이 예술에서 실현가능한 발전경향을 보여주는 것은 종종 미학적 가치의 기준과 시장의 교환가치 사이에서 모호한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모든 가능성의 잠재성. 어쩌면 내게 당신은 그 잠재성과의 거리에서 가능성의 상상이라는 능력을 다시 조절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 몽녀 >를 말하기 위해서 나는 다소 우회하고 싶다. 잠시 멈춰 세운 1968년. 모두가 물어보았다. 21세기 영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3D는 오래 전에 시작되었지만 < 아바타 > ‘이후’ 만큼 전세계적인 (자본과 그에 얽혀든 노골적인) 구경거리가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점점 더 자기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를테면 2013년, 할리우드로부터 (겉으로는) 영화 예술을 방어하기위해 예술가들을 위한 파티처럼 ‘골치 아픈 작가’들의 영화를 모아놓는 칸 영화제가 3D 영화 < 위대한 개츠비 >를 개막작으로 초대하였고, 경쟁하듯이 이어지는 베니스영화제가 역시 3D 영화 < 그래비티 >를 마찬가지로 개막작으로 발표하였다. 3D영화에는 한 가지 신화가 있는데 그건 지금 막 발표한 ‘아무도 보지 못한’ 새 영화가 이제까지의 어떤 3D 영화도 기술적인 이유로 구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라는 소문이다. 물론 그건 빈 상자이다. 마치 진짜 선물을 감춰놓은 최후의 상자처럼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열고 또 열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차라리 이미지의 경험이라는 문제를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IMAX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많다. 그건 시네마스코프만큼 생각해볼만한 영화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연설명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당신은 내게 냉소적으로 반문할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IMAX를 볼 수 있는 스크린이 없잖아요. 나도 알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당신의 지적은 사실이다. 게다가 이 화면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자리에서 IMAX 스크린으로 고정시킨 것이며,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영화 전체를 IMAX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IMAX 체험이라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영화적 체험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의 물신적 체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는 다소 짓궂은 담론의 교란이 음산하게 떠돈다. 잘못 잡아당긴 재앙의 실. 그때 테크놀로지는 비판적 거리를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거대한 가치와 이윤율의 회전 사이 안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예술에서 기능이라는 문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영화에서 우리를 새로운 환경, 낯선 속도, 무언가 시선이 얽히고설킨 가운데로 데려다 놓는 것처럼 보일 때 거의 동시에 어떤 영화적 능력이 마비되고 있음을 동시에 느껴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기능이 속도를 갖기 시작하면 다른 능력은 감속하기 시작한다. 나쁜 경우는 그 능력이 제로가 될 것이다. 문제는 21세기 영화에서 오로지 산업적인 이유로 두 가지 테크놀로지가 배급 구조에 따른 (제한된 자본 순환구조 안에서 일반적 이윤율의 하락을 상쇄하는 새로운 제 요소 중의 하나로 강제적으로 결합시키려는) 극장 라인의 요구에 따라 기형적으로 결합하면서 오히려 영화의 모든 잠재성은 하나의 감각으로 수렴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자본의 운동. 3D 영화는 초과잉여가치의 발생인가, 아니면 (관객의 자리를 일시적으로 제한된 시간 동안 제공하는 자리를 바탕으로 한) 임대업의 상승인가. 그 자리를 차지한 시각적 스펙터클. 말하자면 영화의 입장에서 IMAX 3D는 일종의 스펙터클한 괴물이다. 나는 이것을 벤야민의 말을 빌려 와해된 시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와해된 시장에서는 오락만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기 드보르는 여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덧붙인다. 스펙터클이란 고도로 축적되어 이미지가 되어버린 자본이다. 자본은 미학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마틴 스콜세지의 < 휴고 >를 보았다. 멜리에스의 환상적인 타블로 안에서 재현된 3D. 베르너 헤어초크의 < 잊혀진 꿈의 동굴 >을 보았다. 프랑스 남부 아르데스 협곡 안에 자리 잡은 쇼베 동굴 안에 자리 잡은 3만 2천 년 전의 동굴 벽화들. 그 사이를 외롭게 떠도는 3D 카메라(들). 빔 벤더스의 < 피나 >를 보았다. 피나 바우쉬의 제자들의 기억과 재현. 종종 무용수들은 2차원을 벗어나듯이 도약한 다음 중력이 잡아당기는 무게에 따라 원래의 화면으로 돌아갔다. 픽사의 < 토이 스토리 3 >를 보았다. 나는 단지 효과라는 점만 고려한다면 3D는 애니메이션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에서 보는 새로운 차원에 대해서 금방 호기심을 잃어버렸다. 3D 영화는 실재의 감각을 가져야만 한다는 명제를 여기서 확인한다. 프란시스 포드 콧폴라의 <트윅스트>를 보았다. 이 야심적인 뱀파이어 영화는 다만 부분적으로만 3D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명백히 이 영화는 장 엡스탱의 < 어셔가의 몰락 >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 엡스탱의 포토제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 그 속에서 창조된 시간. 영화와 물리학은 정말 만날 수 있을까. 이미지의 부피와 표면, 길이와 지속. 그러나 콧폴라는 그렇게 멀리 가는 대신 몇몇 시퀀스에서 꿈을 바라보며 멈추었다. 스필버그의 <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을 보았다. 무언가 스필버그는 이 새로운 효과에 대해서 망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 쥬라기 공원 >의 3D 트랜스퍼 버전을 보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3D 효과에 심취한 팀 버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와 흑백 3D < 프랑켄위니 >. 하지만 나는 팀 버튼이 여기서 정확하게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겠다. 리안의 < 라이프 오브 파이 >를 보았다. 아, 리안. 영리한 리안. 매번 시퀀스마다 새롭게 다시 정의되는 3D의 (프레임 속의) 이미지들. 그는 극장을 마치 갤러리처럼 활용하였다. 연출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큐레이팅이라고 부르고 싶은 배치들. 나는 의자에 앉아있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배회를 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떠도는 배에 실려 함께 부유하는 스크린의 프레임들. 리안은 거의 영화를 멈추기 직전까지 끌고 간 다음 관(람)객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재빨리 멈추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이 영화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걸 영화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수상쩍게 쳐다보고 있다. 서극의 < 용문비갑 >을 보았다. 이미지 속의 (이미지 속의 (이미지 속의)) 유희들. 과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운동들. 과도할 정도로 배치된 특수한 순간들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동선. 비검(飛劍)의 선. 능공허보(凌空虛步)의 선. 마치 공장에 들어온 것 같은 톱니바퀴들의 향연. 하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3D 영화들이 만들어지면 (그 원래의 의도에 따라) 2D로 볼 수 있는 기회가 함께 제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D로 ‘하여튼’ 본다. 물론 그건 그 영화에 대한 전적인 내 예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즐기기 위해서 극장에 간다. 물론이다. 거기서 무엇을 즐길 것인가. 흥미로운 것들. 영화 안에 있는 영화적인 것들. 우리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질문은 더 이상 투명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투명하지 않았다. 3D 효과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거기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덧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영화의 이야기 진행에서 사실상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렇다고 맞받아치고 싶을 것이다. 물론 미메시스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 영화에는 이상하게도 미메시스로부터 독립적인 그 무엇이 거기에 머물기 시작한다. 거기서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이미지들의 수수께끼. 바로크적인 재현들. 영화의 테크놀로지는 종종 재현의 디테일과 만날 때 새로운 경로들과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때로 영화의 매너리즘을 재촉할 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논의를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3D 영화를 볼 때 이 효과가 영화의 일부라기보다는 이상하게 3D 라는 효과가 영화에 침입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단지 이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영화 안에 강제적으로 이 효과를 삽입하면서 벌어지는 기계적인 외설적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차례차례로 만나게 된 3D 영화들. 새로운 효과들, 기발한 상황들. 낯선 미장센. 그 안에서 물건들의 이상한 이동. 때로는 동선. 기괴한 카메라의 위치. 이 질문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3D 효과는 영화에 근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 효과는 이차원의 착시를 이용한 이제까지의 영화 문법에 대해서 외설적일 뿐만 아니라 난폭한 부름에 우리를 지속적으로 깨어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종종 장르적인 외피 때문에 3D 효과가 환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효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단지 이것은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을 방해하는 외부적인 공간 감각의 재현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미지가 우리들에게 감각의 방어선을 찢고 외상적 실재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3D 영화를 볼 때 보는 자세를 조금만 흐트러트리면 곧장 쓰고 있는 안경과 스크린의 이미지 사이의 시차적 초점이 맞지 않아 화면이 이중으로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안다. 3D 영화를 볼 때 (감상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당신은 꼼짝도 하면 안 된다. 고정된 시선만이 당신의 감각을 입체적인 화면 안에 집어던져 넣을 것이다. 그때 당신이 견뎌야하는 자세와 맞바꾸는 것은 < 아바타 >의 제이크 설리처럼 마음껏 화면을 뛰어다닐 수 있는 환상적인 착시의 자유가 아니라 반대로 화면 사이에서 부딪칠지도 모르는 미장센들 사이의 모서리와 추락할 지도 모르는 가장자리들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시뮬레이션의 감각들이다. 점점 더 영화와 나 사이의 동일화는 단지 상상적 자아에 호소하기보다 실재적 감각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싶다. 작품과 나 사이의 거리가 지워질 때 우리는 작품으로부터 심미적인 감흥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이 질문이 고전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낙천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영화와 당신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 하려고 동분서주하였다. 내가 망연자실해진 것은 올해 여름이다. 지금 무심코 지나가고 있지만 2013년은 어떤 표지판을 갖게 될 것이다. 미학적 논쟁은 프랑스 남쪽 니스 근처의 해안가 칸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LA의 영화제작자들은 그런데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거의 눈부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3D 영화들. 무엇보다도 두 편의 영화. JJ 에이브럼스의 < 스타 트렉 다크니스 >와 길레르모 델 토로의 < 퍼시픽 림 >은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 그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전까지 그저 공간의 깊이와 대상의 근접이라는 문제에 머물렀던 영화들에서 이 영화들은 쇼트의 기형화와 리듬의 왜곡이라는 새로운 영역 안으로 침입하기 시작했다. 명백히 이 영화들은 여전히 부분적으로 클리셰들이 머물고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엔 < 맨 오브 스틸 >처럼 끔찍하리만큼 유치한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 반대로 두 편의 실패작을 말할 차례이다. < 7광구 >와 (한국영화 사상 첫 번째 풀 3D라는) < 미스터 고 >는 영화로서 뿐만 아니라 3D 효과라는 면에서도 재난에 가깝다. 나는 이 말을 하면서도 망설여진다. 영화와 영화의 효과. 그 둘을 분리해서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론 그들은 기술적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하이테크한 기술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효과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왜 그들은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일까. 누군가는 마케팅 전략에 책임을 떠넘길 것이다. 물론 그럴 지도 모른다. 지난 봄부터 바보 같은 영화들이 차례로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므로 <미스터 고>는 실패할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나는 박스오피스에 관심이 없다. 내가 말하는 실패는 그 효과가 왜 대중들의 구경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냐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왜 그 효과들이 영화 화면의 좌표 안에서 선별된 변수들 바깥으로 빠져나와 종종 물리적이거나 단지 역학적인 기능 이외에 달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영화는 프레임의 집합 안에 머물지 않으면 곧장 영화 자체를 부수기 시작한다. 제임스 캐머론은 < 아바타 >에서 (종종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시각적 영역을 서사의 범주 안에 종속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가 지닌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서 일종의 방어선 같은 것이 되었다. 물론 종종 바보 같은 영화들이 그걸 뛰어넘어서 화면 바깥 어딘가에서 어른거리고 싶어 했다. 혹은 손에 잡힐듯 한 그 무언가를 신기루처럼 허공에 멈춰 세웠다. 허공에 떠 있는 건 자막만으로 충분하다. 3D 영화들은 프레임으로부터 이미지의 일부를 바깥으로 내 보내는 대신 어디서 멈춰 세워야 할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영화에서 새로운 영토이자 구역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new Zone’이라고 다시 정의하였다. 새로운 개념의 발명. 이때 핵심은 3D 영화는 스스로에게 어떤 한계를 설정할 것인가, 라는 그 경계의 설정이 미학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악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내가 던진 돌이 거기서 멈출 것입니다, 라는 태도. 혹은 당신을 향해서 던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는 결정. 처음 3D 영화가 나왔을 때 모두들 결국 이 테크놀로지는 스포츠 중계와 포르노로 귀결될 것이다, 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적어도 아직은)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당신은 3D 모니터가 대중화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떤 경고가 담겨있다. 모두들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 장르가 둘 다 3D 영화를 이끌지 않은 것은 영화와 관객 사이의 방어선처럼 놓여 있는 둘 사이의 간극을 넘어서는 순간 대중들의 상상은 중단되고 신기루와 같은 효과를 채우는 그 기능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D 효과도 사실상 시각적 착시 효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만일 이 착시를 보충하는 상상을 포기하게 되면 반대로 감각은 그것을 확인하려 들 것이다. 영화에서 결국 터치(touch)라는 문제가 불려나오게 되었다. 이제 3D 영화는 바로 그 거리를 어떻게 미학적으로 다시 결정하느냐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Etant donnes : 1. la chute d’eau, 2. le gaz d’eclairage Two Home Homes [Top: ‘Two Home Homes’ - split-level entrances, 1966; Bottom: ‘Two Home Homes’ ground-level entrances, 1966] 단지 질문만을 붙들고 늘어진다면 우리들의 논의는 왠지 영화와 미술 사이의 친밀성에로 되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이제 제법 많은 목록을 갖게 되었다. 만일 3D IMAX를 떠받치고 있는 자본의 토대를 무시하고 그저 순진하게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나는 이 테크놀로지가 오히려 인스톨레이션에서 훨씬 더 창조적인 역능을 가졌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예. 마르셀 뒤샹이 20년 동안 남몰래 제작해 온 <주어진; 1 폭포, 2 점등된 가스등>에서 마치 핍 쇼 공간처럼 옮겨놓은 광경은 우리들에게 뚫린 구멍 너머의 (시각의) 원뿔을 제시하고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와도 같은 자리에 불려간 관객. 문 너머의 스펙터클. 그 안에서 뒤샹은 르네상스 원근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구멍 너머에 있는 광경 안의 대상을 우리에게 던져놓은 다음 다시 한 번 시선이라는 원근법의 기하학을 미술관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이때 나의 관심은 새롭게 정의 내려진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개념이다. 차라리 우리는 이 작품을 3D 로 보는 편이 더 뒤샹의 시선 안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두 번째 예. 1966년 댄 그레이엄의 사진 작업 중 <미국을 위한 집; 스콜릿 레벨과 그라운드 레벨, 두 개의 집이 있는 집>을 보고 있으면 이 두 장의 사진은 (뉴저지에서 레디 메이드한 미니멀리즘의 코드를 드러내려는 의도와 상관없이) 얼핏 유사해 보이는 둘 사이에서 서로 겹쳐지지 않는 차이를 통해 단지 건축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상호간의 매우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지표 사이의 상호작용을 읽어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두 개의 사진을 3D 화면으로 올려놓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든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세 번째 예. 빌 비올라의 비디오 프로젝션은 영화를 빌려온 다음 고스란히 영화에 수 없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1996년 작품인 <교차>. (나는 의도적으로 백남준의 예를 들지 않았다) 비올라의 작품에 대해서는 수많은 다른 이론을 전개할 수도 있다. 명백히 마샬 맥루한의 이론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다음 비올라는 빛과 프로젝션 사이에서 보는 자리를 다시 배치하였다. 물론 비올라는 자신의 작업이 매체에 지나치게 다가가는 것을 경계했다. 여기서 미술 비평가들이 끌어낸 개념은 외상적 숭고란 칸트적 개념이었다. 숭고.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 이미 라캉이 물 자체라고 정의 내렸던 그 경험 안으로 지각이 방문할 때 3D 스크린은 우리를 환상과 실재 사이에서 게임을 제안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Bill Viola - the Crossing 너무 멀리 온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 몽녀 >를 바라볼 생각이다. 3D 효과의 가능성이라는 질문. 아직 질문이 잠재적인 가능성으로만 남아있었을 때 임권택 의 선택. 산업 안에서의 선택. 장르 속에서의 선택. 판스코프 촬영으로 찍은 첫 번째 입체영화 < 천하장사 임꺽정 >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두 영화 사이에서 입체 기술의 효과가 보여주는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혹은 거기서 얼마나 더 나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걸 보지 못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임권택도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입체영화는 특수(라고 해야 장난감 안경 수준에 양쪽에 서로 다른 레드와 블루 셀룰로이드를 프레임에 붙인) 안경을 착용해야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만일 개봉당시에 보지 못했다면 관람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3D 영화에 대한 별다른 경험을 갖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3D 영화의 전문가들은 3D 효과는 기술적인 문제이지만 동시에 경험에 대한 데이터의 문제라고 조언한다. 아마도 임권택이 <몽녀>를 만들었을 때 장석준 의 조언은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때 장석준은 임권택에게 영화에서 이미지의 입체라는 효과에 대해서 무슨 조언을 했을까. 내 질문은 단순하다. 그 말에 따라 임권택이 가정한 효과의 연출이라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 가짜 박인호 인숙 (이하의 글은 스포일러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지금 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다) < 몽녀 >는 광고 문구에서 자기 장르를 ‘推理 怪奇 映畵’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다소 장황한 줄거리. 자수성가한 재계의 거물 정 사장은 카바레 라스베가스의 사장이자 밀파간첩인 리나에게 가짜 유언을 녹음하도록 협박을 당한 후 살해당한다. 목소리만 남은 아버지. 그런데 그 목소리에 담긴 가짜 증언.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장례식 날 정 사장이 평소에 아끼던 박민호가 일본에서 급히 귀국하지만 중간에 속임수에 빠져 호텔로 유인당한 후 가짜 박민호에게 역시 살해당한다. 가짜 상속자. 결혼을 위임받은 가짜 사위. 하지만 이 두 개의 씬은 연달아 붙어있고, 어떤 인과관계로 엮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무언가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본 다음 가장 이상한 것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 말고 정 사장은 더 이상 영화에 어떤 존재로서 뿐만 아니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이 영화가 추리일 뿐만 아니라 괴기영화라는 것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아버지의 존재뿐만 아니라 이름으로서도(name-of-the father) 사라졌을 때 유령의 존재는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몽녀>는 <햄릿>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제대로 매장되지 않았을 때 억압은 어디서 귀환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유령은 어디서 출현해야 하는 것일까. 실망스럽겠지만 이 영화는 초자연적 현상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때 3D(와 입체음향) 효과는 어디에 개입할 수 있을까. 그 효과들은 영화 안에서 어떻게 시청각적 기호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임권택 과 장석준 은 귀신을 버린 대신 무엇을 얻은 것일까, 혹은 얻으려는 것일까. 악당들의 목표이자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있는 정 사장의 금괴. 가짜 박민호는 장례식에 참석한 후 가짜 유언에 따라 사업을 물려받고 정 사장의 딸 인숙과 결혼을 준비한다. 가짜 박민호는 인숙의 호의를 사면서 집에 입주하마자마 한편으로 매일 밤 (정 사장이) 금괴를 숨겨놓은 지하실을 뒤진다. 아, 지하실. 언제나 지하실. < 사이코 > 이후에 언제나 비밀은 그곳에 있다. 접근해서는 안 되는 경계선으로서의 계단. 이때 이 거대한 저택에서 지하실은 이상하게도 마치 오랫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장소처럼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 차 있고 종종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이 상황은 장르적인 약속이다. 박찬욱의 < 스토커 >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넓은 일층. 그 자체로 완전하리만큼 충족된 장소.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지나치게 좁고 작은 인디아 스토커의 방에 도착한다. 상자들로 가득 찬 그녀만의 세계. 그리고 마치 다른 집에 온 것만 같은 온통 먼지에 가득 찬 채 전깃불도 제한적으로 들어오는 이상한 지하실. 영화에서 지하실이라는 공간의 역사. 가짜 박민호는 지하실에 금괴를 숨겨놓았다고 확신하고 매일 밤 지하실로 내려간다. 물론 우리도 같이 내려가야 한다. 유감스럽지만 나는 현재의 (탈색현상으로 이미지의 정보 손실이 크고, 사운드 코팅이 벗겨져 심지어 대사조차 불분명하며, 일부 쇼트가 사라졌고, 권수가 뒤바뀐) 프린트 판본으로는 지하실의 미장센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지하실에 내려갔을 때 가짜 박민호가 마주치는 장르의 두 가지 컨벤션은 말해야겠다. 하나는 고양이이고, 다른 한 명은 이 저택의 식모이다. 아마도 도둑고양이. 인숙은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다. 그 집 주인이 기르지 않는 동물을 누가 그 저택에서 기를 수 있을까. 마치 금괴를 지키기 위해 지하실에 머무는 듯한 고양이. 거의 말이 없는 여주댁. 그녀는 밤늦은 시간 불도 켜지지 않는 지하실에 왜 내려온 것일까. 가짜 박민호는 이 집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야만 했다. 지금 이 게임은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가짜 박민호와 리나가 음모를 꾸미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들은 금괴라는 유혹에 이끌려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볼 수 없는’ 이상한 집에 끌려 들어온 것이다. 잉여지식으로서의 지하실. 그때 우리는 원근법을 잃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원근법. 새롭게 세워져야 할 타블로. 임권택 (과 장석준 )이 3D 효과를 전시하기 위해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하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때 임권택(과 장석준)은 지하실 세트를 설계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지하실이 과도하리만큼 직선으로 이어진 수직선의 공간이며 이 선을 따라 카메라는 트랙 위에 올려져서 안정적으로 후진하거나 전진한다. 이동이라는 깊이. 인물은 그 선을 따라 동선을 연결하고, 카메라의 렌즈는 인물과 소실점 사이에서 이동할 것이다. 이 직선을 따라서 여러 개의 방이 양쪽 좌우로 늘어서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지하실은 불가능하다. 이때 이 설계가 소실점을 가정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점과 선으로 이어진 공간. 이 공간을 찢고 등장하는 고양이의 무규칙한 동선과 지하실로 내려오는 계단이 놓인 문이 몇 개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는 여주댁의 예상치 않은 방향에서의 출몰. 누가 누구를 홀리는 중일까. 임권택의 쇼트는 여기서 이상하리만큼 길어지고 있다. 아니, 감각적으로 늘어지고 있다. 나는 이 늘어짐, 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카메라의 이동이 요청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라도 하듯이 늘어지고 있는 중이다. \ 성우와 인숙 물론 이야기가 계속 지하실에서 진행될 수는 없다. 가짜 박민호가 지하실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밤사이에 잠깐 뿐이다. 인숙은 자꾸만 지하실로 내려가는 가짜 박민호을 의심한다. 물론 이 의심의 외설적 판본은 명백하다. 왜 당신은 이렇게 예쁜 나를 내버려두고 밤마다 지하실에 내려가는 것인가요? < 몽녀 >에서 임무와 욕망 사이의 교차는 이상하게 서로 뒤엉키고 있다. 가짜 박민호는 리나가 인숙을 없애버리자고 제안할 때 망설이면서 두 번이나 전혀 예상치 않은 답변을 한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지, 불쌍하더군, 그 애만은...” 임권택 은 이 감정을 더 발전시키지 않지만 그 감정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인숙은 처음부터 가짜 박민호에게 호의를 갖지 않았으며, 계속 의심하고, 그런 다음 집에 들어오자 아버지의 비서였던 성우의 품에 안기면서 “무서워요, 절 좀 지켜주세요, 그 사람을 집안에 끌어들인 것도 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기 위해서였어요. 성우씨”라고 간절하게 고백한다. 이때 이상할 정도로 3D 효과는 완전히 작동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과 장석준 )은 3D 효과가 감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심지어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물론 이건 지금도 3D 영화들의 고민이다. 이야기의 진행 때문에 할 수 없이 3D 효과를 멈춰야하는 순간과 마주칠 때 3D 영화들은 단지 이미지뿐만 아니라 리듬 자체의 변주를 경험하게 된다. 베르너 헤어조크와 빔 벤더스는 소재의 힘을 빌려 이 순간을 피하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를 불균형하게 만들었다. < 위대한 갯츠비 >는 그런 의미에서 거의 효과의 재난에 가깝다. < 몽녀 >가 기괴해지는 것은 그 다음부터이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법칙들의 적용. 한쪽이 기울기 시작한 진행. 균형을 잃을 때 보게 되뇩오鵑贊?위치의 시선. 낯선 반응. 영화는 환상에 이끌리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만 정신을 잃는다. 그 다음의 진행. 인숙이 의심을 품자 가짜 박민호와 리나는 그녀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면서 한편으로 정신병을 유발하는 약을 먹여 최면 상태에 빠져서 금괴를 숨겨놓은 곳을 자백하도록 유도한다. 그때 리나는 정 사장의 목소리를 가짜랜옇링榕底?인숙에게 전화한다. 전화로 정 사장은 인숙에게 “나다, 아버지야, 애비 소릴 몰라, 감춰둔 금괴 말이다, 나쁜 놈들이 그걸 노리구 있어, 그걸 빼앗기면 안 된다, 아무래도 그 장소는 마음에 걸리거든, 장소를 옮겨서 다른 곳에 숨겨두라구, 알았지” 라고 말한다.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뒤집힌 햄릿의 버전. 죽은 아버지가 돌아와서 인숙에게 말해준다. 나쁜 놈들이 금괴를 노리고 있으며, 그들이 네 곁에 있다는 사실. 가짜 박민호와 리나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실상 아버지의 진짜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중이다. 인숙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인숙을 속이기 위해서 사용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경유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주고 더 나아가 목표마저 고백하고 있는 중이다. 죽음에 머물지 않고 돌아온 아버지(의 목소리). 딸이 염려되어서 돌아온 아버지. 그때 음모를 진행하던 리나는 이상한 대사를 한다. “프로이드 정신분석이 없었다면 이런 약을 만들 생각조차 못했을 거야” 나는 거기서 멈춰 섰다. 물론 나도 안다. 이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은 진지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인숙에게 사용된 것은 일종의 최면술이다. 프로이드는 장 마르탱 샤르코의 최면술에서 영감을 받긴 했지만 곧 버리고 자유연상법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가짜 박민호는 이때 인숙에게 착각을 심어주기 위해서 정 사장이 살아생전 아끼던 꽃병이 놓인 책상 다리를 미리 자른 다음 인숙이 지나가자마자 쓰러져 깨지게 만들고 인삼차를 타려는 그녀보다 앞서 부엌에 들어가서 설탕과 소금을 바꿔친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는 인삼차에 소금을 탄 다음 자기의 실수를 발견하자 흐느끼면서 “이러다 미친 여자가 되고 말 거예요, 광인이 돼버릴 거란 말이에요”라고 말한다. 마치 리나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인숙은 자신의 증세를 스스로 진단을 내린 다음 그 증세 안으로 자기를 밀어 넣기 시작한다. 텔레파시와도 같은 조응. 여기서 이상하게도 나는 임권택 이 영화에서 3D 효과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건 단지 눈속임이 아니다. 이미지의 새로운 유형.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임권택은 그걸 영화의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이미지의 알리바이. 하지만 임권택은 그런 다음 두 번 다시 입체영화, 혹은 3D 영화를 찍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 가정을 더 밀고 나갈 수 없다. \ 만일 < 몽녀 >가 복원된다면 나는 오로지 그 다음 장면, 그러니까 인숙이 대낮에 마치 홀린 듯이 길거리로 나간 다음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걸어가는 시퀀스 때문에 (불편한 입체 안경을 무릅쓰고)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 이 장면은 이상할 정도로 시적으로 찍혔다. 한산한 초여름의 서울 시내. 넋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인숙. 초점 없는 산책. 육교 위를 수평으로 걸어갈 때 다소 기울어진 수직으로 보이는 차선. 수평의 동선과 수직의 운동. 인숙이 걸어가는 방향과 반대방향에서 다가와 스쳐 지나가는 무심한 동선들. 서로 다른 속도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공존할 때 만들어지는 화음. 그녀가 한적한 길로 접어들자 뒤쫓아 오던 리나가 그녀 곁에 차를 대고 “아니, 인숙씨 아니세요, 타세요,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셔다 드릴께요” 라고 호의를 베푼다. 서울 외곽으로 이어지는 풍경들. 1968년 서울의 3D 풍경. 리나는 인숙에게 친절한 척 가장하며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신경쇠약이라고 들었는데 하루 속히 고쳐야죠, 잘못하면 정신이상이 될 수도 있어요, 무서운 병이죠” 인숙은 그저 앞만 바라보면서 대답한다. “고치지 않겠어요. 고칠 수가 없어요” 리나는 인숙을 끌고 부평 기찻길까지 데려간 다음 인숙에게 말한다. “기적소리를 들으면 이상한 충동을 느끼곤 하죠. 가령 기차를 향해 뛰어들고 싶다든가” 그러자 인숙이 터널을 바라보면서 대답한다. “그렇군요,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함께 기찻길을 따라서 걸어가던 리니는 갑자기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기차에 인숙을 밀어 넣는다. 인숙의 죽음. 이때 인숙은 두 번 몽녀가 된다. 한번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할 수 없는 아버지의 유령에 시달리면서 빠져들 때이고 (꿈꾸는 여자), 두 번째는 그녀 자신이 죽은 다음 가짜 박민호 앞에 잠옷을 입고 나타날 때이다. (꿈으로서의 여자) 인숙이 죽은 다음 유령이 되어 다시 찾아올 때 그녀를 보는 것은 그녀를 살해한 리나가 아니라 그녀를 “죽일 필요까진 없다”고 설득하던 가짜 박민호이다. 심지어 고양이가 달려들 때 가짜 박민호는 해골을 본다. 만일 < 몽녀 >에서 의학적으로 정신이상에 빠진 인물이 있다면 그건 가짜 박민호이다. 이 이상한 증후의 인과관계. 물론 죽은 (흉내를 내고 있는) 인숙은 리나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리나 송, 내 목을, 내 목을, 리나 송, 내 목을”이라고 반복해서 읊조린다. 두려움에 질린 리나는 가짜 박민호에게 말한다. “우린 신경쇠약에 걸렸나 봐” 리나는 인숙에게 뒤집어씌우려던 증세가 자신들을 덮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자 가짜 박민호는 이상하게 대답한다. “일 년 육 개월의 남반부 생활이 그렇게 만든 거야” 가짜 박민호는 신경쇠약이라는 진단을 재빨리 인정한 다음 그 원인을 남반부 생활에 돌린다. 나는 약간 웃음을 참아가며 이 대사를 따져들고 싶다. 그들의 신경쇠약은 자신들이 살해한 정 사장이나 혹은 그의 딸 인숙때문이 아니다. 또는 제한된 일정 안에 찾아서 북에서 온 공작원에게 넘겨야 했던 금괴 때문이 아니다. 같은 말이지만 그들의 임무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의 신분을 숨겨야하는 긴장에서 온 것도 아니다. (마지막 시퀀스까지 그들의 정체를 간첩과 연결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대공수사본부의 감시와 평행 편집될 뿐이다) 그들은 북한에서는 (적어도 신경질환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들을 억압하는 건 ‘남반부의 생활’이다. 휴전선 이남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들 신경증 환자이다. 그러므로 환자들의 일상 안에서 사는 건 가짜 박민호와 리나에게는 그들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령을 마주하게 할 만큼 고통스러운 삶이다. 아, 가련한 남반부의 삶이여. 물론 그 다음은 예정된 수순을 따라간다. 리나를 인숙의 유령으로 착각한 가짜 박민호는 그녀를 살해한 다음 혼자 빠져나와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과 접선한다. 하지만 이미 대공수사본부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고 가짜 박민호는 급히 차를 몰고 달아나다 그만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죽는다. 간단한 에필로그. 인숙과 성우는 정보계장을 만난다. 두 사람에게 정보계장이 그들의 공고를 치하하자 성우는 “모든 것이 인숙씨의 기지로 성공 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정보계장은 인숙에게 “아닌 게 아니라 어제 밤 유령노릇 하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라고 덧붙인다. 인숙은 “반납하겠어요, 이십세기 유령”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보계장에게 청첩장을 주고 함께 떠난다. 끝. 임권택 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은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교훈? 물론 임권택이 영화에서 새로운 기술적 환경에 대해 적대적이 된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5년 뒤에 < 증언 >에서는 한강 철교 폭파를 일본 스텝진의 도움으로 미니어처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영화에서 특수촬영의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 춘향뎐 >과 < 취화선 >에서 사용된 CG 효과. 끝내 미루기는 했지만 101번째 영화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디지털로 촬영했다. 영화에서 테크놀로지는 까다로운 문제이다. 새로운 기술들은 가까스로 만들어진 미학적 규칙 안에서 어떤 훼손들 사이의 긴장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종종 진화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때로 미학적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임권택은 여기서 3D 효과라는 것이 영화 안의 형식적 용법들을 거의 중단시킬 뿐만 아니라 이야기 안에서 인물들이 효과의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나는 현장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 몽녀 >를 보고 있으면 어떤 순간에는 필요 이상으로 효과 앞에서 연출의 방법이 평면화되거나 때로 제한적으로 멈추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에서 지나치게 테크놀로지가 압도하게 될 때 이상하게도 이미지에서 아방가르드적인 측면이 나타난다. 나는 이미 장 엡스탱의 포토제니를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이미지의 영혼을 거기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의 이미지라는 반대 방향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때 이미지는 테크놀로지로 영혼을 물화시키고 더 나아가 종종 우스꽝스러운 형식의 기형으로 말미암아 영화의 감각 전체가 마비되기 시작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임권택은 거기서 잠재적인 가능성 대신 위기를 본 것 같다. 혹은 무언가를 판단하기에 1968년은 너무 이른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몽녀>는 자문자답하고 있다. 영화에서 새로운 기술적 진화는 무엇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가. 임권택의 대답. (어떤 영화적) 효과가 멈추었을 때 (이미지의 어떤) 효과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 갑자기 영화를 기능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차라리 이런 표현을 쓰고 싶다. 영화는 이미지의 도구가 된다. 그때 영화의 윤곽이 부서질 지 새로운 구성이 시작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영화들은 새로운 문턱을 넘어섰고 대부분의 영화들은 절망적으로 부서져버렸다. 그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는 영화에서 3D 효과에 대한 질문이 올바른지에 대해서 의심한다. 과도할 정도로 많은 질문들이 3D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던져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3D 효과가 무엇을 하는 지 아는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몽녀>는 거기서 멈추었다. 좀 더 공평하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몽녀>에서 더 나아간 것은 촬영감독이었던 장석준 이 직접 연출하고 김상희 가 촬영한 < 지지하루의 태양 >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현재 프린트가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몽녀>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다시 3D 영화가 진행 중인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아마도 알폰소 쿠아론의 < 그래비티 > 이후의 3D 영화들은 이제까지의 많은 논의들에 대해서 다시 수정을 요구할 것이다. 게다가 <아바타 2>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현재진행중인 질문을 그냥 여기서 잠시 멈춘 다음 그대로 남겨 놓을 것이다. 그 대신 예상치 않은 소식을 들었다. 고다르가 첫 번째 3D 영화 <아듀, 언어에게 작별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보지 못한 이 영화에 대해서 나는 예고편 으로 대신할 생각이다. 이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계속 질문할 것이다. (계속) 1968년 85분 컬러 3D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제일영화사 각본 신봉승 촬영 장석준 , 유영길 조명 김진도 편집 김희수 음악 전정근 사운드(입체 특수음향) 이재웅 남정임 인숙 박노식 (가짜)박민호 김지미 리나 이순재 성우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씨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종종 어른들로부터 박정희 씨가 대통령이 되었던 1963년 10월에 대해서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그로부터 2년 전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있던 날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2013년 겨울이 끝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에 쓰고 있다. 말하자면 50년 전의 일. 박정희라는 이름은 당신에게 얼마나 멀리 있는 이름인가, 혹은 가까이 있는 이름인가. 나는 유령을 호명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너무 가까이 있는 이름, 멀리 떠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응답하는 이름, 그래서 오늘밤 다시 나타난 이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한다. 임권택 의 < 망부석 >은 그 해에 만들어졌다. 부디 오해하지 말 것. 나는 여기서 역사의 감각이라는 문제를 꺼내들 생각이다. 그런 다음 당신을 1963년에 데려다 놓고 싶다. 그때 조선시대는 얼마나 가까이 있었을까, 혹은 멀리 있었을까. 감각의 원근법. 1392년 태조 이성계로 시작하여 1910년 순종까지 23명의 왕조를 거쳐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로 끝난 역사. 그때 사람들은 일제 강점하를 살면서 자신들을 조선 왕조의 신민이라고 생각했으며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가 끝난 다음 한반도의 백성들은 단 한 번도 대한민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의 무조건적인 항복 이후에서야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의 삶은 너무 짧았다. 시작하자마자 한반도는 절반으로 나뉘었고 그런 다음 한국전쟁이 이어졌다. 전쟁은 휴전으로 끝났고 우리는 남한의 국민으로 살기 시작했다. 자, 모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내 이야기의 요점은 < 망부석 >이 휴전으로부터 고작 10년 후의 영화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때 한국사회는 조선으로부터 53년 후의 시간의 자리에 놓여있었다. 내가 지금 매우 위험한 논제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역사 속에서의 삶과 삶 속에서의 역사 사이의 상대성. 나는 다소 간단하게 역사에 관한 감각의 근접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다. 앞의 역사의 가장자리는 종종 뒤의 역사 안에 (여러 가지 형식으로) 흔적을 남겨놓았다. 언제나 역사는 차츰차츰 사라져간다. 약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말해보자. 기억과 사고의 교차 안에서 양태들은 오랫동안 남겨질 것이며 속성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세상에서 매듭은 하나의 고리를 만들겠지만 앞과 뒤 사이에서 그것을 묶어놓은 힘은 뒤의 자리에서 앞의 기억을 모방하고 종종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만들 것이다. 모든 세계는 두 세상의 연결이다. (혹은 다가올 세상을 셈에 포함해야 한다면 셋이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였으며, 더 많은 것을 오랫동안 남겨놓았다. 모든 관념들은 사물들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때 기억은 이미 사라진 사물을 찾아서 흔적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1963년에 남겨진 조선시대. 서울시대의 궁궐들. 사대문을 둘러싼 왕가의 무덤들. 내게 약간 문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이 말을 우회하고 싶다. 당신이 오늘 오후 경복궁 안뜰에 서서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볼 때 당신은 얼마만큼 조선을 느껴볼 수 있을까. 똑같은 의미로 1963년 창경궁에 서서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임권택 은 얼마나 가까이 조선의 왕조를 느껴보았을까. 둘 사이의 차이. 혹은 둘 사이의 거리. <망부석>을 찍기 위해서 촬영 내내 드나들었을 장소. 야외촬영은 언제나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한복을 입은 여자들. 나는 지금 이 당시의 사진을 약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다. 홀린 듯이? 그렇게 시간에 홀린 듯이. 젊은이들은 신사복을 입고 있다. 그때 나이 많은 노인들은 갓을 쓰고 나들이를 하였다. 나는 지금 세계의 이중성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질서를 자기 안에 복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세계 안에 배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개의 자리. 1762년에 시작해서 1776년에 끝나는 이야기.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부터 정조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이어지는 조선의 시간. 그리고 1963년 박정희 씨가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의 시간. 두 개의 시간 사이의 임권택의 공명. 나는 여기서 어떤 정치적인 이음새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체제. 하나의 제도, 하나의 시대가 끝날 수 있지만 사물 속에 머물고 있는 기억은 마치 그림자처럼 둘 사이의 공감의 부피를 체현할 것이다. 나는 거기서 본래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세상을 뒤덮고 있는 그림자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 그림자? 그렇다. 당신이 지금 박정희 씨를 느껴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 그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임권택은 조선을 바라본 다음 그걸 영화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야기와 그림자 사이의 인접관계. 나는 지금 지식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림자 앞에 잠시 멈춰 선 다음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껴보려는 이야기의 제스처를 바라보려는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기 바란다. 임권택은 1762년 혹은 1776년, 이때의 조선시대를 보여주기 위해 1963년 창경궁에 카메라를 세우고 그 앞에 배우들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가 제시하는 상상의 동선들. 그 사이에 주어진 어떤 질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정희 씨가 막 대통령이 되었던 그 해. 사도세자 화완옹주 정조 그 다음은 불연속성에 대해서 말할 차례이다. < 망부석 >은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뉜 영화이다. 앞부분은 영조가 칠순이 되고 기력이 쇠하자 그의 세자에게 국정을 맡기지만 임금의 자리를 노리는 화완옹주의 계략에 빠져 사도세자가 영조의 미움을 사고 뒤주에 갇혀 굶어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영조 38년인 1762년 음력 5월 13일에 사도세자가 영조의 명에 따라 갇힌 뒤 아흐레 후에 굶어죽었다고 역사에 기록된 임오화변에 바탕을 두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단지 화완옹주의 계략에 따라 영조가 속아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는 벌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때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이며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정조가 11살 이었다. 영화는 거기서 일단 중단된 다음 영조에 의해 그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이제 장성한 정조가 입궐하고 다시 시작한다. 피비린내 나는 왕위를 둘러싼 정쟁이 벌어지고 그런 다음 영화는 정조가 왕위에 오른 음력 1776년 3월 10일에 끝난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이야기가 둘로 나뉜 것이 아니다. 임권택 은 수 없이 둘 혹은 셋으로 이야기를 분할하였다. (< 왕십리 >, 혹은 < 길소뜸 >) 아니면 아예 조각조각내기도 하였다.(< 짝코 >) 그런데 <망부석>은 사도세자의 이야기와 다시 입궐한 정조의 이야기를 서로 분리하여 그 둘이 마치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을 취해야한다는 듯이 주어진 사료를 정반대의 방식으로 다룬다. 다소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망부석>은 앞의 이야기는 사료에 근거하여 그 안에서 진행되는 정사에 가까운 반면 뒤의 이야기는 오로지 영화를 위하여 지어낸 인물인 꽃봉이를 하나의 동선으로 하여 이야기를 진행한 다음 모든 인물들을 다시 역사의 사료에 수렴시키는 야사에 가까워진(다음 다시 역사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두 개의 진행. 좀 더 간단하게 하나는 아버지의 이야기(histoire/ Histoire)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의 드라마(histoire/ drame)이다. 그 둘은 11년간 서로 겹친 다음 헤어진다. 영화 <망부석>은 두 개의 시간의 교집합을 이루는 씬이 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힐 때 그의 아들이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매달려 아버지 대신 불초 소자를 벌해 달라고 매달리는 장면. 그러나 앞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질서. 왜 하나는 다른 하나가 아닌가. 두 개의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시간이 아니다. 둘로 나누어진 조선이라는 시간의 형상. 왜 하나의 시간을 둘로 나눈 다음 같은 패턴으로 반복할 수 없었을까. 나는 여기에 어떤 지식(의 영향이나 모델)이 개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왜 이 이야기는 두 개의 관점을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공유하는 것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때 두 이야기가 다른 한편으로는 영조의 시간 안에서 연속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영조 안의 두 개의 항. 사도세자와 정조. 반대로 사도세자와 정조를 연결하는 하나의 집합, 영조. 이중의 요구 조건. 왜 하나는 역사의 사료가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로 성립하지만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 등장해야만 역사의 사료 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나는 여기서 역사의 사료를 놓고 영화의 구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대신(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마치 두 개의 영화가 있는 것처럼 < 망부석 >을 다룬 다음 그 둘 사이의 상이한 방법을 통해서 조선시대가 왜 그렇게 해야만 서로 상호보충을 이루는 지에 관한 다소 의심스러운 질문을 할 생각이다. 의심? 물론이다. 나는 <망부석>이 조선시대의 역사 안에 실제로 사료에 기록되어있는 구체적인 한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종종 몽환적인 순간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이 순간들은 차례로 임권택 의 영화에서 사라져갔다. 나는 단지 이 문제가 연출에서의 진화에 따른 해결이라는 식으로 손쉽게 대답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이 순간은 점점 더 임권택의 영화 안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좀 더 정교하게 설명해야 하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앞의 이야기가 전체로 주어진 역사의 광경 안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다면 뒤의 이야기는 그 광경의 이야기가 역사의 과정을 바라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맞은편의 광경. 나는 역사 사료 안의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때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먼저 이야기의 외곽에 놓은 인물. 이 영화의 제목인 < 망부석 >은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녀는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은 다음 아들을 돌보면서 영조의 눈 몰래 남편이 세상을 떠난 그 언덕에 올라 마치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렸다는 망부석(望夫石)인 양 저승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저승을 바라보는 일.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 차라리 자기도 죽고 싶다는 간절한 표현. 그래서 제발 자기도 데려다달라는 제스처. 하지만 여기 머물러야 한다. 왜냐하면 남편이 남기고 간 아들이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들을 왕위에 올려 역사 속에서 남편을 복권시켜야 한다. 혜경궁 홍씨의 눈물에는 영조에서 정조에로 넘어가는 맹렬한 인정투쟁이 담겨있다. 영화는 계절이 바뀌어도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혜경궁 홍씨를 보여준다. 하지만 혜경궁 홍씨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이다. 만일 제목을 생각하면서 <망부석>이 혜경궁 홍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혹은 영화의 선을 놓칠 것이다. 이야기는 정 반대로 사도세자를 따라갈 때에는 혜경궁 홍씨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그런 다음 다시 입궐하여 정조의 이야기가 되었을 때는 그의 어머니로서 모습을 보인 다음 마치 다른 건물에 머물기라도 한 것처럼 만날 수 없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야 다시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제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종종 선이 끊어지는 인물. 이때 무엇이 이 연속성을 다시 이어놓을 수 있을까. 당신은 이 이야기가 역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역사가 연속성과 관련될 때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인물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말하자면 여기에는 이야기를 설명하는 두 개의 방법이 결정된 다음 여러 개의 체계로 다시 분류가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혜경궁 홍씨를 어디에 위치지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역사의 도표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우며 조각난 역사의 사료들을 하나의 연속으로 다루어야 할 때 이 선을 연결시켜주어야 할 유일한 방법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려고 한다. 역사의 사료로부터 시간의 연속으로 넘어와야 할 때, 바로 그때, 임권택 의 영화에서는, 여기에 그 사이를 연결하는 기형적인 연극이 반드시 개입되고 있다. 기형적인 연극? 그렇다. 역사 앞에서 상연되어야 하는 소극적인 역할. 그 안에서 무시해서 소멸된 것이라도 된 것처럼, 하지만 그 안에서 선택해서 다시 존재하게 불러낸 것처럼, 그 무언가가 상연된다. 이때 내 질문은 왜 그 역할이 역사의 사료 속에 존재하는 혜경궁 홍씨가 아니라 가상의 인물인 꽃봉이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임권택이 역사를 찌그러트리면서 그 사이에 채워 넣은 질서. 꽃봉이 중전 이때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역사 앞에서 (여성의) 희생이라는 방식으로 바라보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여기에는 단지 꽃봉이라는 이십대 여자의 미숙한 사랑과 자기가 넘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계급적 좌절의 따분하리만큼 반복적인 도식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건 구태여 우리가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동일한 여자들의 희생을 수많은 판본으로 거듭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반대로 꽃봉이라는 인물이 < 망부석 >에서 개연성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앞부분에서 이미 어린 정조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꽃봉은 이 이야기와 아무 관계가 없다. 차라리 그녀는 완전하리만큼 역사 바깥에서 온다. 심지어 <망부석>을 본 다음 꽃봉이가 어느 장면에서 처음 등장했는지를 질문할 때 대부분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영화에서 거의 절반이 가까워질 즈음, 영화가 시작한 지 37분이 지난 다음, 그러니까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11년이 지난 다음, 삼청동에 혜경궁 홍씨와 정조가 살고 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고 나서 영조의 노년의 외로움과 자기 아들을 벌로 사했다는 괴로움을 헤아려 (이 모든 장면들이 차례로 나온다) 중전이 주상궁을 불러 혜경궁 홍씨와 정조의 근황을 물어볼 때 그 곁에 선 시녀로 등장한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아무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꽃봉이를 이상한 방식으로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 안으로 끌어당긴다. 중전이 주상궁과 혜경궁 홍씨와 정조에 대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꽃봉이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전과 주상궁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꽃봉이는 서 있기 때문에 그녀는 하반신만 찍혔다. 그런데 중전이 일어서서 이야기의 자리를 옮길 때 카메라는 기이하게도 상대 쇼트로 주상궁을 그냥 지나쳐서 꽃봉이를 보여준다. 이 카메라의 이동은 너무 이상해서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기이하게 선을 긋는다는 인상을 안겨준다. 그런 다음 이 쇼트의 상대 쇼트는 중전을 보여주는데 이 시선이 명백히 꽃봉이의 시선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동일한 방법으로 다가간다. 두 개의 동일한 운동. 말하자면 의도적인 카메라의 동선을 보여준 다음 똑같은 방법으로 시선의 운동이 이어질 때 우리는 이 유사성이 가져다 준 관계의 기호를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이때 하나가 관계의 선이고 다른 하나가 시선의 선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두 개의 선. 그런 다음 이상한 시선의 교환이 등장한다. 중전은 주상궁에게 혜경궁 홍씨와 정조를 다시 입궐시킬 묘책을 이야기한다. 이때 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면 상식적으로 곁에 서 있는 꽃봉이를 이 방에서 내 보내면 된다. 그러나 그녀를 내 보내는 대신 그 두 사람은 갑자기 귓속말을 나눈다. 그런 다음 중전은 마치 이 비밀 이야기를 꽃봉이가 들었을까 염려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때 이 표정의 상대 쇼트는 꽃봉이가 마치 들켰다는 듯이 마주보던 얼굴을 숙이면서 시선을 피한다. 왜 그 두 사람은 귓속말을 나누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걸 관객이 들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때 꽃봉이는 이 이야기의 관객과 비스듬히 겹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단순화시켜서 관객과 꽃봉이가 동일시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꽃봉이는 역사의 바깥에서 와서 이야기의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상하게도 이야기의 중심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전부를 그녀에게 다 알려주면 안 된다는 듯한 어떤 거리가 그 사이에 개입하고 있다. 그녀는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해, 하지만 그녀가 너무 많이 알아서는 안 돼, 라는 이 거리감은 시종일관 이 이야기를 유지시킨다. 그건 마치 꽃봉이가 이 시대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심지어 나는 꽃봉이에 대해서 그녀가 존재한다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우리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 인물들 사이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서 거기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 시선의 관계는 바로 이어지는 다음 씬, 그러니까 삼청동에 중전의 뜻을 전하러 간 주상궁의 곁에 서서 꽃봉이가 정조를 처음 만날 때의 시선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주상궁과 혜경궁 홍씨가 만나는 이 씬에서 (master shot) 구도로는 마치 꽃봉이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세워져 있다. 주상궁과 혜경궁 홍씨의 대화를 보여주면서(two shot) 이어지던 쇼트의 진행은 갑자기 인서트처럼 그 두 사람을 바라보는 꽃봉이를 보여준다. 그 시선의 자세는 정확하게 관객의 시선이다. 그러나 꽃봉이는 거기서 시선을 약간 돌린 다음 그 뒤편에 서 있는 정조를 바라본다. 이때 카메라는 마치 그 시선의 선을 따라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조를 향해서 직진한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달리로 촬영된 이 장면은 마치 꽃봉이가 그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나는 이것을 도식적인 설명의 따분함을 무릅쓰고 불가능한 욕망의 시선으로 다시 번역하고 싶은 다소 위험한 상상을 하게 된다. 두 개의 선의 유사성. 꽃봉이가 중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정조를 바라볼 때의 시선 둘 사이의 유사성에서 노골적인 겹침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는 꽃봉이가 정조의 아내의 자리, 미래의 중전의 자리에 대한 드러내놓고 거기에 다가가려는 시선의 발걸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건 (조선시대에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금지된 욕망이다. 그때 나는 이 시선의 발걸음이 정조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중전을 바라보는데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것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자리의 시선이다. 그 자리가 불러일으킨 환상. 그러나 갈 수 없는 자리. 그러므로 이 시선은 죽음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이 죽음을 두 번 반복하고 있다, 물론 하나는 사도세자의 역사 속에서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꽃봉이의 드라마 안에서의 죽음이다. 두 개의 죽음. 공통점은 둘 다 화완옹주의 음모에 빠져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며, 차이는 사도세자가 모두의 시선 앞에서 죽음을 선택한다면 꽃봉이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기이하게도 사도세자와 꽃봉이는 동일한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이 둘의 죽음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도세자는 모두들 앞에서 상연되듯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때 그는 의도적으로 큰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 모든 상황이 우스꽝스럽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가 보기에 왕권을 둘러싼 이 음모와 싸움은 희극적이다. 반대로 꽃봉이는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상연되듯이 그 자리에 없는 정조를 부르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처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독약을 마신다. 나는 < 망부석 >이 두 개의 세계관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결국 하나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선 안 되는 것은 이 두 개의 이야기가 모두 영조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진행되는 음모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망부석>은 두 명의 관객이 있다. 하나는 물론 영화를 보는 당신이지만, 다른 한 명은 영조이다. 이때 둘의 차이는 당신은 이 음모의 과정을 보지만 영조는 단지 음모만을 본다. 과정 없는 음모. 좀 더 정확하게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연기되는 음모의 상연. 혹은 영조를 관객으로 한 음모의 상연. 이때 사도세자는 영조 앞에서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영조를 관객으로 하여 희극적인 상연을 한다. 그는 정말 미친 것처럼 크게 웃는다. 그때 그 웃음은 어리석게도 음모에 속아 넘어간 채 자신에게 죽음에 이르는 벌을 내리는 영조를 향한 것인지 이 모든 것이 그의 운명이 되어버린 조선 시대의 왕정 정치를 둘러싼 음모를 향한 것인지 모호하다. 반대로 꽃봉이는 이 음모의 상연에서 이쪽과 저쪽 사이를 오가면서 영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진행되는 거짓의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질서와 그 질서의 이면 사이 그 어디에도 역사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결국 역사에로 귀결될 때 이미 예정된 대로 그녀의 자리가 폐제될 것이라는 데 비극이 있다. 나는 여기서 두 개의 길을 본다. 하나는 사도세자를 다루면서 역사의 부채를 물어보는 방식이다. 이때 여기에 더해진 것은 다만 화완옹주의 음모뿐이다. 그런 다음 가려진 것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 다음 그를 뒤주에 가두어 죽음에 이르게 할 명분을 찾는 과정이다. 이때 다소 곡예를 부린다면 우리는 영조의 잘못을 화완옹주에게 떠넘겼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다음 다시 역사를 올바르게 되돌려 놓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단지 이야기의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드라마가 아니다. 올바르게 되돌려 놓는다는 것은 역사 안의 부분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개입한 화완옹주를 정조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드라마가 만들어낸 인물인 꽃봉이의 희생의 형식을 빌려 다시 역사 바깥으로 쫓아낸다는 의미이다. 이 셈을 드라마의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다가간다면 다소 공허하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바깥에 있던 것을 삭제하기 위하여 다시 바깥을 끌어들인 다음 부채를 청산하는 방식을 취할 때 이것은 인물들 사이의 운명을 놓고 벌인 대차대조표에 관한 일종의 타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관점을 취할 때 임권택 이 어딘가 모르게 역사의 대상에게 직접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외부적 장애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꽃봉이가 정조를 향해 품었던 정념이 어떤 방식으로 드라마의 구조 안에서 자기의 주체를 기형적으로 찌그러트리면서까지 대상으로 몰락해 가는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비극의 물화. 나는 역사 안에서 기형적인 연극의 상연을 위해서 임권택이 종종 인물을 찌그러트린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 망부석 >뿐만 아니라 임권택이 ‘이후’에도 줄기차게 조선시대를 다루면서 가져온 하나의 방법이다. 역사의 자리에서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이야기의 자리에서 보면 이 인물들은 방해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낸다. 이때 역사의 실존하는 인물들에게 그들은 단지 방해물이 아니다. 방해물이기는커녕 그들이 없다면 주인공들은 역사 속에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지젝이 (프레드릭 제임슨에게서 영감을 얻어) 쉘링을 끌어들인 방식으로 개념화한다면 이들은 사라지는 매개자들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 문제를 과도하게 도식화시키고 싶지 않다. 다만 이 매개자가 필요해진 까닭은 총체성의 일관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는 지적을 끌어당기고 싶다. (지젝의 방점은 일관성이지만)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방점은 전략이다. 말하자면 반대로 역사 속의 주인공들이 역사 속에 접근해가기 위해서 이 매개자의 도움이 없다면 임권택의 영화는 무언가 역사를 건드려야 한다는 돌이킬 수 없는 폭력적인 방식의 왜곡을 더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와도 같은 자발적인 망설임 앞에서 1960년대에 조선시대에 관한 사극영화를 만들면서도 (아마도 임권택과 동시대에 이 장르를 만들면서 또한 대가였던) 신상옥 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 대해서) 폭력적인 영화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또 다른 결정적인 차이로서의 (존재론적인) 폭력을 느낀다. 두 개의 폭력. 나는 1960년대 한국 사극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들이 항상 폭력적인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건 21세기 한국영화가 조선시대를 종종 우스꽝스럽게 조롱하는 것과 달리 (이를테면 두 편 모두 천만 명의 관객이 넘은 < 왕의 남자 >와 < 광해, 왕이 된 남자 >가 동시에 ‘광대’와 왕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이 시기의 사극영화들은 조선시대와 이제 막 근대가 시작된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리승만 대통령의 체제를 끝내고 다시 시작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이에서 (리승만과 박정희의 정치적인 평가와는 무관하게 근대로서의 한국이라는 자리에서) 항상 무언가 대결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또 다른 일제 강점하의 산물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시대 안에서 그 이름이 하나의 담론으로 사회 안에 언제 등장했느냐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물론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정교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이 논쟁을 하기에 적절한 자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대신 나는 여기서 다만 임권택의 사극영화에 대한 설명만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게 지적하고 싶다. 하나의 시대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사극의 태도를 하나로 묶어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자, 원래의 논점으로 돌아가자. < 망부석 >에서 꽃봉이라는 매개자는 정확하게 무엇을 방해하는가. 얼핏 보는 것과 달리 꽃봉이는 역사가 아니라 드라마의 진행을 방해하는 중이다. 이때 이 영화의 드라마는 사실상 음모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가정이지만 만일 우리가 꽃봉이라는 인물을 치운다면 즉각적으로 정조는 사도세자의 운명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것이며 혜경궁 홍씨는 그녀의 남편과 동일한 운명에 처해졌을 것이다. 이때 정확하게 멈추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당신이 정조가 왕위에 등극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완전히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어떤 난관이 벌어져도 결국 역사는 집행될 것이다. 반대로 화완옹주의 음모를 어떻게 해서든 다른 방식으로 막아야 하는 영화의 역할이라는 역설 앞에서 멈추는 것은 역사의 개입을 중단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는 음모 그 자체이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꽃봉이가 드라마 속에서는 음모의 진행을 폭로하고 그런 다음 음모 자체를 역사로부터 치우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반대로 역사의 관점에서는 꽃봉이가 음모 그 자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때 무언가 여기에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 있다. 임권택 은 꽃봉이를 매우 쉽게 정조의 곁에 머물게 하면서도 끝내 그에게 손 끝 하나 댈 수 없게 만들면서 마치 역사에 쉽게 다가가면서도 끝내 조선시대라는 역사의 과정에 손 끝 하나 댈 수 없게 만든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임권택은 조선시대를 그저 감상할 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계속 방해하다가 끝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이와 유사한 태도를 수없이 반복해서 경험하였다. 이를테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 족보 >. 나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족보>를 설명하면서 건드렸다. 혹은 < 씨받이 >와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 그런 다음 < 취화선 >. 거의 그의 영화 전부에서 내내 지속적으로 해당하는 이상한 반복. 물론 이때 이 반복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핵심은 반대로 이 반복이 동일성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균형이나 조화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임권택은 조선시대를 무언가 설명할 수 없지만 하여튼 여전히 유지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다루고 싶어 한다. 나는 < 망부석 >에서 꽃봉이가 자살하는 장면의 기괴함을 환기시키고 싶다. 꽃봉이는 화완옹주가 정조에게 건네주기 위한 독이 든 보약을 숨겨놓은 채 정조를 만나러 간다. 이 만남은 그녀의 마지막 작별인사와도 같은 것이다. 임권택 은 할 수 있는 한 그 만남을 미루려고 한다. 정조의 처소에 찾아갔을 때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은 정조의 스승인 홍국영이다. 물론 꽃봉이는 홍국영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음모의 일부인 꽃봉이는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가려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먼저 정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다음 정조는 꽃봉이에게 다가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나 사실상 음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 기다려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그 시간이 오지 않아야만 정조는 왕위에 오를 수 있다. 이 씬은 이상하게 진행된다. 꽃봉이가 홍국영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방에서 나와 정조가 그녀를 발견한다. 이때 그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정조의 시점 쇼트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적으로만 말하면 정조는 마치 꽃봉이를 보지 않는다는 듯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다음 떠나려는 꽃봉이를 정조가 부른다. 나는 이 작별장면에서 정조가 꽃봉이를 보는 시점 쇼트는 있지만 꽃봉이가 정조를 보는 주관적인 시점 쇼트가 없는 것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여기에는 정념의 쇼트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꽃봉이가 정조를 마주볼 수 있는 영화적인 쇼트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꽃봉이가 정조를 보는 쇼트는 모두 어깨를 걸은(over-the-shoulder) 투 쇼트로 둘 사이의 장면을 나누고(shot-reverse shot) 있다. 이때 정조가 꽃봉이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은 “고개를 들라”라고 말한 다음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턱에 손을 댄 다음 얼굴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전체를 통해서 유일하게 정조가 꽃봉이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이다. 꽃봉이가 내내 기다려 온 순간. 그러므로 이때의 시선은 사실상 그들 사이의 유일한 사랑의 몸짓이다. 그러나 이 순간 임권택은 꽃봉이에게 어떤 권리도 제공하지 않는다. 꽃봉은 아무런 고백도 하지 못하고 정조에게 인사를 한 다음 그 자리를 떠난다. 이때 갑자기 영화는 기이하게도 이제까지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배경음악 대신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3년에나 어울릴 법한 반주음악과 창법으로 다듬어진)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너무 이상해서 마치 우리들로 하여금 조선시대로부터 단번에 이 영화를 보고 있는 현대의 자리에로 되돌리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물론 이런 식의 현대적 버전의 노래가 사극영화에 사용된 것은 임권택의 영화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종종 이 시기의 사극영화들은 거리낌 없이 현대적 버전의 주제가를 사용하였으며, 그 노래들은 구태여 사극의 무드를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S# 1 S# 2 S# 3 S# 4 나는 < 망부석 >에서 꽃봉이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모든 것이 거의 일제히 서로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런 다음 일부가 빠져나가고, 마치 작동을 멈춘 것처럼 중단하고, 그래서 결국 무언가를 버린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다.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장면. 꽃봉이가 자살을 하기 위해 언덕에 왔을 때, 그 언덕은 사도 세자가 죽음을 당한 바로 그 장소이다. 그 장소에 꽃봉이는 서 있는 카메라 바로 앞으로 걸어온다. (S# 1) 바로 이때 저 언덕에 혜경궁 홍씨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S# 2) 나는 처음에 이 장면이 꽃봉이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장면은 환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임권택 은 그 판단을 보류한다. 그 대신 이번에는 카메라가 꽃봉이에게 다가간다. (S# 3) 그런 다음 여전히 혜경궁 홍씨가 거기 서 있는 모습을 꽃봉이가 바라볼 때 카메라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다. (S# 4) 이 시선의 교환은 어딘가 매정한 데가 있다. 꽃봉이는 혜경궁 홍씨를 바라보며 눈물짓지만 혜경궁 홍씨는 멀리서 그저 떠나간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몸짓으로 화면 오른쪽 너머 먼 곳을 바라볼 뿐 꽃봉이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무정한 롱 쇼트. 마치 꿈결 같은 세트. 나는 이 장면에서 시선의 차단을 영화적으로 다시 읽고 싶어진다. 혜경궁 홍씨는 단 한 순간도 꽃봉이를 사도세자의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꽃봉이의 사랑은 그녀 혼자만의 절망적인 환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비참한 비대칭으로 끝난다. 이때 그녀의 편에 선 유일한 존재가 영화 바깥에서 들리는 현대적 버전의 주제가라는 목소리인 것은 얼마나 암시적인가. 그런 다음 꽃봉이는 이 시대로부터 더 이상 자기가 서 있을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죽음을 선택한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임권택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시대 안에서 한계가 진행될 때 그 자체로 찌그러지는 어둡고 반복적인 상연의 폭력이라는 형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 망부석 >이 임권택 의 첫 번째 사극영화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조선시대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 다음 지속적으로 이 시대로 다시 돌아왔다. 임권택의 101편의 영화중에서 어떤 시대로 이만큼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그를 다시 불러내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마치 그는 이 시대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는 언젠가 물어보았다. 감독님에게 조선시대란 무엇입니까. 임권택 감독님은 한참을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그건 내가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내 부모님을 통해서,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통해서, 그 분들의 삶을 통해서 수 없이 들었고, 그분들의 삶의 태도를 통해서 쳐다보았고, 그래서 그걸 느껴보았고, 그런 다음 그분들을 떠올릴 때, 내가 그 시대를 그 분들과 함께 살아보았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시대인거요, 나는 그냥 그 시대를 영화로 다루고 있으면, 그게 편해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나는 여기서 편하다, 라는 말에서 멈추었다. 임권택은 불편하게 역사 속을 내내 살아왔다. 그가 태어났을 때 한반도는 일제 강점하였다. 그런 다음 좌우익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한국전쟁이 벌어졌다. 좌익의 집안이었던 임권택은 한반도가 분단으로 휴전을 한 다음 집을 떠났고, 그런 다음 내내 연좌제에 시달리며 이데올로기의 그늘 아래 숨어살아야만 했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자기가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 자기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았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거기서 아무 것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때 거기서 내가 보는 것은 한계가 아니다. 반대로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은 다음 자기의 기쐽오旻섯?방어하려고 임권택이 배치해놓은 다음 종종 기이한 방법으로 숨겨놓거나 때로는 평면적으로 보이는 구조 안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키는 굴곡을 창조해내는 영화의 장치들, 차라리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코나투스라고 부르고 싶은 추억의 기호들을 발견하고 싶어진다. 종종 이 굴곡들은 이상할 때도 있고, 때로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만들어내면서 어떤 변덕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기호들이 점점 우아해지고, 점점 더 더할 나위 없이 슬픈 정감을 떠올리면서 순수한 그 자신만의 힘을 만들어나간 것은 사실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본 다음 그는 20세기에 영화를 만드는 19세기 사람, 이라고 불렀다. 나는 <망부석>을 본 다음 임권택이 1963년에 영화를 만들면서 조선시대에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임권택은 영화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타임머신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그 기계에 동승할 방법을 익히는 중이다. (계속) 1963년 123분 흑백 2.35 감독 임권택 제작 극동흥업 각본 장천호 촬영 장석준 음악 이인권 미술 박석인 편집 김희수 이경희 혜빈 홍씨 신성일 세자 김운하 세손(정조) 최남현 영조 도금봉 화완옹주 강미애 꽃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