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영상]이윤지, 정겨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홍보대사 위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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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2015년 최초의 지역 독립영화전용관이 개관하다 2015년 2월 11일 개관한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 지역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2012년 12월, 대구민예총이 주최한 ‘자급자족 자립예술 세미나: 대구의 결핍’ 모임을 기점으로 독립영화 전용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13년 11월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설립추진모임을 1차로 실시했으나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실패, 2014년 10월 2차 설립추진모임을 통해 본격적인 개관 준비에 들어갔다. 주체는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구민예총, 미디어핀다 3개 조직이다. 추진단체가 예산을 일부 분담하고, 개인 차입, 일반 시민 모금, 좌석 판매 등을 통해 설립 예산을 마련했다. 2015년 7월,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하는 첫 설립 총회를 갖고(발기인 5명, 조합원 13명), 8월에 설립 신고를 마쳤다. 개관 6개월 차인 2015년 8월 첫 관객 프로그래머 모집을 실시해 ‘커뮤니티시네마’, ‘모두의 영화관’을 가치로 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만의 고유한 프로그래밍이 시작되었다. 영리추구보다는 문화적 다양성과 그 저변을 확대하는 공공 영화관의 성격을 지향하는 오오극장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극장이라는 점에서 극장의 연혁을 조합의 활동과 나란히 살펴보아야 하는 곳이다. 2016년부터 < 수성못 >(유지영), < 나만 없는 집 >(김현정), < 혜영 >(김용삼), < 맥북이면 다 되지요 >(장병기) 등 대구독립영화를 만든 젊은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짐에 따라, 지역영화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단체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조합원들은 최초 설립 목적에 걸맞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의 조직 전환 필요성을 느끼고 2017년 2월 28일 서성희 이사장 취임 이후 협동조합 변경 신고를 마쳤다. (2018년 11월 14일, 문화체육관광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영화 상영 및 배급,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및 미디어교육의 실시, 관련 커뮤니티 공간 및 갤러리 운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 방침에 따라 오오극장의 공간은 대구영화학교,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주도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등을 위한 장소로도 운영되고 있다. 소박하고 정겨운 커뮤니티 시네마 통유리로 된 극장 입구 대구 중앙로역을 지나 국채보상로 길에 접어들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오오극장에 들어서면 “33다방은 11시에 커피로 열어요. 55극장은 23시에 영화로 닫아요”라는 문구가 관객을 반긴다. 1개층, 1개관으로 꾸려진 오오극장은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로 지역 극장의 묘미를 전한다. 외관이 통유리로 돼 있어 카페 공간, 로비 등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입구 왼편에는 삼삼다방, 입구 정면에서 가장 안쪽에는 상영관이 위치해 있다. 상영관 좌석 수는 총 55석으로, 좌석수에 맞춰 극장 이름을 딴 경우다. 작은 좌석 수에도 불구, 앞줄 4개 좌석은 휠체어 좌석으로 마련했다. 휠체어 이동의 편의를 위해 극장 입구부터 상영관까지 문턱을 최대한 낮췄으며 화장실의 문 역시 미닫이로 설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휴관 직전까지 상영관 입구 왼편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DVD 시청각실을 운영(2석), 오오극장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에 한해 극장 로비 서가의 DVD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로비 공간의 DVD는 시민 기증,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자료들을 합한 것으로 역시 오오극장 회원이라면 2주 간 대여가 가능하다. 매년 진행하는 <대구 독립영화 연말 정산>과 <오오극장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가 오오극장이 지속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월 20일 휴관에 돌입해 4월 30일에 영업을 재개한 오오극장은 2022년 5월 현재, 운영난 타개와 시설 보수 등을 위해 상영관 리모델링 또는 이전 여부를 검토 중이다. 상영관 입구 로비 전경(좌측이 매표대 겸 카페 매대, 우측이 DVD 전시대 대구 문화의 중심지에 위치한 극장 오오극장이 자리한 곳은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2동 경상감영 일원으로 중구의 중심부인 반월당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인 대구역, 도시철도로는 1호선 대구역, 2호선 반월당역, 3호선 달성공원역을 통해 접근이 용이하며 대구광역시 중심부의 주요 도로인 중앙대로, 서성로, 국채보상로, 북성로에 둘러싸인 형태이다. 국채보상로 길을 걷다 보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대로변에서 오오극장을 등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내 2동에 자리한 110년 역사의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담벼락을 따라 북성 문화마을길이 조성되어 있다. 대구 읍성의 옛 모습과 근대역사의 흔적을 살린 이 곳에는 대구에서 활동한 화가 이인성, 지휘자 박태준, 동학을 창도한 종교창시자 최제우를 소개하는 팻말들을 줄지어 서 있다.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에 오오극장, 무궁화백화점, 북성로 공구골목 등이 위치한 모양새다. 오오극장 바로 뒤편에 자리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대구 근대역사관 등도 중구의 주요 문화시설이며, 무궁화백화점과 중앙상가를 비롯한 대구 주요 상권과도 닿아있다. 오오극장과 약 100m 거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만경관은 1922년 개관해 2018년 폐관한 대구 향토 극장 만경관이 롯데시네마와 제휴를 맺고 최신 영화관으로 탈바꿈한 시설이다. 과거 만경관, 한일극장 등과 함께 형성된 영화관 거리에 위치한 오오극장의 입지는 대구 문화가 발전한 중심지에 자리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오오극장 주변 북성 문화마을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41919)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537, 1층 2. 설립일: 2015년 2월 11일 3. 대표자: 서성희 4. 규모: 230.00m² / 상영관 크기(가로 7.60m, 세로 9.00m, 높이 3.75m) / 스크린 크기(가로 5.50m, 세로 2.30m) 5. 극장 구성: 1관, 55석 (51석+휠체어석 4석) 6. 운영시간: 10:00 ~ 22:00 (시간표에 따라 유동적) 7. 입장료: 일반 8,000원 경로, 청소년, 장애인, 멤버십 7,000원 8. 조직 구성: 사무국 (사무국장, 사무국원), 프로그래머, 홍보팀장, 재무팀장(5인) 9. 공간 구성 - 상영관 1개관 - 삼삼다방: 커피 및 음료 판매, 20석 - 갤러리 삼삼다방: 전시공간, 카페 벽면을 갤러리로 활용 지역 예술인의 작품 상시 전시 - 장애인 시설 구비: 휠체어석 4석, 휠체어 진입로 및 통로, 장애인 화장실 인터뷰: 한종해 사무국장 한종해 사무국장 김소미 _오오극장은 대구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영화관을 열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한종해 _대구 지역에 기반한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개관한 것이 2015년 2월 11일이에요. 대구의 예술인, 영화 운동 단체들이 모여 포럼을 가졌는데 독립영화 전용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대구의 여러 가지 영화적인 흐름을 이끌고 성장시켜갈 수 있는 거점이 되기를 바라며 2년 반 정도 준비 끝에 2015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인디스페이스를 청사진으로 생각하며 준비했어요. 어떻게 보면 인디스페이스와 같이 독립영화전용관들이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영에 성공하는 사례를 믿고 시작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 들어 독립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이 원활하게 이러우지지 않아 개관 직후 굉장히 힘든 시기를 3년 정도 보냈습니다. 김소미 _55석 좌석의 이름을 따서 오오극장이란 작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좌석수를 55석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종해 _시민 모금을 받긴 했지만 자금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상영관 안 좌석도 서울의 다른 극장을 통해 지원받은 것이고요. 그렇다 보니 원하는 수량만큼 좌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웠어요. 상영관을 만들만한 층고 높은 건물을 찾다가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최대한 많은 좌석을 넣는다고 했을 때 딱 55석이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랜 회의를 거쳐 극장 이름을 55개 좌석 수에 맞춰 '오오극장'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가장 환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상영관 내부 김소미 _사무국장님은 대구 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이기도 하신데요. 오오극장의 조직 체계는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지요. 한종해 _크게는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조직 체계 내에서 오오극장이 하나의 사업장 역할을 하고 있지요. 조합의 사무국장인 제가 오오극장의 사무국장도 맡고 있고요. 그 외에 사무국원, 프로그래머와 홍보팀장, 그리고 재무팀장 각 1인으로 이루어진 조직입니다. 현재 총 5명이에요. 원래는 저와 김창완 프로그래머, 노혜진 홍보팀장, 이아름 재무팀장까지 4명이서 운영했는데 최근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기 위해 사무국원을 충원했습니다. 김소미 _대로변 1층에 극장이 자리 잡고 있어 로비에 있는 삼삼카페를 따로 찾는 손님들도 있을 것 같네요. 극장 개관 당시부터 카페 운영을 계획하셨나요? 한종해 _워낙 작은 극장이라 극장만으로는 수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극장 설립 추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카페 운영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오오극장과 운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았지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삼삼오오 같이 찾는 극장으로 의미를 부여해보면 좋겠더라고요. 김소미 _1개층, 1개관으로 아담하고 소박한 공간입니다. 공간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한종해 _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로비 공간이 좀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요. 팬데믹 이전에는 감독님들, 그리고 지역 영화인들이 회의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친밀도가 우리 오오극장의 장점인데 코로나19를 겪으며 관객의 발길이 줄어들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김소미 _극장의 세부 요소를 소개해주신다면요. 한종해 _작지만 내실이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장애인 시설은 필요하다는 목표가 애초부터 확고했습니다. 지원 사업을 통해 화장실, 진입로 등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공사를 했어요.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없는 극장들이 많아서 오오극장 개관 초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꼈지요. 또 오오극장을 찾는 시민, 각종 단체들로부터 중고 DVD와 책 등을 기증받아 로비 서가에 진열해두었는데요. 비치된 DVD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세요. 지금은 팬데믹 이후 폐쇄한 상태지만, 원래 상영관 옆에 따로 작은 간이 시청각실을 운영하기도 했죠. 중형 텔레비전 하나와 좌석 두 개가 있는 방인데, 미리 신청해 서가의 DVD를 볼 수 있도록 운영했습니다. 로비 입구 DVD 전시 코너 김소미 _극장 운영 외에도 로컬시네마의 증진을 위해 오오극장 운영진들이 힘 쏟는 사업이 있을까요. 한종해 _대구시로부터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을 위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설립 초창기부터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산업적 측면에서 대구 로컬시네마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었어요. 우선 일거리가 주어져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계속 발굴이 되어야 하고, 대구에서 찍은 영화로 성과를 거둬 전국적인 감독이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지요. 그러려면 후배 양성이 필요합니다. 대구는 대학 영화학과가 단 한 곳도 없어요. 공식적인 영화 교육 채널이 없는 도시여서 바로 그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교육 기관과 미디어센터의 존재에 현재 많은 영화인들이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대구영화학교를 비롯한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인 이유입니다. 또 독립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구 지역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급할 배급 기관과 체계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고 있더라고요. 조합 차원에서 배급팀을 운영할 수 있을지, 우리의 역할도 새로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소미 _중앙로역을 지나 극장까지 걸어오면서 동네가 주는 고즈넉한 인상에 반했습니다. 오오극장의 위치에 있어 지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종해 _중구는 그야말로 대구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동네를 돌아보면 조선시대 말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 그리고 산업화 시대의 유산들이 모두 모여있고, 그건 극장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오오극장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반경 1km 내에 대구 영화의 역사가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쉬운 것은 개발 과정에서 과거 영화관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부분에 애착을 느끼고 있는 터라, 대구시 관계자, 문화예술 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대구 영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고 있어요. 보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김소미 _코로나19 펜데믹으로 휴관 이후 경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오극장을 지키고 계십니까. 한종해 _영리추구를 위한 극장이 아닌 만큼 독립영화 전용관의 중요성을 굳건히 믿으며 버팁니다. 누구나 제일 처음 영화를 찍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만들게 되는 것이 독립영화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독립영화들이 지원을 통해서 풍성한 양분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도 성장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오극장은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이 전국 각지에 더 세분화되어 존재하길 바라고, 극장이 지역 영화 운동의 구심점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창완 _대구 지역 최초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전용관이고, 올해 7년 차를 맞이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을 주로 상영하고, 대구 지역의 로컬시네마 상영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습니다. 김소미 _극장 이름, 카페명에 이어 이제는 극장 마스코트로 자리잡은 길고양이의 이름도 범상치 않네요. 어떻게 '오우삼'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김창완 _창문 밖에서 울던 고양이였어요. 직원들이 음식을 주면 들어와서 먹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여기 머물며 계속 살게 되었죠. 처음엔 오오극장, 삼삼카페의 이름을 따서 오삼이라고 하다가 오우삼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김소미 _오오극장 주변은 동성로 번화가에 비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가 유구한 곳입니다. 김창완 _동성로 일대에 형성된 대구 최대의 중심가와 가까우면서도 살짝 비껴나 있다고 볼 수 있죠. 근대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골목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의 롯데시네마가 들어선 자리는 원래 만경관이라는 오래된 극장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지어졌죠. 현재 CGV대구한일점이 된 한일극장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김소미 _대구 지역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으로서 프로그래머님의 고민과 책임감도 상당할 듯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시나요. 김창완 _막상 시기별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제 취향을 발휘할 여력은 적었던 듯 해요. 절대적 편수 자체를 적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영할 만한 영화의 숫자는 대체로 정해져 있는 식이었거든요. 기획전을 꾸릴 땐 시기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여성 영화들이 강세를 띠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고집을 부릴 때가 있었다면 ‘어떤 영화를 틀겠다’ 보다는 ‘이런 영화는 절대 안 틀겠다’ 쪽에 적용되지 않았나 싶네요. 오오극장 영사실과 작업중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 개관 기념 특별전,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기획전을 매년 열고 관객들도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김창완 _관객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매달 1번 상영하고, 1년에 한번씩은 꼭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선정한 영화들로 영화제를 엽니다. 다른 극장과는 다른 오오극장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관객 기자단은 있지만, 저희처럼 관객 프로그래머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영화제를 만들게끔 유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는 이것이야말로 커뮤니티시네마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 중 <내 배우 영업전>은 제게도 의미있는 기억이에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배우들일지라도 주목할 만한 커리어를 가졌다면 초청해서 관객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소미 _극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창완 _저희가 '오오극장의 5대 사건'이라 부르는 일들이 있어요.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 나쁜 나라 >(김진열, 2015)가 개봉했을 때 어떤 관객이 55석 전체 티켓을 구매해서 관객들에게 나눔하는 이벤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오오극장이 전국 최초였고, 이 일을 기점으로 여러 극장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나쁜 나라> 이벤트가 일어났지요. 오오극장은 김태리 배우가 신인 시절 출연했던 독립영화 < 문영 >(김소연, 2017)의 확장판을 가장 먼저 상영한 곳이기도 해요. 새벽부터 줄을 선 김태리 배우의 팬분들로 인해 4회차 상영이 모두 매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적 호러 < 무서운 집 >(양병간, 2015)도 지역 극장 중 최초로 상영했어요. 컬트 영화가 나온다면 앞으로도 적극 상영하려 해요. 컬트 영화는 특히 관객들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남달리 좋습니다. 1층 로비 유리창에 적힌 관객들의 메모들 김소미 _지난 7년간 직접 경험한 오오극장만의 공간적, 문화적 미덕은 무엇이었나요. 김창완 _솔직히 말해 오오극장은 이른바 '스펙'이 좋지는 않은 극장이에요. 가능한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프로그래머로서 미안함도 큽니다. 그럼에도 오오극장만의 장점이 있다면, 만만하고 귀여운, 문턱이 낮은 극장이라는 점이 아닐까요? 일반 극장과 마이크로시네마 사이에 위치한 극장이라고 생각해요. 관객과의 대화로 극장을 찾은 감독, 영화인들이 종종 'GV 행사 중 가장 마음이 편했던 곳이 오오극장'이라고 말씀해주기도 하세요. 무대에 선 영화인과 관객 사이의 밀착성이 남다르기 때문에 다른 극장에선 잘 못했던 이야기도 여기 와선 하게 된다는 거지요. 언제든 문이 열려 있고,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틀거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극장이라는 것도 오오극장만의 색깔 중 하나이고요. 김소미 _오오극장의 미래에 관해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김창완 _개관 후 7년이 지나 재정비할 시점이 왔다고 봐요. 장비들도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고요. 리모델링을 할 것이냐, 이사를 갈 것이냐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아요. 그러니 재원 마련이 더욱 절실한 시점입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5월 13일
2002년 | 강제규 필름 감독: 정초신 | 시나리오: 박채운 | 제작: 최진화 | 촬영: 서정민 | 프로덕션 디자인: 서명혜 | 음악: 이영호 이소윤 CAST 병철: 이범수 | 유리: 김선아 | 동현: 노형욱 | 석구: 전재형 | 상민: 정재훈 | 영재: 안재홍 아마 이 영화가 전국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한참 성적 호기심에 불타는 남자 중학생들과 여자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였던 < 몽정기 >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슬리퍼 히트’, 즉 ‘예상치 못했던 흥행작’입니다. <몽정기>의 촬영이 있던 2002년 8월 부산의 한 여중 교실은 영화 현장이라기보다는 생기 넘치는 교실 같았습니다. 창 밖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그러들 줄을 몰랐습니다. 교생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 장면. 도시락 세대의 추억이기도 하죠. “선생님,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애는 어떻게 생겨요?” 녀석들은 ‘성’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묻지만 꿈 많은 소녀 표정의 선생님은 풋고추를 좋아한다느니 하며 아이들의 짓궂은 질문을 가볍게 넘어버립니다. 겉모습은 조금 궁상맞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선생님 역은 이범수. 교생이자 과거 제자였던 김선아는 그를 사랑하는데요, 이범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스 라인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총각 병철을 짝사랑하는 유리. 그녀에게 그는 ‘영원한 테리우스’지만, 병철은 그녀에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아이들과 너무 허물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아무리 그래도 교생도 선생이야”라며 엄하게 충고합니다. 유리의 친구이자 동료 교생인 소정 역을 맡은 배우는 김기연 . < 노랑머리 >(김유민, 1999)의 상희 역으로 알려진 배우죠. 소정은 유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테리우스가 어딨니?” 짬을 내 네 명의 ‘중딩’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조숙한 아이 상민(정대훈), 그나마 똑똑한 영재(안재홍), 어리숙한 석구(전재형) 그리고 교생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 동현(노형욱)입니다. 영화에선 중학교 2학년 설정이지만, 영재 역의 안재홍(14살)을 제외하곤 나이를 꽤 먹었습니다. 정대훈과 노형욱은 18살, 전재형은 성인인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들이 모두 30대가 되었네요.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석구 역의 전재형은 이 영화의 ‘신 스틸러’였죠. 첫 영화였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 몽정기 2 >(정초신, 2005)에도 출연합니다. 노형욱은 <몽정기> 개봉 즈음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시작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졌죠. <몽정기> 전엔 < 깊은 슬픔 >( 곽지균 , 1997)에서 김승우 의 아역이었고요. 이후 < 효자동 이발사 >( 임찬상 , 2004)에선 송강호 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상민 역의 정대훈은 ‘여관집 아들 상민’ 역을 맡았습니다.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천혜의 환경인 셈인데요, 그래서 <몽정기>의 인상적인 여관 에피소드가 가능했죠. 안재홍은 < 악어 >( 김기덕 , 1996)의 ‘앵벌이 꼬마’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죠. 묘한 표정의 김선아. 이때만 해도 그녀는 영화계에선 신인급이었죠. < 예스터데이 >( 정윤수 , 2002)의 여전사 메이가 첫 영화였는데요, ‘포텐’이 터진 건 <몽정기>였습니다.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범수. 이 시기 그는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 < 정글 쥬스 >( 조민호 , 2002) 등으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흥행작 <몽정기>를 통해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잡습니다. 메이크업 중인 이범수와 김선아의 모습입니다. 이범수는 촌스럽게, 김선아는 귀엽고 청순하게 보이는 것이 컨셉트였습니다. 1988년이 배경인 만큼, 교실 뒤편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들은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소품들이었죠. 그 옆에 당시 남자 아이들이 즐겼던 종이 축구 게임판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출신으로 첫 연출작 < 자카르타 >(2000)에서 흥행을 맛 본 정초신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몽정기>를 선택했고, 흥행세를 이어갑니다. <몽정기>에 대해 “오프라인 세대의 청소년기를 위한 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종의 ‘노스텔지어 무비’라는 거죠.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1934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68세의 노익장이셨죠.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 마의 계단 >(1964) < 만추 >(1966) 등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루며 스타일리시한 촬영을 보여주었던 그는 대규모 스펙터클부터 섬세한 감성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80년대엔 이장호 감독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1990년대엔 < 개 같은 날의 오후 >( 이민용 , 1995) 같은 코미디부터 <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 신승수 , 1992) 같은 로맨스, 그리고 < 손톱 >( 김성홍 , 1994) 같은 스릴러와 < 여고괴담 >( 박기형 , 1998) 같은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셨고요. 놀라운 건 <몽정기> 이후 칠순의 연세에 < 어린 신부 >( 김호준 , 2004) 같은 ‘뽀사시’한 영상을 만드셨다는 점인데요, 서정민 촬영감독에게 불가능한 장르와 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5년, 위대한 카메라맨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001년 < 친구 > 이후 한국의 영화 현장에 ‘현장 편집’이라는 게 생겨 급속하게 보급됩니다. <몽정기> 현장에선 그 장비가 매우 간소해졌더군요. <몽정기>의 콘티 북입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콘티 북이, 어떨 땐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정교했는데요, <몽정기>의 콘티 북은 거의 ‘졸라맨’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몽정기>는 제작 초기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갑자기 투입된 정초신 감독은 시간이 없어 꼼꼼하게 콘티를 그릴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충 그린 콘티 북이 탄생했는데요, 그럼에도 영화는 ‘대박’을 기록했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춘천에서 다양한 단편영화와 독립, 예술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일시정지시네마를 만들고 운영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지역에서 독립예술영화를 볼 수 없다는 분노,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무모한 실천,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한발 두발 내딛는 인내. 참 많기도 많은 감정들을 섞으며 흘려보낸 1년이다. 크고 작은 관심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여러 영화인들과의 협업, 느릿하게나마 변화를 꾀하며 성장해가는 공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무얼 하는 공간인지 알지 못하지만 나름의 작은 성과들을 이루어내고 있다. 지역사회와 영화계에 작은 일렁임을 만들어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 문화를 정착시키고 유지해 갈지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이러한 고민들이 뒤엉켜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일시정지시네마의 방향성과 고민들.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 포기로부터의 시작 본래 일시정지시네마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건립을 목표로 했다. 지금도 그 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당시 씨네코드 선재,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의 폐관과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잠정 휴관은 공간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그리 좋은 답변을 내놓지 못했고, 마침 알게 된 곳이 이태원에 위치한 6석 영화관 극장판이다. 극장판은 영화제가 아니면 별도 채널이 없어 지속적으로 만날 수 없는 단편영화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단편영화도 유독 좋아했던 주인장은 전용관 건립이라는 거대한 꿈을 잠시 뒤로 미루고 현실적으로 운영 가능한 극장판의 형태를 벤치마킹, 18석의 작은 영화관을 만들게 되었다. 이 차선책은 도리어 시장성이 거의 없는 단편영화를 보다 더 지속적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요즘은 단편을 다루는 영화제 및 다른 단편영화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단편영화의 안정적 유통에 대한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있다. 4월 한 달간은 극장판, 자체휴강시네마와 함께 공모, 선정된 다섯 작품을 함께 상영한다. 이것이 단편영화계의 멀티플렉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독립,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것. 작년 11월, 화제의 독립, 예술영화 10편을 선정하여 상영했던 ‘굿 이브닝 시네마’를 기획할 때 즈음, 한 통의 문의 전화가 왔다. “거기에 가면 < 우리들 > 볼 수 있나요?” 나는 대답했다 “꼭 보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실제 영화 상영이 끝나고 전화했던 사람이라며 인사를 건네셨을 때, 이 공간을 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GV 현장 * 관광객들도 오가는 영상문화 공간 서울의 웬만한 구 하나보다도 인구가 적은 도시 춘천. 더 넓게는 강원도가 영화 유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남짓이라고 한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무모한 영화관 운영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로 춘천만큼 좋은 곳이 없다. 춘천은 연극, 마임, 공연 등 무대 공연예술의 잔뼈가 굵은 곳이며 춘천 가는 기차의 낭만을 업고 많은 관광객들이 유입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Romantic 춘천’이라는 슬로건에 어울리는 다양한 콘텐츠 중 영화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여행 프로그램 ‘퍼즈그라운드’를 개발, 영화가 여행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여담이지만, 여기서 만난 인연이 일시정지시네마를 운영하는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또한 지역에서는 독립예술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예술 장르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와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착안, 작년 11월에는 인터랙티브 전시 ‘흥력발전 : 즐거움, 예술을 움직이다’를 선보여 색다른 영상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지역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며 다양한 영상문화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정체성을 확장해 가고 있다. * 누구나 영화인이 될 수 있는 아지트 공간을 열고 나서 지역에 숨어 있던 재야의 고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연출 전공 취준생부터 다양한 영화를 섭렵한 씨네필 직장인까지. 보다 더 심도 깊은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즐거움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이겠지만, 지역에 대부분인 독립예술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확산시키기란 쉽지 않다. 독립예술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보는 영화보다 어렵고 지루하거나 만듦새가 깔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도 아직 예술영화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이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좋아진 이유. 나는 이런 영화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는 잘 알리지도 못하고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사라져 버리는 비정한 운명을 지녔지만, 만나기만 한다면 삶을 돌아보고 긴 여운을 선사하는 영화들. 이런 영화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고귀한 권위를 가지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좌석도 좀 불편하고, 가끔 불을 안 끄는 귀여운(?)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정겨운, 매일 지나다니는 시장골목 좌판 역할을 하는 곳이 일시정지시네마였으면 좋겠다. * 일시정지시네마는 꼭 자립해야 할까? 영화관에서 만나는 소중한 관객들은 나에게 이 공간을 지켜야 하는 명분으로 쌓인다. 하지만 명분만으로 이 공간을 지키기에는 현실적인 벽이 너무나 단단하고 높다. 나 자신에게 ‘우리가 자립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많이 했다. 답도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시작할 때부터 지원 사업을 받았고 지금도 준비를 하고 있다. 자립을 하지 못한다는 것, 어딘가에 기대야만 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괴감마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요즘은 그 질문을 바꿔버렸다. ‘꼭 자립으로 힘들게 운영되어야 할까?’ 진정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들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이 꼭 필요하다는 열성적인 지지가 있다면 당연히 국가나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일시정지시네마의 색을 잃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지원을 받아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러한 사례를 발판삼아 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 ‘봄내’라는 뜻을 가진 춘천이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시기이다. 여러모로 새로운 봄을 맞이한 이때, 더 많은 분들이 새로운 영화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영화계에 계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올해는 보다 다양한 영화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든다. 따스한 바람과 꽃향기 느끼며 영화 한 편 보시면 어떨지. 새로운 것를 만나고 싶은 당신에게 일시정지시네마는 (휴무일을 제외하고) 언제나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