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 감독
- 임대웅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오미희, 서영희, 여현수, 이지현, 박효준, 이동규, 장성원, 유설아, 김응수, 김황도, 김영선, 이광수, 문용철, 신소이, 이승진, 신동호, 강지연, 엄민혁, 연준석, 문가영, 김용운, 김태호, 박재희
사진: “ 졸업 ”, tvN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이 글을 구상할 즈음 ‘비상계엄’이 도둑처럼 선포됐다. 용감하게 국회로 달려간 많은 시민들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투를 벌인 공직자들 덕분에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한국사회의 시간은 ‘12.3 내란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지난 여름에 본 < 돌풍 >(김용완, 2024)이 떠올랐다. 한국 정치사를 압축한 것 같은 <돌풍>이 재현한 한국사회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음모와 폭로가 난무하는 세계였다. 당시 나는 이 드라마의 위험한 상상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상상은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참으로 유해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비상계엄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는 이미 비상시국이다. 먼 곳에서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기후위기가 코앞까지 도달했음을 절감했고, 경기침체로 인해 온갖 사회 지수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사회적 갈등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민자,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됐다. 마치 지구 종말 200일을 앞둔 < 종말의 바보 >(김진민, 2024) 풍경처럼. 이런 유해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자극적인 맛, 즉 도파민을 상승시킬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았다. 드라마 세계도 마찬가지다. 사적 복수극, 고자극 장르물, 이번 생은 망했으니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욕망을 실현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서사가 줄을 이었다.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바로 세우며 남편에게 복수하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원국, 한진선, 2024)가 주목을 받았고, <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2024), < 더 에이트 쇼 >(한재림, 2023),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2024) 등 사적 복수물이나 고자극 장르물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들이 예전처럼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생산되던 고자극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된 탓이다. <돌풍>, <종말의 바보>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뜻밖에도(!) 올해 가장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는 <눈물의 여왕>(장영우, 김희원, 2024)이다. 이 드라마는 ‘너무 늦게 도착한 과거’와 같은 드라마이다. ‘퀸즈’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재벌가(가부장제)를 선하고 무해한 집단으로 재현하며 무너진 퀸즈 일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 불치병과 기억상실증 등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빠지지 않았다. 위기를 통해 부부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한다는 방향성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혈연·혼인 중심 가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피로감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맛을 찾기 마련이다. 맵거나 달거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자극 드라마에 피로감을 느낀 우리는 순하고 달달한 드라마를 도피처 삼아 그 세계에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눈물의 여왕>은 그런 우리의 필요를 잘 반영했기에 진부한 설정에도 선택을 받은 것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선재 업고 튀어>(윤종호, 김태엽, 2024)나 시원하고 무해한 제주도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웰컴 투 삼달리>(차영훈, 김형준, 2023~2024) 등도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 “ 눈물의 여왕 ”, “ 선재 업고 튀어 ”, tvN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 곁에는 서로를 구원함으로써(쌍방구원) 위로를 전하며 치유적 기능을 한 드라마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먼치킨’ 주인공이 위험으로부터 인간-사회를 구하거나 악을 제대로 응징하여 ‘사이다맛‘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물이 인기를 모았으나 그 히어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히어로’가 사라진 자리에 ‘힐러(healer)’가 찾아왔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조현탁, 2024)은 우울증, 불면증, 비만이라는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상실한 가족 이야기다. 이들이 초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화재 참사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디 드라마 속 인물들뿐일까?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한국사회 속 우리들 또한 같은 이유로 현대인의 질병에 걸린 게 아닐까? 드라마는 상처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던 인물들이 “히어로는 아니지만”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구원하고자 애쓰는 것에서 희망은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 Mr. 플랑크톤 >(홍종찬, 2024)은 뿌리를 모른 채 딛고 설 땅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자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인 플랑크톤과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구원했다. 세상은 유해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선함’의 본능을 잃지 않고 서로를 구원하고야 만다는 단단한 신뢰를 이런 드라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Mr. 플랑크톤> (사진: “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 JTBC /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가 단지 도피처, 위로와 치유적 경험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장르를 망라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늘’을 구현함과 동시에 ‘내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 드라마가 담은 오늘과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물의 여왕>이 절절하게 보여주었듯 기성사회와 미디어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혈연·혼인 중심 가족을 대표적 가족 모델로 반복재생 하지만, 한국사회의 전통 가족 모델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전통 가족의 모순성을 보여주거나 가족의 경계를 허물어 확장하는 지향성을 가진 드라마들을 통해 구현됐다.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 2024)나 <가족X멜로>(김다예, 2024) 등에서는 가부장 중심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었고, <우리, 집>(이동현, 위득규, 2024)이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송연화, 2024)를 통해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신뢰와 애정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의심과 오해로 조각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이 드라마들을 통해 씁쓸하고 서늘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당연하지도 않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도 있었다. < 트렁크 >(김규태, 2024)는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가족과 부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이나 혈연을 넘어선 가족들도 등장했다. <조립식 가족>(김승호, 2024)과 <손해 보기 싫어서>(김정식, 2024)와 <Mr. 플랑크톤>은 ‘정상’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간들이 혈연·혼인이라는 관습과 제도를 넘어 서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족일 수 있을까? 가족의 재구성의 문제는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생활고 때문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젊은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을 협박한다는 신박한 설정의 < LTNS >(전고운, 임대형, 2023)는 ‘불륜’이라는 키워드로 (부부) 관계의 복잡성을 상기시켰다. 부부, 가족, 인간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친밀’한데 ‘배신자’ 일수도 있는 법이다. 드라마는 이런 인간의 복잡성을 흔들리거나, 해체되거나,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가족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상) <우리, 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진: “ 우리, 집 ”,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MBC) (하) <트렁크>, <LTNS>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 유튜브 CJ ENM 글로벌)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늘어난 여성서사가 올해도 다양한 얼굴로 우리와 만났다. 여성서사는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 다수가 ‘여성’인 경우를 의미하지만, 그 여성‘서사’에 무엇을 담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올해도 드라마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응시했고, 용감하고, 슬기롭고, 끈질기게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통해 새로운 인간-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형민, 최선민, 2024)는 뜻밖의 사건으로 낮에는 ‘아줌마’로 호명되는 50대 여성으로, 밤에는 ‘취준생’ 20대 여성인 본래 몸으로 살게 된 이미진/임순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졸업>(안판석, 2024)에서는 대치동 학원가 1타 강사, 서혜진( 정려원 )이 퍽퍽하고 고단한 30대 여성 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밤에 피는 꽃>(장태유, 최정인, 이창우, 2024)은 사별한 여성에게 자결하여 열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의적으로 활동한 조여화( 이하늬 )의 액션 활극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생계를 위해 성인용품 방문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을 통해 여성들이 ‘정숙’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또한 무능하고 유해한 가부장들과 능동적이고 협력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대비시켰다. 199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낡은 서사로 여겨질 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향은 오늘날의 여성들과 공명하기에 충분했다. <굿파트너>(김가람, 2024)는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 장나라 )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며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손해 보기 싫어서>는 ‘위탁모’로 봉사한 어머니를 둔 손해영( 신민아 )과 ‘위탁아동’으로 연결된 또 다른 ‘딸들’의 자매애를 보여주었다. <피라미드 게임>(박소연, 2024)은 한 달에 한 번씩 비밀 투표로 왕따를 정하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고 여성 청소년들이 연대하여 힘의 세계관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 정년이 >(정지인, 2024)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후반까지 유행한 ‘여성국극’을 재현하여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과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여성국극’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라는 대안적 상상을 해보게 하는 담대한 시도였다. 여성서사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 여성들은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서사는 장르도, 시대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지금-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적 지향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사진: “ 밤에 피는 꽃 ”, MBC / “ 굿파트너 ”, SBS 드라마에서 여성서사의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서사의 공간도 함께 늘어나게 됨을 의미한다. <피라미드 게임>, <웨딩 임파서블>(권영일, 2024), <엄마친구아들>(유제원, 2024)과 같이 퀴어 캐릭터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퀴어프렌들리’ 드라마들이 있었고, <정년이>, < 대도시의 사랑법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2024), <옥씨부인전>(진혁, 2024) 등 퀴어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제작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가 박상영의 소설을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하여 호응을 얻었는데 게이 남성 고영( 남윤수 )을 통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도 당연하고 보편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은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바뀐 여성, 구덕( 임지연 )을 중심으로 여성, 노비,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정년이>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퀴어서사에 관해 고민하게 했다. 동명의 웹툰 원작에서 정년이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인 ‘부용’이 드라마에는 삭제됐다는 면에서 그렇다. 부용은 페미니즘과 퀴어서사를 담당한 중요한 캐릭터였기에 타협적이고도 퇴행적 각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거센 항의에 예고편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드라마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절감하게 했다. 이화여대 퇴임교수 김훈순의 진단처럼 드라마는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문화적 생산물”임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적 공론장”이자 “시대 흐름 속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을 담아내는 역동적인 텍스트”이다. 그렇기에 순응하거나 퇴행하는 면도 있지만, 관습의 저항을 피하기는 어려운 순간도 있다. <정년이>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충돌하는 가치들을 ‘뚫고’ 나아가는 서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사진: “ 정년이 ”, tvN / “ 옥씨부인전 ”, JTBC 한 해 동안 우리가 주목했던 드라마들의 흐름을 톺아봤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유해한 현실의 도피처로서 무해한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다가 위로를 받았다.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의 말처럼 드라마가 “하루하루 수고한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고 “시름을 잊게” 한 것이다. 또한 드라마가 구현한 작은 세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거울은 우리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로 나아갈 길을 발견케 했다. 드라마가 비춘 현실은 자주 절망적이었지만, 관습을 깨고,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여성서사와 꿋꿋하게 등장하는 퀴어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넓어지고 있다는 희망적 생각을 해보게 됐다. <정숙한 세일즈>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처럼 어떤 시도는 “시대를 앞서간 느낌”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지만 곧 그 시차를 극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질문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과 ‘가족’으로 상상된 사회공동체다(그렇기에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이 반갑다). 올해 본 드라마 중 가장 좋아한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졸업>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졸업>은 한국사회의 욕망이 집약된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정답’이 아닌 ‘지문 바깥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과 ‘인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과 연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실하고 윤리적인 직업인 혜진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혜진은 수업 시간에 에리히 프롬의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것은 나와 우리, 그리고 ‘유해한’ 세상을 향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소명과도 같다. 사진: “ 졸업 ”, tvN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일단 < 클로즈 유어 아이즈 >(빅토르 에리세, 2023)를 골랐다. 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 룸 넥스트 도어 >(2024) 사이에서 몇 초 망설였는데 그래도 빅토르 에리세의 신작을 넣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에리세의 영화를 내 리스트에 넣을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올까. 어떤 때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스페인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파블로 베르헤르의 < 로봇 드림 >(2023)인데, 아직 쌍둥이 빌딩이 건재했던 1980년대 뉴욕을 기가 막히게 재현한 애니메이션이다. 거기에 절절한 로봇과 개가 주인공인 멜로드라마를 넣어서. 오로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한 마법이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오시야마 키요타카의 < 룩백 >(2024)이다. 창작과 창작자에 대해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짧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예술가 영화다. 예술가 영화도 두 편이 더 있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 다른 하나는 모나 아샤쉐의 < 리틀 걸 블루 >(2023)로,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여러분이 프랑스어권 유성애자 여성작가의 피학적인 오토 픽션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멀리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그런다면 여러분은 마리옹 코티아르가 펼친 최고의 명연 하나를 놓치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냐고? 그렇긴 한데 그와 상관없이 감독은 코티아르에게 자기 어머니 역을 시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해가 간다. 모녀 이야기는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조지 밀러, 2024)의 도입부를 여는 중요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꼭 필요한 무언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2015)가 그랬던 것처럼 끝내주게 재미있는 액션물이고, 이 영화의 실망스러운 흥행성적은 관객들이 뭘 모를 때가 많다는 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긴 관객들은 개봉 당시 존 카펜터의 < 괴물 >(1982)도 대충 넘겼다. 그냥 그렇다고. 로즈 글래스의 <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3)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는 필름 누아르로, 몸과 섹스와 퀴어성에 대해 정말 신나고 뻔뻔스러운 장면들을 엮어대는 오락물이다. 아, 그리고 재미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하는 말인데, 션 베이커의 < 아노라 >(2024)와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 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이 주는 재미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성노동자가 연결된 계급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 인디 영화와 마흐사 아미니 시위를 다룬 사회파 이란 영화가 이렇게 갑자기 대중적으로 (심지어 거의 고전 할리우드스럽게) 재미있어지면 관객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과는 별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주는 즐거움을 주제의 무게나 구질구질함을 두려워하며 버릴 필요는 없다. 한국영화를 두 편 골랐다. 더 고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방에 종말론적 예언이 나팔처럼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올해 한국영화를 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즐거웠다. 그런 경험을 제공해준 영화가 주류영화가 아니었을 뿐이다. 올해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퀴어, 특히 여성 퀴어 영화들의 공습으로, 어떤 때는 네 편의 영화가 동시에 극장에 걸려 다들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당사자성 넘치는 사실주의극인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부터 올해 가장 뻔뻔스러운 길티 플레저인 < 히든 페이스 >(김대우, 2024)까지 다양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드라마 < 정년이 >(2024)의 비겁함이 더 짜증난다. 오정민 의 < 장손 >(2023)은 거의 임권택 과 이두용 의 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러면 당연히 올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텐데, 아니다. 이 영화도 ‘재미있다.’ 거의 1세기에 가까운 한반도의 역사를 가족사에 녹여낸 재주, 대한민국 가부장제에 대한 냉정한 고찰만큼이나 신기한 건 이런 주제로 신선한 재미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 열 편 중 아홉 편은 호오도를 떠나 대중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고른 영화가 남궁선 의 < 힘을 낼 시간 >(2024)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유로 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다섯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팝 아이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다. 수없이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전보를 쳐라’라는 옛 할리우드의 격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놓고 뻔뻔스럽게 교훈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들은 많다. 전보로 전달한 텍스트의 다발과, 주제에 공감하는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결합한 결과물의 차이는 엄청나다. 당연히 ’공익영화’는 비하 단어가 될 수 없다. 다른 모든 영화가 그렇듯 좋은 공익영화와 나쁜 공익영화 그리고 그 사이에 걸쳐진 광대한 스펙트럼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힘을 낼 시간>은 여러모로 일단 효율적인 공익영화다.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러닝타임 안에서, 선정적인 실제 사건의 구체적인 재현 없이 한국 연예계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얼마나 되는가.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취인데, <힘을 낼 시간>은 이 모든 정보와 메시지를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공익영화로서의 기능은 영화의 매력에 어떤 핸디캡도 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이 영화의 다음 성취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케이팝이라는 장르에 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초창기의 시도는 김기영 (동명이인이다)의 < 진실게임 >(2000)이다. 아마 더 이전 작품도 있을 거고 사실 여기서 정확한 경계선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래도 20년은 더 됐다. 하지만 성공작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들 주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들은 < 내일부터 우리는 >(윤성호, 2017), < 아이돌 권한대행 >(윤성호, 박현진, 2017), <탑 매니지먼트>(2022)로 이어지는 윤성호 의 시리즈들이다. 만드는 사람들의 아이돌 문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개성적인 유머 속에서 조화를 이룬 작품들인데 이 작품들이 아이돌 스토리텔링의 주류가 된 적은 없다. 아쉽게도. 나머지는 대부분 성공보다는 실패로 기억된다. 그 중 가장 처참한 실패는 아무래도 드라마 <청춘시대 2>(2017)였던 거 같은데. 일단 이 시리즈는 왜 아이돌 이야기를 왜 굳이 거기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여러모로 최악의 오타쿠적 선택이었다. <힘을 낼 시간>은 소위 ’망돌‘이라는 소재를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청춘시대 2>와 반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장점이다. 일단 영화는 왜 이 영화가 ‘망돌들’의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명쾌하고 당연한 이유를 갖고 있다. 주인공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 주인공 중 망돌은 ‘파이브 갓 차일드‘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였던 태희( 현우석 )뿐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 ‘러브앤리즈’의 멤버 수민( 최성은 )과 사랑(하서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제법 히트한 노래도 한 편 이상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래보다는 이 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더 먼저 떠올리고 제대로 정산을 못 받고 은퇴한 건 태희와 다를 게 없다. 하여간 이 셋은 전재산 98만원을 챙겨들고 제주도 여행을 오는데, 그만 첫날에 한 명이 사고를 내 돈 대부분을 날려버린다. 이 정도면 너무 어이가 없어 슬슬 웃음이 나오는 가학적인 블랙 코미디를 기대해 볼 만도 한 상황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얼마 전에 < 십개월의 미래 >(2020)를 만든 남궁선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평화롭고 진지한 길을 간다. 세 사람은 귤 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자기들을 알아보는 케이팝 팬도 만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따분하게 들린다면 미안하지만, <힘을 낼 시간>은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치유의 과정에 대한 영화이고 여기에 진지하다. 이 영화에서 치유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게 쓰이지 않는다. <힘을 낼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의미로’ 머글스럽다는 것이다. 이 영화엔 다른 케이팝 아이돌 관련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되는 징그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케이팝 아이돌의 친숙한 이미지를 따르고 그걸 페티시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부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시달리다 버려진 젊은 노동자들을 그린다. 이 영화가 정공 공익영화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 무지 재미없게 들리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들은 대부분 대중적 재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그건 일단 이 진지함의 정공법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엔 더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오타쿠적인 선택 대부분을 피해가고 있고 일부러 아이돌 캐스팅도 하지 않은 영화인데도 여전히 아이돌스러운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 장면 하나 나오지 않고 ‘가상의 아이돌 그룹 만들기 게임’에 집착하지 않으며 골수팬을 등장시키지 않는데도 영화는 부서진 홀로그램 조각처럼 케이팝 그룹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노력한 팬이라면 러브앤리즈 팬픽을 쓰는 게 가능할 정도다. 영화의 의도는 전혀 아니겠지만. <힘을 낼 시간>은 최선 또는 최악의 타이밍에 개봉한다.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정치 상황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었으니 개봉하는 영화에겐 타격이 크다. 하지만 뉴진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돌의 노동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바로 그 정치적 상황 속에서 수많은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국회 앞에서 휘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 이 영화에 맞는 시기가 있을까. 듀나(영화평론가) l SF 작가이고 영화 컬럼니스트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가능한 꿈의 공간들』(2015),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2022),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2019),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2020) 등이 있다.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2024년 하반기 대중 영상문화는 퀴어 가시화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을 원작으로 장편영화 가 제작되어 10월 1일 극장개봉 됐으며 10월 21일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에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가 독점 공개되었다. 또한 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 2019. 4.~2022. 5. 네이버웹툰 연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 정년이 >(정지인, 2024)가 tvN에서 12부작으로 제작되어 텔레비전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동시 제공되었다. 두 원작의 주인공 고영과 정년이 모두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주요 인물들도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서 벗어난 퀴어적 존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두 원작은 단순히 선정적 소재로 성적 정체성을 전유하는 방식을 넘어, 퀴어 인물들의 고유한 관점으로 시대성, 젊은 세대의 성장과 다양한 관계성,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수행성, 하위문화 혹은 특정 공동체의 민족지적 기술 등과 같은 주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둘 모두 베스트셀러로서 그 흥행성과 대중성을 입증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례 모두 원작이 발표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매체와 장르로 파생·변환되었다. 물론 트랜스미디어 현상, 특히 이미 대중성을 증명한 원작이 다른 매체와 장르의 콘텐츠가 되는 것은 디지털 환경 속에 놓인 동시대 대중문화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례에서 보여준 트랜스미디어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의 퀴어적 정동을 드러내 줄뿐 아니라 각 매체 혹은 장르(의 제작자)들이 공개되는 플랫폼마다 현재 수용자를 어떻게 특징짓고 가정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매체특정성이 아닌 플랫폼 특정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이 사례들이 보여준다. 우선 각 사례의 트랜스미디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장편영화와 8부작 드라마로 함께 공개되었다. 둘은 원작은 같지만 각색·연출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도 판이했다. 고래와유기농과 쇼박스가 제작하고 이언희 감독이 기획·연출·각색한 극장용 장편영화는 김나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이 영화는 소설의 4개 에피소드 중 주로 ‘재희’를 가져오고 흥수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가져와 영화화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위치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원작 소설에서 4개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화자이자 사연·사건에 연루되는 인물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고영은 흔들림 없는 유일한 주인공이다. 반면 영화에서 고영은 흥수( 노상현 )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름을 유지한 재희( 김고은 )와 주인공 자리를 동등하게 나눠 갖는다. 소설이 다분히 고영의 20대를 함께 하고 목격한 고영‘의’ 친구 재희에 대한 이야기라면, 영화는 소설가 흥수가 내레이션을 도맡고 있음에도 재희 ‘그리고’ 흥수의 20대와 그들의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즉 전자가 고영에 동일시된다면, 후자는 재희와 흥수 모두에 동일시된다. 극중 흥수와 재희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는 흥수의 주관적 시점을 벗어나 재희가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응하는 당참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한편, 개성 강한 대학생에서 회사원이 되며 규격화된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개인적 쓸쓸함을 묘사하며 그를 보다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재희는 이성애 여성 청년으로서 동성애자인 흥수보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취직과 결혼)을 잘 받아들이고 주류에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차별을 겪는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고 벽장 속에 숨는 흥수에게 재희가 던지는 대사 “니가 너인게 어떻게 니 약점이 될 수 있어?”는 각기 다른 낙인과 차별을 겪는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남성의 우정을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성애 여성과 게이 남성 간의 우정을 다루면서 게이 남성을 이성애 여성의 사랑을 상담하는 액세서리 혹은 드라마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코믹 릴리프 같은 클리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과 비교할 때 이러한 주인공의 위치 변화는 극장의 주요 타겟인 2030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더 이끌어 내고 확장성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2종 창작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케팅은 단순 공감을 넘어서 그러한 전략을 더 공격적으로 밀어 붙인다. 홍보용 트레일러와 포스터는 침대 위에 함께 누워있는 재희와 흥수를 보여주고 흥수의 게이 정체성이나 퀴어 등의 단어는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원작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이들로 하여금 해당 영화를 재희와 흥수의 이성애 로맨틱 코미디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와 트레일러 카피에 “사랑은 노터치 우정은 포에버. 순도 100% 찐사친 리얼 라이프”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둘의 로맨스를 가장하기에 이러한 착각은 상당히 고의적이다. 개봉 초반 관객몰이가 매우 중요한 극장 플랫폼이기에 퀴어 소재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이성애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까지도 모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군대 내에서 사용했던 성소수자 정책(1994-2011),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와 유사하다. 이 정책은 군대 내 성소수자가 혐오공격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성소수자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심기를 달래고 성소수자가 그 정체성을 드러낼 경우 복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되레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해당 마케팅은 어쩌면 극장용 상업영화의 개방성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퀴어는 극장 안까지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 이것은 영화 본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검열 중인 극장 플랫폼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기서 상업영화 극장 플랫폼에 재희의 말을 되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보호 필름 떼고 하는 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좌)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중 / (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티빙의 8부작 드라마는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영화와 달리 박상영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고 소설에 담긴 4편(‘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모두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기획해 동학교 출신인 허진호 (< 봄날은 간다 >), 홍지영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손태겸 (< 아기와 나 >), 김세인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감독이 각각 2부씩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고영의 시점을 따라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하위문화나 섹스씬도 영화보다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에이즈 문제도 다룬다. 드라마 시리즈가 온라인 스트리밍 독점으로 공개되어 티빙 구독자만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할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동성애 정체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티빙은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에 동성애 혐오 세력의 민원성 공격을 받았다. 드라마 시리즈는 그러한 공격과 상관없이 성공적으로 방영되었지만 아무래도 홍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에 공개되었던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로 여성들의 경쟁과 성장,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뛰어난 영상미로 재연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역시 약 1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웹툰 <정년이>의 중요한 인물이 드라마에서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사라진 인물들이 퀴어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 이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주인공 정년이( 김태리 )에게 남성성을 체화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라는 대사를 통해 퀴어한 젠더 수행성의 주제를 날카롭게 전달했던 남장여자 캐릭터 고사장, 그리고 주인공 정년이의 1호 팬이며 극작가이자 정년이와 동성애 관계에 있는 캐릭터 부용이가 사라진 것이다. 부용이와의 관계성 일부는 국극단원인 주란(우다비)과 영서( 신예은 )에게로 나눠진 것처럼 보인다. 즉 웹툰에서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되는 과정에서 가장 퀴어한 인물들은 삭제 또는 용해를 겪은 것이다. 그 과정에는 투자자나 회사 관계자들의 압력, 혹은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같은 각각의 사정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 중 위의 사례들에서 퀴어 캐릭터와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가시화되는지에 따라 비교 평가할 수는 없다. 작품의 비평적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퀴어는 분명 트랜스미디어 과정에서 광산의 카나리아 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디까지 있는지 실험적으로 날려 보내는 카나리아. 어느 장르와 플랫폼이 퀴어를 살려둘지 아니면 삭제할지 혹은 그 고유한 존재들을 축소하거나 용해시키는지. 소설, 웹툰, 극장, 텔레비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홍보물들 사이에서, 퀴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