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댄스
- 감독
- 정소희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선민, 로렌
내 나이 34살, 결혼할 시기가 다가오니 남들의 퍼스트 댄스(영미권에서 신부 신랑이 맨 처음 추는 춤을 일컫는 말)에 눈이 간다. 정호현 감독의 < 쿠바의 연인 >, 지민 감독의 < 두개의 선 >은 곧 노총각 대열에 합류할 나에게 ‘결혼은 왜 하려 하는가?’ 묻는 좋은 결혼지침서였다. 정소희 감독의 < 퍼스트 댄스 >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솔직히 < 퍼스트 댄스 >의 정보를 접했을 때 영화 보기를 잠시 망설였다. ‘오래된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이야기, 음... 그들이 이 사회를 살아오면서 겪었을 아픔이 지독하게 나열되어있다면 영화 보기가 쉽지 않겠는데...’ 라는 우려는 첫 인터뷰가 진행되는 순간 흐뭇한 미소로, 아니 부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행복하게 담고 싶었다.” 는 감독의 의도는 정확하게 구현됐다. 대학교에서 만나 5년 동안 사랑을 이어온 선민과 로렌, 두 사람은 주변의 허망한 죽음을 보며 ‘더 이상 미루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모두에게 축복받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선민의 가족은 커밍아웃한 선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로렌과의 결혼은 더더욱 인정할 수 없다. 맘고생으로 말라가던 선민을 로렌과 친구들이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선민과 로렌은 보스턴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개최되는 날 게이 휴양지인 ‘프로빈스 타운’ 해변에서 결혼을 한다.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다. 결혼식 준비 과정과 결혼식, 선민과 로렌, 그리고 친구들과 가족의 인터뷰가 교차된다. 3~4일밖에 안 되는 촬영 기간에 감독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잘 찍은 결혼식 동영상으로 보일 수 있는 영상이 진심 어리고 심도 있는 인터뷰와, 이런 단순한 형용사들을 사용해 그들의 결혼식을 표현하기 싫지만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 정말 부럽고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결혼식은 어떤 영화의 그것보다 행복하게 값지게 다가온다. 인터뷰를 떼 보면 동성애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 동성 결혼의 합법화 문제, 동성 결혼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등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로렌 친구의 인터뷰 중 “우리가 이성애자인 것처럼 로렌도 그냥 동성애자인 거다. 그녀가 그녀 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라는 말은 2014퀴어문화축제에서 ‘이들의 죄를 용서해달라.’ 는 기도와 함께 깊게 이야기 나눠야 할 부분이다. 결혼정보회사에 전화 한 통 넣는 것을 끝으로, 딴딴따다 20분 만에 결혼식을 마치고 뷔페식당에 쪼로록 앉아 밥 한 끼 때우고 돌아가는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선민과 로렌의 결혼식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빡빡한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결혼식을 보고 있노라면 진한 감동이 닿는다. 드넓은 해변, 파란 하늘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선민과 로렌이 ‘오직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지되는’ 후파 아래 서있다. 후파는 사방이 트여있다. 모두가 선민과 로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볼 수 있고, 어떤 이가 선민과 로렌의 결혼을 지지하고 함께 지탱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결혼 서약을 하고, 반지를 교환한다. 그리고 큰 담요로 선민과 로렌을 두른 후 결혼식에 참가 한 모든 이들이 두 사람을 감싸 안는다. 이 순간 우리에게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된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뤄 함께 살아가는 것! 선민은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커밍아웃하지 못한 동성애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라고 했다. 공포의 순간들이 다가올 테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들이 찾아올 테니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선민의 바람과는 달리 영화 한 편이 전하는 메시지로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하기란 이 사회가 너무 폭력적이다. 선민의 바람처럼 그녀가 디딘 첫 스텝을 보고 누군가가 용기를 낸다면 영화가 행하는 기적의 순간이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 퍼스트 댄스 >는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주 잠시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그리고 결혼 못 한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