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의 날개
- 감독
- 정욱, 박설형
- 제작년도
- 1988
- 출연
- 김순원, 김성희, 최수민, 김환진, 노민, 김정경, 유해무, 문영래, 설영범, 백진, 이진화, 홍영란
< 팔도사나이 >(1969)를 시작으로 < 실록 김두한 >(1974)과 < 협객 김두한 >(1975), 그리고 허경 필자가 소개한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1981)에 이르기까지 김효천 감독의 ‘김두한 사랑’은 남달랐다(<팔도사나이>와 1982년작 < 종로 부루스 >에서는 주인공이 김두한으로 짐작이 가긴 하나 구체적으로 호명되지는 않는다). 물론 김두한의 흔적이 지워진 액션영화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매력적인 영화는 일본 야쿠자 장르와 반공영화가 결합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1980)이다. 그 매력의 핵심은 역시 김희라 의 화끈한 남성미로 인한 것이다. 장동휘 , 박노식 , 이대근 , 김희라, 이강조 , 윤승원 으로 이어지는 ‘김효천의 남자들’ 리스트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이 카리스마와 별개로 뭔가 ‘토속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면 이강조는 실력에 비해 유명세가 떨어지고, 김효천 액션영화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 일본대부 >(1989)의 윤승원은 뭔가 더 보여줄 것이 남은 상태로 작별을 고했다. 그에 반해 김희라는 진정 세련되고 멋지다. 남자 중의 남자다. 김효천 의 남자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 김희라 이강조 윤승원 영화가 시작하면 오사카 아오야마 조직의 ‘오야붕’이 습격당하고, 평소 그를 친아버지처럼 여겼던 가네모도( 김희라 )가 혈혈단신 복수를 하러 떠난다. 적의 본거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아오야마가의 불사신 가네모도’라고 (자기 입으로 직접) 밝히고는 분노의 주먹을 날린다.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문을 확 열어젖히는 박력부터 남다르다. 역시 김희라! 그리고는 단검 하나로 여러 개의 좁은 다다미방을 저벅저벅 옮겨 다니며 싸운다. 굳이 ‘가오 상하게’ 뛰어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적들 앞에서도 ‘어차피 너희들은 다 죽었어’라는 듯 시종일관 언짢은 표정으로 대결에 임하는 그 표정이 딱 ‘쓰바키 산주로’ 도시로 미후네의 그것이다. 상대 오야붕 신타로( 배수천 )가 마사오( 조춘 )를 이용해 가네모도를 처리하고자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잠시 수세에 몰리려는 찰나, 가네모도의 동생 아라이가 멋지게 슬로모션으로 마당에 등장해 졸개들을 화려한 돌려차기로 제압하기 시작한다. 발기술이 약한 김희라의 우직함을 보완하는 김효천 감독 특유의 연출이리라. 그래도 무게중심이 아라이로 기울 수는 없는 법. 가네모도가 창호지 문을 뚫으며 몰래 숨어있던 야쿠자를 주먹 한 방으로 제압하는 장면도 일품이다. 하지만 저 멀리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오고 가네모도는 아라이에게 당장 여기를 떠나라고 말한다. 남자답게 혼자 뒤집어쓰겠다는 말일 것이다. 도망치라 했다고 진짜 혼자서 달아나버린 아라이가 야속하긴 하지만, 뭘 거추장스럽게 줄줄이 끌려간단 말인가. 혈혈단신(feat. 스틸과 캡쳐 화질의 간극) 이처럼 도입부부터 숨 가쁘게 펼쳐지는 습격신은, 김효천 감독 특유의 박력 넘치는 액션 연출과 김희라 의 선 굵은 연기가 결합하여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제야 영화제목이 뜨면서 체포와 동시에 히로시마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가네모도의 모습, 그렇게 감독이 ‘갔다 왔다 치고’라고 말하는 듯 역시 숨 가쁘다. 또 다시 이어지는 크레딧 ‘제작 김치한’. 바로 김효천 감독의 다소 민망한 본명이다. ‘치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초 감독이라니. 그의 액션영화를 흠모하는 것과 별개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빨갱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우파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불편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이미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고나 할까. 그렇게 다시 도시로 돌아온 김치한, 아니 김희라의 뒤로 “사나이 전성시대... 외로운 별, 세월은 간다... 낭만은 있다...”라는 가수 김동아의 주제가가 흐른다. 히트곡 ‘나를 두고 가려무나’로 유명한 김동아는 1970년대 초반 불난 집에서 아버지를 구하려다 화상을 입어 반년 이상 입원했고, 결국 그 흉한 얼굴로 인해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가수다. 뭔가 그러한 사연도 김효천 감독의 남자영화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제 가네모도는 출소와 함께 못 다한 복수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복수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일본 라멘을 먹는 모습이 귀엽다. 하지만 몇 젓가락 밖에 되지 않는 일본 라멘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먹고 난 다음 젓가락을 아그작 뽀개버리는 모습 또한 박력 넘친다. 그리고 술이 빠질 수 없다. 제목도 어울리게 ‘이방인’이라는 바에 들른 가네모도에게 나이 많은 바텐더가 묻는다. “여행을 다녀오셨나 보군요.” ‘깜빵’ 생활을 여행으로 돌려 표현한 바텐더에게 가네모도는 미소를 띠우며 답한다. “인생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야.” 이윽고 바텐더는 ‘귀향’이라는 이름의(물론 자체 작명) 술을 건네는데, 가네모도가 “난 돌아갈 고향이 없네”라고 말하자 “그럼 (고향을 몰라도 그리워한다는 의미에서) 망향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행과 유학, 그리고 고향과 망향, 거의 직접 시나리오를 썼던 김효천 감독 특유의 낭만성이 부각되는 장면이다. 심지어 바텐더는 자신의 가게를 처음 찾은 손님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며 ‘또 들러 달라’고만 한다. 마초의 낭만 “자네 망향 잊지 않겠네.” “난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 다시 출출해졌는지 그는 한 초밥집에 들른다. 알고 보니 재일교포 겐이찌( 한지일 )와 하루미( 이경실 )가 운영하는 초밥집이다. 초밥을 2인분으로 달라고 하고, 술은 5인분으로 달라고 하는 가네모도에게 하루미는 하트를 뿅뿅 발사한다. 심지어 하루미가 술을 따라준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원래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라며 도쿠리를 원샷하는 신공을 선보인다. 그렇게 배를 채운 가네모도는 신타로 일당의 도박장으로 찾아가 속임수를 쓰는 도박사의 손목을 단검으로 잘라 버리고 “주인의 복수를 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어 7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며 ‘히로시마의 표범’ 마사오의 목숨마저 가져간다. 그러다 숨어있던 다른 졸개에게 허벅지에 칼이 찔린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이리와, 이리와!”라는 단 두 마디에 칼을 찌른 그 놈은 얼어붙는다. 진정 카리스마 넘친다. 말 그대로 감독 또한 배우의 매력에 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다리에 찔린 칼을 뽑으며 “이리와, 이리와!” 졸개는 정말 이리와서 얻어 맞는다. 얄궂지만 얻어 맞는 건 고화질로...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모방인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겐이찌와 하루미가 조총련의 협박을 받는 재일교포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게다가 가네모도는 물론 그를 보살폈던 오야붕이 한국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총련=북괴’라는 등식의 반공영화 컨벤션이 침투해 들어온다. 당시 영화포스터에도 ‘이 영화는 일본영화가 아닙니다!’라는 카피가 덧붙여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김효천 의 이전 김두한 시리즈가 일종의 반일(反日)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이제 북괴가 등장하며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는 형태를 취한다. 아오야마가의 새로운 오야붕이 된 쟈니( 박근형 )가 가네모도의 빨갱이 소탕을 적극 돕고 나선 것이다. 가네모도와의 대화 도중 영국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는 등 어딘가 낭만적인 모습의 쟈니는(그래서 그는 ‘센티멘털 쟈니’라 불린다), 북조선의 만경봉호가 뭔지도 모르는 그를 향해 “가끔은 자네처럼 신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해”라며 은근히 ‘디스’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조총련에 속아서 북송선을 타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최후의 대결을 벌이러 떠난다. 그들이 결전을 준비하며 일본도를 닦고 온천에서 피로를 풀 때 흘러나왔던 사운드트랙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1악장’이다. 난감하다고 해야 할지 비장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그 대목에서, 어쨌건 그들은 국경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눈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며 이미 죽을 각오까지 하고 아래위는 물론 넥타이까지 하얀 색으로 ‘깔맞춤’ 한 가네모도에게 쟈니는 말한다. “나도 함께 가는 거다. 난 회장님의 복수를 하고 아우의 큰일을 돕고, 내가 가야할 이유는 너무나 많아.” 죽음을 예상하고 거의 즐기는 표정으로 싸우는 가네모도와 ‘폐병’을 앓으며 힘겹게 싸우는 쟈니의 모습은 거의 장철 감독 영화의 적룡과 강대위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싸우는 와중에 남자들끼리 간절히 손을 맞잡는 마지막 장면의 정서(오우삼의 < 첩혈쌍웅 >에도 수혈됐던)는 장철의 < 대결투 >(1971)의 판박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센티멘털 쟈니는 “너 때문에 내가 멋있게 죽을 수 있다”며 오히려 그를 다독인다. 반공영화답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가네모도의 마지막 모습만 아니었다면,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다. 남자들이 손을 맞잡는 마지막의 비장함 끝으로, 김효천 의 액션영화를 흠모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발췌해 본다. 감격스럽게도 < 킬리만자로 >(2000) 이후 두 번째 영화 < 무뢰한 >을 촬영 중인 오승욱 감독은 <한국 액션영화>에서 “밑바닥 사내들의 야비함과 비겁함, 그리고 그들의 이상향적인 <수호지>적인 의협, 이런 것에 대한 과잉 애정이 너무나 지나쳐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어버린 과잉의 영화”라며 ‘노골적인 빨갱이 혐오’ 정서에 대해서는 “그 꽉 막힌 혐오와 증오가 왜 우리의 바탕인지를. 그의 영화를 보며 우린 그 시대의 오줌 지린내 고약한 우리 동네의 뒷골목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썼다. 또 < 돌려차기 >(2004)를 만들기도 했던 남상국 감독, 남정욱 이 쓴 「한국영화, 황금기를 찍다」에서는 김효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찬하고 있다. “김효천 감독의 영화에는 ‘감정’이 있다. 어지러운 시대에 살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나이의 격한 감정이 살아있다. 주인공을 분노의 끝까지 몰아넣고, 관객이 마음 속 깊이 주인공이 복수를 해 주길 원할 때, 마음 같아서는 관객이 스크린으로 뛰쳐 들어가 악당들을 쳐 죽이고 싶을 때, 바로 그 때! 주인공의 분노를 터트리고, 주인공의 주먹에 악당들은 지리멸렬 나가떨어지고, 관객들은 가슴이 뻥 뚫리면서 주인공의 복수에 박수를 치게 하는 그런 연출의 대가다.” 김희라 이경실 박근형 감독: 김효천 각본: 김효천 개봉극장: 중앙(서울) 관람인원: 30,271(서울)
* 상단 사진 설명: 홍길동 재상영 간판-일본의 오다시 제공 사전에 의하면 아카이브 Archives란 “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 둔 정보 창고”를 뜻한다. 한국내의 애니메이션 아카이브로 대표되는 곳을 언급하자면 남산의 애니메이션 센터와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 등을 들 수 있겠다. 특히 한국영상자료원은 영상 자료의 수집, 보존, 복원 등 아카이브 기능과 함께 시네마테크, 영화박물관, 영화학교, 멀티미디어 영상자료실의 임무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북미나 유럽, 일본 등에는 여러 분야의 아카이브가 매우 안정되게 운영되고 있어 자국의 역사와 문화가 잘 보존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뒤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의 민족문화와 역사를 말살하려 한 과거의 침탈행위로 인한 소실이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이제 한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이미 67년이 되었다. 각 분야 별로 도처에서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재건하거나 복원하는 일들이 일상사가 되어가고 있다. 필자가 특히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 홍길동 >의 아카이브와 미국 최초(세계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의 아카이브를 가볍게 비교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근년에 한국영상자료원이 < 홍길동 >의 전체 필름은 타이틀이 들어간 앞부분과 크레딧이 들어간 뒷부분을 제외한 16mm컬러 필름 전체를 일본의 아카이브로부터 발견하여 35mm필름으로 확대하고 세기상사의 사운드를 더빙하여 부족하나마 복원하였다. 매우 가치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필름은 찾았지만 관련 작업자료들이나 포스터, 문서 등이 거의 소실되었고 간간히 발견되는 희귀한 자료들만 어렵게 눈에 띌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유년 시절부터 철저한 보관 정신을 가졌던 필자가 1970년대 초에 세기상사 동화부에 애니메이터로 근무하면서 수집하여 약 40년간 보관하여 온 < 홍길동 > 관련 희귀 자료들이 있어 그나마 당시의 제작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특히 <홍길동>의 포스터 원본은 매우 희귀하다. 본인의 소장본 이외에는 더 이상 어디에서도 아직까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에 전시된 <홍길동> 포스터는 불행하게도 오래 전 원작자와 감독의 이름이 훼손된 모조 포스터이다. 그 이유는 <홍길동>의 감독 이름을 신동헌 이 아닌 ‘박삼천’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신동우 화백의 원작만화인 <풍운아 홍길동>(실제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제목은 그냥 <홍길동>으로 표기하고 있다)이 아니라 <쾌남 홍길동>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조 포스터는 세로방향(portrait) 이지만, 오리지널 포스터는 가로방향 (landscape- 71.5mm x 51mm 크기)이며, 감독 이름이 신동헌이고 제목도 <홍길동>이다. 그 이외에 홍길동 아카이브로는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오리지널 <홍길동>의 스토리보드 원본이 있다. 신동우 화백의 그림으로서 단 하나 밖에 없는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 좌: 모조 포스터, 감독을 신동헌 이 아닌 박삼천으로, 제목은 <쾌남 홍길동>으로 표기-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 소장 * 우: 홍길동 오리지널 포스터, 1967년, 세기상사-필자 원본소장 * 오리지널 홍길동 스토리보드-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 소장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스토리보드는 지금의 각 포즈(pose)별, 신(scene)별 스토리보드 형식과는 크게 다른, 축약 형식인 대략 시퀀스(sequence)별로 그려진 작품으로서 그 가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 홍길동 대종상장(좌)과 홍길동 제작 의뢰서(우)-필자 원본소장 또 다른 < 홍길동 > 관련자료인 대종상장과 제작 의뢰서가 있다. 그림 좌측의 대종상은 1967년 12월4일에 세기상사를 대표하는 사장인 우기동 에게 수여되었다. 아쉬운 점은 감독인 신동헌 화백이 받았으면 가장 적절하였겠다는 점이다. 그림 우측의 제작의뢰서에 의하면, 국립영화 제작소에 <홍길동>의 제작작업 의뢰서를 작성할 때(1966년 12월 19일자), 제작자를 우기동, 감독자를 신동헌, 촬영자를 박성근 으로 표기하였으며, 제작완성 예정일을 일단 1966년 12월 30일로 잡았음을 볼 수 있다. 필름 총 길이는 3,660자(피트)에 35mm 필름 총7권, 전체1편으로 잡았다. * 홍길동 모델시트-필자 원본소장 * 홍길동 레이아웃 작화지-필자 원본소장 * 홍길동 채색된 셀-필자 원본소장 * 홍길동 제작 팀의 사진 1966년-필자 원본소장 다음 자료는 < 홍길동 > 모델시트와 작화지에 그린 레이아웃 원본들 및 캐릭터를 채색한 원본 셀들이 있다. 또한 <홍길동> 제작팀 사진도 보관되어 있다. 사진 속에는 신동헌, 신동우, 용유수 감독과 애니메이터인 정욱(대원), 김대중 등이 보인다. 이처럼 적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가치있는 < 홍길동 >의 자료는 그나마 소장자의 관심과 애착으로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고 본다. 이처럼 아카이브는 우리 모두가 돌아 보아야 할 주요 관심분야이다. 반면에 한국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 홍길동 >과는 달리, 세계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의 월트 디즈니 영화 홍보물들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인쇄되었고, 그 자료들의 보존 또한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여기에 가세하여 수집 열기는 날로 더해가고 있다. 다음 그림들은 <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의 자료들인데 그 종류도 다양하며 보관된 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많다. 보관상태 역시 깨끗한 것들이 많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복사, 발행되어 적잖이 소장, 보관되고 있다. * 세계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포스터, 1937년-ⓒWalt Disney Studio *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스토리보드, 1937년-ⓒWalt Disney Studio *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관련 문서와 악보, 1937년-ⓒWalt Disney Studio *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모델시트-1937ⓒWalt Disney Studio *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레이아웃-ⓒWalt Disney Studio *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컬러 샘플-ⓒWalt Disney Studio *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제작 팀원들-이들은 나인 올드 맨(Nine Old Men)이란 전설적인 이름으로 불려왔다.-ⓒWalt Disney Studio 이상 < 홍길동 >과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예를 통해 두 나라의 애니메이션 아카이브를 간단하게나마 상호 비교하여 보았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점은 서로 유사한 자료들이기는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초창기 애니메이션 자료들이 유실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역사적인 자료와 문화적인 자료에 대한 가치부여와 인식이 단순한 자료보관 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일본이 보관, 관리해 온 한국의 < 홍길동 > 필름을 거꾸로 우리가 되찾아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부끄럽다기 보다 오히려 용기있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에 의해 약탈된 조선왕조 외규장각(外奎章閣) 의궤를 145년만에 찾아온 일 처럼 말이다. 문제는 누군가가 하겠지 하며, 수수방관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모두가 잘 하고는 있지만, 이 시점을 계기로 모든 애니메이션 자료들을 보관, 관리, 활용하는 일은 어느 특정 기관이나 단체 만의 일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포함하여 애니메이션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하겠다. 아직까지도 전국 방방곳곳에 흩어져 있거나 어둠에 묻혀져 있는 소중한 자료들을 한군데 모아 정리, 분석, 분류, 보관, 관리, 전시 및 활용하는 데는 인력이나 자산이 역부족일 것으로 본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의 보존은 한 국가의 힘과 역량을 대내외에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리 및 관심이 있어야 하겠지만, 더 나아가 국민 모두의 애정과 관심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이 모든 노력에 대해 단순한 자료의 보존이 아닌, 역사와 그 가치의 보존이라는 점에서 다 함께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진정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