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 정유미, 요조 주연의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언론시사회 현장
- 제작년도
- 2010
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 2월 2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를 오픈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2월 2일. KMDb는 2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는 KMDb를 기획·구축하며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 고민했다. 누군가 ‘무비씨’라는 이름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나고, 그러나 아무래도 어딘가를 따라 한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이름은 없다고 판단해 KMDb로 지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은 kmdb.or.kr 도메인을 구매했다. KMDb에는 20년간 생겼다 없어진 콘텐츠와 기능이 많다. 초기에는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입력하는 기능도 상당했으나 생각보다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관리가 어려워 하나둘 폐기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독립영화 전용 KMDb를 따로 만들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통합된 상태에서 최대한 간결한 기능과 콘텐츠로 운영하는 중이다. KMDb를 준비하며 호기롭게 “풀 크레딧을 가지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내가 한 것 같고 그래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 정책을 시작하며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로 인해 어디에도 없는 데이터를 보유하게 된 KMDb는 영화·영화인 DB 서비스뿐 아니라 VOD로 한국고전영화 스트리밍을 시작했고, 영화글로 다양한 필자의 글을 소개했으며 리스트와 컬렉션이 순차적으로 오픈해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2월 1일. 오픈 전날 디지털정보화팀의 담당 세 명은 그제야 동명이인에 대한 이슈를 발견하는 사고를 친다. 비슷비슷한 나이의 정유미 배우가 하나가 아니고 무려 세 명이래! 라는 비명을 한밤중에 지르며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물을 분리하며 밤을 지새다 퇴근해 다음 날 오픈시켰다. 그리고 그 동명이인 이슈는 지금까지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할 수가 없다. IMDb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이슈를 KMDb 라고 별수 있겠는가. IMDb 매니저는 이름이 짧은 한국 인명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고충이 더 심하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성명이 “정유미”인 배우 3인에 대한 KMDb 영화인 정보 KMDb는 영화·영화인 데이터의 완벽함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제는 영화인이 자신의 필모를 증빙하기 위한 웹사이트로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문득 KMDb에 쌓인 데이터가 어떤 모양새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사용자들도 궁금해할까? KMDb 20주년 이벤트를 근사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데이터로 가득한 사이트의 20년 묵은 통계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축하가 아닐까 생각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지난 20년의 통계 10선을 소개한다. 1.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극·비극) 의 수: 50,787편 2.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인 의 수: 83,279명 3. 가장 많이 접근된 영화인 페이지 정윤희(1위), 임권택(2위), 신성일(3위) / 사진: 전승열, 정기성 1위 | 정윤희 2위 | 임권택 3위 | 신성일 4위 | 김기영 5위 | 이상사 6위 | 김지미 7위 | 박노식 8위 | 김진규 9위 | 신상옥 10위 | 안성기 4. 작품 리스트(필모그라피) 가 가장 많은 영화인 1위 | 현동춘 | 편집 | 994편 2위 | 김희수 | 편집 | 863편 3위 | 최형래 | 음향효과 | 850편 4위 | 손인호 | 음향효과 | 793편 5위 | 김기범 | 배우 | 753편 6위 | 허장강 | 배우 | 687편 7위 | 임해림 | 배우 | 660편 8위 | 김재경 | 음향효과 | 657편 9위 | 윤일주 | 배우 | 650편 10위 | 최남현 | 배우 | 609편 5. 한 작품(장편영화)에 가장 많은 크레딧 을 올린 영화인 1위 | 노영석 | THE 자연인 (노영석, 2023) | 17개 공동 2위 | 박용철 | 싸이더:애,심 (박용철, 2019) | 16개 공동 2위 | 준오 | 휴게소 (준오, 2016) | 16개 ※ 노영석 감독은 <THE 자연인>에서 감독, 각본, 출연, 프로듀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미술, 의상, 동시녹음, 사운드(음향), 시각효과, 색보정, 예고편, 포스터, 기타스탭(캘리그라피)을 담당함. 6. 참여 스태프 가 가장 많은 영화 <한산: 용의 출현>(1위) 1위 |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2) | 1,665명 2위 | 백두산 (이해준, 김병서, 2019) | 1,612명 3위 | 안시성 (김광식, 2018) | 1,502명 4위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 | 1,492명 5위 | 신과 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 | 1,487명 7. 상 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 1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58회 2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45회 3위 | 추격자 (나홍진, 2007) | 41회 4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40회 공동 5위 | 괴물 (봉준호, 2006) | 31회 공동 5위 | 벌새 (김보라, 2018) | 31회 ※ KMDb에서 관리하는 영화제·시상식에 한함 8. 리스트에서 본 영화로 가장 많이 체크된 작품 <올드보이>(1위), <괴물>(2위), <기생충>(3위) / 사진: 디씨어터 1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2,581명 2위 | 괴물 (봉준호, 2006) | 2,355명 3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2,178명 4위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 2,055명 5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 1,672명 6위 | 아가씨 (박찬욱, 2016) | 1,648명 7위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 1,574명 8위 | 마더 (봉준호, 2009) | 1,533명 9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1,515명 10위 |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1998) | 1,438명 ※ 박찬욱 감독 작품 4편, 봉준호 감독 작품 4편 9. 리스트에 본 영화 체크를 가장 많이 한 사용자 1위 | bo**** | 2,076편 2위 | ha**** | 1,865편 3위 | gs**** | 1,747편 4위 | ba**** | 1,696편 5위 | in**** | 1,636편 ※ ****는 ID의 글자 수와 일치하지 않음. 10. 가장 많은 조회수의 영화글 1위 | “ [시네필 안내서]서문: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당신에게 ” (영화천국 Vol.48) | 정성일 | 91,634회 사실 진정한 20주년 이벤트라면 올해 KMDb가 전면 개편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득하지만 어찌 됐든 2026년 말 새로운 KMDb가 문을 열 것이다. 오랜 KMDb 관여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20년이 지난 이젠 누구나 KMDb를 KMDb(b를 소문자)로 써주길 바란다는 것 정도.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2022년 현재 시점에서 < 82년생 김지영 >에 대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의 소설로 2016년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중과 지식인 담론을 가리지 않고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국내에선 2년 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으며 10개 언어권에 번역되어 3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8년 출간 이후 2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201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 수 367만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더 나아가 <82년생 김지영>은 수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2015년 이후 이뤄진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매체 환경변화의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나 영화 어느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텍스트 분석하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거부하며, 어떻게 하나의 작품 혹은 텍스트가 분리되지 않고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매체(개)적 역할을 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 글 역시 어떤 텍스트를 하나의 현상, 심지어는 매체(개)로 보고 비평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 중에 나왔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와 소설 모두 진부함과 새로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양식을 취한다. 우선 소설의 작법을 보자. <82년생 김지영>은 디지털 시대의 대중적 페미니즘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부추긴다. 이 소설은 관심(attention) 받은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 한국사회의 평균값 혹은 대표값을 재현하려 한다. 중산층 가족에서 태어나 대학교육을 받고 사무직으로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하고 육아를 하며 전업주부가 된 30대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소설이 수집한 주목의 정보는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뉴스 기사나 그 기사들에서 인용된 통계자료다. 소설은 종종 유엔과 한국정부의 통계 및 정책 보고서, 법과 제도의 변화를 각주로 달아 숫자와 공문서에 근거해 객관성과 대표성을 획득하려 한다. 여아낙태가 급증하던 1980년대를 대표하는 ‘82년생’과 그 당시 가장 흔한 여아의 이름인 ‘김지영’, 스토킹과 성희롱, 집안의 남아선호, 직장 성차별과 경력단절, 독박육아와 여성혐오 등의 뉴스가 주인공의 연대기 안으로 들어와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그러한 정보를 모아 만들어진 주인공 김지영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는 익숙함으로 버무려진 개성 없는 캐릭터이다. 김지영은 기존의 익숙한 세계와 대립하며 자기 고유의 세계를 고집스럽게 구축해 나가려는 근대문학의 주인공과 완전히 정반대에 있다. 어떤 면에선 김지영은 마치 1인칭 슈팅게임의 블랭크 캐릭터처럼 텅 빈 인물이다. 일본과 미국 번역본 표지에 그려진 이목구비가 비어있는 여자는 내용과 형식 모두를 지칭하며, 빙의는 그러한 양식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 된다. 또한 한국사회의 오래된 그리고 겉으로는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한 성차별, 즉 여성들의 ‘몫 없음’을 은유하기도 한다. 김지영이라는 텅 빈 기호는 독자들을 기다리고 초대하며 누구든 그 자리에 들어가 볼 수 있게 한다.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사가 진행되며 인물의 심리에 점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김지영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몰입한다. 주목 받은 정보를 모은 인물의 구성과 거리감 없는 몰입은 새로운 수용양식이다. 이것은 회귀, 빙의(특정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빙의), 환생이 주요 장르가 된 웹소설의 경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독자들은 회귀, 빙의, 환생의 설정 속에서 정보를 독점할 수 있기에, 비판적이고 메타적인 동시에 ‘안전’하게 상황을 통제한다. 이것이 <82년생 김지영>의 진부한 새로움이다. 정보수집을 통한 평균값을 말하기에 집단을 대표하고 비어있기에 열려있는 구조는 가능한 다수가 이 텍스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한편 김지영의 육아우울증 증상인 ‘빙의’는 페미니스트 고전단편 샬롯 퍼킨스 길먼의 <노란벽지>처럼 가부장제 억압으로 정신적인 병증을 갖게 되는 서구 근대여성문학의 전통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 히스테리, 광기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기 위해 창조한 병인 한편, 여성들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증은 남성중심적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고통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지영은 그녀의 문학적 선조와 달리 정신병을 자신의 내면상태를 발화하는 수단이나 은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웹소설의 빙의처럼 그것은 안전하게 고통과 피해를 이야기하기 위한 설정이며, 외할머니, 친정어머니, 선배 언니로 빙의된 김지영은 매우 이성적이고 조리 있게 의견을 피력한다. 흐트러짐 없는 빙의된 몸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억압의 역사적 정보가 축적된 아카이브 혹은 플랫폼’이 된다. 빙의의 사용은 세대와 개별적 차이를 넘어 여성이라는 자리의 동질성을 만들어 내고 공감을 얻어 낸다.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은 주목을 받은 정보로 쓰인 몫과 자리의 이야기이고 열려 있는 이야기들은 다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논쟁거리가 되고 소설은 다시 텍스트를 넘어 참여의 플랫폼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판매부수와 롯데컬처웍스의 투자로 정유미와 공유 같은 스타가 주인공인 상업영화로의 제작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목이 주목을 부르고 매체 간의 문화산업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책이 주목 정보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넘나들며 매개, 재매개, 하이퍼매개를 순환하는 매개물이 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자기 집단 내에서는 동질성과 공감을 강화하지만 점화된 논쟁의 선을 따라 여러 매체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 내의 인식적 기준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수잔 리 스타가 그리스머와 함께 개념화한 경계물(boundary object)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계물(Susan Leigh Star & James Griesemer, 1989)은 서로 다른 과학자 집단들이 협업을 할 때 그 의미를 공유하는 대상(object)이다. 이 대상은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각기 다른 집단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이용된다. 경계물이 되기 위해서는 해석적 유연성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실험 속에서 정보의 수집과 검증이 가능한 공동의 인프라를 통해 합의 없이도 협력이 가능해야 한다. 경계물은 각자의 집단의 특정성에 맞게 적응하도록 유연하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집단들을 거쳐도 경계물의 정체성은 유지될 정도로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물을 공유하는 각 집단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앞뒤로 오고 가며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은 상이한 두 집단을 서로 맞닿게 하는(interface) 경계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계물로서의 <82년생 김지영>은 적대와 혐오로 가득 찬 전선이 그어지며 오염된 과잉정보로 사실검증이 어려운 온라인의 특성 상 협의가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개념이 집단에 따라 어떻게 완전히 달라지는지 드러낸다. 페미니스트를 남혐주의자로 왜곡되게 주장하는 온라인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82년생 김지영>의 독서여부로 페미니스트 감별을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성) 유명인이나 예술창작자를 검색해 그들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경력에 피해가 가도록 압력을 넣기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과 다수의 여성들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온건하게 쓰인 성차별 보고서에 가깝지만, 안티페미니스트들에게는 왜곡된 가짜 뉴스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고통을 전시하며 남성을 ‘차별’하는 과격한 페미니즘 사상을 전파하는 대표적 선전물이다. 동일한 책은 상이한 집단들에 의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혹은 실천을 다르게 이해하게 하는 매개물이 되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본래의 의미나 역사와는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처음 경계물을 개념화했던 당시와 달리 스타는 2010년에 쓴 논문 「이것은 경계물이 아니다: 개념의 기원에 대한 성찰」에서 경계물을 공유하는 두 집단 사이에 협의가 힘들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발생하는 간극 발생의 원인과 공유되는 표준 및 인프라, 즉 구조와 네트워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경계물을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로 확장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육아로 경력단절 된 여성 연극배우의 오디션 과정을 다룬 단편 < 자유연기 >(2018)로 주목 받은 신인 김도영 감독이 연출하고 정유미와 공유가 주연한 <82년생 김지영>은 내용적으로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용과 형식의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김지영이 상담 받는 정신과 의사의 보고서 형식으로 쓰인 소설과 달리 영화는 의사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그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소설에서 남자 정신과 의사는 김지영에 대한 묘사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에필로그에서 한국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하던 언사와는 달리 자기 병원의 임신한 간호사를 차별하는 위선을 드러내며 전체 형식의 틀을 잡는 역할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여자 의사로 성별이 바뀌며 김지영과 남편 정대현의 고통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역할로 축소된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가 소설과 매체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텍스트로만 드러나기에 빈 기호로 작동할 수 있었던 소설의 인물들과 달리, 영화는 구체적인 배우의 얼굴이 전면적으로 스펙터클화 된다. 특히 정유미와 공유라는 스타들의 얼굴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영을 연기한 배우 정유미의 우울한 얼굴의 잦은 클로즈업은 내면성과 주관성을 표현하는 창구가 된다. 또한 소설에서 정신과 의사나 남편 같은 제 3자에 의해 관찰되고 기술되던 빙의나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종종 지영의 주관적 시점으로 처리된다. 과거 성차별/성폭력의 사건들은 영화에서 지영의 플래시백으로 처리되고 빙의의 순간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와 함께 주관적인 트라우마처럼 느닷없이 다가온다. 시청각적 구체화와 주관성의 물질화는 추상적인 구조보다 개체를 앞서 내세우며 이때 묘사된 개인의 경험은 더 쉽게 수용된다. 상업영화라는 제작조건과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징들이 소설이 의도했던 ‘진부한 새로움’ 즉 그 자리에의 몰입효과를 약화시키고 전통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강화시켜 더 대중적으로 수용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덜 논쟁적일 수 있다. 심지어 영화는 지영이 프리랜서 작가로 성공해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가족과 개인의 갈등을 잠재울 것이라는 꽉 닫힌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이러한 결말은 조남주 작가와 김도영 감독의 실제 상황을 참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잉여로 남아있는 불안한 순간들이 있다. 그 하나는 가족들이 모인 다인 쇼트를 촬영할 때 제 자리를 못 잡고 주춤주춤 구석으로 물러나 앉아있는 카메라이다. 구석에 숨어있는 것 같은 카메라는 접근 불가능하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 순간은 엔딩이다.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엔딩에서 지영은 오프닝처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노을 지는 시간에 베란다에 나와 있다. 노을빛을 받고 있는 지영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카메라와 지나치게 인공적인 노을빛은 마치 < 트루먼 쇼 >의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 지영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고 영화의 해피엔딩은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재현/대표(representation)를 함에 있어 개성, 독자성, 구체성을 제거해 대푯값을 만들어 그 자리에의 몰입을 시도한다. 이 방식은 주인공이 대표하는 집단 내부의 동질성과 각 집단들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도록 부추기고 논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설명되지 않거나 잉여로 남아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가상과 현실, 매체들, 장르들의 경계를 넘어서고 그 범주들을 무화하는 오늘날의 문화수용자들의 요구에 들어맞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계들을 넘나들며 비판과 성찰을 야기하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선명성과 양식적 안전함이 필요하다. 영화는 오히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심리적 동일시를 추구한다. 소설이 ‘진부한 새로움’을 추구한다면, 영화는 ‘진부함의 반복’이다. 멜로드라마라는 고전 장르의 충실한 반복은 여전히 말해지지 못한 것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잉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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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 시실리 2km > 명장면’이란 검색어를 넣어보자. 임창정 과 우현 이 ‘나이’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창정이 연기한 양이가 우현이 맡은 조직의 막내 해주에게 나이를 묻는다. 해주는 ‘개띠’라고만 말한다. 양이는 그를 1982년생, 1970년생으로 추측하다가 둘 다 아니라는 말에 “앞으로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화를 낸다. 해주는 “왜요?”라고 묻는데, 이때 양이는 “그럼 니가 94냐?”라며 신경질을 부린다. 흘리듯 들리는 이 대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현의 얼굴 때문에 꽤 웃기다. '성숙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나이’를 연결 짓는 이런 유머는 <시실리 2km>를 연출했던 신정원 감독의 신작 <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에서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이번에도 ‘94년생’이 언급된다.) 이 장면에서 피식 웃고 나서야 새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 꽤 오랜만에 보는 신정원 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부터가 신정원 감독의 전작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란 설정은 기괴한 긴장감과 웃음을 터트린다.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그런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인간도 그런다. 언뜻 별 특이할 게 없어 보이는 설정이다. 그런데 신정원 감독의 영화에서는 죽여도 죽지 않는 인간이 딱히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가 왜 죽지 않았는가를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특별한 설정이 된다. <시실리 2km>에서 권오중 이 연기한 석태가 겪는 ‘죽음의 연대기’를 돌이켜보자. 변기에 뒤통수를 부딪혀 쓰러진 그를 모두가 죽은 줄 안다. 그런데 안 죽어서 삽으로 쳤더니 쓰러졌길래 또 죽은 줄 알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그는 애타게 구조신호를 보내는데, 하필 머리에 못이 박혀서 또 죽은 줄 알았다. 이번에는 땅에 묻었는데, 그래도 그는 살아난다. 어디에도 그가 왜 죽지 않았는 가란 설명은 없고, 관객도 그걸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지 석태의 끈질긴 생명력과 그보다 더 끈질긴 불운이 <시실리 2km>의 웃음을 이끄는 리듬이었을 뿐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지 않는 인간의 불운은 인공지능 스피커와 스타일러 덕분에 더 밀도 높은 긴장감과 웃음을 주고 있다. 신정원 감독의 영화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관객의 예상과 상관없이 ‘불쑥’ 등장하는 순간들이다. <시실리 2km>에서 귀신이 된 송이( 임은경 )가 나뭇가지를 톱으로 자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서트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 차우 >에서는 포수 천일만( 장항선 )이 가른 멧돼지의 배에서 커피믹스 봉지가 나오는 장면을 최고로 꼽는다. 백만배( 윤제문 )가 자신의 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또 백만배가 변수련( 정유미 )과 우유와 연양갱 등을 나눠 먹는 장면 등이 모두 딱히 이야기의 흐름과는 상관없지만, 키득거리게 되는 장면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도 이런 순간은 곳곳에 있다. 죽은 연인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모래시계> 혜린의 테마’, 주인공 남편의 쉬지 않는 여성 편력을 설명하다가 등장하는 ‘3만 원어치의 경유를 마시는 장면’, 잠시 기억을 잃은 인물이 반복하는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요?’란 대사. 정교한 계산으로는 배치할 수 없는, 그저 ‘어쩌다 하필 그 자리에 놓여 있다’고만 말할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신정원 감독이 영화가 가진 개성이다. 종합하자면, 신정원 감독의 영화는 너무 뻔뻔해서 뻔뻔하다고 지적할 생각조차 나지 않는 뻔뻔함의 영화다. <시실리 2km>에 나온 마을 주민들의 캐릭터와 흡사하다고 할까?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치기’ 위해 일부러 라면 국물을 들이켰던 그들의 모습처럼 신정원 감독의 영화에서는 가장 뻔뻔한 순간에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다. 그래서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의 아쉬운 부분 또한 ‘뻔뻔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외계인의 존재 이유와 그들의 목적을 설명하는 ‘지구 외 생명체 검역 관리소’ 같은 설정이 꼭 필요했을까? 왜 굳이 그들을 등장시켜 외계인과의 한 판 액션을 벌이게 했을까? <차우>에서 ‘백백교’ 교주의 죽음을 멧돼지와 연결시켰던 것처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도 더 뻔뻔하게 외계인을 이용했다면 어땠을지. 그랬다면 <시실리 2km>와 <차우>를 보았던 그때처럼 웃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