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른 정 낳은 정
- 감독
- 전홍직
- 제작년도
- 1965
- 출연
- 김지미, 문정숙, 이민자, 신영균, 최무룡, 허장강, 한은진, 최남현, 박우식, 전영선, 나애심, 염혜숙, 김덕희, 박은주, 정옥, 양훈, 서영춘, 김웅, 최은연, 방정자, 박철
나는 카를 마르크스를 택하겠습니다 쑨거의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미디어버스)는 2018년 1월 28일 베이징의 인사이드-아웃 미술관에서 열린 포럼에서 발표된 원고다. 이 글에서 쑨거는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이탁오의 철학을 인용한다. 갑자기 웬 명나라? 유교남인가? 이라고 속단하진 말자. 「현자들의 평생공부법」이라는 책은 이탁오를 중국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기이한 개성의 소유자로 설명한다. 그는 유교를 거부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한 이유로 감옥에 갇혔고 온갖 핍박 끝에 감옥에서 자결했다. 쑨거는 다양성, 상대주의의 시대에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새로운 형식의 이론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탁오를 가져온다. 그에 따르면 이탁오의 중심 개념인 “진공”은 분별이라는 전제를 거부한다. “무선무적, 즉 선행도 없고, 업적도 없다.” “무인무안, 즉 타인도 없고 자아도 없다.” “무성무근, 즉 전통도 없고, 이단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별이 없고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분별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쑨거에 따르면 진공 개념은 형이상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하는 서구 이론과 달리 형이하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기준을 찾는 것이다. 그레이엄 하먼은 브뤼노 라투르에게 도래한 비환주의적 깨달음의 순간을 데카르트와 루소, 아비센나와 비견되는 역사적 일화로 그려낸다. “데카르트의 꿈과 난로로 데워진 그의 방,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는 루소,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알-파라비의 주석을 읽은 후에 기도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아비센나…… 1972년 말 한 비범한 청년 사상가가 부르고뉴의 고속도로를 따라 시트로엥 벤을 운전하고 있었다. … 그는 환원주의에 관한 생각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도, 가톨릭교도, 기술자, 행정가, 지식인, 부르주아, 서양인, 작가, 화가, 기호학자, 남성, 투사, 연금술사. 도로변에 앉아서 어떤 새로운 철학 원리를 꿈꾸고 있던 청년 라투르는 마침내 이 모든 환원자에게 역겨움을 느끼게 되었다.” 1) 니클라스 루만은 1987년 독일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지식인이라는 개념에 집요하게 반대를 표명한다. 반면 사회자인 발터 판 로숨은 끊임없이 되묻는다. “정말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하지 않으실 셈인가요?” 로숨이 보기에 지식인은 주관적인 가치를 보편화하고 사회로 내보내 특정한 삶에 대한 개념이나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누구도 이러한 정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루만은 벗어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비록 모든 것이 루만의 이름으로 정리되었을지라도, 이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것을 말하는 관찰자의 단순화로 보입니다. 그에 반해 현실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결합 자체에 얽히게 되는 지적 네트워크에 연루되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루만에 따르면 지성은 “서로 다른 것끼리 비교할 수 있는 능력, 서로 다름 속에서 같은 부분을 가늠하는” 능력이지 보편성이나 기준이이 아니다.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어디로 갈지 아는 것,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실재에 도달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따르거나 복종하거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이런 것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오래된 심성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매우 아름다운 글 「인간에 있어 어떤 맹목성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모두는 관찰자이고, 모두는 더 큰 예리함을 가지고 다른 이들보다 더 잘 보지만, 하나의 맹점을 필요로 한다.“ 2) 그렇다. 환원자, 기준, 보편성. 모두 구역질이 난다. 구체적인 경험, 구체적인 존재자, 맹점, 관찰자.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각자의 영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길고 복잡한 이론을 세워도 해소되지 않는 뭔가가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정말 < 범죄도시2 >가 걸작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극장에 걸린 한국 영화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K정연이 말했다. 그는 어느때보다 당당한 표정이었다. 숨길 것이 전혀 없다는 듯, 평생 후회라곤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K정연은 말했다. 제가 처음부터 마블리의 가능성을 눈치 챈거 아시죠? K정연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단다. K정연에 따르면 이미 <범죄도시 5> 빌런에 임창정이 캐스팅됐고 6편 빌런에 장혁이 캐스팅됐다. 범죄도시 멀티버스에 장첸이랑 손석구랑 이동휘랑 임창정이랑 장혁 다 같이 나오는 거 아시죠? K정연의 말을 들으며 치킨을 먹던 강보원이 닭다리를 떨어뜨렸다. 그런 소식을 어디서 들으셨어요? K정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트위터에서요. 행복한 K정연씨 K정연에게 정정을 요구할 내용이 있다. K정연은 한영한사 19화에서 “정지돈은 여행이 좋지만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타고, 환승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서 여행까지 싫어질 때가 많다”고 썼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여행이 싫다.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싫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옆 사람 숨냄새를 맡는 것도 싫고 숙소를 예약하고 맛집을 검색하는 것도 싫고 줄서서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도 싫고 유럽 욕실의 낮은 수압도 싫고…. 하……(너무 싫음) 그러면 왜 여행을 가냐고? 여기 있는 건 더 싫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곳에 계속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더 싫고 그건 서울이 싫어서라기 보다(물론 싫지만) 이곳을 떠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잠재적인 가능성 때문이다. 문화는 이 가능성을 부채질하고 환금화하고 의미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한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 당신이 세상에 노출되면 노출될 수록 가능성이 많아질수록 모든 것이 불가능할 거라는 기분에 시달리는 건 그 때문이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면 목적지를 잃고 빙글 빙글 공회전하는 것에, 끝없이 이동하는 것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목적지를 잃고 무엇도 의미화하지 않고 무엇도 믿지 않으면서. 납치한 비행기의 기장에게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허공을 선회하라고 말하는 <찌꺼기>의 주인공처럼, 길 위를 떠도는 켈리 라이카트의 인물들처럼, 떠나 온 장소와 도달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 행복한 K정연처럼. 사실 정연씨가 이동 중에만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 김기덕이 떠올랐어요. 나는 정연씨에게 말했다. 우리는 정연씨의 작업실에 있었다. 응암동이었고 책으로 가득한 방은 K정연의 오디오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맷 버닝거의 목소리로 천천히 진동했다. 한영한사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한국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뭘 봐야할지 알 수 없어서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김기덕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김기덕의 이름을 들은 K정연은 설마 아직도 이 이름을 소리내어 발음하는 인간이 있나, 설마 그의 영화를 보자는 건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김기덕이요? 시나리오가 안 써지면 비행기에서 글을 썼대요. 김기덕이요? 네, 김기덕이요. 내가 대답하자 K정연은 우울한 표정으로 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코노미석이요, 비즈니스석이요? 비행기에 관한 소식은 하나 더 있다. 씨네포크에서 장 뤽 고다르 회고전을 위해 출간한 팸플릿에는 조너선 로젠봄이 New Lines Magazine에 쓴 고다르 추모글이 있다. 여기서 로젠봄은 1980년 처음 고다르를 만나 인터뷰 했을 때를 떠올린다. 그 인터뷰에서 로젠봄은 모든 인터뷰를 통틀어 가장 지혜로운 말을 들었다. 고다르는 자기 자신을 비행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젠봄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스스로를 일종의 탈것으로 생각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맞아요.” 이어지는 로젠봄의 글. “고다르의 많은 발언이 그렇듯이 나는 지금도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발언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점은 보다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사실 영화나 텍스트는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가는 운송수단이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며 만드는 사람의 경로는 이 운송수단을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의 경로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어떤 운송수단의 제작자인데, 다른 사람들은 이 운송수단을 이용해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역시 멋진 말이다. 여기에서 글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의미심장하고 열려있고.... 다들 우리가 만든 운송수단을 이용해 다음 장소로 이동하세요. 자기 만의 길을 찾아 떠나세요! 여행을 시작하세요! 하지만 나와 K정연은 여전히 답답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까?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가 뭔지, 그 영화를 보는 게 정말로 좋은 일인지… 넷플릭스에서 오늘 저녁 볼 영화도 못 고르는데! 영화 따윈 보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는데 우리는 왜 사서 고생하는 것일까. 파올로 체르키 유세이Paolo Cherchi Usai는 2001년에 출간된 「시네마의 죽음The Death of Cinema」에서 시네마는 본래 자기 파괴적인 매체라고 주장한다. 본성이 화학물질인 필름은 불꽃으로 타오르지 않으면 천천히 용해될 것이다(식초증후군vinegar syndrome). 디지털 역시 엔트로피 부식과 노후화 과정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영화 역사의 궁극적 목적은 그 자신의 소멸, 혹은 다른 존재로의 변형을 서술하는 것이다. 가설적 모델 이미지를 세우는 단계에서 시작해 재현했던 대상을 완전히 망각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상상력에 의존하여 서술된다.” 3) 현대적인 최초의 VR 기기인 센소라마를 만든 헐리웃의 촬영기사 모튼 하일리그는 미래의 영화는 “더 이상 시각 예술이 아닌 의식의 예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종류의 감각에 대한 자료를 창조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의식의 형태로 그 자료들을 배열시키게 될것이다.” 4) 하지만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K정연은 새로 산 JC-2 프리앰프를 연결했다. 지돈씨 듣고 싶은 음악 있어요? 아니요. 전 조용한 게 좋아요. K정연은 프리앰프의 전원을 켜고 볼륨을 0으로 낮춘 진공관 앰프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조금 기다린 다음 아무 판도 올리지 않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곧 치직 하는 크래클이 일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봤다. *** 1) 「네트워크의 군주」, 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 「아르키메데스와 우리: 니클라스 루만 대담집」, 김건우 옮김, 읻다 3) 「디지털 영화 미학」, 데이비드 로도윅 지음, 정헌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4) 「멀티미디어」, 랜덜 패커, 켄 조덕 엮음, 아트센터 나비 학예연구실 옮김, 나비프레스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짧은 여행의 기록 1-1: 파주행 성공한 사람 곁에는 성공한 사람이나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다. 실패한 사람 곁에는 실패한 사람이나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외톨이 곁에는 외톨이만 모인다. 구분하자면 나는 외톨이에 가깝다, 라는 말로 오한기는 [바게트 소년병]을 시작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굳이 따지자면 말이지만. 나는 지금 파주를 향하고 있다. 자유로를 타고, 피치포크 선정 90년대 최고의 노래 250곡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늘 그런 것처럼 내가 가야하는 장소가 파주가 아니라 블레인 카운티라는 가벼운 착각 속에서… (좌: T맵, 우: [GTA5] 맵) 하지만 그곳에는 샌디 해안이 없고, 칠리아드 산이 없다. 보기만 해도 팔이 아픈 것 같은 할리 데이비슨을 모는 폭주족들이 모여 사는 트레일러촌도, 깊은 산 속의 컬트 본부도, 마약을 제조하는 버려진 수퍼마켓나 최신형 기관 단총을 등에 매고 자전거를 타는 시골 힙스터들도, 모래 바람 부는 누런 황야도, 회전초도, 야생 늑대도 없다(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마지막 세 개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쯤 더 있을 수도 있고…). 지금 나는 수상할 정도로 서로 닮은 남자들이 운영하는 집단 농장을 불태우러 가고 있지 않다. 오한기를 만나러 간다. 그러니까 외톨이가 외톨이에게, 그런데 이제 자동소총 대신 바게트빵을 곁들인… 1-2: 메타포 외톨이와 외톨이가 모이면 그들은 여전히 외톨이일까요 외톨이가 아닐까요, 만약 아니라면 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외톨이야+외톨이야=Daridaridara du? 내가 묻자 오한기가 말했다. 정연씨, 좋아보이시네요. 우리는 출판단지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인쇄에 쓰이는 기계들이 전시된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간, 영원함, 이 세상과 그다음 세상, 책, 출판업자, 가능한 문제, 불가능한 문제를 두고 날이 어둑해지도록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서.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세상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문장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나의 무능과 아직도 오한기의 소설을 영화화 하지 않은 세상의 무능에 대해서… 문득 그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오한기가 말했다. 영화 < 파주 >에서 서우가 이선균한테 이렇게 묻잖아요. 이런 일 왜 하세요? 이 일이 형부한테 무슨 보람이 되죠? 그러자 이선균은 얼빠진 표정으로 담배를 한모금 피우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 처음엔 멋져 보여서 한 거 같고, 그 다음엔 내가 갚을 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그냥 늘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끝이 안 나, 라고요. 나는 물었다. 도대체 그런 대사는 어떻게 외우고 있는 거예요? 언제 봤는데요? 그런 나를 오한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대꾸했다. 안 봤는데요. 정연씨, 그건 그냥 메타포에요. (상: 서우, 하: 이선균) 1-3: 총 맞은 것처럼 아직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문학동네 편집자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천변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헤르만하우스 옆길로 들어섰다. 심학산 입구쪽으로 올라가는데, 식당이며 커피숍들이 보였다. 어쩐지 엠티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식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이게 오늘의 첫 끼니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미친 듯이 배가 고파졌다. 얼마나 배가 고픈지 당장 먹을 걸 준다면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딴딴딴 따단 따단, 딴딴딴 따단 따단, 리듬에 맞춰서, 배고픈 사람의 춤을, 밤이 깊도록. 춤을 추지 않아도 음식은 나왔고 날은 저물었다.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카페에 갔다. 멀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였다. 창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나도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 그렇게 사라져서 푹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원고를 쓰느라 꼬박 밤을 샜다. 이제 인스타 라이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일은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모레는 광주에도 가야 하는데.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니지만 촬영을 시작하면 늘 긴장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다. 담당자의 시작 신호를 못 알아듣고 몇 분 동안 멀뚱하게 카메라와 아이패드 화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만 있었다. (좌: 오한기와 금정연, 우: 장 뤽 고다르) 작가로서 본인의 10년을 되돌아본다면, 어떠세요? 출판사 분들이 쿠팡에서 주문했다는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모형 바게트를 앞에 두고 내가 물었다. 저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이건 진짜 어려운 질문 같은데, 질문을 들으면서 딱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제가 회사에 다닐 땐데, [의인법]을 냈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 [의인법]에 대한 이야기가 문예지에 실렸다, 문예지를 보내주겠다, 그래서 저는 어? 문예지를 보내줄 정도면 되게 좋은 이야기가 실렸겠구나. 그래서 기다렸죠. 마침내 와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진짜 제 소설에 대한 완전한 악평. 두 분이 대담을 하셨는데 서로 주고 받으시면서 제 기억에는 되게 안 좋은 말들, 비판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총 맞은 기분? 그 기억이 자꾸 났어요. 이 질문을 들으면서. 그게 제 작가인생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슬펐다. 라이브가 끝났다. 밤의 자유로를 달려 오한기를 합정에 내려준 다음 나는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바게트 소년병]을 펼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었다. 오한기는 이렇게 썼다. 희망을 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고, 비공식적으로는 전 세계 백 등 안에 든다고 확신한다. 착각일까. 언제나처럼, 아마도 그렇겠지? 데뷔할 때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제목의 수상 소감을 썼던 게 기억난다. 수상 소감 속에서 나는 볼링장에서 일하는 포르노 작가였고, 시상식장에서 한 원로 작가에게 수상 소감이 허구여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왜 안 될까. 글쎄. 도무지 모르겠네. 2-1: 뉴욕에 간 사나이 오늘의 일정. 일산 집에서 은평 작업실에 간다, 다시 일산으로 돌아와 나윤이와 장모님을 태우고 안산에 간다, 안산에 차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학로로 간다, 대학로에서 일산으로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로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윤이 데리고 소아과 다녀와서 작업실로 운전해서 가는데 정지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이 그날이라 이것저것 이야기도 할겸 미안하고 고마워서 전화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됐고 뉴욕은 어떻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지돈이 대답했다. 여러분이 없는 뉴욕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여기 사람들은 진짜 말이 안 통한다고, 물론 그건 거의 전적으로 제 잘못이겠지만 너무 안 통해… 근데 지돈씨 지금 뒤로 들리는 이게 뉴욕의 소음인가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정지돈이 대답했다. 그렇죠, 들리나요? 뉴욕의 소리가. 근데 지금 길거리는 아니고 카페에 있는데 여기가 무슨 카페냐면 밥 딜런이 단골인 완전 유서 깊은 카페로 여기에 또 누가 단골인줄 알아요? (이하 생략)(이하 생략)(이하 생략)… 나는 지금까지 뉴욕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런저런 영화를 통해 보았고, 음악을 통해 들었으며, 책을 통해 읽었다. 그래서 종종(실은 자주) 뉴욕이 어릴 때 떠나온 옛 고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36 Chambers)] 앨범을 들으며 살인적인 주거비용 때문에 직주근접을 이루지 못하고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뉴욕의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뉴저지 사람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but <I’m not there>) 2-2: In Between Dyas 안산에 도착하니 3시 15분이었다. 금요일이라서 그런가? 낮인데도 차가 제법 막혔다. 대학로까지는 딱 두 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아슬아슬했다. 77번 버스 타고 초지역에 갔다. 4호선을 타고 지상구간을 지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도시들, 이미지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음악도 듣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문득 [나의 해방일기] 구씨 생각이 났다. 어디서 뭘하고 사는지, 건강은 좀 어떤지, 염미정이랑은 잘 만나고 있는지… 언젠가 정지돈은 여행이 좋지만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타고, 환승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서 여행까지 싫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아침부터 적지 않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지만 조금 피곤하기는 해도 나는 그게 전혀 싫지 않다. 정확히 그 반대다.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말한 것처럼, 진실은 이렇다. 나는 그냥 자동차에 앉은 채로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행복한 순간 은 오직 자동차에 앉아 있을 때뿐이다.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만 행복하고, 도착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된다. 어디에 도착하든지 상관없이, 도착하는 순간 나는 불행하다.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장소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오직 떠나 온 장소와 도달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고 [GTA4]나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리버티시티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리버티 시티에서 택시 타기) 2-3: 치질에 대해서 (ㄱ) <스위밍 풀>에서 샬럿 램플링이 했던 말 기억해요? 편집장이 20년 전에 자기를 세뇌시켰던 말이라면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상은 치질 같은 거라고, 모든 작가들이 언젠가는 받게 된다고요. 지돈씨, 네 번째 치질을 축하합니다. 혹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해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였잖아요. 지돈씨는 출판사 부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저는 다른 친구와 같이 도서전을 구경하고 있었죠. 그 친구는 지돈씨랑 아는 사이였고요. 아, 네,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던 지돈씨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 새낀 또 뭐야? 같은 눈빛이었는데. 그날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각자의 일로 돌아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요. 제가 지돈씨를 두 번째로 본 건 문지 신인상 시상식 자리였습니다. 예의 친구가 지돈씨에게 초대를 받았다며 저를 불렀는데, 시상식장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인사는 하지 못했어요. 그때 저는 화정동에 있던 영화 창작공간 시나리오작가존에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자리를 빼야 하는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가방 가득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지돈씨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시상식이 끝나기 전에 친구와 둘이 그곳을 빠져나왔죠. 그날 지돈씨가 수상 소감을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멋진 재킷을 입고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죠. 준비해온 소감이 있어서 그걸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멋진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물론 지돈씨는 본인의 목소리는 원래 떨린다고 말하겠지만요), 아주 긴 수상 소감을. 저는 지금 지돈씨가 제게 선물한 재킷을 입고 있습니다. 안주머니에는 지돈씨가 쓴 수상 소감도 들어 있고요. A4 6장이면 짧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오늘은 지돈씨의 대리 수상을 하는 자리인만큼,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지돈의 시상식을 최대한 재현하는 것이 오늘 저의 목표입니다. 잘할 수 있을까요? 굳이 잘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벌써 다음 역이 혜화네요. 이제 내릴 준비를 해야겠어요. 곧 다시 연락할게요. 안녕! (ㄴ)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서 베른하르트가 했던 말 기억해요? 시상식이란, 상이 주는 돈만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역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이런 시청과 강당 안에서 남들이 내게 똥물을 뿌리도록 놓아두었다. 상이란 한 사람에게 똥물을 뿌리는 행위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남들이 내 머리 위에 똥물을 뿌리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상금이 지불되니까. 지돈씨, 오늘 저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위트 앤 시니컬 2층이었어요. 그 안에서 남들이 내게 똥물을 뿌리도록 놓아두었죠. 심지어 상금도 없이… 지돈씨, 어떻게 제게 이럴 수 있죠? 맹세컨대 시상식이 이런 건줄 알았다면 저는 아무리 지돈씨의 부탁이라도 결코 대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여태까지 살면서 이렇게…… [더 보기] (좌:정지돈, 우: 신해욱) (다음 회에 계속)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인간은 너무 빨리 성인이 된다. 세상에 태어나 겨우 20년만 살면 어른이다. 만 19세에 이르면 보호자나 대리인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뭔가를 해도 괜찮은 법률적 나이로서 ‘성년’에 도달한다. 나는 이룬다는 뜻의 한자 ‘성(成)’이 신경 쓰인다. 내 생각에 인간은 죽을 때까지 영영 ‘성인’은 안 되는 것 같다.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점은 거짓말을 할 때 어른이 더 뻔뻔하다는 것뿐이다. 어린이는 상대를 순간적으로 속이는데 급급하나, 어른은 자기 자신부터 영영 속인다. 또 성인은 미성년자에 비하여 욕구의 실행에 있어 좀 더 사회지향적인 눈치를 본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훨씬 더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다. 30살이 넘은 인간의 말은 함부로 믿지 말라고 한다. 서른이 넘어도 전혀 어른이 아닌데, 고쳐 쓸 수 없는 속물이 되는 건 확실한 모양이다. 그나마 이 기준선의 나이도 갈수록 더 어려진다. 어른이나 성인 말고 다른 단어가 필요하다. 속물을 대신 쓰기엔 좀 그렇다. ‘물(物)’은 인간이 아니라 물건을 가리킨다. 만 17세 고교생 주리( 김혜준 )는 아빠 대원( 김윤석 )의 뒤를 밟아 그가 지금 요릿집 사장과 불륜 진행 중인 사실을 확인한다. 같은 학교의 윤아( 박세진 ) 역시 엄마 미희( 김소진 )가 외간 남자와 연애질에 빠졌음을 알고 있고 주리를 옥상으로 불러내 최신 정보를 더해준다.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오는데.” 이때 주리 엄마 영주( 염정아 )의 전화가 걸려오자 윤아는 “아줌마 남편이 우리 엄마랑 바람났고 엄마는 임신했다”고 신속, 정확하게 알려준다. 엄마 모르게 아빠의 불륜을 없었던 일로 만들 생각이었던 주리는 당혹해서 윤아에게 앙앙대며 따지고, 윤아는 느닷없이 주리에게 입을 맞춘 다음 ‘없던 일로 하면 되는 건 세상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우쳐 준다. 여기까지가 시작한지 10분이 채 되지 않은 지점이고, 영화는 구구절절하여 구질구질한 치정극으로 전개하지 않는 미덕을 스스로 예고한다. 서로를 가리켜 사이좋게 “미친년”을 주고받은 두 소녀는 이후 문제의 사생아가 막상 태어나자 실제로 사이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현대 인물들이 매 상황마다 망할 휴대폰 없이는 존립이 안 되어 개인적으로 괴롭다. 인간이 네모난 직사각형 물체를 들여다보고 문자를 입력하고 귀에 대고 떠드는 장면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그만 보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화기에 입력된 서로의 호칭을 보는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 윤아가 들여다본 미희의 폰에서 대원은 ‘마지막 사랑’이지만, 대원의 폰에서 미희는 ‘덕향(오리) 김사장’이다. 입원한 미희를 보러 간 병원에서 대원은 ‘예쁜 딸 주리’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대원을 발견한 주리는 “아빠!”하고 부르고, 윤아는 “저 사람이야?” 묻는다. 딸을 보자 황망히 도망치는 대원은 자신을 “아빠, 아빠” 부르며 쫓아오던 낯선 (남의) 딸 윤아를 보자 “누구니 너?”라고 당황해서 묻는다. 윤아는 엄마 병원비를 영주에게 갚을 생각으로 오랫동안 봉인했을 존재를 엄마의 폰에서 검색한다. ‘ㅂㅅ’를 누르자(나는 이게 나쁜 말로 그것처럼 느껴졌다) ‘박서방’이 뜬다. 미희는 더 이상 내 남편도 아니고 내 딸의 아버지도 아닌 지긋지긋한 존재의 이름을 그녀의 부모측이 불렀을 ‘박서방’으로 저장해놓았다. 윤아의 나이도 모르고 아마 분명히 이름도 모를 친아빠는 실제로 ‘ㅂㅅ’이었다. 현 시대의 관객은 불륜을 저지른 중년 남자의 내면 따위 혐오스러울 뿐 깊이 알고자 할 관심이 없을 것이고, 영화는 그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영리하게 차단했다. 네 여자의 상황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만으로 남자가 끼친 영향은 충분히 드러났고, 대원의 캐릭터는 그저 대책 없이 허우적거림으로서 극에서 제 몫을 다 한다. 잘못했다고 비는 남편에게 “성욕이야, 사랑이야?” 냉정하게 묻는 영주는 성당의 신부 앞에서 울며 고해하며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정말 나쁜 인간”이기를, 일찍 태어나고만 사생아가 아픈 것이 “하느님이 내린 천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천벌’은 불가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영화에는 잘 만든 데우스엑스마키나가 있다. 아마도 유전적 가능성마저 집요하게 고려했을 캐스팅은 극중 엄마와 딸들이 실제로 비슷한 외모로 보여서 영화를 더 그럴듯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주역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물론이고, 선생 김희원 , 박서방 이희준 , 방파제의 이상한 아줌마 이정은 , 병실에서 남의 사생활을 관전하던 모녀 엄혜란 과 정이랑까지 단역일지언정 저마다 출연한 씬을 제대로 챙겨간다. 먼저 중견 배우로서 연기를 너무 잘 아는 감독의 어떤 배려를 짐작케 한다. 나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무자비한 남성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이토록 산뜻한 영화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에서 두 소녀가 60, 70년대 일본 야쿠자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애도의 방식을 보여주어도 그것이 충격적이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영화는 산뜻하나, 그렇게 느껴지게끔 적정선을 뽑아낸 연기 연출이 다만 무서웠다. 나중에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가 어린 두 배우에게 했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너희가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마라,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면 애쓰는 모습을 들키지 마라.” 나는 이 문장이 영화 <미성년>의 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