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ANDPLAYNET]백현진 정재일 - 여기까지
- 제작년도
- 2010
< 기생충 >(2019)은 작가의 기질과 세계관, 스타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대다수의 표현 요소들, 카메라와 조명, 세트, 미술, 음악 등이 탁월하게 조정된 영화이다. 특별히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데뷔작 < 플란다스의 개 >(2000)에서부터 꾸준하게 발전되어 온 봉준호의 내러티브 기술 테크닉이다. 봉준호의 서사는 언제나 실종, 살인의 모티프를 타고 움직이는데,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서사의 국면들을 지속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신만의 시각 양식을 개발하였다. 이 양식을 ‘가속기술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속기술법이라 함은, 내러티브 정보의 효율적 제공과 장면 전환의 가속화를 위해 가장 적은 수의 쇼트를 사용하여 빠른 속도와 리듬으로 한 장면이 이동해야 할 목표 지점에 매끄럽게 도달하도록 하는 시각화 전략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의 가속기술법은 음악가 정재일이 작곡한 테마 음악 ‘믿음의 벨트’가 깔리는 기나긴 장면들의 연쇄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박 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는 기정(박소담)에게 집안의 운전기사를 추천받는다. “믿는 사람 소개로 연결연결, 이게 베스트인 것 같아요.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라는 연교의 말을 신호탄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를 이동하는 사물들처럼 유기적으로 배열된 쇼트들의 연속 진행으로 구성된 시퀀스가 이어진다. 물경 8분 동안 진행되는 이 시퀀스는 봉준호 식(式) 가속기술법의 강력한 효과를 입증한다. 음악과 나레이션이 병합된 사운드는 다양한 행위들의 계열이 이어지는 시퀀스를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바로크풍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작곡된 스코어 ‘믿음의 벨트’는 극중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박 사장(이선균)의 집사 문광(이정은)을 내쫓기 위해 치밀한 협동 작전을 실행하는 시퀀스를 시청각적 스토리텔링의 백미로 만든다. 이 큰 사기를 계획하는 가족들에 관한 플래시백은 시퀀스 전체에 걸쳐 산재되어 있으며 한 번에 모두 완료되지 않는다. 마치 강도 계획의 모의를 촬영하는 영화 스태프들처럼 기택의 가족은 그들이 짠 플롯을 시나리오화하고 재연한다. 이 시퀀스에서 내러티브, 시각 이미지들과 대위법적으로 얽혀가는 음악의 효과는 기택 일가의 작전이 진행되는 경로와 정교하게 조응하면서 하나의 사건 단위를 도입하고 완결한다. 하나의 질감을 드러내는 스코어가 바탕을 제공하고, 이야기와 연기, 상황은 분리된 채로 연결되어 있는 열차 칸들처럼 유기적인 사슬로 묶여 있다. 이전 쇼트들이 이후에 올 것에 반향을 일으키고 하나의 요소는 다른 요소에 작용하여 흡사 오케스트라처럼 진행된다. ‘믿음의 벨트’ 시퀀스의 목표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가속기술법의 의의) 박사장의 집에 침투하는 기택의 가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의 효율적인 기술은 이야기의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이미지의 속도와 리듬은 매우 중요하다. 카메라 움직임의 템포, 방향은 치밀하게 계산되었고, 프레임의 속도를 조절하는 슬로우모션, 화면 밖 나레이션과 극중 대사의 티키타카, 시퀀스의 주요 국면들에 화면 요소들의 적절한 배치를 통한 완결 구조 등이 독립적인 시퀀스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채로운 스타일 장치들의 몽타주를 통해 봉준호는 기택의 가족이 문광을 내쫓기 위해 그녀에게 결핵 환자의 누명을 씌우는 기나긴 계획과 그 실행과정을 기술한다. 시퀀스의 구성은 기택이 박 사장의 운전기사가 되기 위해 고급 외제차 작동법을 학습하고, 테스트 주행으로 안정적인 운전 솜씨를 어필하는 신으로 시작하여 기정과 기우의 나레이션이 교차하며 이 집에서 문광의 역할과 됨됨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신, 문광의 복숭아 알레르기 내력에 대한 해설, 문광에게 결핵환자 혐의를 씌우기 위한 계획과 그 실행을 교차하여 최종적으로 작전의 종착점에 도달하는 신으로 전개되어 간다. 기우(최우식)의 과외 수업을 문광이 감시하는 장면에서 기택이 쓰레기통에서 피가 묻은 휴지를 들어 올리는 지점까지 장대하게 진행되는 이 시퀀스에서 모든 쇼트는 유기성을 가지고 연결되며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강도 계획 모의처럼 행위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그들의 배열은 연속성의 원칙 하에서 진행되고, 편집은 무의미한 커팅이 아니라 쇼트들 간의 일정한 흐름을 가진 논리적 전환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믿음의 벨트 시퀀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첫 번째 요소는 전체를 관통하는 카메라의 무빙이다. 서두에서 연교가 늘어놓는 설명대로 ‘연결연결’되는 신들 간의 이동은 카메라 무빙의 연쇄로 보증된다. 기택이 운전기사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신에서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카메라의 수평 움직임으로 시작한 시각화 방식은 박 사장의 집에서 기정과 문광의 이동을 따라 좌에서 우, 우에서 좌로 움직이는 카메라 무빙으로 연결되고, 문광에게 복숭아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계획 하에 기정과 기우의 액션을 보여주는 전, 후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이어진 뒤, 백화점에서 쇼핑 카트를 끄는 기택과 연교의 움직임에 동기화된 카메라의 수평 이동을 거쳐 문광이 버린 휴지를 확인하려는 기택의 액션을 따라가는 수평 이동으로 종료된다. 여기서 카메라 무빙은 시공간의 차이를 두고 발생하는 액션들을 하나의 테마와 목표로 꿰어내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공정으로 만든다. 이 시퀀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두 번째 요소는 교차편집을 통한 공간을 초월한 연속성의 창조이다. 분리된 두 시공간의 교차편집을 제공하는 것은 반 지하방에서 이루어지는 기택과 기우의 역할극과 마트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기택과 연교가 나누는 대화이다. 교차편집 국면은 두 시공간에서 티키타카를 이루는 대화로 연결된다. 기택의 “제가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라는 눙치는 대사와 연교의 “요즘도 결핵환자가 있어요?”, 다시 기택의 “집에 다솜이 같은 어린애도 있는데...”와 같은 대화가 반 지하방과 자동차 안에서 교차를 이루며 반복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틀에서 시퀀스의 통일성을 창조하는 것은 컬러이다. 컬러의 통일성은 초입부, 기우와 박 사장의 맏딸 다혜(정지소)의 과외 수업에서 간식으로 등장하는 피자 위에 뿌려지는 핫 소스와 이 시퀀스의 대단원에서 기택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지를 들어 올릴 때 그 위에 발라진 피로 위장된 핫 소스의 시각적 조응으로 이루어진다. 붉은색 컬러의 조응으로 세팅된 가속의 리듬은 거대한 계획의 단계별 진행을 연속적으로 이어줌으로써 강화된다. 핫 소스에서 비롯된 컬러 모티프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거대한 학살극이 벌어질 때 흩뿌려지는 피로 이어진다. <기생충>의 ‘믿음의 벨트’ 시퀀스는 가난한 가족에서 부유한 가족으로의 이동, 분리되어 있던 그들의 병합을 단단한 시청각 이미지의 벨트로 묶는다. 이처럼 봉준호 식 가속기술의 전략은 집중과 통일성을 가지고 내러티브 기술(記述)의 효과와 스타일의 합일을 창조하는 탁월한 전략을 보여준다. 상술한 <기생충> 외에도, < 살인의 추억 >(2003)에서 시골 형사 박두만(송강호)의 애인 설영(전미선)이 지체장애인 백광호(박노식)의 별명 ‘덮쳐라 백광호’에 대해 설명하고, 두만이 그를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여 지하 취조실로 데려오는 일련의 쇼트 연결, < 마더 >(2006)에서 살인사건 희생자 문아정의 됨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네 아낙들, 소년들의 증언을 연속적으로 이어붙인 ‘미인박명 문아정’ 시퀀스 등이 가속기술법의 또 다른 사례에 해당한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 둥글고 둥글게 >(2020)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중심에 두면서 1980년대를 조망하는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역사적 영상물들을 편집한 파운드 푸티지 필름으로 단순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 이미지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환기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장민승은 <보이드>(2016), <보이스리스>(2019), < 오버 데어 >(2019) 등에서처럼 음악감독 정재일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이 작품에서도 ‘빛과 소리’의 특별한 시공간 체험을 선사한다. 여기서 ‘빛’은 ‘빛고을(光州)’이라는 이름을 가진 광주와 그 역사적 존재들이 남긴 흔적인 만큼, 차원들을 넘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와 그 역량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소리’는 기도와 종교음악이 그래왔던 것처럼 역사적 존재들과 현재의 관객이 만나 신에게 고통을 하소연하고 죽은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제의적 공간을 형성한다. <둥글고 둥글게>는, < 박하사탕 >이 가장 순수했던 ‘나’를 찾기 위해 5.18 광주 직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했던 것처럼, 시청각적 이미지와 역사의 잠재성을 재차 질문하고 그 역사-영화로부터 고통 받고 소외당한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 작품은 5.18 광주를 한국 근대사의 기원이나 갑작스러운 독립된 사건으로 부각하지 않는다. <둥글고 둥글게>는 88올림픽부터 시작해 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까지 시민과 기자들이 찍은 사진, 전두환 정권이 정권홍보를 위해 만든 뉴스영화, 텔레비전 뉴스보도영상 등을 현재에 촬영한 이미지 컷들과 교차편집하며 차근차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88올림픽의 아이콘이었던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뿐만 아니라 지금은 텅 비어있는 올림픽 스타디움이며, 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끈 시위대뿐 아니라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익명의 사람들의 일상의 감정과 노동환경, 작은 정치적 움직임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5.18 광주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고 5.18 광주는 1980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역사들에 다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기억하려 한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는 ‘Memorare(기억하라)’라는 합창이 반복해 울려 퍼진다. ‘Memorare’는 기존에 이미 기억된 것을 넘어서 기억하려는 의지이자 염원이다.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한 88개의 피아노 건반이 모두 자기 소리와 존재의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역사관을 전달하기 위해 <둥글고 둥글게>가 지속적으로 각인하는 것은 존재의 본질 혹은 물질의 기본 요소이다. 오프닝 장면부터 작디작은 빛의 입자, 사라져가는 연기, (피아노 건반과 공장의 기계음을 비롯한 여러) 소리의 파동을 가능한 개별적으로 또렷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을 최대화하기 위해 장민승 작가는 전통적 영화 방식을 버린다. 빛을 스크린에 투사하는 프로젝터가 아니라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유기물 고체를 이용해 자체 발광하는 디스플레이 OLED를 선택한 것이다. OLED는 빛의 전달 속도가 빨라 잔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선명한 화질을 제공한다. 이는 매우 작은 입자들까지도 그 존재를 도드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빛은 빛으로, 어둠은 어둠으로 그 본질을 감각하게 하며 전기적 운동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영화의 새로운 존재방식까지 고민하게 한다. 빛은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고 역사적 존재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시공간의 차원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해왔다. 87년 민주항쟁 당시 시위대가 고가도로에 올라가 아래쪽에 있는 전경들을 방해하기 위해 거울을 들어 빛을 반사시키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매우 SF 영화적인 순간을 만든다. 이때 시위대의 시선에서 관객은 프레임 아래쪽에 배치된 전경과 유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반사시키는 거울 빛은 스크린을 넘어서 관객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효과를 만든다. 2차원에서 3차원, 과거에서 현재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반사된 빛은 ‘기억하라’는 기호를 전송하는 조난신호처럼 보인다. 오프닝에서 5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하나의 초가 타오르고 꺼지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이명박 정권 당시 용산참사의 망루 이미지를 구김이 있는 반투명한 스크린에 투사해, 제사에서 죽은 자를 위로하기 사용되는 종이인 소지(燒紙)처럼 태워 버리는 장면 역시 거기와 여기를 연결하는 빛들을 전면화한다. 이러한 영화적 순간들은 극장상영이 아니라 무대가 있는 공연형식(2020.11.28.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으로 상영되었을 때 더 극적인 방식으로 연출된다. 87년 민주항쟁 당시 최루탄이 터지는 장면에서 스크린과 관객 사이의 무대에 연무가 뿌려지고, 5.18 광주 당시의 흑백 필름이 현재 광주의 공간과 교차편집 될 때 여러 개의 핀조명이 무대에 떨어지면서 2차원의 스크린과 관객이 있는 3차원의 공간의 경계는 무너진다. 이미지로 표현되는 역사적 존재와 현실의 관객은 ‘둥글고 둥글게’라는 제목처럼 사이-공간에 공통의 대기로 감싸 안아지게 된다. 5.18 광주의 파운드 푸티지 영상이 본격적으로 삽입되는 영화의 후반부는 죽은 자들의 말을 대신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씻김굿에 가깝다.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운명을 원망하는 구절로 가득한 시편을 후반부에 삽입하며, 당시의 광주시민들을 영웅적 투사로 세워 기념하기보다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더불어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항쟁을 ‘소요와 난동’으로 규정하는 <국립영화제작소>의 뉴스영화로 시작하는 후반부는 영화라는 매체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다.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고 그렇지 않아왔는가? 광주를 비롯한 역사적 비극들에 영화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후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폭행·살해당하고 부모들이 죽은 자식의 관을 붙잡고 우는 모습이 담긴 네가 필름들이 그 사건이 일어났던 현재의 공간과 함께 교차편집 된다. 계엄군에 의한 온갖 폭행과 고문이 일어났던 옛 광주교도소와 국군광주병원은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자연의 침입과 보호를 동시에 받고 있다. 카메라는 수평으로 뼈대만 남아있는 문과 문, 창문과 창문, 기둥과 기둥, 벽과 벽 사이를 이동한다. 이 움직임은 빛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플리커링(flickering) 효과를 만들며, 이 사적지들을 영화관 그 자체로 만든다. 레퀴엠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현재 카메라의 움직임과 과거의 촬영된 흑백의 푸티지들이 교차편집 되며 관객들은 과거와 현재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체험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공간 이동은 현존과 부재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어서게 한다. 장민승 작가는 ‘작가와의 대화’(진행 이은선)에서 ‘둥글고 둥글게’라는 제목에 대해 순환과 반복의 메타포이며, 광주시민들이 전라남도청 분수대를 에워싸고 있던 사진의 모양이고, 80이라는 숫자의 기호이고, 돌고 돌아 역사가 자꾸 제자리로 회귀하는 것에 대한 허망함이며, 한국 근대사의 경제성장에서 쇳물을 부어 제련하던 사람들의 노동을 가리킨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그것은 영화의 가장 기본 요소인 빛의 모양이기도 하다. <둥글고 둥글게>는 마지막 시퀀스에서까지 88개의 건반을 모두 보여주고 들려주며 그 존재들, 그리고 그 존재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까지 모두 기억하려 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유물론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역사와 영화를 제련하여 그 존재를 다시 묻고, 잊지 않으려 하고, 그들이 부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대기 중에 남아있는 빛의 입자와 미세한 숨결을 매개해 위로하려는 의지, 그것이 88분간 이 프로젝트가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빛의 입자와 미세한 숨결은 단순히 수동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곳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증거이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의 사건과 존재들을 체험하게 하는 역사의 행위소(actant)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