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젖꼭지
- 감독
- 강한비
- 제작년도
- 2020
- 출연
- 강한비, 정지윤
“내 몸에 지퍼가 있는 것 같아. 지퍼를 내리면 그 속에 전혀 다른 몸이 있는 것 같아. 이런 내가 괴물 같아?”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 소녀의 절박한 외침. 스웨덴 영화 < 걸스 로스트 >는 성장의 문턱에서 ‘길을 잃은’ 한 소녀의 외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한, 아주 과감한 영화다. 고민과 망설임의 내면을 따라가는 대신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은, 소녀가 그렇게 갑갑해 하던 외피에 메스를 가해, 감추어져 있던 성 정체성을 해부하는 일이다. 바로 몸이 ‘트랜스’되는 마법에 기반을 둔 독특한 판타지물로의 진입이다. < 걸스 로스트 >의 소녀 킴과 벨라, 모모 셋은 소위 말해서 학교의 왕따다. 남학생들로부터 “제 젖꼭지 좀 봐! 젖통” 같은 폭언을 듣고, 폭행으로 인해 입은 체육복이 찢겨 나가도 미약한 힘의 소녀들은 차마 대항하기 힘들다. 도움의 손길 역시 요원해 보인다. 엄마는 상관없는 일에 대해 잔소리나 할 뿐이고, 가까이서 도움을 주어야 할 선생조차 “너도 이제 14살이나 되었으니, 남자아이들처럼 강해져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늘어놓을 뿐이다. 레즈비언이라 놀림을 당하는 킴은 친구인 벨라와 모모가 겪는 부당함에 분개하지만 별다른 해결책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세 친구가 쉴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는 집에 있는 온실이다. 학교가 끝나면 소녀들은 폭언과 폭행,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비밀스런 회합의 장으로 모여들어 씨앗을 심고, 미래를 꿈꾼다. 구원의 손길 역시 이곳에 도착한 정체 모를 ‘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마법의 씨앗은 세포 분열을 거쳐 발아하고 꽃을 틔우게 된다. 마치 금단의 열매를 따 먹듯, 소녀들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꽃에서 나온 진액을 마셔보기로 한다. 꽃들에 둘러싸인 따뜻한 온실, 그들만이 정한 규칙, 그리고 빈티지한 찻잔에 받아 나누어 먹은 우정의 결의. 여성이 남성이 되는 트랜스젠더의 의식은 그렇게 마법처럼 실행된다. 더스틴 호프만(< 투씨 >)이나 멜 깁슨(< 왓 위민 원트 >)이 여성의 인권을 소재로 한 대중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여성의 옷을 입었을 때, 몸을 죄어오는 꽉 끼는 의상과 걸음을 뒤뚱거리게 만드는 하이힐의 시도는 ‘불편’함의 다른 말이었고, 결국 그 부대낌은 큰 웃음이 되어 돌아왔었다. < 걸스 로스트 >에서 여성의 남성으로서의 치환은 정반대다. 이들이 남성성을 획득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닌, 오히려 무기가 된다. 하룻밤 사이에 남자가 돼 버린 소녀들은 매끈했던 뺨에 우둘투둘 난 여드름과 팬티 속 거추장스러운 고추를 보고 당황하지만, 이내 환호한다. 소녀를 구속하던 꽉 맞는 지퍼를 내리는 순간, 그녀들의(아니 그 남자들의) 움츠렸던 어깨는 펴지고, 보폭은 당당해진다. 선생의 조언처럼 그들은 ‘남자아이들처럼’ 강한 근육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안하무인의 영역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제 더 이상 그녀들이 차별의 시선 속에서 숨죽여 살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이다. 소녀들이 이렇게 힘을 획득하는 걸 지켜보는 과정 속에는, 앞서 남성이 여성으로 젠더를 바꿀 때 일어나는 웃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바로 < 걸스 로스트 >에서 성장통을 겪는 소녀들을 지배하는 것은 다른 성을 향한 ‘호기심’보다, 힘을 가지지 못한 데 대한 공포와 절박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혼란의 시간을, 킴의 파괴적인 선택을 통해서 보여준다. 한번 남성의 힘을 체험한 킴은 다시는 나약한 여성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한다. 그에게 마법의 진액은 이제 다른 삶을 위한 절대적인 것으로, 곧 중독의 것이 된다. 더군다나 남자가 된 킴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일인자를 자처하며 거칠기로 소문 난 비행소년 토니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도둑질을 일삼는 토니를 도와주고, 그의 연애를 질투하고, 그의 구타를 감내하기까지 한다. 토니를 향한 킴의 집착을 눈치챈 친구는 그에게 묻는다. “개랑 사랑에 빠진 거야, 아니면 개처럼 되고 싶은 거야?” 과연 킴은 그 질문의 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토니를 향한 킴의 사랑을 비난할 수 있을까? 마법의 진액을 마시기 위한 킴의 집착을 나무랄 수 있을까? 결국 그는 갑갑하다고 외치던 그 지퍼를 올리고 소녀로 다시 돌아갔을까? 알렉산드라-테레세 카이닝 감독은 스웨덴의 영 어덜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성장 판타지 < 걸스 로스트 >를 통해 성차별의 구조 속에서 소녀들의 딜레마에 대해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킴의 욕망 안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문제를 꼬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특히 그간의 작품을 통해 꾸준하게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개해 온 감독이기도 하다. <걸스 로스트>가 성장기에 그들을 구속하고 있는 억압의 구조를 표현해 낸 것이라면, 전작 < 키스 미 >(2011)를 통해서는 사랑에 빠진 30대 레즈비언 여성이 주변 인물들과 겪는 갈등을 보여 주었다. 또 텅 빈 아파트로 날아 들어온 비둘기와 그 비둘기를 좇으려 하지만 힘을 못 쓰는 여성이 겪는 난처한 상황을 그리는 단편 <엘레지아>(2011)를 통해서 힘의 무게에서 오는 성차별적인 이 사회의 문제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가면을 쓴 소녀들의 비밀의식 장면, 몽환적인 음악이 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 등 < 걸스 로스트 >가 구축한 판타지의 영역은 소박하지만 눈길을 끄는 지점이 많다. 남녀 더블캐스팅으로 자고 나면 소년이 된 소녀들의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각각의 남녀 배우들이 상당히 닮아 있다. 영화의 시작 ‘다르다는 걸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영화는 결국 이 문구가 명령조라기보다는 절박한 외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단단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자신의 피를 뽑아 등록금을 마련해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의 현실을 이야기(<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 (2009))한 안창규 감독의 카메라는 그 연장선에서 좌충우돌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선 청년들로 향한다. 이 미친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내민, 유예 당한 청춘들의 즐거운 반란 < 청춘유예 >. 그의 첫 번째 물음은, 대한민국 2, 30대의 첫 번째 사망원인이 왜 ‘자살’인가?, 다. 자살하기 위해 다리 위에 서 있는 우린 아마도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 젖꼭지를 문 아기들이 레일을 따라 유치원공장에 들어간다.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모습으로 생산된 어린이들은 학교가 깔아 놓은 레일 위에서 한쪽 방향으로 실려 간다. 학교가 만들어 놓은 레일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레일은 계속 돌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상품 규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학생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졸업하고 잘 팔릴 수 있는 모양새로 포장되어 시장에 진열된다. 모든 구매가 완료된 지금! 팔리지 않은 상품이 울고 있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 팔리지 않았지? 무엇 때문에 이 경쟁 속에서 밀린 거지? 패배(?)한 난 어디로 가야 하지?’ - 스스로를 책망하며 다리 위까지 오른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화 속 답은 명쾌하다. 비록 세상이 규격화 된 시스템을 구축한 후 경쟁 속으로 내몰아 우리들의 청춘을 유예시켜버리고 나를 상품으로 만들었지만, 나 스스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와 내가 모여 유쾌 발랄하게! 영화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와 2010년 출범한 한국 최초의 세대별 노조 ‘청년 유니온’의 활동과 의미를 따뜻하게 담아낸다. 수제 개사료보다 못한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는 구직자, 명문대를 다니지만 앞길이 막막한 취업 준비생,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지만 영상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작가지망생, 아침마다 기다리는 카드 가입 실적표가 곧 자신이 되어버린 콜센터 비정규직 회사원. 이들 모두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엔 생활이 너무 빡빡하고, 업무가 많고, 무엇보다 뜻을 모아 함께 할 동지가 없다. ‘청년 유니온’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아르바이트, 서비스업 등과 같이 기존 노동조합으로 포괄되지 못한 이들과 함께 청년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설립되었다.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모인 청년들은 ‘청년 유니온’의 활동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자신을 패배자라 낙인찍고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가 내가 못난 탓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성공신화 속에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속성을 똑바로 직시하게 되고, 돈과 성공으로 견고하게 다져진 세상에서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함께 목소리 높이고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아간다. 반값 등록금 시행, 최저임금제 인상, 주휴 수당 보장, 노동조합 승인을 위한 투쟁 과정은 대한민국 사회가 청년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연대! 사람들에게 < 청춘유예 >를 소개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다. 감독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청년들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이 울고 있을 때 함께 슬퍼하고, 웃고 있을 때 함께 기뻐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 아낌없이 격려한다. 뷰파인더 속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는 건 다큐멘터리리스트로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목소리를, 아픔과 고통을, 그들의 언어로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를 상실한 대한민국에서 <청춘유예>가 세련되진 않지만 그 어떤 보석보다 귀하게 다가오는 건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