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랜드
- 감독
- 제루샤 헤스
- 제작년도
- 2013
- 출연
- 케리 러셀, JJ 페일드, 브렛 맥켄지, 제니퍼 쿨리지, 제임스 컬리스, 제인 세이모어, 드미트리 고리트사스
신상옥 의 1959년 작 멜로드라마 < 자매의 화원 >은 전통적인 제인 오스틴 소설 상황에서 시작된다. 유능하지만 가난한 의사 남 박사가 아름다운 두 딸과 어린 아들에게 빚만 남겨놓고 병으로 죽는다. 양갓집 규수라는 타이틀을 제외하면 직업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두 딸에겐 결혼만이 유일한 선택처럼 보인다. 다행히도 어머니가 죽은 뒤로 가족을 이끌어 온 큰딸 정희는 그 집안과 가깝게 지내는 젊은 화가 동수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 하지만 동수는 작은딸 명수와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이 결혼하자 정희는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여관(이라고 쓰고 요정이라고 읽는다)의 마담이 된다. 마침 아버지의 제자인 젊은 의사 순철이 정희를 좋아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제인 오스틴 소설의 커플들이 대부분 그렇듯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다. 이때 정희에게 마담 자리를 제안한 아버지의 옛 환자 방사장이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정희는 방 사장의 청혼을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자신의 과거가 순철의 경력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따라야 할까? 모든 옛 시대의 예술작품들은 세 가지 층으로 분리된다. 그들이 성취하려고 한 목표, 그들이 실제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 그리고 미래(그러니까 현대)의 감상자들이 실제로 보는 것. 첫 번째 층과 두 번째 층은 대부분 만들어진 직후부터 틈이 보인다. 하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을 만드는 변수는 두 번째 층과 세 번째 층 사이에 있다. 창작자는 두 층 사이의 간격이 존재하지 않길 바라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고 대부분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작품들은 그 벌어진 간격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가 붕괴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운이 아주 좋은 경우엔 그 간격이 그 작품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도 한다. < 자매의 화원 >으로 돌아가 본다면, 이 영화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층 사이의 간격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의 야심은 신상옥 이 1959년에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는 딱 그 지점에 맞추어져 있고 지나치게 멋스러움을 추구하는 만용을 부리지도 않는다. 오스틴의 소설이 그렇듯, 신상옥의 이 영화엔 감상주의나 신파 감성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배배 꼬인 사각 관계 속에서 갈등하는 네 사람의 이야기로 로맨스를 꾸밀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어조는 신중하고 차분하다. 연인들의 오해는 불필요한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 비교적 빨리 풀리고, 한 남자를 둔 자매의 전쟁 같은 것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언니의 남자를 사랑하게 된 동생이 맨 먼저 한 일은 언니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고 언니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며 언니 역시 그런 동생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까지 큰 감정의 굴곡은 없다. 두 자매의 짝은 처음부터 정해졌고 이들이 정해진 길을 가려면 약간의 오해와 사회적 편견만 제거하면 된다. 이 영화에서 멜로드라마보다 더 중요하고 실제로 주인공의 행보를 결정짓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다. 한 마디로 자매에겐 돈이 없다. 순철의 자기희생으로 아버지의 빚은 갚았고 명희가 결혼해서 입을 덜긴 했지만 그림을 잘 팔지도 못하는 화가 동수도 가난한 건 마찬가지이다. 명희가 결혼 전부터 꿈꾸었던 양장점을 차리는 데에도 돈이 들어가고, 어린 남동생을 부양하는 데에도 돈이 들어간다. 동수가 양장점을 차리기 위해 친구의 공금을 빌렸다면 더욱 그렇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정희의 선택을 결정짓고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모두 돈, 정확히 말하면 돈의 결여이다. 현대 관객들에게 낯설고 흥미로워 보이는 것은 정희가 영화 중간에 받아들인 여관 마담이라는 직업이다. 명희에게 마담 자리를 제안하는 방 사장은 아버지 남 박사 때문에 목숨을 건진 부유한 남자로 영화 내내 중후한 신사 캐릭터를 맡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양갓집 처녀에게 평생의 짐이 될 수 있는 그 직업을 제안하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정희 역시 그 제안을 그렇게까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립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희에겐 여관 마담이 되는 것이 절실하게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신랑감을 구하는 것보다 더 당당한 선택이다. 당시 여성들에게 극히 제한되었던 사회적 진출의 기회와 경제적 위기가 정희를 이런 선택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하는 좁은 틈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모든 게 당연한 품위 속에서 진행된다. 문제가 있다면 당시 관객들과는 달리 지금의 관객들은 방 사장의 캐릭터와 그의 제안에 대해 훨씬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 자매의 화원 >이라는 50년대 영화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층을 갈라놓는다. 방 사장은 50년대 한국 영화 속 중년 남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품위와 절제를 갖고 행동하며 결국 정중하게 정희를 포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방 사장의 태도를 의심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가 안전한 멜로드라마 조연의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50년대 한국 중상층 중년 남자들로 구성되었고 결국 대부분이 정희의 고객일 수밖에 없는 집단에서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들이 정희를 어떻게 대하는지 슬쩍 엿볼 기회를 얻지만 아마 그게 정희가 겪은 경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관객들은 이 규격화된 깔끔한 과정과 결말을 의심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50년대 한국 남자의 시야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그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엇을 검열했을지를 상상하게 된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담 자리를 맡을 수밖에 없었던 양갓집 처녀를 다룬 이 단아한 흑백영화는 십여 년 뒤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올 호스티스 영화들의 전주곡처럼 보인다. 물론 그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방패가 되어 줄 집안도, 뒤에서 짝사랑하며 청혼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전도유망한 의사도, 옆에 안겨 술 따라주는 여자를 같은 계급 남자들에게 공급하는 주제에 시치미 뚝 뗀 위선 속에서 고상한 말만 하고 있는 보호자도 없었다. 위선이 벗겨지고 필름에 지저분한 색이 입혀졌으며 모든 게 더러워지고 적나라해졌다. 하지만 정희와 명해 자매가 필사적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던 50년대 말이라고 해서 특별히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심했다면 더 심하지 않았을까.
할리우드의 열여섯 살 소녀들에게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2012년 <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을 시작으로 3편의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한 <헝거게임> 시리즈의 여전사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어린 여동생의 이름이 호명되자 동생을 대신해 독재국가 ‘판엠’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생존 전쟁 ‘헝거게임’에 참여한다. 군중 속에서 용기 있게 나선 캣니스의 나이가 그때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 캣니스의 파급력은 제니퍼 로렌스의 인기와 맞물려 급속도로 퍼졌다. 영화 속 전사는 현실에서도 유효했다. 제니퍼 로렌스는 인터뷰에서 “그래, 나 살쪘다. 그렇다고 화면에 잘나오려고 살을 빼지는 않을 거다. 애들이 캣니스처럼 돼야지 하고 밥 안 먹고 생활하는 그런 꼴은 보기 싫다”며 쇼비지니스계의 허상을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똘아이’로 인기를 독식했다. 이렇게 매력덩어리니 안 넘어가고 배길 수 없다. 열여섯 살의 캣니스는 SF 판타지물의 이른바 기준점이 됐다. 디즈니에서 십 대들을 틴에이지 멜로드라마에 활용하느라 열 올리는 동안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무장한 전사는 소녀들의 몫이 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시작된 영 어덜트 소설은 그리하여 초등학생 대신 체력적으로 파워를 가지고, 정신적으로 고뇌를 막 시작한 사춘기의 소녀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캣니스로 각광받은 < 다이버전트 >(2014)의 트리스(쉐일린 우드)도 그렇게 탄생했다. ‘핏줄보다 분파’가 중요한 통제된 사회 모든 구성원이 열여섯 살이 되면 평생 살아가게 될 테스트를 치르게 되는데, 트리스는 그 중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아 금기시되는, 즉 ‘다이버전트’의 운명을 쥐고 태어난 존재다. 시스템의 제어로 통제할 수 없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이단아의 나이는, 역시 사춘기를 통과하는 열여섯 살이다.(이 영화의 헤로인 쉐일린 우드는 청춘 멜로 < 안녕, 헤이즐 >(2014)에서도 암 투병 중인 환자이자 민감한 사춘기 연기로 호응을 얻기도 했다.) < 뷰티풀 크리처스 >(2013)의 소녀 리나 역시 강한 힘으로 세상을 끝낼 수도 시작 할 수도 있는 능력자다. 이 엄청난 파워는 열여섯 살 생일이 되면 그 능력이 발휘되는데, 그녀는 선과 악 중 한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소설, 영화, 그리고 각종 머천다이징까지 더해 소비력이 증가한 십 대 팬들을 겨냥한 할리우드의 전략은 알겠다. 하지만 이 거대한 지구의 운명을 이대로 열여섯 살, 순수하고 순진하며 철모르는 소녀들에게 모두 맡겨도 되는지, 좀 불안하기는 하다만. 하여간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 역시 <헝거게임>에서 출발한 이 열 여섯살 소녀가 바라본 아포칼립스의 시대다. < 라스트 킹 >(2006)을 연출한 케빈 맥도널드의 연출로 원작은 3권의 성장 소설로 영 어덜트 소설계에 파란을 일으킨 멕 로소프의 작품. 미국에 있는 소녀 데이지(시얼샤 로넌)가 영국의 시골 마을에 있는 사촌 집에 놀러왔다 겪게 되는 세계 핵전쟁의 살벌한 풍경을 그린다. 제작진은 애초 <헝거게임> 시리즈를 의도했다고 한다. < 한나 >(2011)로 어린 나이부터 액션에 재능을 보인 그 시얼샤 로넌이 제니퍼 로렌스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었으며 그 전략에 꼭 맞게 원작의 열다섯 살 데이지를 영화에서는 열여섯 살로 수정했다. 더불어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사촌 에디(조지 멕케이)의 나이도 맞춤형으로 원작의 열 여덟 살이 아닌 열여섯 살 동갑이 된다. 핵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으로 떠나는 대신 사랑하는 에디와 함께 남기로 한 데이지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열일곱 살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어. 너와 함께 여기 남고 싶어.”라고. 놀랍게도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의 장르를 결정해 줄 핵전쟁은 열여섯 살 소녀의 머릿속 오만가지 혼란 중 단 하나의 요소가 된다. 그 나이 때는 세계정세나 핵전쟁 말고도 고민할 것도 너무 많고, 그리고 사랑도 처음 시작할 나이라 복잡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딸이 영국 사촌 집에 가든 말든, 잘 도착했는지조차 전화 한번 하지 않는 무심한 아버지를 ‘피해’ 온 소녀는 자기 밖의 세상에 우호적이지 않다. 원래 이름대신, 아예 사촌들에게 “데이지라고 불러줘”라며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모든 이들에게 까칠하고, 말은 아끼는 데이지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것은 세상과 그녀를 단절시켜줄 헤드폰 속 록음악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환청뿐이다. 뱅 헤어와 진한 마스카라, 요즘 스트리트 패션의 일부인 일부러 구멍 낸 스타킹 차림을 한 미국 십 대, 데이지가 화면에 등장할 때는 쾅쾅 울리는 ‘Do It With a Rockstar''같은 음악과 ‘하루에 8잔 이상의 물을 마셔라’ ‘죽었으면 좋겠어’ ‘인생의 목표를 찾아라’같은 온갖 정체성이 뒤범벅된 사운드가 혼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루클린 거리나 클럽에서 맞닥뜨릴 것 같은 이 불량한 십 대가 도착한 곳이 바로, 제인 오스틴 소설 속에서나 볼법한 영국의 목가적 전원이라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이다. 창밖은 초록이 우거지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서 살포시 들어오는 이런 환경에서 블랙 마스카라를 짙게, 더 짙게, 가능한 한 더 두껍게 그리고 있는 데이지의 모습은 그래서 초장부터 상당히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삐딱한 데이지는 어떻게 마스카라를 지우고 영국 목가의 풍경과 어우러지게 되었나로 상당 부분 이 영화의 정체성이 확보된다. 열여섯 살 데이지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게 된 사건이 있는데, 바로 사촌 에디의 존재였다. 매를 다룰 줄 아는 에디는 소 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데이지를 위해 동물과 교감을 시도하고 그들을 물러나게 해주는 능력을 발휘한다. 에디가 울타리에 걸려 손에 피가 난 데이지의 피를 빨아주는 순간, 데이지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에디는 결정적으로 데이지를 향해 “모든 규칙을 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내 머릿속의 소음들”이라며, 그녀가 가진 혼란을 읽어 낸다. 그런데 진짜의 혼란은 데이지의 첫사랑과 함께 시작된 핵전쟁에 있었다. 조그만 소녀 파이퍼가 여름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진을 보며 “눈이 와”하고 소리치는 이 서정적인 장면이, 핵전쟁 발발을 알려주는 신호다. 세상에 이런 전쟁의 시작 장면이라니 좀 반칙이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첫사랑의 충만함을 알게 된 데이지는 결국 미국 시민의 보호받을 권리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에드먼드와 남는 걸 택한다. 그들이 처음으로 섹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동안, 중요한 건 완벽하게 어른의 존재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데이지의 아버지는 무관심했고, 영국에 있는 데이지의 이모이자 에디의 엄마는 데이지의 도착 이후 ‘평화협정’ 건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더니, 결국 스위스 바젤 출장 건으로 떠나 완벽하게 아이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후 영화 속 잠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최악이다. 군인들은 데이지와 사촌들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 격리시켜 결국 이들을 헤어지게 만들며, 데이지가 피난의 과정에서 만나는 남자 어른들은 여성들을 겁탈하고 폭행하는 악인으로 묘사된다. 전쟁의 시작과 진행 상황은 TV와 라디오로만 전달되는 정보일 뿐, 원인이나 주체 역시 불분명하다. 에디와 떨어져 파이퍼와 끌려간 데이지는 이제 부역에 동원되며, 방사선에 오염된 물을 마시기 위해 정제약을 타 먹는 생활을 하다가, 죽음의 공포를 피해 에드먼드와 헤어지기 전에 한 ‘다시 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린 파이퍼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파이퍼를 독려하며 쉬지 않고 걷고 또 걷고, 파이퍼를 해하려는 어른들을 제압하고, 여우가 시체의 사지를 뜯어먹는 시쳇더미에서 사촌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소녀의 모습은, 이미 열여섯 살 순진한 소녀에게서 한발 벗어나 있다. 데이지가 겪는 대재앙, 종말의 참상은 < 투모로우 >(2004) 같은 블록버스터에서 묘사하는 종말의 풍경과 조금 다르다. 소녀에게는 이 종말을 끝낼 파워가 아닌, 안전한 곳으로 묵묵히 달려나갈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오히려 종말의 세상, 식량이 바닥난 잿빛 풍경 속에서 필사적으로 남쪽을 향해 가던 아버지(비고 모르텐슨)과 어린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의 탈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데이지는 결국 전쟁 전, 자신을 소모하게 만들었던 마음속의 혼란을 접고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를 보면서 과연 많은 사람들이 핵전쟁을 묘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데이지의 첫사랑, 그리고 성장담에 접목된 이야기를 과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핵전쟁을 묘사한 후반부에 앞서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서정적 정서와 표현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더불어 시얼샤 로넌의 활약을 보는 건 이 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매력 요소다. 그녀가 이 영화로 제니퍼 로렌스의 영역을 이어받으리라는 제작진의 기대는 너무 과했다 싶지만 CIA 첩보원 아버지에 의해 16살 살인무기 소녀로 길러진 한나(< 한나 >)를 통해 봤던 가능성은 여전히 놓지 않고 싶다. 벌써 몇 년 지난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녀가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의 헤로인 ‘레이’역에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난다. J.J. 에이브럼스가 그 역을 시얼샤 로넌에게 맡겼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