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화전
- 감독
- 권영순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안인숙, 김지미, 윤양하, 박경주, 김석훈, 문오장, 이성일, 강계식, 박기택, 유광, 강룡, 윤일주, 박일, 김지영, 김왕국
사태가 대단히 복잡하지 않은가. 상징적인 것은 직접적인 것이고, 현전은 부재이며, 지연되지 않은 것이 지연되며, 희열은 죽음의 위협이다. 더구나 이런 체계, 대리보충의 이 이상한 경제에 추가되어야 할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이미 판독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위협인 대리보충은 또한 최초의 가장 확실한 보호라는 점이다. 그 위협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이 때문에 대리보충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말은 내가 아니라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의 제2부 두 번째 장 ‘이 위험한 대리보충...’에서 루소의 「참회록」을 설명하며 꺼내 든 것이다. 너무 유명한 문장이라 모두들 이미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구태여 대리보충(la supplement)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겠다. 다만 아주 제한적으로 이상하게도 우리를 막아서면서 환원 불가능하게 버티어선 그 흔적을 설명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결정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결정의 망설임. 그 흔적이 무언가 더해진 잉여의 덧셈에 따라 보충된 것인지(le supplement) 아니면 다른 무언가와 바꿔치기 당한 다음 대리하는 것인지(la suppleance) 그저 하염없이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장소. 물론 루소를 경유하여 데리다가 말하려는 것은 예술과 자연 사이의 대차대조표이다. 나는 거기서 물러나서 단지 이 텍스트 안에서 활동하는 저 텍스트가 왜 항상 환대받지 못하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왜 스스로 충만하지 못한 채 그 틈새 사이에서 출몰하는 저것은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저 안의 외침. 바깥이라는 안. 안에 있는 바깥. 무엇이 부족함을 대신하고 그런 다음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그라마톨로지」 사태를 좀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임권택 의 영화들, 그중에서도 불편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참조 틀의 어딘가가 부서져 나갔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단지 1967년 그 어딘가에서 1977년 어디까지에 한정 지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 욕망의 결산 >(1963), 혹은 < 달빛 길어 올리기 >(2009), < 신궁 >(1979), 그리고 < 아다다 >(1989). 단지 그 부서져 나간 표면의 범위를 따분하게도 바깥과의 대화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한 알리바이가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과정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영화는 영화사에 대한 각자의 은유라고 고다르가 말했다. 그걸 단지 어디선가에서 빌려온 영향이라고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처음부터 거기 있었기 때문에 안에서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뛰어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이 논리를 좀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핵심은 안에서 긍정하기 위해 그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도를 위해서 방법의 전위(轉位)와 그 수순에 따른 재평가의 결과로 나타난 영화에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요구를 순순히 따라야 한다. 여기서 왜 내가 까다로운 데리다의 전술적인 용어를 내세웠는지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 불편함을 말할 때 종종 그 영화에 제한적으로 주어진 데서 설명을 시작하는 것이 잘못된, 아주 잘못된, 그래서 임권택의 진정한 시작의 지점을 놓치는 실패를 항상 가져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이것을 최종 결과의 효과라는 데서 시작해보면 안될까. 이유들의 순서에 종속되지 않은 대리, 그사이에 재빨리 끼어드는 보충. 우리는 올바른 시작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불편한 실패들 속에서 자기원인의 동어반복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악순환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진화론적인 모델을 거부한다. 그건 그 영화들 사이에 놓인 영향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꾸만 그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는 목적론적인 설명의 함정에로 이끈다. 나는 영화들 사이의 관계에서 서사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임권택의 영화들은 내게 그런 설명이 결국에는 왜 불가능한지를 알려주는 목록이다. 월하의 검 (1970) < 월하의 검 >을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재난에 가까운 실패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임권택 에게 의미 있는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여기서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지도 않다. 그 어떤 것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그 무언가를 해본 것도 아니다. 1970년은 임권택에게 그런 해이다. 그 해에 임권택은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 애꾸눈 박 > < 이슬 맞은 백일홍 > < 비내리는 선창가 > < 그 여자를 쫓아라 > < 밤차로 온 사나이 > < 속눈썹이 긴 여자 > < 비검 > 그리고 < 월하의 검 >. 어떤 일관성도 없는 영화들. 하지만 이 실패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임권택의 무능력에로 돌리기에는 그에 앞선 영화들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 혹은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 나는 자꾸만 그의 실패한 영화들을 실패한 작품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 영화들은 실패라는 조건 속에서 자기들의 방법으로 실존하는 중이다. 실패와 부딪쳐서 부서져 나가는 영화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지금 바라보는 중이다. 그때 부서져 나가는 참조 틀 사이로 드러나고, 재생산되고, 존재하는 잉여들의 혼란스러운 모방과 마주친다. 잠깐. 모방이라고 했나요? 물론이지요. 그건 다른 무언가가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때 모방은 나에게 효과라는 최종 결과라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거기서 멈춰 세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과정이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최종이라는 종착지. 임권택 은 공식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감독으로 언제나 정창화 를 이야기한다. 그는 정창화 밑에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충무로 도제 수업을 받았다. 영화는 기계군의 활동이며 조직이다. 공장과도 같은 시스템. 그 안에서 개념의 추상화와도 같았던 이미지를 세계 안에서 찍은 다음 배열해야 한다. 여기에는 규칙과 문법이 있다. 그것을 쳐부순다고 말해도 그 안에서 진행되는 부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임권택이 정창화를 말하는 것은 그 인정의 테두리 안에서이다. 그런 다음 (펠리니의) < 길 >과 네 명의 할리우드 영화감독, 존 포드와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스를 언급했다. 나는 여기 세 명의 이름을 더하고 싶다. 임권택이 언급하지 않는 이름. 그의 영화 전체는 아니지만 우리들이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영화들이 만들어지던 시기, 실패의 상황이라고 내가 명명한 조건 아래서 만들어진 영화에서 마주치는 그림자들의 이름. 셀지오 레오네와 끌로드 를루슈, 그리고 장철. 물론 그 이름들은 잠시 후에 임권택의 영화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실패의 상황 속에서 남과 여를 주연으로 한 영화들과 < 남과 여 >, 그리고 쇼 브라더스 영화들은 마치 그림 안의 그림처럼 거기 그림자로 남았다. 영화가 한참을 자신의 서사를 진행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이미지들. 그것이 다시 나타날 때 종종 지나치게 실패해서 그것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는 느낌을 받기조차 한다. 미처 예기치 않았던 출현. 주인공이 자기의 몰락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그가 놓여진 상황이 다른 영화 안의 반복을 향해 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주석을 달고 싶다. 셀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이 끝난 다음, 그것도 거의 끝난 다음, 그래서 펠리니가 그 방법을 버린 다음, 안토니오니가 리얼리즘을 거의 추상에로 밀고 나아간 다음, 황무지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에 대한 아이러니로 시작하였다. <길>을 자신의 거의 유일한 걸작이라고 말하는 (게다가 전형적인 한국 고전영화문법 안에서 배움을 얻어온) 이 사람은 < 석양의 무법자 >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정창화에게서 충무로의 영화문법을 배운 임권택의 영화에서 잠시 동안 <남과 여>에서 무차별하게 사용된 시네마 베리테의 촬영과 누벨바그의 데쿠파주에 대한 키치적인 활용이 홀연히 등장하는 순간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마주칠 때 나는 어떤 쇼크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남과 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기의 한국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남과 여>는 한 시기의 한국영화들을 거의 쑥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미처 < 히로시마 내 사랑 >과 < 비브르 사비 > < 어느 여름의 연대기 > <사촌형제> < 롤라 > < 활주로 > < 쥘과 짐 > <사자좌> <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 < 파리는 우리의 것 > <아듀, 필리핀> <산타 할아버지는 푸른 눈을 가졌다>를 보지 못했다. 그저 < 네 멋대로 해라 >와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경험은 중단되었다. 아마도 오직 김기영 만이 영화‘歷’사의 시간을 좇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김기영은 (인터뷰에 따르면) 1960년대 그 부근 언젠가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도쿄에 방문했다. 풍문으로 누벨바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일본을 경유하여 각색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기의 글 자료들을 읽은 내 독후감은 그렇다. 그들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였고, <남과 여>가 굉장한 영화라고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거의 법칙과도 같았던 고전영화 문법을 무시하면서 그저 그렇게 떠오르는대로 찍고, 연출하고, 편집하고, 그래도 괜찮은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거기서 어떤 자유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을 지배했던 도제제도로부터의 해방. 그때 임권택은 모던 시네마의 방법에 가까이 다가갔다. 실패한 상황. 예기치 않은 보충, 혹은 무엇이 무엇을 대리하기 시작했을까. 이 위험한 대리보충. 어쩌면, 정말 어쩌면, 여기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그의 영화가 모두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임권택은 재빨리 다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도 방법의 흔적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다소 기형적인 양태로 분산되고 분할되어 머물렀다. 우리는 임권택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 방법을 잘 따라야 한다. 무엇이 멈추자 무엇이 활동하기 시작했을까. 거기서 우리는 영화의 어떤 역량이 표현되기 시작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때로는 긍정적인 역량. 때로는 실패해버린 표현. 거기에 적합한 개념. 거기서 멈춰버린 기능. (위) 정창화 와 <길>, (아래)셀지오 레오네, 끌로드 를루슈, 장철 나는 여기서 세 번째 이름에 대해서 길게 설명할 생각이다. 장철. 張徹. 1968년 5월 23일 서울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가 개봉하였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그렇게 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홍콩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는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하위 장르의 하위 장르이면서 동시에 재개봉관을 중심으로 컬트영화가 되었다. 임권택 은 이 이름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길게 언급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저 스쳐 지나갔다. 내 질문은 왜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버렸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의 임권택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영화 안에서 장철을 수 없이 다시, 거듭해서 다시, 호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셀지오 레오네와 < 남과 여 >를 불러낼 것이다) 이것이 단지 불균등한 위계적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장철과 셀지오 레오네, 그리고 <남과 여> 없이 더 나아갈 수 없었고, 아니, 차라리 그것들의 대리보충 없이 참조 틀을 부술 수 없었고, 그런 다음 거의 불순물과 다름없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다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실패해버린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위험한 명제. 임권택에게 그가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무로는 참을 수 없는 문법이었고, 그런 다음 부서져 가는 그의 영화 안에서 셀지오 레오네와 <남과 여>, 장철은 다시 견딜 수 없는 대가가 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설명을 따분하게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방식으로 도식화시키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바로 여기이다. 갑자기 여기서 새로운 쟁점이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 자기가 찾고 있는 진정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서만 견딜 수 있는 형식을 찾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 장철이 단지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말고 그 영화들이 광동오페라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판본 위에서 시작했다는 사실 안의 사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임권택과 장철이 공유하는 것은 무협활극이라는 표면적인 약속의 장르 사이에서의 트랜스 내셔널 네트워크가 아니라 피와 시체들, 복수의 정념과 의리의 도덕 뒤에 수줍게 숨어있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매혹이다. 더도 덜도 아닌 매혹. 그 속에서 그들이 즐기는 기쁨. 바로 거기서, 마치 그것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참조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대한 참조라고 할 정도로 < 월하의 검 >은 장철의 영화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 대협객(大刺客) >과 (부분적으로) < 심야의 결투(金燕子) >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몇몇 장면에서는 거의 같은 구도, 같은 활극동작을 빌려온 살진(殺陣)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여기서는 단지 오마주라거나 두 영화 사이에서의 상호 텍스트성이랄까, 이런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교차가 나타난다. 나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패한 오마주라고 말해버리면 어떨까. 이 말을 잘 음미해주기 바란다. 오마주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효과로서 나타나 버린 오류라는 실패한 오마주, 그 안에서 이행의 대리보충을 붙잡아야 한다. 무언가 저 영화가 이 영화에 구멍을 내고 그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단지 거기에 동의한다거나 혹은 이미 해놓은 것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감흥의 복종과는 다른 것이다. < 대협객 >(1967) < 심야의 결투 >(1967) < 대협객 >은 쇼 브라더스에서 장철이 왕우를 주연으로 하여 1967년에 만든 홍콩영화이다. 무협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화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다른 장철 영화들과 달리 긴 드라마가 장황하게 이어진 다음 아주 잠깐, 그래서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하지만 몹시 인상적인 무협활극 장면이 나오는 절정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고 나면 서둘러 끝나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는 1969년 10월 4일 종로 3가에 있었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하는 자객열전 중의 하나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백성이었던 섭정은 출중한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 재능을 시기한 동문 서식의 음모로 인해 스승은 당시 제나라와 적대관계에 놓인 나라의 첩자로 몰리고 무술 도장은 쑥밭이 된다. 이에 섭정과 그의 친구 두파는 복수를 한 다음 섭정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백정이 되고 두파는 옆 나라인 한나라로 피신하여 거기서 한나라의 충신 엄중자의 자식 무술 사범이 된다. 그런데 엄중자는 재상 한괴가 끊임없이 그를 음해하고 임금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며 몹시 괴로워한다. 그러다 보다 못한 엄중자가 두파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자기보다 훨씬 무술이 훌륭한 섭정을 추천한다. 제나라까지 찾아온 엄중자의 마음을 알고 그와 의형제까지 맺은 섭정은 다만 자기에게는 아직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누이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몇 해 후, 어머니 상을 치루고 누이가 시집을 가자 섭정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엄중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하얀 백의에 백마를 타고 귀공자로 분장하여 혼자 수백 명의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한괴를 찾아가 그를 처단하고 자결한다. 나는 주변에 있는 섭정과 그의 연인, 그리고 누이와의 이야기는 모두 그냥 지나쳤다. 그런 다음 < 월하의 검 >. 이 이상할 정도로 기괴한 우울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임권택 이 직접 쓴 시나리오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물론 임권택은 첫 영화를 만들 때부터 끊임없이 영화를 찍으면서 시나리오를 고쳤다. 그건 ( 송길한 이 시나리오를 쓴) < 만다라 >를 찍을 때도 그러했고 ( 이청준 이 시나리오를 쓴) < 서편제 >를 찍을 때도 그러했다. < 취화선 >을 찍을 때는 심지어 시나리오를 탈고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매일 아침에 새로운 대사를 쓴 시나리오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다시 고치는 것과 처음부터 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임권택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뒤 이어 와서 그것을 닮은 다른 이야기가 이미 앞에서 포위하고 있을 때 그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가 다른 하나의 대리보충이 될 때 어느 쪽이 앞에 있고 무엇이 뒤에 있는지 그렇게 쉽게 분간할 수 있을까. 후렴구. 나는 지금 실패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 어떤 것도 분명한 지표가 없는 사극의 무대.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 월하의 검 >을 볼 방법이 없고 잘 정리된 줄거리도 없기 때문에 이 글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 임금은 무능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화당 최씨의 미모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권세를 포도대장 최걸에게 모두 넘겨준다. 최걸은 자신을 비방하는 충신들을 모두 척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빼어난 무술을 지닌 장무력을 고용하여 마치 연화당 최씨를 암살하기 위해 잠입한 것처럼 꾸민 다음 최씨를 지키는 호위무사 박필에게 붙들리는 계교를 꾸민다. 임금 앞에 잡혀간 장무력은 자신을 고용한 자들의 명단으로 충신들의 이름을 차례로 열거하고 곁에서 통곡을 하며 연화당 최씨는 그들을 모두 참해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여기가 영화의 시작이다)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되고 이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충신들은 심산유곡에 자리한 절로 피신하여 이제 남은 방법으로 연화당 최씨보다 더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을 궁궐로 보내 임금의 총애를 받은 다음 진실을 알리고 간신배들을 벌할 것을 상소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 다음 이들은 이미 참수당한 충신의 딸 향아가 이에 적합한 미모를 가졌으며 그녀의 효성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데 합의한다. 문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행방이 묘연한 향아를 찾는 것인데 우연히도 위험에 처한 그녀를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 박필이 구하게 된다. 박필은 천애 고아로 어려서부터 최걸이 돌보면서 무술을 배우고 그 아래서 최걸의 자객이자 누이인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가 된 몸이었지만 자신의 신세에 대해 처량함을 느끼며 그저 시간 날 때마다 조선팔도를 이리저리 떠돌며 그림을 그리면서 허송세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무술만은 조선 최고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박필은 향아의 정체도 모른 채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변장을 하고 궁에 잠입한 향아를 보고 모든 계획을 깨달은 박필은 부디 이 위험하고 허망한 복수를 중단하고 자신과 멀리 떠나자고 말하지만 향아는 반대로 자신을 도와 복수를 이룬 다음 함께 멀리 떠나자고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향아는 임금의 처소에 들고 그의 마음에 들지만 (여기서 나는 그사이에 향아의 정체가 탄로 나고 연화당 최씨의 인두질로 얼굴이 망가져 궁궐 바깥으로 내쳐지지만 심산유곡 절의 주지스님이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묘약으로 미모의 얼굴을 고친 다음 다시 궁궐에 입궐한 사연을 둘러싼 대목을 건너뛰었다) 하룻밤 정사를 치르고 나서 증거가 없으니 연화당 최씨와 그 오빠를 벌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최걸은 이제 유일하게 증언할 수 있는 장무력을 제거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박필에게 제안한다. 박필은 장무력을 찾아가 일대 결전을 벌이지만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두 사람은 결국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 지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과 대결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한 수를 쓰지 않는 박필의 마음속 진심을 본 장무력은 기꺼이 그를 위해 임금 앞에 가서 진실에 관한 증언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하지만 박필은 그 증언이 모두 끝날 때까지 바깥에서 임금의 처소를 향해 수 없이 몰려드는 병사들과 홀로 싸워야만 한다. 장무력이 모든 증언을 마쳤을 때 박필은 수백 명의 병사들의 시체 곁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중이다. 그 곁에 온 향아는 그를 비로소 여보, 라고 부르며 품에 넣어둔 극약을 먹고 그와 같은 운명의 선택을 한다. 그 시간에 연화당 최씨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자 자결을 한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임금은 홀로 남겨진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 포스터에 있는 주연배우들의 명단을 보면서 당신은 포도대장 최걸을 허장강이 연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배역의 컨벤션이라는 약속. 하지만 김지미 는 향아가 아니라 악독하기 짝이 없는 연화당 최씨를 연기한다. 향아는 김명진 이 연기한다. 물론 배역은 일종의 수건돌리기 게임이다. 영화 바깥의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있긴 하지만 누구든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질문은 이야기 안에서 이들 사이의 오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턱에 관한 것이다. 먼저 이 영화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아마 이 말이 당신을 당황시킬지 모른다. 그렇다고 무언가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결말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마지막 순간은 결말이 다가왔다기보다 무언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투명하고 선악이 분명하며 우리가 누구 편에 서야 할지 따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점 그 경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 시퀀스 전체는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무언가를 주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비웃으면서 보편적인 믿음을 우스꽝스럽게 처리해버린다. 여기서 이 모든 등장인물들의 정박지인 임금은 단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과도하리만큼 색욕에 빠져 있다. 그 역을 연기하는 김순철 은 다른 배우들과 전혀 달리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어색한 코미디의 연기를 한다. 김순철은 단 한 장면에서도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김명진 과 침소에서 운우지정을 나눌 때조차 그러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홀로 존재한다. 불편한 고정점. 나는 당신에게 임권택 이 영화 연출을 할 때 언제나 연기를 교정하는 것에서 그 인물의 형상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 정창화 감독은 나를 카메라 옆에 앉혀놓고 배우를 보라고 시키는 거예요, 어떤 배우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약점이 보이는 거예요, 그게 내가 시나리오와 인물 사이의 오차 범위를 줄이는 방법이었어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겠다. 임금은 만월이 뜨는 밤이면 내시 한 명을 데리고 홀로 비원에 행차해서 그 달을 보면서 술을 마신다. 이건 궁중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그래서 향아는 임금이 혼자가 되는 그 시간에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박필에게 애원한다. < 월하의 검 >이라는 제목은 달빛 아래서 대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에 거기에 가야만 하는 향아와 그녀를 거기에 보내야 하는 박필의 애처로운 사연의 알레고리이다. 하나의 시간. 만월의 밤. 세 개의 선. 임금과 향아와 박필. 서로 맞지 않는 정념들 사이에서 운명적으로 짜 맞춰져야 하는 매듭 사이로 벌어진 틈. 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그 자신들이 짓지도 않은 죄를 짊어진 상태란 무엇일까. 말하자면 비극의 수순. 그런 다음 매듭을 자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임권택은 (장철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이 이야기가 죽음에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필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역설적으로 스스로 운명 앞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녀의 간절한 소원. 하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내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저 사람은 임금의 침소에 들어 육욕의 대상이 될 것이며 그에게 벌거벗은 살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임권택은 거의 기술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1970년의 한국영화 촬영기술을 바탕으로 무리할 정도로 반복해서 몇 번이고 만월(滿月)의 밤을 찍는다. 미첼 카메라의 둔중함과 값싼 아그파 필름, 그리고 조악한 조명은 한밤중에 만월을 찍는 것이 불가능한 장비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만월의 밤은 한낮에 밤 장면을 찍었다. (day_for_night) 종종 잘못 색 보정된 다음 무성의하게 현상된 필름들은 이 만월의 밤 장면들이 낮에 촬영되었음을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월하의 검>은 기술적으로 거의 재난에 가깝다. 그걸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여기서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냥 그걸 지금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걸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의도라면 그건 나쁜 의도이다. 여기에는 처음부터 그래도 상관없다, 는 자포자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나는 임권택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걸 설명하는 것은 전기 작가의 몫이지 내가 할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권택은 여기서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월하의 검>은 미학적 기준으로 무자비하게 설명하기를 단 한 순간도 망설일 필요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하려다가 실패하기는커녕 그걸 먼저 알아차리고 실패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다음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기묘한 실패의 정식화를 끌어낼 수 있다. 그건 실패가 외재적 조건일 때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부정에 대한 긍정이라는 역설이다. 이때 영화는 임권택에게 일종의 자기 심문과 같은 것이 되어간다. 마치 영화가 자기의 속살을 내보이듯이, 정말 부끄럽게, 필름의 한계와, 촬영의 제한적인 조건과, 제작의 무성의한 진행에 관한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끔찍할까. 속수무책으로 그것을 수수방관해야만 할 때, 그때 거기서 할 수 있는 방어의 기술이 전혀 없을 때, 임권택은 반대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바로 거기서 위험천만한 상실이라고 할까, 그 자신의 영화의 내부적인 멜랑콜리가 불연속적인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 안의 질문. 지금 이것은 그래도 성립되고 있습니까. <월하의 검>은 거의 부서진 영화이다. 그런데도 가까스로 버티고 선 무언가가 이 영화에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그것을 방어하면서 성립시키고 있다. 재앙을 피해야만 해.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해. 여기서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장철의 < 대협객 >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것을 쳐다보게 된다. 그때 그건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제도 바깥에서 나타난 부정성이다. 몹시 사악하고 거의 지켜지지 않는 규칙들. 강제적인 영화의 속도. 쇼 브라더스 영화의 처음 보는 기이한 문법. 거기서 섭정의 삶은 자유자재로 스튜디오 속을 거닐며 자기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다음 마지막 순간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오른다. 그렇게 사람이 날아가도 상관없는 것일까. 새로운 동선. 영화에서의 새로운 선, 하지만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선. 그 자신의 학습을 통해 얻어낸 경험을 앞지르는 건너편의 방법이 나타나서 부서져 가는 참조 틀 사이로 대리하고 보충하는 시간은 이 영화가 발작하는 순간들이다. 상감,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옵니다. 사실이옵니다. < 월하의 검 >을 보다가 누구라도 멈춰 서게 될 두 장면, 그런데 거의 마지막 장면, 그래서 이야기가 멈추는 두 장면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서 임권택 은 장르 안에서의 연쇄를 갑자기 끊어버린다. 그런 다음 이야기를 밀어내고 어떤 대체의 구조를 찾기라도 하듯이 인물에서 그것을 보충하려 든다. 어떤 절단. 그런 다음 그것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기라도 한 듯한 결정. 장무력이 임금의 앞에 가서 진실을 고하고 나자 포도대장 최걸과 연화당 최씨를 불러 그 말이 모두 사실이냐, 라고 묻는다. 그러자 최걸은 그 모두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로 시작하는 사극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만나는 상투적인 대사를 시작한다. 물론 악인들이 사악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 짝이 없다는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사약을 내리기에 조금도 자비심이 필요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때 최걸 의 말을 자르면서 연화당 최씨가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표정으로 모두 사실이옵니다, 라고 대답한다. 임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생명을 구걸하는 요구를 거절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동시에 권리와 정의를 일치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임금과 국가의 (상투적인) 변증법. 하지만 연화당 최씨는 이 일련의 자동적인 연쇄를 중단시킨다. 그런 다음 임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질문한다. 저년과 저, 둘 중에 누가 더 예쁜가요? 목숨이 걸려있는 순간에 이 질문은 적절치 않은 내기이다. 왜냐하면 임금의 대답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녀의 목숨에 대한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생명에 무관심한 듯한 질문. 하지만 이때 임금은 여기서 그 자신의 대답이 결정의 이해관계로부터 바깥에 놓이기 때문에 연화당 최씨의 질문은 임금의 자리로부터 그녀의 침소에서 몸을 탐했던 한 남자에로 임금을 추락시켜버린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는 임금으로부터 그건 물론 네가 더 예쁘긴 하지만, 이라는 대답을 듣자 거기서, 바로 그 대답의 거기서,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짓고 옆에 서 있던 신하의 칼을 빼 들어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대답이라는 패배. 대답을 통한 권리의 상실. 정의의 연쇄적인 추락. 자기 목숨에 대한 연화당 최씨의 스스로의 결정. 임금은 순식간에 결정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빼앗긴다. 그러므로 거기서 임금의 명령이 대상을 놓칠 때 그렇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얻어낸 진실은 끝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월하의 검>에는 표면적인 결론과 달리 드라마의 효과가 만들어내는 사필귀정의 카타르시스가 없다. 주인은 자기의 권리를 빼앗기고 주인의 주인은 그 권리를 죽음으로 돌려준다.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할 때 향아는 임금께 고하는 장무력의 고백을 위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밀려드는 병사들을 상대로 희망 없는 칼부림 끝에 죽어가는 박필에게 달려온다. 물론 이 장면은 장철의 < 대협객 >의 마지막 장면의 변주이다. 혹은 < 심야의 결투 >의 마지막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대결을 끝낸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서 피를 흘려가며 끝없이 밀려드는 무사들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필사적인 결투를 계속하는 은봉황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박필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가 입은 옷은 피로 범벅이 되어 계단에 쓰러진 채 죽어가는 중이다. 달려온 향아는 그를 껴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여보, 라고 부르며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말한다. 박필은 향아에게 이제는 만족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반복해서 향아의 복수를 말렸고 그녀의 희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설득했으며 단 한 번도 그녀의 결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도와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향아는 복수에 성공했고 그녀는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때 향아는 박필의 질문에 대답한다. 저 탐욕한 무리들을 떠나 당신과 함께 떠나겠어요. 연화당 최씨의 대답과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향아의 동선을 쫓아온 당신은 갑자기 멈춰 설 것이다. 탐욕한 무리들. 그 대답에서 가리키는 탐욕한 무리들은 최걸과 연화당 최씨가 아니라 그들에게 희생당한 충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아를 궁궐에 보내 자신들의 억울함을 탄원해달라는 명령을 내렸던 아버지의 친구들. 대의를 위한 희생. 향아는 그 충신들을 최걸과 연화당 최씨 남매와 별 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단지 그들은 서로 권력을 잡은 자와 잃은 자의 반대의 자리에 놓여있을 뿐이다. 향아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었고,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한 그 빈자리, 임금의 옆자리에 가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한 다음 품에서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만일의 경우를 준비한 독약을 아낌없이 자기 입에 털어 넣는다. 두 개의 자살. 즐비한 시체. 여기서 자살은 어느 쪽도 자포자기가 아니다. 그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살을 선택하면서 무언가를 항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임권택 의 영화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대하는 행위는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길고 긴 영화의 목록 끝에 자신의 영화에 대한 철학적 정식화가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말한 이 사람의 영화에서 끈질기게 자살이 반복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부를만한 < 취화선 >에서조차 마지막 장면에서 오원 장승업은 그 자신의 예술에 대한 결론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장승업에 관한 전기에 따르면 그는 말년에 그저 실종되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각자의 이야기에서 살고 있는 각자의 주인공들이 살아온 삶의 결론에 이르러 각자의 죽음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어디서 시작했건 결국에는 자살이라는 어떤 (텅 빈 상태의 공허한) 중심에로 이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뿐이다. 이를테면 역사 그 자체. 나는 <취화선>에서 바로 이어지는 또 한편의 전기인 < 하류인생 >의 마지막 장면을 유심히 바라본다. 여기서 자기의 자리를 텅 빈 구멍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는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일까. 나는 임권택에 관한 논의를 더 멀리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실패한 선택으로서의 장철의 쇼 브라더스 영화를 경유할 필요를 느낀다. 거기서 시작했고, 거기 머물지 않기 위해서 비극적인 것에서 진정한 비극에로 점핑하면서 도약하는 과정이, 오로지 그 과정이, 임권택의 목록을 쫓아가는 내게 감동을 준다. 방법론으로서의 소용돌이의 심연. 무한정한 회의. 그 안에서 탄식하는 부자연스러운 매혹. 먼저 덧셈을 한 다음, 보충한 다음, 그다음은 빼내는 것이다. 거기서 원래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대리를 다시 바꿔야한다. 대리보충에 대한 대리. (데리다의 표현을 빌려) 이중의 세션. 물론 모든 문제 안에는 대답이 포함되어 있다. 그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얼마나 주어져 있는가. 이제까지 나는 < 월하의 검 >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서 모든 장면들이 보고 난 다음 내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임권택 은 내가 보고 있는 이야기 안에서 어떤 장면을 종종 바늘처럼 찌르듯이 불쑥 내밀 때가 있다. 이건 바르뜨가 말하는 푼크툼과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이야기 안에서, 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따로 이야기에서 때어놓고 보면 별로 대단하지 않을뿐더러 이미지 자체가 훌륭한 것도 아닌데 정말 갑자기 그 장면이 이야기 앞으로 나올 때가 있다. 그때 이 장면을 이야기에 놀랍도록 적절하게 조응한다거나 혹은 이야기를 압도하면서, 라고 설명하는 것은 사태를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장면은 이야기에 대해 몹시 불길하고 축축한 외설성을 갑자기 드러내듯이 출현한다. 여기서 방점은 갑자기, 에 놓여있다. 그건 무언가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것만 같은 불만에 빠졌을 때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장면이 앞에서 상연되는 것이다. 나는 상연, 이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의도적인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 누구에게? 우리에게. 왜 그런 상연이 필요해진 것일까. 그건 이야기의 표면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필과 향아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이르자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제 자리를 맴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박필은 향아를 그녀의 원대로 한밤중에 비원으로 데려다준다. 비원에 깊은 밤이 오면 임금이 내시 한 명만을 대동하고 술을 마시며 이 시간을 홀로 즐기기 위해 나들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향아는 그 밤이 만월의 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한밤중의 비원에 홀로 앉아 오지 않을 임금을 기다리며,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장소에서, 그 누구도 들을 리 없는 피리를 거기 없는 임금을 향해 불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까지는 이야기 안에서 오인의 청각 기호가 작동하는 중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밤은 깊어가고 아무리 기다려도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향아는 피리 불기를 중단한다. 이때 화면에서 향아가 중단을 했는데도 영화는 계속해서 피리를 분다. 그때 이 피리는 향아의 몸과 분리되어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그런 다음 마치 장면의 사운드 트랙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 홀로 남은 향아를 위해서 영화가 불어주는 풍경으로서의 청각 기호가 된다. 이 이행의 순간은 순식간에 벌어져서 단지 실수가 아니라 마치 이야기 전체가 어떤 오작동을 일으킨 것만 같은 인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임권택은 텍스트라고 정의 내려진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거기에 마치 어떤 맹점(blind_spot)이 존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의 가시성이 만들어내는 한계 가장 가까이에 다가간다. 우리는 이걸 단지 속임수라고 지나쳐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갑자기 이야기 바깥에서 운명이 찾아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이야기 바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이야기를 조정하는 끈. 이때 운명은 비극을 상연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 장면이 필요해진 것일까. 임권택은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에서 역사를 삭제하는 대신 역사 안의 실재적인 질서가 작동시키는 운명이 비극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남겨놓는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구체적인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니 차라리 그런 임금의 존재를 역대 왕조에서 누구로부터도 유추할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가 아니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대리된 가상의 임금. 그 안에서의 광동 멜로드라마의 보충. 이때 임권택은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에서 다시 이야기의 현실 안으로 되돌아올 때 소름 끼치게 무서운 장면을 준비해놓고 있다. 향아는 아무리 기다려도 비원에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실망하여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이때 향아가 방에 앉는 장면은 무언가 이상한 구도로 잡혀있다. 지나치게 멀리 물러난 카메라와 향아의 거리. 그녀를 둘러싼 어둠. 그런 다음 호롱불을 켜자 방 안이 밝아지면서 이제까지 그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화당 최씨와 그녀의 궁녀들, 그리고 야경을 돌며 궁궐 안을 순찰하던 포졸들이 마치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병풍처럼 향아를 둘러싸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면이 우리를 경악(驚愕)이라는 공포의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여기가 궁궐 안에서의 향아의 유일하게 사적인 공간이자 그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한 것처럼 여겨진 그녀의 방이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이 방을 마치 향아에게만 개인적으로 허락된 장소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기를 향아의 안전한 피난처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화당 최씨가 여기에 나타났을 때는 습격을 당했다기보다 갑자기 피난처의 베일이 찢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에 이를 때까지 연화당 최씨는 향아의 행동반경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거나 마치 그 둘 사이에 교집합이 없는 것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원. 각자의 운동. 그런데 가장 이상한 세 번째 이유가 남아있다. 여기까지 이야기의 진행이 향아와 연화당 최씨 두 인물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의 진지함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나태했기 때문에 하나가 다른 하나의 동선 안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순간이 의도된 연출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은 이후의 진행을 생각하면 거의 희박한 가능성으로 남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깜짝 놀란 우리들은 그만 이 순간에 불쑥 찾아온 예기치 않은 방문객을 맞이한 심정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임권택은 그 효과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여기가 이 시기의 임권택의 마지막 방어선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영화는 다시 참혹한 기술적 수준의 장면들과 진부한 이야기에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 개의 자살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 둘이 자살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 월하의 검 >에서 그 두 사람의 죽음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 영화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 속의 요지부동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많은 죽음 끝에 정의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사실상 이 영화의 무대가 된 존재한 적이 없는 조선 시대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임금은 새로운 여자를 찾을 것이며, 그는 정사에 관심이 없으며, 충신들의 무리는 자신들의 복권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어떤 변화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세월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임권택 은 그의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에서 (각색을 거치긴 했지만)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하여 사극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왕조와 역사적인 실록은 이야기에 개입하였으며, 실존했던 인물들은 자기의 자리를 버티고 앉았으며, 외세는 이 시대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권택은 역사 안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발전시켜야만 했다. 그때 그는 우아한 화면과 그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연출하였다. 우리는 임권택이 1934년에 전라남도 끝자락 아직 조선 시대의 향취가 남아있던 시대에 자라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1965년에 만든 < 왕과 상노 > 혹은 그 무렵부터 실록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이 시기부터 임권택의 영화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남은 것은 시대의 조건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부여한 최소의 이치였다. 제도와 계급. 의상과 호칭. 마치 게임의 규칙처럼 되어버린 역사의 매트릭스. 역사는 형식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임권택이 누린 것은 자유가 아니라 절망적으로 고립된 상황과 공허한 유교에 바탕을 둔 감상적인 남녀 사이의 희생과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전근대적 향수의 눈물이었다. “그때 그 영화들을 만들면서 내 영혼이 다 부서지고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살아본 시대는 아니지만 이게 무어가 진짜고 무어가 가짜인지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다 들어본 세상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어른들에게서 법도와 예절을 배웠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내가 내 손으로 좋았던 유산을 다 부수고 있으니 만들면서 내내 참 몹쓸 짓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 월하의 검 >은 정확하게 그 말에 대한 대답이다. 임권택은 먼 길을 돌아와야 했으며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자기에게 강요된 조건을 수락해야만 했다. 그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참으로 참혹하게도 임권택이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 증언 >을 경유하여 그해 여름 한국전쟁을 마주 보면서, 다 부서져 버린 고향을 바라보면서, 흩어진 친척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로 총을 쏘고, 고발하고 신고하고, 죽고 죽이는 세상을 보면서, 그렇게 돌아왔다. 하지만 잠시만, 아직은, 아직은 좀 더, 나는 임권택의 그 시간에 머무를 생각이다. 그러므로... (계속) 1970년 108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임권택 촬영 최호진 조명 윤창화 편집 장현수 음악 황문평 김지미 윤양하 김명진
정리에 관한 의문. 목록을 따라가다가 < 연화 >에 이르면 이 영화는 <연화>와 < 연화(속) > 두 편으로 나뉘어 분류되어 있다. 물론 한 편의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누는 것은 신기한 일은 아니다. 클로드 란츠만의 < 쇼아 >는 전체 10시간 13분 상영시간을 각각의 토픽에 따라 네 편으로 나누었으며, 왕빙의 < 철서구 >는 9시간 11분에 각각 제목을 다시 달고 세 편으로 나누었다. 고다르는 좀 더 섬세하게 나누었다. <영화사(들)>은 4시간 24분을 네 개로 나눈 다음 다시 각 분류 안에서 장(chapitre)을 A와 B로 나누었다. 구태여 예를 떠올린다면 미조구치 겐지가 1941년에 만든 <겐로쿠 추신구라(元祿 忠信藏)>일 것이다. 4시간 1분에 이르는 이야기를 겐지는 그냥 간단하게 ‘第 一篇’과 ‘第 二篇’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이 두 편은 경우가 다르다. 분류와 달리 <蓮花>라는 제목으로 1975년 3월 8일 국제극장에서 개봉하였고, 그때 신문광고전단에 따르면 ‘邦畵史上 初有의 3時間 40分 上映!’이라고 되어있다. 그 아래 ‘第 1部 離別篇’ ‘第 2部 復讐篇’으로 친절하게 이 영화가 두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되어있지만 현재 남아있는 필름에는 두 편을 나누는 그 어떤 간(間)자막(inter_title)이나 별다른 표시가 없다. 또한 두 편 사이는 16년을 건너뛰고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第 2部 復讐篇’이 시작될 때 별다른 자막이나 소개가 없으며 앞의 이야기에 대한 간단하게 요약된 줄거리의 소개도 없다. 무엇보다 어디에도 <연화 (속)>이라는 제목을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상영시간을 고려해볼 때 그 당시 상영된 할리우드 영화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나 < 벤허 >,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서 볼 수 있었던 휴식시간(intermission)도 없다. 만일 <연화>가 신문 전단처럼 두 편으로 나누지 않고 상영회차를 하나의 단위로 하여 한 번에 전체를 상영했다면 임권택 의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긴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일 것이다. 민태호 대감 선혜 옹주 정실 부인 연파 스님 이윤재 연화 이 두 편 혹은 한 편을 둘로 나눈 영화 < 연화 >는 1973년 9월 23일에 첫 방영을 한 다음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5월 3일에 종영한 동명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연화>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임권택 의 첫 번째 영화는 아니다. 나는 이미 방송 드라마 <불청객>을 영화로 옮긴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다루었다. 또한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첫 번째 감독도 아니다. 종종 영화관객과 시청자를 사이에 놓고 영화와 텔레비전의 적대적 관계를 설명하는 미디어 경제학자들의 일반론과 달리 1970년대에 한국영화는 텔레비전과 가까이 있었다. 이 영화가 상영시간이 길긴 하지만 이야기가 복잡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신분을 속이거나 혹은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관계 속에 놓이기 때문에 인물 사이의 관계가 다소 장황하다. 그러니 우선 다소 어수선한 줄거리를 감상할 것. 조선시대.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 정적들을 차례로 암살하던 민태호 대감은 선화옹주와 부마인 이윤재 가족을 몰살한다. 그러나 이윤재는 상처를 입고 빠져나오고 선혜옹주는 출산직전의 몸을 끌고 회암사로 흘러들어온다. 마침 민태호의 정실부인이 임신을 기원하는 백일기도를 드리던 마지막 날이었다. 주지인 연파스님은 선혜옹주에게는 출산한 딸을 숨기며 사산했다고 말한 다음 민태호의 정실부인에게는 절로 흘러들어온 여인이 아이를 낳은 다음 사라졌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니 딸로 들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정실부인은 기뻐하면서 민태호 대감에게 이르니 간절히 자식을 바라던 그도 기꺼이 승낙한다. 그런 다음 연파스님은 정실부인에게 지금 양반 댁에서 막 씨받이로 아이를 낳고 빼앗기자 실망한 나머지 절을 찾아온 여인이 있으니 그녀를 젖 물리는 유모로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 다음 선혜옹주를 추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등장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선혜옹주는 자기를 죽이려던 민태호 대감댁에 양주댁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유모로 들어가 자기 딸에게 젖을 물리면서 목숨을 구한다. 다만 옹주는 그 어린 아이가 아직은 자기 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온갖 우여곡절. 그러는 중에 민태호 대감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옹주를 강제로 겁탈하려 든다. 이에 거의 자포자기한 옹주가 자결을 하려들자 연파스님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들려준다. 그러는 동안 이윤재는 복수를 하기 위해 민태호 대감댁에 나타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훗날을 도모하며 떠난다. 이때 옹주는 남편인 이윤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 부 끝) 16년이 흘러 어느 덧 연화는 규수가 된다. 혼처가 사방에서 날아들고 그 중에 민태호 대감의 측근이자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원수중의 하나인 김초선 대감댁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이 사실을 알자 이윤재는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이 결혼을 저지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이윤재가 보낸 자객은 함지기가 함을 들고 가던 길에서 기다리다가 차례로 활로 쏘아 쓰러트리고 그 과정에서 민태호 대감은 양주댁이 선혜옹주이고 연화가 이윤재의 딸이며 이 모든 것이 연파 스님의 계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연화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위기에 몰렸다고 생각한 민태호 대감은 이들을 모두 감옥에 가둔 다음 참수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이윤재와 마주선 민태호 대감 앞에서 정실부인은 모두를 살리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면서 이윤재에게 기회를 준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민태호 대감을 유배 보내고 부마 이윤재와 선혜옹주는 복권한 다음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연화는 원래 부모의 손으로 되돌아간다. (이 부 끝) 아마 줄거리만을 쫓아왔다면 < 연화 >가 당연히 출애굽기의 예언자 모세의 성장담의 변주라는 것을 알 것이다. 죽어야 할 아이.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적의 손에서 자라나 훌륭하게 크는 그 아이. 유모가 된 어머니. 그렇지만 그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모든 것을 비밀로 감추어야 한다. 아들이 딸이 되었고 기독교는 불교로 바뀌었고 이집트는 조선이 되었지만 기적을 행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의 유사성은 거기까지이다. 그런 다음 먼저 내가 두 개의 텍스트 사이에서 할 수 없는 불가능에 대한 전제. 가능하면 원작 드라마의 배우들을 그대로 옮겨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방송과 영화의 차이는 연화 역할이 김창숙 에서 이효춘 으로 바뀌었으며, 연화의 아버지 이윤재 역할이 김동훈 에서 윤양하 로 바뀌었다. 나는 원작 방송 드라마를 보지 못했고, 또한 방송으로부터 영화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일부 배역의 교체의 속사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배역에 대한 연기자의 변화 사이에서 오는 차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인물의 성격에 대한 변화나 연기의 새로운 각색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텔레비전 드라마가 영화처럼 어린 연화와 선혜옹주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일 편과 시집갈 무렵이 된 성장한 연화와 그녀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 편으로 구성한 영화처럼 거의 절반의 비중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드라마의 균형을 갖추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또한 텔레비전 연속극을 연출한 김재형에서 영화를 연출한 임권택 으로 옮겨오면서 아마도 있을(수밖에 없는) 둘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도 비교해볼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영화 <연화>에 의지해서만 말할 것이며 거기서 가끔 건드리는 연속극 드라마와의 비교는 추론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영화 <연화>는 연속극 <연화>의 성공에 기대어 만들어진 영화이며, 그러므로 이미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관객으로 이행될 때 영화는 연속극의 기대의 지평 안에서만 펼쳐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지평. 성공의 전제가 안겨준 감옥. 겉보기에 단순하게 여겨지는 이 질문은 생각보다 기괴한 역설을 담고 있다. 이미 인물들의 운명은 결정되었으며, 영화는 그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연화는 매번 물어볼 것이다. 전 어떻게 하면 되나요. 대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한 걸 그대로 반복하렴. 그런 다음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어주기 바란다. <연화>는 인물들 사이의 역할 놀이이며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술래잡기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긴장은 누가 술래인지를 알아내는 게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시작할 때 이야기 바깥에 있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핵심은 우리만이 알고 있는 그 지식을 언제 이야기 속의 누군가가 함께 공유하느냐는 것이다. 선혜옹주는 언제 자기가 젖을 물리고 있는 어린 연화가 자기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인가. 그때 민태호 대감이 먼저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이에서 정실마님은 언제 그 지식을 얻게 될 것인가. 왜 매번 이윤재는 사태를 망쳐놓는가. 연화는 언제 자기를 낳은 엄마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인가. 민태호 대감이 연화가 자기 딸이 아니라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딸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될 것인가. 그런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먼저 알게 될 것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대상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 지식의 경주는 연파스님이 쳐놓은 덫이지만 동시에 그 또한 구조 안에 있기 때문에 매번 결정의 순간을 정해야한다. 그리고 그 결정의 시간은 동시에 그 자신의 기회를 그만큼 잃어버리는 반비례의 역학을 작동시킨다. 말 그대로 누구도 예외 없는 구조의 노예들. 무엇이 앞설 것인가. 그 뒤에 따라오던 것이 만일 앞지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여기서 영화의 곤궁.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이미 모두 본 것이며 게다가 충분히 즐긴 다음이다. 취소되어버린 효과. 이미 연속극에서 했던 동작을 구조 안에서 고스란히 반복해야 할 때 시청자들이 관객이 되어 거기서 다시 한 번 보는 고통스러운 눈물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난 이미 잘 알고 있어, 지금은 저렇게 눈물을 흘리지만 곧 이런저런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이렇게 잘 해결될 거야, 그러니 울지 마세요. 그때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동작은 이미 해본 것을 다시 한 번 재현하는 기계적인 일련의 숙련된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서 시청자(이자) 관객이라는 이 이상한 자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앞서 간다. 그러면서 돌아보는 자리. 항상 돌아보는 자리. 아무리 이야기가 달려가도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돌아보는 자리. 서로 뒤집힌 위상 관계는 단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반복하는 단순한 관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다시 바라볼 때 모든 것은 원래의 모습에로 되돌아오는 내내 순수한 겉치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라진 위기. 그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차지하는 지위는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이며 인물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사건이 나온다기보다는 사건을 위해서 인물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거기 머물기 시작한다. 이때 임권택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후렴구처럼 반복하는 말. 곤궁에 처한 영화. < 연화 >에서 영화가 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해낸 그 나머지가 아니라 이미 해낸 것 안에서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외형적인 차이가 있다. (그 당시의 텔레비전 모델에 따라) 모니터 4대 3 비율의 화면을 2.35 사이즈의 시네마스코프로 찍었으며, 흑백 화면을 칼라 스크린으로 옮겼다. 하지만 난처한 약점은 칠 개월에 걸쳐 매주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제 일 편은 1시간 46분, 제 이 편은 1시간 49분으로 압축시켜야 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임권택 (과 신봉승 )은 종종 영화 <연화>의 관객을 이미 드라마 <연화>를 본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단지 요령 있게 압축하거나 일부를 잘라내는 대신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든 다음 어리둥절할 정도로 건너뛴다. 그래서 주변의 인물들 중의 일부는 때로 사라지고 한참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나오기도 한다. 마치 벌거벗은 것과 같은 상태의 이야기. 임권택은 그 이야기를 영화의 경제학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이 기나긴 이야기는 고작해야 민태호 대감의 99칸 저택(으로 설정된 한옥 가옥) 안의 민태호 대감의 방과 선혜옹주가 유모로 머무는 방, 그리고 정원, 이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감댁 안의 감옥, 그런 다음 회암사의 불당과 그 곁에 자리한 작은 쪽방, 그리고 잠깐 등장하는 이윤재와 그 무리들이 머무는 누추하기 짝이 없는 산채(라고 설정된 외부와 간단하게 지은 세트에서 찍은 내부)가 전부이다. 물론 중간에 오가는 길이 등장하지만 숲속 길로 설정되어 있어서 별다른 엑스트라를 오가게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이 설정을 무심코 지나갈지 모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보라. 이 영화는 사극이며 아무리 적은 숫자의 보조 출연자도 조선시대의 의상을 입어야 한다. 게다가 일단 도읍 안으로 들어오면 수십 명의 등장인물이 동시에 움직여야 생활공간이 만들어진다. 영화는 그런 예술이다. 아직 디지털 기술은 등장하지 않았으며 거기 사람이 필요하면 하여튼 거기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설정은 무리한 축소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우리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게 항상 가옥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두 개의 장소, 두 개의 시퀀스를 연결하기 위해서만(bridge shot) 그 쇼트가 필요하다는 듯이 스쳐지나가면서(insert shot) 정보 단위의 기능만을 부여한다. 그런 다음 재빨리 다시 가옥 구조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회암사 로 이동한다. 물론 여기서도 중심을 이루는 장소, 대부분의 쇼트가 진행되는 공간은 민태호 대감의 저택이다. 이야기는 이 집이 모든 인물들을 자석으로 끌어당기듯이 진행되고 그래서 마치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차례로 이 집으로 모여든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연화가 아니라 이 집이다, 라고 이야기 전체를 다시 쓰고 싶을 정도이다. 이때 임권택은 민태호 대감댁 안을 이리저리 오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도 이야기만을 오가고 동선을 최소로 연결시키면서 두 개의 방 이외의 어떤 방도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감옥을 오갈 때에도 모든 쇼트는 감옥 내부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대감 댁의 안채에서 감옥까지 연결하는 동선의 어떤 물리적 장소의 쇼트를 더하지 않고 그냥 건너뛰어 감옥 실내로 들어온다. 물론 여기서 임권택이 한옥 가옥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고작 삼년 후에 보여주게 될 < 족보 >에서와 같은 우아한 동선은 어디에도 없다. <연화>에는 오로지 이야기 안에서 경제적인 방법으로 설계된 동선과 쇼트의 실용적인 사용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권택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화>에서 어떤 장면들은 양반 저택 가옥 구조 안에서 마치 폐쇄공간처럼 이루어진 희박한 공기들과 그 안에서 매우 제한적인 동선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를 만들어낸 < 씨받이 >의 어떤 순간들과 공명한다. 혹은 선혜옹주와 이윤재가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flash_back) 두 사람이 운우지정을 나누듯이 가을 낙엽 위를 뒹굴 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춘향뎐>에서 이몽룡과 춘향의 동일한 조건의 장소에서의 동일한 제스처를 생각나게 만든다. 나는 단지 같은 장면 혹은 같은 분위기의 반복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요점은 그것이 다시 나타날 때 그 안에는 되돌아오는 같은 자리에 대해 임권택이 이미 해본 것으로부터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그런 다음 거기서 자기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재현의 요소를 (임권택의 표현을 빌리면) “의심하면서” 반복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의 사유를 확보하려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권택의 이미지들은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매번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이야기와 표현 사이에서 어떤 거리를 확보해나간다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재현의 이미지들 사이에 점점 더 일사불란한 통일성을 만들어나갔지만 동시에 때로 기괴할 정도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정투쟁을 벌였다. 여기에는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헤겔이 말하는) 불행한 의식이라고 부를만한 유령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 대신 < 연화 >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포기한 것처럼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멈춰 서서 하나의 씬을 매우 긴 시간 동안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기에는 임권택 의 영화에서 마주치는 인물에 대한 탐구나 이야기 속의 삶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가끔, 아주 가끔 그 어느 순간의 디테일에서 종종 이야기 안의 이질적인 요소에로 이끌려 완전히 다른 공기의 장면이 연출되는 당혹스러운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이 디테일이 다른 전체와의 조화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연화>를 보는 당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모른다. 물론 임권택이 여기서 처음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다. 이미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에서 갑자기 나타나 스키를 타고 달려 내려온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를 다룬 전멸의 마지막 시퀀스는 마치 영화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또한 ‘원숙한’ 임권택의 영화에서도 갑자기 그런 순간이 나타난다. 그걸 가장 미학적으로 활용한 시퀀스는 물론 < 달빛 길어올리기 >의 마지막 월곡 마을에서 한지를 제작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이 시퀀스는 영화 전체를 구원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연화>에서는 이런 장면들과는 다르다. 그저 인상적으로 말하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다른 장면들의 디테일이 보여주는 위험할 정도의 확장은 종종 임권택이 그 무언가에 매혹되어 마치 그 힘에 기쁘게 굴복하듯이 거기에 이끌렸다는 흔적을 남기는 반면 여기서는 이야기로부터 영화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을 잡아채듯이 붙잡은 다음 거기서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머물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애처롭게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표현. 영화를 방어하려는 안간힘. 임권택은 여기서 텔레비전에로 이끌리는 이야기를 어디선가에서 멈춰 세우기 위해 그 장소를 찾으려고 마치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탑골댁 이윤재 두 개의 장소 중의 첫 번째 장소. < 연화 >는 피비린내는 정적의 암살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민태호 대감이 살생부에 적힌 이름들을 붉은 색 먹으로 지우면 다음 장면은 자객들이 무자비하게 암살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라는 배경 이외에는 어떤 설명도 없는 이 도입부는 거기서 더 반복되지는 않는다. 마치 선혜옹주와 이윤재 부마의 암살이 그 최종 목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더 이상 새로운 희생자가 나오지는 않는다. 아직 그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민태호 대감으로서는 아쉽게도 이 한 번의 실패가 그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는 계기가 되고 (이미 말한 것처럼) 마치 연화는 모세처럼 민태호 대감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존재가 된다. 이때 민태호 대감은 무자비하고 교활하며 음모와 술수에 능한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도입부가 끝나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는 마치 잠시 동안 자신의 역할을 잊은 것처럼 정실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런 표현이 몹시 어색하지만 그만큼 영화 안에서 어색하게 표현된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으로부터 후퇴해서 가정적인 인물로 축소된다. 이따금 그가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행방을 궁금하게 생각하지만 그 둘을 혈안이 되어 추적하지는 않는다. 이때 민태호 대감은 궁궐로부터 그의 저택으로 행동반경의 중심을 옮기면서 그의 관심은 권력에 관한 정치적인 영역에서 욕망이 이끄는 성적인 대상에로 옮겨간다. 물론 좀 따분해지기는 하겠지만 푸코에 의지해서 그 둘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심지어 그 둘은 동일한 내용의 서로 다른 판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임권택 은 민태호 대감이라는 주체가 권력과 리비도 사이에서 어떻게 기호에로 옮겨가는 지를 다루지 않는다. 또한 연화가 어떻게 그 사이에서 교환관계의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그것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혹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임권택은 그걸 하려고만 결심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임권택은 정념의 예술가이다. 때로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다.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다. 그의 영화 속의 인물들은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일단 정념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신체가 파괴될 때까지 막다른 골목에 간다. 그것이 그렇게 임권택의 영화에서 자주 신체훼손의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혹은 원작과의 약속이 그것을 가로 막는다. 만일 정말 그 안으로 들어갔다면 영화는 무시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코드들의 활동이 몹시 음란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 관객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즐긴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면 앞에서 그 기쁨의 정체를 마주보며 당황했을 것이다. 여기서 민태호 대감을 이끄는 대상은 양주댁으로 분한 다음 (자신의 딸인지 아직은 알지 못하는) 연화의 유모로 별채에 들어간 선혜옹주이다. 정실부인은 아직 얻지 못한 아들을 잉태하기 위한 백일기도를 드리기 위해 회암사에 가느라 종종 집을 비우고 그 순간은 민태호 대감의 기회이자 선혜옹주의 위기가 된다. 나는 (어쩌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당신에게 좀 더 많은 연상 작용을 끌어내고 싶다. 유모는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서 들여놓은 여인이다. 그녀는 아이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매번 자기의 옷고름을 풀고 여민 저고리를 풀어헤쳐 (자기가 낳은 아이에게 물리지 못한 채 차오르기 시작해서) 지금 젖으로 가득 찬 유방의 유두를 아이의 입에 물려야 할 것이다. 아이가 우는 것은 젖을 달라는 신호이다. 이때 이 소리를 안채에서 몸이 달아오른 민태호 대감도 들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 신호를 받자마자 여기서 아이를 괄호 치고 양주댁의 몸을 떠올리기 시작할 것이다. 환상의 공식은 몸의 부분이 욕망의 대상이라는 자리에 등록하자마자 성적인 가장자리로부터 금방 중심을 탈환할 것이다. 이제 민태호 대감은 양주댁의 유두의 대상이 된다. 이 말을 잘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목적어를 반대로 쓴 것이 아니다. 이때 임권택은 재빨리 민태호 대감의 환상에 몰두하는 대신 그가 다가가려는 대상에 대해서 행하는 위계적 부분에 집중하면서 영화의 지위를 되찾으려고 한다. 구조는 좀 더 복잡하고 이야기는 음란해진다. 여기서 임권택은 신호의 응답을 위해 다른 장면을 더한다. 민태호 대감에게는 자식을 얻기 위한 구실로 그의 잠자리를 위한 내당마님인 둘째 부인 탑골댁이라는 젊은 여인이 있다. 그래서 잠자리가 필요할 때마다 민태호 대감은 그녀를 찾는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다소 파격적인 잠자리 장면을 포함시켜 놓았다. 그런 다음 민태호 대감은 두 번 다시 그녀와의 잠자리를 찾지 않는다. 거의 모든 설정을 예상할 수 있는 드라마의 컨벤션 안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순간은 탑골댁이 정실부인 흉내를 내면서 회암사에 자식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러 왔을 때 신분을 숨기고 잠시 거기에 몸을 의탁하러 온 이윤재를 보고 한 눈에 빠져드는 설정이다. 여기서 탑골댁이 이윤재를 탐하는 태도는 민태호 대감이 선혜옹주에 이끌리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판본이다. 하지만 차이는 단지 그 둘 사이의 전도된 성별만이 아니다. 하나는 여기가 지금 조선시대라는 것이며 유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신분사회라는 조건이다. 탑골댁이 이윤재에게 욕망의 시선을 던질 때 그녀는 단지 도덕적인 금기를 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민태호 대감의 자리에서 권력의 네트워크를 펼치는 것이다. 이때 선혜옹주와 이윤재가 동일한 고난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임권택(과 신봉승 )은 변주를 가미한다. 이윤재는 탑골댁이 민태호 대감의 내당마님이라는 사실을 알자 복수를 위해서 그 곁으로 다가갈 기회를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 유혹에 응답한다. 그의 목적에 따라 이윤재의 행동이 정당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수단으로 놓인 탑골댁의 자리에서 그녀는 마치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거기에 있지 않다. 임권택은 선혜옹주와 이윤재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교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목표는 그 둘의 사연을 우리에게 모두 알려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그건 부차적인 자리에 머문다. 어쩌면 이것은 임권택의 의도 바깥으로 벗어난 그 어떤 힘이 마치 오작동을 일으키기라도 한 듯 작용하는 것이기도 한데 선혜옹주가 고난을 겪는 동안 마치 이윤재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여기서 가정을 해보고 싶어진다. 만일 선혜옹주가 이 상황을 단지 모면하기 위해서라는 알리바이를 내세우고 민태호 대감의 유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섹스를 즐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이 상황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선혜옹주는 자신이 양주댁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것이며 민태호 대감은 섹스를 했다고 할지라도 양주댁이 선혜옹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살려둘 리가 없다. 또한 선혜옹주가 침묵을 지킨다면 이윤재는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여기엔 단지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 티켓 >에서 몸을 파는 막내가 대학생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켓을 끊고’ 손님과 하룻밤을 마지못해 보낼 때 섹스를 즐기는 장면을 알고 있다. < 창, 노는 계집 >에서 영은은 사창가에서 도망치지만 그녀를 잡으러 온 ‘사냥꾼’에게 붙잡힌 다음 섹스를 할 때 그 행위를 즐긴다. 임권택 의 여자들은 순결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의 부름에 대해서 욕망이 거절하는 행위를 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녀들에게 섹스를 하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은 종종 별개의 행위이다. 하지만 < 연화 >에서 선혜옹주는 사실상 목숨을 걸고 거절을 한다. 이때 이 장면을 임권택은 거의 멈추듯이 세운 다음 갑자기 디테일의 주름에 집중한다. 민태호 대감은 정실부인이 집을 비우고 밤이 되자 탑골댁 자택에 가는 대신 별채에 어린 연화와 기거하는 양주댁으로 위장한 선혜옹주의 방을 찾는다. 말하자면 그는 공개적으로,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도덕적으로 허락된 간편한 잠자리를 포기하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양주댁에로 향한다. 별채에 들어서면서 민태호 대감은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딸 연화를 보기 위함이니 야심한 밤에 찾았다 할지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며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설명을 한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며 그는 연화에게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선혜옹주에게는 이 방문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 이 집은 민태호 대감의 집이며, 이 방은 연화를 위한 방이며, 민태호 대감은 연화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얼룩은 민태호 대감이 아니라 선혜옹주이다. 상황은 탐정소설에서 말하는 밀실공간의 탈출에 관한 퍼즐 게임이다. 민태호 대감이 선혜옹주가 연화와 함께 머무는 별채에 들어서자 이제까지 둔하게 움직이던 이 영화의 기호들이 갑자기 예민하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민태호 대감이 왜 이 방에 들어섰는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목표로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이때 선혜옹주가 그 행위의 전략을 차단하고 진행을 방해한 다음 다시 그를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찾을 지가 이 시퀀스의 구경거리이다. 구경거리? 어쩌면 이 표현이 다소 잔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임권택 이 여기서 이 작은 형태들이라고 할 디테일을 전체의 구도 안으로 가져올 방법을 찾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다.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하면 즉각적으로 관객 시청자는 예상치 않은 배신을 당할 것이며 아마도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자신의 곤궁 안에서 최소의 디테일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민태호 대감은 방 안에 들어선 다음 먼저 시선으로 선혜옹주의 몸을 더듬거린다. 이때 하필이면 아기 연화는 한밤중에 울면서 젖을 달라고 보챈다. 그때 민태호 대감은 연화의 신호에 슬그머니 자기의 메시지를 더하면서 빨리 젖을 물리라고 재촉한다. 선혜옹주가 젖을 물리려면 저고리를 풀고 옷소매를 헤쳐야 한다. 자발적인 탈의. 이때 민태호 대감은 선혜옹주의 몸 한끝에 자신의 몸 한끝을 접촉하기 위해 그 좁은 방에서 미처 일어서지도 못한 채 앉아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접근한다. 그의 자리에서 갖추는 최소의 예절. 어쩌면 당신은 여기서 크게 웃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까지 민태호 대감이 자신의 목표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무자비하며 단호한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선혜옹주는 지금 이 방까지 (연파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계산으로” 피신해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민태호 대감이 취하는 행동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소심하며 예의바른 태도를 취한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내게 맞받아칠 것이다. 아니 정말 모른단 말이에요, 이건 섹스에 관한 장면이라구요.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핵심은 임권택이 여기서 디테일의 긴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택한 모델이 행위와 목적 사이에 놓인 불연속성의 통사적 종합을 이루는 정념의 위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선혜옹주는 이 위선을 이미 한 눈에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놓여있는 정념의 정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소 공허한 비대칭의 간극이 놓여있다. 민태호 대감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선혜옹주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으로써 선혜옹주는 민태호 대감의 접촉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섹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그녀가 지켜야하는 것은 정조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이다. 우리를 다소 따분하게 만드는 것은 이 둘 사이에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정조를 포기했을 때 거기에는 단지 섹스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정체의 비밀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반면 정체의 비밀을 포기했을 때 선혜옹주는 생명을 잃을 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곁에 있는, 하지만 아직은 미처 알지 못하는, 딸 연화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만일 여기서 민태호 대감이 자신의 양녀 연화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선혜옹주의 딸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 지식을 동원해서 만일 섹스를 요구했다면 시청자 관객이 겪게 되는 긴장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민태호 대감의 제안은 간단하다. 당신이 나와의 섹스를 즐겨준다면 당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당신의 딸(이자 자신의 양녀) 연화의 목숨도 살려 줄 것을 약속하겠노라. 첨언. 그 약속을 지킬 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보다 더 시청자 관객을 괴롭히는 상황은 약속을 지키면서 반복해서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시청자 관객을 가장 괴롭히는 방법은 반복해서 약속을 지키면서 선혜옹주가 조금씩 민태호 대감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만일 이 역할을 이순재에서 최무룡, 혹은 김진규로 바꾼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임권택은 이 위험한 게임의 거의 근처까지 가본 적이 있다. 나는 이미 < 티켓 > 혹은 < 씨받이 >로 이어지는 주인공과 반대의 가해자 사이에서 성립된 실패한 관계의 이면에 맴돌고 있는 정념의 예를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임권택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물러난다. 그래서 민태호 대감이 마치 자기 신분의 본본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제스처가 등장한 것이다. 두 개의 장소 중의 두 번째 장소. (편의상 나눈 것처럼 보이는) < 연화 (속) >은 광고에서 소개하는 것과 달리 ‘第 2部 復讐篇’이라기보다 차라리 ‘第 2部 受難篇’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이야기는 갑자기 16년을 건너 뛴 다음 여전히 민태호 대감의 집에서 진행된다. 그 긴 세월 동안 변한 것이라곤 연화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는 것 밖에 없다. 선혜옹주는 여전히 유모로 남아 연화를 키우고 있다. 구태여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한다면 이윤재가 산채를 짓고 그의 뜻을 따르는 동료들과 모여 복권의 날을 준비하고 있(지만 임권택 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세월을 건너뛰어서 연화가 세상 이치를 알 나이가 되었을 때 긴장의 중심에는 이제 그녀가 언제 어떻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스스로 이 드라마 안에서 주체로 거듭날 것인가, 라는 데 있을 것이라고 나는 어림짐작했다. 왜냐하면 전편에서 갓난아기 연화는 마치 맥거핀처럼, 혹은 알리바이처럼, 때로 메시지처럼, 비유적으로 (에드가 알랜 포우의) 떠돌아다니는 편지처럼, 그렇게 네트워크 사이를 부유하는 기표처럼 보였다. 물론 이 아기는 그때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열여섯 살이 된 연화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임권택은 시작하자마자 무언가를 서두르듯이 설명해나갔으며 응답은 앞질러 왔다.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 다음 고작 23분이 지났을 때 연화는 편지를 받고 모든 비밀을 다 안 다음 그 사실을 유모(이자 친모인) 양주댁(으로 위장한 선혜옹주)와 공유한다. 이제 연화가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민태호 대감과 그 아내 밖에 없다. 하지만 민태호 대감은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사실을 떠올린 다음 연화의 출생의 비밀뿐만 아니라 선혜옹주의 비밀까지도 알아낸다. 여기에 별다른 긴장이나 위기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다소 짜증스러울 정도로 이윤재는 사태를 점점 악화시키면서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태를 해결해나간다. 말하자면 이윤재는 사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의미를 아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임권택 은 그들 사이의 비밀을 사이에 둔 게임에서 머뭇거리는 대신 이야기를 민태호 대감 댁의 감옥으로 옮겨온다. 모든 비밀을 알게 된 민태호 대감은 연화와 선혜옹주, 그리고 연파 스님을 각각 다른 옥에 가둔다. 연화는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며, 선혜옹주는 비로소 양주댁이라는 거짓된 위장을 버리고 자기의 본래 자리를 되찾은 셈이며, 연파 스님은 이제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 분명하게 한다. 여기서 더 남은 게 있을까. 임권택은 갑자기 여기에 속편 이야기의 진수가 담겨있는 것처럼 감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작은 옥사로 무대를 옮기면 이제 더 이상 야외에서 진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때 실내는 기후 조건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무대는 연출의 일정에 따라 자유자재로 운영될 수 있어진다. 둘째, 감옥은 다른 공간과 달리 사람을 감금시키는 곳이기 때문에 원하는 등장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은 다음 이야기를 고정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장소의 경제학. 임권택은 여기가 단지 경제적인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감정의 충돌이라는 액션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 것 같다. 감옥 입구를 기준으로 연화를 왼쪽 윗방에 가두고 선혜옹주를 그 옆방에 가둔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 옆에 있기는 하지만 볼 수가 없다. 그런 다음 연화의 맞은 편 감옥에 연파 스님을 가둔다. 이 배치가 효과적인 이유는 선혜옹주에게 다가가 창살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가로가 긴 테크니스코프에서) 항상 그 사람의 뒤편에 연파스님이 보이기 때문에 두 사람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종의 후광효과와 같은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감옥 효과에 대해 설명을 하는 사람은 연파스님이다. 그는 갇힌 다음 민태호 대감의 호위 무사들에게 말한다. “지금 옥에 갇힌 사람이 나인가, 자네들인가” 물론 그들웰엽?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을 가둔 다음 차례로 각자의 방법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는데 여기서 < 연화 >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그건 우리 생각과 달리 선혜옹주나 이윤재, 혹은 연화가 아니다. 임권택이 처음부터 그 인물을 여러 차례 등장시켰지만 거의 마지막 자리까지 진정한 임무를 미루어 두었다가 여기서 그 결정적인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넘기는 사람은 민태호 대감의 정경부인이다. 약간의 복기. 정경부인은 아이를 낳지 못해 민태호 대감의 후대를 잇지 못하자 한편으로는 첩을 두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회암사에 백일기도를 드리러 갔다가 예기치 않은 연으로 선혜옹주와 이윤재의 딸 연화를 양녀로 입양시키고 선혜옹주를 유모로 집에 들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설명되지 않지만 민태호 대감은 주변의 모든 인물들에게 포악스러우며 무자비한 암살 지시도 망설인 적이 없지만 언제나 정경부인의 뜻을 존중하고 그녀에게 예의를 갖춰 대한다. 그는 다른 이에게 정경부인을 평하면서 “저 사람은 부처님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감옥에서 정경부인의 등장은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정경부인이 감옥에 갇힌 선혜옹주를 찾아올 때이다. 그녀는 먼저 연화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선혜옹주 앞에 섰을 때 갑자기 큰 절을 드리면서 마치 민태호 대감의 잘못을 자신이 사과하기라도 하듯이 최대한 예를 갖춘다. 이 장면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경부인이 지금 자신이 가진 모든 우월한 자리를 포기한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을 그녀의 아랫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정경부인은 지금 감옥 바깥에 있으며, 언제든지 남편을 움직여서 선혜옹주를 제거한 다음 연화의 유일한 모친이 될 수도 있으며, 어쩌면 이제까지 자신을 속인 과정에 대해서 분노를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경부인은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기괴할 정도로 여기서 인간적인 모든 반응을 버리고 오로지 제도의 오작동에 대해 사과한 다음 그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선혜옹주 앞에서 미리 항복을 선언한다. 그것은 누구도 그녀에게 그것을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녀 자신의 믿음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교환도 없다. 단지 이것은 정경부인의 호의에 따른 행동이다. 이때 내가 보는 것은 이 드라마의 다소 무시무시할 정도로 흠결을 지워나가는 보수주의적인 태도이며, 그런 다음 거기서 어떤 감흥을 끌어내는 임권택 의 완전한 동의이다. 원래대로, 라는 이 무시무시한 말. 두 번째 정경부인의 방문은 임금의 행차를 위장하고 민태호 대감댁에 이윤재와 그의 동료들이 쳐들어와 감옥에서 민태호 대감과 서로 겨룰 때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윤재가 민태호 대감을 인질로 붙잡고 그의 목에 칼을 대고 모두를 풀어주라고 외칠 때 민태호 대감의 호위 무사들은 연화와 선혜옹주, 연파스님의 목에 칼을 대고 서로 버티는 중이다. 이때 민태호 대감은 자신의 안위에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을 모두 참하라고 명한다. 말하자면 파국 일보직전. 모두가 행동을 멈추어선 순간. 여기에 갑자기 정경부인이 나타난다. 그런 다음 “제가 한 가지 스님께 따질 것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연파스님 앞에 다가간다. 연파스님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오랏줄에 묶인 채로 그녀를 맞이한다. 민태호 대감은 맞은편에서 이윤재의 칼에 목이 겨냥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자기 부인이 이 살풍경한 순간에 왜 나타났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이제까지 당당한 모습과 달리, 적어도 이 시퀀스에서는 처음으로 불안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여기 동일한 장면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민태호 대감의 시선이다. 그는 자기 아내가 연파 스님에게 다가가 칼을 꺼내들 때 그를 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말린다. 다른 하나는 연파 스님의 시선이다. 그는 정경부인이 칼을 꺼내들어 자신의 오랏줄을 끊어줄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기다리다가 정말 그것을 행하자마자 곁의 무사로부터 (자신의 무기인) 죽장을 재빨리 빼앗아 든 다음 그들을 모두 물리친다. 주관적인 두 개의 시선의 교차. 이때 나는 질문의 방향을 정경부인이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인가, 라고 물어보는 대신 반대로 그 두 사람에게 돌려놓고 싶다.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각자의 주관적인 착각. 이때 연파스님은 정경부인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이 오로지 자기를 중심에 놓고 그녀의 행동을 시스템의 신념 안에서만 판단한다. 그때 정경부인에게는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어진다. 반대로 민태호 대감은 자신이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경부인의 행동을 말리려고 할 때 그것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미끼가 사라져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아내가 자신과 달리 손에 피를 묻혀서는 안 된다는 보호에서 온 호소이다. 이때 정경부인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하나는 이미 본 것처럼 스스로 파멸을 선택하고 정의라는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선택하면 이제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다른 하나는 민태호 대감의 호소에 따라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상황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치 앞을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중단에 대해서 누구도 정경부인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녀는 자신을 속이고 그로 인해 남편을 현재의 상황으로 몰고 갔을 뿐만 아니라 양녀인 연화를 원래의 부모에게로 다시 빼앗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연파 스님의 계획적인 속임수에 대해서 최소한 용서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계산은 그녀가 이 행동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파스님에게 그의 마지막 계산을 좌절시킴으로써 빚을 갚는 방법이 있다. 물론 당신은 하나가 더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민태호 대감의 걱정대로 정경부인이 연파스님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두 번째 선택과 별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다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계속될 뿐이다. 다만 정경부인과 민태호 대감을 분명하게 한 편으로 묶어낼 뿐이다. 그러나 정경부인이 민태호 대감의 편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세 번째의 선택은 셈에 포함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를 잠시동안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순간은 정경부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에 대해서 민태호 대감은 지켜본 다음 조금도 노여워하거나 혹은 정경부인의 행동을 꾸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경부인의 행위에 대해서 침묵으로 대답한다. 말하자면 민태호 대감은 그 행동을 추호도 자신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심지어 민태호 대감은 연파스님이나 이윤재, 혹은 선혜옹주보다 더 정경부인의 행위를 잘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 짧은 순간은 임권택 이 < 연화 >의 이야기 전체를 조롱하는 결단이다. 연파스님과 이윤재, 선혜옹주, (그리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연화는 자신들이 정의를 되찾았다고 생각하면서 원래의 시스템에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하겠지만 진정으로 이 장면에서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정념의 몫은 민태호 대감과 정경부인의 믿음이다. 정경부인은 그런 다음 민태호 대감 앞에 가서 큰 절을 올린다. 민태호 대감은 그 순간 정경부인의 행위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를 위한 결단이라는 것을 본다. 게다가 그것이 목숨을 건 행위라는 것을 거의 즉각적으로 안다. S#_1 S#_2 S#_3 S#_4 S#_5 S#_6 S#_7 S#_8 S#_9 S#_10 이 설명이 어리둥절하다면 정경부인의 세 번째 방문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무리할 정도로 긴 이 영화에서 정경부인이 감옥에 갇힌 민태호 대감을 찾아오는 이 장면은 < 연화 >에서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씬이다. 이윤재와 선혜옹주는 복권을 하고 연화는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임권택 은 이 장면에 별 관심이 없다. 단지 이야기가 요구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런 다음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그때 감옥은 민태호 대감이 외로이 갇혀 있으며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주변에 아무도 없다. 감옥으로 되돌아 올 때(master_shot), 그러니까 정경부인이 민태호 대감을 면회하기 위해 이 옥사에 들어설 때, 그녀의 방문을 연파 스님이 갇혔던 감옥 안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두 개의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frame_in_frame) 이중 삼중으로 감옥 안의 감옥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정경부인과 민태호 대감을 서로 번갈아(shot_reverse shot) 보여준다. 이때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바라보면서 찍었기 때문에(over_shoulder_shot) 모든 쇼트는 어느 쪽에 있건 창살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정경부인은 민테호 대감 앞에 예의를 다해 앉으며 “대감, 용서하십시오, 소인이 평생 처음으로 대감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라고 말한다. ( S#_1) 민태호 대감은 그녀를 가엾게 바라보면서 “내 죄가 많소, 날 용서해주시오” 라고 대답한다. ( S#_2) 정경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라니 당치도 않은 말씀이옵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대감에게 돌을 던진다 하더라도 소인만은 대감의 뒤를 따를 것이옵니다” 라고 하자( S#_3) 민태호 대감은 “대역 죄인은 삼족을 멸하는 법이니 부인 또한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소이다”라고 말한다. ( S#_4) 그런 다음 갑자기 더 가까이 들어가서 민태호 대감을 찍는다. ( S#_5) 이때 단지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이 요점이 아니다. 이 가까운 거리는 앞의 쇼트와 완전히 다른 장면을 만든다. 민태호 대감과 카메라 사이에 감옥의 철창이 사라진 것이다. 민태호 대감은 그런 다음 덧붙인다. “부디 정경부인의 체통을 잃지 말기 바라오” 이때의 맞은 편 정경부인을 보여줄 때는 여전히 감옥의 창살이 민태호 대감의 시선을 가로 막고 있다. ( S#_6) 정경부인은 크게 흐느끼며 “명심하오리다”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을 민태호 대감의 감옥 안쪽에서 좀 더 뒤로 물러나서 함께(full_two_shot) 보여준다. ( S#_7) 그리고 다시 한 번 앞서 보여준 장면의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반복하면서 철창 없이 민태호 대감을 보여준다. ( S#_8) 민태호 대감은 탄식하듯이 덧붙인다. “고맙소, 부인” 그러자 정경부인은 작별을 아쉬워하듯이 철창 사이로 민태호 대감의 손을 보듬듯이 잡는다. ( S#_9) 그런 다음 떠나가는 정경부인을 바라보는 민태호 대감을 창살 너머에서 바라본다. ( S#_10) 여기서 두 개의 쇼트, 철창 안에서, 그러니까 철창 없이, 찍은 장면은 정경부인이 바라보는(point_of_view) 쇼트가 아니라는 뜻이다. 좀 더 용기를 내서 말한다면 임권택의 방점이다. 잃지 말아야 할 체통.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든 행위보다도 더 소중한 한 마디, 명심에 대해서 민태호 대감은 고맙소, 라는 말로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 두 개의 쇼트가 중요해진 것일까. 임권택 은 < 연화 >의 이야기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조선시대뿐이다. 조선이라는 기이한 공동체. 임권택은 여기서 조선 사대부 가문의 무시무시한 체통과 법도를 보려고 한다. 거기서 그가 선인지 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이라고 그것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아니며 악이라고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닌 세계의 질서. 이때 민태호 대감의 정경부인에 대한 이해의 바탕에는 그 무거운 사대부 양반 가문의 전통이 그 위에 내려앉는다. 여기에는 조선이라는 전근대 사회의 윤리가 한편으로는 그들이 마주해야하는 실재를 회피하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들을 둘러싼다. 그때 그들은 언제든지 운명까지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그들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이끈다. <연화>에서 가장 수상쩍은 대목은 사실상 이윤재와 선혜옹주가 그들의 정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제대로 한 일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진정으로 작동한 것은 우리들의 시대와 절대적으로 좁혀지지 않는 조선이라는 시간과의 간극 사이에 머물고 있는 윤리의 기호들이다. 여기에 빠진 것은 무엇일까. 그것으로 무엇을 승화시킬 것인가, 라는 대답이다. <연화>는 그 간극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이 영화가 임권택 영화에서 지니고 있는 난처한 의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그것이 아직은 난처했던 것일까. 임권택은 여기서 참조해야 할 틀을 아직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참조가 잘못되면 순식간에 이 모든 기호들이 잘못된 주인의 윤리 아래서 길들여질 지도 모른다. 그것은 위험한 내기이다. 하지만 <연화>가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는 임권택은 여기서 자신만의 안티고네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 자신만의 안티고네가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그 앞에 놓여있게 되었다. 이때 윤리의 기호들은 그의 주인공들을 길들이는 도구가 될 것인지, 혹은 공동체 안에서의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항복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마침내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익히는 방법이 될 것인지, 라는 자리에서 질문이 되었다. 물론 임권택은 손쉽게 종료하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임권택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임권택에게 유일한 방어의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의심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의심의 윤리학에 관한 체계를 설명하는 것이 내 임무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떻게? (계속) 1974년 106분/109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한유림 / 신봉승 촬영 손현채 조명 박태수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고은아 이순재 박병호 강부자 이효춘 >> <연화> 고화질 VOD 보러가기 << >> <연화(속)> 고화질 VOD 보러가기 <<
한국전쟁 이후에 한국전쟁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할까? 영화는 처음에는 그렇게 물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런 다음에는 한국전쟁은 어떻게 경험되는가, 라고 질문을 바꾸었다. 전쟁의 시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한국전쟁을 장르영화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아마 그 자리에 < 태극기 휘날리며 >가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북한은 한국영화에서 신비로운 타자가 되었다. 추운 나라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사람들은 할리우드 SF영화에서 나타난 ‘인간의 마음을 가진’ (포스트모던) 사이보그들처럼 보였다. 주체의 분열. 아니, 차라리 환자라고 부르고 싶은 증후들의 집합. 여기엔 무언가 우리가 합류할 수 없는 접근불가능이라는 어떤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논점을 놓치면 안 된다. 한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전쟁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적인 정치적 역학들. 아직도 베일에 싸인 배경. 그 대신 여기서는 전쟁 이후의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지금 프리모 레비를 떠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생명과 증언이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고 그런 다음 다시 살아남았다. 구태여 다시, 라는 말을 쓴 것은 그 사이에 놓인 해방 직후의 좌우익 대립을 셈에 포함시킨 것이다. 역사의 자기 파괴적인 변증법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레비는 가라앉은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여기서 남은 자들을 구조 받은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전쟁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데올로기로 둘로 나뉜 민족은 서로 무자비한 살육을 시작하였다. 기록들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참혹하다. 휴전이 시작된 다음 ‘빨갱이’는 시민권을 박탈당한 자처럼 처리되었다. 단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연좌제라는 법의 새로운 항목으로 그들의 가족들까지 그 범위는 확대되었다. 그들은 범죄자들보다도 더 가혹한 취급을 받았으며, 어쩌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제공되는 어떤 배려도 없이 삶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야만 했으며,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증언도 금지되었다. 나는 지금 임권택 을 말하는 중이다. 당신에게 다소 양해를 구한 다음 나는 약간 소설처럼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임권택 감독님과 처음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이어진 긴 인터뷰를 하면서 < 증언 >에 이르렀을 때 한참을 멈춘 다음 몹시 고통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날이 며칠인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 기나긴 한숨소리는 바로 지금 곁에서 금방이라도 들리는 것만 같다. 이것만은 정말 내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였어요. 그 말이 첫 대답이었다. 나는 대답을 위해서 알리바이를 덧붙일 생각이 없으며 상황을 감상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인) 영화진흥공사는 1973년 4월 표면적으로는 ‘한국영화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영화제작에 나섰지만 내용은 국책에 따른 반공영화 제작이었다. 국방부가 이를 후원했으며 사단병력과 화력장비를 동원하여 전쟁장면을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지만 영화진흥공사로부터 허락받은 시나리오로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거절하면 되지 않나요?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신은 그때 막 유신정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부기관들은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는 것은 ‘반국가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서 신고의 대상이 되었다. 임권택에게는 이중의 난관이 있었다. 하나는 이미 그 자신이 부모님의 빨치산 경력으로 인한 연좌제 보호관리 대상의 가족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부모님만이 아니라 외가쪽의 친척들이 해방 직후 좌익 활동에 대부분 포함되었으며 그 중에 일부는 한국전쟁 동안 입산을 해서 빨치산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대구 교도소에서 총살을 당했고, 또 일부는 그 이후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실종되었다. 어떤 이는 ‘조선 인민공화국 해방군’이 후퇴를 할 때 함께 북에 올라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의 말로는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도 하지만 더는 안부를 알 수 없었다. 1973년은 전쟁이 휴전한 지 고작 20년밖에 흐르지 않은 다음의 일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다른 하나는 그 자신에게 내면적인 고문이었다. 임권택이 제안 받은 영화는 한국전쟁에 관한 반공영화였다. 물론 임권택만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만희 는 < 들국화는 피었는데 >를, 그리고 김수용 은 <전쟁의 얼굴>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의미. 1973년에 이르러 임권택은 긴 시간 동안 사극, ‘다찌마와리’ 영화, 만주 웨스턴, ‘나미다’ 멜로드라마, 홈 코미디, 첩보영화, 무국적 무협활극을 찍었으면서도 이만희, 그리고 김수용의 반열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임권택 자신의 말을 빌리면 “내가 비로소 영화감독이라는 책임을 갖고 만들고 싶었던” 영화, 그때 막 단 한 편 < 잡초 >를 연출했을 뿐이었던 그 해였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임권택에게 곤궁이 되었다. 자신이 국책의 도구가 되어 본의 아니게 부모의 선택을 비판하는 자리에 불려가게 된 꼴이 되었다. “내가 부모님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욕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임권택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자리에 불려갔다. “영진공 사장이 보자고 불러서 갔죠.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생판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사장 옆에 앉아서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공사 안에서 후반 작업들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을 다 아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그 옆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나한테 오래 전에 나도 잊어버린 친척 이름을 대면서 그 사람 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 친척이 한국 전쟁 때 산에 올라간 분이거든요. 그러면 도리가 없는 거예요” 완전한 수동성 안에서의 최소의 능동적인 선택. 그는 하여튼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는 어떤 합리적인 논의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해야만 한다. 역사에서 칼을 배제하고 그것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칼을 손에 든 그 앞에 자신의 부모의 삶과 시간이 놓여있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정신분석에 기댄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임권택 의 트라우마. 임권택의 증후. 임권택의 오이디푸스. 임권택의 안티고네. 임권택의 늑대인간, 임권택의 억압. 임권택의 불안. 임권택의 대상-원인. 임권택의 (...) 등등. 대신 이때 임권택은 어느 자리에 놓여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다시 배치라는 문제. 말하자면 영화의 실행 안에서의 푸념 섞인, 때로는 불안에 가득 찬, 그래서 종종 자포자기해버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끝까지 그 자리를 향해 이동하면서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시네마틱한 역량의 위상기하학. 그 안에서 숨겨있을지도 모르는 예술의 조그만 힘은 어디로 이동하고 역사의 이면에 있던 개인의 작은 단위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척하면서 어떻게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가. 나는 약간 이 영화에 전략적으로 다가서고 싶다. 그 안의 불안정성. 몹시 위험한 말이지만 (대부분 버림받은) 1970년대 한국영화에 내가 매혹되는 순간은 과도할 정도로 요구되는 검열의 방어 속에서 그 틈 사이로 들어가 각자의 전략을 수행하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불안정한 상태를 발견할 때이다. 그때 무언가 부서지고 있다. 나는 그걸 바라보면서 봉쇄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로서의 불안정성을 생각한다. 스피노자를 흉내 내서 설명하고 싶다. 거미처럼 칭칭 동여매고 감싸 안을 수 없을 때,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내려다볼 수 없을 때, 두더지처럼 그 아래로 파고 들어가고, 그래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밑바닥을 뒤흔들기 시작해야 한다. 그게 거의 무의미할 지라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기가 실존할 자리의 확보를 위한 안간힘. 그런 다음 그 안에서 살아가기. 거기에서 우리가 보는 자기 삶에 대한 제작자로서의 역량. 이를테면 김기영 의 < 흙 >. 유현목 의 <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 김수용 의 < 웃음소리 >, 이만희 의 < 04:00 -1950- >. 아마 임권택도 그런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마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몹시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화의 제목은 < 증언 >으로 결정되었다. 임권택은 이 영화 안에서 아무 것도 증언해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김강윤 이 각본을 쓴 이야기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는 거기에 아무 것도 더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재현(해야만)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 곤궁은 우리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사태를 훨씬 불안하게 만든다. 아무 결정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영화를 수행해야만 한다. 수행의 역설.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은 해야만 합니다. <증언>은 단순한 역설에 대한 증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영화에서 삶이 어떻게 통합되고 그 안에서 주체가 어떻게 분열되며 다시 그 안에서 고난이 어떻게 그 수행을 기록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시선과 광경 사이의 교차. 우리들의 관람과 영화의 광경. 물론 <증언>의 주인이 임권택이라는 식으로 등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평의 수사학 안에서 그런 식의 순진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도식적인 작가주의 관점을 버린 지 오래이다. 임권택은 그 영화 안의, (그런 다음 다시) 그 중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증언>에서 이야기의 문자를 재현시키는 일을 수행해야할 임무를 지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임권택이다. 그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내 말의 핵심은 바로 여기서 이 상황을 일반론으로 환원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언제나 특수한 조건이며 일회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언제나 이미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사건 안에서 모두 살아야 한다. 그 자리가 배우이건, 촬영이건, 조명이건, 프로듀서이건, 영화감독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임권택은 <증언>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박순아 장욱 소위 < 증언 >은 임권택 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산산조각 난 영화이다. 이 말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의 전체가 있었는데 그게 어딘가에 부딪쳐 마치 실수를 해서 떨어트린 거울처럼 깨져버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총체적인 관점? 거기서 참조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는 그 시대의 불행? 그 어떤 요구에 대한 어떤 두려움? 어떤, 어떤, 어떤, 대답할 수 없는 어떤, 이라는 지칭.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증언>을 보는 내내 그게 한 편의 영화라는 내재적인 자기규정 말고는 마치 서로 다른 층위의 순간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처럼 제각각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첫 인상이었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고전적인 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의 계보에 속하는 방법의 자장 안에 있다. 언제나 그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이보다 더 동선이 반복해서 수없이 끊겨나가면서 마치 매번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경우는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없다. 그게 검열 때문은 아니며 미학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이걸 각본의 실패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게 보인다. 이 시나리오는 기능적으로 쓰여 졌다. 여기서 기능적이라는 표현은 제작에서의 역할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김강윤 은 <증언>의 제작 방법을 염두에 두고 연출의 입장에서 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최소의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전쟁을 도발하고 그날 정오 무렵 박순아의 연인인 17연대 장욱 소위는 잠시 데이트를 하다가 재빨리 귀대한다. 서울은 함락되고 한강다리를 건넌 박순아는 피난을 가면서 전쟁의 수많은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그 수많은 참상의 씬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심지어 이 영화는 줄거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편리한 서술 장치는 끊임없이 개입하는 박순아의 설명(voice_over_narration)이다. 이 설명은 근본적으로는 <증언>에서 (이제는 사라진) 대한뉴스와 같은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상황을 설명하고 (주인공을 대신해서) 선과 악을 구별한 다음 평가를 내리고 때로는 신의 시점에서 전쟁에 대한 훗날의 역사적 평가까지 내린다.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 그걸 이용해서 임권택은 때로 재빨리 전체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하고(master_shot) 갑자기 시간을 옮겨가거나 조건이 바뀌었을 때 보충을 하고(transitional shot) 그런 다음 다루기 까다로운 경험에 대한 감정적인 설명을 한다. 화면 바깥의 목소리는 때로 이 영화의 시제를 모호하게 만든다. 가장 쉬운 방법, 그만큼 나쁜 모델. 나는 여기서 간단하게 평가에로 달려가는 대신 잠시 머물면서 질문하고 싶다. <증언>을 보고 있으면 명백히 순서대로 찍지 않았고(못했고?) 그 해 여름 영화 현장에 도착하는 군부대의 조건에 맞춰 촬영이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장면에는 대규모 군부대가 이동하고 있고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찍었기 때문에 (아마도) 인근부대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큰 규모의 전쟁장면과 최소의 출연진으로 이루어진 배우들로 찍을 수 있는 소규모의 장면들이 번갈아 오가도록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 중의 일부가 빠진다고 해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장면을 찍지 못했다 할지라도, 전체 구성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는 진행을 염두에 두고 씬을 배치하였다. 물론 각자의 시퀀스 안에서 진행되는 유기적인 쇼트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과장될 정도로 이 영화는 시퀀스 단위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퀀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진행될 때 여기서는 단지 사건의 조각난 단위가 아니라 경험의 파편이라는 내면의 붕괴에로 이끌린다. 이건 예기치 않은 재난이거나 아니면 이미 각오한 희생일 것이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증언>은 재난이거나 희생이다. 후렴구처럼 반복해보고 싶다. 재난이거나 희생. 어떤 피난처도 없을 때 맞이해야 하는 상황 앞에 서서 고스란히 느껴보는 고통. 영화가 시작할 때 정확하게 거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시계가 가리키면 포성이 울리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포를 쏘는 장면이 연달아 보여진다. 무료할 만큼 반복되는 쇼트. 아무런 긴장도 없는 쇼트의 연속. 우리는 이미 이 영화가 한국전쟁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게다가 이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대포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장면은 대포가 포격을 하는 쇼트는 있지만 이 대포를 누가 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똑같은 의미에서 그 대포가 목표로 하는 대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시퀀스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이외의 어떤 진술도 없다. 내가 여기서 읽어내고 싶은 것은 전쟁이라는 사건과의 사이의 거리이다. 그때 느껴보는 공포는 이 영화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1973년의 구호를 떠올려야 한다. “잊지 말자 6.25, 쳐부수자 공산당” 교실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이 구호와 함께 생활했다. < 증언 >은 만들어지고 난 다음 모든 학교의 학생들에게 의무 관람을 시켰다. 이때 <증언>은 한국전쟁에 대한 공포를 전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여기에 전혀 반대의 두 종류의 관람객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물론 한국전쟁을 본 적이 없는 전후 세대이며 다른 하나는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세대이다. 이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고작해야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을 때였다는 점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공교롭게도 어른들과 아이들로 정확하게 그 경험의 여부를 나눈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 사회 안의 절대적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경험. 그들은 그 경험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경험? 그러나 전쟁이란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경험을 소유하는 것이다. 각자의 피난. 각자의 생존. 그 경험에 보편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이 가르치려고 한 것은 공포가 아니었을까. 이때 영화는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참 좋은 때로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새벽의 포격 시퀀스에 이어지는 장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필요 이상으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보내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다. 주인공 순아가 하숙을 하는 집주인 아줌마( 황정순 )가 그걸 바라보며 한 마디 거든다. “참 좋은 때로구나” 좋은 때. 참 좋은 때. 그날 전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날이 좋은 때라는 것은 한국근대사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표현이다. 해방직후 대한민국과 조선 인민공화국은 각자의 방식의 권력투쟁에 몰두하면서 한 쪽은 무자비한 숙청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미군정 아래 좌우익의 대립이 피비린내 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좀 더 간단한 설명이 있다. 거의 같은 시기를 다룬 임권택 의 두 편의 영화 < 증언 >의 도입부와 < 깃발 없는 기수 >를 비교하면 된다. 전력의 대부분을 신의주 수력 발전소에 의지하던 한반도에서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에 공급을 중단했으며 경제적으로 남한은 북한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인 상태였다. 모든 것이 뒤숭숭하던 시절.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일요일은 참 화창했다. 그날 동대문 운동장에서는 야구경기가 있었고, 서울 시민들은 뚝섬에 나가 한가로운 한강에서 초여름 바람을 맞이하였다. 물론 그날 열일곱 살 임권택은 고향인 전라남도 장성에 있었고 이 모든 풍경은 시나리오를 쓴 김강윤 의 기억일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그날 서울에 있었다. <증언>에 얼마만큼의 역사적 고증과 그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객관적) 기록이 담겨있는 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건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권택의 ‘증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임권택의 ‘증언’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 태백산맥 >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로부터 30년 후의 이야기이다.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는 동안 전쟁이 시작된다. 25일에 휴전선을 넘은 다음 북한군의 탱크는 이틀 후인 27일 미아리고개에 나타났다. 서울 시민들은 그제야 피난을 준비했고 (이승만 정부는 휴전선에서 ‘괴뢰군’을 격퇴시키고 있다고 방송을 했다) 28일 새벽 2시 30분 북한군의 남침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국군은 한강다리를 폭파하였다. (이승만 자신은 이미 피난 간 다음에도 서울을 “시민들과 함께 死守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 작전은 후일 효과가 없었으며 피난민들만 서울에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판결에 따라 폭파 명령을 시행한 책임자 최창식 대령이 9월 21일 사형을 당했다. 영화 <증언>은 사형 판결을 다루지 않지만 최창식 대령을 둘러싼 한강다리 폭파에 대해서 주인공 순아를 버려두고 긴박하게 오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피난민 대열에 섞인 순아는 이 결정을 알지 못하며 순아의 애인인 장욱 소위는 (마찬가지로 그 결정을 알지 못한 채) 그 다리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마지막 소대의 지휘관이다. 그리고 이 다리 폭파장면을 위해서 전조명 촬영감독은 일본 특수촬영 팀과 (그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미니어처 촬영을 별도로 하였다. (<증언>의 촬영감독은 서정민 이다) 지금 보면 이 장면은 매우 조악해서 전쟁장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본 괴수물의 세트처럼 보인다. 내 설명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 장면은 공을 들였지만 효과적이지 않으며 기술적 수준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패배와 살육으로 가득 찬 이 영화의 무드에도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로 보인다.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아직 디지털 특수효과가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그때 할리우드 영화는 < 에어포트 >를 시작으로 재난영화(panic films) 장르의 붐이 막 시작되고 있었으며 < 포세이돈 어드벤처 >, < 대지진 >, < 타워링 >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었고 이 영화들은 <증언> 맞은 편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어쩌면 <증언> 제작진은 이 영화를 전쟁영화이면서 동시에 재난영화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약간 바보같이 반문하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되면 여기서 한국전쟁에 대한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때 <증언>이 요구하는 진실의 효과는 무엇일까. <증언>의 메시지는 이 영화를 국책영화라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과 달리 모호한 구석이 사방에 출몰하기 시작한다. 한강 다리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 증언 >은 전체적인 균형을 무시하고 긴 시간 동안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전체 상영시간 1시간 55분 중 한강다리가 끊어지는 순간은 30분 55초에 이르러서이다. 수많은 전쟁장면이 뒤에 기다리고 있으며, 게다가 한강다리 폭파장면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 이것은 실패한 작전이며 여기서 피난을 가던 서울 시민들은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한밤중에 강을 건너다 죽음을 당했다. 이 장면에서 순아가 죽음을 맞이하면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퀀스 전체는 순아의 동선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증언>은 한강다리 폭파 시퀀스를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다리 폭파를 결정하는 장교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번 다시 영화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하게 마치 저승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이승만의 목소리가 서울을 빠져나갈 때까지 여기저기 화면에 울려 퍼진다. 아마도 잡음과 함께 뒤섞인 소리들은 오래 전의 라디오 방송에서 가져온 테이프에서 고스란히 시간이 묻어나오기 때문이겠지만 반대로 <증언>에서 이 순간의 역사적인 실재는 오로지 이 목소리뿐이다. 시간의 결.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목소리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라는 실재와 대면하는 인공적인 이미지로서의 영화. 게다가 이 장면은 밤에 진행되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약점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실재와 외양, 경험과 풍문, 역사적인 증언과 인공적인 스펙터클, 영화와 라디오, 그리고 영화라는 훈련에 동원된 군대와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이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광경이 펼쳐진다. 광경? 그렇다. 이상하게도 서로 쌍을 이루면서 이 둘 사이의 간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좁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보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광경이다. 이를테면 피난민을 연기하는 엑스트라들의 무리와 진군하는 국군들이 교차하는 사이에서 김진규 와 엄앵란 이 마이크를 들고 군인들을 독려하는 웅변과 그들 곁에서 노래를 부르는 부인회의 모습은 얼마나 기괴한가.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지금 상황이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듯이 한가롭게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증언 >은 그런 다음 순아가 한강을 도강해서 피난민 틈에 끼어, 때로는 남침하는 북한군 무리들과 함께, 그리고 위험한 순간마다 국군을 만나 구조를 받으면서, 낙동강을 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연인인 장욱 소위를 찾고 있으며, 장욱 소위는 그녀와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서울 수복을 하는 그 순간 시청 앞 광장에서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경례를 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죽음으로 퇴장을 한다. 그때마다 그 증인으로 순아는 매번 그들의 시신 곁에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역할을 떠맡는다. 순아가 그걸 지켜볼 때 비분강개한 목소리가(voice_over_narration) 나타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그 목소리가 이상한 것은 그 주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순아가 그 증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또 다른 증인이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시간적으로 지금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탈구된 상태로, 그 목소리는 자율적으로 화면을 향해서 중계방송 하듯이 진행된다. 그러나 이것은 ‘證言’이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지금 눈 앞에서 전개되는 이미지가 일종의 주관적 착시라고 설명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조차 이 목소리는 우리들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원래 이 목소리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바라보는 우리들을 차갑게 만든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서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오작동을 일으킨 경우이다. 혹은 정확하고 올바르게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배신하고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목소리의 미학적인 차원을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와 약간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장면보다 목소리가 먼저 울 때 슬픈 감정을 느껴보는 대신 자기의 기회를 빼앗긴 관객은 슬픈 영화를 쳐다보기 시작한다는 고전적인 시나리오 이론이다. 나는 단순하게 서투른 작법에 대해서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걸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보길 제안하고 싶다. 이 순간과 마주할 때 이상하게도 이미지에 목소리가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 이미지가 설계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미지를 먼저 보여준 다음 목소리가 뒤따라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목소리는 마치 특이한 환상에 대한 보충설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특이한 환상? 한국전쟁이라는 환상. 우리는 지금 이 전쟁이 순아의 피난길을 따라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녀 앞에 적과 아군이 번갈아 나타나 전쟁을 연기하는 중인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나는 한강다리에서 연출된 이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을 본 다음부터 마치 전쟁을 연출하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되었다. 요점은 간단하지만 좀 기괴하다. < 증언 >은 곧장 전쟁에 들어가는 것을 한참 망설였다. 전쟁이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을 “참 좋은 때”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한강다리에서 현실적인 감각을 완전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 다시 긴 시간을 보낼 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를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만드는 씬들 사이의 교차가 몇 번이고 이루어진다. 여기서 한강 다리 폭파장면까지는 긴장감이 넘치는 대신 이상할 정도로 지루하고 길게 이어지면서 거의 지칠 만큼 늘려 놓았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일부 장면이 생략이라도 된 것처럼 순아는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다. <증언>에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한국전쟁을 경험적으로 재현하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오히려 이것이 더 진정한 목표인데)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참 좋은 때”가 무너지고 언제든지 다시 지금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한국전쟁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가능한 재현이다. 아마도 그것이 반공영화들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않은 오작동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기억하라, 고 요구하는 대신 “참 좋은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속에 숨어있었을 가능성의 환상으로 밀고 나아가는 방향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시작할 때, 그래서 정확하게 그 문턱이라고 불러야 할 한강다리 미니어처의 폭파 장면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갑자기 전쟁은 “참 좋은 때”의 이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참 좋은 때”를 보완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쟁. 당신은 이때가 유신정권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라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첫번째 예 두번째 예 이면의 수행성에 대해서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것은 마치 한강 폭파 이후의 장면들이 모두 “참 좋은 때”의 이면의 판본을 연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무대처럼 서로 연기를 하며 가장(假裝)의 시퀀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첫 번째 예. 순아는 피난길에 오르면서 예기치 않게 장소위의 부대원이었던 김일병을 만나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북한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 그 두 사람을 앞질러서 그만 한밤중에 잠시 몸을 의탁하기 위해 찾아든 곳에 이미 그들이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한밤중에 찾아든 남녀가 자신들의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면서 먼저 받아들인다. 그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김일병은 재빨리 자신을 그들과 같은 북한군으로 위장하면서 자기 고향인 북한말을 쓴다. 여기서 순아와 김일병은 북한군을 자신들을 환대해 줄 상대로 변모시키기 위해서 가장을 한다. 이때 거짓말은 그들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불가피하게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희미하긴 하지만 환대에 대한 배반이 숨어있다. 그들은 불균등하긴 하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환대와 거짓말을 교환한다. 이때 그 둘 사이에 매개가 되는 것은 가장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공포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어떤 아이러니한 익살이 감돈다. 두 번째 예. 추풍령을 넘으면서 북한군은 탱크 앞에 피난민을 내세운 다음 자신들은 그 뒤에 숨어서 지뢰를 피할 계략을 꾸민다. 그런 다음 피난민들에게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뒤에서 총으로 사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국군은 피난민들 때문에 매복해놓은 지뢰를 폭파시켜야할 지를 망설인다. 피난민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국군들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낫지 않느냐면서 (그러니 우리들은 북한군의 총알에 죽고 탱크는 국군의 지뢰에 폭파당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 전진을 거부하는 이들과 그래도 어쩌면 지뢰를 피해서 요행수로 살 수도 있다는 생존의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나뉘어서 두 편이 서로 다툰다. 영화는 그들이 긴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도 마치 그걸 귀 기울여 듣기라도 하듯 일시적으로 전쟁이 중단된 것처럼 보여준다. 여기서 피난민을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얼룩이라고 설명하면 완전히 논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상황을 완전히 아이러니하게 만들 수 있다. 피난민들이 두 개의 입장으로 나뉘어서 논쟁을 시작할 때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난 지금부터 공산주의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희생당하는 대신) 당신들의 탱크에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데올로기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나는 이 영화가 국책영화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다소 가혹하게 말하고 싶다. 여기서는 그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질문할 때 이 시퀀스가 요구하는 것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 전쟁에서 올바른 역할을 위한 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남겨진 것은 역할을 연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연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예는 다소 까다롭다. 순아는 북한군에게 붙잡힌 다음 장교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취조를 당한다. 자신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사실대로 말한다면 당신을 그냥 놓아줄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한다. 그는 순아에게 자신이 가방을 뒤지는 대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한다. 이때 순아는 가방 속에 장욱 소위의 사진이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사진은 발견되고 만다. 북한군 장교는 그 사진을 본 다음 잘 알았다면서 그녀를 그냥 풀어준다. 물론 순아와 또 다른 부녀자가 그들이 주둔하는 집을 떠나 발걸음을 옮기자 멀리서 조준사격을 가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또 다른 부녀자가 죽으면서 순아의 몸을 감싸 안기 때문에 그녀는 살아난다) 물론 여기서 북한군 장교는 처음부터 순아를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게임인 것이다. 그걸 순아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진실을 고백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친절한 요구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대응이 이 씬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여기서 상황을 괄호 친다면 북한장교의 예의바른 제안에 대해서 순아의 거짓말은 무례한 대답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풀어준 다음 조준 사격하는 것은 그녀의 거짓말에 대한 벌로 읽힐 수도 있다. 물론 후자는 위장된 거짓 논리이다. 이 시퀀스의 일차적인 목표는 (누구라도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공산당들은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회유를 하며 우리들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그건 모두 거짓말입니다, 라는 경고이다. 하지만 여기엔 까다로운 미끼가 있다. 그냥 총살시키면 되는 상황에서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느냐, 는 것이다. 단지 재미를 위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장면이 정말 문제가 되는 상황은 북한군 장교가 오로지 자기의 예의바른 태도를 남한의 숙녀에게 전시하기 위해서 정말로 순아를 살려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약간 서둘러 방향을 틀어보고 싶다. 네 번째 예에 이 장면과 똑같은 순간이 반대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순아가 남하하다가 북한군들이 국군의 복장을 하고 길목을 지키고 서서 본대로부터 탈영하여 국군에 귀순하려는 북한군들을 기다리다가 총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자 순아는 정말 국군을 만났을 때 마치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인 것 같은 연기를 한다. 국군을 만난 다음에도 자신이 북한군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여자를 만나자 국군은 순아를 체포하여 본대로 보낸다. 거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순아에게 매우 친절푀옇凋응막?전후 사정을 들으면서 충분히 이해했다뇩옇뺐?함께 하지만 그걸 자신들이 믿기 어렵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든다. 여기서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순아는 전쟁 중에 체포한 북한 정훈장교이다. 그런데도 정보장교는 예의를 갖추어 (자신보다 어린 그녀에게) 경어를 쓰면서 기꺼이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인다. 만일 여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북한군 장교와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친절하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 당신 말을 충분히 들었어요. 하지만 믿긴 어렵군요. 게다가 지금은 전쟁 중이고 당신 스스로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라고 소개한 것 말고는 다른 정보가 없군요. 당신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고 우리는 후퇴하는 중이니 즉결 사형에 처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순아가 사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국군 소위이자 순아의 연인인 장욱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여기서 북한군 장교와의 장면에서 < 증언 >에서 사용된 장면을 N(nor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을 N 2라고 한 다음 마찬가지로 국군 장교를 만나서 사용된 장면을 S(sou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은 S 2라고 부르겠다. 만일 N 2가 사용된 다음 S 2가 대응한다면 그건 북한영화의 버전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N 1이 사용된 다음 S 2가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는 몹시 부조리하지만 무언가 균형을 이루었다는 불편한 생각을 떨치기 어렵게 된다. 이 순간 여기서 한국전쟁을 괄호치고 오로지 주인공 순아가 두 개의 나라 사이에서의 전쟁을 오가면서, 이를테면 여기서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라고 가정하고, 이 상황과 마주쳤다면 순아에게는 가혹한 결정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잔인하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균형을 잡았다는 인상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난처해지는 것은 N 2가 사용된 다음 S 1이 여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물론 순아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서 남한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두 번째가 아니라 이 네 번째 판본이다. 왜냐하면 이 네 번째 판본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인 용서라는 방식으로 순아의 실수를 교정한 다음 되돌려 보내지만 남한은 조건을 달고 실수를 교정한 다음 그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S 1을 고정시켜놓고 N 1과 N 2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단순하게 한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S 1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N 1의 흉내를 내면서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제도 안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N 2를 선택했을 때 가장 난처해지는 설명은 북한군 장교가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훨씬 미묘하게도 순아를 보고 어떤 감정적인 동요를 느낀 나머지 한편으로는 예의바르고 친절한 자세 뒤에 위태롭게 숨어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에 주어진 임무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려 보냈다는 멜로드라마적인 해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군 장교는 이 영화에 나오는 어떤 인물보다도, 심지어 순아보다도 더 인간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북한군이 국군보다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책영화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가정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건 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사람이라는 명제의 반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놓았던 경계선은 무너지고 이제 이 전쟁에서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쟁에서 살아가게 된다, 혹은 죽어가게 된다. <증언>은 기묘하게도 매번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거의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간 다음 진부한 국책영화의 흑백논리로 재빨리 되돌아온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몇 차례이고 임권택 의 전쟁영화, 혹은 국책영화에로 되돌아와야 할 것이다. 이때 망설이는 당신의 근심을 알고 있다.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함정 아닌가요.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보려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가,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무시무시한 기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잠시 멈칫 거리면서, 그것이 의도라기보다는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매번 거기서 우울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치 영화가 자기가 처해있는 영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거기엔 무언가가 추방되어 버렸다. 그저 광경만이 남았다. 단지 황폐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부서진 낮과 꺼져버린 빛 때문에 세상이 거의 지워진 밤. 그리고 낮보다 더 많은 밤. 그 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린 탓일까. 그런데 전쟁이 난 그해 비가 그렇게 내린 것일까, 아니면 촬영을 한 그 해에 내린 비 때문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이상할 정도로 습도가 높은 화면들. 종종 젖어있는 것만 같은 폐허들. 그때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 것일까. < 증언 >이 거의 부서져가면서 가까스로 이어져갈 때 거기 끼어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고통이나 연민이 이야기 안에 넘쳐나면서도 그걸 영화가 느껴보는 순간이 없다. 나는 지금 유령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이미 지나가버린 영화 안에서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을 기다리듯이 그저 길 잃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 같은 심정.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지금 그 시간을 다시 불러오고 있는 중이다. 두렵지만 이건 나의 사명이다. 그러니 <증언>을 향하여 소리 높여 질문한다. 말하라. 나는 너의 증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계속) 약간의 첨언. < 증언 >은 판본의 문제가 있다. KMDb에 따르면 <증언>의 상영시간은 2시간 5분이지만 지금 내가 보고 이 글을 쓴 판본은 8분가량이 짧은 1시간 56분 58초이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증언>을 완성한 다음 이 판본에 대해서 제작사였던 영화진흥공사가 몇 가지 보충촬영을 지시했는데 이미 다음 작품을 촬영하고 있어서 그 부분을 제작 프로듀서였던 정진우 감독이 촬영하고 편집했다. 아마도 두 가지 버전 중에서 2시간 5분 버전은 정진우 감독의 보충촬영 추가 편집본일 가능성이 크다. 개봉은 이 버전으로 했을 것이며 현재 영상자료원 소장본은 짧은 임권택 버전(일 것)이다. 정진우 버전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기억하지 못한다. 1973년 12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김강윤 촬영 서정민 조명 최의정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김창숙 신일용 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