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면
- 감독
- 제임스 웨일
- 제작년도
- 1939
- 출연
- 루이 헤이워드, 조안 버넷트, 워렌 윌리암
여기 이규웅 감독, 신봉승 각본, 신성일 , 남정임 , 허장강 주연의 1969년 작 영화가 한 편 있다. 참여한 사람들 이름만 보면 멀쩡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 투명괴인 >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까. 신봉승 의 <투명인간> 각본(시나리오 당시 제목은 <투명인간>이며 심의중 제명 변경을 통해 < 투명괴인 >으로 개봉한다.)은 내가 몇 년 전 한국 SF 영화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한국영상자료원 도서관의 시나리오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궁금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남아있는 건 시나리오뿐이다. 필름, 스틸, 포스터 모두 사라지고 없다. 누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만 시나리오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도다. 신성일 이 음악가인 주인공 강시도, 남정임 은 그의 약혼녀이자 의사인 김미련, 김동원 은 미련의 아빠이자 화학자인 김창기 박사, 허장강 은 카바레 주인인 악당 최광식, 이순재 는 시도의 동생인 숙경의 남자친구인 상규를 연기한다. 구봉서 와 서영춘 이 나오는데 (당연하게도) 그 둘의 역할은 엿장수 A와 B이다 인물 관계도 도입부는 액션영화처럼 보인다. 주인공인 시도는 동생 숙경의 남자친구인 상규가 깡패들에게 얻어맞는 걸 보고 뛰어든다. 그러던 중 깡패 한 명이 칼에 맞아 죽고 시도는 살인누명을 쓴다. 경찰을 피해 여자친구의 집에 숨어든 그는 마침 여자친구의 아빠인 김창기 박사가 실험 중이던 투명인간 약을 자기 몸에 주사한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인 것 맞다. < 투명괴인 >은 주로 사극과 멜로드라마를 찍었던 이규웅 감독이 잠시 코미디를 건드렸던 60년대 말 작품으로 이 영화의 방점은 SF보다는 코미디에 찍혀있다. 지금 보면 코미디라는 것도 이 어설픔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자. 이 영화의 SF 설정이 얼마나 허약한지 폭로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여기서 투명인간이 되려면 허버트 조지 웰즈의 <투명인간>이나 폴 버호벤(파울 페르후번)의 < 할로우 맨 >에서처럼 약물을 주사해야 한다. 그런데 시나리오의 지문을 보면 시도는 주사를 맞자 옷과 함께 투명해져 버린다! 그럼 주사를 맞는 동안 입고 있던 옷도 함께 투명해지는 것일까? 아니. 투명인간이 몸에 걸친 옷은 자동적으로 투명해지고 옷을 벗으면 그 순간부터 불투명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단지 여기에 예외가 하나 있으니, 악어가죽으로 만든 물건만은 예외이다. 뜬금없이 악어가죽 이야기가 나와서 이게 무슨 복선인가 했다. 하지만 그건 시도가 자신이 투명인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불쌍한 엿장수 콤비를 놀려대는 장면에서 구두가 보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다. 자, 슬슬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리해보기로 하자. 시도의 여동생 숙경은 최광식이 운영하는 카바레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가 그만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최광식은 이를 미끼로 숙경을 협박해 자기 여자로 만들려 하고 상규는 이에 맞서다가 두들겨 맞았단다. 이것으로 우린 1960년대 평균적인 한국 사람들이 성폭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다. 심각한 강력범죄가 벌어졌는데 피해자의 더럽혀진 순결이 더 공격대상이 되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이걸 코미디 소재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자친구 옆을 지키는 상규는 기특해 보인다. 이제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시도는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이용해 악당 최광식을 때려잡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시도와 미련의 결혼식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어떻게든 시도의 몸을 다시 불투명하게 돌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김 박사의 몫이다. 이들이 어떤 대사를 읊고 있는지 보여줄 때가 된 것 같다. 아래의 예를 참고하라. 시도: 먼저 가라구.... 보이지 않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건 소경이 안경 쓰는 격이 아냐. 미련: 그건 아빠 사정이지 뭐야... 난 당장 사람이 증발되어 없지 않어요. 누굴 만나 어떻게 상의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숙경: 내 자신이 순결하지 못하는 사실이 드러나는 건 무섭지가 않어. 하지만 또다시 저것들의 손에 희롱당하긴 싫은 거야. 각각의 인물이 ‘멋있는’ 남자주인공, 철없는 부잣집 딸내미, 호스티스 주인공의 스테레오타입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보일 것이다. 여기서 내가 조금 재미있어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있는 시도와 미련이 결혼하는 것에 아무도 불만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동생이 카바레 호스티스로 나갈 정도라면 시도에 집안 사정이 상당히 나쁘다는 것인데? 하지만 영화는 굳이 이를 언급하지 않아도 신성일을 캐스팅하면 다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신성일 비중이 턱없이 빈약하다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시도가 주인공인 건 맞다. 하지만 그는 영화 내내 투명인간인 상태로, 불투명한 모습은 아주 가끔씩만 보인다. 대신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특수효과로 떠다니는 물건들과 그가 어딘가 있다고 주장하는 텅 빈 공간뿐이다. 제임스 웨일의 <투명인간>에 나왔던 클로드 레인즈도 사정은 다를 게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가 화면에 없는 동안에도 그의 멋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신성일 캐릭터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성우 더빙이다! 이 경제성이 의도적이었는지 궁금하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시도는 투명인간 상태로 복수에 나서는데, 그의 목표는 최광식에게 정신적인 압박을 가해 자수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 전까지 동생의 순결을 갖고 협박하고 있다는 걸 벌써 잊고 있었나? 신경 쓸 것 없다.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자수를 유도한다는 목표도 무시해버린다. 시도가 벌인 일에 대해서는 신문과 라디오가 꼼꼼하게 보도해주고 있다. 우선 신문 헤드라인. XX 카바레에 도깨비 대소동! 악사없이 색스폰이 연주되고 피아노도 처지다! 다음은 라디오 뉴스. “요 며칠 동안 시내 도처에서는 이십 세기 후반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불가사이한 일이 발생하고 있읍니다. 악사가 없이 색스폰이 연주되었는가 하면 피아노도 사람없이 재즈를 연주했읍니다. 또한 오십만원이나 되는 돈뭉치도 날아갔는가 하면 운전사가 없는 서울자 영번을 단 코로나택시가 하이웨이를 백이십킬로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 졌읍니다.. 이러는 동안 투명인간을 목격한 사람들은 미쳤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감금되는데, 이들 중엔 초반부에 시도의 장난에 시달렸던 엿장수 콤비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병원에서 벌이는 소동은 꽤 길게 나온다. 구봉서 와 서영춘 의 분량을 뽑아야 할 테니까. 그러는 동안 김 박사는 시도를 일시적으로 눈에 보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몸에 물을 적시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린 시도가 지난 며칠 동안 화장실을 이용한 뒤에 손을 단 한 번도 씻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자기 전에 세수도 안 했나보다. 이 정도면 시도가 투명인간인 상태에서 악당과 싸우는 동안 비가 내린다거나 하는 위기 상황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런 거 안 나온다. 하지만 샤워를 한 뒤 몸이 마를 때까지 몇십 분 동안 미련과 데이트를 하긴 한다. 이야기가 끝나간다. 시도는 다시 최광식을 찾아가 자수하라고 고함을 치지만 최광식은 말을 듣지 않는다. 참다못한 그는 최광식을 두들겨 패고 밧줄로 묶어 경찰서로 끌고 간다. 투명인간에게 개처럼 끌려가는 그의 목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걸려있다. XX일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주범은 접니다. 제대로 된 자백도 한 게 아니고 자수를 한 것도 아니며 숙경의 명예 문제가 남아있지만 영화는 이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나 보다. 김 박사의 투명인간 연구가 대중에게 공개되고 드디어 시도와 미련이 결혼을 한다. 아직 투명인간 치료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택한 차선책은 결혼식을 하는 동안 소방차를 불러와 신랑 신부와 손님들에게 물을 뿌리는 것이다. 신랑 한 명에게만 가끔씩 물을 부어주면 물이 절약되겠지만 이쪽이 더 그림이 잘 나오겠지. 그리고 그 소동을 겪는 동안 김 교수가 가까스로 치료제를 완성해 시도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모두에게 다행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