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90
- 감독
- 조나 힐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서니 설직, 케서린 워터스톤, 루카스 헤지스, 나-켈 스미스, 알렉사 데미, 올란 프레나트, 지오 갈리시아, 제로드 카마이클
태양계 궤도를 도는 에베레스트 크기만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다른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가운데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궤도 계산을 하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6개월 안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딪치는 순간 종말이 펼쳐질 게 명백한 상황이기에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NASA에 보고하는데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개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법하지만, < 돈 룩 업 >은 그 쉽고 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의 고전적인 마스터피스 <세계가 충돌할 때>나 < 지구의 대참사 >도, 할리우드 스케일의 위력을 담은 < 아마겟돈 >이나 < 딥 임팩트 >도, 운명적인 < 너의 이름은 >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 세상 끝까지 21일 >도, 그리고 암울한 아트하우스의 < 멜랑콜리아 >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태 풍자에 집중한다. 무능한 정부는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 중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언론은 심각한 분위기를 피해 가십으로만 소비하려 한다. 여기에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외면하고 기만하는 대중들이 가세하며 환장의 대(大)콜라보를 이룬다. SNL 작가 출신으로 윌 페럴과 함께 많은 코미디를 작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기후 환경 문제와 막장의 끝을 달린 트럼프 정부 그리고 제작과정 중 실시간으로 터진 코로나 상황을 혜성에 빗대 마치 실제 인류의 대위기 앞에서 벌어질 법해 정말로 무서워(!)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조나 힐, 마크 라일런스,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티모시 살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쿠디, 히메시 파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서 성공의 지표로 뽑는 “공개된 지 28일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 레드 노티스 >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다. 비판의 대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플롯과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렸지만, 2021년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후보에 오르며 완성도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극찬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풍자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지만, 이 극도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명민한 음악 덕분이다. 니콜라스 브리텔 배리 젠킨스의 < 문라이트 >와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으로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니콜라스 브리텔은 1980년대생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뉴욕의 유대 가정에서 자란 브리텔은 피아노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고교 시절 줄리어드 음대의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왜 인간이 음악에 매료될까에 궁금증을 느껴 하버드 심리학과에 지원할 정도로 괴짜이자 수재였다. 학부 시절 내내 힙합 연주그룹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의 하버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연출한 단편 <EVE>에서 그의 소품 “Forgotten Waltz No.2”가 쓰이며 영화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포트만이 참여한 < 뉴욕 아이 러브 유 >의 한 꼭지를 비롯해, 각종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텔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고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외환 딜러로 활동했는데, 그가 결국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 < 노예 12년 >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부탁으로 한스 짐머가 <노예 12년>의 스코어를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삽입될 소스 음악들에 대해선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로 외부 음악가를 수혈했는데, 그게 바로 니콜라스 브리텔이었다. 그는 전혀 녹음된 바 없고, 제대로 전승되지도 못한, 잃어버린 노예들의 음악을 위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제 유행하던 스타일에 맞춰 철저한 고증 끝에 새롭게 만들어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노예 12년> 음악의 비밀병기”란 극찬을 받았다. 금융권 출신답게 브리텔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제작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 영화에 제작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그게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 위플래쉬 >였다!), 후에 이 영화가 장편화되며 음악에서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확고히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와 아담 맥케이와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이 성공한 덕분이 크다. < 빅쇼트 > 때 브리텔의 대본에 적힌 전문적인 금융(음악이 아니라!)업계 용어 메모에 놀라 아담 맥케이가 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미 <빅쇼트>와 < 바이스 >를 통해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와 정치 생태계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음악적으로 정리한 바 있는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번 <돈 룩 업>에서도 멸망을 앞둔 경박한 사회적 혼란과 진실이 잘못된 정보 앞에 덮이는 아이러니, 무능한 정부를 비꼬는 다양하고 세련된 스코어들을 들려준다. 신랄한 풍자와 날 선 묘사들로 불쾌해질 수 있는 영화의 공격성을 최대한 무마하고, 널뛰는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여러 고민 끝에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 유행한 업 템포의 빅밴드 사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메인 테마의 색채로 잡는다. 광기와 혼돈을 묘사하면서 멸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앞의 우울함과 슬픔을 내재해야 하고, 동시에 코미디 음악으로서 희극적인 면모도 갖춰야 하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브리텔은 절규하듯 울부짖는 브라스섹션에서 절묘한 부조리의 묘미를 찾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혜성 충돌을 경고할 때마다 빅밴드 사운드는 더 처절하게 조증 기조를 발하고, 격렬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는 이들이 무기력하게 실패할 때마다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영화 속 대기업 BASH의 다양한 징글(방송이나 광고, 벨소리에서 쓰이는 짧은 곡)을 배치해 공허한 낙관론과 가짜 희망주의를 조롱하며 음악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를 위해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핸드폰 벨소리와 기업 프레젠테이션 속 영상, 방송 시그널과 CF 음악들을 일일이 작업했다. 여기에 영웅적인 블록버스터 사운드(물론 이마저도 비웃기 위해 사용되었다!)나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까지 활용하며 음악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장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악기에서도 베이스, 드럼, 트럼펫 그리고 색소폰 트리오 등의 빅밴드나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는 물론, 밴조와 만돌린, 토이 피아노, 첼레스타, 파르피사 오르간, 차임벨, 힙합 비트를 포함한 각종 일렉트릭 효과까지 특이하고 독특한 종류를 혼합해 유희적이고 절충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인다. 일견 스코어만 듣고 있으면 짧은 큐들에, 워낙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응집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각각 장면마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또한 영화 내에선 니콜라스 브리텔이 공동으로 참여한 두 곡의 노래도 흘러나오는데, 극중 커플로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가 영화 중반 소행성과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Just Look Up”과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지구인들의 쿠키를 담은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Second Nature”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의 듀엣송으로 전통적인 사랑 노래처럼 시작하는 “Just Look Up”은 후반 2절에 이르러서 무지한 대중들의 계몽을 일깨우는 과격한 가사로 영화의 조롱 강도를 더한다. 아름다운 파워 발라드에 이질적인 가사가 던지는 격차야말로 이 노래의 백미로, 2021년 강력한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Second Nature”는 브리텔과 인디 밴드 본 이베어의 리더인 저스틴 버논이 함께 만든 곡으로, 혜성 충돌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먹먹해진 감성과 풍자로 쓰린 속을 다스리기에 좋은 몽환적인 포크송이다. 권력과 재력으로 새로운 세상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현시점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과 희망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응원가이자 송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장의 OST 중 하나였던 <돈 룩 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지명된 니콜라스 브리텔은 아담 맥케이와 함께 HBO에서 4시즌까지 방영된 드라마 <섹세션>과 디즈니 플러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 안도르 >를 통해 안방 데뷔에도 성공했으며, 24년 배리 젠킨스와 새롭게 도전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화 속편이자 프리퀄인 <무파사: 더 라이언 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Track List 1. "Just Look Up" by Ariana Grande & Kid Cudi 2. Discovery 3. Ephemeris 4. On Hold 5. The Call 6. C-5 Galaxy 7. Don't Look Up (Main Title Theme) 8. BASH Corporate Ident ("Liif") 9. Hyperobject Approaches 10. My Boyfriend Broke Up With Me 11. The Arrest 12. It's A Strange Glorious World 13. The Launch 14. The BASH Presentation 15. Kate Goes Home 16. FEMA-BASH Commercial 17. Arrival At The Hangar 18. There Is A Comet 19. The Comet Appears 20. The Prayer For Stuff 21. The BASH Launch 22. Twenty-Four Drones Is Enough 23. It All Comes Down To This 24. Thanksgiving (Overture To Logic And Knowledge) 25. The End? 26. Memento Mori 27. Don't Look Up (End Credits Suite) 28. Logic Waltz In B Major (Bonus Track) 29. Don't Look Up (Main Title Suite; Bonus Track) 30. Ode To Science (Bonus Track) 31. "Second Nature" by Bon Iver
“우리가 왜 이 판자 쪼가리에 미치는지 알아요?” “fuck shit!”을 입에 달고 살아 그것이 별명이 되어버린 한 소년(영화 안에서 그의 별명은 ‘존나네’라고 번역되어 나온다.)이 스케이트보드를 응시하며 말한다. 공터에는 그와 같은 소년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고, 노숙자로 보이는 이들이 무료하게 햇볕을 쬐며 그 광경에 어우러진다. 나른한 오후의 장면이지만, 이곳은 법원 앞, 그러니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일이 금지된 제도와 규율의 장소다. 경찰들이 들이닥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평화는 이내 깨진다. 소년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뿔뿔이 흩어지는데, 더러는 달아나는 데 성공하고 더러는 붙잡힌다. 신기한 건 이 대목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이다. 강제적이고 다급한 도주의 순간이 어쩐지 유희의 리듬으로 충만하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들에게는 경찰에게 쫓기는 한바탕의 소동도 스릴 넘치는 놀이와 다름없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이 순간을 그렇게 찍었다. 영화는 내화면의 소란스러운 노이즈를 외화면의 경쾌한 음악으로 침묵시키고 아수라장이 된 공간 속 충돌들을 부드러운 운동으로 다시 표면화한다. < 미드 90 >(조나 힐, 2018)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들과 자주 마주한다. 이를테면 ‘땡볕’이라 불리는 스티비(서니 설직)가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낙담한 장면에서 그가 줄곧 동경해온 레이(나 켈 스미스)는 자신과 친구들의 만만치 않은 가정사를 언급하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둘은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양쪽으로 차들이 달리는 도로 중앙의 경계선 위를 스케이트보드에 올라선 두 소년이 화면 후경으로부터 전경 쪽으로 유영하듯 점차 가까워지다가 곧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감행하는 위태로운 행동이지만, 차들의 소음 대신 음악의 활기로 채워진 장면 안에서 두 소년의 움직임은 공간의 한계를 자체적인 리듬으로 유연하게 돌파한다. 그들이 도심의 텅 빈 공원에서 오직 스케이트보드 하나와 자신의 육체만으로 곳곳을 오르내리며 묘기를 부릴 때, 그것이 쇠락한 공간을 독창적으로 다시 감각하며 그곳에 숨을 불어넣는 행위라고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 장면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스케이트보드 위에 오른 소년들의 운동은 물론이고 <미드 90>이 그 순간을 ‘영화적으로’ 가공하는 방식은 섬세하게 아름답다. 도시의 보잘 것 없는 풍경들과 그곳에서 근근이 버티는 청춘들의 빈곤한 시간이 이 매끈한 움직임들로 인해 잠시나마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는 데 성공하며 빛날 기회를 갖게 된다. 물론 이 순간이 자아낸 감상이 실은 환상에 빚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이 장면들은 현실의 시간을 중지시키고 풍경의 얼룩과 충돌을 미학화한 결과물일 것이다. 대다수의 하위문화가 결국 체제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그저 체제 안에서의 또 다른 소비양식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스케이트보드의 운동성으로 유려하게 구축한 장면들은 적어도 ‘존나네’와 같은 청춘들이 “판자 쪼가리”에 거는 마음의 풍경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그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소년들이 법원 앞 공터에서 만난 어느 노숙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거리에서 탈출하려고 노력 중이야. 이 거리가 나를 먹어버리기 전에.” 그는 거리로 내몰린 자신이 거리의 죽은 사물이 되어 더 이상 어떤 가능성도 없이 붙박인 채, 그곳의 가난과 폭력과 체념에 ‘먹히는’ 상태를 염려하고 있다. 그는 거리를 사는 주체가 아니라 그 거리에 잡아먹히는 대상이 될 위험을 감지한다. 그와 같은 맨몸의 노숙자들에게 이 거리는 오직 생존의 문제와 결부된다. 그러나 적어도 스케이트보드를 가진 소년들에게 이곳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절실한 문화와 취향의 공간이다. 그들의 지식이 아니라 육체가 (아마도 그 거리를 설비한 자들보다 더) 거리의 구조와 생리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자연스레 터득하고 이해한다. 그들에게 그 거리는 가정, 학교, 사회 등과 같은 ‘중심’ 혹은 ‘내부’의 균열을 고스란히 외면화한 바깥이지만, 그들의 열악한 현실을 상기하는 동시에 그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육체의 활력을 키우는 유동적이고 모험적인 바깥이기도 하다. 레이는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 중인 스티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처럼 세게 부딪치는 놈은 처음 봐. 그럴 필요 없어.” 형 이언(루카스 헤지스)이 일상적으로 가하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온 이 작은 소년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종종 일삼는 방식으로 현실을 견뎌왔다. 그러나 레이의 말대로 거리의 스케이트보드와 함께라면, 소년은 더 이상 갑갑한 집 안에서 세게 자학하지 않고도 삶을 버티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상처 입은 소년들은 총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겨드랑이에 끼고 매일 거리로 나온다. 이 영화는 주인공 스티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소년들의 암울한 집으로 카메라를 들이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바깥의 폭력에 잠식되지 않고도 바깥의 리듬을 자기 식대로 체화해가는 순간들에서 분노나 좌절과는 다른 감정적 교류를 응시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위험한 농담을 나누고 서로 치고받으며 치기어린 사고를 내고, 결국 죽음 문턱에까지 접근해도, 어찌되었든 이들이 이룬 공동체의 풍경은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안도를 안긴다. 자동차 사고 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스티비가 입원한 병원 휴게실 의자에서 상처 난 얼굴로 널브러져 잠이 든 소년들의 모습이 그 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 공동체의 일부가 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영화에서 퇴장하는 스티비의 형 이언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맥락이 필요할 것 같다. 그는 영화 속에서 상스러운 말과 행동들을 일삼으며 자신을 과시하는 그 어떤 소년들보다도 음산한 기운을 퍼뜨리며 스티비의 장면을 찢고 들어온다. 요컨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언은 좁고 긴 복도에서 스티비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이후에도 우리는 이언이 스티비를 무시하고 이용하며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스티비가 몰래 훔쳐보는 이언의 방에는 최신 음악 씨디들과 옷, 모자 등 당대의 유행품들이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안이 그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혼자다. 집에서 혼자만의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몸은 스케이트보드와 하나가 된 소년들의 육체와 확연히 달라 보인다. 그것은 거리와 호흡하며 끊임없이 놀이를 고안하는 생기로운 몸이 아니라, 자기방어를 위해 단련하고 공격을 준비하는 것만 같은, 우월감에 도취된, 실은 불안을 은폐하는 몸이다. 우리는 이안의 폭력성이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기인한다고 짐작하지만, 영화는 그에 대한 그 이상의 관심을 요청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굴욕적인 순간은 동생을 그토록 때리던 이안이 ‘존나네’ 무리들과 맞닥뜨린 장면에서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할 때인데, 이안과 관련된 일련의 장면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미국사회가 낳은 특정 유형의 인물을 상기시킨다. 섣부른 일반화가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는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소외시켜 폭력을 내면화하며 결국 왜곡된 방식으로 분노를 폭발하고 마는 이들의 기운을 잠재한다. 더욱이 그가 빌 클린턴의 얼굴 캐리커처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혼자 밥을 먹거나 한밤 중 자고 있는 스티비를 급습해서 구타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 난데없는 풍경의 기괴함과 끔찍함은 그저 무의미한 장난으로 치부해버리기 어렵다. 이런 설정을 당대 정치사회에 대한 영화의 코멘트로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 장면들에서 우리는 그가 키워가고 있는 망상의 그림자를 예감할 수밖에 없다. 극우주의, 백인우월주의 등과 같은 혐오의 단어가 이 장면을 무섭게 스쳐간다. 영화의 후반, 이안이 온 몸에 깁스를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스티비를 말없이 지켜보다 음료수 두 개 중 하나를 나눠주는 장면이 있다. 둘에게 주어진 짧은 휴전의 순간인지, 사과와 용서의 순간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장면은 별다른 대화나 감정의 해소 없이 금세 끝나버리고 이안이 사라진 자리는 어느새 거리의 친구들로 꽉 채워진다. 다정한 친구들의 왁자지껄함으로 가득한 장면은 이안의 부재를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함께 보낸 날들이 비디오로 상영되는 동안, 이안은 그 화면 속 거리의 추억에도, 화면 밖 병실의 친구들 틈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두드러진 인물이지만, 그 존재감이 가장 미약한 자다. <미드 90>은 그 시절, 거리의 유희와 청춘의 리듬을 탐색했던 사고뭉치 소년들의 유일무이한 시간과 함께, 그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어느 소년의 스산한 시간 또한 기억에 남겨 두려한다. 찬란하고 아련하지만 암울하고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