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의 목적
- 감독
- 조성우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주예빈, 박하얀, 제동화, 이강연, 김종인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산업은 활황의 정점에 있었다. 넘치는 제작자본, 소재와 규모, 스토리텔링, 형식의 실험이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과시하는 르네상스의 시기로 요약된다. 이명세 감독의 < 형사 Duelist >(2005)는 이 무렵에 발표된 문제작 중 한 편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낭만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다면 슬픈 눈(강동원)과 남순(하지원)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넣었어야 하건만 이명세는 칼날들이 부딪힐 때의 섬광 같은 번쩍임, 펄럭이는 천 조각들, 숨이 넘어갈 듯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땀에 절은 얼굴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스토리의 비약, 감정의 흐름을 등한시하는 태도, 슬픈 눈과 남순이 첫 눈에 반하는 이유, 슬픈 눈이 병조판서(송영창)를 배신하는 이유 등 개연성을 갖춘 플롯이 의당 감당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관객들의 불만을 촉진하였다. 그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일과 유리된 듯한 미적 도취, 비현실의 세계를 뛰노는 상상적 판타지,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연극적인 세트, 몽상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스타일로 장인적 세공술을 담금질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이미지를 조각하는 이명세의 연금술은 현실과 꿈을 교차시키는 대담한 오버랩, 아기자기한 세트, 만화 같은 이미지, 비 관습적인 음악과 사운드로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이 완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논쟁을 던져왔다. 다수의 뉴웨이브 감독들이 치열한 현실인식과 그에 대한 발언으로서 이야기와 형식을 고민했다면 이명세는 영화는 무엇으로 말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시네마 뉴웨이브’의 시네아스트로 자신을 몰아갔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형사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형사 Duelist>의 스토리는 혼돈이다. 때는 18세기, 입담 좋은 대장장이 봉출(윤주상)의 한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셈이다. 봉출은 호기심에 차 눈을 부라리는 남정네들을 앞에서 한밤에 만난 기이한 분위기의 요염한 아낙(김보연)의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춘다. 그때 프레임의 뒤편에서 애꾸눈의 사내가 “이 상놈의 새끼들, 집중이 안 되잖아!”라고 아리송한 타박을 한다. 험상궃은 사내의 기세에 이야기는 갈 길을 잃고 카메라는 슬그머니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캉캉에 맞추어 춤을 추는 탈을 쓴 사람들의 군무로 넘어간다.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리듬을 무시하고 이어지는 붉은색 천 앞에서 칼춤을 추는 백발의 탈바가지, 북적대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장터의 풍경들로 이미지의 연쇄는 숨이 가쁘다. 군중들 사이에 섞인 좌포청 포교 남순(하지원)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틈타 시중에 가짜 돈을 유통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탐문 중이다.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 형사 남순의 파트너는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한 안 포교(안성기). 의욕을 앞세우는 남순과 꼼꼼히 전후 사정을 따져 사건에 접근해가는 안 포교는 서로의 장단점을 상쇄시켜줄 만한 최고의 단짝이라 할 만하다. 수상한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그날 돈자루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소란의 와중에 남순은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탈을 쓴 백발의 괴한을 쫓는다. 좁은 시장 골목과 담벼락 길 사이에서 서로의 뒤를 쫓는 추격전을 벌이지만 신출귀몰한 백발 괴한은 두 형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형사 Duelist>의 장면들은 관객을 추격의 스릴로 몰아 부쳐 아드레날린에 취하게 만든다. 상당한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통상적인 플롯의 전제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단속적으로 진행하는 신들의 연쇄는 극중 애꾸눈 사내의 푸념처럼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가 필요로 하는 차근차근 쌓아나가기 위한 세팅이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스토리의 중간으로 잘라 들어가는 둔탁함이 거기에는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혼돈과 충돌이 만발하는 이 시퀀스의 내적 논리는 무엇인가? 시퀀스의 주제는 봉합선이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의 연쇄이다. 광란에 가까운 트릭을 구사하는 20분 동안의 시각적 스토리텔링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카메라와 잠재의식을 시각화한 것 같은 편집을 결합한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정도이다. 그 자신의 스타일적인 시그니처인 스톱모션 이미지와 번쩍이는 순간 다음으로 넘어가는 불분명한 쇼트의 이행, 피사체들의 수평적 움직임, 와이프와 같은 효과를 내는 쇼트의 수평적 전환을 통해 이명세는 시네마틱 무브먼트와 트랜지션을 매개로 한 대담한 실험을 보여준다. 화면 내 요소들과 카메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활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이 모두 중요해 보인다. 전체 시퀀스는 하나의 쇼트가 사라지고 이어지는 쇼트 안으로 끌어 당겨지는 느낌을 준다. 백발의 괴한의 휘두르는 칼의 그래픽적인 움직임, 프레임 안 인물의 이동 따위가 광학적인 기교인 와이프를 대체하기도 한다. 구성적인 차원에서 이 시퀀스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한 장르에서 또 다른 장르로 이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요상한 공포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캉캉 춤을 추는 무희들의 뮤지컬로, 수직의 길 위에서 맞서는 서부극적인 구도로, 몸과 칼의 안무가 이루어지는 무협영화로 전환된다. 속도는 진정되고 움직이는 카메라가 여전히 거기에 있는 동안 세트 디자인과 조명의 아름다움으로 구축된 골목에서의 결투는 이 시퀀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슬픈 눈이 쓴 탈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이 결투는 애간장을 태우며 끝이 난다. 탱고 춤과 무모한 칼싸움 사이 어딘가에서 백발의 탈과 남순이 화면에서 뛰어내리고 프레임을 분할한 조명에 잠겼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선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포착된다. 장엄한 촬영 기법과 세트 디자인 위에 얹혀진 조성우의 음악은 클래식과 전통 음악을 혼합하여 영화에 깊이를 부여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액션이 없는 곳에서도 여전히 움직임은 장면 연출의 초점이다. 도입 시퀀스를 마무리하는 결투 외에도 몇 차례 반복되는 영화 속 결투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으며 거기에는 인물들의 구애의 단계가 반영되었다. 두 번째 결투 신은 번쩍이는 칼날만이 어둠을 밝히는 그림자 속에서 정교하게 촬영되었다. 탱고 스타일의 테마로 보완된 음악은 한층 무르익은 감정의 깊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결투는 눈 속에서 사무라이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고, 네 번째는 유혹적인 동작들이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에로티시즘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사 Duelist>에는 영화 예술의 본질이 물질적인 움직임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스며 있다. 보는 사람의 정신에 닿게 하는 영화의 정수는 어떤 것일까? 그런데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감각의 액션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형사 Duelist>는 골치가 아프고 지루한 영화였다.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토리와 대화, 캐릭터, 장르 중 어느 것도 장면이 만들어내는 느낌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이명세는 관객을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화면에 묘사하여 정신의 움직임을 시각화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움직임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현대영화가 잃어버린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사운드의 출현으로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리조차 이미지화되는 감각의 전환을 창조하려는 야심이 이 영화, <형사 Duelist>를 특별하게 만든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2002년 | 기획시대 감독: 김동원 | 각본: 김은화 | 각색: 김동원 노진수 연미정 | 제작: 유인택 | 촬영: 전조명 | 미술: 김희정 장춘섭 | 음악: 조성우 CAST 해적: 이정진 | 봉팔: 임창정 | 성기: 양동근 | 봉자: 한채영 | 큰형님: 이대근 | 봉팔 부: 김인문 | 해적 모: 김영애 | 성기 모: 김선화 | 배 사장: 안석환 | 제비: 정은표 | 2000년대 초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가 열리면서 새로운 현상이 하나 생깁니다. 젊은 감독들의 등장이죠.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2002)의 모지은 감독이나 < 일단뛰어 >(2002)의 조의석 감독 등은 모두 20대에 데뷔를 했는데요, < 해적, 디스코왕 되다 >의 김동원 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도제 시스템을 거의 거치지 않고 단편 작업을 통해 인정을 받아 20대에 첫 장편을 만들 수 있었죠. <해적, 디스코왕 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1999년에 만든 단편 <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를 토대로 김동원 감독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가 배경인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화곡동의 한국관 나이트에서 이뤄졌습니다. 디스코 경연 대회 장면은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클라이맥스였는데요, 그 중심에 바로 ‘해적’이라 불리는 사나이 이정진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분홍 블라우스에 ‘쫄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제대로 복고였죠. < 해변으로 가다 >( 김인수 , 2000)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출연작에서 처음으로 원 톱 주연을 맡았습니다. 어색하면서도 나름의 스타일로 춤을 추는 해적. 나중엔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옷까지 벗어 던집니다. 중동 간 아버지와 춤바람 난 어머니 밑에서 바르게(?) 자란 청년 성기 역의 양동근입니다. 성기는 친구 봉팔(임창정)의 동생인 봉자(한채영)을 구하기 위해, 해적을 도와 춤 선생을 자처하죠. 이정진과는 <해변으로 가다>에 이어 두 번째 함께 하는 작품입니다. 한편 양동근이 처음 관심 있었던 역할은 엉뚱하게도 안석환이 맡은 ‘배 사장’ 역할이었다고 하네요. 봉자 역의 한채영입니다. 첫눈에 해적을 홀려버린 그녀는 돈을 벌어 집안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룸살롱에 나가고,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해적은 경연대회 우승을 노립니다. 한채영은 < 찍히면 죽는다 >( 김기훈 , 2000)에 이어 두 번째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모니터 앞에 모여 있는 배우들과 감독의 모습이 자못 심각하다면, 촬영 중간중간엔 박장대소를 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현장 분위기의 중심인 봉팔 역의 임창정이 있었는데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봉팔이는 아이큐가 92 정도 되는 아이에요. 바보는 아닌데 기억력이 너무 짧아 뭔가를 자꾸 잊어버리는 아이.” 한편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자신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사실 해적 역으로 먼저 캐스팅 뉴스가 나갔던 배우는 아이돌 그룹 ‘신화’의 전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정진이 맡게 되었죠. 김동원 감독은 “처음엔 전진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에요. 정진이가 너무 열심히 잘해줬어요”라고 말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촬영 속에서 피곤한 양동근이 촬영 사이에 틈을 내 쪽잠을 자고 있습니다. 1974년생인 김동원 감독은 서울예술대학 재학 시절 만든 단편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를 통해 첫 장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플란다스의 개 >( 봉준호 , 2000) 연출부를 거쳤고요. 성기 엄마(김선화)와 춤 바람 난 댄스 강사 역의 정은표입니다. 일명 ‘제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역시 인상적인 헤어 스타일의 소유자입니다. 황제 디스코텍에 봉자를 빼앗긴 후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배 사장 역의 안석환입니다. 그러나 황제 디스코텍의 사장(이대근)이 만만치 않은 거물인지라, 찍소리도 못하죠. 디스코 경연 대회를 염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경연 대회 사회자 역할로 개그맨 서승만이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첫 영화를 마친 김동원 감독은 벌써(!) 두 번째 영화에 대해 말합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우묵배미의 사랑 2> 같은 영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전 강남이 싫어요. 서민들 생활을 그리는 게 더 편하죠.” OB 맥주, 써니 텐, 솔 담배…. 1980년대를 드러내는 소품들입니다. 좁은 현장에서 1980년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를 잡은 사람은 전조명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59년부터 촬영을 시작하신,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시죠. 1933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70세셨고, 현장에선 모두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큰어른이셨습니다. 주로 김수용 감독님과 호흡을 맞추셨는데요 < 혈맥 >(1963) <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 < 갯마을 >(1965) 등이 전조명 촬영감독의 작품입니다. 대작인 임권택 감독의 < 증언 >(1973)을 비롯, 장길수 감독의 < 레테의 연가 >(1987), 박종원 감독의 < 영원한 제국 >(1994), 이영재 감독의 < 내 마음의 풍금 >(1998), 김유진 감독의 < 약속 >(1998) 등에서도 작업하셨습니다. 그리고 2004년 < 아홉살 인생 >( 윤인호 , 2004)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셨습니다. 촬영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10여 편의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1999년 | 씨네2000 감독: 김태용 민규동 | 원안: 김준희 윤성아 윤제균 차영하 하성실 황병조 | 각본: 김태용 민규동 인정옥 | 제작: 이춘연 | 촬영: 김윤수 | 미술: 오상만 이대훈 | 음악: 조성우 CAST 민아: 김규리 (김민선) | 효신: 박예진 | 시은: 이영진 | 지원: 공효진 | 연안: 김재인 | 고형석: 백종학 벌써 이 영화가 나온 지 20년이 되었네요. 1998년 < 여고괴담 >( 박기형 )이 신드롬을 일으킨 후 1년 만에 나온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는, 속편이지만 전작과는 크게 다른 느낌의 독립된 작품처럼 여겨졌습니다. 1편만큼 큰 흥행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이 영화는 컬트적인 반응을 얻으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죠. 독특하게 김태용, 민규동의 공동 연출 시스템으로 제작되기도 했고요. 김태용 감독의 설명처럼 “전편이 힘과 권력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개인의 감성에 대해 이야기”라고 있습니다. 동성 친구와 담임 선생님에 대한 효신의 사랑과 갈등엔 호러보다는 멜로의 요소가 훨씬 많았으니까요. 현장 공개는 10월에 있었습니다. 양수리 종합 촬영소에 지어진 교실 세트였죠. 효신(박예진)이 자살한 후, 아이들은 국어 교사인 고형석(백종학)과 효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국어 시간에 교과서를 교탁 위에 올려놓고 수업을 거부합니다. 프로듀서 출신인 백종학은 < 강원도의 힘 >( 홍상수 , 1998,에 이어 두 번째로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수업을 거부하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입니다. “자, 여기 집중해봐! 저기, 조용하고 여기 보라니까! 슛 하면 준비하고 액션 하면 연기하는 거다!” 간단한 장면 같지만, 적잖은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백종학과 김태용 감독의 모습입니다. 이 영화는 김태용 민규동, 두 감독의 공동 연출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 역할 분담에 대해 김태용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는 내가 연기 지도를 하고 규동이가 모니터 앞에 앉아 콘티를 점검하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이래요. 모니터 앞에 먼저 앉는 사람이 콘티를 보는 거죠. 의자가 하나밖에 없으면 늦게 온 사람이 앉을 수가 없으니까 연기 지도를 하게 되고요. 이건 농담 같은 진담이에요.” 효신이 세상을 떠난 후, 시은(이영진)은 효신의 반으로 찾아가 일기장을 찾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하고,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죠. 시은은 발로 의자를 차고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효신의 책상 위에 놓인 국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적 비극’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시은을 찾기 위해 제작진은 각종 잡지를 보며 적합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나 모델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캐스팅 회의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날, 알고 보니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의 사진을 가져왔는데요, 바로 이영진이었죠. 강렬한 눈빛에 중성적 이미지를 지닌 육상부 시은은 어쩌면 이영진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였던 셈입니다. 김태용 감독과 민규동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동기로 < 열일곱 >(1997), < 창백한 푸른 점 >(1998) 등의 단편을 함께 연출한 바 있습니다. “나는 무지 게으른데 규동이는 부지런해요. 그런 데서 약간은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김태용) “타이핑 속도가 빠른 내가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남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태용이가 현장 사람들을 통제한다든지 하는 식이죠.”(민규동) “규동이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흔히 사소하고 미시적이라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죠. 나는 남들이 관심을 갖는, 거시적이고 큰 것에 관심을 갖는 편이고요.”(김태용) “태용이는 현실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꾸밈없이 그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나는 어릴 때 서양 동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국적이 없고 환상적인 걸 좋아하고요.”(민규동)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려는 점에서는 같죠.”(김태용) 세트장은 촬영 현장이라기보다는 실제 교실에 가까웠던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여고괴담> 시리즈 다섯 편 중에서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닐까 싶고요. 이영진과 민규동 감독의 모습입니다. 민 감독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메가폰을 잡은 덴 여고생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삶의 어느 시기보다 에너지가 높은 열일곱, 열여덟 나이 또래 아이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았어요. 그리고 내 안에 없는 여성성에 대해,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억압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고요.” 이 영화를 보신 관객이라면 낯설게 느끼실 만한 장면입니다. 효신은 죽음을 결정하기 전, 교실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면서 그 환영에 시달립니다. 결국 이 대목은 최종 편집본에 들어가지 못하고 삭제되는데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 신이 이렇게 잘려나갔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 민규동 감독은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픈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박예진은 냉소적인 모범생 효신 역을 맡았습니다. PC통신 포럼을 통해 지원한 500여 명 중 오디션을 통해 뽑혔습니다. “사실 ‘여고’에는 관심이 많은데 ‘괴담’이어야 한다는 게 좀 어려웠어요. 전편은 학교라는 공간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사회 전반에 가해지는 폭력성이라는 화두를 갖고 있어요. 살인이 일어나고 그것에 복수하고… 그로 인한 통쾌함이 있는 거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어요. 한 소녀가 갖고 있는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고 할까요?”(김태용) “전편은 입시로 스트레스를 받는 1980년대 여고의 상황을 그렸어요. 하지만 1999년의 여고생들은 입시 외적인 문제로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죠. 두 번째 이야기는 그 현실을 그렸고 다음 세기에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은 상처와 슬픔을 담으려 노력했어요.”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6mm 디지털 단편을 찍을까 아니면 뭘 할까 고민하던 김태용 감독은 민규동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제안을 받고 “우리더러 장편영화를 찍으라고?”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기민 프로듀서를 만났고, 전적으로 두 감독에게 맡기겠다는 분위기여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촬영이 이뤄진 양수리 종합 촬영소 세트입니다. 학교의 전체적인 모습은 창덕여고에서 촬영했습니다. 효신 역의 박예진입니다. 오디션 전에 보낸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고 그 결과 캐스팅이 되었습니다. 연기 경험이 전무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감정 이입이 뛰어난 신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