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
- 감독
- Sung Tsun-Shou
- 제작년도
- 1974
- 출연
- 능운, 김한, 념뉴, 왕우, 황숙의
어느 여고의 신체 검사 날, 민아는 정체 불명의 일기를 한 권 줍고 그것이 자신과 같은 반인 시은과 떠들썩한 스캔들을 일으킨 효신의 교환일기임을 알게 된다. 일기를 읽어가면 갈수록 민아는 그들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고, 꾀병을 부려 들어간 양호실에서 우연히 시은과 효신이 직접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되면서 호기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둘의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 효신의 발화가 은밀해지면 은밀해질수록 시은은 양호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들이 옥상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던 민아는 이미 시작된 신체검사에 더 늦을 수 없어 서둘러 교실로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을 기도한 효신의 시신을 보게 된다. “첫 키스는 사과향기 같은 거라구? 난 피 냄새를 맡았어.” 수돗가에서 처음 일기를 주워 든 민아가 읽은 첫 번째 문구는 서브컬처적 은밀함과 성적 도발이 어지러이 뒤섞인 영화의 기본 정서를 암시한다. 그것은 또 신비화된 세기말의 파토스를 반영하기도 한다. 대의는 없다, 절대선도 없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를 추동 하는 것은 방향을 잃어버린 집단 안에서 이질적 불순물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 이를 수습하여 붙들어두려는 집단의 관성이 길항적으로 작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고괴담>(1998) 첫 번째 시리즈가 교육 시스템과 기성세대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에 중점을 둠으로써 한국 사회의 과격한 집단성에 어느 정도 알리바이를 줬다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훨씬 첨예하게 개인을 논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생각보다 차이를 참을 수 없고, 그 차이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면 놀랍도록 잔인해질 수 있다고. ‘우리’는 집단의 명백한 가담자다. 이는 (감독들이 ‘여고괴담’이라는 제목보다 더 선호한다고 알려진) 이 영화의 부제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의 첫 번째 단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개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의 수난을 더 잘 다루기 위해서 특정 젠더가 되어간다는 것 (혹은 수행한다는 것)의 고단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동시대적이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듯, 기본적으로 이는 학창시절의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한 성실한 묘사에서 비롯되지만 그것 외에도 ‘여성성’의 강박은 의외로 곳곳에 섬세하게 숨겨져 있다. 예컨대 영화 초반에 민아의 친구 지원이 캠코더를 들고 반 친구들을 촬영하면서 하는 말 같은 것들 말이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자고 있는 친구들에게 “’밤 일’ 하고 있냐’”고 묻고 그 옆의 화장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떡칠’을 하고 있지만 ‘원판’은 변하지 않는다”고 조롱하는 것 따위의. 그러나 앳된 얼굴의 아이들은 별 생각 없이 쾌활하게 웃는다. 하필 이야기가 벌어지는 그 날은 신체검사 날이기도 하다. 신체검사에서 더 마른 몸, 더 큰 키, 더 큰 가슴으로 정의되기 위해 민아의 친구 연안은 채소로만 끼니를 때우고 지원은 선생님에게 더 작은 소리로 가슴 사이즈를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국어선생 고형석과 효신의 관계다. 고형석은 자신의 ‘연약한 영혼’을 담보 삼아 효신에게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것은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관계의 성질이 효신의 유달리 조숙한 얼굴 뒤에 숨어 어른과 동등한 판단력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될 때, 우리는 ‘성적으로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가진 허울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예쁘고 날씬하고 ‘본판’에 거짓되지 않되, ‘밤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어떠한 행동거지도 조심해야 하지만, 동시에 성적으로 개방적이면서 가끔은 내면의 괴로움으로 울부짖는 남자를 달래줄 수 있을 정도로 자애로울 것. 의도치 않은 부산물이겠지만, 효신의 죽음은 효신을 신비화함으로써 여성성에 대한 분열적 다중명령을 더 강화하고 만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김태용, 민규동 감독이 두 달간 사전조사 및 실제 한 학교의 연극반에 2주간 담당강사로 나갔으며, 극 중 대화의 많은 부분들이 실제 학생들의 대화에서 영감 받아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다중명령은 감독들이 비판을 받아야 할 지점이라기보다 메타적으로 읽어야 하는 지점이 맞다. 물론 이러한 (평론가 듀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화인류학적’ 결과물을 보다 정밀하게 설명해내기 위해 굳이 X세대의 문화가 80년대 ‘청년문화’와 얼마나 다른지, 이 시대의 청소년 문화는 어떻게 태동되었고, 정치경제적 상황과 더욱 개방적으로 변한 대중문화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확실한 것은 90년대의 10대 여성은 전 세대에 비해 더욱 촘촘해진 레이어들을 통해 스스로의 젠더성을 검열하고 발전시킬 수 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고, 그 과정이 비평 가능한 수준으로 곳곳 관찰되고 있었으며, 여고괴담2는 이를 아주 정성스럽게 담아내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는 X세대의 다음 세대가 스스로가 처한 곤경을 수많은 페미니즘적 논의를 통해 인식하고 설명하려고 하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시사적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에는 항상 선생과의 음흉한 소문을 달고 다니는, 지나치게 조숙해서 아니면 그냥 ‘창녀’라서 배척되었던 캐릭터 한 명쯤 있지 않았나? 이성애 경쟁에 수반되는 다양한 사회의 명령들을 수행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약간은 배제될 필요가 있어 보이는 레즈비언 캐릭터도? 놀랍게도 ‘그들’은 여전히 대상화된 ‘캐릭터’로 남아있다. 왜? 언제부터? 관객의 무의식이 이러한 질문에까지 닿게 될 때, 효신의 죽음을 목격한 다른 주인공들과 학생들이 느끼는 비정상적인 공포는 우리가 함께 져야 할 연대적 책임의 일부로 변환되어 수용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언제고 명백한 집단의 가담자가 될 수 있으므로. 물론 이 모든 정치적 함의만으로 이 영화의 가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사운드와 공간을 운문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학창시절의 아름다움과 곤란함을 낭만화(또는 공포화) 하는데 매우 탁월하기도 하다. 특히 효신과 시은의 관계가 묘사되는 방식이 그러하다. 예컨대 효신이 아이들로부터 야유성 우유팩 세례를 받는 것을 목격한 후, 분노한 시은이 우유팩 하나를 발로 밟아 터뜨릴 때 나는 소리는 시은의 청력 문제를 알아채지 못하는 음악선생에 대한 반항으로 효신이 피아노 줄을 끊어버릴 때 나는 파열음과 몹시 닮아있다. 닮아있을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매우 리드미컬한 대구를 이룬다. 효신의 죽음 이후 각종 유령적 현상으로 인해 패닉에 빠진 아이들이 몰개성한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장소로서의 1층 중정(中庭)과, 효신과 시은이 연인으로서 가장 순수하게 교감하는 곳으로서 그려지는 옥상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존재해도 되는 것으로 승인된 장소와 그렇지 못한 장소의 대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승인되지 못한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력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승인된 것들’의 무의미함도. 여고괴담2는 팬들마저도 인정하는(?)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영화가 사운드와 공간을 통해 관객의 신경을 긁으려는 방식 눈치챔으로써 전통적인 공포 영화 문법의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2002년 | 강제규 필름 감독: 정초신 | 시나리오: 박채운 | 제작: 최진화 | 촬영: 서정민 | 프로덕션 디자인: 서명혜 | 음악: 이영호 이소윤 CAST 병철: 이범수 | 유리: 김선아 | 동현: 노형욱 | 석구: 전재형 | 상민: 정재훈 | 영재: 안재홍 아마 이 영화가 전국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한참 성적 호기심에 불타는 남자 중학생들과 여자 교생 선생님의 이야기였던 < 몽정기 >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슬리퍼 히트’, 즉 ‘예상치 못했던 흥행작’입니다. <몽정기>의 촬영이 있던 2002년 8월 부산의 한 여중 교실은 영화 현장이라기보다는 생기 넘치는 교실 같았습니다. 창 밖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그러들 줄을 몰랐습니다. 교생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 장면. 도시락 세대의 추억이기도 하죠. “선생님,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애는 어떻게 생겨요?” 녀석들은 ‘성’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묻지만 꿈 많은 소녀 표정의 선생님은 풋고추를 좋아한다느니 하며 아이들의 짓궂은 질문을 가볍게 넘어버립니다. 겉모습은 조금 궁상맞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선생님 역은 이범수. 교생이자 과거 제자였던 김선아는 그를 사랑하는데요, 이범수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스 라인은 이 영화가 처음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총각 병철을 짝사랑하는 유리. 그녀에게 그는 ‘영원한 테리우스’지만, 병철은 그녀에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아이들과 너무 허물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아무리 그래도 교생도 선생이야”라며 엄하게 충고합니다. 유리의 친구이자 동료 교생인 소정 역을 맡은 배우는 김기연 . < 노랑머리 >(김유민, 1999)의 상희 역으로 알려진 배우죠. 소정은 유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더러운 테리우스가 어딨니?” 짬을 내 네 명의 ‘중딩’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조숙한 아이 상민(정대훈), 그나마 똑똑한 영재(안재홍), 어리숙한 석구(전재형) 그리고 교생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년 동현(노형욱)입니다. 영화에선 중학교 2학년 설정이지만, 영재 역의 안재홍(14살)을 제외하곤 나이를 꽤 먹었습니다. 정대훈과 노형욱은 18살, 전재형은 성인인 스무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들이 모두 30대가 되었네요.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석구 역의 전재형은 이 영화의 ‘신 스틸러’였죠. 첫 영화였는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 몽정기 2 >(정초신, 2005)에도 출연합니다. 노형욱은 <몽정기> 개봉 즈음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시작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졌죠. <몽정기> 전엔 < 깊은 슬픔 >( 곽지균 , 1997)에서 김승우 의 아역이었고요. 이후 < 효자동 이발사 >( 임찬상 , 2004)에선 송강호 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상민 역의 정대훈은 ‘여관집 아들 상민’ 역을 맡았습니다.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천혜의 환경인 셈인데요, 그래서 <몽정기>의 인상적인 여관 에피소드가 가능했죠. 안재홍은 < 악어 >( 김기덕 , 1996)의 ‘앵벌이 꼬마’ 역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죠. 묘한 표정의 김선아. 이때만 해도 그녀는 영화계에선 신인급이었죠. < 예스터데이 >( 정윤수 , 2002)의 여전사 메이가 첫 영화였는데요, ‘포텐’이 터진 건 <몽정기>였습니다.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이범수. 이 시기 그는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 < 정글 쥬스 >( 조민호 , 2002) 등으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흥행작 <몽정기>를 통해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잡습니다. 메이크업 중인 이범수와 김선아의 모습입니다. 이범수는 촌스럽게, 김선아는 귀엽고 청순하게 보이는 것이 컨셉트였습니다. 1988년이 배경인 만큼, 교실 뒤편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들은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소품들이었죠. 그 옆에 당시 남자 아이들이 즐겼던 종이 축구 게임판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출신으로 첫 연출작 < 자카르타 >(2000)에서 흥행을 맛 본 정초신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몽정기>를 선택했고, 흥행세를 이어갑니다. <몽정기>에 대해 “오프라인 세대의 청소년기를 위한 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종의 ‘노스텔지어 무비’라는 거죠. 이 영화의 카메라는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1934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68세의 노익장이셨죠.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 마의 계단 >(1964) < 만추 >(1966) 등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루며 스타일리시한 촬영을 보여주었던 그는 대규모 스펙터클부터 섬세한 감성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80년대엔 이장호 감독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1990년대엔 < 개 같은 날의 오후 >( 이민용 , 1995) 같은 코미디부터 <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 >( 신승수 , 1992) 같은 로맨스, 그리고 < 손톱 >( 김성홍 , 1994) 같은 스릴러와 < 여고괴담 >( 박기형 , 1998) 같은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셨고요. 놀라운 건 <몽정기> 이후 칠순의 연세에 < 어린 신부 >( 김호준 , 2004) 같은 ‘뽀사시’한 영상을 만드셨다는 점인데요, 서정민 촬영감독에게 불가능한 장르와 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5년, 위대한 카메라맨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001년 < 친구 > 이후 한국의 영화 현장에 ‘현장 편집’이라는 게 생겨 급속하게 보급됩니다. <몽정기> 현장에선 그 장비가 매우 간소해졌더군요. <몽정기>의 콘티 북입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콘티 북이, 어떨 땐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정교했는데요, <몽정기>의 콘티 북은 거의 ‘졸라맨’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몽정기>는 제작 초기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갑자기 투입된 정초신 감독은 시간이 없어 꼼꼼하게 콘티를 그릴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대충 그린 콘티 북이 탄생했는데요, 그럼에도 영화는 ‘대박’을 기록했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겉보기엔 평범하고 멀쩡한 어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특별한 주인공 없이 각자 다른 사연을 갖고 있는 여러 인물들이 경험하는 어느 이상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인 이 단편영화의 원래 제목은 <푸른 계절>이었다. 적어도 내가 피드백을 부탁받고 읽은 시나리오엔 저렇게 적혀 있었다. 어딘가 괴상해 보이는 인물들이 왠지 부조리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자살하거나 자살시도를 하거나, 알고 보니 귀신이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연달아 등장해 읽는 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더니, 마치 8~90년대 공영방송 청소년 드라마의 그것처럼 개성도 없고 영혼도 없어 텅 빈 듯한 그 제목이 결국엔 꽤 짓궂고 음흉하게 느껴져 이건 좀 내 취향이라고 생각하며 읽은 시나리오였다. 그로부터 반년 후 < 어느 날 갑자기 >로 제목을 바꿔 달고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땐 내가 예전에 읽었던 그 이야기가 맞는지 아리송한 느낌을 받았는데, 비유하자면, 문구멍을 통해 뭔가 흥미진진한 사건을 본 것 같은데 그게 마치 깨진 거울 조각처럼 파편적인 상황들뿐이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상상할 때의 그런 초조한 아리송함과 비슷했다. 그런데 원래 이런 영화의 재미는 그런 아리송함의 정도와 비례하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극장을 나서면서 “이게 도대체 뭔 이야기야?” 라고 같이 본 친구에게 따져 물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진짜 재미의 시작이거든. 단지, 그런 질문이 딱히 대답이나 설명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내뱉는 짜증스런 추임새일 경우가 더 많다는 게 아쉬울 뿐.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열심히 주절대려는 말들은 이 영화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며 어떠한 재미의 화살을 과녁에 겨누려 했는지에 대한, 초고 시나리오를 읽어본 사람으로서 내릴 수 있는 근거 있는 짐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추리가 영화를 못 본 사람들로 하여금 굳이 이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진짜 목표나 이유 따위가 될 것이다. ‘여고생 호진은 진지하게 사귀던 같은 학교 선생 영호에게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호진은 영호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지만 영호는 문자 한 통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인터넷에서 긁어온 이 시놉시스는 앞에서 말한 그런 이유로 교활하다. 영화상에서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의 이야기를 극적인 태도로 포장하여 밑밥으로 던져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선생과 연애하는 발칙한 여고생 호진이긴 하다. 여러모로 조숙한 척하는 이 여학생과 왠지 띨빵해 보이는 수학선생은 정말로 진지한 연인 사이인 것 같다. 생리를 안 한다고 고백하는 제자에게 선생이란 이 남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고함을 치고 있으니까... 꽤 심각한 커플이지. 그리고 그런 호진을 좋아서 쫓아다니는 남학생 용진이 있다. 그렇다면 이건 삼각관계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런 용진을 좋아서 쫓아다니는 남학생 지수까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사각관계. 여기에 또, 약자(언더독)를 향한 격려/동기부여 강박관념을 가진 체육선생이 있는데, 그녀는 몸치인 호진을 붙들고 무용 개인교습을 시키며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파이팅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가 지쳤는지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이성복의 시를 일인극 무대 배우의 독백이자 주술사의 주문처럼 읊고 다니는 문학선생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오광록 )가 연기한 이 인물은 체육선생의 반대편에서 호진에게 자살을 부추기는 저승사자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의 문을 닫는 최후의 등장인물이다.) 줄거리와 인물 정리를 최대한 간소하게 풀어 써보았는데 영화를 못 본 사람은 도대체 이게 어떤 이야기로 꿰여 있는지 짐작하기 힘들고 한편 짜증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 인물들이 서로 자연스러운 관계를 나누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도 않고, ‘인기척 좀 하고 다녀라!’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음흉하게 움직이는 카메라도 왠지 신경 쓰인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어떤 의도를 가진 연출자의 계획에 따라 특별하게 세팅이 된 세계와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을 짐작하는 데 필요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단서는 호진에게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야!” 소리치는 띨빵한 그 선생이 실은 ‘귀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죽었던 사람이기에, 영화 속에서는 (자기와 사귀었던 여학생) 호진의 플래시백 형태로만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항상 (상단의 스틸 사진에서처럼) 창고에서 저런 괴상한 포즈로 만나는데, 저긴 아마도 선생 영호가 자살한 곳 같다. 또, 그가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현재의 타임라인과 교묘히 섞어 놓은 데다 그가 목을 매 자살하는 장면을 편집에서 뺐거나 아예 찍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감상으론 눈치채기 힘든 단서이다. 즉, 영화의 시작부터 ‘...가 없는 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억지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일기장 나레이션을 하는 이 조숙한 여학생은 영화 내내 죽은 선생의 유령과 대화하며 (그렇게 해서) 내가 그를 자살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자신 또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성복의 시집을 빌려주면서 ‘죽을 수 있을 때 죽어야지 안 그러면 타이밍 놓쳐서 못 죽는다’는 괴상한 조언을 해주는 문학선생은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저승사자일 것이고.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학교의 선생들과 학생들이지만, 이들 모두 전염병에 걸린 것 마냥 죽음을 생각하고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다 누군가는 시도를 하고 누군가는 성공한다. 서로가 죽음의 원인과 동기를 제공하고, 문학선생은 죽음의 사신처럼 이들의 관계를 관조한다. 이 학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살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들 강박적으로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다들 간신히 무언가를 붙들고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사소한 계기로 툭 끊어졌을 때 이들은 유령이 되거나 창고에서 목맨 시체로 발견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호진과 용진, 지수, 세 아이들이 기름 웅덩이 앞에 서서 호진의 일기장을 불태우고 돌아서는 그 장면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닫는 엔딩으로써 연출자가 의도한 만큼의 시적 쾌감을 준다거나, 영화적인 해소로 이어진다거나,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지 속 시원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거나... 등등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선생들처럼 창고에서 목을 매 끔찍하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다행스러웠다. 나의 그런 예측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는 단서는 시나리오상에서 저승사자 문학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발견된다. #29. 비 개인 거리 / 김밥천국 / 초저녁 학교 앞에 위치한 김밥천국 안. 비를 맞았는지 흠뻑 젖어 미역처럼 내려온 머리에 김 서린 안경을 쓴 문학선생, 지갑을 들고 우동 포장을 기다리고 있다. 쇼윈도 앞으로 푸른색 노트를 든 지수가 가방을 매고 혼자 걸어간다. 그때 가게 안에서 우동포장을 기다리고 있는 문학선생을 발견하는 지수. 멈춰서 쇼윈도 밖에서 문학선생을 바라본다. 잠시 후 문학선생이 쇼윈도 밖의 지수를 발견한다. 손을 흔들어 환하게 웃는 문학선생.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모든 등장인물이 강박적으로 죽음의 사이클을 돌리는, 이 괴상한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자 심장은 어쩌면 이 문학선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인물들이 서로를 쫓아다니며 붙들고 징징대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애네들은 하루 종일 왜 이러는 걸까 싶다가도 결국 이 문학선생이 김밥천국에서 우동 포장을 기다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밀린 체증이 확 풀리는 것 같더라니까. 영화에서는 그가 동네 책방에서 이성복의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을 꺼내 드는 장면으로 바뀌었던데, 또 다른 수수께끼를 남기는 것 같은 이런 두루뭉술한 결정은 사실상 패착이라고 본다. 인물들이 웃는 것도 이상하고 우는 것도 안 어울리는 이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저승사자인 줄 알았던 죽음의 천사 문학선생이 김밥천국의 우동을 먹으려고 추레한 몰골로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 그 장면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야말로 정확하고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바뀐 결말이 좀 아쉬웠다. 정리하자면, 틈이 맞지 않는 깨진 거울 파편들을 모아서 그럴듯해 보이게 붙여놓은 듯한 지금의 영화도 나름 재미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원래 되려고 했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더 훔쳐보았던 사람으로서 < 어느 날 갑자기 >는 이런 식으로 쓸데없이 긴 잡담을 늘어놓게 만드는 음흉하고 비밀스런 재미가 숨어있는 영화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