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를 날리며
- 감독
- 조용규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윤희균, 조수빈, 김영일, 맹봉학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박흥식 | 원안: 이은영 황혜영 | 각본: 박흥식 최은영(최반야) 장학교 | 각색: 신현정 김유진 장명숙(장명우) | 제작: 차승재 | 촬영: 조용규 | 미술: 박일현 | 음악: 조성우 CAST 정원주: 전도연 | 김봉수: 설경구 | 홍탁: 서태화 | 태란: 진희경 페데리코 펠리니의 < 나는 기억한다 Amarcord >(1974)를 보면 한 남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 외칩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기억한다>에선 처절한 외침이었지만, 박흥식 감독의 첫 영화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평범한 남녀의 다소 밋밋하면서도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평범할 수 없는 건, 전도연과 설경구라는, 당시 가장 ‘핫’했던 두 배우의 만남이었기 때문이죠. 2000년 가을에 공개된 현장은 봉수(설경구)와 원주(전도연)이 민방위 훈련으로 텅 빈 거리를 뛰는 장면입니다. 은행원인 봉수는 빨리 직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 은행 건너편 보습학원 선생님인 원주를 우연히 만난 봉수는, 갑자기 원주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합니다. 촬영은 수원시 정자동의 어느 도로에서 이뤄졌는데요, 촬영을 통해 교통 통제가 이뤄졌습니다. 평소에 안면은 있지만 결정적 모멘트는 없었던 두 사람에게, 어쩌면 갑작스러운 ‘손 잡고 달리기’는 어떤 사건일 수도 있었겠죠. 혹은 제대로 된 연애는 한 번도 못 해본 봉수가, 나름의 스타일로 프러포즈를 한 것일 수도 있고요. 촬영을 위한 교통 통제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두 배우는 100미터 정도 되는 동선을 끊임없이 뛰고 또 뛰어야 했습니다. 대여섯 번은 뛰었던 것 같은데요, 전도연은 굽 있는 신발을 신고도 온 힘을 다해 도로를 질주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선 박흥식 감독이 사인을 줍니다. “둘에 뛰면 돼. 하나, 둘!” 박흥식 감독과 전도연의 인연은 이 영화에서 시작되어 < 인어공주 >(2004) < 협녀, 칼의 기억 >(2015)로 이어집니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이며 박광수 감독의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허진호 감독의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연출부를 거친 박흥식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100여 명의 결혼 적령기 남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결혼에 관해 한때 굉장히 깊이 생각했었다. 주변에서 연애나 결혼한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사실 한결같이 재미가 없다. 그래도 누구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게 된다. 그런 감정의 달라짐을 포착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느낌의 디테일’에 대한 영화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트랙이나 크레인 같은 장비가 동원되었습니다. 지난 번 < 품행제로 >(조근식, 2002) 포스팅 때 언급했던 조용규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에게 시나리오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황에서, 박흥식 감독을 직접 만난 설경구는 감독에게 느꼈던 좋은 느낌만으로 시나리오도 안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서른여섯 살인가 되는 감독이 꼭 미소년 같았죠. 영화가 그대로 나올 것 같았어요.” 그리고 현장에선 최소한의 정보만 듣고 찍었다고 하네요. “그냥 그대로 찍었어요. 시나리오에 없는 설정이라도 웃음이 나오면 웃고, 얼굴이 가려우면 긁어가면서.” 강렬했던 < 해피엔드 >( 정지우 , 1999) 이후 9개월 정도 쉬면서 전도연은 우울증을 겪었다고 하네요. 이때 만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는 너무나 재미있게 술술 읽혔고, 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원주는 실제로 제 모습과 많이 비슷해요. 전 영화 밖에서는 정말 평범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전도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힘들진 않았어요.” 그리고 상대역인 설경구에 대해선 “< 박하사탕 >(이창동. 2000) 보면서 솔직히 무섭고 소름이 끼쳤는데, 알고 보니 소박하고 털털하고 배려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영화 이후 17년 만에 개봉 예정작인 < 생일 >( 이종언 , 2018)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취재진과 감독 배우 사이의 간담회는, 도로 한 구석에서 이뤄졌습니다. “액션!” 소리에 뛰기 시작하고 “컷!” 사인에 멈추기를 반복하는 두 배우. 그들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겉으로는 밝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지만 혼자 있을 땐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재미있지만 씁쓸하기도 한 영화. 그리고 ‘자연인 설경구’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영화.”(설경구)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에게도 이중적인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외향적인 면도 있고, 내성적인 면도 있고, 그런 입체적인 면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 만드는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박흥식 감독은 두 배우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캐스팅 할 때 다른 배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전도연과 설경구는 스타이긴 하지만 배우라는 레테르만 빼면 보통 사람 같은 면이 가장 많은 배우들이다. 이 영화에선 무엇보다 배우들의 힘이 컸다. 난 디테일에만 신경 썼고. 슛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의 자연스런 말투와 행동들을 관찰하면서 캐릭터에 반영해나갔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2002년 | KM컬쳐 감독: 조근식 | 원안: 조근식 이지형 | 각본: 이해준 이해영 이지형 정진완 | 제작: 박무승 | 촬영: 조용규 | 미술: 이철호 | 음악: 노영래 CAST 중필: 류승범 | 나영: 공효진 | 민희: 임은경 | 상만: 김광일 | 수동: 봉태규 | 영만: 최우혁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영화계 전반이 급격한 변화를 겪기 시작합니다. 연기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류승범은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배우입니다. 연기를 배운 적 없는, 야생 그대로의 배우였던 류승범은 형인 류승완 감독의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0)로 데뷔해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급성장했습니다. 이때 만난 영화가 바로 < 품행제로 >(2002)였고, 이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할 때 아직까지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촬영 공개는 2002년 8월에 이뤄졌습니다. 공개된 장면은 그 롤러 스케이트장 신. 나영(공효진)과 민희(임은경)가, 박혜성의 ‘경아’와 김승진의 ‘스잔’을 놓고 대결하던, 그리고 중필(류승범)이 그 사이에 끼어 있던, 그 장면이죠. 1980년대 롤러 스케이트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던 제작진은 광주 송정리에 있는 ‘송정 롤러 스케이트장’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천장에 만국기를 달고, 세트로 실내 매점을 만들었습니다. 매점의 떡볶이와 어묵 그리고 DJ 부스입니다. 그 시절 ‘롤러장’을 다녔던 분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죠. 정란여고 ‘오공주파’의 ‘짱’인 나영과 최고의 ‘범생이’인 민희는,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스타일 자체가 다릅니다. 나영이는 공중 회전 점프나 뒤로 타기 그리고 기차 놀이 등을 하며 롤러장을 휘젓습니다. 반면 민희는 친구 손을 잡고 얌전하게 즐기죠. 공효진은 공중 회전 점프 장면을 위해 와이어에 매달려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스잔’이었습니다. 민희가 신청한 김승진의 ‘스잔’이 흐르자, ‘경아’의 박혜성 팬인 나영의 패거리는 DJ 부스로 가 노래를 바꿔버립니다. 그러자 민희는 감히(!) ‘짱’인 나영에게 따지고, 일촉즉발의 상황에 마침 롤러장에 왔던 중필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묘하게 형성되는 삼각관계. 그렇다면 중필의 선택은? 음… 결국 중필은 ‘스잔’을 선택하게 됩니다. 나영과 ‘오공주파’의 모습입니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배우가 낯이 익는데요, 바로 < 추격자 >( 나홍진 , 2008)의 오 형사로 유명한 박효주 입니다. 류승범은 <품행제로>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중필이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죠. 여태껏 제가 연기한 배역 중 저와 제일 많이 닮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제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죠. 그리고 중필은 사실은 굉장히 약한 인물이에요.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정면으로 대면하기보다는 피해가려는 측면이 강하죠. 저도 사실은 그렇거든요.” 그러면서 “도심 속에 떠 있는 섬 같은 아이”라는 시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 민규동 김태용 , 1999)로 데뷔한 공효진은 이 시기 한참 떠오르는 스타였습니다. 특히 2002년에 출연한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결정적이었고, <품행제로>는 그 상승세를 이어가는 작품이었습니다. 거친 여고생 장나영 역할을 맡았지만, 정작 학창 시절엔 “소심하고 겁도 많고,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하는” 소녀였다고 하네요. 어느 이동통신 광고 모델로 급부상했지만 첫 영화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장선우 , 2002)가 크게 아쉬운 평가를 받았던 임은경에게 <품행제로>는 의미 깊은 작품입니다. 1984년생인 임은경에게 그 시절의 십대를 연기하는 건 쉽지 않을 일이었겠지만, 정작 힘들었던 건 중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연애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민희 역을 준비하며 시를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세 배우. 그리고 당시 류승범과 공효진은 실제 연인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아카데미 출신인 조근식 감독은 장선우 감독의 < 거짓말 >(2000) 연출부를 거쳐 <품행제로>로 데뷔했습니다. < 나쁜 영화 >(장선우, 1997)의 카메라맨 중 한 명이었던 조용규 촬영감독은 이후 < 미술관 옆 동물원 >( 이정향 , 1998) < 플란다스의 개 >( 봉준호 , 2000)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2000)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박흥식 , 2000) 그리고 <품행제로>까지 데뷔 감독들의 든든한 카메라가 됩니다. 이후 < 효자동 이발사 >( 임찬상 , 2004) < 가족의 탄생 >(김태용, 2006) <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영 이해준, 2006) < 밀양 >( 이창동 , 2006) 등에서 작업했습니다. 조근식 감독과 류승범 공효진이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류승범은 감독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품행제로>를 선택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데요, 조근식 감독은 시나리오가 수정될 때마다 류승범을 찾아와 중필 역을 맡아달라고 설득했다고 하네요. “몸은 지쳐가도 의지는 줄어들지 않는 감독의 간절함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류승범의 말입니다. 영화 속에선 연적이자 ‘짱 VS 모범생’의 관계지만, 공효진과 임은경은 카메라 밖에선 친자매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