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주년 다큐멘터리 - 호주
- 감독
- 조지 밀러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조지 밀러
일단 < 클로즈 유어 아이즈 >(빅토르 에리세, 2023)를 골랐다. 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 룸 넥스트 도어 >(2024) 사이에서 몇 초 망설였는데 그래도 빅토르 에리세의 신작을 넣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에리세의 영화를 내 리스트에 넣을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올까. 어떤 때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스페인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파블로 베르헤르의 < 로봇 드림 >(2023)인데, 아직 쌍둥이 빌딩이 건재했던 1980년대 뉴욕을 기가 막히게 재현한 애니메이션이다. 거기에 절절한 로봇과 개가 주인공인 멜로드라마를 넣어서. 오로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한 마법이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오시야마 키요타카의 < 룩백 >(2024)이다. 창작과 창작자에 대해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짧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예술가 영화다. 예술가 영화도 두 편이 더 있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 다른 하나는 모나 아샤쉐의 < 리틀 걸 블루 >(2023)로,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여러분이 프랑스어권 유성애자 여성작가의 피학적인 오토 픽션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멀리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그런다면 여러분은 마리옹 코티아르가 펼친 최고의 명연 하나를 놓치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냐고? 그렇긴 한데 그와 상관없이 감독은 코티아르에게 자기 어머니 역을 시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해가 간다. 모녀 이야기는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조지 밀러, 2024)의 도입부를 여는 중요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꼭 필요한 무언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2015)가 그랬던 것처럼 끝내주게 재미있는 액션물이고, 이 영화의 실망스러운 흥행성적은 관객들이 뭘 모를 때가 많다는 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긴 관객들은 개봉 당시 존 카펜터의 < 괴물 >(1982)도 대충 넘겼다. 그냥 그렇다고. 로즈 글래스의 <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3)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는 필름 누아르로, 몸과 섹스와 퀴어성에 대해 정말 신나고 뻔뻔스러운 장면들을 엮어대는 오락물이다. 아, 그리고 재미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하는 말인데, 션 베이커의 < 아노라 >(2024)와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 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이 주는 재미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성노동자가 연결된 계급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 인디 영화와 마흐사 아미니 시위를 다룬 사회파 이란 영화가 이렇게 갑자기 대중적으로 (심지어 거의 고전 할리우드스럽게) 재미있어지면 관객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과는 별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주는 즐거움을 주제의 무게나 구질구질함을 두려워하며 버릴 필요는 없다. 한국영화를 두 편 골랐다. 더 고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방에 종말론적 예언이 나팔처럼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올해 한국영화를 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즐거웠다. 그런 경험을 제공해준 영화가 주류영화가 아니었을 뿐이다. 올해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퀴어, 특히 여성 퀴어 영화들의 공습으로, 어떤 때는 네 편의 영화가 동시에 극장에 걸려 다들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당사자성 넘치는 사실주의극인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부터 올해 가장 뻔뻔스러운 길티 플레저인 < 히든 페이스 >(김대우, 2024)까지 다양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드라마 < 정년이 >(2024)의 비겁함이 더 짜증난다. 오정민 의 < 장손 >(2023)은 거의 임권택 과 이두용 의 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러면 당연히 올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텐데, 아니다. 이 영화도 ‘재미있다.’ 거의 1세기에 가까운 한반도의 역사를 가족사에 녹여낸 재주, 대한민국 가부장제에 대한 냉정한 고찰만큼이나 신기한 건 이런 주제로 신선한 재미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 열 편 중 아홉 편은 호오도를 떠나 대중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고른 영화가 남궁선 의 < 힘을 낼 시간 >(2024)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유로 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다섯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팝 아이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다. 수없이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전보를 쳐라’라는 옛 할리우드의 격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놓고 뻔뻔스럽게 교훈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들은 많다. 전보로 전달한 텍스트의 다발과, 주제에 공감하는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결합한 결과물의 차이는 엄청나다. 당연히 ’공익영화’는 비하 단어가 될 수 없다. 다른 모든 영화가 그렇듯 좋은 공익영화와 나쁜 공익영화 그리고 그 사이에 걸쳐진 광대한 스펙트럼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힘을 낼 시간>은 여러모로 일단 효율적인 공익영화다.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러닝타임 안에서, 선정적인 실제 사건의 구체적인 재현 없이 한국 연예계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얼마나 되는가.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취인데, <힘을 낼 시간>은 이 모든 정보와 메시지를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공익영화로서의 기능은 영화의 매력에 어떤 핸디캡도 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이 영화의 다음 성취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케이팝이라는 장르에 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초창기의 시도는 김기영 (동명이인이다)의 < 진실게임 >(2000)이다. 아마 더 이전 작품도 있을 거고 사실 여기서 정확한 경계선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래도 20년은 더 됐다. 하지만 성공작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들 주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들은 < 내일부터 우리는 >(윤성호, 2017), < 아이돌 권한대행 >(윤성호, 박현진, 2017), <탑 매니지먼트>(2022)로 이어지는 윤성호 의 시리즈들이다. 만드는 사람들의 아이돌 문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개성적인 유머 속에서 조화를 이룬 작품들인데 이 작품들이 아이돌 스토리텔링의 주류가 된 적은 없다. 아쉽게도. 나머지는 대부분 성공보다는 실패로 기억된다. 그 중 가장 처참한 실패는 아무래도 드라마 <청춘시대 2>(2017)였던 거 같은데. 일단 이 시리즈는 왜 아이돌 이야기를 왜 굳이 거기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여러모로 최악의 오타쿠적 선택이었다. <힘을 낼 시간>은 소위 ’망돌‘이라는 소재를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청춘시대 2>와 반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장점이다. 일단 영화는 왜 이 영화가 ‘망돌들’의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명쾌하고 당연한 이유를 갖고 있다. 주인공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 주인공 중 망돌은 ‘파이브 갓 차일드‘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였던 태희( 현우석 )뿐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 ‘러브앤리즈’의 멤버 수민( 최성은 )과 사랑(하서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제법 히트한 노래도 한 편 이상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래보다는 이 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더 먼저 떠올리고 제대로 정산을 못 받고 은퇴한 건 태희와 다를 게 없다. 하여간 이 셋은 전재산 98만원을 챙겨들고 제주도 여행을 오는데, 그만 첫날에 한 명이 사고를 내 돈 대부분을 날려버린다. 이 정도면 너무 어이가 없어 슬슬 웃음이 나오는 가학적인 블랙 코미디를 기대해 볼 만도 한 상황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얼마 전에 < 십개월의 미래 >(2020)를 만든 남궁선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평화롭고 진지한 길을 간다. 세 사람은 귤 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자기들을 알아보는 케이팝 팬도 만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따분하게 들린다면 미안하지만, <힘을 낼 시간>은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치유의 과정에 대한 영화이고 여기에 진지하다. 이 영화에서 치유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게 쓰이지 않는다. <힘을 낼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의미로’ 머글스럽다는 것이다. 이 영화엔 다른 케이팝 아이돌 관련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되는 징그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케이팝 아이돌의 친숙한 이미지를 따르고 그걸 페티시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부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시달리다 버려진 젊은 노동자들을 그린다. 이 영화가 정공 공익영화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 무지 재미없게 들리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들은 대부분 대중적 재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그건 일단 이 진지함의 정공법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엔 더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오타쿠적인 선택 대부분을 피해가고 있고 일부러 아이돌 캐스팅도 하지 않은 영화인데도 여전히 아이돌스러운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 장면 하나 나오지 않고 ‘가상의 아이돌 그룹 만들기 게임’에 집착하지 않으며 골수팬을 등장시키지 않는데도 영화는 부서진 홀로그램 조각처럼 케이팝 그룹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노력한 팬이라면 러브앤리즈 팬픽을 쓰는 게 가능할 정도다. 영화의 의도는 전혀 아니겠지만. <힘을 낼 시간>은 최선 또는 최악의 타이밍에 개봉한다.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정치 상황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었으니 개봉하는 영화에겐 타격이 크다. 하지만 뉴진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돌의 노동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바로 그 정치적 상황 속에서 수많은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국회 앞에서 휘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 이 영화에 맞는 시기가 있을까. 듀나(영화평론가) l SF 작가이고 영화 컬럼니스트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가능한 꿈의 공간들』(2015),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2022),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2019),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2020) 등이 있다.
영화와 자동차에 관해 글을 써보겠다고 달려들긴 했는데 우습게도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다소 황당한 무면허(?) 칼럼 연재를 감행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방에 뒹굴고 있는 수백 대의 자동차 모형 장난감 때문이다. < 고스트버스터즈 > < 배트맨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을 나이 들어 다시 보면서 그 영화의 감동을 소유(?)할 수 있는 캐릭터 피규어나 장난감 구매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모형 자동차 역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영화 굿즈의 품목 중 하나였다. ‘배트모빌’이나 ‘엑토-1’, ‘범블비’ 같은 가상의 자동차들을 보며 모형을 구매할 생각만 했지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아무튼 < 007 >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몰던 ‘애스턴 마틴 DB-5’나 < 분노의 질주 > 시리즈에 등장하는 브라이언(폴 워커)의 분신 같은 ‘토요타 수프라’ 등의 실제 자동차 모형을 구매하려면 적어도 제조사와 모델명은 알고 있어야 했다. 나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상의 캐릭터 자동차를 제외하고 영화에 등장한 수많은 실제 자동차 가운데 가장 먼저 장난감 모형을 찾아보기 시작한 모델은 1968년 작 < 블리트 >의 포드 머스탱이다. 피터 예이츠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이 영화를 보자마자 배우뿐만 아니라 그가 몰았던 자동차에도 푹 빠져들었다. 해외 쇼핑몰을 뒤져 장난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 차가 영화 제작연도 즈음에 포드사에서 만든 머스탱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1967~8년형 머스탱은 뒷좌석 천장이 짧고 경사져 있는 ‘쿠페’식인데 전체적으로는 날렵한 디자인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묵직하고 위협적으로 생겼다. 차체의 전면은 보닛과 범퍼에 잘못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신체 일부분이 뜯겨져 나갈 것 같은 위압감이 흐른다. ‘패스트백’ 형태의 뒤꽁무니에서 부다다다 울리는 시끄러운 배기음은 마치 제멋대로 사건을 추적하는 영화 속 주인공 형사 프랭크 블리트(스티브 맥퀸)의 성격이나 태도와 닮아 보였다. 혹시 류승완 감독의 영화 < 베테랑 > 개봉 당시 일부 관객들이 조태오( 유아인 )가 ‘포드 머스탱 GT’라는 차를 모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던 걸 기억하시는가? 영화의 설정상 조태오 정도의 재력가라면 초고가의 스포츠카 ‘맥라렌’이나 ‘부가티’ 정도의 차는 타고 다닐 것 같은데 왜 상대적으로 저렴한 머스탱을 썼는가? 라는 물음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이에 두 가지 뜻이 있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예산 문제 때문에 비싼 차를 섭외할 수 없었던 탓이 크고, 두 번째는 피터 예이츠 감독의 <블리트>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극 중 스티브 맥퀸이 몰았던 자동차와 같은 차로 선택하고 싶었다고. 류승완 감독다운 선택이었다. 그의 선택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또 이야기하도록 하자. < 블리트 >의 1968년형 포드 머스탱, 스티브 맥퀸 피터 예이츠 감독의 < 블리트 >는 카체이스 영화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영화다. 카체이스가 이 영화의 주요 소재는 아니지만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카체이스 촬영과 편집, 거기에 스피드광이었던 스티브 맥퀸이 만나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요즘 관객들은 < 분노의 질주 > 시리즈 같은 영화에 나올법한 멋진 할리우드식 카체이스 장면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들의 카체이스 장면은 화려하긴 하지만 <블리트>처럼 거칠고 과감한 박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 제이슨 본 >(2016)에서 본(맷 데이먼)을 뒤쫓던 킬러(뱅상 카셀)가 탱크에 가까운 거대한 차량을 이끌고 라스베이거스 도로를 질주하며 엄청난 양의 차량을 산산 조각내는 장면이 있다. 엄청난 물량 공세에 감탄이 나올 법도 한데 별 맥락도 없이 액션에 힘을 주니 아무런 박력이 느껴지지 않은 실패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단지 많은 수의 차가 부서지는 것만이 카체이스 액션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카체이스 장면의 생명은 화려함보다는 박력이고 그 박력의 대부분은 어떤 차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블리트>는 카체이스 영화, 더 깊게는 머슬카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머슬카는 8기통(VB) 엔진과 같은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자동차를 일컫는 말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유행하던 경주에 적합한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 모델로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의 유럽형 슈퍼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머슬카는 가격 면에서 대중적인 차는 아니었다. 당시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사의 부사장이었던 아이아코카는 1960년대 초에 미국 자동차 시장 경제를 주도하던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해서 ‘포드 팔콘’이란 차를 새로운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그렇게 당시 급변했던 소비자 구미에 맞는 차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는데 그 차가 바로 포드 머스탱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했던 전투기 ‘P-51 머스탱’의 이름과 야생마라는 의미가 담긴 로고를 박고 등장한 포드 머스탱은 1964년 첫 모델을 본격적으로 출시한다. 웬만한 자동차 애호가는 다 알만한 개념이겠지만, 포니카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머슬카 즉 작은 차체에도 고성능 배기량을 가진 차를 뜻하는데 포드 머스탱은 시장 변화를 제대로 내다본 아이아코카가 만들어낸 작은 머슬카, 포니카였다. 이른바 ‘포니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블리트 >에 등장하는 1968년형 포드 머스탱은 여러 머스탱 시리즈 중에서 성능보다는 디자인을 중요시했던 머스탱 라인의 초창기 1세대 모델이다. 피터 예이츠 감독은 머스탱의 매력을 영화에 담기 위해서 10분이 넘는 카체이스 장면에 엔진과 타이어 소리 외에는 어떤 음악도 삽입하지 않았다. 당시로써는 무모한 카체이싱 장면에 도전한 것인데 일단 이 장면 자체가 대본에도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대본의 도시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였으나 갑자기 배경이 샌프란시스코로 바뀌면서 주택가 언덕 추격 장면을 찍을 여건이 마련된 것. 예이츠 감독은 또 스티브 맥퀸이 평소 ‘과속 촬영(운전)’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촬영을 밀어붙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티브 맥퀸의 모든 운전 장면은 배우 자신이 직접 운전했다. 예이츠 감독에 따르면 그는 예전부터 운전할 때는 대역을 쓰지 않는다는 연기 철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참고로 극 중 블리트 형사(스티브 맥퀸)의 머스탱과 경쟁하듯 질주하다 전소되고 마는 ‘닷지 차저’를 운전한 배우는 빌 힉맨이란 사람인데 그는 당시 카체이스 전문 스턴트맨이기도 했다. 스티브 맥퀸과 함께 빌 힉맨의 멋진 스턴트 주행이 없었다면 <블리트>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 블리트 >의 카체이싱 당시에는 또 이런 카체이싱 촬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장소 대여 관계로 2주라는 짧은 촬영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예이츠 감독은 이 기간 안에 10여 분 넘는 장면을 모두 찍어야 했기 때문에 두 대의 카메라를 뻗쳐놓고 찍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때 현장에서 맥퀸이 탄 머스탱이 언덕 위에서 질주하며 내려오다가 사거리 코너에 설치해놓은 카메라와 부딪쳐 카메라가 박살이 나기도 했는데 해당 장면은 영화에 그대로 삽입됐다. 카메라와 부딪친 이후에 이어서 멈춘 차를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맥퀸이 후진을 하면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후방을 살핀다. 예이츠 감독에 따르면 맥퀸이 현장에서 촬영을 구경하는 일반인들에게 차를 운전하는 배우가 자신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일부러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라는 거다. 스티브 맥퀸의 여유롭고 허세 섞인 열연에 힘입어 포드 머스탱은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서 카체이싱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는 데 일조했다. 영화 매체를 통해 미디어 마케팅의 재미를 톡톡히 보게 된 포드사는 바로 이어서 애스턴 마틴 DB5를 상징적으로 몰던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에게도 포드 머스탱을 안겨준다. 1971년 작 <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는 악당 블로펠드(찰스 그레이)가 다이아몬드로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가 잠입해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이야기다. 제임스 본드는 영화의 주요 배경인 라스베이거스에서 본드걸 티파니(질 세인트 존)가 몰던 차를 대신 몰고 다니는데 이 차가 바로 새빨간 색상의 ‘머스탱 마하1’이다. 이 모델은 기존 68년형 머스탱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모델이다. 극 중 본드가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옆으로 세워서는 두 바퀴로 달리는 곡예를 선사하는 명장면도 탄생시켰다.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 한국 최고의 스타였던 배우 신성일은 국내 수입차 1세대인데 그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리무진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릴 때 탔던 수입차가 인디언 레드 컬러의 ‘머스탱 마하1’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식스티 세컨드>의 쉘비 GT 500 1960년대 후반 머스탱을 만들어 1년 사이에 60만대가 넘는 차를 팔아 치웠던 포드사는 당시 1세대 모델보다 성능이 더 좋은 스포츠카 형태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유명 레이서였던 캐럴 쉘비와 협업해서 제품 개발을 진행했다. 이때 1세대 모델에는 없던 8기통(V8) 엔진을 튜닝해서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쉘비 GT350’, ‘코브라 G.T.500’ 등의 모델이 만들어졌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스포츠카 절도단 이야기를 다룬 액션 영화 < 식스티 세컨드 >는 전설적인 머슬카 ‘쉘비 GT 500’을 스포츠카의 끝판왕처럼 묘사한다. 영화 내내 유럽산 슈퍼카들이 쏟아지듯 등장하지만 주인공인 절도단들은 ‘쉘비 GT 500’을 훔치는 것을 자신들의 최종 목표라고 말한다. 미국산 머슬카의 아름다움 혹은 위대함을 널리 알릴 목적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다고 해야 할까. 조지 밀러 감독의 1973년 작 < 매드맥스 >는 또 어떤가. 주인공 맥스(멜 깁슨)의 차는 머슬카의 상징과도 같은 고성능을 탑재한 ‘8기통(V8) 인터셉터’로, 1970년대 초반에 개발된 ‘팔콘 XB GT 쿠페 1973‘가 실제 모델이다. 황량한 허허벌판 대륙을 질주하며 횡단하기에 더할 나의 없이 좋은 성능을 지닌 차들이다. 또 1969년에는 포드사가 머스탱을 업그레이드한 ‘보스’라는 제품을 출시해 모터스포츠 계에서 활약하는데 이 모델은 ‘보스 302’, ‘보스 429’ 등의 모델로 나뉘어 제작된다. 특히 보스 429 엔진은 표기된 출력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유명해졌다. 왠지 이름이 낯익은 모델이라고?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 존윅 >에서 동네 건달들의 자존심에 금을 가게 해준 차가 바로 존 윅이 애지중지하던 1969년형 ‘머스탱 보스 429’다. < 존윅 >의 1969년형 머스탱 보스 429 포드 머스탱으로 대표되는 미국산 포니카는 천둥소리 같은 배기음을 쏟아내는 8기통의 박력이 다른 모든 자질구레한 성능의 장단점을 잊게 만든다. 사실 이 머스탱은 한국 실정에 비추어 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차다. 가장 현실적으로는 엄청난 연비를 자랑하는 통에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베테랑 >의 조태오는 왜 포드 머스탱을 몰았을까? 머슬카 특유의 가오 때문이 아니었을까. 명동 한복판 8차선 도로를 꽉 막은 차들 사이로 육중한 차체를 들이밀며 홍해 가르듯 부수고 지나갈 수 있는 힘 좋은 자동차로 포드 머스탱만 한 차가 또 있을까? 설정상 조태오가 벤츠나 아우디를 몰았다면 재벌의 리얼리티 정도는 살려줬을지라도 후반부 명동 카체이스 장면에서의 머스탱 전용 박력은 사라져 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 베테랑 >의 포드 머스탱 GT, 조태오 최근에 포드 머스탱과 관련한 흥미로운 뉴스가 공개됐다. 얼마 전 포드사가 전 세계 기자들을 말리부 해안가로 불러모아 2018년형 신모델의 시승식을 가졌는데 이때 많은 기자들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당황했다고 한다. 8기통 5.0L의 가솔린 엔진에 회전 한계를 7500rpm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엔진 성능 때문이 아니라 머스탱 역사상 최초로 반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고. 포드사는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SBS), 차선이탈 경고시스템(LDWS),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LKAS) 등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을 중시한 모델임을 강조했다. 물론 세계적인 흐름을 따른 당연한 결과이자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지만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머스탱 정신’과는 조금 다른 행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소식은 지구에서 사라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던 < 블리트 >의 실제 촬영모델 머스탱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블리트>에서 스티브 맥퀸이 직접 몰았던 차량 소품 머스탱은 총 2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대는 개인 소유 차량이고, 나머지 한 대는 자취를 감춘 채 사라져버려 찾을 수 없었다. 스티브 맥퀸이 죽기 직전까지 평생 동안 이 차를 수소문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연은 자동차 애호가 사이에서 유명하다. 멕시코에서 발견된 < 블리트 >의 머스탱(기사 보기) 그런데 최근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주의 어느 폐차장에서 자동차 커스텀이나 복구를 취미로 즐기던 두 남자가 녹슬어 폐차된 머스탱 잔해를 찾아냈다. 그들은 이 잔해를 가지고 < 식스티 세컨드 >의 쉘비 GT 500으로 커스텀 제작을 하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들이 남아있던 원본 부품을 포드사에 문의한 결과, 이 망가진 차의 잔해가 실제 < 블리트 > 촬영에 썼던 머스탱임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식스티 세컨드> 대신 <블리트>에 등장했던 원래의 모습 그대로 차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최신식 머스탱 모델의 변화 소식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음을 몸소 보여준 유물 머스탱의 발굴 소식이 기가 막히게 대비된다. 이제 포드 머스탱은 8기통 엔진을 마음껏 돌려도 석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던 호황기의 유물로서 DVD와 장난감 모형 속에 영원히 갇혀 버렸지만 그 끝내주는 ‘가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장난감을 사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돈이 없어 못 사지, 가오가 없어 못 사나?”
2015년 KMDb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는 제목 가나다 순서대로 꼽았다. 보고 나서 잠을 설쳤지만 명단에 넣지 못한 영화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고, 보고 싶었지만 놓친 작품들이 아쉽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했던 두 여성 감독의 신작을 보지 못했다. 쿠웨이트 태생 팔레스타인계 작가 바스마 알샤리프의 작품을 기회가 닿는 대로 챙겨보았지만, 신작 <깊은 잠Deep Sleep>(2014) 상영을 놓쳤다. 그런가 하면 샹탈 아커만의 < 노 홈 무비No Home Movie >(2015)는 학수고대했지만 국내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 뉴스 프롬 홈News from Home >(1977) 이나 <레터스 홈Letters Home>(1986) 등을 잊을 수 없기에, 그녀의 영화는 늘 ‘집에서 온 소식’과 같았다. 한데, 최근작이 유작이 되고 그 제목이 ‘집이 없는 영화’라니.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키노」에 기고한 인터뷰를 위해 2003년에 방문했던 파리 서쪽 끝 그녀의 작은 집을 기억하며, 새해에는 <노 홈 무비>를 꼭 보려 한다. 2015년 영화관에서 가장 황홀했던 순간은 오쿠야마 준이치의 < 휴먼 플릭커 >를 본 날이었다. 1975년 야스다 홀에서 초연했다는 이 작품은, 각각 뜬 눈과 감은 눈 이미지를 스크린에 투사하는 두 대의 영사기 앞에 양손에 부채를 든 감독이 서서 왼쪽과 오른쪽의 영사기 렌즈를 번갈아 가리며 영화의 광학적 원리를 일깨우는 필름 퍼포먼스다. 깜빡이는 눈이 영사되고 있는 스크린 위에서 ‘인간 셔터’가 된 오쿠야마 감독의 그림자가 나비처럼 춤추는 광경을 체험하는 찰나, 빛과 그림자가 직조하는 이미지의 비의에 가닿는 듯했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는 많은 평자들이 다룬 바 있다. 그중 사막에 숨어있는 샘 같은 영화의 어떤 기원source을 더듬어 찾는 유운성 평론가의 글(‘사막은 보이지 않는다: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인문예술잡지 F」 18호)을 읽으시길 권한다. 고전과 현대 영화의 아름다움이 한 몸에 거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 스파이 브릿지 >도 적잖이 놀라웠다. 이러니 올해도 할리우드에 경배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스위스 연방이 주는 영화상을 받게 된 장 뤽 고다르는, 수상 소감을 대신하여 만든 단편 < 인사말: 스위스상(賞) / 나의 사의(謝意) / 생사를 막론하고 >(mubi.com에서 불어·영역 대본과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다.)에서 스위스 영화는 필름일 뿐 시네마가 없고, 미국 영화는 시네마라고 말한다(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다니엘 슈미트, 알랭 타네 등이 버티는 스위스 영화의 무게를 상기하노라면, 이 질문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시상식 불참 사유로 건강 핑계를 대면서도 <오른쪽에 주의하라Soigne ta droite>(1987)에서 필름 통을 안고 바닥을 굴렀던 자신의 연기를 온몸을 던져 재연하는 노 거장의 슬랩스틱 코미디는, 한편으로 스위스 역사가 흘린 피를 머금고 있다. 또 하나의 ‘만년의 양식’은, 고다르보다 세 살 적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근작 < 코뮤니스텐 >이다. 지금은 지구 위에서 사라진 독일민주공화국 국가였던 노래,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하고 요하네스 로베르트 베허가 가사를 쓴 ‘폐허로부터 부활한Auferstanden aus Ruinen’이 흐르는 검은 화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두 독일 공산주의자가 나치에게 고문을 당하고 귀향하는 1934년을 담은 앙드레 말로 작 「모멸의 시간Le temps du mepris」의 일부를 2014년에 연출한 장면과 더불어, 다니엘 위예와 공동 연출한 과거 작품 <노동자, 농민>(2001) < 너무 일찍, 너무 늦게 >(1981) <포르티니/시나이의 개들>(1976) <엠페도클레스의 죽음>(1986) <검은 죄>(1988) 일부 장면을 발췌 편집했다. 해방 전후의 이탈리아, 공장을 나서는 이집트 노동자들의 식민해방투쟁, 나치가 민간인을 학살한 아푸아네스 산맥의 1967년 풍경들 사이에 존재하는 검은 화면의 심연은 ‘폭력의 예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횔덜린의 ‘새로운 세계’를 말하는 고(故) 다니엘 위예의 출현과 함께 ‘겨우 선 결심’이라는 표제가 붙은(‘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라는 악보의 부기로도 유명한)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16번 Op.135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스트라우브는 아직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감독의 뜻대로, 2분 길이의 단편 < 알제리 전쟁La guerre d’Algerie >(2014)와 함께 상영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파트리시오 구즈만도 여전하다. 아타카마 사막 천문대를 배경 삼았던 전작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2010)에 이어, < 자개 단추 >에서는 카웨스카 족과 함께 물길을 타고 파타고니아까지 내려와 깊은 바닷속에 잠겼던 궤조강軌條鋼에 붙어있는 자개 단추를 건져 올린다. 이 단추는 먼 은하계의 소용돌이를 거쳐, 이를테면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창 어느 골짜기에서 발굴된 양복 단추와도 공명한다. 그들보다 젊은 왕빙도 한결같다. < 세 자매 >(2012)를 찍으며 감독이 알게 된 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 숙소에서 지내는 ‘아들’들의 2014년 2월 2일 일과를 기록하며 시작된 < 아버지와 아들 >은, 나흘 뒤 공장주가 촬영을 중단시키며 마무리되었다. 세간이라곤 화덕과 침상 하나뿐인 거처에서 오락기와 TV를 유일한 낙으로 삼는 일가의 생활을, 카메라는 꼼짝 않고 종일 함께한다. 북경영화아카데미에서 촬영을 전공하기 전에 미술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던 왕빙은,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과 공간을 사진으로도 기록하고 전시했다. 비디오 아트 페스티벌 ‘비디오릴레이 탄산’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하는 강정석의 < 시뮬레이팅 서페이스 A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에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처음 취업한 친구의 출근길을 아침마다 배웅한 7개월 동안의 영상 기록을 편집한 이 작품은, 친구가 해고당하면서 촬영이 종료됐다 한다. 친구의 삶과 노동에 보내는 우정과 지지의 정동은,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작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서울 풍경의 표면 위로 미끄러져 내린다(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때엔, ‘서페이스’의 더욱 본격적인 ‘시뮬레이션’인 B면 <시뮬레이팅 서페이스 B>와 출판 작업 ‘Converted (CMYK) Normal Maps from 2012~2014’가 함께 보여졌다). (태국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따이끼 삭삐싯이라 표기해야 할) 타이기 삭피싯의 < 불안의 시기 >는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무시무시한 작품이었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여전히 상상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원념이 플리커로 번뜩이는데, 궁중사극 호러 장르가 리얼리즘이 되어가는 상황은 아시아에선 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시나무처럼 떨며 볼 수밖에 없었다. 동병상련의 상념은, 국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라브 디아즈의 < 에레미아스, 1권: 도마뱀 공주의 전설 > 말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들을 보며 되살아났다. 감독의 신작 < 아 프리오리 >에서 목도하듯, 살육에 맞서 고개 드는 인간의 오연함이 더욱 긴급한 시절일 테지만, 그저 바람 속을 걸어 사라져 간 에레미아스의 ‘두 번째 책’이 전할 이야기가 하릴없이 기다려졌다. 이 기다림에 응해준 작품이 미겔 고미쉬의 < 천일야화 >였다. 특히 3부 ‘마법에 걸린 자’의 마지막 장면은 <에레미아스, 1권> 대단원 롱숏에 담겨있던 바람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천일야화> vol 1, vol 2, vol 3 미겔 고미쉬는 해직자를 포함한 기자들로 팀을 만들어, 경제 위기가 깊어진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근년의 사건을 모아 현장 조사를 마치고 < 천일야화 > 시나리오를 사건별로 나누어 개발했다 한다. 현실의 불투명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는 하나, 완결된 시나리오가 없어 이야기 전개를 알지 못한 채 장면을 나누어 촬영을 진행하며 배우와 제작진이 불안해 할까 봐 현장에서의 부담도 늘어갔다고 고미쉬는 여러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급기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버리는 감독으로 직접 분한 그는, 셰에라자드가 아버지와 관람차를 타는 놀이공원 장면에서 옛 아라비아 의상을 입고 다시 등장하지만 여전히 담배만 피울 뿐이다. 줄행랑을 놨다가도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는 이야기하는 자의 숙명을 사는 것일 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천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이야기를 계속하는 셰에라자드를 자신의 영화를 위한 복화술사로 불러들여, 고미쉬는 포르투갈의 현재라는 ‘사태’와 「천일야화」라는 ‘픽션’을 섞는다. 셰에라자드는, 이야기가 인간의 욕망과 공포에서, 죽은 자들과 도래할 자들에게서 온다고 말한다. 때로 거짓말이기도 한 이야기가 진정 우리를 생존하게 해준다고 여기는 그녀는, 고미쉬의 전작 <타부>(2012)의 벤투라처럼 이야기 속 이야기, 영화 속 영화를 짓는다. 「천일야화」원작에서 셰에라자드는 밤마다 새로운 화자를 새워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그러니까 두 번째 탁발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 <천일야화>에도 많은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벌을 치는 양봉업자,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도주 중인 탈주범, 딸의 가정생활을 보살피는 판관에게 진술하는 소, 새를 길들여 노래를 가르치는 남자와 마주친 그물에 갇힌 사내, 여행을 왔다가 경찰을 만나 임신한 중국 여인, 법정에 서는 닭…. 이야기는 인간에게서 동물에게까지 뻗어 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낳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이미지 속에서는 다른 영화가 태어난다. 미겔 고미쉬는 세 편인 동시에 한 편인 < 천일야화 >의 이야기가 성부-성령-성자의 삼위일체와 같다고 칸 영화제 때 수차례 밝혔다. 돌이켜보면 고미쉬의 장편 영화들은 늘 둘 이상의 이야기를 안고 있었다. <천일야화>도 각기 고유한 리듬과 소제목을 지닌 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이 작품인 공동제작국인 프랑스에서는, 칸 영화제가 끝난 뒤 세 편을 나누어 약 한 달 간격으로 순차 개봉했다. 1부는 2015년 6월 24일, 2부는 7월 29일, 3부는 8월 26일에). 1부 ‘불안해하는 자’는 포르투갈 중공업을 대표하던 비아나두카스텔루 조선소 폐업 때 촬영했다. 작금의 포르투갈이 처한 위기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이 물질과 연결되어 있는 양상은 경제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를 다시 묻고 역사를 되새긴다. 고미쉬에 따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개별자들만이 아니라 ‘공동체’이기도 하다. 2부 ‘비탄에 잠긴 자’는 법정, 아파트 등 실내를 주 무대로 삼는데, 연극적 장치와 조명을 채용하여 야외 촬영이 많은 1부보다 어둡다. 이야기도 그렇다. 원형극장에 세워진 법정은 조정하는 힘을 잃었고, 저소득 임대 아파트 주민은 돈이 없어 죽음을 택한다. 한데, 주인과 거처가 잇달아 바뀌어도 개 딕시만은 근심이 없다. 3부 ‘마법에 걸린 자’에는 변두리에서 되새를 길들여 노래를 가르치며 소일하는 남자들이 나온다.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일상의 매끈한 표면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내레이터가 들려주는 그들의 사연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우화인지 실화인지 알 도리는 없다. 한데 무슨 영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바그다드가 바다에 면했던 시절을 살며 사막화를 근심하는 셰에라자드의 옛이야기보다 현대 포르투갈 교외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지내는 이들의 일상이 지극히 초현실적으로 여겨지고, 새 노래 경연 대회가 종교나 정치 결사체의 비밀 회합처럼 보인다. 35mm와 16mm 필름으로 이 영화를 촬영한 사욤부 묵디쁘롬은, < 징후와 세기 >(2006) <나부아의 유령들>(2009) < 엉클 분미 >(2010) 등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대표작을 찍었던 태국 촬영감독으로, < 천일야화 > 제작을 위해 리스본에 1년 정도 살았다 한다(그와 고미쉬는 70mm로 촬영할 것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예산과 기동성 등 몇 가지 문제로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부산영화제에서 러닝타임이 381분인 <천일야화>를 본 날, 이웃한 상영관에서 연이어 < 찬란함의 무덤 >을 보았다. 사욤부 묵디쁘롬이 <천일야화>를 찍은 것도 <찬란함의 무덤>을 디에고 가르시아가 촬영한 것도 모른 채, 같은 날 상영하는 두 영화의 표를 우연히 구했다. 역시 우연이겠지만, 두 작품에는 모두 동물이 여럿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종들 외에, <천일야화> 1부에는 고래도 나온다. 해고자 루이스는 고래 뱃속에서 심장을 치료받고, 바닷가에서는 고래 심장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고래가 해변으로 나오는 건 실수가 아니라 아파서인 경우가 많은데, 바다로 밀어 넣어도 대개 다시 나와 죽는단다.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를 먹은 고래 몸속에는 중금속이 쌓이는데, 보통은 지방층에만 축적되어 문제가 없지만 먹이를 제대로 못 먹는 상황에서는 지방을 에너지로 쓰는 대사가 일어나 온몸에 독이 퍼진다. 물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피하지방을 유지해온 고래가 빈사 상태로 물 밖에 나오면, 온 몸이 열로 펄펄 끓다 급기야 내장이 밖으로 터져 나온단다. 뱃속 같은 이야기의 심층에서 불안으로 윙윙대기만 하던 ‘사태’들의 소음도, 임계점을 넘으면 표면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 ‘사건’이 된다. <천일야화>가 전하는 이야기의 표면에는 포르투갈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 인류의 수런거림이 모이고, 의미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들·인물들·동물들이 공존하는 셰에라자드의 시공은 무한히 나뉜다. 이들이 모여 내는 목소리는, 인간의 언어보다는 되새의 노래에 가깝다. 들풀을 흔드는 바람 속에 새들의 노래가 들리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