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평양
- 감독
- 양영희
- 제작년도
- 2005
재일 교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이 < 디어 평양 >(2005)과 < 굿바이 평양 >(2011)에 이어 < 수프와 이데올로기 >를 개봉하면서 가족 3부작을 완성했다. <디어 평양>이 조총련계 간부로 일한 부모님, 특히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냉전이라는 탈식민적 역사를 통과하며 자신의 신념을 형성해온 아버지와 그의 행보를 향한 양가적 감정을 다뤘다면, <굿바이 평양>은 평양에 사는 조카 선화를 중심으로 그들 가족의 일상을 친밀하게 보여준다. 최근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의 사적 역사를 다룬다. 세 영화는 양영희 감독이 그의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사적 영화인 동시에 남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탈식민적 역사에 대한 정치적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영화는 다채로운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은 고집스럽고 냉철한 카메라로 거침없이 가족의 친밀한 초상을 그려낸다. 그의 카메라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가족들을 역사 속 한명의 주체로 인정하며 그 선택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의 부모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일본에 와 결혼하고 오사카에 정착했다. 양 감독의 아버지는 일본의 차별을 온 몸으로 체감했고, 그때 재일 조선인들에게 관심 갖고 지원을 해준 북한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조청련 간부로서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더 나았던 북한으로 세 아들을 보낸다. 양영희 감독도 어린 시절 조총련계 학교에서 조국 북한에 충성해야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양영희 감독은 성인으로 성장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빠들을 북한에 보낸 아버지를 원망한다. 오빠들이 북한에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어 평양>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적응에 힘들어하는 오빠들에 대한 애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끈질기게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버지는 비극적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때마다 자신과 가족에게 최선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해왔다. 평양은 이전에는 자신의 신념의 기반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사는 장소로 고향 같은 곳이다. 양영희 감독은 어쩌면 카메라를 매개해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한다. 아버지도 카메라가 있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마음으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표현한다. 카메라의 매개는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장치가 되며, 여러 감정이 실린 가족들의 얼굴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굿바이 평양> 역시 북한을 다룬 어떤 영화보다도 더 친밀하고 애틋하며 솔직한 카메라를 매개해 교육받고 공인된 얼굴 이면의 다른 북한 주민들의 얼굴을 포착한다. 관객들은 모두 선화가 자신의 꿈을 이루길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작품인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고집스러운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서 그리고 일본과 평양의 가족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데 몰두했던 아버지 대신 가족 경제를 도맡아 오다시피 했다. 양영희 감독은 제주 출신인 어머니가 일본에 건너오게 되고 조선국적을 택하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 어머니가 조선국적을 택한 건 단순히 아버지를 따른 것이 아닌 그의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십대 시절 제주 4.3사건을 겪게 된다. 그녀의 약혼자를 포함해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어머니가 살던 일본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밀입국해 오사카로 넘어오게 된다.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라면 치가 떨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체에 각인된 분노와 불안이다. 그래서 딸인 양영희 감독에게도 4.3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양영희 감독은 그제야 어머니가 자신의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내고 조총련 간부로 오래 일하고 나이 들어서까지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 돈과 선물을 평양에 있는 가족으로 보내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들과 조카 선화 모두 한국 근대사의 비극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며 용감하게 생존해온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이해는 곧바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된다. 영화는 어머니가 4.3 사건을 기억해 내고 구술하는 상황과 양영희 감독이 결혼하게 될 일본인 남편 카오루를 맞이하고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병행해 보여준다. 가족이 되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딸이 결혼하길 바랐지만 일본인 사위는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는 어떤 거부감도 없이 카오루를 친절하게 받아들이고 카오루는 그런 어머니를 알뜰히 보살핀다. 엄청난 양의 마늘이 들어간 어머니의 삼계탕에 반한 카오루는 그 비법을 전수받는다. 어색함과 이념적 차이, 역사적 장벽은 깊고 따뜻한 국물 속에서 녹아내린다. 양영희 감독은 3부작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가족 사이의 갈등과 차이를 어떻게 대면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어머니가 사위 카오루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일본의 차별을 다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4.3 재단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해서 자신의 애인과 친척들을 위협하고 죽였던 한국을 모두 용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야 자신이 4.3사건 2세대라는 것을 알게 된 양영희 감독도 어머니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심지어 어머니는 얼마 후 노환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간다. 그 옆에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슬픔과 분노, 불안을 포착하려는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가 있다. 제주 4.3 기념관을 방문해서도 어머니는 제주에서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의 얼굴은 피곤하고 때때로 무표정하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에게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기록하는 것이 그의 시선이라는 것도 숨기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카메라가 지나치게 밀어붙이고 집요해 고독하다는 느낌도 든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개봉한 후 양영희 감독이 방북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실제로 타자를, 특히 가족을 이해하려는 카메라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어서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외면당한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영웅적인 면모를 띤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1. 이 연재에서 이야기한 적 있는 < 팔도사나이 >(1969)는 김두한이라는 한국 남성 대중문화의 강력한 형상만을 만들어낸 데 그치지 않았다. 종로의 주먹 김두한이 지역으로부터 올라온 도전자들에게 판판이 승리를 거두며 서울을 정점으로 한 전국토의 위계화라고 할만한 것을 이루어냈다면, 대동강, 무등산, 영도다리 출신임을 내세우며(이 노골적이고 단일한 지역적 상징물들은 일종의 지역의 인덱스화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지적해두자) 도전장을 내미는 팔도의 ‘쎈’ 사나이들 중에서도 단연 가장 막강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것은 박노식이 분한 광주 용팔이일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박노식 은 한국영화에 처음으로 언어를 통한 지역적 질감이라는 것을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 5인의 해병 >(1961)에서 시골 출신 병사역을 맡은 박노식은 이 캐릭터 ‘촌놈’이 전라도 사투리를 써야 잘 살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는 전라도 순천 출신이다) 감독 김기덕은 그의 군대생활을 떠올리며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영화의 성공은 방언 사용에 대한 한국영화의 금기를 깨트렸다. 1967년의 기념비적 국책영화 < 팔도강산 >에서 다시 한번 광주 사위로 전라도 사투리를 리드미컬하게 구사해냈던 박노식이 “나가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용팔이인데 말시!”라는 일성과 함께 용팔이로 도착하고 있는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보인다. 곧 이 캐릭터는 <팔도사나이> 시리즈의 주역으로 발돋움한 데(< 돌아온 팔도사나이 >) 이어 ‘용팔이’ 시리즈 뿐만 아니라(< 남대문 출신 용팔이 > < 역전 출신 용팔이 > < 운전수 용팔이 > < 신입사원 용팔이 > < 방범대원 용팔이 > 등) 여타의 무수한 영화들에 진한 자취를 남겼다.(<맨발로 올라왔다> <맨주먹으로 올라왔다>) 1970년대 스스로 감독을 겸하기 시작한 박노식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역할의 절반은 용팔이였다. 싸구려 액션영화들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이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용팔이야말로 이 시기 한국영화가 담아내었던 동시대성의 핵심 표상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너무 과장이 아니냐고? 아니 정말로 그렇다. 용팔이는 그 자체로 급격한 이촌향도와 확장일로의 도시가 요구하는 염가의 노동력의 구상화라고 해도 무방해보인다. 1970년대 도시 변두리와 읍내의 열악한 재개봉관을 채운 액션영화는 홍콩식 권격영화와 더불어 ‘김두한’과 용팔이가 채우고 있었다. 전자가 합작이든 위장합작이든 아시아 시장의 공통성(‘아시아’라는 말이 불러일으킬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 공통성은 소위 아시아적 ‘가치’와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 시장의 공통성이란 이 지역 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마련해둔 계급적, 젠더적 공통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일종의 국제성에 어필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철저하게 내수용으로 기획되었다. 아마도 이 시장과 관객의 문제야말로 왜 유독 이 후자의 영화들이 그토록 지배 이데올로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가의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영화들의 거의 대부분은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등 70년대 ‘우수영화’의 포맷을 기꺼이 빌려오고자 했다. 무엇보다 김두한과 용팔이가 횡행하는 소위 70년대 협객영화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이들 모두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를테면 <김두한 속 4부>에서 김두한이 그의 부하들에게 이제 폭력배의 시대는 갔고 새 시대가 왔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변할 때, 이것은 얼마나 유신(維新)의 이념에 근사하게 합치되는 것인가. 2. <돌아온 팔도사나이>는 용팔이가 과연 누구였는지, 무엇을 대변하는지, 그리고 이 존재의 열망과 취약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일 것이다. 이미 영화의 시작 전에 형님 호는 조직을 해산했고, 부하들에게 깡패의 세계에서 손을 씻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용팔이(박노식)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역시 한때 수중의 폭력을 즐겨 과시하였으나 이제 과거와 손을 끊고 새 사람이 되어 건실한 일꾼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짐꾼이 되어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던 용팔이는 어느날 사업가로 성공한 옛 동료에게 아내 옥희(사미자)를 뺏긴다. 분노한 용팔이는 이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돈에 혈안이 되어 우정까지 저버린 용팔이 앞에 호의 장성한 아들 철용이 나타나 결투를 신청한다. 용팔이는 이 결투로 자신의 잘못을 깊게 뉘우친다.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이 영화는 돈 때문에 아내를 잃은 자가 한때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으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물론 이 과정이 심히 급작스러워서 그다지 설득력이 있지는 않지만)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런데 이 영화를 진정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 인물이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이 매번 좌절된다는 데에 있다. 간단히 말해 용팔이가 주먹을 쓰려는 순간 그럴 수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때마다 형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형사는 말 그대로 ‘불쑥’ 등장한다. 어느날 용팔이는 자신을 자처하는 가짜 용팔이를 만난다. 이 가짜에게 주먹을 들어 응징하려는 순간 홀연히 등장한 형사가 용팔이의 팔을 잡으며 말한다. “우리는 법치국가의 민주시민입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실 때는 법에 호소하면 정당한 판결을 내려줍니다.” 용팔이가 가짜 용팔이와 대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거울을 통해서 마치 환영처럼 모습을 드러낸 형사는 다음 숏에서 용팔의 팔을 잡음으로써 이 상황에 개입한다. 이 형사의 등장은 거의 초현실적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의 등장을 예고하는 어떤 단서도 앞의 장면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한 이 맥락없는 등장은 이 형사를 전지적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 그는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나 용팔이를 보고 있다. 형사의 말에 용팔이 박노식이 그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아이고 내가 공부를 좀 했으면 그 법인지 뭔지 알 거인데 말입니다잉 미치겠네라우, 아이구 요 새끼가 말입니다잉 남의 이름을 빌려서 용팔이 행세를 했는데 그것이 사기로 들어갑니까, 강도로 들어갑니꺼? 내가 참 대갈통이 나빠가지고.” 용팔이는 형사의 말대로 결국 주먹을 쓰지 않지만,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는 박노식의 제스처는 희극적이면서 또 도발적이다. 이 제스처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나는 머리가 나빠서 법에 대해 잘 모르겠소. 용팔이(와 더불어 도시 변두리와 읍내의 열악한 재개봉관을 채우고 있는 관객)에게 마련된 자리란 최대치로서 치안과 노골적인 국가 시책이 가닿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순치(馴致)의 대상으로서 그는 법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존재는 법이 범/법을 지적하고 포획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법으로서 성립, 유지시킨다는 명제, ‘범죄의 식민화’(푸코)의 더할나위 없이 적합한 사례이다. 용팔이는 감옥을 들락날락한다. ‘성격적 결함’이 종종 그를 잘못된 길로 이끌지만, 그는 매순간 갱생의 의지를 불태운다. 무엇보다 ‘경찰’이 그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눈을 부라리며 머리를 툭툭치는 저 제스처로 돌아가보자. 이것이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적으로 박노식이 분출하는 과장되고 기묘한 에너지 때문이다. 힘이 세고, 다혈질이며, 우직하면서 비굴하고,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잔인함을 발산하는 박노식의 용팔이는 종종 체제순응적인 내러티브의 층위와 상관없이, 과시적인 제스처를 통해 가진 자와 배운자에 대한 은밀한 희롱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팔도사나이>에서 용팔이는 민족의식의 고취를 역설하는 ‘점잖은’ 역사 교수에게 억지로 바보춤을 추게 한다. 식자들에 대한 조롱에서 비롯되는 이 ‘난감한’ 활력이야말로 이후 박노식이 수행한 용팔이 캐릭터의 핵심 정서라고 할 만한 것이다. 한편으로 하층 계급 남성들의 노골적인 판타지를 고스란히 체현해내고 있는 이 캐릭터는 아직 그 어떤 정향적인 긍정성도 내포하지 않았지만(이를테면 1980년대의 ‘건강한’ 민중성에 관한 담론들과 용팔이 사이에는 아직 얼마나 먼 거리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배우고 못 가진 자의 분노를 우스꽝스럽게 분출시키며 지배담론과의 거리를 미묘하게 확보해나간다. 물론 치안의 대상이라는 저 근본적 취약함을 간직한 채 말이다. 요컨대, 도시로 이주한 저학력 남성 노동자들의 적절한 반영물로서 박노식 용팔이는 1970년대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민중’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단위에 미처 끼지 못한 선(先) ‘민중’적 존재, 혹은 잉여화된 바로 그 존재들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3. 1971년 박노식은 그의 첫 번째 연출작인 < 인간 사표를 써라 >를 찍었다.(일설에 의하면 이 영화는 폭력사건으로 유치장 출입이 잦았던 이 스타가 “이게 뭔가? 나는 왜 이렇게 사고를 저지르는가?” 대오각성(?)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1) )그로부터 박노식은 1976년의 <방범대원 용팔이>와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까지 5년 동안 무려 13편의 영화의 연출과 주연을 맡는 놀라운 창조성을 보여주었다.(참고로 그의 마지막 연출작은 미국 이민에서 돌아온 1983년의 영화 < 돌아온 용팔이 >이다.) 197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호화로운’ 파괴를 보여주는 이 영화들은 아마도 한국영화사 내에서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독자적 계보를 찾을 때 첫 번째로 불려져나와야 할 목록들일 것이다. 악취미에 가까운 스타일의 과잉, 폭력과 섹스가 낳을 수 있는 극단적인 이미지들에 대한 열렬한 탐닉, 넘쳐나는 신체훼손과 넘실거리는 자기 과시. 박노식은 그 속에서 사연많은 킬러와 용팔이 사이를 오가며 거의 박노식 유니버스라고 할만한 것을 창조해내었다. 이 영화들은 박노식이라는 배우-감독의 유니크한 개성의 유감없는 발현이자, 무엇보다 이 영화들이 소구했던 바로 그 관객들의 취향, 소망, 판타지의 가장 적나라한 형상들이라는 점에서 더할나위 없이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이 중에서도 박노식이 잔학한 조총련계 야쿠자이자 도쿄로 건너간 촌뜨기 용팔이의 1인 2역을 맡고 있는 < 왜? >(1974)는 정말로 필견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시라! 1) 오승욱, 「전라도 촌사나이의 야망과 몰락 박노식」, 『신동아』, 2011.4.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10248/3)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 팔도사나이 >(1969)를 시작으로 < 실록 김두한 >(1974)과 < 협객 김두한 >(1975), 그리고 허경 필자가 소개한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1981)에 이르기까지 김효천 감독의 ‘김두한 사랑’은 남달랐다(<팔도사나이>와 1982년작 < 종로 부루스 >에서는 주인공이 김두한으로 짐작이 가긴 하나 구체적으로 호명되지는 않는다). 물론 김두한의 흔적이 지워진 액션영화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매력적인 영화는 일본 야쿠자 장르와 반공영화가 결합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1980)이다. 그 매력의 핵심은 역시 김희라 의 화끈한 남성미로 인한 것이다. 장동휘 , 박노식 , 이대근 , 김희라, 이강조 , 윤승원 으로 이어지는 ‘김효천의 남자들’ 리스트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이 카리스마와 별개로 뭔가 ‘토속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면 이강조는 실력에 비해 유명세가 떨어지고, 김효천 액션영화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 일본대부 >(1989)의 윤승원은 뭔가 더 보여줄 것이 남은 상태로 작별을 고했다. 그에 반해 김희라는 진정 세련되고 멋지다. 남자 중의 남자다. 김효천 의 남자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 김희라 이강조 윤승원 영화가 시작하면 오사카 아오야마 조직의 ‘오야붕’이 습격당하고, 평소 그를 친아버지처럼 여겼던 가네모도( 김희라 )가 혈혈단신 복수를 하러 떠난다. 적의 본거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아오야마가의 불사신 가네모도’라고 (자기 입으로 직접) 밝히고는 분노의 주먹을 날린다.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문을 확 열어젖히는 박력부터 남다르다. 역시 김희라! 그리고는 단검 하나로 여러 개의 좁은 다다미방을 저벅저벅 옮겨 다니며 싸운다. 굳이 ‘가오 상하게’ 뛰어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적들 앞에서도 ‘어차피 너희들은 다 죽었어’라는 듯 시종일관 언짢은 표정으로 대결에 임하는 그 표정이 딱 ‘쓰바키 산주로’ 도시로 미후네의 그것이다. 상대 오야붕 신타로( 배수천 )가 마사오( 조춘 )를 이용해 가네모도를 처리하고자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잠시 수세에 몰리려는 찰나, 가네모도의 동생 아라이가 멋지게 슬로모션으로 마당에 등장해 졸개들을 화려한 돌려차기로 제압하기 시작한다. 발기술이 약한 김희라의 우직함을 보완하는 김효천 감독 특유의 연출이리라. 그래도 무게중심이 아라이로 기울 수는 없는 법. 가네모도가 창호지 문을 뚫으며 몰래 숨어있던 야쿠자를 주먹 한 방으로 제압하는 장면도 일품이다. 하지만 저 멀리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오고 가네모도는 아라이에게 당장 여기를 떠나라고 말한다. 남자답게 혼자 뒤집어쓰겠다는 말일 것이다. 도망치라 했다고 진짜 혼자서 달아나버린 아라이가 야속하긴 하지만, 뭘 거추장스럽게 줄줄이 끌려간단 말인가. 혈혈단신(feat. 스틸과 캡쳐 화질의 간극) 이처럼 도입부부터 숨 가쁘게 펼쳐지는 습격신은, 김효천 감독 특유의 박력 넘치는 액션 연출과 김희라 의 선 굵은 연기가 결합하여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제야 영화제목이 뜨면서 체포와 동시에 히로시마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가네모도의 모습, 그렇게 감독이 ‘갔다 왔다 치고’라고 말하는 듯 역시 숨 가쁘다. 또 다시 이어지는 크레딧 ‘제작 김치한’. 바로 김효천 감독의 다소 민망한 본명이다. ‘치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초 감독이라니. 그의 액션영화를 흠모하는 것과 별개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빨갱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우파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불편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이미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고나 할까. 그렇게 다시 도시로 돌아온 김치한, 아니 김희라의 뒤로 “사나이 전성시대... 외로운 별, 세월은 간다... 낭만은 있다...”라는 가수 김동아의 주제가가 흐른다. 히트곡 ‘나를 두고 가려무나’로 유명한 김동아는 1970년대 초반 불난 집에서 아버지를 구하려다 화상을 입어 반년 이상 입원했고, 결국 그 흉한 얼굴로 인해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가수다. 뭔가 그러한 사연도 김효천 감독의 남자영화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제 가네모도는 출소와 함께 못 다한 복수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복수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일본 라멘을 먹는 모습이 귀엽다. 하지만 몇 젓가락 밖에 되지 않는 일본 라멘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먹고 난 다음 젓가락을 아그작 뽀개버리는 모습 또한 박력 넘친다. 그리고 술이 빠질 수 없다. 제목도 어울리게 ‘이방인’이라는 바에 들른 가네모도에게 나이 많은 바텐더가 묻는다. “여행을 다녀오셨나 보군요.” ‘깜빵’ 생활을 여행으로 돌려 표현한 바텐더에게 가네모도는 미소를 띠우며 답한다. “인생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야.” 이윽고 바텐더는 ‘귀향’이라는 이름의(물론 자체 작명) 술을 건네는데, 가네모도가 “난 돌아갈 고향이 없네”라고 말하자 “그럼 (고향을 몰라도 그리워한다는 의미에서) 망향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행과 유학, 그리고 고향과 망향, 거의 직접 시나리오를 썼던 김효천 감독 특유의 낭만성이 부각되는 장면이다. 심지어 바텐더는 자신의 가게를 처음 찾은 손님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며 ‘또 들러 달라’고만 한다. 마초의 낭만 “자네 망향 잊지 않겠네.” “난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 다시 출출해졌는지 그는 한 초밥집에 들른다. 알고 보니 재일교포 겐이찌( 한지일 )와 하루미( 이경실 )가 운영하는 초밥집이다. 초밥을 2인분으로 달라고 하고, 술은 5인분으로 달라고 하는 가네모도에게 하루미는 하트를 뿅뿅 발사한다. 심지어 하루미가 술을 따라준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원래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라며 도쿠리를 원샷하는 신공을 선보인다. 그렇게 배를 채운 가네모도는 신타로 일당의 도박장으로 찾아가 속임수를 쓰는 도박사의 손목을 단검으로 잘라 버리고 “주인의 복수를 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어 7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며 ‘히로시마의 표범’ 마사오의 목숨마저 가져간다. 그러다 숨어있던 다른 졸개에게 허벅지에 칼이 찔린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이리와, 이리와!”라는 단 두 마디에 칼을 찌른 그 놈은 얼어붙는다. 진정 카리스마 넘친다. 말 그대로 감독 또한 배우의 매력에 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다리에 찔린 칼을 뽑으며 “이리와, 이리와!” 졸개는 정말 이리와서 얻어 맞는다. 얄궂지만 얻어 맞는 건 고화질로...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모방인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겐이찌와 하루미가 조총련의 협박을 받는 재일교포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게다가 가네모도는 물론 그를 보살폈던 오야붕이 한국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총련=북괴’라는 등식의 반공영화 컨벤션이 침투해 들어온다. 당시 영화포스터에도 ‘이 영화는 일본영화가 아닙니다!’라는 카피가 덧붙여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김효천 의 이전 김두한 시리즈가 일종의 반일(反日)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이제 북괴가 등장하며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는 형태를 취한다. 아오야마가의 새로운 오야붕이 된 쟈니( 박근형 )가 가네모도의 빨갱이 소탕을 적극 돕고 나선 것이다. 가네모도와의 대화 도중 영국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는 등 어딘가 낭만적인 모습의 쟈니는(그래서 그는 ‘센티멘털 쟈니’라 불린다), 북조선의 만경봉호가 뭔지도 모르는 그를 향해 “가끔은 자네처럼 신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해”라며 은근히 ‘디스’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조총련에 속아서 북송선을 타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최후의 대결을 벌이러 떠난다. 그들이 결전을 준비하며 일본도를 닦고 온천에서 피로를 풀 때 흘러나왔던 사운드트랙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1악장’이다. 난감하다고 해야 할지 비장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그 대목에서, 어쨌건 그들은 국경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눈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며 이미 죽을 각오까지 하고 아래위는 물론 넥타이까지 하얀 색으로 ‘깔맞춤’ 한 가네모도에게 쟈니는 말한다. “나도 함께 가는 거다. 난 회장님의 복수를 하고 아우의 큰일을 돕고, 내가 가야할 이유는 너무나 많아.” 죽음을 예상하고 거의 즐기는 표정으로 싸우는 가네모도와 ‘폐병’을 앓으며 힘겹게 싸우는 쟈니의 모습은 거의 장철 감독 영화의 적룡과 강대위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싸우는 와중에 남자들끼리 간절히 손을 맞잡는 마지막 장면의 정서(오우삼의 < 첩혈쌍웅 >에도 수혈됐던)는 장철의 < 대결투 >(1971)의 판박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센티멘털 쟈니는 “너 때문에 내가 멋있게 죽을 수 있다”며 오히려 그를 다독인다. 반공영화답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가네모도의 마지막 모습만 아니었다면,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다. 남자들이 손을 맞잡는 마지막의 비장함 끝으로, 김효천 의 액션영화를 흠모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발췌해 본다. 감격스럽게도 < 킬리만자로 >(2000) 이후 두 번째 영화 < 무뢰한 >을 촬영 중인 오승욱 감독은 <한국 액션영화>에서 “밑바닥 사내들의 야비함과 비겁함, 그리고 그들의 이상향적인 <수호지>적인 의협, 이런 것에 대한 과잉 애정이 너무나 지나쳐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어버린 과잉의 영화”라며 ‘노골적인 빨갱이 혐오’ 정서에 대해서는 “그 꽉 막힌 혐오와 증오가 왜 우리의 바탕인지를. 그의 영화를 보며 우린 그 시대의 오줌 지린내 고약한 우리 동네의 뒷골목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썼다. 또 < 돌려차기 >(2004)를 만들기도 했던 남상국 감독, 남정욱 이 쓴 「한국영화, 황금기를 찍다」에서는 김효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찬하고 있다. “김효천 감독의 영화에는 ‘감정’이 있다. 어지러운 시대에 살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나이의 격한 감정이 살아있다. 주인공을 분노의 끝까지 몰아넣고, 관객이 마음 속 깊이 주인공이 복수를 해 주길 원할 때, 마음 같아서는 관객이 스크린으로 뛰쳐 들어가 악당들을 쳐 죽이고 싶을 때, 바로 그 때! 주인공의 분노를 터트리고, 주인공의 주먹에 악당들은 지리멸렬 나가떨어지고, 관객들은 가슴이 뻥 뚫리면서 주인공의 복수에 박수를 치게 하는 그런 연출의 대가다.” 김희라 이경실 박근형 감독: 김효천 각본: 김효천 개봉극장: 중앙(서울) 관람인원: 30,271(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