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 영화음악의 모든 것
- 감독
- 맷 슈레이더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한스 짐머, 대니 엘프만, 존 윌리암스, 트렌트 레즈너, 제임스 카메론, 랜디 뉴먼, 퀸시 존스, 정키 XL, 하워드 쇼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스티브 자브론스키, 토마스 뉴먼, 패트릭 도일, 브라이언 타일러, 아티쿠스 로스, 존 파웰, 베어 맥크레리, 마크 마더스보, 모비, 스티븐 스필버그, 게리 마샬
정윤철 감독의 데뷔작 < 말아톤 >은 소통에 대한 영화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자폐아 ‘초원’이의 마라톤 도전기를 전국 500만이 넘는 폭발적인 관객동원으로 이끈 건 그들의 닫힌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 작은 노력 덕분이었다. 자폐증은 소아 1,0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병이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1999년에 이르러서야 공식 장애항목으로 등록되었을 정도인데, 초원이 눈에 비친 대한민국이란 현실이 세렝게티와도 같은 생경한 환경으로 비쳐졌는지 모른다. 영화는 그런 냉엄하고 비정한 세상에 대해, 그리고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음악의 힘이 컸다. 연극음악감독, 피아니스트, 게임회사 직원 등 긴 무명 세월을 견디며 대중과의 소통을 꿈꿔왔던 김준성의 음악은 여기서 날개를 달았다. 갇힌 마음속에서 넓은 꿈을 꾸는 5살 지능의 20살 청년의 모습부터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경과 차가운 현실의 벽까지 두루 아우르며 피아노와 기타,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풀어낸 그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실화 속 주인공, 캐릭터, 관객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박수를 보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백만 불짜리 끝내주는 음악을 만든 그는 이 데뷔작으로 그 해 청룡영화상, 대종상 음악상을 모두 석권하며 영화음악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걸었다. 데뷔 전부터 단편에서 이미 호흡을 맞춰온 원신연 감독의 음악적 페르소나가 되어 다양한 실험성과 세련된 스타일을 과시하는 한편, 자신의 전공을 살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오케스트레이터로서도 탁월한 솜씨를 뽐냈다. < 전설의 고향 > < 고사 > < 핸드폰 > < 더 게임 > < 차우 > < 심야의 FM > < 베스트셀러 > < 공모자들 > 등 호러와 스릴러 장르에서 특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 특별시 사람들 >과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 끝과 시작 > < 집으로 가는 길 > 그리고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같은 감성적인 드라마에서도 빼어난 선율과 풍부한 심상을 잊지 않았다. 이제 대중들에게 그의 음악은 익숙해졌지만, 아직 이름은 친숙해지지 못한 ‘영화음악가 김준성 ’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영화음악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접근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와 나눈 일문일답들. 먼저 최근에 음악을 담당하신 <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 >가 제17회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되었는데요, 국내에선 언제 개봉인가요? 국내에서는 아마 11월경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일본과 개봉을 같이 하려고요. 일본은 워낙 만들어진 다음에 개봉이 늦어서 그 일정을 맞추려는 거 같아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 영화이고, 실화를 각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갑상선 암으로 목소리를 잃었지만 재기에 성공한 성악가 배재철 씨의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김상만 감독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감독님과는 < 심야의 FM >에서 처음 만났는데 호흡이 좋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저도 그 영화음악을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님이 음악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궁금하죠. 음악 영화를 한다면 분명 오페라 영화일 텐데. 그래서 기술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시나리오를 받아서 봤어요. 이 영화는 음악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걸 이야기해주러 갔죠.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을 해드렸어요. (그랬더니) 한 달 후에 같이 하자고 연락하시더라고요. (웃음) 음악이 이렇게 메인으로 나오는 영화는 필모그래피 중 처음입니다. 클래식을 전공한 작곡가로서 음악이 주가 되는 영화는 어떤 느낌인가요? 음악 영화는 힘들다... 죠. (웃음) 일이 3배는 더 많아요. 음악감독이 기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첫째는 믹싱도 알아야 하고요. 클래식 영화니까 클래식 전반에 대한 음악적인 지식, 능력도 있어야 하고요. 싱크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우리는 배우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성악가가 하기 때문에 입을 맞추는 문제가, 편집적인 센스가 있어야 맞출 수가 있어요. 거기다 영화음악을 또 만들어야 하잖아요? 일이 좀 많아요. (웃음) 공개된 티저를 보면 오페라 장면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어떤 곡들이 사용되었나요? 일단 ‘네순 도르마’가 쓰였고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가 쓰였어요. 저작권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저작권료를 낼 일이 없었죠. 녹음을 다 새로 했거든요. 세르비아로 가서 (녹음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이 많은 영화음악 전문 단체가 있어요. 그분들이 도와주셨어요. 한국에서 지휘를 제가 할 수는 없으니까 대전시향의 전임지휘자, 류명우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지휘를 해줬어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시작은 단편 영화와 연극, 무용 음악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대략 30여 편의 연극을 하셨다고 했는데(크루서블, 날 보러 와요, 오월의 신부 등), 애초부터 극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서울대 작곡가를 졸업하고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극음악을 한 것은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연극 음악을 했었죠. 극단 연우무대와 작업을 10년 정도 했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사실 혼자 현대음악을 쓰는 것도 좋았고, 여전히 제 꿈은 현대음악을 계속 하는 거였는데, 97년도에 유학을 다녀온 이후 IMF가 왔어요. 다시 유학을 떠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요. 그때부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500명의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보다 앞으로는 500만이 행복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영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들이 시작됐죠. 연극 <날 보러 와요>는 초연 음악이었나요? 네, 초연부터 했었죠. 영화 < 살인의 추억 >을 보고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 당시는 영화를 하고 싶었던 때이기 때문에 제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제가 했으면 그만큼은 못했어요. (웃음) <살인의 추억> 음악은 정말 잘 만든 음악이에요. 일본인 작곡가 타로 이와시로가 했었죠. 굳이 왜 일본인 작곡가를 썼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그 당시 붐이 있지 않았어요? 일본 작곡가를 한국 영화에서 많이 썼어요. 김성수 감독의 < 무사 >도 그랬고요. 어떤 붐의 마지막 단계였던 거 같아요. 2005년? 2006년도까지. 히사이시 조의 < 웰컴 투 동막골 >을 마지막으로… 그 후에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지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연극과 무용과 영화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요?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데요, 영화가 조금 더 음악적인 판타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은 제약이 좀 많이 있거든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고요.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미술과 공간과 시간과 정서 등등 느끼는 것들이 종합적으로 되어 있으니까 할 것이 더 많고 성취감도 더 많은 거 같아요. 김소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 하늘색 고향 >도 작업을 하셨습니다. 어떤 작업이었나요? 음악 감독의 역할이었죠. 영화를 처음 접하는 거였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굉장히 많았어요. 감독님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요. 그 영화에 가장 필요로 하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음악 감독이라기보다는 작곡가의 개념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아마도 그 영화를 하고 난 다음에 잘 못했던 거 같아…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 소망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생각해요. 2004년에는 뉴에이지 느낌의 솔로 앨범 ‘어느 아침’도 발표하셨어요. 김광민이나 이루마 같은 피아노 솔로 앨범이었는데. 피아니스트로서의 욕심도 있지 않으셨나요? 이루마 씨가 (앨범 내기) 6개월 전에 (제가) 발표했거든요. 제가 발표를 했을 때 대중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음악도 안 들어주고. 콘서트를 잡아주는 데가 없으니까 제가 자발적으로 돈 들여서 열 번 정도 해봤거든요. 무명의 삶이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그때 경제적으로도 아주 어려워졌고. 지금 할 때가 아닌가 보다 해서 접었죠. 아직도 욕심은 있으신 거고요? 네. 5년 뒤에 시작하려고요. 5년 뒤면 50이거든요. 그때는 관객들이 제 얼굴 보고, 제 몸매 보고 (웃음) 선택하지 않고 음악 자체의 진실성을 보고 판단하지 않을까 싶고. 제가 영화를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연주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할 수 있으려면 테크닉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칠 수 있어 보다는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 한 5년 뒤면 준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관객과 직접 만나려고요.. 장편 영화음악으로 데뷔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2005년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으로 데뷔했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요? 저에게 천운이었죠. 제가 그 당시에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게임 회사에서 뽑았던 직원이 정윤철 감독의 교회 후배인 거예요. 자기네 교회에 감독 형이 계신 데 영화를 들어간다고 하더라. <말아톤>이라는 영화인데 아직 음악 감독을 못 구했다고 하더라. 이거 잘 됐다. 한번 되든 안 되든 데모를 한번 내보자. (가지고 있던) 데모 음악들 중 비슷한 음악들을 골라서 보냈어요. 그러고 나니까 이 친구가 다음에 <말아톤> 시나리오를 들고 오더라고요. “이걸 읽고 써주세요”, 하는 거죠. 그중 춘천 마라톤 장면을 읽고 써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봤어요. 감동이었죠. 시나리오를 읽고 감동을 느낀 게 아직도 있어요. 그래서 영화의 분석에 들어갔죠. 결론은,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 되게 탄탄한 영화다. 그 때문에 (음악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구조적으로. 두 번째는 초원이가 자폐인데, 의외로 엄마가 더 자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초원은 더 자유로운 사람일 수 있다. 역발상을 한 거죠. 그래서 ‘달려라 초원’이라는 곡을 써서 보냈는데, 그 곡은 일반적인 4/4 곡이 아니에요. 이런 (약간 엇박자의) 리듬을 가지고 있거든요. 일반인들은 그렇게 뛰지 않겠지만 초원이라면 그렇게 뛸 것 같더라고요. 그런 리듬과 초원이의 행복하고 자유로운 생각과 현악기와 피아노를 묶어서 만들었죠. 그랬더니 연락이 왔어요. 계약하자고. 그래서 계약하게 됐어요. (웃음) 첫 영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누구기에 여기 와가지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네”, 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영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원이가 연습하던 운동장을 7일 동안 찍었거든요. 아침부터 촬영이 끝나는 밤늦게까지 지켜봤어요. 지켜보니까 너무 심심해요. (웃음) 너무 괴로운 거예요. 오선지를 가지고 갔거든요. 틈틈이 작곡했어요. 결국 그때 작곡한 곡들이 대부분 다 들어갔죠. 초원이, 조승우 씨 얼굴을 보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곡을 한 거죠. 53회 촬영 회차 중에서 20회 넘게 촬영장을 나갔어요. 게임회사에서는 음악을 담당하셨던 거죠? 네네... 정윤철 감독도 신인이었고, 감독님도 입봉작이었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별로 없었어요. 아, 작업은 수월하게 하신 편이네요. 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혹시 이것이 어떤가요, 하면서 감독님에게 그때그때 드렸죠. 촬영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요. 약간의 프리 작업처럼 진행된 건가요? 그럼요. 촬영 기간 내내 작업했어요. 음악을 듣고 굉장히 많은 곳에 붙여보시더라고요. 이거 좋다 좋다 나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말아톤> 음악은 전체적으로 ‘자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무거움 등을 갖고 있고요, ‘장애’에 희생되는 가족들의 이면도 다루고 있고. 솔로 악기들이 그런 디테일들, 고독, 외로움을 표현해주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품은 밝은 분위기로 치환되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게 메인으로 쓰인 피아노인데요. 사용한 이유가 있었나요? 감독님이 요구하셨어요. 피아노와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가자. 지금까지 봤을 때 그게 가장 좋을 거 같다. 저도 동감을 했고요. 전반적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지만 다른 악기도 더 많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저에겐 어떤 미션이잖아요.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피아노가 주는 차가운 따뜻함이 있고, 황량함, 비어있는 거 같은 것. 굉장히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악기예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작곡 되어지는 여러 가지 기법 상 메이저와 마이너의 성격을 뭉뚱그려서 표현한 게 많거든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기쁘면서도 차분하고, 차가우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희망적인 것을 보이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죠. 달리는 장면의 곡들이 아름답습니다. ‘한강 마라톤’, ‘뛰는 가슴’, ‘달려라 초원’ 같은 큐들. 또 이것이 변주 확장된 ‘바람을 가르는 손’ 등. 영화 <말아톤>에서 가장 인상적인 테마이기도 한데, 멜로디라인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영감이 확 떠오르셨나요? 굉장히 많은 변형들이 있잖아요? 전체적으로 영화에 음악은 음정 관계에서 출발했어요. 완전 5도. 첫 오프닝부터, 완전 5도, ‘도’와 ‘솔’ 이런 개념이 많이 쓰이거든요. 두 번째 테마 ‘하늘이 걸린 풍선’ 같은 경우도 ’미라미레도시도레솔‘과 같은 완전 5도 음정이 많이 쓰여요. ‘달려라 초원’은 뒤집어서 ‘도솔미레 솔파미’… ‘도’와 ‘솔’, 완전 4도 뒤집으면 완전 5도, ‘솔’과 ‘레’. 이런 음정에서 출발했어요. 음악에 있어 분석의 씨앗은 완벽하게 찾아진 거거든요. 다행히도 초반에 테마 두 개가 다 나왔어요. ‘달려라 초원’과 ‘하늘에 걸린 풍선’, 정서적인 테마와 달리는 것에 대한 테마가 다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변주는 제가 자신이 있었죠. 뭘 해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삼천포 전략이라고... (웃음) 처음 시작하는 부분만 원래 테마와 비슷하게 가요. 한 마디를 넘기면 안 돼요. 그다음에는 마음대로 가는 거예요. 정서를 유지하면서 음악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법이죠. 처음에 ‘달려라 초원’ 음악을 주셨을 때 그 음악이 그대로 사용된 건가요? 네, 똑같이 사용됐어요. 그럼 두 번째 테마인 ‘하늘에 걸린 풍선’은 언제 작곡을 하게 되신 건가요? 계약하고요. (웃음) 계약하면 행복하잖아요. 마지막 춘천 마라톤 시퀀스는 전적으로 조승우라는 배우와 음악의 힘으로 달려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음악과 배우만 나오는 상황인데, 음악들은 시퀀스 하나에서 굉장히 여러 곡으로 쓰이거든요. 거기서 잡으신 주안점은 무엇이었나요? 일단은 초원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대한 문제였어요. ‘달려라 초원’은 경쾌하지만 해맑음이 없어요. 해맑은 느낌, 행복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다른 곡들이 준비되어 있었잖아요. ‘뛰는 가슴’이라든지 하는 곡이요. 전체적으로 형식적인 것들을 나눈 거죠. 쓰러지기 전까지, 거기서 주저앉은 다음까지. 그다음에 다시 일어나는 장면, 그다음 골인 지점으로 향하는, 그렇게 크게 세 덩어리가 있는데 다른 곡들을 각각 배치한 거죠. 조승우의 감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는 다른 조로 되어 있던 곡들을 같은 조로 편곡해서 연결하는 작업을 했어요. 맨 마지막에는 금관도 나오게끔 배치를 했고요. 한 곡으로 유지했으면... 아마 그 장면이 굉장히 길었을 거예요. 네. 20분 정도 진행되는 장면이죠. 네. 여러 가지 이미지를 들려줘야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느끼게 되니까 시간이 훅 지나갈 수 있죠.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제 음악상을 받으셨어요. 대종상도 받았어요. (웃음) 기분이 어떠셨나요? 첫 영화로 받으신 건데요. 큰일 났다 싶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내가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겠구나. 망가질 수 있겠구나. 청룡상 시상식 때 “초심을 절대 잃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큰 영광을 얻었는데. 공공의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약속이잖아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 이후에 처절한 투쟁이 시작됐죠. (웃음) 그다음으로 작업한 < 가발 >은 원신연 감독과의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이자 첫 번째 장편영화였습니다. 원신연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는지요? 고통스러웠죠. 부산 촬영 때 한 달 반 정도를 같이 가 있었어요. 전 영화를 거의 처음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 당시라 할지라도. 경험도 없는 데다 장르도 바뀌었고요. 곡은 쓸 줄 아는데, 이게 영화에 딱 맞는 음악인지는 확신이 없었어요. 감독에게 들려주면 감독은 계속 노노노! 그랬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저를 음악 감독에서 자르진 않더라고요. 끝까지 기다려줬어요. 2월 말에 시작해서 5월 중순까지 두 달 반 정도를 어떠한 테마도 못 잡았어요. 곡은 쓰지만 정신이 없었죠. 5월 중순이 돼서 곡을 하나 썼어요. 저도 확신이 섰어요. 감독님에게 들려주니, 감독님이 “준성아 그 음악 듣고 울었어. 너무 좋아.”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테마에 대한 확신이 생긴 거잖아요. 그다음에는 거기에 대한 변주가 빅뱅처럼 빵! 터져버린 거죠. 굉장히 많은 변주들이 이뤄졌어요. 테마가 하나 잡히면 그다음부턴 수월하게 가시는 것 같아요. 네 (웃음) 전 그래요. 첫 번째 호러영화였는데, 호러적인 느낌보다는 슬프고 애잔한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근데 그게 고전적인 우리네 한의 정서라기 보단 증오와 질투, 이런 개인적인 감성들에 가깝고, 굉장히 아름다워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의 피노 도나지오나 엔니오 모리꼬네 선율처럼도 느껴졌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호러영화인데 왜 이렇게 아름답게 갔을까? 자매간의 정이 더 중요한 주제였어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을 절제 하고, 큰 덩어리의 정서가 흘러갔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백퍼센트 믿은 제가 실수한 거예요. 공포 영화의 미덕은 무서움이거든요. 아름다움은 그다음의 부가적인 거예요. 그런데 아름다움이 우선이 되고 무서움이 거의 없으니까. 제가 만약 지금 <가발>을 한다면 아름다운 음악의 절반을 잘라버릴 거고요, 무서운 사운드적인 음악을 반 이상을 도배를 할 거예요. 그럼 관객들도 무한히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선율)에서가 아니라 극히 일부를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서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은) 너무 흔해져 버려서. (웃음) 그래서 음악 때문에 실패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후회를 많이 했죠. 그 당시 만들어진 호러 영화들이나 스릴러들이 유독 클래식컬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치 유행처럼. 이병우의 <장화, 홍련>이나 <분홍신>, 심현정 이지수 최승현의 <올드보이>, <혈의 누> 등 이런 영향이 있었나요? 아뇨, 전혀 없었어요. 원래 저의 색깔이에요. ‘가족을 위한 왈츠’ 라는 왈츠가 주된 테마로 등장합니다. 왈츠는 목적이 있었어요. 다들 왈츠를 쓰더라고요. <올드보이> <장화, 홍련> 저 이후의 어떤 사람도 왈츠. 그래서 왈츠의 끝장을 나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라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만들어봤죠. (웃음)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 Dies Irae(진노의 날)과 동명의 성가곡은 성당에서 흘러나오는데, 영화의 엔딩과 비춰봤을 때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영화의 반전과 관계있는 내용입니다!)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르는데, 여성과 남성 사이의 목소리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소년소녀합창단은 영화사에서 촬영을 위해 준비한 합창단이었어요. 촬영을 위해 섭외했는데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돈도 아낄 겸 녹음을 하자! 악보를 미리 보냈어요. 녹음실이 아니고 촬영장에서 녹음한 거예요. 붐 마이크를 스테레오로 잡아서요. 그런데 솔로가 좀 약했어요. 솔로의 밸런스가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이 음악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보강 했어요. 임지성, 홍주영, 박희준 세 명 불러서 더빙을 해서 보강을 한 거죠. 소년을 쓴 의도는 따로 없었어요. 영화사에서 해준 거니까. 주어진 환경에 충실히 했던 거죠. 그 뒤 작업한 게 < 3인 3색 러브스토리 - 사랑즐감 >이라는 옴니버스 작품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개봉되었고, KT 의뢰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 등 특이한 영화였는데요. 그중 정윤철 감독의 <폭풍의 언덕> 음악을 담당했는데, 어떤 작품이었나요? 급하게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까지 작업 된 음악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그래서 저에게 SOS를 친 거죠. 끝내야 할 날짜가 다음 주인데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갔어요. 가서 영화를 보니까 판타지가 있는 소소한 멜로의 느낌이 있더라고요. 코믹도 있고. 그래서 해보겠다고 하고 작업을 시작했죠.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하다 보면 음악이 주는 뉘앙스가 있어요. 화면을 보면서 연주를 해봤더니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테마를 하나 만들고, 그 다음 날 테마를 통해 변주를 시작했죠. 결혼식장의 음악은 결혼식의 느낌을 코믹하고 유희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아코디언을 썼어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게 된 거죠. 딱 일주일이 걸렸어요. 감독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그 당시 감독님은 만족하신 거 같은데요. 이상하게 그다음부터 저를 안 부르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그다음에 감독님 두 작품을 더 하셨잖아요. 저를 안 불렀어요. 각각 주제곡이 있었는데(에픽하이, 이소은, 성시경), 이는 별도로 진행되었던 건가요? 네, 그건 저와 별도로 진행된 거예요. 단편 작업은 장편과의 차이가 있나요? 네, 차이가 있어요. 일단 예산의 차이가 크게 나고요. 짧은 기간에서 핵심적인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이 좀 다른 거 같아요. 줄줄이 줄줄이 할 이야기 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줄여서 정제되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죠. 그래도 좀 긴 단편이 있어요. 그런 단편의 경우는 감독님들도 원하시고 해서 상업적인 영화음악처럼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대체로 단편은 오랫동안 생각하며 만들 수가 없죠. 원신연 감독과의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는 < 구타유발자들 >이었습니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지역색이 담긴 블랙코미디이자 부조리극이었는데요, 어떤 콘셉트를 잡으셨는지요. 이것도 고통스럽게 작업했죠.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공부가 시작했어요. <가발> 때 ‘음악’은 성공했다 하더라도 영화(음악)적으로는 실패한 거였으니까요. 영화랑 딱 맞는 음악이 아니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때부터) 각각의 영화를 하면서 영화를 통해 남들이 안 하는 짓을 꾸준히 해보자고 했고, 그 첫 번째가 <구타유발자>였어요. 그러나 원래 콘셉트 잡는 것이 힘든 음악 감독이기 때문에 두 달을 또 고통스럽게 보낼 수밖에 없었죠. 감독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발상의 전환을 하라고 했던 거 같아요. “우리 영화의 제목이 뭐냐. ‘구타유발자들’ 아니냐. 앞에 두 글자 따서 구ㅌ, 굿 그걸 타악기로 만들어 봐.” 그렇게 던진 거죠. 전 덥석 물었죠. 한국 전통적인 굿의 양식과 분위기, 그리고 한국 타악기를 통해서, 팀파니와 같은 서양의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쓰는 거 말고 다른 타악을 합쳐서 굉장히 묘한 걸 만들 수 있겠구나, 손뼉을 탁 쳤죠. 먼저 해야 할 것은 타악기를 녹음할 것인가, 미디로 연주할 것인가를 결정했어야 했어요. 꽹과리를 녹음한다고 했을 때, 연주자는 백 퍼센트 내가 요구하는 악센트를 연주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시끄러울 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북과 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장구는 대체 가능할 거 같았지만 꽹과리는 정말 한국적인 악기거든요. 꽹과리를 가지고 녹음을 하자. 그래서 꽹과리를 가지고 분리된 소리를 녹음을 각각 했어요. 딱, 따악. 소리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이런 것들을 다 녹음 한 거죠. 컴퓨터에 샘플러에 넣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는 거죠. <구타유발자> 하면 오지에서 외로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공포감이 있잖아요. 그것을 표현해주는 악기가 뭘까. 예전에 와인 잔에 물을 찍어서 돌리면 이상한 소리가 나죠. 그릇 가게 가서 서로 다른 음역대의 소리가 나는 유리잔을 다 샀어요. 그걸 녹음실에 가져가서 하나씩 녹음했죠. 그릇가게에서 다 해보신 거예요? (웃음) 네, 그렇죠. (웃음) 그 그릇들로 음계를 만들어서 영화에 쓴 거죠. 테스트를 해봤을 때 반응이 무지 좋았어요. 감독님도 좋아했었고 영화사도 좋아했어요. 아 됐구나. 그다음은 풀린 거잖아요. 마음대로 했죠. 그렇게 음악을 가지고 노는 것들이 많아요. 감독님은 처음 콘셉트를 잡으시면 그다음은 재미있게 작업하시는 거 같아요. 네, 맞아요. 삽입곡으론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에서 ‘나무숲 속의 새들’과 비제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김진표의 ‘350초 미친년 추격전’이 오프닝과 엔딩에 쓰였습니다. 선곡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선곡은 감독님의 아이디어에요. 오페라는 제가 곱하기 5배수를 (후보작으로) 드렸고, 결정은 감독님이 한 거죠. 그러고 나서 2006년도에 게임 음악을 하셨는데요, 원래 계셨던 게임 회사의 일을 하신 건 아니시죠? 네, 다른 게임회사 음악을 했어요. 제가 예전에 몸담았던 게임회사에서는 딱 한 곡을 썼어요.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0개월 정도만 있었지만. 영화를 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이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영화만 하기에는 한가할 때가 있거든요. 틈틈이 작업 했죠. 지금도 서비스가 되는 게임이에요. <그라나도 에스파다>. 아 그래요? 아까도 메일이 왔어요. <그라나도 에스파다> 로그인 음악 악보 좀 달라고. (웃음) 영화음악가들의 게임 음악 진출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도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나 브라이언 타일러,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등이 <메탈 기어 솔리드>나 <어쎄신 크리드>, <라스트 오브 어스> 등을 맡는 것처럼.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화면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 차이예요. 아, 굉장한 차이인데요? 네, 곡을 많이 쓸 수도 있죠. 완전히 음악적인 구성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좀 편해요. 다시 게임이나 혹은 애니메이션과 TV 쪽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지요? 관심은 여전히 많아요. 우선순위를 보자면 영화음악이 최우선적인 것 같고요. 그다음의 음악들은 만드는 것에 대한 보람을 찾아야 하는 거 같아요. 그것이 돈이건 명예건 음악적인 가치건. 그런 것들이 충족되면 하는데 지속적으로 하려면 뭐든지 음악적인 가치가 보장되어야지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굉장히 매력적인 거죠. 그리고 박철웅 감독의 < 특별시 사람들 > 음악을 맡으셨어요. 영화는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 어떤 작품이었죠? 네, 개봉 못 했어요. 타워 팰리스 맞은편에 있는 가장 못사는 동네 (이야기)예요. 거기서 철거를 해야 하는, 그래서 이주를 해야 하는 가족이 해체되고 재결합하게 되는 드라마죠. 4남매 중에서, 남자가 3명이 있는데 일남이 이남이 삼남이예요. 삼남이가 음악을 해요. 노래를 잘하는 아이거든요. 이 아이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말아톤>과 같은 영화사였어요. 대표님이 추천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감독님, 왜 감독님께서 이 음악을 하셔야 하는 건가요?” 그때 제가 대답하길, 삼남과 제가 똑같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여기까지 왔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음악을 통해서였으니까. 그런 한 가족의 소망을 제가 음악으로서 지켜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꼭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개봉을 못 했어요.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제가 만든 음악 중에서 최고로 잘 만든 음악이었거든요. 음악은 제 블로그에 올려놨으니 들어보실 수 있어요. 그러고 보면 음악감독들이 다 개봉하지 못한 작품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이렇게 대중과 만나지 못하는 작품을 볼 때면 기분이 어떤가요. 슬프죠. 먹먹해져요. 만들어 놓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를 못하는 거잖아요. 그 먹먹함이 저뿐 아니라 감독님, 참여한 스태프들 모든 사람이 느끼는 거죠. 슬퍼요. 그나마 저는 자유롭죠. 음악이라도 한풀이 삼아 들려줄 순 있잖아요. 그 다음 작업하신 게, 사극 호러인 <전설의 고향>의 음악이었습니다. 김지환 감독은 호러 마니아로 알려졌는데, 음악적으로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적으로는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어요. 한국적인 것을 배제하자고 하시는 분도 계시잖아요? 사극이란 걸 해서, 국악의 원류를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현대적으로 재해석을 어떻게 해할 것인가. 그 당시 사극 음악에 대한 고민이 최근의 <광해>까지 이어지지 않나 싶어요. 만드는 방법이라든지 기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쌍둥이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극 중 소연과 효진이 연상케 합니다. <가발>처럼 자매 이야기이고, 또 역시 반전 아닌 반전을 갖고 있죠. 하지만 <가발>보다 호러적인 사운드에 주안점을 뒀어요. 전반적으로 두 가지 콘셉트를 잡았어요. 정서적인 것과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는 작곡을 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야지만 작곡이 되더라고요. 사운드를 수백 가지를 만들었어요. 각각의 사운드를 만들어서 모자이크 붙이듯이 배치를 한 거죠. 음악적 구성을 하며 배치를 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스타일을 바꿨어요. 무서운 이야기는 해체와 재결합이에요. 그리고 정서적인 음악은 영화에 충실하려고 했고, 기법은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가되 국악적인 것은 가지고 가지 말자. 그쪽으로 접근을 했고요. 이희승 아우라 엔터테인먼트 대표와 공동으로 작업하셨어요. 어떤 식의 공동 작업이었나요? 싸움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이희승 대표가 아니라 다른 작곡가가 있었거든요. 한동안은 그래서 공동 작업은 안 하게 됐어요.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물론 많은 장점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메꿔주니까. 음악 감독이 둘이 있으면 음악적 능력이 두 배로 뛰거든요. 혼자 작업했을 때부터 음악이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지거든요. 그래서 힘들긴 했지만 그걸 알고부터는 공동 작업을 많이 시도하게 되었죠. 이후 < 세븐 데이즈 >부터 ‘씨네노트’라는 팀을 꾸리게 된 건가요? 네, 회사를 만들었죠. 호러적인 스코어와 음향과의 차이가 있을까요? 호러적인 스코어는 음악적 구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호러적인 사운드는 음악적 구성을 제외하고 효과만 노리기 때문에... 제가 봤을 때는, 사운드는 영화 믹싱할 때 하잖아요. 이걸 음악가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요. 큼지막한 소리들은 제가 만들기도 해요. <가발>에선 머리를 긁다가 알약이 툭툭 떨어지는 장면이나 <전설의 고향>에선 유명한 깨 씬이 있습니다. 기괴한 비주얼들이 있는데, 작업하면서 힘들진 않은지. 전 웃으면서 해요. 전 (무서운 걸) 즐겨요. 만들 때는 다 포인트를 알잖아요. 포인트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면 전 흐뭇해져요. 가학적인 사람이죠. 호러영화에 최적화되셨네요. 요즘 다시 하고 싶어요. 작업하지 않는 호러영화들도 잘 보시는 거예요? 그건 안 봐요. 약해요. 서양의 무서운 것들을 몇몇 골라서 보긴 해요. <쏘우> 시리즈, <호스텔>도 좋아하고... 원신연 감독과 세 번째 장편 <세븐 데이즈>를 맡으셨습니다. 원래 연출은 각본을 맡은 윤재구 감독이었다가 교체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음악 제의는 그 이후에 받게 된 건지. 네 원신연 감독이 저에게 해주신 거죠. 역시 <세븐 데이즈>도 그 전의 모든 영화음악과 다르잖아요. 역시 또 고통 속에 시작했죠. 핵심은 빠른 비트를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레퍼런스는 ‘본’ 시리즈였고요. 정서적인 것은 < 플라이트 93 >이었고요. <플라이트 93>은 봤지만 ‘본’ 시리즈는 한참 있다 봤어요. 음악만 듣고 분석을 해봤는데, 미니멀 음악이거든요. 기법을 보면요.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거죠. 증폭시키면서요. 미니멀에 대한 감은 제가 있었어요. 공부한 것도 있고, 그 효과를 느끼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요. 그러나 이것이 다른 작곡가의 미니멀과 김준성의 미니멀은 달라야 하거든요. 그 점 때문에 그 차이를 찾아야 하는데, 안 나오는 거죠. 그래서 포기했어요. 쉽게 가자, 고 생각해서 몇 가지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했죠. 일단 리듬부터. 딴딴딴… 332 박자의 변형을 통해 저음에서 보여주니까 그 자체가 어떤 역동감이 생기죠. 두 번째, 나머지 파트의 현악기들도 그렇게 연주하니까 묘하게 긴장감이 생겨요. 음은 하나밖에 없어요. 딴딴딴 딴딴딴.. 구조적으로, 강약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들을 달리게 하는 거죠. 불안하게 만들고. 화음은 두 개밖에 없어요. 1도와 6도의 마이너 형태를 썼죠. 화음이 없으니까 관객들은 너무 명확하게 이 음악을 파악하게 돼요. 그래서 이것을 변주하는 느낌을 통해서 관객들이 음악이나 영상에 집중할 수 있게끔 했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만의 독특한 음악이 나왔던 거 같아요. 포기하니까 나와요. 많은 사람들이 <세븐 데이즈> 음악을 인정해주고 좋아하더라고요. 감사하죠. 컷들이 빠르고, 핸드헬드와 주밍에, 대사와 효과도 많아서 음악이 손해보는 부분도 없지 않은 거 같아요. 씬 전반에 걸쳐 음악이 길게 배치되기도 하는데(‘세븐 데이즈’ 같은 트랙은 10분이 넘어간다), 이런 미키마우징을 구성할 땐 어떤 느낌이었나요? 일단은 배우의 행동, 움직임을 봐요. 저게 구조적인 움직임일까, 습관일까 연기일까. 구조적인 움직임은 제가 다 체크를 하죠. <세븐 데이즈> 같은 경우는 맨 마지막에 김윤진 씨가 묶여있는 장면이잖아요. 그리고 정동환 씨가 서류를 불에 던지는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다음 일어서 나가고 뒤돌아보고 하는 장면도 이어지고요. 그런 구성을 다 짜서 중요한 포인트를 타악기로 가죠. 그런데 타악기가 정박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이 점이 <세븐 데이즈> 음악의 큰 매력인데 전체 음악을 정박으로 가지 않게 썼어요. 전 간헐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박자라는 거죠. 이것들을 행동할 때 중요한 포인트에 다 넣었어요. 큰 덩어리의 형식은 음악의 형식이 바뀌는 것으로 처리하고. 전체적으로 쌓아나가는 구성으로 해서 긴장도가 누적돼서 폭발하도록 했어요. 십 분짜리 음악은 그다음에도 음악을 만드는 데 어떤 기준이 됐어요. 김미숙 씨가 잡혀갈 때, 엔딩 몽타주에서 자닌토의 ‘Blu YonS Tae’가 선곡되었어요. 제가 2004년에 ‘어느 아침’을 재발매한 적이 있어요. (자닌토가) 거기 음반사 대표님이세요. 거기에 사장님의 음반을 넣고 싶다고 부탁을 했더니 추천을 해주셨어요. 처음 듣고 뿅 갔어요. 약간 명상음악 같았습니다. 네. 발음을 스스로 만든 거예요. 음악성도 굉장히 깊었고요. 그중 2곡을 선곡한 거죠. 미발표 곡이었는데, 개봉한 이후에 (그분) 개인 앨범에 수록되었어요. 윤인호 감독의 <더 게임>은 니이타 타츠오의 <체인지>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캐릭터도, 설정도, 세트도 과장된 느낌이 있는데,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했는지요? 음악은 촬영과 편집이 다 끝나고 왔어요. 음악 감독님이 교체된 거죠. 전에 하신 분은 모르겠는데. 한 달 안에 끝내야 했어요. <세븐 데이즈>를 하는 도중이 아니었나요? <세븐 데이즈> 끝난 다음에, 시사회 후에 찾아오셨어요. 한 달 만에 해야 한다. 해 달라. 실제로는 50일 정도 걸렸어요. <세븐 데이즈>와 같은 영화사예요. 그래서 하기로 했죠. 저는 판타지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사는 “그러면 관객이 안 드니까. 판타지 영화는 한국에서 성공한 적이 드무니까 액션으로 해 달라. <세븐 데이즈>처럼 해 달라.” 그래서 두 가지 버전을 만들었어요. 두 번째 버전이 미니멀한 스타일로 액션감이 있고 긴장감이 있으니까 그 점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사에서 사실은 포기한 작품 중의 하나였어요. 그나마 음악이 바뀌면 좋지 않았을까, 했던 건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이 들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웃음) 불길한 느낌의 오보에, 혼과 스트링, 그리고 묵직한 피아노가 어우러지며 장중한 묘미가 들었습니다. 악마적이기도 하고 드라마틱합니다. 특히나 ‘체인지’라는 큐가 <죽어야 사는 여자> 테마 같았어요. 이 영화는 액션적인 테마는 그리 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누군가가 몸을 바꾸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집에 가고, 영향을 받고 다시 가족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로 생각했어요. 액션은 필요한 부분에서 쓸 수 있지만 중요한 테마는 아닌 거죠. 음악 선택의 기준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 주변의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체인지’는 제가 아니고 서재영(씨네노트의 직원)이라는 제 친구가 만든 곡이에요.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고,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물음을 계속 줘요. 어떤 사람은 코믹으로 보는 사람, 무서운 이야기로, 액션으로 보거나 그로테스크한 걸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걸 고르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처음부터 배치를 하는 거죠. 중요한 장면들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또 다른 구조로 만들어내고 이러면 음악이 통일성과 다양성이 생기죠. 제가 공동 작업을 할 경우 저 자신에 대해 엄격해지는 거 같아요. 안 맞으면 제가 제 곡은 안 써요. 강회장의 전부인 이혜영 과 희도의 삼촌 손현주 씨가 제거되며 희도의 여자 친구가 어렴풋이 사건을 알아차렸을 때 흐르는 ‘더 게임’이란 곡은 7분에 걸친 긴 음악입니다. 시퀀스 자체를 음악으로 묶는 건 할리우드에서 주로 쓰는 경향인데 어떤 부분을 의도했는지요. 역시 이것도 미니멀이잖아요. 아무리 길어도 변주에 따라서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거거든요. 작곡 테크닉이 제일 중요해요. 큰 형식을 잡아놓고 나머지는 조금씩 변하면서 변주를 주는 방식이거든요. 길어도 저는 (그런) 작곡이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씨네노트에서 디지털 앨범으로 최초로 발매된 사운드트랙입니다. 왜 CD 발매를 안 했는지? 디지털 음원 시장의 가능성을 본 건지? M&F가 어려워졌어요. 음반을 내주는 회사가 없어진 거죠. <세븐 데이즈>의 음반은 제가 만들었거든요. 안 팔려요. 그래서 디지털이라도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자료의 공유 차원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 뒤로도 한동안 디지털 출시가 이어져요. 그다음이 세 번째 호러 영화로 창 감독의 <고사: 피의 중간고사> 음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사실 말이 호러지 스릴러에 가까운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맞아요. 가리자. 관객의 눈을 가리자. 관객이 느끼는 것을 유도하자, 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음악이 빠르고 박진감이 넘치는 것을 썼는데요. 너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16mm 영화예요. 화질이 안 좋아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했을 때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따라가도록 해야겠다 했어요. 지루하지 않게. 안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나... 발각되기 쉬운? 발각되기 쉽죠. 영화가 굉장히 짧아요. 한 방에 훅 보고 나오도록 해야겠다. 시작부터 해서 어쩔 수 없이 공포적인 사운드를 하지만 중반부터는 달리게 했죠. 호러 스코어에선 역시나 합창(코러스)의 위용이 제맛인데요. ‘피의 중간고사’란 큐에서 바로크적인 분위기와 함께 이런 스타일을 잘 들려줍니다. 가사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하네요. 라틴어예요. ‘레퀴엠’이라든지 하는 곡에 많이 나오는 가사죠. 합창단이 부른 건 아니고요. 컴퓨터에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게끔 해서 프로그래밍해서 만들었어요. 속편 <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의 음악은 맡지 않으셨어요. 아쉽진 않으셨는지. 네, 영화사가 바뀌니까. 정윤철 감독님도 다른 분들과 하는데... (일동 웃음) 2008년도였는데요. 원신연 감독님이 <태권 브이> 실사판을 준비하셨습니다. 4년 정도 준비하다 중단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원 감독님의 음악적인 파트너로서 사전 작업 된 게 있었나요? 원 감독님이 얼마나 냉혹하시냐면 그간 세 작품을 쭉 해온 저를 절대로 내정을 하지 않으세요. 똑같은 위치에서 많은 사람의 데모를 받아보고, 제일 좋은 걸 선택하겠다 하셨죠. 그래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음악 감독님들이 데모를 냈던 걸로 알고 있고, 결국 제가 선택됐어요. 근데 영화는 못 들어갔죠. 사전에 준비는 안 하셨죠? 데모를 냈어요. 총 4개를 냈었죠. 그중에서 제 데모가 가장 <태권 브이>와 근접 하다고 하더라고요. <태권 브이>는 故 최창권 씨의 음악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두 개는 그 음악을 기본으로, 나머지 두 개는 새로운 곡으로 만들었죠. 그 유명한 주제가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셨던 건가요? 그 주제곡이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단점은 현대 영화와 안 맞는다는 거예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고요. 장점은 예전의 향수를 공유할 수 있다, 라는 것이죠. 그걸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가장 힘들었고, 결국 원래 원곡의 이미지를 해체하지 않으면 못쓰겠구나, 하는 판단을 했어요. 빰빠라빰… 하는 <태권 브이>가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전주 부분은 가지고 올 수 있죠. 하지만 본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사용하기가 힘들죠. 그런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앞의 금관 테마만 가져와서 중요하게 작업을 했었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요. (일동 웃음) 원신연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건가요? 아주 오래전 2000년도에 <적>이라는 천만 원 들여 만든 작품이 있어요. 그때 음악 감독을 구하는 과정이었고, 저는 연우무대에서 연극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김석주 씨라고 연우에 계시던 분이 <적>에 투자하신 거예요. 그분의 소개로 만나게 됐죠. 그 영화를 같이 한 건 아니고요. 개런티 협상에서 실패해서 못했고. 그때 제가 음악 한 번 들어보라고 준 게 있거든요. 필요할 때마다 그걸 단편 작업하시면서 야금야금 그 곡들을 쓰시고 통보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다 <자장가>라는 작품을 할 때 저에게 오셨어요. 쓸 만한 곡이 없었거든요. 저에게 특유의 노래가 있었는데요. 그걸 편집해서 보내준 적이 있었죠. < 빵과 우유 >는 음악이 없으니까 제가 필요가 없었고요. 다음 작품이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작품이 홍지영 감독의 첫 영화 < 키친 >입니다.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키친>은 2007년경부터 진행하던 영화였어요. 2년을 기다렸는데... 처음에는 예산규모가 좀 있었어요. 싸이더스에서 시작했었는데 수필름으로 넘어가면서 예산이 대폭 줄어져 버린 거예요. 예산만 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같이 진행한 기간이 억울한 거예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리가 더 중요한 것이라며(웃음), 제가 더 지출해가며 연주 예산을 잡았죠. 홍지영 감독의 콘셉트는 ‘빛’이에요. 미술로 따지면 인상주의라 할 수 있죠. 빛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죠. 전체적으로 꿰뚫는 것은 인상주의적인 것을 많이 차용해서 쓰려고 했어요. 음악에서 인상주의적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일단 화성적인 진행 방식이 달라요. 음을 쓰는 방식이 전통적인 작곡 기법보다는 좀 더 음… 두루뭉술한 느낌이 좀 더 있죠. 그러면서도 음악적 구성은 다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빛이 다 살아나는 작품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음악까지 인상주의적으로 가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진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게 준비된 음악 중 한 곡을 빼고는 다 버리기도 했어요. 그 한 곡이 무엇인가요? ‘낯선 정사’ 라는 곡입니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동거에 대한 이야기였죠. 쉽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닐 수도 있는데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지도 있고. 그런 민감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음악은 영화처럼 편안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고서 요구되는 음악들을 다 만들었어요. 회사(씨네노트)에서 작곡가들이 즉흥적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했어요. 전 녹음도 하고 연주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들을 영상에 붙여봤어요.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죠. 거기서 선택하는 과정이었는데요. 4명의 작곡가가 참여를 했는데, 전체적인 색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어요. 원래는 피아노로 만들어진 곡이고, 4명이 다 다르니까. 색채를 입히고 영화적으로 자르고 편집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제가 했죠. 4명의 작곡가가 했지만 한 사람이 한 것처럼요. 엔딩 곡으로는 마이큐의 ‘일 년 후’는 어떻게 선곡하게 되었나요. 영화에선 요조가 부른 버전이 엔딩에 흐르는데, 사운드트랙에선 신민아가 부른 버전이 실렸어요. 판권에 대한 문제 때문에 그래요. 영화에서는 허락을 받았지만 OST에서는 허락을 못 받아서 새로 녹음한 거죠. 주지훈 씨가 불어로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와 신민아 씨가 부른 이 곡 때문에 사운드트랙이 판매가 많이 됐어요. 특히 일본에서 원정을 와서 사가는 경우도 있어서 5,000장을 찍었는데 그게 모두 나갔거든요. 일본 현지에서도 많이 팔렸고요. 배우가 인기 있으니까 잘 팔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사실 데뷔작이 <말아톤>이어서 이런 감동물이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룰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필모를 채우고 있는 건 장르영화가 많습니다. 스릴러나 액션, 호러 같은 장르물. 김한민 감독의 <핸드폰>이나 이정호 감독의 <베스트셀러>, 김홍선 감독의 <공모자들>까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취향인 건지? 제가 가장 못 하는 거였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구타유발자>는 남들과 다른 발상으로 시작한 특이한 음악, 블랙 코미디에 대한 도전이었고요. <세븐 데이즈>는 빠른 액션 , 할리우드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에 대한 생각, 거기서는 음악에 대한 확장이 이루어진 거죠. 기존은 오케스트라를 음악이라고 했다면 이제는 소리 날 수 있는 모든 소재들이 음악적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거였고. <더 게임>은 너무나 빨리 만들어서 생각할 틈이 없었고요. 공포영화를 액션영화처럼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실험을 <고사>에서 했었고요, <핸드폰>에서는 싱크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싱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완벽하게 배웠죠. 그게 잘 적용된 게 <차우>였어요. <차우>는 배우 움직임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그게 절묘했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이후부터 음악이 더 잘 안 들리게 된 거 같아요. 꺼내서 보면 좋은데 영화와 보면 영화 속에 묻혀버리는, 그렇게 된 게 <차우>부터였고요, 그다음에 <베스트셀러>같은 경우는 왜 사운드를 녹음실에서만 하지? 내가 해봐야지. 음악적인 사운드를 실험했죠. 그다음 <심야의 FM>같은 경우는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음악적으로 가지고 오면서 영화의 극한을 보여주는 쪽으로 생각했었죠. 영화마다 목적과 콘셉트가 다 다르네요. 네, <심야의 FM>까지 하고 나니까 이제 공부 다 끝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하셨던 이야기 중에서 <핸드폰>이 싱크에 대해 큰 의미를 두셨다고 했는데, 영화의 어떤 면 때문이었는지요? 감독님께서 예전과는 다르게 촬영 내내 음악을 들려주면 너무나도 유쾌하게 웃다가 가셨어요. 그런데 편집을 끝내고 나서 저를 때려잡는데 그 개념이 싱크였어요. 음악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싱크가 안 맞는다. 저는 큼지막하게 봤다면 감독님은 디테일하게 봤던 거죠. 그 정보를 조금이라도 빨리 주셨으면 다 했을 텐데. 저를 가장 때려잡으셨죠.(웃음) 그다음부터 싱크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됐어요. 이중에서 <베스트셀러>만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되었고, <핸드폰>과 <공모자들>은 음원으로도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은 제가 정리를 못 했어요. 끝나고 난 다음에 OST 정리할 여유가 없었어요. 당시에는 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제 사이트에 모두 공개해놨어요. <공모자들>은 그때 음저협과 영화사와의 마찰이 있을 때였어요. 그때 딱 걸린 거죠. 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내면 저작권 청구를 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눈물을 머금고 못 내게 됐어요. 그게 편법으로 풀리게 된 게 <광해>때 부터였어요. <광해>는 어떻게 하게 됐냐면 누가 음저협에서 전화가 온다면, 누구 곡입니까, 하고 물어보게 만들자. (공동 작업이었기 때문에) 제가 안 만들었습니다. 모그가 했습니다. 모그 감독은 김준성 감독님이 했습니다. 하면서 서로 떠넘기기를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웃음) 디지털 음원은 CD와 달라서 공개 시 제약이 없는 거죠? 작곡자가 작업을 하고 공개를 하겠다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도 영화사와 계약은 따로 해야 해요. <공모자들>은 인물(조윤희나 최다니엘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할 땐 스트링이 부각되고, 임창정, 조달환, 오달수 등의 캐릭터에선 일렉 기타가 두드러집니다. 악기의 선택이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하고 활용하는지요. 장르 성격에 따라서 만약에 영화를 클래식으로만 하게 되었을 때, 물론 개별적인 주제들이 있어서 분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관객들에게는 한 가지로 들리거든요. (서로 다른 악기군을 활용해 배치하는 것이) 장르가 다양한 두 개의 복합장르라 한다면 융합되고 흩어지고 따로 나오기도 하고 하면서 다양한 심상을 보여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배치를 했어요. 신정원 감독의 < 차우 >는 미국 로케이션까지 감행한 대작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자주 보이는 크리쳐 액션물을 떠올렸는데, 실상 영화를 보면 조금 당황스러운 유머가 촘촘히 배치된 스릴러에 가까웠어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런 독특한 영화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지? 이것도 제가 막판에 들어간 영화예요. 제가 막판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영화가 잘 되더라고요. (웃음) <더 게임>도 막판에 한 달 남겨놓고 들어갔잖아요? <고사>도 원래 제가 하던 음악이 아니었어요. 우리 회사의 다른 작곡가가 하던 거였는데, 몸이 아파서 제가 대신하게 됐죠. 그 영화도 잘 됐잖아요. <차우>도 그랬고 < 연애의 온도 >도 그랬어요. 이 영화는 음악 감독이 선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까지 다 끝났죠. 그래서 그것도 한 달 반 두 달 만에 끝냈어요. <차우>는 시나리오를 못 봤어요. 편집본을 본 게 처음이었죠. 애초에 이런 영화인지는 알고 계셨던 거네요? 처음에는 제목만 알던 영화였죠. 그런데 처음 편집본을 보고나니 과장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음악으로 접근하면 실패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콘셉트는 과장이다. 멧돼지가 귀엽게 나오는데, 이 멧돼지가 무섭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과장을 해야 한다. 언밸런스함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쓰는 거죠. 음악에도 깨알 같은 유머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 거대함에도.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번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차우> 음악을 듣다 보니 음악은 의외로(영화의 코믹한 느낌과 달리) 진중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멧돼지 습격’, ‘돼지 사냥꾼’, ‘마을 회관’, ‘차우의 추적’, ‘멧돼지 잡기’ 등 큐들은 박진감 넘치고 할리우드 스코어 같은데요, 그런데 마을의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던져주는 ‘삼매리 사람들’, ‘이장님 말씀’ 같은 곡과 대비돼 효과가 크게 느껴졌어요. 일단 두 가지 콘셉트였어요. 블랙 코미디와 덩치. 블랙 코미디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음악이 안 나와요. 뒤통수를 쳐야 하는 음악이어야 했던 거예요. 덩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야지만 나오죠. 그래서 정확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줘야 하고요. 나머지는 편법으로 변칙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이것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밸런스를 맞추게 되면 의도가 뭉개질 거 같아요. 그래서 그 둘을 개별적으로 놓자, 라고 생각했죠. 덩치를 만드는 음악에는 제가 주력이 되어 있고요, 블랙 코미디 적인 음악은 다른 사람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씨네노트의) 서재형 작곡가가 작업했어요. 엔딩 크레딧을 보면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처럼 배우들이 나와 포즈를 잡아요. 그때 흐르는 테마도 인상적입니다. 8~90년대 팀 버튼 영화에 나올 법한 사운드더라고요. 네 맞아요. (관객들이) 영화 보고서 무섭게 봤던 기억보다는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영화의 색을 봤을 때 블랙 코미디의 음악이 뒷부분에 들어가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계속 달리거든요. 덩치로 밀어붙이는데. 약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끝을 맺고 싶었죠. 그래서 서재형 작곡가에게 부탁했어요. 전 그런 걸 잘 못해요. (웃음) 전 무겁고, 진중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그런 것들을 주로 하죠. 그러고 보니 감독님 필모에 코미디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예전에 < 동갑내기 과외하기 2 >를 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짤렸어요. (웃음) 음악이 너무 슬프대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제가 만든) 음악을 들어봤더니 역시 슬프더라고요. 짤릴만 하구나… 그다음 민규동 감독의 < 끝과 시작 >은 < 오감도 >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작품입니다. 장편으로 늘려서 2013년에 다시 한 번 개봉했는데, 국내에서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이죠.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요? 단편과 장편 편집 때 다시 후반이 이뤄진 건가요? 아니요. 민규동 감독이 7회차에 촬영을 다 해서 만든 작품이 장편이고, 그걸 줄인 게 단편이었죠. 전 두 개를 다 준비했어요. 처음에 작업한 건 단편. 단편을 토대로 해서 장편까지 다 갔죠. 2009년에 그 작업이 다 이루어진 거네요. 작업이 다 끝나고 개봉만 2010년으로 미뤄진 거군요. 네 맞습니다. 음악이 마치 에로틱 스릴러 스코어 같아요. <오감도> 자체가 에로스 프로젝트이긴 했는데, 제리 골드스미스의 <원초적 본능>이나 알란 실베스트리의 <가면의 정사>가 떠오릅니다. 특이했던 거 같아요. 신디 사운드에, 스트링의 활용이 그러한 스타일이었는데요. 어디에 초점을 맞추셨는지요. 판타지죠.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에로보다 판타지 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판타지를 낼 수 있는 악기군이 따로 있어요. 첼레스타, 비브라폰, 비슷하지만 판타지에서 조금 멀어지는 피아노, 판타지에서 가장 멀어지는 스트링까지. 그다음 신디사이저 소리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건 판타지를 유지하려 함이었어요. 그다음 화음이 거의 안 바뀌죠. 화음이란 게 바뀌게 되면 음악으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에 판타지에서는 화음을 안 바꾸는 게 좋아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 멜로디를 만들고 편곡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엔딩에 흐르는 곡은 휘루 1집에 실린 ‘Dark Sun’을 개사한 ‘네가 오면’이란 곡입니다. 감독님께서 직접? 민규동 감독님께서 개사하신 거예요. 그 곡 선택을... 제가 드렸던 곡 중에서 선택하신 거죠. 굉장히 쿨하신 분인 줄 알았어요.(웃음) 선택도 잘해주시고 OK도 잘 내주세요. 그게 깨진 게 <내 아내의 모든 것>이었죠. 엄청나게 섬세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다음이, 앞서 소개한 < 더 테너 >의 김상만 감독과 처음 작업한 영화가 <심야의 FM>이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한 감독님인데, < 공동경비구역 JSA >과 < 해피엔드 > 미술감독, 최호 감독의 < 사생결단 >에선 직접 미술/음악감독을 했고, 전 ‘허벅지 밴드’ 멤버이자 현재 ‘슈퍼스트링’에서 베이시스트를 맡고 있기도 하죠. 이렇게 음악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라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더 편해요. 디렉션이 굉장히 명확하세요. 그런 장점이 있어요. 대체로 저를 선택한 기준은 기존의 전 작품들을 보고 음악의 성향을 보고 이미 선택한 거였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안 되는 거고요. 결국 연출의 의도와 음악의 의도가 일치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하면서 <심야의 FM>은 몸은 힘들고 정신도 힘들었지만 작업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트러블은 거의 없었어요. 대화가 정말 잘 통했어요. 라디오 영화음악이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데, 라디오 영화음악을 실제로 많이 들었었는지? 안 들었죠. (웃음) 그 때문에 수록곡이 굉장히 많아요. <카사블랑카>의 ‘As time goes by’, <피아니스트>에서 삽입된 슈베르트의 곡 ‘Schubert Trio en Mi bemol majeur opus 100 D.929/Andante Con Moto’, <볼륨을 높여라>에서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 <택시 드라이버>에서 버나드 허만의 ‘Betsy in a White Dress’, <스팅>에서 나온 Scott Joplin의 ‘The Entertainer’ 등의 영화음악은 물론, 포미닛의 ‘I My Me Mine’까지. 저작권을 살 수 없으니까, 음원은 못 사겠다는 생각이 들어선 지 <스팅> 주제음악도 음원을 새로 녹음을 했고요, 슈베르트의 곡도 새로 연주해서 녹음했죠. 노래 곡만 원곡을 사오는 거고 노래가 없는 연주곡은 똑같이 다시 만들어요. 감독님이 다 선곡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전 그런 권한이 없죠. 시나리오 때부터… 시나리오에는 더 많은 곡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와 상의하면서 많이 뺐죠. 이 곡들이 다 필요한가. 어차피 노래를 사기로 결정하면 촬영 전에 예산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다 문의를 해보게 되죠. 그런데 이 곡 이 곡은 빼도 되겠다 싶다고 하면 감독님도 고민하시다가 예산 측면뿐 아니라, 길이나 극의 구성적인 면에 고려해서 빼게 된 곡들이 있어요. 두세 곡 정도가 날아 갔죠. 연주만 새로 하는 경우도 저작권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나요? 저작권료를 내지만 음원에 대한 사용권을 안 내도 되죠. (결국) 반값이 되는 거죠. 슈베르트 곡은 저작권료가 없는데 음원을 쓰게 되면 음원료가 나가는 거잖아요? 그것도 아까워서 연주를 하면 내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 슈베르트 나올 때 나오는 음악이 슈베르트 음악과 한 세트에요. 그걸 다 계산 하고 만든 거거든요. ‘As time goes by’ 가 흐를 때 스코어의 배치도 그랬던 거 같아요. 음향처럼 확 나왔다가… 미리 감안해두고 배치를 하신 건가요. 네 맞아요. 슈베르트 음악이랑 ‘As time goes by’와 조정이 똑같아요. 성격은 좀 다르죠. 얘가 올라가기도 할 때 자빠트리고, 내려갈 때 음악이 확 올라가고, 그런 음악적인 재미가 있어요. 만드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만들면서... 내가 액션적인 스릴러를 이제는 잘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냥 음악이 아니라 음악적인 계산과 배치가 이뤄져야 하는 거죠. 네 그렇죠. 뚜렷한 메인테마를 잡기보단 긴장과 효과에 주력하셨던 것 같습니다. 스트링 위에 일렉트로닉한 소리들(음향/효과)이 가득한데. 감독님의 주문은 어떤 것이었나요. 네. 사운드적인 것이 테마였어요. 감독님의 주문은... 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냥 해달라고 하신 거 같아요. (자신도) 음악감독이었기 때문에 주문을 해도 잘 안 먹힌다는 걸 아시겠죠? 그냥 선택하시겠다고 한 주의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콘셉트를 제시한 거죠. 일렉트로닉이 전작에 거의 없었거든요. 감독님은 (그거에) 만족해하셨는데, 제작사의 다른 분들은 불안해했죠. 뭐냐면, 첫 템프 트랙을 제가 만든 걸 붙이거든요. 기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사운드 음악성 다 최고잖아요? 이걸로 템프 트랙에 붙이지 않아요. 전 거칠고 사운드는 개판이지만 제가 현재 작업 중인 것으로 붙여요. “음악적 구성을 이런 식으로 할 겁니다.” 그렇게 해오면 김상만 감독님은 음악도 해보셨기 때문에 이 음악들이 어떻게 바뀔 질 알잖아요? 그런데 다른 대표님들은 그걸 모르죠. 그분들을 만난 자리가 있었는데, 개봉 시기가 첫 미팅 후 한 달 10일 뒤였어요. 제가 그랬죠. “개봉을 최소한 두 달 후로 미뤄 달라. 이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지금 붙여놓은 음악으로 판단하지 말라. 다음 왔을 때 서너 곡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첫 곡부터 끝 곡까지 순서대로 작곡하기 때문에, 이것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좋을 거 같다. 기다려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먹었더니 안 자르더라고요. 그다음에 왔을 때 4곡을 들려드렸어요. 그랬더니 안 자르더라고요. 원 없이 작업을 했죠. 엔딩 곡으로 쓰인 ‘Idols of the radio’은 김 감독님이 직접 ‘슈퍼스프링(혹은 김상만 감독)’에게 의뢰한 곡이라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직접 하겠다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영화 전반적인 사운드 느낌과 많이 달라요. (웃음) 엔딩곡은 자신의 밴드의 음악이 올라오길 원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작업을 하면 사람마다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잖아요. 감독님께는 그게 그 순간이었다고 봐요. 전 기꺼이 응원했죠. 민규동 감독과 두 번째로 작업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노희경의 동명의 드라마가 원작이었습니다. 원작을 보았는지요? 안 봤어요. 원작을 보면 원작의 느낌을 제가 받을까 봐, 봤다고 얘기하지만 절대 안 보는 편이죠. 정통적인 신파 멜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아니 반대로 어떤 지점을 피하려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울리지 말자예요. 울리면 큰일 난다. 음악은 최대한 담담하게 표현하자. 슬플 때 음악은 모두 장조예요. 상황에 대한 음악은 단조고. 이것은 신파나 슬픈 영화를 할 때 제 기본적인 콘셉트이기도 해요. 그 때문에 영화가 갖는 성격은 고급스럽게 변해요. 그 자체가 감동으로 느끼게 되죠. 슬퍼서 운다기보다는 감동 받아서 울게끔 만드는 게 목표잖아요. 그래서 그 기억을 계속 가져갈 수 있도록 되는 거죠. 사운드트랙은 디지털 음원 발매 외에 초회 한정 DVD 번들로 포함된 채로 발매되었습니다. (뒤에 나온 <내 아내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공개 형태가 따로 CD로 발매되는 것보다 장점이 있는지. 영화사에서는 OST 발매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죠.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죄다 연주곡이니까요. 그래서 안 만드는 거죠. 디지털로만 되는 건데, 나중에 DVD가 나오게 되면 패키지를 통해 가격을 더 받을 수 있잖아요. 슬픈 일인데. 그렇게 해서 들어간 거죠. 그다음에, 민규동 감독과의 세 번째 작품 < 내 아내의 모든 것 >은 거의 필모 최초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그 작품의 목적도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관객이 원하는 곡들을 주체적으로 적용하자라는 거였어요. 이선균 씨의 음악보다는 류승룡 씨에 대한 음악을 정교하게 많이 하자, 선균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영화를 살리려면 류승룡 씨가 스타가 돼야 한다. 그래서 굉장히 과감한 라틴음악들을 배치해 버리는 거죠. 진짜 카사노바처럼 보이도록요. 첫 등장부터가 이상하지 않아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사운드가 가득해요. 스패니쉬의 플라멩코나 맘보, 샹송에 재즈, 팝까지. 그게 월드 음악이잖아요. 영화에 대한 저의 콘셉트에요. 처음에 박준호 PD님이 감독님과 오셨어요. 이야기를 하다가 월드뮤직으로 가자, 그랬어요. 감독님도 좋은 거 같다, 하셨고. 그래서 그걸 차근차근 준비를 한 거죠. 너무나 많은 곡이 필요했었고요. 두 번째 목표는 2년 반, 3년 반을 같이 고생한, 데뷔는 두 작품으로 했지만 이름은 유명해지지 않았던 이진희 음악감독에 대한 배려예요. 이 친구가 이 영화를 하면 주목을 받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분명히 이야기를 했어요. “이걸 하면 넌 독립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네가 이걸 최초의 작품이 되게끔 열심히 해봐라. 나는 곡을 안 쓸 거야. 네가 다 써라.” 그렇게 했어요. 이진희 음악감독이 거의 천재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친구는 정말 천재예요. 기존의 음악감독들이 정말 많잖아요. 제가 알고 있는 음악감독들을 다 뛰어넘는 천재예요. 놀이동산에 쓰인 샹송 ‘Je I’aime plus que tou’와 집에서 추던 춤곡이자 엔딩에 흐르는 맘보 ‘Embrasse-moi’ 모두 기존에 있는 곡이 아니라 이진희 감독의 창작이었더라고요. 돈이 없기 때문에 (웃음) 만들어야 해요. 배치는 제가 다 했지만, 임수정의 성격을 다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영화 초반 임수정이 나오는 장면에서 기타음악이 나와요. 그런데 음악을 빼버리니까 임수정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근데 음악을 붙여놓으니까 임수정의 성격으로서 배치가 되어버린 거죠. 관객들이 이해할만하게 된 거죠. 히스테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으로 보게 되는 거죠. 그게 음악의 역할이었죠. 그때 알았어요. 아,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얘는 성격이 이러니까 이렇게 보세요, 이렇게 제시를 해야 하는 거구나. 류승룡 씨 나올 때는 무조건 대놓고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영화가 더 재밌어졌어요. 제가 스스로 싱크 대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깨알같이 한 게 있는데요, 어떤 장면에서 음악이 딱 일부러 끝나게 만든 거예요. 그럼 사람들이 웃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음악적인 포인트로도 웃음을 전달할 수 있어요. 비비드(박성희, 정아영, 신아름)라는 그룹이 웬만한 곡들을 많이 불렀어요. 영화사와, 음반사와의 상업적인 선택이었죠. ‘장성기의 세레나데’도 인상적인데요, 독자적인 스코어처럼 활용되다 동시에 장성기가 부르는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 반주가 되며 섬세하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선곡하게 된 건가요.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하지만 음악 사용 방법은 제가 선택하죠. <키친>에서도 주지훈 씨가 노래할 때 나오는 음악이 서로 다른 음악이거든요. 이를 절묘하게 묶는 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도 그런 장면이 나와요. 심수봉의 노래였죠. 다른 건데 같게 만드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를 보면서, 배우의 노래를 들으면서 즐기지만 깊은 정서를 또 가지고 가니까 레이어가 하나 더 쌓이는 거죠. 그래야지만 장성기의 허세가 드러나는 것도, 장성기의 진실이 증폭되는 것도 가능한 거죠. 다음에 < 광해 >를 하셨습니다. 모그 음악감독이 먼저 작업하던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저번 모그 인터뷰에서 듣기는 했지만)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모그 감독이 저를 속였어요. (일동 웃음) 저의 전작들을 다 들어보고, 김준성 음악감독에게 맡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할리우드(라스트 스탠드)로 가야 한다. 예산까지 다 넘겨주고 갈 테니까 해 달라. 그래서 이게 왠 떡이냐, 저 사극을 좋아하거든요. 기분 좋게 하려고 했는데. 영화사가 저를 잘 몰라요. 사실 지금도 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한 개수에 비해서 제 음악을 듣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평가하는 게 있거든요. 저 자신이 저평가 된 음악감독인 거죠.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걸로 평생을 먹고 산 사람인데.(웃음) 영 미덥지 않았나 봐요, 회사는. 그래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그 음악감독이 잡더라고요. 제가 다른 외압을 다 막아줄 테니 감독님이 음악을 해주세요. 그래서 하게 됐죠. 조건을 걸었어요. 전체적으로 음악은 다 할 테니 모그 감독은 이 순간부터 빠져라. 더 쓰지 말아라. 였어요. 그래도 곡을 써서 보내요. ‘사월의 테마’ 같은 곡이요.(웃음)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제가 곡을 만드는 것과 모그 음악 감독이 만든 것을 일관성 있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많은 분들이 오프닝 음악을 좋아하는데, 오프닝 음악은 영화와 별개의 음악이거든요. 테마가 아니에요. 넣고 싶진 않았는데, 워낙 추창민 감독님이 오랫동안 들어왔던 음악이라 붙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편곡에만 2주가 걸렸어요. 그만큼 어려웠던 곡이에요. 그다음부터 쭉쭉 진행시켰죠. 앞의 코미디 부분은 몇 개 빼고는 음악이 다 되어있었고, 편곡을 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 넣는 작업을 했어요, 뒷부분은 아예 없었고요. 거기는 제가 다 만들었죠.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키친> 이후 오랜만에 사운드트랙이 CD로 발매되었습니다. 원래 그것도 영화사에서는 못 내주겠다고 했던 거예요. 내달라, 좀 강력하게 제가 말했죠. 음저협과 협상도 되지 않았냐. 그래서 내게 됐죠. 앨범이 좀 팔리지 않았나요? 순식간에 절판됐더라고요. 거기까진 제가 잘 모르겠어요. <공모자>부터 제가 음악 믹싱을 시작했어요. 보니까 믹싱기사 뒤에서 제가 계속 떠들고 있어요. 그럼 믹싱기사는 제 말을 이해하고 제가 하란 대로 똑같이 하거든요. 그럴 바에야 내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태성 음악감독을 만났는데 직접 하세요 그렇게 말을 했고요. 제가 직접 하는 게 빠르겠다 싶어서 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거예요. <광해>도 그렇게 했고요. 사운드 좋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다음 작품이 노덕 감독의 < 연애의 온도 >였습니다. 씨네노트의 팀 작곡가들의 다양한 참여한, 어떻게 보면 슈퍼바이저의 개념으로 작업을 하신 거 같은데요. 어떻게 조율하고 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감독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해 봤죠. 음악감독이 왜 필요하지? 작곡가가 필요한 거 아닌가? 좀 다른 거 같아요. 모그 감독에게 할리우드 시스템을 좀 들어봤거든요. 거기에는 템프 트랙을 붙이는 에디터가 있고 영화사의 입김이 강한 사람, 영화사를 이해하는 사람이죠, 작곡가가 있고 예술가잖아요, 오케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더라고요. 영화를 구현하는 사람이잖아요. 이 세 사람의 개런티가 똑같대요. 놀랐죠. 음악감독이 다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어떨까. 뮤직 에디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조영욱 음악 감독이잖아요. 오케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사람 별로 없어요. 그런 점에서 제 장점이 뭔지 봤을 때, 전 에디팅을 잘 하는 거 같아요. 남의 음악이 아니고 제 음악으로 템프 트랙을 까는 일이요. 그건 표절에 절대 걸릴 수가 없어요. 제가 편곡을 할 때도 음악 자체의 완성도만 힘쓰면 되지 뭐랑 비슷할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구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뮤직 에디팅은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음악감독이잖아요. 작곡가들은 전반기에 일을 다 해놨기 때문에 후반에는 다 놀아요. 오케스트레이션은 제가 계속 해왔고. 여러 분야의 편곡도 가능하니까요. 다양한 심상을 보여주는 쪽으로 접근을 하는 거죠. 일단은 <연애의 온도>도 편집본을 받은 거잖아요. 작전을 세웠어요. 큰일 났다, 시간이 짧으니까.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에 좀 특이하게 가자. 아코디언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재즈나 월드뮤직을 똑같이 가져가보자. 이렇게 제가 변했어요. 매번 실험을 하던 사람이 이젠 실험을 안 해요. 안전빵. (웃음). 나머지 깊은 정서에 대한 부분은 국적 상관없이 영화에 맞는 걸로 가자. 클래식 적인 음악이라기보다는 팝적이고 기타도 많이 쓰는 대중적인 성격으로 접근했죠. 그게 대중적인 성공과 결부될 수 있을 거 같았고요. 그렇게 준비했고, 우리 작곡가들에게 작업시켜서 완성했어요. 롯데에서도 만족했어요. 롯데에서 하는 다음 로맨틱코미디 작품을 그때 열심히 했던 정교임 음악감독이 데뷔하게 됐어요. 씨네노트에서 작업하다가 독립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이진희 음악감독처럼 잘 된 경우고 있고요. 그전에는 잘되기까지 지원을 해줬는데 이젠 기준을 낮춰서 데뷔하게 될 경우 필요하면 나가는 걸로도. 꼭 데뷔해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씨네노트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첫째는 월급제거든요.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정성을 주기 위해 월급제로 운영해왔는데, 영화 자체가 평균적이지가 않잖아요. 일이 있다가도 없기도 하고. 힘들 땐 또 힘든 거죠. 사업으로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작년에 정교임 음악감독이 <캐치 미>로 데뷔하고, 나윤식 음악감독이 <살인자>로 데뷔하고, 지금은 데뷔 안 한 한 사람 남게 됐죠. 방은진 감독의 < 집으로 가는 길 >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된 실화를 다룬 작품인데요,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접근했나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같은 콘셉트였어요. 슬픈 것에 슬픈 음악을 하지 말자. 그래서 슬픈 장면에서는 장조, 사건에서는 단조가 긴박하게 나오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콘셉트는 전체 음악에서 뭔가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주자. 걷는 것은 딴딴딴딴 같은 음을 계속 반복해 주는 게 있어요.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소망을 걷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거죠. 정제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배우의 생각과 손짓과 모습들이 관객들에게 잘 보이게 하는 거죠. 음악으로 하여금 가리고 메꾸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 하니까, 그것을 조금이라도 받쳐주게. 그리고 이중적인 의미가 다 있어요. 이쪽으로 보면 슬프고, 이쪽으로 보면 아름답고, 그처럼 배우의 다양한 면을 보게 되고 관객들은 연기나 연출에 있어서도 슬픔이 아닌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했던 거죠. 그 의도가 성공했던 거 같아서 만족해요. 오랜만에 피아노가 메인으로 나서는데, 어떻게 보면 데뷔작이었던 <말아톤>을 연상케 하는 지점도 있습니다. 네. 제 친구인 피아니스트 천현정이 연주했죠. 대학교 때 제가 작곡한 곡을 연주해줬던 동기 세 명웰옳퓸틈絿뵈??됐는데요, 그 중 한 명인 김계화가 <말아톤>을 연주했고요, 현정이가 이번 <집으로 가는 길>을 연주한 거고요, 또 한 사람은 아직 대기 중이에요. (웃음) 각각 프랑스에서 절망하고 고수는 한국에서 절망감을 느끼잖아요. 피아노가 주는 감정이 절망에서 오는 차가운 느낌과 희망적인 부분까지 이중적인 느낌을 잘 포착했뇩염?같습니다. 직접 스트링과 혼 등 오케스트레이션을 다 하시는 데 이런 부분들이 힘들지는 않은지. 그건 제 사명이죠.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하는. 늘 힘들죠. 잠을 잘 못 자요. 영화 막판이 되르오訪怠챨@?하루 16시간씩 되거든요. 진짜 몰입해서 해요. 계속 부담감도 있고요. <용의자>의 밀밭 나오는 마지막 장면 있잖아요. 거기 피아노 음악이 끝까지 해결이 안 됐어요. 얼마나 고민이 많겠어요. 잠을 자다 깼어요. 당장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앞에 앉아서 녹음을 했죠. 됐다!! 했죠. 잠자면서 악상이 떠올라요. <전설의 고향> 메인 테마도 그랬어요. 원신연 감독과 네 번째 작품이자 가장 최신작인 < 용의자 >를 하셨습니다. ‘본 시리즈’와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음악을 떠올리는 관객들도 많았어요. 존 파웰이나 한스 짐머의 이런 오스티나토가 현재 할리우드 스코어의 유행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이 직접 레퍼런스를 제공했다고 들었어요. 네. 개봉하기 2년 전에 오셔서 “나 이거 하고 싶어”, 딱 던져놓고 가셨어요. 이걸 들었을 때, 딱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는 음악인 거거든요. 그리고 정서적인 음악은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하고 싶지 않으신 거 같았어요. 화음도 원치 않은 것 같았고요. 계속 그 상태로 2년 동안 고민한 거죠. 아무리 해도 할리우드 영향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걸 표현해낼 수가 없어요. 더 효과가 좋은 것을 찾아내지 못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미니멀 음악에서 파생된 형태인데, 70년대 말에 필립 글라스가 미니멀에서 출발했고, 90년대에 전자음악으로 갔다가 2000년도에 존 파웰이 ‘본’ 시리즈에서 시작했고, 그걸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던 한스 짐머가 해낸 게 < 다크 나이트 >였고요. 이것이 퍼지고 퍼져서 지금이 된 거 같아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운드적인 접근이에요.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면서 벗어날 순 있지만, 리듬을 구성하는 방법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게 한계죠. 어떻게 해야 하느냐, 했을 때, 가장 기본적으로 뚝딱뚝딱 선율을 그냥 만드는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가지 음색적인 소리를 조합을 해서 깎아내면서 <용의자> 자체의 색을 만들었는데, 그 자체도 (스타일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반성만 해서 될 수는 없거든요. 숙제죠. 단기간 내에는 되기 힘들 거 같아요. 감독들이 이런 레퍼런스가(혹은 템프 트랙들이) 때론 작곡가의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부분을 제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다행히도 저에게 템프 트랙을 주는 경우는 제가 보내주는 음악뿐이거든요. 그게 이제 전통이 됐나 봐요. 모두 제가 보낸 음악으로 붙여 왔어요. 최근 <연애의 온도>도 물론 제가 붙이는 것과 너무 다르지만, 제가 보내드린 것만 가지고 붙여 오셨더라고요. 그게 좋으신 가봐요 이젠. 처음에 제가 설명을 했어요. 남의 음악을 붙여오면 그걸 따라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더 힘들다. 그래서 제 음악을 붙여주고, 만약 없으면 그런 식(다음 사람의 음악을 붙이는 것)으로 해달라고 하죠. <용의자> 때 원신연 감독님이 주신 레퍼런스가 뭐였나요? 죄다 ‘본’ 시리즈, 그리고 <다크 나이트>였죠. 원신연 감독님과의 호흡은 어떠세요? 이젠 4번째 작품을 해서인지 <용의자>가 그 전작 3개의 작품들에 비해서는 고통이 덜했어요. 그러나 23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작업했거든요. 고통의 총량이 이만큼이라면 그게 길게 나눠서 온 게 아닐까. (웃음) 이젠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됐다고 할까?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다른 걸 추구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아마도 감독님이 처음 작업 시작하고 지금까지 남은 사람이 저밖에 없을 거예요. 이 전통을 유지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게으르면 안 돼요. 절대로. 작업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영감을 얻으시나요? 계산을 하죠. 이 영화는 이렇게 돼야겠다. 그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오게 하죠. 얘는 이렇게 얘는 이렇게. 그래야지 각 영화마다 다를 것 같거든요. 예쁜 음악을 쓰자, 이건 콘셉트가 아니잖아요. 국내 영화음악에서 고쳐보고 싶다거나 도전해보고 싶은 지점이 혹시 있으신가요? (도전하고 싶은 지점은) 제일 잘 하는 사람,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생각은 이제 버렸어요. 버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게 힘들고 불행해지잖아요. 이제는 보람 있고 행복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예산에 따라서 내가 움직여야지 하는 생각도 많이 없어졌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1000만 원짜리 영화든 100억짜리 영화든 전부 최선을 다해 만들거든요. 한 씬 한 컷도 모두 베스트만 고르거든요. 그런 정신과 그런 작업에 대한 접근방법이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앞으로 살날들을 봤을 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잖아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고 전작을 보고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연락을 해오는 것일 텐데, 직접적으로 참여를 못 한다 하더라도 조언이라도 하자, 도와보자 이런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와 영향받은 음악에 대해 골라본다면? 한스 짐머를 좋아해요. 예전에는 굉장히 싫어했는데요... (웃음) 한스 짐머는 영화계에 있어서 혁명가예요. 시스템을 만들었고, 시스템을 통해 많은 제자를 배출했죠. 영화음악의 판을 완전히 갈아엎었죠. 한스 짐머를 의식하지 않고, 싫어하더라도 그 사람처럼 음악을 만들어야 해요. 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시스템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한국 영화음악도 계속 전진하며 나가야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이해하게 되고 좋아하게 됐어요. 딱 좋아하시는 영화음악 있으세요? 제가 영화음악을 하게 된 것이 <쉰들러 리스트>였어요.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주는 것이… 울고 싶은 사람에게 너 울어봐, 라고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정말 울고 싶은 사람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음악이었어요. 저도 그런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 거죠. 감독님에게 영화음악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도망가고 싶은데, 하루만 도망가도 아쉬운? 그런 것 같아요. 5년 후에는 도망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못 갈 거 같아요. (웃음) 하나 끝나면 또 하나 해야 되고. 또 끝나면 또 하고. 지금 씨네노트에는 몇 분이나 계세요? 직원은 한 명이 있고요. 예전에는 5명까지 있었다가 독립한 사람도 있고, 그냥 집에 간 사람도 있죠. 요즘은 학생들이 좀 있어요. 학교 학생, 아니면 제가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학생들인데요 일을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그 자체의 경험이 중요해요. 그 시스템을 올해 시작했어요. 마지막으로 다음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리메이크를 했어요. 임찬상 감독의 작품이고 신민아 , 조정석 씨가 나오는 작품이죠. 조정석은 귀엽고 신민아는 너무 사랑스러운. 이걸 음악으로도 그대로 표현했죠. 이명세 감독의 원작 영화 음악도 인상적이지 않았나요? 그 음악도 일부 나와요. 이명세 감독의 원작 음악도 편곡해서 사용했어요. 여기까지입니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2000년 새해,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 >이 던진 잔향은 크고도 묵직했다. 한 40대 남자의 자살을 시작으로 찬찬히 과거를 되짚어 올라가는 비선형적인 서사와 개인의 상흔을 통해 굴곡진 현대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담담하고도 대찬 시선은 지금껏 봐온 영화와 또 달랐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곡점보다 조금 더 흘러간 어느 일상을 통해 남자의 과오와 고통을 짚어내는 기억의 편린들은 잔인하지만 솔직하고, 메말라 버린 감정의 남자가 원래는 순수하고 평범했음을 고백하는 여정은 슬프지만 현실적이다. 이를 위로하는 건 중간 중간 거꾸로 가는 기찻길 풍경에 흐르던 이재진의 음악이다. 그의 찬란하고 애달픈 선율은 등장인물을 위로하고, 아픈 우리네 현실을 위로하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환멸과 기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 박하사탕처럼 하얗고 순수했던 모습을 찾아 보사노바 리듬은 부유하고 꿈을 꾼다. 갑작스런 등장이었다. 크레딧에 새겨진 그의 이름은 낯설고 새로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수학한 작곡가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재진은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하고 현장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음악가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한 기념비적인 데뷔작 <박하사탕>을 필두로, 자신의 영화적 동반자가 될 송해성 감독의 < 파이란 >과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SF 대작 < 내츄럴시티 >의 음악을 담당하며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주목받았다. 필모그래피 초기에 위치한 그 작품들은 신인 영화음악가가 들려줄 수 없는 내공과 신기를 보였고, 또 놀랄 만치 다양한 스펙트럼과 폭넓은 궤적을 지녔다. 그 뒤 보여준 행보 또한 그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의미했다. 다양한 상업영화들로 범주를 넓혀가면서도 그는 영화음악에 대한 본질과 이유를 잊지 않았고, 섬세하고 탁월한 멜로디와 풍부한 감성을 얹은 오케스트레이션, 치밀한 분석과 계산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섰다. 이재진의 스코어는 일종의 영화에 대한 음악적인 모범 답안인 셈이다. 송해성 감독을 기점으로 이한 , 황인호 , 정지우 , 홍지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또 허진호 와 김대우 , 변혁 , 육상효 , 변승욱 , 김민석 등 다양한 감독들의 부름에 응했다. 여전히 뜨겁고 정열적으로 활동하며 영화와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먼저 최근 개봉된 < 인간중독 >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클래식컬한 사운드에 기조를 둔 작품이었어요. 바흐의 곡(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 Concerto In D minor BWV974)을 전면에 배치했는데, 이는 김대우 감독님의 의견이라 들었습니다. 네, 그 곡을 피아노와 기타로 연주했죠.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쓸 때 음악을 많이 들으시고, 또 영감이 떠오르곤 하셨다는데, 그 중 몇 곡의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그 음악들이 실제 영화에 그대로 반영될 순 없더라도,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쓴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인간중독>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은 이 음악에서 왔다, 그런 걸 알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바흐의 ‘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는 마르첼로라는 사람의 곡인데요 그걸 바흐가 편곡해서 유명해졌죠. 그 중 글렌 굴드가 연주한 피아노 솔로 버전은 다른 버전에 비해 색깔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는데, 감독님은 그 곡의 정서를 좋아하셨죠. 결국 그 곡을 영화의 어떤 부분에 붙인 상태로 편집실에서 넘어 왔어요. 이걸 무시하고 제가 다른 곡을 만들면 되는데, 그러기엔 너무 좋았어요. 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감독님 이 곡은 (그대로) 가시는 게 좋을 거 같다. 중요한 장면에 쓰자. 그렇다고 두 번 반복해 쓰는 것 보다는 한 번은 피아노, 한 번은 기타로 하는 게 어떨까요, 했던 거죠. 차 안에서의 정사 씬에서는 기타로 했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냥 연주하면 글렌 굴드 냄새가 안 나요. 그의 연주 방식은 기본적인 클래식 어법에서는 어긋나는 방식이거든요. 그렇다고 글렌 굴드의 방식을 클래식 연주자에게 그대로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지인을 통해 부탁하게 됐어요. 결국 글렌 굴드의 연주 호흡과 똑같이 제가 메트로놈을 만들었어요. 글렌 굴드처럼 빠르게 느리게를 중간에 다 넣고, 그걸 들으면서 연주를 해서 더 유사한 느낌이 나도록 했죠. 기타도 그렇게 했고요. 그럼 글렌 굴드 버전을 그냥 쓰면 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글렌 굴드 버전은 노이즈가 너무 많고요, 또 본인이 스캣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연주를 하거든요. (웃음) 그대로 붙이면 문제가 있었죠. 저작권 라이선스 푸는 문제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인간중독> 버전을 만들자, 그렇게 하는 게 영화와 너무 잘 맞는 거 같았어요. 공교롭게 그 장면 이후로 음악 감상실 장면으로 공교롭게 잘 이어지기도 했고요. 김대우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제가 전에 TV 드라마 할 계획이 있었어요. 규모도 꽤 있는 작품이었고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또 해보고 싶은 매체였는데 시스템 자체가 영화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 화면에 음악이라 비슷할 거 같은데, 그래서 누군가는 영상음악 이렇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결과물이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제도가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힘들었고, 결국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하겠다고 하는 순간 <인간중독> 제안이 왔고, 그래서 (감독님을) 뵀죠. 그런데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저를 아티스트로서 존중해주셨고, 저보다 연배도 많으시고 경력도 많으시지만 스태프로서 존중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제 입장에선 너무 좋았죠. 필모를 보면 멜로 장르가 두드러집니다. 물론 조금씩 다르긴 했는데 <인간중독>에서 고민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필모 중에서 멜로가 끊긴 지점이 있어요.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 <호우시절> 이후이죠. 그 이후에 우리 영화계가 많이 바뀌었어요. 템포를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스릴러 장르가 굉장히 많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를 하게 됐는데, 전 개인적으로 멜로를 좋아해요.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음악적으로 역할이 가장 큰 장르가 멜로인 것 같아요. 멜로라는 게 ‘멜로스’, 음악에서 온 게 아니냐는 말도 있으니까요. 다른 장르라고 해서 음악이 두드러질 수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며칠 전에 <고질라>를 봤어요. 전 (음악을)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했다고 해서 봤는데, 아쉬웠던 게 뭐냐면… 왜 <고질라>를 했을까. 굳이. 돈을 많이 주면 할 수 있겠지만 (웃음). 돈도 많이 쓴 거 같더라고요. 풀 오케스트라에... 첫 번째 이유. 물론 제 추론이에요. 자신의 한계성에 대해 주변을 의식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런 거(장르)밖에 못하는 거 아니야? 이런 시선 때문에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 했을 수도 있다 라는 거죠. 그래서 그전의 필모와 약간 다른 걸 한 이유가,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어, 한스 짐머나 존 파웰처럼 할 수 있어, 이런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두 번째 이유, 본인의 한계를 스스로 시도해보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나는 의식해서고 하나는 스스로. <색계> 이후로 음악들이 굉장히 비슷비슷해요. 특유의 멜로디와 코드 쓰는 방식이 항상 비슷해요. <색계>는 굉장히 신선하잖아요. <킹스 스피치>까지는 괜찮았나? 그다음부터는 비슷비슷… 하죠. 그래서 스스로 도전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 <고질라>는 실패다. (웃음) 하지만 옹호해주는 입장에서는 이래요. 누가 해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건 장르의 특성상 음악의 역할보다는 사운드의 역할이 큰 거죠. 관습에 의한 음악을 만들었다 뿐인 거죠. 장르 영화라는 게 관습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해도 특별할 게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나름 데스플라가 뭔가 해보려고 했던 시도가 보여요. 그게 중간중간 조용한 장면에서 음악이 삭 나오는데 상당히 언밸런스해요. 한스 짐머처럼 쉽게 쉽게 가면 되는데 본인의 특유의 냄새를 넣은 게 언밸런스해지더라고요. 아무튼. 멜로가 아닌 다른 장르는 그냥 관습으로 인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멜로는 무조건 멜로디로 승부를 봐야 하는 거거든요. 그 하나가 귀에 꽂히거나 역할을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그리고 뭔가 마음에 있는 걸 표현해야 하고, 그래서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했을 때 쾌감이 훨씬 많죠. <우행시>에서는 이나영씨가, 거기선 유정이죠. 유정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강동원이 죽을 때, 음악 나오면서 사악 갈 때, 마무리될 때, 음악을 붙였을 때 쾌감이 있거든요. 그런 건 멜로에서밖에 못 느껴요.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했고 좋아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장르가 영화계에서 사실은 많이 안 만들어졌고, <인간중독>은 오랜만에 한 정통멜로였죠. 감독님도 그러셨어요. 음악감독님의 필모에서도 잊혀지 않은 대표적인 OST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힘이 됐죠. 자신 있는 장르였고요. 정사 씬에서 음악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두 번째 정사 씬이 벌어지는 경 대위의 집에서 음악적 쓰임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적으로 음악이 없다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음악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하는 것처럼. 그리고 수류탄이 터지는 장면으로 넘어갔고요. 그러면서 삭 사그라지는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계산이 있었던 건지요? 원래 콘셉트는 정사 씬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있는 거였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음악으로 쭉 가니까 신음 소리와 같은 사운드를 통한 미묘한 감정, 성적인 무드가 감쇄된다, 라고 하셔서 음악을 뒤로 완전히 밀어봤는데, 그러니 또 생각만큼 느낌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다시 앞으로 배치하고 중간을 비우는 방법을 택한 거죠. 신음소리가 나는 부분부터, 아마 팬티를 만지나? 그 부분부터 음악이 사악 없어지고 나중에 탁 잡으면서, “아!” 하면서 음악이 팍 터지죠. 음악 감상실에서 유해진과 송승헌 의 춤곡으로 쓰인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의 선곡도 감독의 의견이었나요? 네. 원래 거기도 쓰고 나중(춤추는 장면)에도 사용하려고 했는데, 제가 보니까 뒤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왈츠에서는 이 곡을 쓰기가 조금 곤란했어요. 앞 이야기에 로맨스를 보여주는 데이트가 없거든요. 절절하게 아름다운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춤이 굉장히 강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가려고 했던 걸 제가 만든 곡으로 하자, 했고, 아니다 맞다, 하다가 결국 제가 만든 왈츠로 하게 됐죠. 1969년이란 시대를 다뤘음에도 그 시대의 곡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독특한 분위기랄까. 관사의 폐쇄적인 특수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유가 있는지요. 첫 번째 이유는 쓸 곳이 없었어요. 음악 감상실에서는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설정이었고, 뒤의 춤 추는 장면들은 창작으로 가는 거였고, 나오려면 두 군데, 의상실이나 미용실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사용하려면 7~8개 씬을 다 음악으로 해야 해요. 굉장히 많은 음악이 필요한 거죠. 한 번 할 거면 다 해야 한다는 거죠. 의상실이나 미용실의 첫 날은 음악이 있고, 둘째 날은 없고 그럼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작권료가 만만치 않은 거죠. 저작권과 음반 사용료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한 곡당 미니멈 1,500만원 정도 들어야 할 거예요. 그럼 그것만 해도 5곡이면 얼마예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꼭 그 당시의 음악으로 시대를 환기시켜야 할 만큼 시대 환기가 안 되고 있느냐. 아니다. 그럼 굳이 필요 없다,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기존의 음악을 넣어보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잘 안 맞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사를 계속 하거든요. 그냥 춤추고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안 들리다 보니까 과감히 빼자, 가 된 거죠. 처음부터 안 넣을 작정을 했던 거예요. 엔딩에서 배트 미들러의 ‘The Rose’가 나옵니다. 선곡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설마 음악감독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선곡을 하자고 하겠습니까? 딱 누가 봐도 몇천만 원 짜린데? (웃음) 저 같으면 제 음악으로 밀고 갔겠죠. 영화를 보면 한 번밖에 안 나오는 음악이 있거든요? 자살할 때 나오는 음악은 딱 한 번밖에 안 나와요. 그건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어 하는 곡이고, 왈츠곡도 한 번밖에 안 나오는 곡이고. 그런 곡 편곡해서 쭉 가면 되죠. 그럼 더 좋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계속 촬영하시면서 고민도 많이 하시더니 어느 날 ‘더 로즈’라는 곡 알지 않느냐, 그 곡을 한번 고민해봤음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 ‘더 로즈’ 딱 하는 순간에 가사가 그렇잖아요.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는 그 가사가 딱 가은이의 마음 같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는 온주완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송승헌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가은이가 생각하는 사랑이 있어요. 여러 가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그래서 노래는 잘 어울리는데, 배트 미들러의 버전은 아니고, 테시마 아오이의 ‘더 로즈’가 떠오르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요. 가수 중에 목소리가 악기인 사람이 있어요. 김현식 씨, 김광석 씨도 그런 사람이었죠. 어떤 노래를 불러도 그 사람 것이 되는, 테시마 아오이의 목소리가 저에겐 그래요. 그런데 테시마 아오이 버전 ‘더 로즈’의 편곡 중 안 좋은 부분도 있고, 당시 반일감정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죠. 그래서 ‘더 로즈’로 하되 새로 녹음하죠, 해서 가장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떠오르는 가수가 국내에 있어서 접촉을 해보려 했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감독님이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테시마 아오이도 훌륭한데? 해서 야마하 뮤직에 연락해서 테시마 아오이 버전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시군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데뷔작이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웃음) 변승욱 당시 조감독님의 소개로 하게 됐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승욱이 형은 옛날에 음악을 했어요. 대학교 때. 한양대에서 (노래) 동아리를 만드셨어요. 제가 그 동아리에 들어가던 거죠. 그분은 나이 차도 많이 나는 대선배인 거고, 소위 말하면 레전드인 거잖아요. 실력도 상당히 좋으시고, 기타도 잘 치시고요. 그분이 음악을 그만두시고 CF를 찍으셨다가, 유학을 갔다가 촬영, 영화공부를 하시고 거의 다 끝나갈 때, 제가 보스턴(버클리)으로 유학을 간 거예요. 제가 영화음악 공부하는 걸 알게 되셨고, 그러다 승욱이 형의 아는 분을 소개시켜줘서 그 분의 졸업 작품 음악을 제가 했고, 그분도 만족하셨고. 그래서 어 쟤가 영화음악도 잘하네? 그러다 한국에 와서 <박하사탕> 연출부가 된 건데 연락이 저에게 온 거에요. 1999년 1월 1일이에요. 날짜도 잊질 못해요. 이런 작품이 있는데 네가 한번 해볼래?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아서 보고 10곡을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연락이 왔어요. 글쎄 특별히 말씀이 없으신데? 더 보내봐, 그러는 거예요. 전 감독님 이야기도 없고 그래서 막막하다 못하겠다, 그랬는데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하셨다는 거예요. 10곡을 또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아 당시 유학생에게 페덱스는 비쌌어요. 그러다 또 시간이 흐르고 3월이 됐어요. 연락이 없는 거예요. 아 형 이제 안 할래요. (웃음) 학교도 바쁘고 아직 학생이고 기회는 또 있겠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많이 관심 주는 영화다, 해서 좋은 기회다 해봐 라고 하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러고 있다가 그때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해 먹었는데 거기선 행운의 과자(포츈 쿠키)를 주잖아요. 저 그런데 굉장히 민감해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안 보려고 했다가 봤는데, 거기에 “당신은 지금 당신의 명성을 쌓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 거예요. 운명인가보다 해서 또 10곡을 해서 보냈죠. 연락이 또 없어요. (웃음) 4월인가 5월 즈음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이 너 들어오래. 그래서 짐을 싸고, 5월에 학기가 끝나니까 갔어요. 그때도 계속 음악을 또 만들고 또 만들고 그랬던 거예요. 커뮤니케이션은 특별히 없어요. 제 안에 숨어있는 그걸 다 꺼내는 거죠. 미치죠. (웃음) 전 촬영장 가서 잠깐 현장을 보고… 너무 힘든 거예요. 이 사람이 이걸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거. 그다음을 못 나가는 거예요. 악몽을 막 꾸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러다가 최후 편집 끝나고 중간 중간 기차가 거꾸로 가는 장면의 브릿지 음악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OK가 많이 됐어요. 그런데 메인타이틀 하나, 엔딩까지 해서 그 하나가 계속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최종 믹싱 전날 OK가 됐어요. 그런데 그 곡이 데모에 있던, 미국에서 보냈던 곡 중에 있던 거예요. (웃음) 다른 어떤 분이 팁을 주시더라고요. 감독님이 그 곡을 따라 부르시더라는 제보를 해준 거예요. 그래서 그 곡을 어떻게 해봐라, 힌트를 준 거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그 곡에 보사노바 리듬을 얹어서 작업해 보냈더니 바로 OK가 난 거죠. 그날 밤에 녹음하구요, 다음 날 믹싱하고 내일 아침 갖다 줘야 하는 거예요. 밤 꼴딱 새고 음악 얹히고 붙이고 나와서… 화장실 가서 오바이트를 다 해버렸어요. 분명한 건 제가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영화를 굉장히 깊이 읽는 거라든지, 미장센 놓치지 않는 거라든지, 영화음악 하는 사람 보면 단순히 영상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 음악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만 집중을 해요. 근데 놓치는 게 뭐냐면 영화 자체를 읽는 걸 소홀히 해요.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영화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창독 감독님의 영화는 쇼트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잖아요. 미장센도 훌륭하고. 상당히 많은 걸 배웠죠. 제가 음악을 많이 듣진 않아요. 근데 꽂히는 음악은 굉장히 오랫동안 많이 들어요. 그 음악 하나에도 작가의 수많은 히스토리가 있을 거 아니에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아느냐가 중요한 건데, 그런 면에서 초기의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등은 지금까지도 밑천이 될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박하사탕>, 기차길 브릿지 <박하사탕>의 메인테마에 보사노바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멜로디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계속 머리에 생각난 게 뭐였냐면 ‘기차’예요. 계속 기차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업했거든요. 기차가 간다, 뭔가 움직인다, 과거로 간다... 리드미컬한 게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보사노바를 좋아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그쪽에 접목이 된 거예요. 그 작업 자체는 굉장히 금방 했어요. 멜로디는 있죠, 보사노바는 익숙하니까 그 작업은 하루도 안 걸려서 했어요. 해놓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일단 찾고 난 다음의 과정은 너무 쉬우니까, 허탈한 거예요. 이것 때문에…!! (웃음) <박하사탕>은 일반적인 영화와 다르게 음악이 쓰였습니다.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챕터 사이사이 기차가 나오는 부분에만 30초 정도씩만 브릿지 음악이 주로 사용됐는데, 드라마 부분에서는 음악이 거의 절제되고 있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아, 일부러 안주는 거죠. 아마 그건 감독님의 의도가 큰데…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라는 게 아니었을까요? 중요한 건 제일 마지막.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기승전결이 있는데, 여기에 다 집중해주면 밸런스가 망가질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쉽지 않은 어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브릿지에서 감정들이 고조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브릿지도 브릿지마다 느낌이 좀 달라요. 점점 브릿지의 음악들이 아름다워질 거예요. 처음에는 패닉 같은 음악이었다면 나중 브릿지는 멜로적인 감성으로 가요. 왜냐면 점점 순수해지니까. 제7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해 대상이 나원주 씨, 금상이 김연우 씨이기도 한데, 대중음악으로 나갈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나요? 아 잘못 만난 거예요. 1등이 나원주, 2등이 김연우니까. 아 참나. (웃음) 원래 대중음악 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이력이 특이한 거고요. 고등학교부터 주말마다 친구들 만나서 노래 부르고 기타도 치고, 또 서로 가르쳐주고 그랬거든요. 그 당시 유행했던 게 동물원이에요. 딱 떠오르는 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웃음) 아, 대학교 가서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 그래서 대학교에 갔다가, 노래 동아리(소리로 크는 나무)에 들어가게 되었죠. 이것도 에피소드인데, 전 그 동아리가 공연을 하는 줄 알고 보러 갔었는데, 알고 보니 오디션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오디션이라는 말도 잘 몰랐던 거죠. 그러다가 저도 오디션을 보게 됐죠. 그렇게 들어가게 됐는데, 넌 곡 쓸래 노래할래? 해서 전 곡도 쓰고 노래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했더니 우리는 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 둘 중 하나만 택해. 해서 노래를 택했어요. 제가 만든 노래 부르면 되는 거니까. 당시 승욱이 형은 나이도 제일 많은 대선배였는데 어느 날 동아리 방에 와서는 너 곡 쓴다며, 한 번 해봐, 해서 기타 들고 한 거죠. 그런데 나를 굉장히 멋진 말로 칭찬해준 거예요. 그러고는 슥 나가는 거예요. 그러고는 꼭 나가. (웃음) 그러니까 거기 앉아있던 선배들이 우와~ 했던 거죠. 레전드한테 이런 칭찬을 듣다니. 그렇게 동아리에 있으면서 노래 만들고 각종 가요제도 나가게 됐던 거죠. 명지대 백마가요제, 광운대 월계가요제 등... 그러면서 인정받고 기성 작곡가들에게 칭찬받고, 그러니까 우쭐해지는 거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여러 번 나갔어요. 그 가요제가 지금은 좀 다르지만 십몇 회까지는 작곡 작사 연주까지 다 했어야 하는 거였잖아요. 거길 몇 번 나가서 안 되다가 군대 갔다 와서 3번째 나가서 된 거예요. 그 가요제를 통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좀 지쳐있을 때에요. 군대도 다녀왔고. 그러다 유재하 가요제에서 된 다음 한 번 해보자가 되었는데, 한계 같은 게 오더라고요. 난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는데… 너무 훌륭한 뮤지션들을 너무 많이 본 거죠. 그래서 난 이들을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사운드 엔지니어링 프로듀싱을 하려고 유학을 갔죠. 거기서 피아노 레슨 하는 선생님이 제가 만든 음악을 들어보시고 나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하면 너 다시는 작곡 못한다. 이건 다른 거다. 너 곡 같은 거 안 써도 괜찮겠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하고 싶더라고요. 그 분께 제 곡도 들려드리고 유재하 CD를 선물로 드렸어요. 그랬더니 유재하란 사람이 아직 살아있으면 버클리에 왔을 거 같고, 영화음악을 했을 거 같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너도 영화음악을 해봐라. 그때까지는 솔직히 영화음악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과 이름이 필름 스코어링이잖아요. 뭐 하는 과인지도 몰랐던 거예요. 결국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사운드 엔지니어링 쪽은 2학년 올라가기 전, 1학년 2학기 때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있어요. 실습을 위한 부스 컨트롤 룸도 한정되어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파트라 해서 인성을 본다는 것도 있어서 인원 제한이 필요한 과였거든요. 인터뷰까지 통과하고 나서 2학년 올라가서 필름 스코어링, 영화음악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그때가 97년이었어요.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했는데, 당시 국내엔 영화음악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작곡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메리트가 있지는 않았나요? 반대죠. 없었죠. 제가 들어갔을 때가 막 버클리에서 사람들이 들어올 때였어요. 그때 버클리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었어요. 국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선한 것을 기대하는 입장도 있었지만, 수구적이 입장에서는, 대단한 거 있겠어? 봤더니 뭐 별 거 아니데? 이런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영화음악도 별 거 없지, 그랬던 거고. (웃음) 제가 좀 더 특출 나고 잘하고 그랬다면 버클리 나온 후배들에게 더 좋았을 텐데 제가 더 잘하지 못해서 그건 좀 아쉽죠. 하지만 분명한 건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초기 이 세 작품, 특히 <박하사탕>은 제가 겁이 없었어요. 어떤 작품? 누구? 이런 거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전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전 선례가 없잖아요. 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영화음악이 어떤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비교할 대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제 뜻대로 하게 됐죠. 그 첫 반응이 신선하다, 라는 것이었어요. 기존 한국영화음악에서는 보지 못했던 냄새인데? 라는 거였어요. 지금 보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혼자 생활하고 한 게 반영된 음악이라 신선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국내의) 다른 음악가, 다른 영화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면 다른 음악이 나왔겠죠. 사실은 그런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머리 식히러 나갔다 올까 그럴 때도 있어요. 지금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잖아요. 두 번째 작품이 <파이란>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선 자주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 작품을 시작으로 송해성 감독님과 파트너 쉽이 이루어졌어요.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5 작품을 함께 해왔는데. 감독과 작곡가 간의 협업이란 어떤 느낌인가요? 커뮤니케이션이죠. 이창동 감독님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기쁘지만 기쁘지 않게, 라고 하신단 말이죠. 하아… 네 (웃음) 그 당시 제가 29, 30살이었거든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당시는 정말 답답했을 거 같아요. (웃음) 그런 게 쌓이면, (파트너와 함께) 나이도 같이 먹어가고 연륜도 같이 쌓여 가면 어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갈 수가 있거든요. 송해성 감독님은 처음에 어 이게 뭐지? 무슨 말씀이시지? 이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다 계속 같이 가니까 감독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알게 됐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어렵지 않다. 그다음은 디테일이잖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 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버리고 그다음에는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거죠.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영화음악을 전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 제 온 정열과 온 피와 땀을 쏟으면 좋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죠 분명히, 하지만 목숨을 바칠 정도로 저 이거 하지 않아요. 이건 그냥 직업이에요. 우리가 살았던 시기 동안에 같이 재미있고 놀았다. 뭔가를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울고 웃겼다. 이런 거면 행복한 게 아닌가?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단순히 감독과 음악감독으로 만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형과 동생으로 만나서 친해지는 거죠. <파이란>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박하사탕>을 보셨겠죠? 보시고… <파이란>의 프로듀서가 안상훈 피디, 지금 상상필름 대표고, 송해성 감독님도 한양대 나오셨고, 뭐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한양대 나왔다면서요?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첫 날 만났을 때 근처의 허름한 호프집 가서 싼 생맥주 3잔에 소주 넣어서 말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했죠. 그러다 연락이 와서 하게 됐어요. 제가 음악 데모를 만들어서 영화사를 줬어요. 그때 제작 보고회라는 게 막 시작되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튜브(<파이란> 제작사) 쪽에서 뭘 보여줘야 하는데, 스틸들을 디졸브해서 보여줬고, 거기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그걸 내가 왜 합니까? 하겠지만 본편도 아닌데 그걸 왜 해요? (웃음) 그때는 해서 줬어요. 송해성 감독님이 옆방에 있다가 그때 그 음악을 들으셨나 봐요. 저 음악이 뭐야? 해서 만든 음악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봐요. 그 음악을 계속 들으시면서 시나리오도 마무리 하시고. 그래서 그렇게 하면 돼, 해주셔서 그렇게 작업했고, 그 음악들을 최민식 씨가 들으면서 감정 잡으시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프리 작업이 먼저 시작된 거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찍기도 하고. 민식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감정 안 잡힐 때 네 음악 들으니까 좋아. 그때는 민식이 형이나 공형진 씨나 에너지가 많을 때였잖아요. 그때 굉장히 가족적이었어요. 거의 같이 있고, 참 좋았죠. <박하사탕>과 달리 정통적인 스코어링을 구사한 첫 번째 극 영화였는데, 맞습니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는지요. 정서를 따라가는 거죠. 강재의 마음을 따라가고. 그때는, 벌써 13년 전이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훨씬 더 계산적이겠죠. 그때는 마음 가는 대로 했어요. 느껴지는 대로 했고. 아쉽고 불쌍해 보이면 그렇게 만들고, 장백지가 “세탁 세탁” 하면 그대로 화면 보면서 만들었어요. 편하게. 그래서… 감정 흐름에 주안점을 뒀고요. 들어보시면 테마라는 게 없어요. 테마를 만들어서 반복하는 방식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그때그때 맞는 음악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 반면 <인간중독>은 테마가 있죠. 멜로디가 반복되는 게 있고. 계산적이지 않았던 거 같아요. <파이란>, 비디오 화면 속의 파이란 막문위가 부른 노래 ‘애정’의 선곡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장백지가 마지막 장면(비디오 속)에서 그 노래를 부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항해’라는 트랙하고 대구를 이루는 거 같거든요. 어떻게 선곡을 하시게 되었나요? 맞습니다. 잘 아시는데요? 그 선곡은 촬영 전부터 되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극 중에 파이란이 불러야 하니까. 지금은 얼마든지 외국 음반을 들을 수 있잖아요. 유튜브도 있고 아이튠즈도 있고 아마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중국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때는 한국에 락레코드라고 있었어요. 그게 대만 거였을 거예요. 국내에 유일한 통로가 되는 락레코드에 연락을 했어요. 당신네 음악 쓸 만한 게 있나? 그럼 (샘플러를) 주잖아요. (웃음) 지금은 안주죠. 락레코드에서 많이 가지고 온 거예요. 그걸 다 들었죠. 그러면서 막문위의 그 곡이 딱 걸린 거예요. 너무 좋았어요. 가사가 일단.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있다가 어떻게 했냐면. 리딩하는 날, 배우 다 오잖아요? 인사 하고… 나중에 민식이 형이 그러는 거예요. 음악감독님 계신데 여기서 파이란이 무슨 노래 부르냐? 그러 길래 아 예, 가지고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걸 틀고, 가사를 프린트 해 왔어요. 그랬더니 다들 딱이네, 해서 진행한 거예요. 그러다가 문제 생겼죠. 막문위는 광둥어로 부른 거예요. 장백지는 북경어로 불러야 하거든요? 그걸 촬영 전날 안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막 통역하는 분이 바꿔서 쓴 거예요. 마지막에 최민식 씨를 죽이러 지대한 씨가 들어갈 때 그때부터 스코어처럼 나오잖아요. 그러다 카메라가 안으로 들어가면 (그 스코어가) 이 노래의 반주가 돼요. 정확하게 반주로 맞아 떨어지다가, 그리고 노래가 딱 끝나면 공형진 씨가 “오! 남편이 좋아하겠는데”(비디오 속 대사) 그러면 반주(스코어)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런 식이거든요. 계산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어요. 놀랐어요. 그걸 음악을 아시거나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거 어떻게 저렇게 갔지? 하시는데, 모르는 분들은 그냥 봐요. 다른 음악감독 초대해서 보여줬더니 저걸 어떻게 맞췄냐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우연찮게 잘 맞은 거죠. 소가 뒷걸음치다가 그런 거처럼 (웃음). 그때 음악 확인하려고 감독님이 노량진 제 작업실로 전화하신 거예요, 감독님, 음악 확인하러 오셔야죠, 어 그래, 내가 말야 음악 맘에 들면 고기 사줄게, 그러시더니 공형진 씨랑 같이 왔어요. 마지막에 눈물 글썽글썽하면서 야, 고기 먹으러 가자! 진짜 맛있게 고기 먹었어요. 삼각지에 진짜 고기 맛있는 데가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래요. 감독님 음악 마음에 드시면 고기 사주세요, 그래서 지난번 <고령화 가족>때도 고기 먹었어요. (일동 웃음) <파이란>은 아사다 지로의 『러브레터』란 소설이 원작이었어요. 이후에 작업한 < 모던보이 >나 < 주홍 글씨 >, < 완득이 >, < 우아한 거짓말 >, < 고령화 가족 >까지 원작이 있는데,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원작이 많은 도움이 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요. 참고로 전 원작을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 <우아한 거짓말>은 읽었다. 근데 읽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이거 어떻게 만들지? 그러면서 다 잊어버렸어요. 그리곤 다시 보지 않았어요. 거의 안 봐요. 선입견 때문에요. 의도적으로 안 보는 거죠. 시나리오가 다라고 생각해요. 전 선입견을 받지 않기 위해 영화도 거의 최종 편집본만 봐요. 최초 편집본이 3시간이 넘어가고 그러잖아요. 그 버전을 편집하면서 드러내지는 장면들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장면이 남거든요. 어떤 스태프들은 그 삭제된 장면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억 속에 남기는 거죠. 없는 데 느끼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죠. 그것 때문에 실수를 할 수가 있어요. 전 최종 편집본만 거의 보니까, 그들에게 남아있는 (드러내진 장면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죠. 그들이 느끼는 걸 전 모르는 거고. 제가 관객 입장이 되는 거죠. 그래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원작을 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원작을 읽으면 너무 잘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영화에 없는데 느끼게 되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창동 감독님과 <오아시스>를 작업했습니다. 아쉽게도 음악은 문소리 씨가 부른 ‘내가 만일’, 춤곡, 탱고 풍의 메인타이틀인 엔딩곡 세 개만 사용됐어요. 원래 작업을 다 하셨는데, 다른 곡들은 반려된 건가요? 어떠신 거 같아요? 설마… 필요한 데 안 쓰셨을까요? 이창동 감독님은 그런 걸 포기하실 분이 아닌데요. 제가 <파이란>을 하고 났을 때, 감독님이 사람들에게 <파이란>을 보고 와라, 그랬다고 해요. 그 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음악 때문인 거 같다는 거예요. 그러다 연락이 왔어요. <파이란> 음악보다는 적고, <박하사탕>보다는 많을 거 같다, 가 <오아시스>의 음악 콘셉트였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전 시나리오를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음악 생각이 나고 비주얼이 떠오르면서 진도가 잘 안 나가요. 근데 <오아시스> 시나리오는 읽고 있는데 음악이 안 들리는 거예요. 촘촘하게 붙어 있는 게 음악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음악이 없어도 될 거 같은 거예요. 이걸 어떻게 말씀드리지? 난 안 들리는데? 그래서 만났는데, 그날은 제가 출연을 하는 날이었는데… 아, 나오셨어요? 전 영화에 지금까지 많이 나왔어요. <박하사탕>에서는 의사, <파이란>에서도 의사, <오아시스>에는 닭갈비 먹고 있다가 경구 형이랑 말다툼 하는 일반 시민. 그러는데 감독님이 부르는 거예요. 시나리오 봤냐고. 네. 그런데 말야 내 생각에는 음악이 많이 안 들어갈 것 같애, 그러시는 거예요. 사실 저도 그 말씀 드리려고 했다. 음악이 안 들리더라. 그래도 만들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음악을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쓸 계획이 없었어요. 제가 10곡의 데모를 만들어서 들려드렸어요. 이번엔 음악이 다 좋다… 다 좋은데, 그 중에 난 요게 어때, 라고 집어주신 게 지금의 엔딩 타이틀이었어요. 그렇게 진행된 거고 ‘내가 만일’은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문소리 씨가 같이 생활하면서 (연기에 도움을 얻은) 장애인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문소리 씨, 한공주가 부르는 곡으로 그 곡이 어떨까 했는데, 그 곡이 (그 장면에서는) 안 어울리잖아요. 안치환 곡 중에서 더 생각하다가 ‘내가 만일’을 떠올린 거고요. 그때는 저작권자하고 비용적인 조율이 가능했거든요. 마침 저작권자가 우연찮게 아는 분이기도 했어요. <오아시스>, 청계천 고가도로에서 인도 음악과 함께 나오는 환상 장면 청계천 고가도로에서도 인도음악이 나오잖아요. ‘페스티발 송 오브 아썸’이라는. 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쌈차 페스티벌 음악이에요. 인도 음악이 시나리오에 있어요. 그러면 저도 또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모던보이> 때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음악들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선곡을 하더라도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 그때는 인도(음악)공부를 한 거예요. 그러다 음원을 찾아봤는데, 그때 마침 제가 1년 동안 BBS 라디오에서 영화음악실 패널을 했었어요. 친하니까 작가에게 부탁해서 라이브러리에서 빌린 거예요. 다 들으면서 5곡을 골랐어요. 그 중 한 곡이 그 곡이에요. 사실 이창동 감독님이 <밀양>에서는 크리스티안 바쏘의 곡을 사용했고, 이후 <시>에선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음악감독의 입장에서 이런 음악의 최소한의 사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전혀 상관없어요. 이미 영화에 음악을 넣지 말자는 도그마 선언도 있었고요. 음악이 사족일 수 있다, 이런 의견은 있을 수 있죠. 저도 제가 감독이라면 때에 따라 음악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음악이 있어서 더 좋을 수 있는데 안 쓰였다면 아쉬울 순 있죠. 음, 전 의도적으로 음악을 배제하는 도그마 선언 같은 건 좀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도그마를 선언했던 감독도 뒤이어 음악이 풍부한 <어둠 속의 댄서>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웃음) 피아니스트 이루마 씨가 <오아시스> 이미지 앨범을 작업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혀 관계없는 프로젝트였는지요? 그때 문제가 있었어요. 마케팅 쪽에서 진행했던 건데, 의견은 제가 냈었어요. 이미지 앨범을 내보자.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3자와 이루어지고 있었고, 홍보가 나갔고, 기사에서는 이루마가 영화음악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오보가 나갔고, 전 정정을 해달라고 했고, 그런 오해들이 있었죠. 좀 안타깝죠. 그다음으로 작업한 건 국내에서 보기 드문 SF블록버스터 <내츄럴시티>였습니다. 당시 국내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나오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다양한 장르에 대한 갈망이나 도전 의식이 있었는지요. 아니요. 순서상으로는 그때가 (<오아시스>보다 앞이었어요. 아직) 미국에 있었을 때에요. 이야기는 먼저 되고 있었나요? 네, 제가 데모를 먼저 만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음악 좀 부탁드릴게요, 해서 연락이 왔고, 미국에서(<박하사탕>을 마치고 버클리에 복학한 시기) 음악을 만들어서 보냈는데, 바로 콜이 왔어요. 민병천 감독님이 메인 테마를 듣고서요. 그래서 진행됐던 거고, 장르에 대한 욕심은 늘 있죠. 더 잘됐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죠. 체코에서 체코 필하모닉 멤버들과 레코딩을 했어요. 네 처음으로. 체코에서 이 작품과 <역도산>을 했죠. 체코도 일장일단이 있어요. <내츄럴시티>와는 잘 안 맞는 곳이에요. 그쪽 동유럽의 냄새가 SF와는 잘 안 맞는 거 같더라고요. 다음에 이런 장르를 한다면 체코는 안 갈 거 같아요. 오히려 <인간중독> 같은 영화가 체코를 가면 좋았겠죠. 굉장히 할리우드 스코어 느낌이 들었어요. <내츄럴시티>를 들어보면 대규모 스트링에, 격정적인 피아노, 혼과 같은 웅장한 금관악기가 어우러지며 한국에선 보기 드문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특히 낮은 피아노의 활용은 마치 제리 골드스미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네 맞습니다. 이 작품도 레퍼런스가 한국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했었어요. 신선한 것들. 민병천 감독님하고 가까워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가 있었는데, 제작과정이 길어지면서 엄청 오랫동안 작업한 거예요. 지쳤죠. CG가 늦게 나오기도 하고, 회사가 바뀌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게 진행된 영화였어요. <내츄럴시티>에 처음으로 영화 주제가가 쓰입니다. ‘무요가’라고요. ‘낯선 사람들’ 출신의 차은주 씨가 불렀는데 주제가를 의도적으로 작곡하신 건가요? 그럼요. 제가 만들겠습니다! 해서요. (웃음) 만들고 싶었고. 제가 노래를 만드는 것이 못 다 이룬 꿈이잖아요. 그걸 영화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츄럴시티>에서 만들고, <화성에서 온 사나이>와 <그녀를 모르면 간첩>도 다 제가 노래를 만들었죠. 감독님도 듣고 좋아하셨고, 이제 가수를 붙이자 해서 차은주와 함께 한 거죠. 그때부터 제가 꿈에 그리던 세션맨들, 존경하던 뮤지션들, 앨범 자켓으로만 보던 분들을 제가 클라이언트가 되어 부른 거죠. 조동익 씨, 함춘호 씨, 박용준 씨, 신석철 씨, 이 분들과 함께 한 거죠. 좋았죠. (웃음) 세 편을 다 같이 그분들과 함께 했어요. 드림팀과 함께... 그쵸. 근데 동익이 형은 (세션을) 잘 안 하세요. 그런데 제가 유재하 출신이고 해서 흔쾌히 해주셨죠. 그 뒤 작업한 두 작품, < 화성으로 간 사나이 >와 < 그녀를 모르면 간첩 >은 약간 의외의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앞에 작업하셨던 것들에 비해서요. 아 그래요? 하하. 다 좋아요. 다 상업영화잖아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더 그런데,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전 음악적으로는 좋았고요, 테마와 송도 모두 잘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고요. 어떻게 보면 <파이란>이나 <오아시스>보다 더 극단으로 간 영화였어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는 간첩>은 정말 제 필모에서는 튀는 영화죠. 감독이 제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예요. 어떤 영화사 개업식에서 우연히 만난 거예요. 어 너 여기 왜 있냐? (웃음) 그렇게 만났고, 그 친구가 자기가 준비하는 게 있으니까 도와줘, 해서 하게 됐어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굉장히 과장된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말 그대로 간첩이란 설정이 이용돼서 여러 장르가 혼용돼 구사되고 있는데요, 첩보, 멜로, 코미디.. 작업은 어떠셨는지요. 좀 더 영화도 잘 나왔으면, 음악도 더 잘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죠. 작업 과정이야 친구니까 소통의 문제는 없었지만, 처음 결과물 자체가 좋질 않았어요. 다들 풀이 죽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본인도 그걸 아니까, 풀이 죽어있고. 끝까지 그 상태로 갔어요. 아쉽죠. (감독도) 재기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재기해주길 바라요. (웃음) 이 작품은 송 트랙의 비중이 큽니다. 재즈가수 신예원, 김도연, 2BE, 김범수(김영국),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주제가를 부른 조성빈, 한동준 씨 등 여러 가수들이 참여했는데요, 프로듀서로 역할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맞습니다. 이런 인터뷰 처음인데요, 준비를 많이 해오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듀싱 개념으로 갔어요. 스코어 보다는 송으로 가자. 그래서 주변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이런 역할을 해봐, 이런 식으로 작업했죠. 여러 분들과 함께 작업 했죠. 김범수(김영국) 씨가 (앞에서 말한) ‘내가 만일’을 작사 작곡하신 저작권자분이에요.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다음이 변혁 감독님의 <주홍 글씨>입니다. 이 영화도 삽입곡이 많은 경우였어요. 아주 버라이어티 하죠. 삽입곡이 넘치는 영화죠. 배경 자체가 클래식 오케스트라고, 첼리스트(이은주)와 재즈가수(엄지원)가 나오고요. 심지어 한석규 씨도 첫 장면에서 클래식을 듣잖아요. 네,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그 곡이죠. 네 맞습니다. 선곡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일단 기본적으로 변혁 감독님이 클래식 마니아예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감독님이 직접 지휘를 하시더라고요. 오 아셨네요? 왜 하셨는지… (웃음) 그런데 그냥 하신 건 아니고요, 변혁 감독님의 친형님이실 거예요. 실제 오케스트라 지휘자세요. 그 곡 큐를 드리고 지휘하는 걸 찍어서 똑같이 한 걸로 알아요. 그럼 감독님이 그 많은 곡을 다 선곡하신 건가요? 감독님도 하고 저도 하고 그랬죠. 그리고 엄지원 씨 첼로 치는 것도 거의 똑같아요. 하나도 못 켜시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트레이닝 해서 촬영했죠. 이은주 씨가 바에서 노래하는 장면 있죠. 그 뒤의 밴드가 저와 많이 작업하던 밴드(재즈밴드 ‘더 버드’)에요. 그분들이 실제 연주하신 거예요. 레코딩까지. 처음엔 좋다고 하시더니 나중엔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故 이은주 씨가 부른 ‘Only When I sleep’가 화제였습니다. 마지막 곡이 됐죠. 아주 열심히 불러줬어요. 이은주 씨가. 그 곡을 세 번 불렀어요. 한 번 부르고 다 끝냈는데, 다음번에 좀 아쉽다, 해서 친구 바다 씨를 데리고 와서 같이 해보고 싶다, 그래서 또 하고, 그래도 아쉽다 해서 한 번 더 하고. 그렇게 3번을 했죠. 피아노도 잘 치시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쾌활했던 분인데... 많은 삽입곡들 사이에서 스코어는 어떻게 배치가 궁금합니다. 주로 성현아 씨와 관계된 사진관 사건에 스코어들이 몰려있는 듯 합니다. 다른 두 여자 캐릭터들은 재즈 가수와 첼리스트이기 때문에 스코어의 영향에서 벗어난 건지요? 음.. 글쎄요. 제 기억으론, 관심 자체를 이 사건과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거든요. 이쪽의 미스터리한 것을 액자의 느낌으로… 영화 속의 영화 느낌으로, 좀 더 영화적이라고 할까요? 나머지 두 인물들은 리얼리티 적이라면 그쪽은 약간의 판타지 느낌이 나잖아요. 혼자 이야기하고, 약간 연극 같고. 그걸 좀 더 강조하려고 조금 오바했다면 오바한 음악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전반적으로 음악이 풍부한 영화잖아요. 송해성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은 < 역도산 >이었습니다. 제작비 100억대의, 일본과 합작한 큰 영화였는데. 음악적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는지요? 역도산에 대한 테마보다는 아야에 대한 노래가 더 부각된 것도 같습니다. 누가 봐도 아야가 불쌍하잖아요. 역도산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은 건데 거기서 무슨 페이소스를 느껴야 하나. (웃음) 그런 게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전 정서가 아야에게 많이 가더라고요. 그리고 보신 버전은 아마 국내 버전일 텐데 일본 버전은 중간에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역도산이 귀국해서 성공했어요. 그다음에 자전거 끌고 집까지 가요. 거기서 아야가 같이 들어가자고 했는데, 안 들어가요. 역도산이. 왜 안 들어가냐, 했더니 나 지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거 같아. 어떤 의민지 아시겠죠. 내가 지금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지금 집에 들어가면 책임질 가족이 생기고… 그러면 성공을 못 할 거 같다. 미안해. 그리고 가는 모습을 아야가 쭉 봐요. 그때 음악이 쭉 가죠. 그 장면도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전 아야에 정이 더 많이 가더라고요. 여배우 나카타미 미키가 허밍도 직접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엔딩 노래를 만들었어요. 만들 때부터 처음부터 허밍을 생각했었어요. 다 만들어놓고 제가 허밍해서 감독님께 들려드리고, 한 번 해봐 했던 거죠. 나카타미 미키와 하고 싶다고 하니까 데모를 일본에 보냈어요. 그게 OK가 나온 거예요. 제가 아침 첫 비행기 타고 가서 녹음실 정하고 녹음 다 하고 그날 밤 비행기 타고 왔어요. 다시는 그런 짓 안 해요. (웃음) 거기선 더 있으라고 했는데, 후반 작업이 남아 있잖아요. 제 입장에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하고 그다음 다음날 체코로 간 거예요. 프로레슬링을 처음 접하러 갈 때 흐르던 게르하르트 빙클러의 ‘에스파뇰라’는 어떻게 선곡하게 된 건가요? 몽타주를 보면 희극적인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네, 제가 선곡을 했죠. 처음부터 웅장한 음악이 들어가기에는 좀 그래서... 다음이 정지우 감독님의 < 사랑니 >입니다. 작지만 섬세한 사랑에 대한 영화였어요. 감독님이 요구한 방향성이 있었는지요? 작업할 때, 우리 영화음악은 이랬으면 좋겠어 이런 분도 계시지만 그런 이야기 할 것도 없이 그냥 막 진행되는 영화들이 있거든요. <사랑니>가 그랬던 거 같아요. 정지우 감독님하고는 <오아시스> 끝나고 만났었어요. 차이가 한 3년 정도 나는데. <파이란> PD였던 안상훈 (상상필름) 대표와 정지우 감독님이 대학교 선후배 관계거든요. 제가 < 해피엔드 >를 너무 좋게 봐서 상훈이 형한테 정지우 감독 작품 해보고 싶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래? 그럼 해. 그러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지금 진행 중인 작품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다음번에 해봅시다. 그때 거기서 처음 진행했던 게 < 두사람이다 >였어요. 음악도 많이 준비했는데 엎어지고. 다른 시나리오가 나오고, 우여곡절을 겪었죠. 그러면서 (정지우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사이에 시나리오가 몇 개 더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영화인데, 리얼리티 속에 판타지가 있어요. 키스 씬 중간에 몸이 뜨든지 하는 장면도 있고요. <사랑니>는 먼저 곡을 많이 만들었어요. 음악을 많이 만들어 드리고, 정지우 감독님은 편집할 때 관여하시거든요. 그래서 편집할 때 음악을 붙이면서 작업하는 거였어요. 또 하나는 현재 영화에선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진 않지만 원래는 전화벨 소리가 큰 역할을 하는 영화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표현이 잘 안돼요. 전화벨을 위해서 곡을 많이 만들었죠. 전화벨 테마가 많아요. 이 작품에선 단출하지만 북촌이란 공간과 계절을 잘 드러내는 악기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나 캐릭터, 내용에 맞춰 악기 선택이 이루어지는 건가요? 또 주로 어떤 악기로 작곡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악기도 음악의 한 부분인 거죠. 최종적으로 완성될 음악을 어떤 악기로 연주할 것인가의 결정은 작곡의 한 부분이고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음악을 만들기 전에 악기 구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이것은 비단 한 큐의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죠. 송해성 감독님과 세 번째로 만난 < 우행시 >를 하셨는데요, <파이란>처럼 아슬아슬하게 신파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절제미랄까 중용을 지키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송해성 감독님 영화를 보면 멜로인데도 구구절절 풀지 않고 지점들을 잘 포착하시는 거 같거든요. 글쎄요. 일단, 송 감독님 영화를 보면 막 오바하고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절제하고 담백한 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도 그렇게 가야 하는 거였고. 그래도 엔딩의 음악은 신파적으로 가잖아요? 그것도 사실 감독님의 원래 의도는 아니고 제 의도에요. 감독님은 훨씬 더 담백한 걸 원하셨어요. 그래도 여기선 울려야죠, 했고 주변의 수많은 설득, 그래도 감독님의 의지를 안 굽히셨어요. 감독님은 사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원하셨어요. 전 안된다고 했고. 결국 음악 컨펌할 때, 사람들 불러놓고 비교를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한참 뒤에야 네게 낫다! (웃음) 그래서 가게 됐죠. <우행시> 같은 경우는 음악적으로 참 만족스러운 영화였어요. 영화음악적으로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그런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엮는 듯한 음악. 이 영화가 제일 어려웠던 게 매주 목요일 1시에 만나야 해요. 그러면 그 사이에 뭘 채워야 하잖아요.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런데 그걸 채우자니 감정이 끊기고, 그냥 붙이자니 뜬금없이 그다음 날이 마치 바로 일주일 후 같지가 않고. 그런 게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음악이 시간의 경과와 감정의 이음을 해주는 시퀀스들이 많아요. 그게 참 좋았고. 그리고 유정이에게는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엄마의 ‘월광 소나타’ 피아노가 계속 나오거든요. 그것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좋았었던 거 같아요. 최창환 감독님의 < 울어도 좋습니까? >는 아직도 개봉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합니다. 그 영화는 어떻게 아세요? 감독님이 제 선배 분이시라서요. 아직도 개봉 못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네 못할 거 같아요. 영화는 참 좋아요. 영화가 개봉하려고 준비할 때 즈음에 영화사가 넘어갔어요. 그럼 누가 사서 할(개봉)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사를 사 간 쪽이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곳인가 그럴 거예요. 그래서 영화도 매물인가로 취급되더라고요. 그래서 불가능하대요. 안타깝죠. 영화는… 이런 감독님도 우리나라에 활동을 쭉 했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섬세하고 따뜻한 정서가 좋았어요. 아쉬워요. 음악도 참 좋았는데. 다 만들어놓고. OST까지 다 나왔거든요. 출시를 못 한 거예요. 변준석 감독님의 < 에일리언 밴드 > 역시 일반적인 개봉을 하지 못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만 상영되었는데요. 밴드를 다룬 음악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업하신 계기나 방향에 대해 궁금합니다. 아, 잘 만든 음악 영화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 진행됐죠. 하면서 느꼈던 것은 현재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는 잘 만든 음악영화를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 라는 거였어요. 작업하면서 그것들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최선을 다해 준 스태프들과 음악팀에게 감사한데 개봉이 안 된 것이 아쉬워요. 정지우 감독님과 두 번째로 작업한 <모던보이>도 규모가 큰 영화였어요. <역도산>처럼 일제 강점기를 다룬 시대극인데, 그 시기에 맞춘 재즈, 빅밴드 (그리고 왈츠) 사운드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음악) 공부를 했죠. 당시의 상류층 음악이 뭘까? 했더니 의외로 재즈인 거예요. 그 당시에는 이미 재즈가 상류층에선 즐겨듣던 음악이고 심지어 놀란 건 이미 그 당시에 미국에서 지난해 유행한 게 우리나라에 1년도 안 되어 유행하고. 그 당시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상상을 초월하더라고요. 그래서 재즈를 기반으로 음악을 해도 문제가 없겠다. 재즈를 더 화려하게 하자. 그 당시에는 재즈가 상당히 화려한 음악이었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고, 또 하나는 카페에도 클래식이 나올 법한데, 그냥 클래식이 아닌 그걸 재즈로 편곡해서 하고 그렇게 했죠. 조난실이 부르는 노래(개여울)도 제가 선곡을 했는데요, 재즈로 편곡해서 영화에 쓰고. 그렇게 재즈를 기반으로 했어요. ‘개여울’이라는 곡 자체는 30년대 곡은 아니죠? ‘색채의 블루스’도 그렇고요. 네 맞습니다. 선곡을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일본 노래여야 한다. 안 그래서는 가짜다. 음악이 그 당시보다도 더 화려해야 한다. 또 살롱 느낌이 나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곡들 중 하나가 ‘색채의 블루스’였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개여울’은 독립운동가 조난실이 불러야 하잖아요. 어떤 노래 부를까, 하다가 실제 있는 부를 법한 노래를 찾아본 거예요. 그걸 편곡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당시의 동요나 가요들 (작곡가들이) 거의 대부분이 다 친일 명단에 있어요. 그럼 도대체 무슨 노래를 해야 해. 하다가 김소월은 일찍 죽어서 친일 논란에 해당이 없으니까, 김소월 시를 가지고 노래를 찾아보자, 해서 ‘엄마야 누나야’ 부터 시작해서 뒤지다 보니 ‘개여울’이 있는 거예요. 1960년대에 작곡된 노래지만 뿌리는 여기에 두고 있지 않은가, 해서 선곡해서 재즈로 편곡한 거죠. 영화에는 일본어로 번안해서 트로트로 부른 버전도 있죠.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 한 < 호우시절 >은 의외의 작품인데요, 그동안 조성우 음악감독과 오랜 파트너 쉽을 이뤄왔었는데, 감독님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조성우 음악감독님께서 그 당시 작업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락이 왔어요. 전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이 작품부터 조금 음악적인 색이 바뀐 것 같아요. 기존의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의 스타일에서 기타가 많이 사용되어 또 다른 느낌입니다. 아, 기타가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악기 선택은 일부러 써야지 이런 건 아니라 잘 어울릴 걸 찾는 거죠. 그 앨범은 다 기타 위주죠. 어쿠스틱 녹음이고. 앨범도 공을 많이 들였어요. 예전에 작업을 함께 하던 CJ 엠넷에 계셨던, 일 잘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퇴사를 하시고 독자 레이블을 만드셨어요. 그 회사에서 거의 초창기에 만든 앨범이 바로 이 <호우시절> 앨범이고요. 공을 많이 들였어요. 거기가 바로 지금은 유명한 인디 레이블인 미러볼이에요. 일 잘하셨던 그 분이 이창희 대표님이시고요. 그게 인연이 됐는지 지금도 종종 영화음악 앨범을 내기도 하더라고요. 이때 전까지는 대부분 스플래쉬 뮤직에서 냈어요. 그것도 어떤 연이 있었는데요, <박하사탕> OST를 못 냈어요. 아무도 안내준 거예요. 아니 노래가 없잖아, 이러면서. (웃음) 그때 어렵게 냈어요. 난장이라고, 거기 대표님과 연결돼서 어렵게 내긴 했어요. 그다음엔 너무 힘들어서 제가 고민하고 있는데 <오아시스>인가를 낼 때 그 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박하사탕>의 어떤 곡을 한 앨범의 컴필레이션으로 넣고 싶다, 한 거죠. 그래서 OK 하고 <오아시스>도 내고 싶다, 했는데, 그 분도 퇴사(하고 스플래시 뮤직을 설립)하셨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당신이 좋아서 연락한 거니까 계속 작업하고 싶다, 고 해서 그 분과, 스플래시 뮤직이 문 닫을 때까지 계속 거기서 냈어요. 의리가 있으시네요. (웃음) 사람하고 일하는 거니까요. 서로 믿고 맡기면 제가 편한 거죠. 배창호 감독님의 2009년 작< 여행 >은 단편 세 개로 이뤄진 옴니버스 작품이었는데, 단편 3개를 작업하듯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배창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창호 감독님의 < 기쁜 우리 젊은 날 >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만남은 너무 좋았구요. 기존 감독님들과 음악을 대하고 다루시는 방식이 많이 다르시더라고요. 많이 배웠죠. 단편 3개가 모두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에 각각에 맞춰진 작업을 했어요. 단편 작업들은 장편 상업영화와 많이 다른가요? 상업이란 표현을 빼면... 달라요. 그러니까 영화의 물리적인 길이라는 건 이야기의 함축과 표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음악도 그 호흡을 따라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음악 접근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상업과 비상업이 장편과 단편의 구분점은 아니구요. 그다음 김민석 감독님의 < 초능력자 >는 <내츄럴시티> 이후 모처럼만에 맡은 SF 계열 장르물이었습니다. 네, 그런데 좀 다르죠. 막 달리는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김민석 감독과 그랬어요. 달리자. 신나게 갑시다! 일렉트로닉이 사용됐어요. 네, 제 음악적인 콘셉트는 100% 일렉트로닉. 엔딩 음악은 잘 안 쓰는 음악도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해봤죠. 신났어요. 감독님도 굉장히 신뢰해주고 했죠. CD는 안 그렇지만 음원으로 풀린 걸 보면 초인과 규남 버전으로 각각 앨범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건 이창희 대표의 아이디어였어요. 그러니까 20곡을 냈다고 하면 시기를 둬서, 투 탑 영화였으니까, 10곡은 초인(강동원) 버전으로 오픈하고, 며칠 후에 규남(고수) 버전으로 10곡을 시기의 차이를 둬서 오픈하는 거죠. 마케팅을 한 거죠. 원래 두 캐릭터에서 맞춰 스코어를 구분한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캐릭터에 맞춰 스코어를 작곡한 건 아니에요. 미러볼에서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송해성 감독님과 네 번째로 작업한 <무적자>는 < 영웅본색 >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아 < 무적자 >... 그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죠. 그래서인지 송해성 감독님과 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음원이 없어요. (시중에 발표된 <무적자> 앨범은 삽입곡들을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낼 수가 없어요. OST는 만들었는데, 복잡한 판권 문제가 있어요. 투자가 일본이잖아요. 그쪽하고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지 말자 이렇게 된 거죠. 고가휘가 작곡한 ‘당연정 當年情’이나 TV에 자주 나오는 오리지널 테마곡이 워낙 유명한데, 오히려 2탄의 주제곡인 ‘분향미래일자 奔向未來日子’가 사용되었는데요. 예 맞아요. 아… 말씀드렸지만 <무적자>는 제 영화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뭔가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시스템 자체가 이상하게 어떤 힘에 의해서 막 흘러가는 거예요. 아쉬움이 많아요. 제 의견을 표현을 잘 못했고. 감독님도 좀 혼란스러웠던 거 같고. 그래서 그런 음악들도 감독님께서 쓰자고 하시면, 이 음악은 <영웅본색>의 후속작 음악이고 하면 충분히 쓸 수 있다. 영화사에서도 저작권 사겠다 그러니까 저야 방법이 없죠. 여러 가지로 이상한 힘에 의해 흘러가서 저도 뭐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뜨거운 감자와 같은 영화였죠. 이한 감독님의 < 완득이 >는 <호우시절>처럼 기타가 메인이 되는 스코어입니다. 청춘영화답게 경쾌 발랄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데요, 이는 특별한 서사구조나 악인이 없는 에피소드 구조의 영화에 음악으로 방점을 찍어주는 듯합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완득이>는 이한 감독님과 연이 있었어요.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모던보이>를 하느라 여력이 없었죠. 감독님은 그래도 이 사람하고 해봐야지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하고 정서가 유사한 게 있어서, 음악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포인트가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음악 넣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착하게, 엄마의 마음처럼 그렇게 했어요. 대신에 뛰거나, 권투 하거나 그럴 땐 음악이 몽타주처럼 들어가잖아요. 그땐 사실 노래를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시 노래를 만들어서 하려고 보니까 우리말이잖아요. 그게 좀 안 어울릴 거 같아서 제가 직접 프로듀싱을 해서 영어로 노래를 만들었죠. 그래서 거기서 나온 노래들이 다 작곡된 노래들이에요, 선곡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영어노래 나오면 선곡인 줄 알잖아요. 그게 아니고 일부러 팝송을 만든 거예요. 제가 뮤지션들을 데리고 그 곡을 만들고 녹음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제가 제작해서 유튜브에도 올리고 그런 걸 제가 다 했죠. 굉장히 노래가 신나고 좋았던 거 같아요. 네, 그런데 미국 애들이 들으면 발음이 안 좋아서 잘 못 들어요. (웃음) 물어보니까 이게 무슨 영어 같긴 한데 잘 안 들린다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거야 일부러. (웃음) 황인호 감독님과도 작업을 하셨는데요, < 오싹한 연애 >와 < 몬스터 > 두 작품 모두 범상치 않은 영화들이었습니다. 모두 하나 이상의 장르가 섞인 퓨전 영화였는데 <오싹한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와 호러의 조합이었고, <몬스터>는 스릴러와 코미디의 조합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오싹한 연애>는 괜찮죠. 로맨스와 코미디가 붙는 건 원래 (로맨틱 코미디) 있던 거고. 거기에 호러가 있는데, 호러는 로맨스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존재하는 거라, 기본적으로 로코든 멜로든 결과가 비극이냐 희극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편견이나 장애물을 넘어가는 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여기선 호러가 그 역할(장애물)을 한 거죠. 그래서 믹스 같지만 어떻게 보면 믹스가 아닌 장르였어요. 굳이 구분하자면 호러로맨스코미디라지만 사실은 그냥 로맨틱 코미디에요. 그런데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런 영화치고는... (웃음) 그죠. 무섭게 찍었어요. 근데 <몬스터>는… 섞인 짬짜면이에요. 짬뽕 국물에 짜장 넣으면 못 먹잖아요. 두 가지 장르가 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황인호 감독님 입장에서는 <오싹한 연애>가 됐으니까 또 해보자 이렇게 된 거였죠.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싫다, 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비평가들 입장에서는 과했다, 섞임이 너무 과했다는 거였고요. 전 아무 정보 없이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죄송한데요, 이게 뭐예요?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런 분위기. (웃음) 근데 감독님은 그걸 의아해하고.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어요. 근데 아쉬웠던 게 많았죠. 가령 둘 다 몬스터여서, 몬스터 대 몬스터여야 하는데, 하나는 몬스터이기엔 캐릭터가 작아 보이고. (마침 카페 벽에 붙어있던 마동석 배우의 사인을 가리키며) 마동석 씨나 <황해>의 김윤석 씨가 하거나, 그래서 여자는 더 가냘픈 사람이 하거나. 그래서 딱 둘이 섰을 때 상대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될 거 같거든요. 시작할 때 ‘개잡년이다’ 송이 나오는데요. 네 맞습니다. 감독님이 가사 쓰신 거예요. 제가 안 썼습니다. (웃음) 그걸 딱 써놓으신 거예요. 다 욕으로 구성된, 그런데 말이 안 되는 욕인 거죠. 그게 콘셉트에요. 그래도 그걸 맞춰보셨을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불러서 데모를 줬죠. 감독님, 가사가 이렇게 가야 해요? 감독님은 왜요? 좋다고… 심지어 감독님께서는 이걸로 마케팅도 가자고 하셨어요. 버전도 많아요. 한 4갠가 있어요. 사람들이 일명 텔레토비라고 부르는 할머니 태양 씬도 나오고요. 나중에 급하게 집어넣은 거예요. 가면 갈수록 혼돈이 생겼던 거죠. 음악 역시 그런 관용도에 있어서 고심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마찬가지죠. <오싹한 연애>에 이어 바로 진짜 호러영화, 변승욱 감독님의 <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와 <무서운 이야기>까지 하셨어요. 원래 승욱이 형 데뷔작인 <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을 했어야 되는데, 같이 못 해서 많이 아쉬웠고, 그래서 제가 막 뭐라 그랬어요. 다음 작품은 꼭 나랑 같이 해야 돼, 해서 <고양이>를 하게 됐는데, 잘 안 됐죠. (웃음)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죠. 제가 거기에 대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건데, 승욱이 형 입장에선 그만 고마워하고 그만 부담 가져도 된다, 충분히 알고 있고, 결국 그 기회를 잡은 건 너였기 때문에 내가 그 기회를 주지 않았어도 너는 했을 거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호러를 연달아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계속 들어왔어요. (웃음) 뭐 딴 게 있나요? 호러가 시기적으로 맞물려서 들어온 거죠. 음, 재미있게 작업하면 되게 재밌어요. 내가 어떻게 하고 안 하고에 따라 관객이 놀라고 안 놀라고, 수위 조절이 확실하거든요. 근데 작업할 때가 힘들어요. 대부분 호러영화는 개봉이 7~8월이잖아요. 그럼 작업이 3~4월부터 시작돼요. 그때 막 봄비 내리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작업하고 있으면 번개 치고 그러면 뒤돌아보고 그런다니까요. 안 좋아요. 심적으로는. (웃음) 호러는 음향하고 구분이 모호하기도 한데요? 그래서 혼동이 많이 되죠. 그걸 충분히 조율해야 하는데 조율이 안 될 경우에는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요. 서로 안 할 수가 있는 거죠. 귀신이 나오는데 이건 음향이지, 이쪽에서는 이건 음악이지 그래서 안 해. 그런데 (무음 속에) 갑자기 귀신이 콩! 하고 나오는 거예요. 이건 누구 책임인가 하는 거죠. 그걸 미리 조율하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시스템이 아직 그러질 못해요. 체계적이지 못한 거죠. 전문 조감독, 전문 제작실장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게 없잖아요. 가졌던 노하우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답답할 때가 있죠. <해와 달>, 버스 안의 아이들 < 무서운 이야기 >에서 4개의 에피소드 중 정범식 감독님의 <해와 달>, 홍지영 감독님의 <콩쥐팥쥐> 음악을 담당하셨는데요. <해와 달>에서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부분을 정범식 감독님이 작곡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정범식 감독님이 피아노도 잘 치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제가 보기엔 음악 잘하시는 분이에요. 저한텐 자꾸 모르신다고 하시는데... 어느 날 갑자기 꿍짝꿍짝 만들어 오신 거예요. 이건 팀 버튼적으로 편곡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곡이에요. 누가 봐도 그렇게 나온 곡 같잖아요. (웃음) <콩쥐팥쥐>에서는 결혼행진곡이 나오고요. 맞아요 맞아요. 결혼행진곡을 변주해서 갔죠.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결혼전야>를 같이 하게 된 거고요. 그러고 보면 < 결혼전야 >와 같은 코미디 영화도 많이 하셨습니다. < 어린 왕자 >나 < 청담보살 >, <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 < 미나 문방구 >도 모두 코미디인데, 다만 이들은 비평이나 흥행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작품 선택에 대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죠. 그리고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확인하고 지향하는 바에 대한 공감이 생기면 결정하게 돼요. 영화의 흥행과 비평만을 위해 결정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받으시면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편집이 된 영상을 보고 나서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작업방식에 대해 궁금합니다. 대부분은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악의 톤과 악상이 바로 떠올라요. 그래서 (<오아시스> 이야기 때 말씀드렸듯이) 시나리오를 읽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는 편이에요. 그리고 어떤 경우는 화면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음악 작업이 이루어지는데요. 매번 작업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정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다시 코미디 영화로 넘어가서요. 이들 스코어에선 조금 과장되어 음악이 부각된다던지, 미키마우싱 효과들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코미디 음악 작업은 어떠셨나요? 코미디 영화도 그마다 다른 음악적 접근이 있어요. 절제를 통한 반전의 웃음이라던가, 전통적 방식의 코미디도 있구요. 그 상황에 맞춰서 작업하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라서 특별한 작업은 아니에요. 이진혁 감독님의 장편 다큐멘터리 < 링 >의 음악도 담당하셨는데 극영화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고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제안이 왔을 때 흥미롭게 작업했어요. 크게는 차이가 없더라고요. 결국 영화를 보는 관람자들에게 정보 혹은 정서를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사용하기 때문인가 봐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꾸준히 해 볼 생각입니다. <고령화 가족>, 가족들 송해성 감독님과의 5번째 호흡을 맞춘 최근작이 < 고령화 가족 >입니다. <고령화 가족> 네, 참 좋은 영화인데. 역시 기타 선율이 두드러져요. 쿵짝거리는 집시풍의 스코어인데 어떤 콘셉트였는지 궁금합니다. 키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더라고요. 이 사람들에게는 어울리는 게 그거밖에 없겠더라고요. 막장까지 간 가족이잖아요. 피아노나 클래시컬한 걸로는 안 되겠고 약간 집시풍으로 했죠. 그래서 엔딩 타이틀에는 ‘초우(원작에서도 패티 김이 부른 이 곡이 잠깐 등장한다)’를 올리고 싶었어요. 누가 좋을까 하다가, 원래 ‘초우’는 엄마가 거기서 혼자 부르고 마는 거였어요. 그러다 감독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악어떼)’ 들어봤냐고. 한 번 들어보라고. 그래서 웃긴데요? 했더니 그걸 우리 엔딩으로 쓰면 어떨까 하시는 거예요. 아 이건 아닌 거 같은 데요 하다가 아 그럼 감독님 아예 ‘초우’를 이 팀에게 부르라 하면 어떨까요. 해서 또 미러볼 소속이니까, 리더인 조까를로스를 만났더니 좋다 해서 하게 된 거예요. 역시 최근작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이한 감독님과 작업한 두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기타 위주의 <완득이> 때와는 달리 피아노와 스트링이 전면에 부각된 게 <우행시>나 <화성에 간 사나이>의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어떠한 점에 주안점을 두셨나요? <우아한 거짓말>은 음악의 톤을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고민들을 한 결과 현재의 음악이 나왔죠. 하지만 몇 음악은 초기부터 확정되었어요. 가령, 만지와 엄마가 천지에게 달려가는 만지의 꿈 장면과 엔딩 타이틀이 그건데요. 이들을 기초로 설계하고 나머지를 짜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가 가진 본연의 색채와 의도를 최대한 맞추도록 했고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의 본래 의도라고 생각했죠. 영화 내용이 조심스러웠습니다. 2009년부터는 1년에 2~3편씩 꾸준히 하시게 되는데, 그때부터 시스템이 구축이 되신 건가요? 네. <모던보이> 이후부터 서서히 팀을 꾸려서, 사실 고 시기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폭삭 주저앉을 때였어요. 굉장히 어려웠을 때예요. 그 이후에 음악 개런티도 많이 내려갔어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분위기였던 거예요. 일단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까요. 또 하나는, 조금 조금씩 하는 것 보다는 작품 수를 늘려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천천히 팀을 만들어가면서 작품수를 늘렸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크레딧 보시면 페임이라고 되어있거든요. 약자로는 Film And Music Entertainment인데 영화에서는 제 이름을 계속 쓰는데, 작곡팀으로는 페임으로 있고, 인디영화나 게임, CF, 다큐, 예술영화는 페임으로 갈 거 같아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작업을 계속 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스펙트럼을 넓혀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 것을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영화음악을 하다 보니까 창작 자체에 힘을 너무 많이 뺐던 거 같아요. 알고 보니 영화음악이란 건 창작 자체 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활용하려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 컷 한 큐에 맞춰진 음악을 계속 만들다 보면, 힘들게 만들다 보면 나중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제력을 잃어버려요. 그러면 감독이 빼자, 길이를 맞춰달라든지 음악 자체에 변형을 가하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해요. 이 음악이 아니다라고 하면 거기서 못 헤어 나와요. 한두 발 물러나야지, 빼볼까요? 잘라볼까요? 할 수도 있고, 그래야지 다양한 음악 작업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제가 창작도 계속 하지만, 전 멜로디만 주고 팀원이 편곡을 하거나. 전 그럼 일이 하나 줄잖아요. 그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여유가 생기는 거죠. 영화라는 게 10명만 보는 게 아니라, 천만까지도 볼 수 있는 거다 보니 객관화를 시켜야 하는 거거든요. 창작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꾸 내 음악인데, 내 음악을 왜 이해 못하지? 하는 혼란이 생겨요. 그런 것들을 컨트롤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국내 영화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요? 장르요? 한 번도 안했던 거가 퓨전재즈. 퓨전재즈 영화음악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거랑 뮤지컬? 이런 것들. 하고 싶은데… 둘 다 음악이 강조 되는 영화죠. 당연히 음악감독으로는 음악이 빛나는 영화가 좋죠.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이런 영화 말고는 더 이상 (퓨전재즈가 잘 어울릴 수 있는) 도시적인 냄새가 나는 영화는 안 나오는 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직접 그런 스타일을 요구해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영화의 음악을요? 안 맞는다고 하겠죠. (웃음) 우스갯소리로, 예전 송해성 감독님과 작업할 때도 감독님, 여기선 이런 음악이 어떠세요? 하면 그건 네 영화 만들 때 해.(웃음) 그러는 거죠. 사운드트랙 발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09년 <호우시절>까진 꾸준히 발매도 하셨는데, 최근 음원 시장으로 바뀐 후엔 <완득이>, <오싹한 연애>, <고령화 가족>, <비밀애> 정도만 시장에 소개됐습니다. <결혼전야>는 발매가 되었지요.(웃음) 사운드트랙의 발매 여부를 제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겠죠. 물론 아쉽지만... 그것이 현재 한국 영화산업에서 사운드트랙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아요. 작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음… 가장 중요한 거? 영화를 위한 것? 절대로 음악이 먼저 나서지 않기. 음악은 확실히 주종관계에서 종이다. 그게 확실하거든요. 뮤직비디오랑은 정반대죠. 음악이 훨씬 돋보이고 영상이 서포트해야 하는데, 영화는 안 그렇거든요. 영상과 내러티브가 맞아야 하고 서포트를 음악이 해줘야 하거든요. 가끔 음악이 욕심을 내서 올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그냥 자기 음악 하면 되거든요. 그건 전 좋은 어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음악으로 어디까지 작곡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에 비하면 한계나 제약이 많을 텐데요. 이 질문은 아마 제가 영화음악을 그만 둘 때까지 하게 될 고민이네요.(웃음) 이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한 학기 동안의 수업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확신이 없고, 혼란스러워하는 감독님들도 많은 편인가요? 글쎄요. 아마 제가 감독이 되고 음악을 직접 만든다고 해도 그런 확신을 갖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을 혼란이라고 표현하는 것 보다는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문제는 끝까지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하느냐 아니면 그런 혼란과 조심 후 그것이 확신이 되어 마무리가 되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확신을 주는 것이 음악감독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 불안을 해소시켜 주느냐죠.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와 영향 받은 음악에 대해 골라본다면? 다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작품 때문에 좋아한다기 보다는 마인드가 좋아서 좋아하는 경우? 예를 들면 히치콕 영화의 버나드 허먼. 제리 골드스미스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작품할 때마다 고민을 하거든요. 이 영화음악만을 위해서, 이 영화에 맞는 콘셉트를 잡아서 하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배경이 있잖아요. 왜 이렇게 했는지. 그런데 그걸 이야기 못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냥 화면에 맞춰 한 거거든요. 저는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이야기꺼리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분명하지 않은데 아마도 멜로가 되지 않을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기억을 잃은 전직첩보원은 자신의 이름 하나와 의지할 수 있는 여자 친구를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홀로 버려진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들이 건들지만 않는다면 자신도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도망이고 회피였지만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꿈틀대는 그에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느 밤 스멀스멀 찾아온 기억의 잔재만 아니었다면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걸 잊은 줄 알았던 그에게 떠오른 아픈 과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임무 중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들이 조각조각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찾아온 것이다. 반복되는 악몽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자신이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진즉 알았지만 막상 그것을 감당하기에 그의 상처는 아직 다 치유되지 못했다. 겨우 사건과 정면으로 마주 서려고 용기를 가질 무렵, 불쑥 나타난 그들은 여자 친구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남은 이름 하나를 걸고 그동안 도망쳐온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긴 속죄의 여정이 될 그 길을 막는 것들은 모조리 파괴되고 처치될 것이다. 누구도 용서해주지 않겠지만, 또 용서받을 수도 없는 막다른 길이 될 테지만,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엔 거침없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았으니까. 그는 더 이상 제이슨 본이 아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데이비드 웹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새로운 고향이 될 것이다. ‘본’ 3부작 ‘본’ 시리즈는 2000년대 액션 영화의 지형도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자신의 원형이자 근본이었던 007마저 시리즈를 새로 쇄신시킬 만큼, 이 작지만 영리한 첩보액션물은 3부작을 통해 완벽하게 반(反)영웅의 신화이자 네오 스파이물의 장대한 모험담을 완결지었다. 로버트 러들럼의 인기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가져온 건 콘셉트와 캐릭터뿐, 현재라는 시공간에 맞게 재창조돼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고 강력한 첩보물로 탈바꿈했다. 애초 브래드 피드와 매튜 매커너히에게 타이틀 롤을 맡기려 했으나 최종적으로 확정된 건 액션 스타와는 거리가 먼 범생 타입의 맷 데이먼이었다. 이에 맞춰 예산도 그리 크지 않은 6천만 달러로 책정되었고, 독립영화의 신성이었던 더그 라이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제작비 대비 두 배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며 슬리피 히트작이 되었고, 다음 해 렌탈 시장에서도 선전하면서 빠르게 속편 < 본 슈프리머시 >가 기획되었다. 더그 라이먼이 제작으로 물러서며 감독에 오른 이는 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폴 그린그래스였다. 그는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 블러디 선데이 >로 이제 막 자신의 스타일을 발현한 상태였다. 이미 스태디 캠의 활용과 각 샷 당 평균 4초가 넘어가지 않았던 짧고 빠른 감각적인 영상으로 호응을 얻었던 전작이었지만,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에 한 발 더 나가 상업영화에선 잘 시도되지 않았던 핸드헬드 촬영에 각 샷 당 평균 1.9초라는 초필살 쪼개기 편집으로 속도감과 현장감을 극대화시켰다. <본 슈프리머시>는 전작보다 나은, 그리고 마지막 편을 잇는 중요한 가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영리한 속편의 길을 착실히 밟았다. 감독이 교체되면서 몇몇 스태프들의 변동도 눈에 띄는데, 전작과 흐름을 이어줄 핵심 멤버들은 고스란히 자리를 지켰다. 각본의 토니 길로이와 촬영의 올리버 리드, 그리고 시리즈 내내 음악을 담당한 존 파웰이 그들이다. 196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존 파웰은 트리니티 음악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록과 재즈, 클래식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는데, 졸업하며 영화음악가 패트릭 도일의 어시스턴트를 하며 비로소 영상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95년 광고와 TV물 작업을 하던 그는 한스 짐머의 눈에 띄게 되며 1997년 < 페이스 오프 >로 전격적으로 극영화에 데뷔하였다. 여기서 짐머보다도 더 짐머다운 액션 스코어를 펼쳐 보인 파웰은 이후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와 손잡고 드림웍스의 초기 애니메이션 음악들(< 개미 >, < 치킨 런 >, < 슈렉 > 등)을 담당하며 자신의 발판을 넓혔으며, 액션과 코미디, 애니메이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다. 특히 드림웍스와 디즈니 외에 소니 계열의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와 유니버설 계열의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까지 애니메이션 빅4를 넘나들며 음악을 과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도의 도를 따지기 전에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이기도 하다. 2010년 < 드래곤 길들이기 >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첫 지명 되었고, 그 다음해 < 나잇&데이 >를 끝으로 실사를 떠나 지금은 애니메이션 음악에 올 인하고 있다. 존 파웰과 그의 작품들 액션영화 음악으로 입봉한 작곡가답게 존 파웰은 ‘본’ 시리즈에서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켜 발휘했다. 이미 <페이스 오프>와 < 칠 팩터 >, < 디-톡스 > 등을 통해 짐머 스타일의 액션 스코어를 재해석한 바 있기에 그는 새로 맡은 첩보 스릴러에서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공고히 다지려 하는데, 두텁게 중첩되는 미니멀한 현악 오스티나토를 바탕삼아 감각적인 일렉트로니카의 색채를 입혀 묘한 트랜스 상태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듣기 좋은 테마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철저히 리듬과 루프에 의존하는 큐들은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의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엠비언트에 가까운 과도한 효과와 일렉트릭이 점철된 날카로운 사운드, 둔중한 베이스와 타악의 울림은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며 절반에 가까운 성공에 그치고 마는데, < 본 아이덴티티 >의 그런 실패를 발판 삼아 심기일전한 <본 슈프리머시>에선 전혀 다른 완성형의 사운드를 선사한다. 기억을 모두 잃은 채 기계처럼 반응하는 신체에 당황하던 첩보원 본에게 속편에선 보다 인간적인 고뇌와 속죄의 의미를 부여하듯, 전면에 나선 일렉트로니카 믹싱을 줄이고 현악 오스티나토가 주도권을 잡으며 보다 풍성하고 위용 있는 사운드로 인간적인 감정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인디언 콩가 드럼 같은 라이브 퍼커션을 선호하며 보다 울림은 깊어졌고 묵직함을 갖게 됐다. 여전히 희미한 주제부를 들려주는 바순은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의 심정을 대변하며, 상승과 하강을 빠르게 반복하는 스트링의 배치는 쳇바퀴 도는 자신의 상황과 정부 간의 작전을 상징하듯 의미심장하게 진행된다. <본 아이덴티티> 이후 < 이탈리안 잡 >과 < 페이첵 >을 거치며 보다 발전된 그의 스타일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본 슈프리머시>는 2000년대 액션 스코어의 진화이자 진보이다. Jason Bourne 솔로로 거의 쓰이지 않는 바순이 본의 메인 모티브를 살짝 연주하고는 바로 이국적인 퍼커션 리듬과 낭만적인 기타 사운드로 이어지는 ‘Goa’는 영화 중 가장 특별하고 도드라지는 큐로, 도입부의 평온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도는 인도에서의 일상을 스케치한다. 이후 영화상, 아니 시리즈 상 그런 감정과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인데, 그것이 뒤의 액션 큐들을 더욱 파워풀하고 질주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첩보물답게 감정을 배제한 채 현상만 묘사하듯 담아내는 긴장감 넘치는 큐들이 일품인데, 빠른 샷들의 점프와 더블을 받아주는 규칙적인 비트감과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현악 오스티나토는 가히 집중도를 높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중독적이고 몽롱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Gathering Data’, ‘To The Roof’나 ‘Alexander Platz / Abbotts Confesses’ 등이 대표적인 트랙으로 특히 ‘To The Roof’는 점층과 증폭이란 단어가 어떤 것인지 몸소 깨우치게 만든다.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단조로운 일렉 비트 위로 촘촘하게 현악으로 층층이 쌓아나가는 중첩되는 사운드의 무게감은 본의 신중하면서도 집요한 추적과 맞물리며 환상적인 스릴러 음악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물론 액션 큐도 빠질 수 없다. 인도 추격전을 담은 ‘The Drop’과 베를린의 추격씬에 흐르던 ‘Berlin Foot Chase’,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모스크바 시퀀스의 ‘Moscow Wind Up’와 ‘Bim Bam Smash’는 아드레날린 과다분출에 한몫하는 스코어들이다. 특히 시퀀스 자체에 딱 맞춰 계산되고 재단된 ‘Moscow Wind Up’와 ‘Bim Bam Smash’의 일련의 흐름은 찬탄을 불러일으키는데, 하이라이트에 어울리는 최정점의 효과를 발휘한다. 제목이 주는 포스만큼이나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사운드의 ‘Bim Bam Smash’는 사정없이 몰아치고 부딪히고 박아대는 큐로 영상과 물아일체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스피드와 박력이 가히 액션 스코어의 미학으로 불릴만하다. 그간 거의 들리지 않았던 혼과 브라스까지 합세해 시종일관 쿵쾅대며 카 체이스 씬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리고 충돌!! 찾아오는 정적은 압도적인 사운드와 현실감 넘치는 영상, 딱 맞는 스코어의 절묘한 조합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장면이다. car chasing 시리즈의 마지막엔 언제나 이 노래가 나온다. 모비의 "Extreme Ways". 싸이렌처럼 울리는 도입부가 마치 제이슨 본의 무서운 위력을 알리는 경고음 같다. 허나 실상은 막다른 길에 치달은 자의 고독과 슬픔에 대한 경고음인지 모른다. 시리즈 내내 관통하는 모비의 음울하고 떨리는 음색이 남은 여운과 잔향을 짙게 만든다. 제이슨 본을 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내의 절규와 질주를 담아낸 비가인 셈이다. Track List 1. Goa 2. The Drop 3. Funeral Pyre 4. Gathering Data 5. Nach Detschland 6. To The Roof 7. New Memories 8. Berlin Foot Chase 9. Alexander Platz / Abbotts Confesses 10. Moscow Wind Up 11. Bim Bam Smash 12. Atonement 13. "Extreme Ways"-Mo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