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NTER
- 감독
- 김재준
- 제작년도
- 2008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 2003)는 소통을 통해 위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고독 속에서 표류하는 외로운 두 미국인 남녀의 정서적 교감을 그린다. 중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락은 그에게 공허함과 권태로움만을 안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도쿄에 머물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나날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두 인물은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단절을 겪으며 심리적 고립에 빠져 있다. 영화는 초반 엘리베이터 장면부터 밥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 안에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무리 사이 홀로 우뚝 솟은 밥의 대비되는 신체 비율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아무런 대사 없이 그가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구도와 비율만으로 메시지를 센스 있게 전달하는 장면이다. 밥이 홀로 머무는 호텔방은 고독과 침묵이 가득하다. 지극히 미니멀하고 한없이 적막함이 느껴지는 온기 없는 방이다. 무기력한 밥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무심하게 정지한 상태로 여백을 많이 둔다. 배우의 체구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밥의 시선으로 보이는 일본 TV 프로그램 속 기이하고 과장된 이미지들은 그의 문화적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샬롯이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쿄 도심은 차갑고 건조하다. 넓게 펼쳐진 도심뷰 창문 앞에 홀로 배치된 샬롯의 뒷모습 샷들은 창문 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이거나 혹은 철창 같은 호텔방을 벗어나 해방을 갈망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고립된 공주처럼 창밖 배경과 인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고독감은 증폭된다. 방 안에 흐트러진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하다. 종이꽃으로나마 방 안을 꾸미려는 샬롯의 행위는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이 우연히 꽃꽂이 수업 공간에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꽃 한 가지를 꽂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장면은 비언어적 교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3 )", IMDb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샬롯의 시선으로 보이는 혼잡한 도심 풍경을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불안하게 보여준다. 건물의 파사드 광고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이미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더더욱 낯설고 모호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는 신사 또한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공간일 것이다. 영화는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어 네온간판들이 가득한 번화한 야경 거리, 파친코 상점, 가라오케 같은, 이들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올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캐릭터의 감정적 소외를 컬러풀한 조명의 시각적 요소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언어의 청각적인 요소에 대비시킨다. 도시의 혼잡함과 인물의 고요함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들의 정적인 내면을 부각시킨다. 화려하고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쿄라는 배경은 영리하면서 감각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설정했더라도 이야기는 성립되었겠지만, 의사소통도 감정소통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상태의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을 택한 거다.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낯선 문화 속에서의 혼란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밀도 있게 시너지를 낸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IMDb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단절된 상태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긴밀하게 느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대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이제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홀로가 아닌 둘이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소통해 나가면서 서구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색하고 불편한 낯선 나라의 문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뀐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유쾌하게 도시를 경험하며 즐긴다. 홀로 경험하는 도쿄는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둘이 함께 하는 도쿄는 새롭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지치고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보던 낯선 풍경은 술에 취해 혼미한 시선으로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맞이하는 해방감과 설레임이 도쿄거리의 흐릿한 불빛들과 함께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 보인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외피를 썼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모호한 플라토닉 우정에 가깝다. 한 침대에 누워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샬롯의 발에 살며시 올려놓은 밥의 손은 묘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숭고함마저 깃든다. 무언의 위로와 정서적 교감이 정점으로 느껴지는 최애 장면이다. 마침내 이들은 이렇게 숭고하게 그토록 원하던 깊은 잠에 들며 평온한 밤을 맞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이들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서로가 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진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마지막 시선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이들이 작별하는 엔딩의 도쿄 도심 풍경은 이전에 보여줬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도심이 화려한 간판 불빛에 눈부시고 정신 없이 번쩍였다면, 엔딩의 도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성이다. 동시에 두 인물의 정서적 변화도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설정된 무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탁월하지만 침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 대신 이미지로 말하는 느낌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공허한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 그녀(HER) >(2013) 역시 인물의 감정선을 반영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그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다고 느꼈던 소피아 코폴라의 초기 작품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공간이 단지 보기 좋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계되어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서사의 일부로 작용할 때 미장센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미술을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친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서성경(미술감독) l 이야기에 숨결을 더하는 미장센을 지향합니다. < 사바하 >(장재현, 2018), <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2019), < #살아있다 >(조일형, 2020),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파묘 >(장재현, 2024) 미술감독.
*영화의 전개 과정을 마구마구 적어놓은 글입니다. 딱히 반전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은 나중에 읽는 게 낫겠습니다. < 에듀케이션 >을 보면서 따로 제목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교육에 관한 영화? 그렇게 읽으면 좀 웃겨지지 않나. 그런데 김덕중이 만든 두 번째 장편의 제목이 < 컨버세이션 >이니까 제목을 유심히 보게 된다. 이 감독이 제목에 영어 한 단어를 계속 붙이는 이유는 뭘까. 생각만 계속하니 제목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컨버세이션>은 대화에 관한 영화일까? 그래서 대화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고, 대화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굴레가 덫이 되고, 대화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고, 이상한 지경에 빠졌다. 기억해 보니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것도 아니고, 딱 한 번 봤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의 경연에 여러 차례, 그것도 줄곧 눈과 귀를 대고 있다는 착각까지 일어난다. 이건 무슨 주술 같은 것에 빠진 건가. 슬슬 피곤함이 몰려와 영화에 대해, 정확하게는 그들의 대화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즈음 나는 다시 이 영화를 꺼냈다. <컨버세이션>은 대화에 관한 영화다, 이런! 역시나 나는 같은 생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로 페이드인하면, 세 명의 여자 – 은영, 명숙, 다혜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환한 햇살이 그들 사이로 비친다. 아무리 봐도 나이 차가 나 보이는데, 그들은 친구처럼 말을 놓는다. 대화의 내용으로 미뤄 그들은 모두 파리에서 유학하며 살았던 모양이다. 그들의 대화 내용을 만약 프랑스인이 듣는다면 콤플렉스에 빠진 아시아인이라고 코웃음 칠 테고, 한국인이나 아시아인이 듣는다면 별로 친근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흉볼 것 같다. 10분이 지나고, 다음 장면에서 명숙과 다혜가 어둑어둑해진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한다. 대화 속 관계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데, 한 번 박인 밉상의 인이 더 깊어진 탓인지 특히 명숙과 다혜에 대한 비호감은 좀체 회복되지 않는다. 대화를 마치고 은영의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할 때, 비상문이 열리지 않아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보면서 깨소금 맛이라고 여기면서도 미안하지 않다. 다음 장면은, 술에 취한 은영이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걸 보여주는데, 앞선 장면과 시간상 연결이 되지 않는다. 기사와의 대화 내용으로 보아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은영과 명숙이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 성가신 상황을 겪고, 다음 장면은 다시 현재(대화 도중 ‘한남’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로 돌아와 한밤에 은영과 두 친구가 대화하는 모습을 담는다. 첫 시퀀스에서 대화의 주제로 나온 대로 그들은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기를 시도한다. 은영은 곁에 있는 아기가 깨지 않도록 신경이 쓰인다. <컨버세이션>은 챕터로 나뉜 영화가 아니지만, 인물이 들어가고 나가는 시점을 기준으로 편의상 몇 개의 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44분까지 전개되는 첫 번째 챕터는 은영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사건이랄 게 없거니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도 친절하지는 않다. 한 예로, 이 챕터는 대략 다섯 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쇼트의 숫자로 쳐도 여섯 개에 불과하다. 두 개의 쇼트로 이뤄진 첫 시퀀스를 빼면, 전부 하나의 쇼트로 하나의 시퀀스가 구성되며, 제목 그대로 대화하는 모습만을 기록하고 있어서 정적이란 인상을 준다. 압권은 제일 긴 쇼트인 택시 내부 장면이다. 은영과 기사의 대화가 주 내용인데, 영화는 오직 은영만을 보여준다. 나는 화면 바깥에 있는 기사의 모습을 10분 넘도록 상상만 해야 한다. 현재의 어느 하루의 낮, 저녁, 밤 시퀀스와, 그 사이에 낀 과거의 두 시퀀스가 부드럽게 연결된 편도 아니다. 시간과 시간이 불쑥 드나드는 까닭에, 과거의 장면이 현재를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이 평범한 영화는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하지만, 온갖 괴상한 영화가 설쳐대는 요즘에 <컨버세이션>의 형식이 유달리 신선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택시 장면에서 문득 설렘을 느꼈으나, 첫 번째 챕터가 끝날 때까지 나는 <컨버세이션>에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에듀케이션>을 만든 영민한 감독의 소포모어징크스인가, 그런 생각만 했더랬다. 감기려고 하던 눈이 반짝 떠진 것은 44분까지의 은영 챕터가 끝나고, 갑자기 낯선 인물들로 두 번째 장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때부터 한동안 은영은 스크린 밖으로 사라져 나오지 않는다. 여기선 승진과 필재의 씁쓸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다면 은영이 나중에 그들 사이로 어떻게 들어온단 말인가. <컨버세이션>은 별개의 이야기로 나뉜 옴니버스영화일까. 그런저런 예상을 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첫 장의 스타일은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다. 쇼트의 길이는 길고, 인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라곤 없으며, 시간과 시간 사이로 갑자기 그와 그녀가,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왔다 나간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깥 공간의 개입에서 비롯되는데, 첫 장에서 갇혀 있던,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만 대화하던 인물들이 바깥의 공간에서 움직인다는 점이다. 두 번째 장의 인물인 승진과 필재는 대화하면서 움직이는 존재다. 승진이 “걸을까”라고 말한 뒤 유모차를 끌며 앞장서 걸으면, 필재가 그를 따라 공원 한 귀퉁이를 도는 장면이 그러하다. 몸의 움직임과 함께 대화가 끌려 나오고, 그들은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움직인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은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대화에 에너지를 부여한다. ‘인물이 느끼는 감정, 인물 관계의 변화’ 같은 것들에 대화가 어떻게 관여하는가, 그것이 신기하게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과거는 기억 속에서 미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런 작품에선 더욱 그러하다. 첫 번째 장에서 은영이 딸 라온을 둔 시점을 현재로 상정한다면, 이후에 튀어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과거의 언제일 확률이 높은데, 묘하게도 과거의 어떤 이미지들이 뜻 모를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어느 날 밤, 집 앞에 차를 주차하지 못한 필재가 좁은 공간을 배회하는 장면이 그 중 하나다. 그는 차를 몰고 어디를 다녀온 길일까, 골목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 장면은 저 뒤에 나올 열차 장면과 쌍을 이룬다. KTX 안, 아마도 필재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인 듯한 승진은 종이를 꺼내 편지를 쓴다. 그의 말대로 그건 아주 슬픈 편지다. 골목을 오가던 필재는 그런 편지를 받을 줄 모르고 있을 테지. 그런저런 생각들로 두 개의 이미지를 엮는 일은 곧 ‘애통의 미를 관조’하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아름답지만, 다른 정서와 마주하게 하는 장면은 승진과 필재가 버스킹을 구경할 때다. 여기서도 공연하는 가수는 화면 밖에서 목소리만 들려줄 뿐, 나는 승진과 필재만 쳐다볼 수 있다. 무심한 듯 앉은 필재에 비해, 승진의 앉은 자세는 어딘가 어색하다. 그는 안절부절못한다. 마침내 뒤로 누운 그의 손길은 가슴 속에서 주문하는 행동을 옮기지 못해 허공을 맴돈다. 짧은 아스라함이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모리스>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이 전달됨을 느꼈다. 이 장면과, 승진과 은영이 산행에 나선 마지막 시퀀스는 대구를 이룬다. 앞선 장면과 달리, 승진의 태도는 자연스럽고 대담하다. 앞의 버스킹 장면이 있기에, 산행 장면의 승진을 보며 나는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놓인 열차 장면이 승진에게 어떤 확신을 준 것일까, 이 영화의 대다수 장면이 그러하듯 ‘그렇다’고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어쨌든 <컨버세이션>의 인물들은 적절한 단어와 몸짓을 갈구한다. 자기 마음속 어떤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쉬 떠오르지 않아, 그것을 마음껏 밖으로 내뱉지 못해 답답해할 때도 있다. 현재의 은영은 결혼과 출산 이후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감정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컨버세이션>은 어쩌면 그런 그녀의 감정이 찾아 나선 시간의 해법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돌고 돌아 그녀는 끝내 산행에 나섰던 그 날로 되돌아간다. 은영과 승진은 여전히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그들의 대화는 다시 한 번 엇갈린다. “말을 해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안다”고 자신 넘치게 말했던 은영은 “내가 너 사랑한다”는 승진의 말에 말문이 막힌다. 대화의 영화에서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그렇게 오지만, <컨버세이션>은 그 대화의 끝에서 풍성함을 거둔다. 흡사 영화 내내 쏟아져 나오던 수많은 단어들이 하나의 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양, 이리저리 맞서고 뒤엉켜 싸우던 감정의 선들이 대화의 결을 따라 정리된다. 하나의 원이 완성되는 순간, 하지만 이것은 진실과는 또 다른 문제다. 버스킹 장면의 승진이 산행 장면의 승진보다 덜 혹은 더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만, 그들의 관계가 커다란 원을 돌아 하나의 지점에 도착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의 대화가 진실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승진이 편지에 썼던 것처럼, 우리는 맞는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각자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며, 산행에서 돌아오는 그 순간에 은영과 승진은 적어도 맞다고 여긴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대화의 영화라는 점에서 <컨버세이션>은 대화가 주를 이루는 몇몇 프랑스 영화와 근친 관계를 맺는다. 근래 등장한 프랑스 영화 중에 대화가 중심에 선 작품으로 < 러브 어페어: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이 있다. 그런데 <러브 어페어>의 대화와 <컨버세이션>의 그것은 다르다. <러브 어페어>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빌려 대화하는 형식의 영화다. 여기서 대화는 구애의 방식이다. 누군가의 비밀을 전달하는 것처럼 대화하면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감정 속으로 접근하고, 그러한 접근은 결국 두 사람의 관계로 매듭지어진다. 대화는 직접적으로 인물과 인물에게 영향을 주는 수단이며,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야기라는 형식을 빌린다는 점에서 다른 영화와 차별화된다. <컨버세이션>에서 은영과 승진이, 혹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는다. 이 말인즉 그들의 대화는 이후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영화의 엔딩에서 은영과 승진은 곧장 맺어질 듯이 대화와 감정의 연결점을 취하지만, 그것은 이미 흘러간 몇 년 전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즉, 이 영화의 엔딩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손길은, 영화의 첫 번째 장에서 부부의 애정을 절감하는 은영에게 직접적인 은혜의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은영은 현재의 외로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자기 영역 밖의 일이다. 현재의 은영은 여전히 외로운 아내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 상담할 때는 이런저런 조언을 풀어놓는 그지만, 정작 그 자신의 답은 찾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아니면 김덕중이, 그들 – 은영과 승진이 산을 찾아 대화를 나누었던 어떤 시간을 찾아간 것이지, 현재의 은영이란 인물이 과거 어느 시점의 자기 대화를 찾아낸 게 아니라는 말이다. 엔딩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무엇이라 설명하든 – 진실이든 풍성함이든 찬란함이든 신비함이든 농담이든 – 그것은 은영이란 인물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으며, 굳이 말하자면 영화가 창조해낸 어떤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러므로 은영에 대해 안타까워할 이유 또한 없다. 누군가 <러브 어페어>의 리뷰에서 알랭 레네가 연상된다고 써놓은 것을 읽었다. 글쎄다, 레네가 영화적 생명의 중후기에 쌓아 올린 형식적인 경지를 감안한다면, <러브 어페어>보다 <컨버세이션>을 들이미는 게 더 적합해 보인다. 예를 들어, <스모킹 노스모킹>에서 각 인물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떻게 말하느냐, 에 따라 알 수 없는 수많은 결과를 낳는 것과, 이런 길과 저런 길을 오가는 은영과 승진의 삶의 양태가 닮아도 더 닮았다. 김덕중은 대화에 관한 영화로 <컨버세이션>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가 완성한 것은 ‘대화의 영화, 영화의 대화, 대화의 작동 원리’에 대해 고심한 결과물로서의 영화다. 나는 말장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던 공원 장면에서, 승진이 물었다. “그래서 애수가 뭔데?” 필재가 대답했다. “슬픔과 비슷한 건데 설명하긴 어려워” 나중에 승진은 또 말한다. “너도 애 생기잖아, 아마 애수가 철철 넘쳐흐를걸?” 대화가 다 풀어놓지 못하는 것, 그것을 기어코 대화를 통해 이뤄내도록 창조해내는 것, 그것이 곧 인물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이윽고 인물이 대화를 통해 도달한 미지의 공간이 <컨버세이션>이다. 어느 날, 김덕중 앞으로 은영이란 인물이 도착한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그는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겉도는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 유일하게 자기의 외로움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이 그다. 김덕중은 다른 시간의 레이어에 놓인 그를 상상한다. 때론 그를 시간 밖으로 내던지기도 한다. 그가 부재하는 시간 동안, 그와 인연을 맺을 다른 사람들의 레이어가 겹겹이 쌓이다, 다시 은영의 레이어와 교차한다.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 속에서 다른 머리를 하고 다른 옷을 입은 여러 은영과 여러 승진이 그 사이를 떠돈다. 그 작업을 통해 김덕중은 은영에게 하나의 순간이 될 시간과, 그 시간의 대화를 빚어낸다. 현재에서 과거의 가능한 결과를 찾아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영화에선 가능하다는 것을 김덕중은 영화적으로 설명하고 구현해 낸다. 어떤 서두름도 없어서 더욱 놀랍다. *무슨 까닭인지 글을 마칠 즈음 < 스프링 피버 >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두 영화를 비교하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김덕중은 로예와 전혀 다른 감성의 감독이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3년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와 그 중 한 작품에 관해 쓰는 ‘사사로운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지난 한 1년 간 웨인 왕 감독의 <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 >이라는 영화에 어쩌다 익세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괜히 자기 영화 홍보하는 것 같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올해 나에게 이보다 더 사사로운 영화는 없다. 솔직히 ‘홍보라고 해 봤자’라는 생각도 든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한 후로 각처의 영화제 초청과 언론의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각처의 수입사와 배급사에서는 지금까지 고사하는 상황이니 뭐…… 그래, 그냥 주제에 맞게 ‘사사롭게’ 쓰자. 지금 다른 영화 얘기할 머리 상태도 안 된다는 것도 인정하자. 거의 1년 간 내가 사는 서울과 감독님이 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차 17시간을 두고 일하다 보니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면역성은 물론이요) 뇌세포도 많이 상한 것 같다. 한창 후반작업 중일 때는 거의 잠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 관타나모 같은 데서 나 보고 테러리스트라고 고백을 하라고 부추겼더라면 당연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해 없이 8시간만 쭉 자게 해주세요” 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자처했을 법한 정신적 누더기 상태가 됐다. (문제는 내 본업이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이자 한국 통신원이라는 것 – 그러잖아도 낮에는 아시아 일을, 저녁에는 런던 본사와 소통을, 아주 늦은 밤에는 새벽 잠이 없는 감독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깨셔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급한 불 끄고 해놓을 수 있는 연락은 일단 다 취해놓고 서울 시간 새벽 5~6시쯤 지쳐서 ‘그만!’ 하고 외치고 서너 시간 자던가 말던가 하고 다시 일과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볼까 한다. 웨인 왕 감독을 만난 건 작년 이맘때 ‘사사로운 영화’ 원고를 쓸 때 즈음, 도쿄 필름엑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같이 하면서였다. 아마 심사위원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영화와 커리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들을 깊이 공유하고 논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연출하신 예술영화도 좋고 할리웃 대중영화들도 다 뭔가 결이 다른 데가 있어 좋아요”하는 정도의 말쯤은 했었겠지만, 영화제 카타로그에 내 약력이 나온 걸 보고 한때 LJ 필름이 CJ 엔터테인먼트와 합병했을 때 글로벌 프로젝트팀 프로듀서였다는 것에 대해 감독님이 추가 질문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사를 같이 하다가 밥도 같이 먹고 리셉션도 같이 가고 하면서 그냥 저냥 얘기하다 “왜 프로듀싱을 계속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때 기획개발에 일조는 해도 과연 이 영화들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느냐, 필요로 한다 쳐도 내가 몇 년 동안 그 영화에 110%를 바쳐도 보람이 느껴질까 하는 두 가지 질문을 하다가 ‘스크린 인터내셔널’ 한국 통신원 자리가 열려서 원래 하고 싶기도 했던 기자 일을 택했다”고 했다. 그게 2005년이었는데, 그 사이 출판업계 상황이 한창 안 좋아진 것도 당연하지만, 나란 인간에게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분도 감지하셨을 것 같다. 요즘 영화인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웨인 왕 감독의 < 스모크 Smoke >’(1995)는 제 인생의 영화예요!”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할리웃 최초로 아시아계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 조이 럭 클럽 Joy Luck Club >(1993)이나 제니퍼 로페즈와 레이프 파인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 러브 인 맨하탄 Maid in Manhattan >(2002)으로 웨인 왕 감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 영화들 다 좋아한다. (특히 <러브 인 맨하탄>은 비슷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로맨틱 코미디로 따지자면 더 유명한 <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낫다 생각한다. 이 쟁점을 갖고 가볍게 한판 붙을 자신은 있다. 잠 좀 자고 뇌세포가 회복되고 나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왕 감독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천년의 기도 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그 작품과 짝으로 만들어진 <네브라스카의 공주 Princess of Nebraska>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이윈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두 편인데, 2007년 하와이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으로 나란히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걸 감독께 말씀 드렸었다. 그래서 그러셨나?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의 자전적인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있다고 귀띔해주셨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이창래 작가의 <생존자 The Surrendered>나 <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 <가족 Aloft>, <척하는 삶 A Gesture Life>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니고, 저명한 <더 뉴요커 The New Yorker> 잡지에 실렸던 단편 에세이 같은 것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때 동경 오기 전에 며칠 만에 찍고 가편집본을 만들고 있는데 한 번 보겠냐고 하셔서 당연히 영광이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얼마 후,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는 간단히 말씀 한 줄 적고 스크리너 링크가 든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색보정이나 사운드 등등 후반작업은 하나도 안된 가편집본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위암을 앓는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월 스트리트의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샌프란시스코 고향집으로 돌아온 아들 ‘창래’의 이야기였다. 창래는 자라면서 엄마가 늘 - 특히 미대륙을 횡단해 있는 엑서터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 해주던 갈비며 전, 잡채 등의 한국 전통 요리를 죽어가는 엄마에게 배우면서 마지막 섣달 그믐날 가족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위암 말기의 엄마는 씹어서 삼켜도 바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아들은 자기가 차린 음식을 엄마가 먹어주길 바라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창래 역에는 <트와이라잇 Twilight>에 개구장이 십대로 나왔던 저스틴 전 (Justin Chon)이 다 자라서 나왔고, 엄마 역에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 하고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등의 테레비젼 드라마 조연으로 출연했던 재키 정 (Jackie Chung)이 절제된 명품 연기를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죽어가는 부모를 간호 하면서 희생하기도 하고, 음식을 배우면서 소통을 하기도 하는, 그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동안 쌓여있었던 가족 간의 갈등도 회상으로 나오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아직은 젊은 엄마를 잃을 것을 당면한 자녀의 자기중심적인 잔인함도 깃들여 있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거나 이타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심사위원을 함께 하면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간단히 “잘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자세한 피드백을 솔직히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위의 얘기를 하면서 친척 중에 항상 명절 때 손수 모든 요리를 하시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던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옆에서 봤던 가족들의 모습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면한 본인이 어떨 지에 대한 생각보다 자기가 곧 직면할 상실감을 감당 못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 모습들, 당시엔 납득할 수 없어 긴 세월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는 걸 말씀드렸다. 그리고 영화 속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나서 살기만 한 한국인과는 좀 다른 행동과 반응을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때 미국에서 한 8년 자라면서 봤었던 이들이 스크린에 살아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예를 들어, 가정 방문한 교회 아줌마들의 성경찬송과 H-라인 스커트와 브로치 – 너무 전형적으로 익숙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는 익숙한 기독교적 위안에 전형적으로 착한 한국인 아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는 창래의 반응이 신선하고 좋았다. 캐스팅도 대사도 연기도 너무 훌륭해서 아빠로 나오는 존 리 (John Lie)가 처음 나와서 “창래야” 하는 순간부터 이 인물이 누군지 파악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나름 미국 사회에서 많은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권위가 있으나 집에서는 라면 하나 못 끓여먹는 한국 남자 어른. 이런 심각한 감정적인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 남자 어른. 한때 이문세 노래 하나로 불륜이 걸렸음에도 계속 학자적인 ‘썰’을 푸는 한국 남자 어른. (코미디가 아님에도 이 영화에서 제일 코믹한 인물이기도 하다.) 누나로 나오는 크리스티나 줄라이 김 (Christina July Kim)도 화면에 나오는 순간부터 완벽한 인물 재현을 한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꾸리다가 비행기 타고 날라와 엄마의 치료를 끊겠다는 결심을 반대하며 항상 자기 보다 총애를 받던 남동생에게 편들어 달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딸. 곧 비행기 타고 가부장제의 나라에 돌아가서 또 진급을 투쟁하듯이 찾아나서야 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 딱 아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났더니 감독님과 <커밍 홈 어게인>의 국제 영화제와 시장에서의 난점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와 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도 공유했다. 절제된 표면 밑에 깊은 감정들이 흐른다는 점이 강점이지만, 절제성 때문에 폭넓은 대중성을 갖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얘기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프로듀서 도날드 영의 돌아가신 할머니 댁이었던) 한 아파트 안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 작품을 ‘체임버 피스’라고 좋게 말할 수 있으나 ‘스펙타클’하지 않다고 흠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얘기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수입사에서 얘기 한 것처럼,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내용은 보통 사람들이 이런 데서 기대하는 한국적 멜로나 신파가 아니어서 마케팅하기 애매하다’는 평도 예상 했으나, 어쨌든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있는데 스크린에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좋았다는 것도 얘기했다.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신뢰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램을 공유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감독님은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본 촬영이 끝난 작품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그런 크레딧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직 기자 일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쏘시어트 프로듀서’나 ‘공동 프로듀서’ 또는 ‘컨설턴트’ 같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만한 크레딧을 차라리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렇게 합의하고 전화 끊은 후 이메일 몇 번 더 주고 받으면서 샌프란시스코 팀은 추가 씬 촬영과 후시녹음 등을 한 후 새로운 편집본을 보내왔다. 이번엔 간단히 "언짢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에 네 이름을 넣었다”는 한 줄이 들어간 이메일에 스크리너 링크가 왔다. 솔직히 좀 곤란한 건 사실이었으나 웨인 왕 감독 같은 거장이 분명 다른 프로듀서들과 논의 끝에 결정해서 크레딧에 넣었을 것을 알면서 거기에다 대고 뭐라 말하겠는가? "영광입니다. 크레딧에 부합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엮인 거다. 그 후로 후반 작업에 의견을 내는 일 외에 크게는 이문세 ‘옛사랑’ 노래 판권을 구하는 일, 국제 세일즈사를 구하는 일, 영화제 출품을 돕는 일 등을 맡게 됐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다간 편집장에게 양해를 받았다. 리뷰를 쓰고 에디팅 하는 동료들은 기사가 완성 되고 나서야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리뷰에 대한 걱정은 안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 동료는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가죽을 벗겨 회를 치는데’ 하는 노파심이 살짝 든 건 사실이다. 나중에 영화를 너무 잘 봐주고 좋은 평 써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네가 관여한 작품인지 몰랐다’며 진정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할 때 여러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평론가 중의 한 명이 기자 시사 나오면서 트위터에 ‘눈물을 양동이로 들고 나오느라 동료 기자들에게 사과해야만 했다’는 식의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남자들이 엄청 울었다는 반응이 기억난다. 상영 전에 왕 감독이 “내가 할리웃 영화 만들 때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편집의 속도를 점점 급하게 가자고 다그쳤었다. 잠시라도 관객이 숨을 들이쉬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못하게 강요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숨쉬는데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겪게 됐다. 의사한테 가보니 요가를 해보라고, 숨쉬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고, 각자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등장 인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 소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호흡하고 생각할 겨를을 많이 주는 영화다. 아시아 프리미어는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하게 됐다. 그런데 마지막 후반작업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으시고 토론토에서 두 번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한 끝에 집에 돌아가신 왕 감독은 발병해 결국 부산에 못 오셨다. 솔직히 프로모션 측면에서 말하자면 재앙 같았다. 부산 영화제 24년 역사에 갈라 상영 때 감독이 안 나타난 일은 우리 영화가 처음이었다. 항상 젊게 사시는 왕 감독이 1949년생이라는 걸 이때 상기했다. 그래도 명품 연기를 한 재키 정이 임신중임에도 보석 같이 나타나서 부산 상영 때 ‘가족 영화인데 남편과 아들과 곧 태어날 아들과 함께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상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관객들을 사로 잡기도 했다. 남편은 <커밍 홈 어게인>의 중요한 조연으로도 나온 루이 오자와 장치엔 (Louis Ozawa Changchien)이다. 곧 아마존 프라임에 나올 <헌터스 Hunters>’이라는 아카데미상 후보자였던 조던 필 (Jordan Peele)이 제작하고 알 파치노 (Al Pacino)가 나오기도 하는 나치 추적 시리즈에서 볼 수 있게 될 배우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고 나름 프로덕션과 영화제 입장에서도 큰 일이었기에 뱃속 아기가 몇 주 빨리 나오면서 부산에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됐다는 점을 안 쓸 수 없다. ‘부산 국제 영화제 1호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산에서의 많은 일은 프로듀서 스쿨에서 배운 적이 없는,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하겠다.) 그리고 유럽 프리미어는 11월 말, 에스토니아의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했다. 여기 다녀오느라 이 원고가 좀 늦어진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혼자 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등등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4시간 반, 비행기로 50분 가량 떨어진) 같은 발트해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는데 “만세! 빨리 탈린으로 돌아와”라며 우리 영화 리챠드 웡 (Richard Wong) 촬영감독이 최고 촬영감독상을 타게 됐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다. 빨리 미국에 있는 리챠드한테 비디오 인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얼른 탈린으로 돌아와 대리 수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촬영은 현재 시점의 장면들은 다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와이드 샷으로 찍었고, 회상 장면은 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가까이 다가가 찍었다. 색깔도 회상 장면들은 조금 더 따뜻하게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첫 테이크였던 것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은 <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3) 마이크 뉴웰 (Mike Newell)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평에 “우아한 미니멀리즘으로 스토리의 긴장과 드라마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좁은 공간을 통해 프레이밍하여 인물들의 절망을 신중한 눈으로 옮기고,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을 높이 사 시상한다고 했다.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한다”고들 한다. 시장성이 어떻던 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영화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