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 감독
- 김윤미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혜경, 박한솔
2019년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중 상영 전 작품 소개 왜 대구에서 영화글을 쓰나요? 그 소박하면서도 긴 여정 2025년 가을, 대구·경북에서 지난 10여 년간 나온 100여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책을 한 권 출간했다. 그저 몇 년 동안 꾸준히 기록해 온 글 모음일 뿐인데, 이런 유형의 작업은 최초라는 소릴 여기저기에서 듣는 중이다. ‘지역’에서 영화 관련 글을 쓰고 활동한다는 소개를 하면, 대개 접하는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게 마련이다. 1) ‘얼마나 수고(혹은 고생) 많으냐’, 2) ‘거기에서 어떻게 (제대로) 활동하느냐’다. 둘의 온도는 차이가 크지만, 배경은 거의 다르지 않다. ‘지역’에서 영화를 논하기 어렵다는 전제다. 영화 평론집을 내고 ‘작가’란 어색한 호칭을 종종 듣지만, 평론가를 지망한 적은 딱히 없었다. 영화와 무관한 일을 하며 받는 업무 스트레스를 풀고자 영화제에 종종 다니던 게 조금 유별난 점이란 정도? 그러다 조금씩 지역의 독립·예술영화 극장과 소규모 상영회에도 간간이 다니게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쑥 상영회를 열어보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렇게 모든 재앙(?)이 출발한다. 상영회를 열며 소소한 영욕을 쌓아간다. 관련 활동을 이어가니 주변에서 알아차리게 된다. 영화를 매개로 한 교육이나 사업 기획이 생업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공사 구분이 허물어지자 화근은 종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마침내 영화제를 열어보자는 제안이 나오고, 실무를 떠맡게 된다. 그렇게 2010년, 대구사회복지영화제가 시작된다. 영화제 자원활동가도 한 번 하지 않고 졸지에 영화제를 책임지게 된 셈이다. 이후 10년간 좌충우돌 행각이 이어졌다. 저서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2025,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기? 어쩌면 필연을 가장한 우연 영화제 관객으로 다녔을 뿐, 실무는 관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작품을 발굴하고, 상영작을 수급한 다음 행사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관객의 다양한 수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건 물론, 정산과 평가까지 마쳐야 행사 하나가 끝난다. 온갖 사건 사고를 겪으며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선별하는 안목이 얼기설기 형성되어갔다. 작지만 내실 있는 영화제를 꾸린다는 건, 실무적으로 경험이 축적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 자신만의 선구안이 형성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당 영화제가 지향하는 가치, 공유하고 싶은 주제가 (영화제가 상정하는) 관객과 접점을 형성하기 위해선, 개별 ‘취향’과는 구별되는 ‘지향’이 필수다. 영화제를 통해 프로그래머의 가치와 덕목을 어렴풋이 깨우쳐 나갔다. (좌) 2019년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중 단편2 섹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우) 2018년 전태일 노동영화제 중 < 사수 >(김설해, 정종민, 조영은, 2018)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며칠에 불과한 영화제 동안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뻔하다. 여건의 한계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작품이 잔뜩 쌓이게 마련이다. 추가 상영을 향한 갈증은 별도의 상영회로, 사전 제작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향한다. 물론 새로운 도전이니 풀어야 할 과제가 수북하다. 용케 고비를 넘기며 소박한 성과를 이룰 때마다 욕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지역 영화제는 서울과 비교해 너무도 취약한 다양한 영화와, 이를 매개로 한 프로그램에 목마른 지역 관객에게 부족하게나마 극장의 대체재로 기능한다. 그 특성을 깨닫는 순간, 무형의 책임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우리 지역에 반드시 그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턱없이 부족한 자원과 기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최적화 모델을 찾기 위한 계산과 순수한 열망이 끝없이 충돌하며 개인의 욕망과 지역 영화문화의 공공성이 외줄타기를 거듭했다. 맨땅에 헤딩하기로 얻는 찰나의 행복, 일상의 갈증 지속 가능한 영화제를 내실 있게 꾸리고, 여력 닿는 한 온갖 명목으로 공동체 상영회를 기획하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란 직함으로 여기저기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에 나가거나 글을 기고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순서다. 이름을 걸고 적합한 작품을 추천해 기대 효과를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수요가 예상치 못하게 불쑥 제기되더라도 늘 열과 성을 다해 의뢰에 응대할 때만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어느새 업계 관계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에 걸맞은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은 점점 늘었다. 물론 대부분은 누가 강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하면 좋을 듯하거나 필요할 일이란 생각에 자발적으로 벌인 일이다. 그러니 잘 안 풀려도 하소연하거나 누굴 원망할 수 없다. 그러나 못내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찰나의 보람과 일상의 고민이 쌓여만 갔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 영화제나 상영회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설상가상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오랜 입원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외출도 면회도 통제된 가운데, 다행히 와이파이는 잘 터졌다. 노트북을 켜고 영화를 본다. 하지만 허전함은 여전했다. 영화를 소개하고 나누는 재미가 없었던 탓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게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영화제 일을 하면서 조금씩 글을 쓰긴 했지만, 대개 작품 소개를 위한 한정된 분량과 용도에 그쳤다. 긴 글을 쓸 여력도 없고, 쓴다고 해도 게재할 지면이 지역엔 딱히 없었던 탓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건 글보다는 상영 기획으로, 혹은 종종 들어오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수행해 왔다. 외부 조건의 극단적 변화로 그 경로가 변경되어야 할 상황이 닥치자, 자연스레 영화글 쓰기로 중심이 이동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냥 쓰고 싶은 작품에 관한 글쓰기가 아닌, 보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작업을 구상하게 된다. 일단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야 하는데,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얼어붙은 극장가엔 역설적으로 저예산-다양성-독립-예술영화 소개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던 참이다. 재개봉 붐도 일었다. 다양한 영화가 어려움을 뚫고 극장에 걸리는데, 정작 이런 영화들의 정보를 접하긴 무척 어렵다. 자연히 (재)개봉 독립·예술영화 작품 소개 글을 기고하게 된다. 지역에서 영화 잡상인이 존재할 이유 다음으로 상영 활동을 수행하며 알게 된 지역 영화인과 그들의 작업을 알리고 싶었다. 역시 주기적으로 리뷰를 작성한다. 영화 애호가가 아닌 평범한 이들에게 일상과 영화가 연결되는 접점을 만들고자 예전부터 틈틈이 작성하던 교육 목적 기고도 꾸준히 잇는다. 어느새 해야 할 몫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불어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체성에 혼란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인정받기 위해 십여 년 넘게 분투해 왔건만, 정작 본업은 지지부진한데 부업이 활발해진 격이라 그렇다. 그렇게 어쩌다 시작한 정기적 집필 작업은 크게 세 경로로 집중되어갔다. 가변적인 글쓰기 실험으로 인스타그램에 영화 단평을 별도로 올렸다. 단평은 정식 기고의 초벌 스케치 역할과 더불어, 지면 게시용으론 애매한 분량이나 비중의 작품도 공개적으로 소개하는 우회로로 상정했다. 그저 많이 보고 능력껏 쓰는 것에서 출발해, 일정한 방향과 목적의식을 갖고 작품을 소개하는 공적 경로를 좌표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조건반사처럼 끊임없이 지금도 글을 작성하는 중이다. 그 과정이 반복되며 일종의 축적을 낳는다. 기존의 오프라인 상영을 통해 형성해 온 독립·예술영화계 네트워크를 다른 각도로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필자가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리뷰 피드(< 밸브를 잠근다 >, < 입문반 >) 그런 실용성 말고 이런 글쓰기 활동이 지역 영화 (창작 및 관람) 환경에 어떤 순기능을 수행하고 있을까?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한, 혹은 남들이 상대적으로 덜 다루는 희소성에 주목한 데 불과할까? 해당 질문은 지금도 수시로 머릿속을 맴돈다. 혹시 이 고민에 답을 얻기 위해 지역 영화 관련 활동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그러나 조금씩 몇 년간 꾸준히 수행하던 지역 영화 글쓰기의 쓸모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독립영화에서 ‘지역 영화’는 꾸준히 호명과 소환을 거듭해 왔다. 주요 영화제에서 여러 이름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주로 포진한 영화학과 중심)에 대비되는 로컬 작품 위주 부문을 신설하고, 지역별 독립영화제에서도 해당 분야 비중이 대폭 늘어났다. 영상 제작 환경의 긍정적인 변화와 교육/지원기관의 증가로 지역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안에 무수한 다양성과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력 영화제에서 호명되고 수상하지 않는 한, 절대다수의 지역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잊히기 일쑤다. 물론 이는 수도권 지역에도 적용되지만, 바늘귀의 크기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역 영화생태계’란 수식어가 종종 등장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심도 있는 논의는 찾기 힘들다. 대개 개별 지역마다 (변화된 창작 환경에 따라 대폭 증가한) 창작자는 꼭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소수나마 복합상영관에 걸리는 상업영화에 만족하지 못하는 관객층, 그들에 의지하며 능력껏 다양한 작품과 기획을 선보이려는 상영 공간 및 집단이 존재한다. 지역 영화제/독립·예술영화관/(근래 확산되는) 상영회 개최그룹 등이다. 이들을 묶어 흔히 생태계로 호칭한다. 지역 영화 창작자와 독립·예술영화 관객이 별개가 아니라면 그 자체로 작은 영화 공동체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싹틀 법하다. 그러나 가야 할 길에는 난제가 숱하다. 우선 관객 입장에선 반드시 지역 영화를 관람할 이유랄 게 없다. 세상에 봐야 할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정보도 찾기 힘든 낯선 영화까지 챙겨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만든 영화가 평가받는 거의 유일한 기준은 (외부의 알려진) 영화제 진출과 수상 경력으로 제한된다. 자기 동네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돌고 돌아 역수입이 되어야 비로소 인식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역 영화의 매력이자 개성이라면, 다양한 고유의 소재와 배경, 지역 사회와 문화에 주목한 특유의 색깔일 텐데 정작 그나마 소개될 기회를 얻는 경로는 그 특색과 동떨어지기 쉬운 셈이다. 이런 오류를 보완하는 데 지역 사회 내에 공존하며, 영화생태계 일부로 소속감을 지닌 평론/평론가의 존재는 필수적인 윤활유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2023년 반짝다큐페스티벌 중 섹션4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작은 변화의 가능성과 함께 엄습하는 숙제들 지역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인터넷 대안언론 《뉴스민》에 제안해 ‘무비053’이란 이름의 칼럼을 열었다. 2주마다 꼬박꼬박 대구(경북) 지역 작가와 배경의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2022년 3월부터 기고를 개시한 해당 칼럼이 훗날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2025)의 산파가 된 셈이다.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비정기 기고는 진행했지만, 본격적인 지역 영화글을 집필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글쓴이에게 일어난 변화는 작지 않다. 지역에서 영화 관련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글쓰기로만 끝나지 않는 일이다. 일단 영화를 찾아봐야만 한다. 대부분 지역에서 제작되는 작품이 단편이다 보니 오프라인 상영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나마 대구는 근래 비교적 활발하게 작품 창작이 일어나고 있기에 작품 숫자는 적지 않은 편이나, 지역별 편차에 따라 애초 작품 수급 자체가 힘든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상적인 상영 공간이 부재하니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볼 기약이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창작자에게 별도 연락을 취해 과정을 밟아야만 한다. 그런 수소문을 통해 멀찍이 거리를 두던 지역의 영화인들과 대면하고 교섭(?)을 치르게 된다. 해당 과정을 반복하며 정보를 취합하고 평론 글을 게재하면 창작자의 반응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거의 경험할 기회가 적다 보니 글쓴이가 기대하던 교류를 얻기란 지극히 드물다. 그저 자신의 작업에 누군가 반응을 남겼다는 사실 자체로 기뻐하거나, 혹은 오탈자 지적이나 창작 의도에 부합하는 글을 암묵적으로 바란다는 확인이 대다수 반응을 이룬다. 이럴 땐 맥이 빠지지만, 결국엔 양측 모두 훈련과 적응이 필요한 사안이긴 하다.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 관련 대화형 행사 (좌) 2025년 부산다큐필름페스티벌 중 토크 포럼 / (우) 2025년 안동중앙아트시네마 내 북콘서트 안면을 트고 인사하게 되면 새롭고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느냐는’ 의심이다. 이는 여전히 저울에 올라오는 쟁점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상세 정보 취득이 수월해지는 만큼, 그에 비례해 중심 잡기라는 난제가 동시에 닥친다. 지역 영화를 둘러싼 일종의 ‘온정주의’에 관한 입장은 극명하게 나뉜다. 누군가는 당연한 일이라며 여러 제약을 극복해 완성된 지역 작품을 ‘동료’적인 시각에서 다루는 게 틀린 게 아니라 말하지만, 누군가는 그러한 근접성이 공정한 비평과 동떨어진 것이라 비판한다. 정답은 늘 그 중간 어딘가에서 형성된다. 글을 쓸 때마다 성배를 찾는 불가능한 모험을 거듭해야 한다는 뜻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송고했다고 바로 끝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이 웬만큼 외부에서 소개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은 필자의 글이 유일한 ‘공식’ 평론으로 남는 경우가 태반이다. 즉, 해당 작품 관련 검색 가능한 ‘정전’이 되는 셈이다. 이는 아주 살짝 보람인 동시에 큰 부담으로 자리한다. 작품이 온당하게 평가받고 소개될 수 있도록, 일종의 A/S 과정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작품이 추가로 상영 기회를 얻게 지원하는 임무도 부여된다. 영화의 의미와 가치, 효용을 글을 쓰면서 포착한 데 기반해 가능한 선에서 추천하고 제안하는 과정이 글을 쓰는 동시에 부가된다. 지역별 영화생태계에서 비평의 자리를 찾기 위해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일부 작가의 작업을 일종의 ‘작가론’으로 작성하는 경로에 진입한다. 단편 위주로 작업하는 지역 창작자에겐 쉽게 접하기 힘든 기회인 도시에, 평론 관점에서도 창작자의 출발점부터 연속적으로 작업을 관찰하고 포착할 수 있는 드문 계기이기도 하다. 그런 계기를 통해 드물게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창작자를 지켜보는 건 ‘발견’의 기쁨이 되곤 한다. 여기까지 언급하면 한국 독립영화의 ‘블루 오션’으로 간주할 만하지만, 실제로 지역 영화 글쓰기는 외롭고 험난한 길이다. 우선 공개 지면이 거의 부재하다. 물론 서울 등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평론 영역에서도 지면 축소는 공통된 화두겠지만, 지역은 몇 곱절 더 심각하다. 일단 영화 평론을 전문적으로 실어주는 매체 자체가 드물다.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 역시 전문 코너가 부재한 데다, 온라인 미디어 또한 전문 지면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쓴이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간헐적으로 출연하는 것 외엔 안정적인 미디어 지면을 확보하는 데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상 자기가 글을 올릴 지면을 새로 만들어야만 가능한 셈이다. (좌) 2019년 대구MBC 프로그램 <문화극장 조조할인> 중 코너 ‘작은 영화관’ 녹화 현장 (우) 2023년 KBS2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과 음악 사이> 중 코너 ‘이 영화 어때요’ 생방송 현장 물론 없던 지면을 창조하다시피 하니, 중앙 미디어에 비교하면 노력과 봉사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면을 유지하는 것도 감사한 일인 경우가 허다한 탓이다. ‘박리다매’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고료를 받고 평론을 싣는다는 기준을 설득하는 자체부터 쉽지 않다. ‘무료’로는 원고를 싣지 않는다는 원칙을 꺼내며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글을 쓸 수도 없다. 하지만 제대로 쓰고 싶은 만큼 전문성을 추구하는 데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해당 매체 독자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좀 더 핵심적인 화두가 있는데, 애초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 평론을 수행하는 동업자 겸 경쟁자 집단이 부재한 데 기인하는 문제다. 원래 고민하던 목적의식, 지역 영화에 대한 다양한 비평을 통한 ‘기대 효과’가 온전히 구현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는 대구·경북은 물론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공통된 난제다. 동료를 만들고 싶어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무래도 협업이 당연한 영화 창작 과정이나 상영 활동과 달리, 기본적으로 개인 작업인 특성 때문이다. 아울러 관심사와 여타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공동 작업은 더욱 고난도로 변한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단 지역에서 전문화된 글쓰기를 상시 과제로 삼는 필자 찾기가 1차 관문, 지역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가 희소한 게 2차 관문, 조건 다 맞아도 일감이 없는 지역에서 해당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게 3차 관문이다. 그야말로 ‘좁은 문’이다. 그룹을 구성해 ‘선의의 경쟁’을 일상에서 수행하지 않는다면 지역에 절실한 다양한 결의 비평 문화 조성은 암초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태계 순환 과정에서 창작 집단에 자극을 주고 긴장을 유지하려면 넘어야 할 벽이기도 하다. (좌) 2022년 안동중앙아트시네마 내 영화비평 강좌 ‘영화 보기의 미학’ 프로그램 소개 (우) 2022년 인디플러스 포항 내 강의 ‘독립영화의 감상과 비평’ 지역 영화 예산 복원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 형성까지 2023년, 몇 년간 조금씩 조성해 왔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 영화 창작 및 영화문화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된 후, 현재까지 관련 예산은 복원되지 못한 상태다. 자연스럽게 지역 영화 관련 지원 및 정책 초점은 해당 사안으로 귀결되는 실정이다. 물론 (개별 지역이 아닌 전체) 총액 12억이란 별것 아니게 보이는 지원 예산을 참 알뜰하게 써가며 여러 항목에 골고루 종잣돈이 되온 게 증명되기에, 본 예산은 복구를 넘어 대폭 확대되더라도 전혀 낭비가 아니다. 문제는 몇 년째 이 문제로 지역 영화에 대한 모든 담론이 환원된다는 점이다. 일단 ‘지역 영화(창작과 문화)’ 정책 수립의 초점과 방향이 확립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의 영화정책은 여전히 20세기에 형성된 ‘수출산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그런 시각 아래 철저하게 상업영화의 ‘(산업)예비군’으로만 사고해 온 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언젠가부터 독립영화와 창작자마저 마치 국가대표팀 선발하듯 국내외 주요 영화제 진출과 수상 중심으로 서열화되는 실정이다. 그런 일방적 기준에 의한다면, 지역 영화는 2군도 아닌 3군 이하로 취급될 뿐이다. 당연히 관심을 호소해봐야 헛수고일 따름이다. 이런 난맥상을 돌파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수다. ‘산업’ 중심주의를 돌파하지 않으면 결국엔 지역 영화는 유령처럼 떠돌 뿐, 실체를 갖출 수 없다. 지역의 인재는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서울로 향하면 되고, 지역의 관객은 복합상영관 객석을 채우는 머릿수로만 족할 뿐인데 지역 영화에 유의미한 관심이 향할 리 없다. 기껏 기존 예산이 복구된다 해도 그저 시혜적인 상징에 불과할 테다. 지역 영화(창작과 문화)를 진흥하려면 우선 서울을 제외한 지역 공통 현황과 함께 차별화된 지역별 특징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영화문화 측면을 뛰어넘어 한국사회 고질병인 ‘서울 공화국’ 문제와 직결된다. 즉 지역 균형발전, 지방분권 쟁점과 같은 궤로 놓고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그렇게 발상을 전환한다면, 독립·예술영화 접근 기회의 균등은 곧 비수도권 주민들의 문화복지 권리 일부가 된다. 물론 그저 최신 상업영화 대작 관람 기회를 넘어, 다양한 영화문화 접근권으로 향해야 유의미할 것이다. 지역 영화에 관한 글쓰기는 그저 개별 창작물에 관한 평론으로 그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이 꼭 영화제를 거쳐 인정받지 않더라도 지역 내에서 충분한 함의와 가치를 갖는다면 이를 포착해 소개하는 기능을 통해 지역 영화문화 형성의 일부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상영 활동 등 2차, 3차 소개 기회를 넓히는 파급력을 상정하며 글을 쓰게 된다는 의미이다. 얼핏 피곤하거나 과도한 확장으로 받아들여질 주장이다. 그러나 지역 영화를 평론한다는 건 글쓰기로만 국한하기에 애초에 불가능한 과제다. 일종의 능동적 ‘수용’ 활동이자 순환계 내에서 끝없는 운동을 거듭하되 ‘미토콘드리아’처럼 일정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지역화’한 영화 평론은 예산과 지원 대책에만 갇히지 않는 지역 영화문화 형성의 일부로 역할을 얻는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이기에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기존 독립·예술영화 비평 모델과 비교하면 보다 사회학적 접근, 현장 참여에 주목하는 형태를 지니리라 예상해 본다. 일단 떠나지 않고 지역 사회 쟁점과 배경을 숙지한 상태로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발굴해 접속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을 넘어 공생하는 영화생태계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지역 영화 글쓰기는 고유의 형상과 임무를 찾게 될 테다. 지금은 일단 씨를 뿌리며 경작에 나설 시간이다. 2019년 대구MBC 프로그램 <문화극장 조조할인> 중 코너 ‘작은 영화관’ 녹화 현장 * 사진 전체: 필자 본인 제공 김상목(스크리닝 메이커) l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제와 상영회 기획부터 매체 기고, 라디오, 텔레비전, 교육 강연 등 들어오는 일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지역에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며 활동 중. 저서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2025), 공저 『이것은 카메라입니다』(2022) 집필.
‘IT 기술’의 플랫폼과 ‘교양’의 문제 최근(2017년 12월) 필자의 관심사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기술(IT)적인 ‘플랫폼’(≒미디어, 매체)이 세계화(글로벌화)되어 발생되는 고전적인 ‘교양’의 ‘해체’라고 불러야 할 상황에 대해 주로 기울어져 있다. 그 때문에 요즘 몇 번 출판계에 기고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마침 이 플랫폼(전자서적이나 웹툰, 웹 소설 등)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2017년 12월 5일 453호 및 곧 출간 예정인 단행본 『한국의 논점 2018』 등.) 인터넷을 통한 각종 ‘플랫폼’은 주로 ‘IT 계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고 (주요 플랫폼 기업이라고 한다면 아마존, 애플,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 텐센트,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를 들 수 있을 텐데 보다시피 대부분 IT 기업으로 출발했다), 그에 따라 종래의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했던 대중(mass)의 ‘매체(media)’의 대표 격인 ‘출판’이 가지고 있던 인문학적 속성과는 조금, 문화랄까 습성이랄까 배경에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다. 일본의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 주로 ‘구(舊) 교양’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말 그대로 출판 시절의 매체는 ‘과거의 교양’을 바탕에 둔 것이었으나 현대 인터넷 기반의 IT 플랫폼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다.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한테 아베 정권이 당당하게 내보였던 일본문화가 트럼프 손녀딸이 좋아한다는 피코타로였고, 하지만 정작 그 손녀딸은 삼자경과 당시(唐詩)를 암송하는 동영상을 시진핑한테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작년에 카와카미 노부오가 현대 일본의 교양은 이미 『소년 점프』가 되었다는 구태의연한 지적을 했던 것을 다시금 통감했다. 카와카미는(중략) ‘지적(知的)인 웃음’을 표현하고자 할 때 인용되는 것이 더 이상 고전이 아니라 『소년 점프』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하지만, 그러한 서브컬처는 트럼프에게조차도 교양으로 치부되지 못한다. 트럼프조차도, 교양이란 곧 고전이란 사실을, 어리석긴 해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소년 점프』나 피코타로가 ‘오타쿠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 ‘서브컬처’라고 해야 할지, 그런 세세한 정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 아베 마리오 코스프레까지도 포함해서 그것들을 한 묶음으로 하는, 지극히 경솔한 무엇인가를 체현시킨 것이 현 시점의 이 나라에선 문화이자 교양이라고 하는 사실이, 아베 정권에 접어든 이후 계속해서 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이제 슬슬 느끼고 있지 않은가. 아소 타로의 교양이 ‘만화’였다는 것을 이젠 더 이상 아무도 화제로 삼지 않게 되었고, 이시바 시게루, 마에하라 세이지 등과 같은 차세대 국방족 의원들의 ‘교양’은 프라모델 만들기나 철도 오타쿠라는 것이야말로 이 나라 안전 보장에 있어서 최대의 문제라고 아무도 느끼지 않고 있다. 선거전 종반에 여당 당수가 연설 대상으로 했던 유권자는 아키하바라에 모인 사람들이었지 신주쿠 서쪽 출구의 샐러리맨이 아니었다. 논단에서도 젊은 학자나 논객의 ‘취미’가 아이돌에 관한 논의가 되어 있는 정도로는 ‘서브컬처’든지 ‘오타쿠 문화’이든지의 ‘교양화’는 확실하게 진전되었다. ‘오타쿠 문화’ 그 자체는 이제 와선 무한하게 세분화되었지만, ‘쇼와의 끝 무렵’ 시절에는 대략적으로 히라가나 표기의 ‘오타쿠(おたく)’란 단어 주변에 있던 것들(미야자키 쓰토무의 방에 있던 만화는 ‘모에’ 만화가 아니라 극화지와 『젊은 아내의 속옷』이었고, 수천 편의 비디오 컬렉션은 롤리타 포르노가 아니라 CF와 아이돌, 프로레슬링과 애니메이션에 야구 방송 녹화 등, 헤이세이 시대 이후로는 세분화되어버린 ‘오타쿠의 각 소비 영역’을 얕고 넓게 대강 대충 커버하고 있던, 도저히 ‘컬렉션’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이 이 나라의 중심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으나, 교양만이 아니라 정치나 경제나 미디어에서도 분명히 그 일각을 점거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쓰카 에이지, 「아베의 교양과 어디에도 없는 장소의 ‘오타쿠 문화’」, 『최전선』 편집부 블로그, 2017년 12월 7일) 참고로 약간의 해설. 이 글에서 나온 피코타로는 ‘PPAP’란 곡으로 유튜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본의 가수이고, 카와카미 노부오는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동화’를 만들었고, 지금은 대형 출판사인 카도카와쇼텐과 합병하여 만들어진 KADOKAWA(카도카와)란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카와카미는 스튜디오 지브리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지브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보좌해온 베테랑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의 ‘제자’로서 미야자키 감독 작품인 < 바람이 분다 >와 타카하타 감독 작품인 < 가구야 공주 이야기 >에 ‘프로듀서 견습생’으로 크레디트되기도 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 대해서도 오쓰카 에이지는 매번 날카로운 지적을 해왔다. (실제로는 오쓰카 에이지는 카와카미와 친분이 있고, 니코니코동화가 주최하는 이벤트나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아베 마리오’ 코스프레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2016년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슈퍼 마리오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했던 것을 가리키는, 일본 매스컴의 유행어(?)이다. 아소 타로는 일본의 전직 총리이자 현재에는 재무대신,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아베 정권의 일각을 담당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는 자민당 간사장을 맡으며 아베파의 일각이었으나 현재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당내의 라이벌처럼 된 정치인이고, 마에하라 세이지는 야당인 민주당 당수였다가 그 뒤를 이은 민진당의 대표를 맡았다가 야당을 깨버리고 상당히 우익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일본 야권의 유력 정치인이다. ‘아키하바라에 모인 사람들’이란 표현은 젊은 오타쿠층(2010년대 일본의 젊은 층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수·우익적이다), 즉 ‘프리터’(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 정도를 하고 있는, 사실상 무직인 층)라든지 니트(NEET), ‘넷우익’과 친화성이 강한 층을 지칭하는 것이고, ‘신주쿠 서쪽 출구의 샐러리맨’이라 함은 한국에서 말하자면 ‘여의도나 명동의 회사원들’이란 식으로, 좀 더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회사원층을 뜻한다. (이 회사원들이 보수파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보수나 진보와 무관하게 그냥 말 그대로의 ‘일반인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쇼와 시대는 1989년에 끝났으므로 ‘쇼와의 끝 무렵’이라 함은 1980년대 중후반을 가리킬 것이고, 미야자키 쓰토무는 1989년에 도쿄·사이타마 연속 유아 유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집행된 인물이다. 그가 당시에 ‘오타쿠’를 대표하는 것처럼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바람에, 그 당시에 코믹마켓 등에 동인지를 내거나 애니메이션을 대량으로 시청하는 소위 ‘오타쿠’ 계층에 대한 일본 사회의 ‘왕따’와도 같은 분위기가 돌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미야자키 쓰토무를 ‘오타쿠’라고 보도했던 주된 원인은 그의 방에 수천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고 만화잡지를 포함한 책들도 꽤 있었다는 이유였는데, 실제 그 비디오테이프 중에는 불법적인 포르노도 없었고(일본에선 정상적으로 발매되었던 성인용 비디오는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유아 대상의 롤리타 계열도 아니었고 전부 ‘합법적인’ 성인물이었음) 대부분은 CF나 아이돌이 출연한 TV 프로그램과 TV 드라마, 프로레슬링 및 야구 시합의 녹화 비디오였다는 사실이 21세기에 들어 새롭게 주목받은 바 있다. 그 중에 포함되어 있던 애니메이션도 당시 ‘오타쿠’들이 즐기던 작품이라기보다는 < 우주전함 야마토 > <게게게의 키타로> < 요술공주 샐리 > 등 상당히 ‘일반인 취향’의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역시도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 있던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역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보다는 오타쿠에 가까웠던’ 그가 1980년대 당시 ‘세분화된 특정 장르’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이처럼 폭넓게 ‘오타쿠 문화 혹은 서브컬처’를 섭렵하고 있었다는 점을, 오쓰카 에이지는 현재의 ‘세분화된 오타쿠 문화 혹은 서브컬처’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오타쿠 계층에서는 미야자키 사건이 있었던 당시 일본 TV에서 대형 동인지 판매전인 코믹마켓을 배경으로 “여기에 10만 명의 미야자키 쓰토무가 있습니다!”라고 옐로 저널리즘스럽게 보도했다는 것이 마치 정설처럼 오랫동안 이야기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보도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올해 밝혀지기도 했다. 참조:「‘10만 명의 미야자키 쓰토무’는 있었는가?」, 야후재팬 뉴스 개인(dragoner/블로거), 2017.09.29) 아무튼, 서브컬처가 ‘교양’이 되어버린 시대에 플랫폼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오쓰카 에이지를 인용해보겠다. ‘오타쿠 문화’, ‘서브컬처’는 카도카와 쓰구히코 등과 같은 인물이 말하는 소위 ‘에코 시스템’(이 사회 속에서 말하는 ‘에코’란 ‘에콜로지’(환경)라기보다 ‘이코노미’(경제) 아니겠는가?), 즉 플랫폼 기업은 사람들이 투고나 2차 창작을 자발적으로 행하도록 만들고 있는데, 동시에 그것을 각자 본인의 의지나 자기표현이라고 만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중략) 하지만 이제 와서 거기에 모이는 사람들한테 당신들은 착취당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어봤자 마르크스주의 등장 이전의 노동자들한테 당신들은 소외당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고, 하물며 아무래도 ‘혁명’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하니 더 이상 설명해줄 기분도 들지 않는다. 2차대전 이후 출생 세대인 구 ‘오타쿠’들은 ‘내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차세대인 카와카미 노부오나 히로유키로 대표되는 정보공학계 오타쿠들은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오타쿠 문화가 경제나 문화의 중추로 편입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 의미와, 그 결과 초래될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두는 편이 좋다는 것만큼은 경고해두고자 한다. (중략) 어쨌거나 ‘오타쿠’는 이젠 플랫폼 안에 기관의 일부로서 편입되어, 플랫폼 그 자체에 위화감을 느끼지도 않고 회의(懷疑)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나라 ‘보수’의 기조(基調)라고 할 만한 것이라면, 요즘엔 그런 것들 안에서나 찾아야 할 것이다. (오쓰카 에이지, 위와 동일) 다만 오쓰카 에이지는 이런 식의 구세대 ‘오타쿠 교양’의 붕괴에 대해 “한탄도 찬미도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에서 몇몇 오타쿠 평론가들 사이에 유행했던 ‘오타쿠 세대론’(세대 차이론)을 주장하는 듯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것은 오쓰카의 다른 최근 책에서도 여러 번, 분명한 사례를 들면서 강조되고 있으니 실제로 진심일 것이다.) 즉 과거의 오타쿠들은 내용(contents)을 만들어내었으니 훌륭하고 요즘 IT 계열 오타쿠들은 플랫폼밖에 만들지 못했으니 뒤떨어진다는 식의 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글에서 오쓰카가 언급한 ‘내용’이란 단어는 영어 단어로 보자면 ‘콘텐츠(contents)’에 해당하는데, 이는 서적에서 ‘차례’를 보통 ‘contents’라고 표기하는 것처럼 바로 ‘서적의 본문 내용’을 가리킨다. 또 플랫폼이라는 것은 종이책에서라면 바로 그 ‘종이’, 제본되어 한 권 한 권 묶여진 책의 본체 그 자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콘텐츠)과 종이(플랫폼) 사이에 어떤 ‘우열’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플랫폼이 없이는 우리가 콘텐츠를 접할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오쓰카가 문제로 삼는 것은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에는 ‘콘텐츠’를 만들어냈던 오타쿠들이 (세대는 바뀌었을지언정 결국 똑같은 ‘오타쿠’이니까) 지금은 플랫폼 안에 그 구조물의 부품처럼 편입되어 버렸고 심지어 그 상태를 불편하게 느끼거나 회의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며 안심하고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타쿠들은 인터넷 시대 이후 PC통신의 채팅실에서, MSN메신저와 네이트온과 카카오톡 같은 인터넷 메신저에서, 블로그에서, 그리고 지금은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PC통신 시절에는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는 ‘게시판’으로 시작했다가 ‘가입’한 회원만이 글을 볼 수 있는 ‘동호회’란 것이 만들어졌고 그 뒤에는 동호회로부터 ‘소모임’이란 것이 생기는 등 갈수록 ‘좁은 문’을 선택했다. 또한 채팅실에서는 ‘강퇴’(강제퇴장)를 시켰으며, 블로그에선 ‘서로이웃만 보기 기능’을, SNS에선 ‘페친’과 ‘블락’과 ‘뮤트’를 통해서 점점 더 ‘자기가 보기 편한 환경’을 계속해서 추구해왔다. 이것이 바로 ‘플랫폼 안에 부품처럼 편입되어 버렸고 심지어 그 상태에 오히려 편안함과 안심감을 느끼는 상태’라는 말이다. 이는 ‘어떤 장르든지, 창작이든 패러디든지, 만화든 소설이든 평론이든 굿즈든’ 어떤 것에든지 개방된 상태에서, 또한 모두가 다 같은 ‘참가자’일 뿐 누구도 ‘주인’이거나 ‘손님’이지 않은 ‘열린 환경’을 추구해왔던 코믹마켓의 이념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당초에는 인터넷의 이념도 바로 그러한 ‘개방성’에 있었을 텐데, 실제로 그 인터넷상에서 추구되는 것은 ‘끼리끼리 모일 때의 편안함’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당초에는 발언의 자유를 위해서 시작되었던 인터넷의 익명성조차도, 실제로는 수많은 ‘딥 웹’ 방식의 ‘초보자나 타인의 참여를 기피하는 익명성 커뮤니티’를 보게 되면 오히려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실제로 한국의 익명성 커뮤니티에서는 소위 ‘닥눈삼’, 즉 ‘닥치고 눈팅 삼 년’이라 하여 해당 장소의 분위기 파악을 하기 전까지는 상당한 장기간 동안 글을 쓰지 말고 읽기만 하라는 분위기가 유행했고, 일본에서도 익명 기반의 게시판 2ch(2채널)에서는 ‘ROM’(리드 온리 메모리의 약칭)이라 하여 한국과 똑같이 우선은 글을 쓰지 말고 읽기만 하고 있으라는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을 보면, 그런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 인터넷에서 말하는 소위 ‘공기를 읽어라’(분위기 파악을 하라)는 말은 곧 ‘플랫폼에 적응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플랫폼 안에서 ‘유저’들이 ‘손님’으로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서 만들어진 분위기인 것이다. 미국에서 ‘망 중립성’을 폐지한다고 하던 뉴스 역시도, 바로 이런 ‘인터넷 속에서 벌어지는 자유의 제한’의 상징적인 조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자면, 사회의 방향성이 ‘콘텐츠’에서 ‘플랫폼’으로 변경된 것에서 그다음 단계로, ‘플랫폼’으로부터 더더욱 기술적인 ‘네트워크’로 가버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이다.) 플랫폼과 유저 마인드의 문제 오타쿠층의 ‘현재’가 과거의 ‘교양’ 시대, 즉 콘텐츠를 창출해내고자 했던 모습에서 지금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시대로 움직인 것 아닌가 하는 오쓰카의 이 지적은 흥미롭다. 실제로 과거의 오타쿠들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시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일본에서의 ‘1세대 오타쿠’와 한국에서의 ‘1세대 오타쿠’의 시기가 달랐던 것처럼) 초기에는 미야자키 쓰토무와 같이 ‘얕고 넓게’ 다방면의 ‘오타쿠 장르’를 섭렵하던 모습이었는데, 점점 갈수록 자기 자신만의 취향에 기울어져 세분화되어 왔다. 이 ‘세분화’를 나는 ‘파편화’라고 불렀는데, 말하자면 과거엔 오타쿠라면 TV에서 일본애니메이션도 보고 극장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보고 LD나 비디오로 일본의 OVA도 보았다.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관심을 가졌고 주브나일과 판타지 소설에서 유래한 ‘라이트노벨’이란 것이 인기를 끌게 되면 소설도 읽었다. 또 남자라도 TV에서 『들장미소녀 캔디』를 보았고 동호회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면 (여성 취향의) CLAMP 만화나 『나의 지구를 지켜줘』나 『그 남자! 그 여자!』(카레카노)도 읽었다. 여자들도 『슬램 덩크』를 열심히 읽었으며(여성향 동인지 신(scene)에서 항상 최대의 장르였던 것은 『슬램 덩크』나 『테니프리』 『강철연』 『쿠로바스』 등과 같은 소년만화였다), 차세대 게임기가 나오거나 온라인게임의 유행에도 적극적이었다. 남자가 구체관절인형을 사고 여자가 건프라를 사는 모습이 드물지 않았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완구 판매의 어떤 한 특징으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은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콘텐츠에서 플랫폼 쪽으로 ‘메인스트림’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더 이상 ‘얕고 넓은’ 것은 오타쿠층의 ‘기본 소양’이 아니게 되었다. 바로 그 점을 지적했던 것이 ‘얕고 넓은’ 오타쿠 세대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을 ‘오타킹’ 오카다 토시오(가이낙스 전 대표)가 2006년부터 말해왔던 ‘오타쿠의 죽음(「오타쿠 이즈 데드」)’의 내용인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2008년에 『오타쿠는 이미 죽었다』란 제목으로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다만 오카다 토시오는 이에 관해 블로그에서 ‘첫 번째 저작 『우리들의 세뇌사회』 때부터 일관적으로 내 입장은 〈닥쳐오는 시대를 거부하지 않는다〉였다. 나는 지난번 이벤트 때에 한 마디도 “요즘 오타쿠는 안 되겠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옛날 같은 오타쿠가 줄어든 것은 당치도 않다”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이해의 한계〉인 것이지, 그에 대해서 반발하든 찬동하든 나로선 곤란할 뿐이다’고 답변한 바 있다. [오카다 토시오 블로그 2006.05.27]) 따라서 오쓰카 에이지든 오카다 토시오든, ‘그 좋았던 옛날(벨 에포크 Belle Époque)’에 대한 향수로서 구세대의 오타쿠를 긍정하고 현세대의 오타쿠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말(옛날 오타쿠들은 넓은 분야를 즐겼는데 요즘은 파편화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오타쿠의 세대론과 무관하게, ‘교양이 존재하지 않는(존재할 필요가 없는)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그 플랫폼의 ‘유저(손님)’로서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게 되었다는 점을 오쓰카는 지적했던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오랫동안 한국 오타쿠층의, 나아가서는 한국 대중의 ‘손님 마인드’에 관해 지적했던 것과도 연결되는 문제의식이다. 내가 손님 마인드라고 부르는 것은, 말하자면 본인을 항상 ‘손님’의 위치에 두고 타인이 자신한테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뜻한다. 소위 ‘감정 노동’의 문제도 결국은 이 손님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실제의 업체-고객의 관계에서도 ‘손님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손님 마인드를 모든 방면에 적용시키면서, 스스로를 약자, 피해자 입장에 놓고 타인을 공격하고자 하는 태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금액은 없고 기껏해야 ‘트래픽을 통한 광고’를 보아줄 뿐이면서도 스스로를 ‘손님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고서 연예인이나 웹툰 작가 등한테 심한 악플을 달거나 고자세를 취하는 것이 심각한 사건으로 비화되는 일이 있지 않은가. 물론 돈을 냈더라도 ‘감정 노동’을 하게 되는 종업원 등에 대해 심각할 정도의 안 좋은 태도를 취하는 것도 문제일 테니, 단순히 돈을 내고 안 내고에 달린 문제라고만은 할 수가 없겠지만 그나마 돈을 직접 지불하지도 않은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제 3자 입장에서 볼 때에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과거의 오타쿠들은 ‘모두가 똑같은 참가자일 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업주-고객 관계는 없다’라는 코믹마켓의 정신을 필두로 하여,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작품이 없다면, 내가 스스로 만들겠다’라는 식의, 말하자면 일종의 ‘참여 의식’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를 손님으로 대해달라, 나를 ‘유저(user)’로 대해달라고 하는 마인드가 지금보다는 적었다는 ‘설명’을, 오쓰카를 필두로 한 몇몇 1세대 오타쿠 출신 평론가·연구자들이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유저가 유저 입장에서 ‘유저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과거와 달리 오타쿠라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분석 자체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전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 국내에서도 오타쿠층, 혹은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의 세대 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