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대한민국 종교 영화제
- 제작년도
- 2005
이 영화의 제목만을 보고 든 생각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기도를 하지 않나 싶은 것이었다.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신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그 어떤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고 기도를 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것이 종교의 형태를 취하든 아니든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본질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위기상황을 접하면 저절로 손이 모아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영화는 제목처럼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영화다. 기도를 업으로 사는 남자 태욱( 박혁권 분)은 개척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척을 해야 되는 교회니 당연히 형편이 넉넉하진 않을 것이고 이런 연유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정인( 류현경 분)으로부터 장모의 수술비가 급히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과연 기도가 수술비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영화이자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 영화다. 과연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 기도하는 남자 >( 강동헌 , 2018)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가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인가를 따라가는 영화지만 이 설정은 그다지 특수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기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 제목과 달리 전혀 종교영화도 아니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인 우리 모두의 얘기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영화다. 지금부터는 이들의 선택이 내용이나 영상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는가가 이 영화가 처한 운명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선택은 아쉽게도 큰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정도와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김당하지 못할 어려움을 한번쯤은 겪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해법이나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개연성 등에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3억 5천만 원이라는 적은 제작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영화속에서 두 주인공과 장모가 선택한 길은 너무 극단적이기도 하고 행동에 대한 그 인물 자체의 내적동력이 약해 보인다. 마치 점프 컷을 보듯 인물들의 행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용감한 시도에 비해 아쉬운 전개와 결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괜찮은 재료로 너무 자극적인 그러나 평범한 요리를 만든 셈이다. 인물들도 급하고 기획도 급해 영화가 정해진 결말로 달려가는 느낌 이상을 받진 못했으니 말이다. 아시다시피 두 주연배우 박혁권과 류현경은 매우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 실력파 배우들이고 이 영화에서도 그런 점에서 모자라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 이 점은 이 영화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성취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캐릭터가 과해서 그런지 인물이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상을 받은 것도 나로서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다. 이 점 또한 성취이자 숙제로 남았다. 데뷔작을 연출한 강동헌 감독은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 흔적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고뇌가 영화적으로 잘 표현되었는가라는 점에서는 조금 더 힘을 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잘 녹아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빨리 던지고 수습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과한 전개에 비해 영화의 만듦새나 연기, 연출 등이 모자라진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나 매력은 적지 않다. 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제시라는 면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획과 설정이 과한 전개를 만나 풍파를 겪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기도하는 남자>는 저예산영화이자 독립영화다. 제작지원과 개봉지원을 모두 받은 나름 축복받은 독립영화인데 현재의 한국영화시장에서는 예견된 참사처럼 너무나 적은 개봉관을 배정받았고 당연한 귀결로 매우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하였다. 개봉시기를 보면 팬데믹의 유탄을 제일 먼저 맞은 셈이니 이 또한 운이 나빴다. 제작진의 간절한 기도도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망치까지 날아들었으니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겠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더 기다린다고 더 좋은 개봉여건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기 어려운 현실 또한 엄연한 존재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앞날을 생각하자면 <기도하는 남자>의 불행이 아니라 관객의 불행이자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어렵게 만들어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누가 이런 시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불안이 엄습해온다. 영화는 만들어질 때 영화가 아니라 보여질 때 영화라는 말이 절실히 와 닫는 지금. 예견된 고난을 피하지 않고 독립영화의 정신으로 전진했던 <기도하는 남자>의 시도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가르는 기준은 육체다. 아아. 저 한마디 뱉는 순간 벌써부터 무수한 항변과 반론들이 들려온다. 기실 땅바닥만 찍지 않는 이상(헤어조그가 그런 적이 있었다고 재반론하고 싶지만 참는다) 육체를 찍지 않는 영화는 100년 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육체의 범위를 문자 그대로(“corpus”) ‘물체’로 조금만 확장하면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모든 피사체가 이미 육체다. 심지어 카메라도 육체이고, 그걸 찍고 보는 작가도 관객도 죄다 육체다. 하지만 고전적 육체와 현대적 육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그들 모두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이미지의 변화를 표현하는 주인행세를 함에는 어떤 차이도 없겠지만 말이다. 고전적 육체는 정신의 담지자로서 먼저 나타난다. 고전적 육체는 정신적 가치보다 더 앞설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드레이어와 베리만의 영화에도 육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얗게 지워져서 지금이라도 얼른 복원되어야 할 정신의 심도보다 먼저이진 않다. 그저 정신이 심도를 복원할 때까지 느릿느릿 움직여주고, 그에 필요한 말씀(<오데트>)을 전달해주면 그만이다. 고전육체는 정신의 수단인 셈이다. 반면 현대적 육체는 (신을 잃어버려서 그런지) 비틀거리고 넘어질 때 나타난다. 즉 진짜 육체는 피 흘리고 다칠 수 있는 육체다. 진짜 육체는 죽을 수 있는 힘으로 정의된다. 팔다리만 있다고 육체가 아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수 있어야, 그에 비명 지르고 펄쩍 뛸 수 있어야 진짜 육체다. 프레이밍에 의해 가려져 있던 잔 다르크의 가멸력을 화형대로 옮겨놓은 브레송은,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 육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다. 정신의 심도? 뜨거워 죽겠는데 무슨 심도 타령일까. 온몸의 신경이 화염에 불타오를 때 심도보단 비명이 먼저다. 요컨대 고전적 육체가 불멸의 정신적 가치(정의ㆍ믿음...)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때, 현대적 육체는 소멸의 물질적 가치를 위한 수단이자 목적이 된다. 누구 말을 빌리면, 진짜 육체는 가멸성의 “순수수단”이다. 표표히 사라지는 서부극 인물 죽을 수 있는 육체만이 진짜 육체라고 한다면, 고전 서부극엔 육체가 없다. 아무리 역마차의 속도가 빨라 봤자 그 종착지는 아메리카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셰인과 링코 키드는 죽지 않는다. 그저 표표히 사라질 뿐(물론 죽은 거나 진배없다는 추가해석이 가능하지만). 더욱 결정적인 사례는 종교영화들의 경우다. 종교적 상황들을 다루었던 고전시대극들에서 육체는 바리새인이나 유대인 할 것 없이 모두 휘황찬란한 의상들로 가려져 있다. 드밀과 와일러의 영화에서 육체보다 색깔이 먼저인 이유는 다시 색깔이 정신의 심도를 방해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테크니컬러 총천연색에 모세의 남루한 넝마주이 패션이 극한의 대조를 이룰 때, 우리의 영혼은 더더욱 가열차게 기도 모드에 돌입할 수 있음이다. 즉 고전종교영화에서 의상은 정신의 척도만을 내어주지, 육체의 척도를 내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로마 군인들이 바닷물에 휩쓸려 죽는 것마저도 그나마 파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육체가 죽었단 사실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그의 폭정이 죽었단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육체의 출현을 방해하던 고전적 문법은 클로즈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 한 방이면 세계의 모든 것이 거기서 표현되고 있었다. 베리만은 이걸 한껏 즐겼다. 클로즈업은 육체의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영혼의 가속도로 대체한다. <잠입자Stalker> (1972) 반대의 상황들로 가보자. 웨스턴을 지나 네오웨스턴으로 가보면, 거기엔 육체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육체가 있어도 너무 육체만 있다. 정의감이나 신념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금 한 덩이 차지하기 위해서 동물적 본능만 남은 네오웨스턴의 육체들은 가히 ‘사막의 좀비들’이라 할 수 있다. 페킨파의 < 와일드 번치 >에 한 총잡이는 기관총 드립에 사망하여 널부러진 한 시체에서 금니를 캐내려고 한다. 이것은 모세의 정신적 넝마주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동물적 넝마주이다. 심지어 페킨파는 육체의 가멸성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을까 슬로우모션으로 죽는 순간을 찍어댔고, 많은 평론가들에게 상욕을 들었다. 페킨파의 슬로우모션은 클로즈업이 표현하던 영혼의 가속도와 대비되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가속도다. 헐. 현대의 신학영화는 그렇지 않을 거야! 여전히 신학은 정신이다, 육체가 아니라! 라고 울부짖는 그대에게 일독을 권장하는 영화는 타르콥스키의 영화다. 비록 그가 인터뷰에서 열심히 “영성”과 “희생”에 대해서 말하지만, 정작 그의 이미지들을 보라. 거기엔 안개와 유황 가스를 뒤집어쓰고 어쩔 줄 몰라하는 육체, 자신의 존재를 잊을까 봐 초원 위에 마치 비디오데크가 고장 난 것처럼 일시 정지된 상태로 몇 분이고 서 있는 육체, 무엇보다도 공중부양하는 육체가 있다. 이른 결론으로 건너뛰자면, 정신성의 회복을 위해 타르콥스키에게 먼저 고양되어야 할 것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인 것이다(물론 이건 인간의 육체만은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타르콥스키는 클로즈업을 마뜩잖아 했다. 클로즈업이 보고 싶나? 말씀을 쏟아내던 입이 삭제된 뒤통수 클로즈업이나 봐라(< 스토커 >). 현대적 육체는 클로즈업을 경멸한다. 얼굴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예외가 있다. 얼굴들을 겁나게 이어 붙여서 줄줄이 비엔나로 엮어낸 후 맥놀이 하듯 겁나게 흔들면 다시 육체가 나타난다. 이것이 카사베티스의 경우이고 그의 독특성이었다. 천의 얼굴은 하나의 육체와 맞먹는 셈이다(<얼굴들>). 오발탄 (1961) “가자...가자..” 요컨대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가르는 기준은 ‘고통’이다. 고통이 없는 모든 영화를 고전적이라고, 고통이 있는 모든 영화를 현대적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을 터다. 현대 신학영화는 이 기준의 반대급부이기는커녕, 이 기준을 가장 먼저 밀고 나갔던 고통의 첨병들이었다. 유현목 의 영화들이 타르콥스키보다 이른 현대적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거기엔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근만근의 짐짝”에 짓눌릴 때의 압사의 통각이고, “가자...가자..”의 환청에 고막이 찢어지는 통각이다(< 오발탄 >). 아무리 클로즈업과 의상으로 가려봐도 이 고통의 파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얼굴 안에 충치는 하나쯤 박혀있기 마련이고, 파동은 육체의 신경과 힘줄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이다. < 막차로 온 손님들 >에서 도마질 소리에서 괘종시계 소리로의 이행을 들어보라. 모세가 듣는 신의 목소리는 노래방 마이크에서와 같은 에코라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유현목의 세계는 노래방이 아니다. 십계현판이라는 마이크도 없는데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그 마이크는 내 뇌 속에, 내 신경 속에 이미 있다. 이건 거의 고막의 화형식이다. 너는 죽는다. 육체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에 대한 통각 없이 아무것도 아니다. 신은 압력이 되었다(타르콥스키는 “시압time-pressure”이라 불렀던 그것). 이것이 유현목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다. < 순교자 >에서 신부를 휘어 감는 문제는 신이 있냐 없냐가 아니었다. 그건 신은 없는데, 어떻게 십자가가 있느냔 것이다. 저기에 우뚝 서서 이 폐허를 압박하고 있는 파동의 중심으로서의 십자가가. 이 모든 측면들이 유현목을 한국최초의 육체적 작가로 만든다. 유현목이 영화는 “체험”이라고 강조함을 잊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몸의 경험인 것이다. 고통으로만 존재하는 신념의 상태.
< 독짓는 늙은이 >의 감독으로 알려진 최하원 감독은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이했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감독들과는 달리 일본 문화를 많이 접하지 않고 자라났다. 대신 한국영화와 미국영화, 유럽영화 등을 보면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역사소설에서부터 통속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한국적인 것과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초등학교 시절 문교부 편수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중앙청 인근으로 이사를 왔고, 당시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던 경무대는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였다. 1950년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 경복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채 코트에 서보기도 전에 6.25전쟁이 발발했고, 1.4 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로 피난을 갔다. 폭격으로 폐허가 돼가던 서울과는 달리 제주도는 평화로웠고,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따뜻한 곳이었다. 얼마 후 임시수도가 부산으로 정해지자 아버지는 최하원 감독만 데리고 부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피난지 경복중학교에 복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임시로 지어놓은 천막학교에서 공부가 될 리 만무했고, 영화관을 찾아 장 콕도, 빌리 와일러 감독 등의 영화를 보고, 가끔 농구를 하며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환도해 본격적으로 농구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최하원 감독을 눈여겨본 국어선생님이 글을 써보라 권유했고, 그 말이 동기가 되어 농구부 생활을 접고 학교 연극부에서 활동하면서 작가와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문예영화와 함께 시작된 영화 인생 제대로 된 영화 공부를 하고 싶어 유학을 꿈꾸던 최하원 감독은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해 테아뜨르 리이블과 연희극회에서 연출을 담당하면서 유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군에서 제대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되는 등 유학을 가기에는 여러 가지로 여건이 좋지 않았고, 대신 신경균 , 이병일 , 이성구 감독 밑에서 조연출로 일하며 본격적인 연출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만난 작가 이상현 과 작곡가 최창권 은 영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감독 데뷔 후 이상현 작가와 함께 한 작품은 없지만 열정 가득한 젊은 영화인으로서 영화의 본질과 비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또한 작곡가 최창권은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 중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지 않고,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수렴돼야 한다는 뜻을 공유한 동료로서 최하원 감독이 연출한 영화 대부분의 음악을 담당했다. 군복무 중 <철둑> <무승부> 등의 시나리오로 영화전문잡지인 <씨나리오 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던 최하원 감독은 그의 첫 번째 연출작으로 황순원 원작 소설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를 연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전쟁이 끝난 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서울 곳곳에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던 1968년,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또한 이론으로만 배웠던 몽타주 기법을 사용해 죄책감과 혼돈 속에 있는 주인공 현태의 심리 상태 등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 작품은 2014년 4월 구술 인터뷰 당시 필름이 유실되어 볼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2015년 발굴되었고, 디지털 복원 작업을 거친 뒤 곧 일반에게 공개된다. 최하원 감독은 데뷔작을 통해 주목받는 감독의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고, 이후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1960~1970년대 활동했던 많은 감독 중 소위 잘나간다는 감독들은 한 해에 5~8편까지 연출할 정도로 당시는 다작의 시대였다. 하지만 최하원 감독은 한 해에 1편 혹은 2편 정도만 연출했다. 당시 외국영화와의 격차를 인지하고 있었던 최하원 감독은 외국영화를 흉내 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해 한국영화만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소재 선정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작품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나온 두 번째 작품이 < 독짓는 늙은이 >(1969)였다. 첫 작품에서 인간 내면의 혼돈을 표현하기 위해 흑백필름을 선택했다면 두 번째 작품에서는 ‘독’의 기본이 되는 ‘흙’의 느낌을 영화 전체에 흐르게 하려고 카메라에 황토색 필터를 끼우고 촬영했다. 또한 영화의 중심이 되는 송영감의 집(집과 작업장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는 집)을 표현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 결국 세 곳의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것을 이어 붙여 완성했고, 이 작품은 평단의 호평과 함께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끊임없이 관객과 소통하다 이후 최하원 감독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문제와 시각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김동리 의 소설 <무녀도>는 무속과 기독교 간의 대립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영화 < 무녀도 >(1972)에서는 무당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어머니 세대와 구세대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고 하는 아들 세대와의 갈등, 한국 여인의 삶에서 늘 동반되는 ‘한(恨)의 문제’를 승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물을 다룰 때에도 이어지는데 < 고백 >(1971)에서는 혼전 성관계 문제를, < 갈매기의 꿈 >에서는 당시 한창 붐이 일던 미국 이민 문제를, < 타인의 숨결 >(1975)에서는 미감아 문제를, < 마지막 포옹 >(1975)에서는 청각장애아들의 모습을, < 황혼 >(1978)에서는 변화된 가족 간의 관계를, < 절정 >(1978)에서는 부부 간의 정절을, < 겨울사랑 >(1980)은 성범죄 문제를 다루고 있어 한국사회에서 문제시되는 이야기들을 영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실제로 전 출연진이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연습하고 촬영한 < 30일간의 야유회 >(1979)는 당시 들어선 신군부에 대한 우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다. 또한 < 새남터의 북소리 >(1972), < 초대받은 사람들 >(1981), < 초대받은 성웅들 >(1984)로 이어지는 영화들은 이전에 터부시돼왔던 종교영화의 예술성과 흥행성을 입증시키며 한국영화 장르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1984년부터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설립과 함께 교수로 부임해 10여 년 동안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보다 실용적인 이론과 살아 있는 제작교육을 위해 영화 서적을 번역하고, 집필하기도 하면서 한국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