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
- 감독
- 최정수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오유정, 안수민, 남지혜
< 돌아이 >(1985)는 전영록 의 영화다. 이두용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만, 이 영화는 전영록을 논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전영록 그는 누구인가?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걸그룹 ‘티아라’ 멤버 전보라의 아버지로 알려졌지만, 19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세대에게는 ‘하이틴 스타’,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이었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종이학’,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불티’ 등이 대표곡이었다. 그는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작사와 작곡 능력도 출중한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니까, 글솜씨도 좋았다.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지금은 지나버린 바람이 쓸쓸하게 나를 감싸주네”(‘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중),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중) 감성 돋는 가사가 솜사탕으로 귀를 간질이듯 다가온다. 그와 다르게 음악은 록 기반이 많았다. 전영록의 외모 또한 이웃집 오빠 같은 인상과 다르게 합기도와 무술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자랑했다. 실제로 그의 별명은 ‘영원한 오빠’이면서 동시에 ‘돌아이’이었다. ‘돌아이’는 전영록 이 군 복무 중 가수 출신 주제(?)에 고참들이 노래를 시키면 가요는 안 부르고 군가를 불러서 얻은 별명이다. 바로 그때 전영록은 < 돌아이 >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인공 이름은 ‘석아’다. 돌 석(石) 자에 아이 아(兒) 자를 결합했다. 다시 말해, 돌아이다. 돌아이, 아니 석아는 걸그룹 ‘드릴러’의 매니저다. 밤업소 스케줄을 정리하고 늦은 시간 귀가하는 멤버들의 택시도 잡아주고 무엇보다 드릴러 멤버를 노리는 늑대들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근데 드릴러의 멤버들, 석아에게는 누나뻘인데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석아의 눈을 피해 이리 도망, 저리 잠적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극한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일까. 석아에게는 이상(?) 증세가 있다. 평상시에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클라크처럼 어리바리하다가도 불의만 보면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는 슈퍼맨으로 뿅~ 변모한다. 그때 주변에서 보이는 반응이 재밌다. 이런 ‘똘’아이를 봤나. 그런 돌아이의 슈퍼히어로 본능을 깨우는 사건이 발생한다. 드릴러의 베이시스트 미옥이 재벌 2세와 사귀던 중 폭행을 당하자 석아는 이에 분노한다. < 돌아이 >는 서울에서만 9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에 힘입어 4편까지 만들어졌다. (4편의 돌아이는 최재성!) 그만큼 오락성이 뛰어난 영화이었다. 전영록 을 전면에 내세운 <돌아이>는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라는 수식이 무색하게 액션 스타의 면모를 극대화했다. 영화 후반 친누나이자 드릴러의 보컬이 공연을 앞두고 사라지자 대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설정을 제외하면 전영록은 성룡을 연상시키는 맨몸 액션을 영화 내내 선보인다. 이두용 감독은 < 돌아이 >의 액션 콘셉트를 ‘막싸움’이라고 정의했지만, 극 중 석아가 상대 배우와 벌이는 액션은 합이 척척 들어맞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개 이런 종류의 액션은 편집을 잘게 가져가 박진감을 더하는 것에 반해 <돌아이>는 길게 찍는 방식으로 해당 배우의 진짜 실력과 기술을 최대한 노출한다. 그 과정에서 액션의 사실성이 확보될 뿐 아니라 대역을 쓰지 않는 전영록 의 극 중 돌아이적인 면모가 강화된다. 여기에 통쾌감까지 덤으로 주어지는 건 악인들이 이른바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까닭이다. 요즘 열정페이다, 갑질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 돌아이 >가 묘사하는 1980년대 당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드릴러의 열정에 업소 영업부장은 한 달 무료 출연을 제안하고 그나마 쥐꼬리 같은 출연료를 지급하는 곳의 사장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멤버 중 한 명을 콕 집어 스폰서를 제안하는 식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꽃(?) 같은 상황에서 돌아이는 악인 척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구원자 같은 존재다. < 베테랑 >의 또 한 명의 돌아이 서도철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실제로 <베테랑>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 돌아이 >의 팬이었다. 류승완은 책 「류승완의 본색」에서 ‘10대 시절 마지막으로 본 액션영화다운 액션영화는 진유영 주연의 < 인간시장 >(1983)과 전영록 주연의 ‘돌아이 시리즈’ 정도가 아닌가 한다’고 썼을 정도다. 확실히 < 베테랑 >은 < 돌아이 >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에두를 것 없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이두용 의 남성적인 연출이 엿보이고, ‘지옥의 영웅’이라 칭할 만한 서도철의 계보를 훑다 보면 ‘무대뽀’ 정신의 석아가 윗자리 어딘가를 차지하며, 사회 비판적인 모험 활극으로서의 면모는 장르적으로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 요컨대, 돌아이가 남긴 시대정신은 유효하다. 리메이크하여 5편으로 이어가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3대 돌아이는 누가 적역일까. 그에 앞서 전영록은 어떤 역할로 카메오 출연할지가 더 궁금하다.
1970년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던 최인호 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장호 의 < 별들의 고향 >(1974)은 한 평범한 여성이 호스티스로 전락하고 결국에는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멜로드라마적 관습에 입각해서 지극히 통속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의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한 여성의 육체와 삶에 각인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가 여성이라는 위치와 여성의 성을 애초부터 취약하거나 불평등한 구조 속에 놓여진 것으로 그려낼 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양면적 현실, 즉 끊임없는 탐구와 매혹의 대상인 동시에 반여성적 폭력과 여성 혐오증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환기시키는 모순이 발생한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강조되는 순응적이고 희생자적인 여성 이미지는 영화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여성의 주체성이나 욕망에 대한 ‘희미한’ 기록들과 부분적으로 충돌하면서, 경아의 타락과 죽음을 반복해서 정당화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영화적 장치들은 오히려 여성 관객들에게 통절함이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서사적 차원에서 이 영화는 경아가 네 명의 남성들과의 관계 끝에 타살에 가까운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회상 구조를 통해서 보여준다. 문호와의 만남과 마지막의 죽음 장면만이 현재 시제를 구성하고 있다면, 나머지 사건과 행위들은 경아의 회상 형식을 통해서 화면에 제시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이야기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경아의 역사를 관찰자적으로 지켜보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우리에게 보여 지는 일들이 이미 과거 시제의 것들이라는 점에서 경아의 비극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이야기 속의 행위 주체인 경아에 대한 관객의 동일화는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무너지면서, 관객은 전체 이야기의 이면에서 질기게 작용하고 있는 반여성적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야기 구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이런 성차별적 논리는 그 공간들을 통해서 더 구체화된다. 경아의 섹슈얼리티가 짓밟히고 매춘으로 이어지는 여관과 술집은 물론이고, 부자연스러운 붉은 조명으로 표현되는 음악다방과 산부인과는 경아의 육체(처녀성 상실과 중절수술)와 운명(첫사랑의 실연, 결혼의 실패 그리고 자살)에 닥칠 비극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이야기구조와 더불어 영화를 구성하는 주요 기제인 ‘보기(looking)’라는 측면에서 경아는 어떻게 위치 지워지는가? 영화의 도입부에서, 경아는 윈도우에 걸린 옷들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데, 곧 이어 마네킹이 입었던 옷들과 가발을 착용하고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는 경아의 모습이 몽타주로 제시된다. 경아의 환상을 표현하는 이 장면은 경아를 소비자본주의적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영화의 시작부터 그녀의 불행을 그녀의 욕망 탓으로 돌리게 할 뿐만 아니라, 경아라는 존재 자체를 철저하게 ‘보여 지는 이미지’, 즉 남성들의 관음증이나 물신 주의적 시선의 대상으로 위치지우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텍스트의 이러한 의도는 완전히 성공적이지 못하다. 우선 이 몽타주 장면은, 결혼에 대한 경아의 꿈이 좌절될 것임을 암시하는 종이학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장면이라던가, 마지막 죽음 장면에서 경아가 첫사랑 영석이 자기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 오는 환영에 빠지는 장면 등과 더불어서 이 영화에다가 경아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환상’을 기입함으로써 부분적이나마 여성 주체성의 흔적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멜로드라마 텍스트로서 < 별들이 고향 >이 지니는 순응성과 저항성 간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경아의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논평하고 또 예고하는데, 반복성과 노골성을 특징으로 삼는 이런 식의 ‘과잉적’ 스타일은 오히려 경아가 가부장제의 희생물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순진성과 희생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지극히 서정적인 톤의 노래들이 경아의 비극적 모습 위로 반복해서 흐를 때, 우리는 이미지와 음향 간의 극단적인 부조화를 통해서, 지배 이데올로기들의 작용이 얼마나 가혹하고 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압권은 영화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아의 죽음 시퀀스인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문호마저 떠난 후 경아가 술을 마시기 위해 술집 문을 여는 순간부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최후의 매춘을 하는 순간까지 모든 음향은 반향 효과로 처리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막다른 절망감에 이른 경아의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제 완전한 타자와 이방인, 즉 마치 유령 같은 존재가 된 경아의 위치를 증후적으로 드러내게 되고, 여기에서 ‘음향적으로’ 준비된 여성 주체성의 지워짐은 눈 위에서의 죽음으로 ‘시각적으로’ 마감된다. 다른 하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언급되지 않던 경아의 사적 공간과 가족 관계가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제시된다는 점이다. 문호와 경아의 마지막 밤은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보여 지는 경아의 자취방에서 이루어지고, 그날 밤 경아는 비로소 어머니와 고향 이야기를 꺼낸다. 이것은 영화 텍스트가 무의식적으로나마 경아에게 삶의 현실성과 역사성을 찾아주려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의 시도였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시골 눈밭에서의 경아의 죽음은 그녀를 어머니와 고향을 상징하는 자연으로 되돌려 보냄으로서 한 여성의 실존과 역사는 다시 초월적이고 신화적인 공간 속에 묻혀버리고 말게 된다. 영화 속에서 모든 남성들의 연인, 남성적 욕망의 수신자였던 경아는 결국 한 줌 재가 되어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짐으로서 가부장제 사회라는 공간과 남성 욕망의 역사 속을 영원히 떠도는 기표로 다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