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
- 감독
- 신연식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이현호, 김민희, 이종수, 이정환, 장훈, 마창훈, 정선경, 허연정, 임참이, 고희진, 최종남, 유순일, 최용재, 김주경, 차언, 정상태
최윤태 감독의 < 야구소녀 >(2019)는 한국영화 아카데미의 장편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영화 아카데미의 장편 제작 과정을 통해 완성된 영화 중 관심을 끄는 경우는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가 되고(부산에서는 뉴커런츠나 비전, 전주에서는 한국 경쟁 부문에 주로 소개가 되어 왔다) 상당수 작품이 해외 국제영화제의 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새로운 감독들에게 주목을 해 왔으며, 국내 배급의 경우 아주 일부는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서, 최근에는 해외영화 수입사로 잘 알려진 ‘그린나래 미디어’나 ‘찬란’을 통해서 소개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해외 수입사가 국내 배급을 꾀하는 변화들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재능 있는 감독들과 열정 있는 제작자들이 넷플릭스를 달려간 이후 점점 더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장편들의 생태계는 현실로 잔존하기보다는 명분으로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은 배우와 꿈꾸는 영화 인력은 존재하지만 서서히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 가운데 최윤태 감독의 <야구소녀>는 일정한 상업적 장르의 틀 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주인공 주수인은 프로 선수의 진출을 갈망한다. 여기에는 핸디캡이 있다. 고교 야구 선수 중 유명세를 누린 주수인은 빠른 구속이나 재능으로 관심을 모았던 인물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눈길을 끌었다. 1996년에 사라진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했던 프로야구의 규정은 서류에서는 이제 사라졌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큰 걸림돌이 된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을 자주 연출한다. 그런데, 사회적 편견만으로 영화를 끌고 갔다면 다소 식상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구조는 새로 부임한 코치가 주수인에게 관심을 두면서 조금은 달라진다. 그는 프로 진출해 실패한 인물이다. 코치는130킬로 미터가 조금 넘는 구속으로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며 ‘여성’이라는 이유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시킨다. <야구소녀>는 사회적 선입견과 현실적 자각 사이를 오가면서 영리하게 프로 야구 진출을 꿈꾸는 주인공을 응원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그 가운데 내용을 채우는 것은 가족 멜로드라마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집 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 사이의 갈등은 딸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로 확장된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 일자리를 알선한 어머니는 고등학교 선수가 된 이후 딸의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없다다. 엄마는 수인에게 현실을 자각하라고 다그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그에 비해, 고교 선수로 들어가는 데 한 몫을 거들었던 아버지는 무능력하지만 자애롭게 주수인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다. 가족 드라마를 통해서도 이어지는 대립적인 구조는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의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는지를 보여준다. 스포츠 영화의 외관을 띠고 있지만 3억 정도의 규모로 제대로 된 전문가 주의를 구사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 드라마는 성인 세계에 진입해야 하는 한 여성의 성장기로 자리를 이동한다. 하지만, 모처럼 등장한 야구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야구 세계에 대한 묘사는 아쉽다. 사실 전문가 주의는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에 중요한 핵심 중 하나다. 최근작 < 포드 V 페라리 >(2019)가 대표적이다. 자동차의 세계를 두고 대결을 펼치는 인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은 이들이 자동차 산업의 현장에서 얼마나 해박하고 치열한가를 냉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취재와 상상력이 결합된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중요한 관행 중 하나다. 그에 반해, 한국 영화에서는 전문가 주의가 제대로 구현하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보면 < 타짜 >(2006) 이후 지속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자신의 영화에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 전반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스포츠와 관련된 TV 드라마 중에는 <스토브리그>가 꽤 준수한 전문가 주의를 선보였는데, 이 드라마는 화려한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지 않아도 전문가 주의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드라마가 캐릭터의 생기를 불어 넣으며 남다른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제작자들이 최윤태 감독을 상업적인 재능이 탁월한 연출자로 지목하였을 것이다. 가장 큰 미덕은 절제미다. 대표적인 이야기의 흐름 중 하나가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함께 했던 정호가 펼치는 로맨스 드라마다. 고교팀 선수 중 일찌감치 프로구단행이 확정된 정호는 수인을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슬며시 마음을 전하는 로맨스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애정과 우정의 선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관객들에게 일정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영리함은 빛나는 연출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절제력이 모든 것을 상쇄하지는 않는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한국영화의 감독들이 해 왔던 것은 장르적 특징을 끌어안으면서도 자신만의 특징을 불어넣기 위해 ‘안전함’보다는 종종 모험을 선택하였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에서 과잉된 표현과 캐릭터의 기괴함, 봉준호 감독이 선택하였던 괴수 장르와 가족 드라마의 절합 등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한국영화가 어떠한 안전핀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물론, 이들 감독과 단순비교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넘치는 절제미는 기대감을 뒤로 물리면서 아쉬운 패기의 지점을, 감독의 목소리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의 상당부분을 메워주는 것은 수인 역의 이주영 배우를 비롯하여 기본에 충실한 배우들의 연기이다. 이를 끌어내는 것 역시 감독의 몫이기는 하지만 장르적 상상력을 돌파할 현실의 목소리는 덜그럭 거리는 장면들을 끌어내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물 앞에 펼쳐져 있는 고통의 세계가 흡사 진짜인 것 같은 질감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 순간 영화는 절제된 장르의 힘을 넘어서서, 현실과 오버랩 되는 가공할만한 위력과 감정으로 다가온다. 일정하게 숭고미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순간들을 2010년대 이후 많은 한국의 독립 장편 영화들이 끌어내어 왔다면( 박정범 , 양익준 , 이수진 , 김보라 등), 이 모험은 여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02년 | 감독의 집 감독, 제작: 김상진 | 원안: 김형준 | 각본: 박정우 | 기획: 강우석 | 촬영: 정광석 | 미술: 오상만 조성원 | 음악: 손무현 CAST 유재필: 설경구 | 최무석: 차승원 | 한경순: 송윤아 | 용 문신: 강성진 | 보안과장: 강신일 | 짭새: 유해진 지난 세기말과 세기초,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흥행 감독은 김상진이었습니다. 강제규 감독이 < 쉬리 >(1999)로 신드롬을 일으켰다면, 강우석 감독이 업계의 거물로 자리잡았다면, 김상진 감독은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했죠. < 주유소 습격사건 >(1999) < 신라의 달밤 >(2001) < 광복절 특사 >(2002) < 귀신이 산다 >(2004)의 연속 흥행. 그 중 <광복절 특사>는 흥행 전선의 정점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광복절 특사>는 두 번에 걸쳐 현장 공개가 있었는데요, 먼저 탈출 신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교도소를 세트로 지었는데요, 영화 속 ‘오수 교도소’는 전주공고 부지에 지은 것입니다. 약 8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죠. 참고로 ‘오수 교도소’라는 명칭은 근처에 있는 전북 임실군의 지명인 ‘오수’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교도소의 행정동은 군산 교도소에서, 실내 촬영은 양수리 종합촬영소 세트에서 촬영했습니다. 드디어 탈출한 무석(차승원). < 쇼생크 탈출 >(프랭크 다라본트, 1994)의 패러디라고 봐도 무방한 장면입니다. 탈옥 영화에서 비 오는 날 밤의 탈출은 일종의 클리셰죠. 탈출구 부분을 스태프들이 매만지고 있습니다. <광복절 특사>에서 땅굴 장면은 세트로 제작해 일주일 정도 촬영해야 했는데요, 배우들이 가장 고생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무석과 재필(설경구)은 탈옥에 성공한 후 껴안고 뒹굴며 기뻐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캐스팅은 다소 의외인데요,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었습니다. 설경구는 다소 어눌하고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사기꾼 역할을 맡았고, 모델 느낌의 도시적인 이미지인 차승원은 순진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김상진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배우의 숨겨진 모습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캐스팅한 두 배우가 보여준 “언밸런스 호흡”을 노렸다고 합니다. 차승원은 무석이라는 캐릭터를 “어리바리”라는 단어로 요약합니다. “교도소 안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존재였지만, 막상 세상에 나가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린 거죠. 자신이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순간 정신이 나가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무석이고, 그걸 계속 다그치는 사람이 재필이에요.” 한편 차승원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차승원은 설경구에 대해 “나와 완전히 색깔이 다른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혔을 땐 상황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경구 형은 정말 자기를 포장할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말 좋은 배우예요, 좋은 배우.” 김상진 감독의 전성기엔 항상 차승원이 옆에 있었습니다. 아깝게 편집에서 잘려나가긴 했지만 <주유소 습격사건>에 차승원은 특별 출연을 했고, 이후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그리고 <귀신이 산다>까지 두 사람은 함께 합니다. “촬영할 때 김상진 감독님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거의 똑같아요. ‘여기서는 이런 느낌으로’, ‘그래, 바로 그거!’ 뭐 이런 식이죠. 이렇게 사람 생각이 똑같을 수 있구나, 가끔은 깜짝 놀라요.” 코미디 전문가인 김상진 감독에게 <광복절 특사>는 중간 결산 같은 작품입니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20대 관객층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고, 그게 아쉬워서 <신라의 달밤>에선 좀더 넓은 층을 타깃으로 잡았어요. <광복절 특사>는 욕심을 더 부린 측면이 있어요. 이전의 두 영화를 완결 짓는 느낌? ‘쌈마이 코미디’의 완결편? 그런 거죠.” 교도소 세트 안에선 간단한 기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촬영이 없었던 경순 역의 송윤아도 참석했고요. 한편 김상진 감독과 설경구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동기인데요, 연기와 연출로 지향점은 달랐지만 4학년 워크숍 작품 때 함께 무대에 선 적도 있다고 합니다. 세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한편 교도소 세트는 서대문 형무소와 여수 교도소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탈출 장면은 2002년 9월에 공개되었고, 앞서 8월엔 탈출 후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베테랑인 정광석 촬영감독이 잡았는데요, 김상진 감독과는 <신라의 달밤>에 이어 두 번째 만남입니다. 아버지 뻘인 정광석 감독 앞의 두 배우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선생님 앞에서 벌 받는 학생 같네요. 식당에서 밥을 먹는 무석이 숟가락을 보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6년 동안 숟가락 하나로 땅굴을 파 탈옥한 그에게, 그 숟가락은 그 동안의 고생을 환기시키는 소품이었죠. 재필의 약혼녀였지만 배신하는 경순 역할에 김상진 감독은 원래 신인급 배우를 염두에 두고 여러 차례 오디션을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땅한 배우가 없었고, 작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송윤아가 러브콜에 응하면서 탄탄한 캐스팅 라인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영화로 송윤아는 청룡영화상, 대종상, 춘사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합니다. 알고 보니 특사 대상이었던 두 사람은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전에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는데요, 이때 경찰이 식당으로 들이닥칩니다. 어떻게든 경순을 데리고 도망치려는 재필과 안 간다고 버티는 경순, 중간에서 애가 타는 무석 세 사람의 실랑이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 나만 없는 집 >의 첫 시놉시스가 나온 것은 영화가 완성되기 3년 전인 2014년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이야기가 단편 영화로 적합하고 매력적일 것인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무작정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나만 없는 집>은 그렇게 쌓인 여러 글 중에서 내 어린 시절을 반영한 유일한 작품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 때 늘 구조를 먼저 세워놓고 시작을 하는데, < 나만 없는 집 >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놉시스를 구상하던 2014년에는 작법 입문서로 유명한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를 참고했고,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은 어린 소녀가 가족에 의해서 반대를 겪는다’라는 중심 아이디어를 세 개의 장, 두 개의 구성점(plot point)에 맞춰 구체적인 사건으로 풀었다. 몇 차례 수정 끝에 완성한 시놉시스는 한동안 컴퓨터 폴더에 고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6년,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공고가 떴고, 고민 끝에 <나만 없는 집>의 시놉시스를 다시 꺼냈다. 제작지원 사업에 내자고 결심은 한 것은 마감일이 고작 5일밖에 남지 않던 때였다. 어떻게든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했는데, 그 당시 나는 크리스토퍼 보글로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라는 책으로 좀 더 심화된 이야기 구조법을 공부하고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이전에 구조적인 고민을 충분히 했던 터라 초고는 예상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다.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후에도 시나리오의 수정 작업은 제1순위였다. 전작인 < 은하 비디오 >와 < 나만 없는 집 >의 프로듀서 및 조연출 역할을 해준 오성호 PD는 나의 첫 영화 현장인 < 소나기 >의 감독이자 영화 스승이기도 했는데, 그는 늘 강박적으로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오성호 PD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며(?) 한 씬, 한 씬 꼼꼼히 점검해나갔다. 각 씬의 목표를 정확하게 정의하면서, 목표에 맞지 않는 대사나 지문 등은 삭제하고 좀 더 강조가 필요한 부분은 반복하거나 변주했다.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에 부합하기 위해서, 되도록 봄에 가까운 계절에 찍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상 바로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8월 중순에 크랭크인을 하기로 하고,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약 7주로 계획했다. 하지만 프로듀서, 촬영감독 외에 스태핑을 완료하지 못한 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은 커져갔다. 게다가 이전에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든 건 고작 1편에 불과했고, 내 경험과 실력에 비해 < 나만 없는 집 >은 시대극, 아역 배우, 단체 장면 등 촬영 난이도가 무척 높은 편이었다. 로케이션, 미술, 캐스팅, 연기연출, 콘티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촬영 전까지 할 일은 절망적으로 많았고, 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촬영 예정일에 맞추기 위해, 각 업무의 최소한의 마감일만을 정해둔 채, 매일매일 TO-DO 리스트를 만들었다. 나와 오성호 PD는 스태핑 전까지 서로의 손발이 되어 업무를 분담했고, 정말 전투적으로 영화를 준비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쉴 틈이 거의 없었다. 세영의 집 < 나만 없는 집 > 프리 프로덕션의 시작은 주요 무대가 될 세영의 집을 찾는 것이었다. 하루는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갔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어릴 때 살던 연립주택이 그대로 있었고, 특유의 분위기에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던 내 마음과 달리, 집주인은 수차례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그곳은 추억으로만 남겨둔 채, 대구 전역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다시 조사하러 다녔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매우 가까운, 재개발 예정인 빈 아파트를 섭외하게 되었다. 완전히 비어있던 만큼 미술이 용이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할 일이 많았다. 손걸레와 스팀 청소기 등을 동원해 온 집 안을 쓸고 닦았고, 대구 외곽에 있던 이삿짐센터에서 버리는 가구들을 실어 날랐다. 전작인 < 은하 비디오 > 때도 그랬지만, < 나만 없는 집 > 또한 로케이션과 미술이 거의 막노동 수준이었다. 199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만큼, 그냥 둘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학교의 책걸상을 교체하고, 중고나라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렸고, 옛날 문방구에서 각종 보물들을 찾으러 다녔다. 길을 다니다 버려진 고가구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갔고, 결국 주워오곤 했다. 걸스카우트 입단식 의상도 문제였다. 현재 걸스카우트 유니폼은 초록색이지만, 1998년도 당시에는 갈색이 주요 색상이었다. 전국에 있는 걸스카우트 연맹에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걸어봤지만, 갈색 유니폼은 단 한 벌도 남아 있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직접 찾아간 대구 연맹에만 두 벌의 옷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대구 연맹 쪽은 꽤 호의적이었고, 옷을 대여해줌과 동시에 음악, 율동 등을 알려주시기도 하셨다. 이후 대여받은 옷과 최대한 유사한 천을 구해, 30벌가량의 걸스카우트 유니폼을 의뢰, 제작했다. 한편, 프리 프로덕션 이전부터 가장 고민해왔던 아역 배우의 캐스팅은, 대구-부산-서울 3개의 도시에서 아역 전문 엔터테인먼트 및 학원에 찾아가, 오디션으로 진행했다. 주로 시나리오 속 인물의 대한 이해와 유사 경험을 묻는 질문을 했고, 즉흥 연기 또한 부탁했다. 단시간에 한 명의 배우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오디션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상처로 남지 않도록, 나를 포함한 스태프 모두가 참여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캐스팅 과정 끝에, 매우 운이 좋게도 < 나만 없는 집 >을 이끌어 줄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영’ 역의 김민서 ‘세영’ 역의 김민서 양을 캐스팅하면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사투리였다. 서울 토박이인 민서에게 캐스팅 결정을 통보하기 전까지, 시나리오를 표준어로 수정해서 진행할지, 아니면 민서에게 대구 사투리를 가르칠 것인지를 끝까지 고민했었다. 결국 답이 나오지 않아 민서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했고, 어머니께서는 민서가 이전에 전라도 사투리를 암기해서 연기를 해봤다고 말씀해주셨다. 대사를 통으로 암기하면, 현장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내면의 갈등이 있었지만, 사실 대구 사투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훨씬 더 컸다. 그 날 나는, 민서에게 캐스팅 결정 통보와 함께, 남은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의 연기연습과 사투리의 중요성을 말하고, 또 말했다. 연기 연습은 약 5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민서와는 사투리 때문에 거의 매일 통화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민서가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 내려와 이틀 동안 언니, 엄마, 아빠, 친구 역의 배우들과 번갈아가며 연습을 했다. 연습 방식은 대사 리딩을 시작으로, 실제 촬영 타이밍을 고려한 동선과 동작을 연습하고, 대사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상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역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반드시 그들의 부모와 엮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때와 뒤에서 기다려주실 때를 정확히 눈치채주셨다. 아이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잘 견디다가도, 눈앞에 자신의 부모가 보이면, 갑자기 그들에게 기대려 하고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약해지곤 한다. 그런데 이번 현장에서는 부모님이 아이들을 강하게 책려하다가 홀연히 사라지셨고, 되레 나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시며 응원과 위로를 보내주셨다.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스태핑과 함께 여러 프리 프로덕션 업무도 완료되어갔고, 마지막으로 숏 구성과 콘티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직 숏 구성에 자신이 없던 내가 믿을만한 것이라곤 레퍼런스뿐이었다. < 나만 없는 집 >의 콘셉트와 유사한 레퍼런스 영화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그를 기반으로 기초적인 숏 구성을 했다. 이후 카메라 렌즈 앱을 이용해서, 실제 로케이션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으며 숏을 구체화시켰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토대로 미술 스태프와 함께 그림으로 콘티를 정리했고, 완성된 콘티는 촬영 직전에 촬영 팀과 마지막 점검 작업에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원래 프로덕션은 7회 차로 예정되어 있었다. 사실 35분의 러닝타임을 예상한, 2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로는 7회 차는 꽤 적절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분 이상의 롱테이크 숏들이 꽤 포진되어 있는 데다, 평상시 테이크를 많이 간다고 악명 높은(?) 연출 스타일에서 이번엔 얼마나 내 자신과 합의할 수 있을지 나도 짐작할 수 없었다. 촬영은 시작되었고, 난 이번에도 악마가 되어, 양보 없이 배우와 스태프들을 수없이 괴롭히며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최종 회차는 1회 차가 늘어난 총 8회 차로 마무리했다. 자매 유난히 뜨거웠던 8월, 찜통 같은 더위에 배우와 스태프를 몰아놓고, 지치는 몸과 마음을 제대로 달래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촬영을 강행했다. 평소 가장 심한 말이라고 해봤자 ‘바보’ 정도였던 민서와 지후는, 악에 받친 자매를 연기하느라, 마지막엔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 어머니 역을 해주신 이미정 선배님은 유당불내증이 있었음에도, 촬영에 차질이 생길까봐 끝까지 그 사실을 숨기기까지 하셨다. 김용현 촬영 감독님을 비롯한 촬영 팀은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묵묵히, 가장 먼저 다음 촬영을 준비하며, 부족한 나를 항상 배려해주셨고, 부처 다음으로 인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전상진 동시녹음기사는 무거운 붐대를 들고서 믿음직하게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괴롭힘을 당한 오성호 PD는, 나의 부족함으로 늘 동분서주했고, 건널목 장면을 찍은 날엔 종아리에 햇볕 화상을 입어 한동안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북적거렸던 촬영 현장이 끝나고 나니, 남은 건 그동안 주워 모았던 가구들과 두 장의 외장하드, 밀려드는 공포심이었다. 일단 촬영 현장을 정리하고서, 급하게 서울로 향했다. < 은하 비디오 > 때부터 함께 작업해 온, ‘이음편집실’의 원창재 편집기사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선 나는 기사님과 촬영 소스에 대해 염려되는 부분, 편집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기사님이 콘티와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만들어 주신 1차 가편을 토대로, 약 3개월에 걸쳐 세밀하게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예상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찍어야 했던 걸스카우트 율동 장면과 특별히 정해진 콘티 없이 촬영한 선영과 세영의 싸움 장면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다행히 기사님이 잘 봉합해주셨다. 그렇게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편집을 끝내고 나니, 이야기는 매끄럽게 잘 이어졌지만, 씬과 씬의 리듬감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눈에 볼 수 있게 시나리오를 펼쳐 구성점을 다시 파악했고, 리듬감이 조금 더 빠르거나 느리면 좋을 부분을 확인해 최종적으로 수정, 편집을 마무리했다. ‘대구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마지막 단계는, 그해 지원을 받은 작품을 모아 관객을 초청해 상영하는 것이었다. 상영 시기는 12월로 정해졌고, 나는 그 전까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후반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완성된 편집본을 들고 색보정, 믹싱, 음악 작업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형준석 색보정기사님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변덕만 부리는 나를 끝까지 받아주셨다. 믹싱의 경우, 개화만발의 양정우 실장님과 홍랑기 믹싱기사님과 함께 작업했는데, 여름에 어울리는 앰비언스와 드라마가 강조되는 효과음을 적절히 삽입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셨다. 또한, 류재학 음악감독님은 아이들의 정서를 잘 살려주며 울림이 있는 멋진 엔딩곡을 완성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작업을, 동시녹음기사이기도 했던 전상진 군이 훌륭하게 엮어주었다. 길고 치열했던, 영화 제작의 과정에서 정말 많은 분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게다가 여기에 언급된 분보다 언급되지 않은 분들이 더 많다. 비록 이 영화는 ‘자기 치유’라는, 오롯이 사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됐지만, 그런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 나만 없는 집 >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는 영화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