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 통합검색 결과
검색 결과 분류
총 5,393개
정확도 순 필터
영화정보
주희
- 참여 작품
- 3670 (2025), 여름이 지나가면 (2024), 1980 사북 (2024), 판문점 (2024), 족벌 - 두 신문 이야기 2022 (2022), 비밀의 언덕 (2022), 그대가 조국 (2022), 모어 (2021), 너에게 가는 길 (2021), 수프와 이데올로기 (2021), 로그 인 벨지움 (2021), 성적표의 김민영 (2021), 아무도 없는 곳 (2021), 족벌 두 신문 이야기 (2020), 메이드 인 루프탑 (2020), 좋은 빛, 좋은 공기 (2020), 최선의 삶 (2020), 고양이들의 아파트 (2020), 아들의 이름으로 (2020),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2019), 그림자꽃 (2019), 김복동 (2019), 69세 (2019), 유령선 (2019), 밥정 (2018), 벌새 (2018), 메기 (2018), 그날, 바다 (2018), 삽질 (2018), 살아남은 아이 (2017), 공범자들 (2017), 메소드 (2017), 직지코드 (2017), 더 플랜 (2017), 꿈의 제인 (2016), 다시 태어나도 우리 (2016), 공동정범 (2016), 자백 (2016), 춘희막이 (2015), 글로리데이 (2015), 눈길 (2015), 위험한 상견례 2 (2014), 야간비행 (2014), 위로공단 (2014), 만신 (2013), 숫호구 (2012), 공정사회 (2012), 마이 라띠마 (2012), 남영동1985 (2012), 주리 (2012), 어쿠스틱 (2010), 날아라 펭귄 (2009), 따봉 깐돌이 (1990), 미친 사랑의 노래 (1990), 젊은 날의 초상 (1990),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1989), 발바리의 추억 (1989), 오성군 한음군 (1988), 사랑의 낙서 (1988), 돌아이 3 (1987)
주희
- 참여 작품
- 겨울로 가는 마차 (1981)
주희
- 참여 작품
-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9), 나는 행복합니다 (2008), 나의 친구, 그의 아내 (2006),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06), 첫사랑 (2006)
수집자료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영화음악 발바리의 추억 Original Sound Track
- 매체유형
- LP
- 연주시간
- —
이미자-영화(映畵) " 비에젖은 두女人" 주제곡(主題曲)
- 매체유형
- LP
- 연주시간
-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 매체유형
- CD
- 연주시간
- —
아트나인 인터뷰 초벌 채록본
- 실물구분
- 디지털파일
- 매체유형
- 기타문서
- 보관위치
- —
TV프로 「맞물리기」편성여전하다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한국 TV프로 “세계속으로”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콘텐츠
수치의 반복을 넘어, 당신의 존재가 구원이 될 때
* 사진: 필자 제공 연출배경 < 주희에게 >(2025)는 세 명의 연출( 장주희 , 부성필 , 김성환 ) 중 두 명이 출연자로 등장하며, 네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복잡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한 여성(장주희 감독)이 자신이 20대에 ‘혈액암’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시작된다. 사회로 복귀를 하게 된 무렵 만나게 된 동년배의 남성 다큐멘터리 감독(부성필 감독)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카메라의 시선은 그가 기록하는 장애인(선철규)의 번지점프 도전기에서부터, 2014년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전인숙)의 삶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의 지표에 흐르고 있는 ‘고통’과 ‘연결’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기록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전하는 목소리는 혈액암과 가정폭력을 겪은 출연자이자, 연출인 여성, 주희(나)의 것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속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의 삶,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규명, 와상장애인의 번지점프 도전기, 제주 4·3 유가족 3세대의 삶이 연결된 복잡한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복잡한 이야기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이것은 30대 여성이 자신의 삶의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의 고통 속으로 녹아들기 내가 목격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본다’라는 수동적 태도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변화한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연출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찰자에서 화자로 거듭난다는 것은 ‘목격’이라는 경험이 나를 변화시킨 근본적인 이유이며, 이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로, 적극적으로 기록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나는 영화 속에서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혈액암 환자’라는, 한 공간에 결박된 존재로서 철저하게 수동적이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목격자이며, 이 고정된 시선은 앞으로 진행될 영화 안에서 변화가 예상될 수밖에 없는 ‘화자’의 자리로 안착한다. 이 영화가 담아낸 화자의 출발점은,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지독한 무력감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목격하면서도 그 일이 없는 듯 살아왔다. 사회는 가정폭력을 일상의 예외로서 묵인하고, 사회에서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지워버린다. 우리는 304명의 승객이 탄 배가 가라앉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보다’라는 수동적인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무언가를 보기 전과 본 이후의 세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주희’가 장애인자립센터에서 만난 장애여성 ‘은미’는 시설에서 선철규의 탈시설 다큐멘터리 < 지렁이 꿈틀 >(2010)을 보았고, 그 이후로 은미의 세계는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시설 밖으로 확장되었다. 나 역시 다큐멘터리를 통해 거리에서 투쟁하는 어떤 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나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이가 거리에서 흘린 눈물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집안에서 흘리는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격은 적극적으로 ‘나’를 그 프레임 속의 대상과 겹치며, 그 속에 나를 투사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어진다. 나에게 ‘본다’는 행위는 사건을 목격한 일시적 순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내가 목격한 사건이 나의 몸을 경유하여, 이전과 다른 몸을 만들어나간 과정이다. ‘본다’는 능동적 행위의 결과는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것이고, 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결과는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그런 맥락 속에서 ‘주희(나)’에게 ‘선철규(탈시설 장애인)’와 ‘전인숙(세월호 유가족 활동가)’의 존재는 자신의 문제에 온전히 투신하는 사람들, 즉 보이는 대상으로서 스스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주체가 된 이들이었다. 이야기의 주체로서 나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희에게>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나(가정폭력 피해자, 암 환자)’의 이야기는 세 인물(다큐멘터리 감독,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과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맺으며 단단하게 얽혀 들어간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보이는 대상을 거쳐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for us and In-itself) 가시적인 것들의 여정으로써, 우리는 봄을 통해 우리 내부로부터 발현하는 타인의 살을 마치 우리 자신의 것처럼 경험한다. 이 순간, 우리는 우리 ‘내부로부터’ 몰려오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 속에 살게 되고 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데, 이를 통해, 재난의 세계는 우리의 눈앞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 최종철, 『재난의 예술』, 그린비, 2024, 24쪽. 타인의 고통과 내 안의 슬픔이 하나의 ‘살’로 섞여 드는 이 감각은, 프레임 너머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에 머물던 나를 기어이 말하는 주체로 밀어 올리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이 내 안으로 밀려와 나를 바꾸어놓았다는 이 복잡한 연결고리를 과연 온전히 설득시킬수 있을까. 만약 관객들에게 이 예민한 호흡을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목격한 것을 말하는 ‘화자’로서의 내 존재 자체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목격자가 화자가 됨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라면, 목격자가 화자가 된다는 이 단순한 전개는 결국 ‘주희’의 ‘성장 서사’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본 것들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관객에게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변화는 필연적으로 ‘미성숙’을 전제한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환자’라는 정체성에 ‘미성숙’의 이미지를 덧씌워야만 성립되는 이 서사 구조 안에서는, 어떤 결핍이 과거의 나를 형성했는지,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내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만 했다. 친절한 전달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러나 목격의 대가로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하는 벽에 맞닥뜨린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기묘한 불쾌감과 함께 스스로에 대해 또다시 질문하게 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성장은 과연 필수적인 것인가? 고통은 늘 어떠한 성찰을 수반해야만 하는가? 나의 고백이 도리어 가정폭력 피해에 대한 인상을 수동적이고 고정된 틀에 가두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여성의 성장 서사를 ‘피해의 극복’이나 ‘수동성에서의 탈피’ 같은 전형적인 이야기로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위치에 자리매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것은 내 존재가 그저 고통의 ‘친절한 전달자’로 머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의 바깥에서 그 안의 ‘결핍된 존재’인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고통을 전시하는 방식에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태도로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분리해 바라보는 이 낯선 응시는, 곧 목격하기 전의 나, 그리고 목격한 후의 나, 그리고 그걸 되새기며 말하는 현재의 나라는 여러 층위로 인해 영화 안에서 인물 간의 여러 시간을 교차시킨다. 기록의 시간, 투쟁의 시간, 깨달음과 과거로의 회귀… 영화 안의 이 여러 시간 속에서 나의 위치는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깨닫는, 자책하는, 스스로 질문하는, 통찰하는 여러 시점에 놓인다. 이로 인해 ‘주희’의 내면과 인식의 변화는 영화의 타임라인을 따라 유동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것’의 윤리와 연대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수많은 질문과 의심들은, 영화가 상영되고 다양한 관객들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왜 지금 괜찮은지 묻는 이들에게 상영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나다 보면 장애인의 번지점프에 대해, 세월호 진상규명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10년에 가까운 긴 기록이 ‘삶’이라는 흐름의 속도와 동일하게 압축되어 있을 뿐, 어떤 의도적인 결말을 관객에게 제시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답변을 들은 관객들로부터 나는 그들이 안도하기도 하고, 더더욱 연대하겠다고 다짐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중 어떤 관객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정폭력은 트라우마가 심하기 때문에 영영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 질문은 마치 영화 밖, 현재의 나에게 “왜 지금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있는지”에 대해 묻는 날카로운 의문 같았다. 그 의문 앞에서 나는 영화 안에서 피해자로서 관객에게 제대로 된 공감과 연결 지점을 설명해내지 못한 것인지 자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 그런 우려와 불안의 지점을 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고, 관객분이 내비친 날카로움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불안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관객분이 제시한 솔직한 의문 속에서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오직 폭력에 대한 응징과 가해자 처벌이라는 명확하고 클리셰적인 결말로만 해소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 서사의 완결이 지닌 본질은, 사회와 국가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제도를 통해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언제나 미완으로 남을 뿐이다. 국가폭력을 비롯한 ‘피해자’라는 정체성과 그 삶의 맥락을 가진 모든 존재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제도적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 한,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시선과 인상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 가득 찬 답답함과 같은 브레인 포그 현상처럼 뿌옇고 불명확한 인상만을 남겨둔 채 방치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안개 속을 우연히 뚫고 나왔을 뿐임에도, 나는 그것이 과연 ‘성장’이 될 수 있는지에 여전히 의문을 품는다. 아직도 내가 ‘성장’했다는 표현에 대해, 그리고 이 영화 속 나를 ‘성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소개하는 것에 대해,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분명한 변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장한 주희’이자, 30대 여성으로서, 이 불평등한 세계 속에 굴하지 않는 동등한 스피커(화자)가 되어 주어 고맙다는 말로 들리는 착각과 환청 속에서, 나는 ‘여성’ 화자로서의 나의 위치성에 대해 고민하고 분노하고 인정하는 분열적 상태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분열이야말로 ‘존재의 바로 보기’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만들던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시 내릴 수 있었다. 나를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했던 것, 변화와 성장을 증명해야 했던 것으로 비롯된 나의 불편감에 대한 답을 말이다. 나는 비로소 내 존재 자체의 당혹스러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수치의 반복을 넘어, 당신의 존재가 구원이 될 때 나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비롯해 나의 고통을 목격한 모든 이들의 당혹스러움을 감당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가정폭력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 몰랐다’라는 반응으로부터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감각을 맞닥뜨려야 했던 그 순간 속에서 알 수 있었다. 결핍된 존재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수치심을 동반하며,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지독한 부정의 시선과 언어들 속에서, 드러내기와 수치의 반복 속에서 나와 당신의 존재가 결국 우리 모두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선언할 수 있는 강력한 힘, 나는 그 힘이 바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다큐-코멘터리: 프레임 밖의 문장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장주희(여성인권활동가, 영화감독) l 장애인 대상 미디어 교육과 여성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 장애인, 미디어, 교육 >(2022), <주희에게>(2025)를 만들었다.
강남권 첫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나인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2013년 강남권에 문을 연 첫 예술영화 전용관 2013년 1월 9일 개관한 아트나인은 서울 강남권 첫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2013년 당시 예술영화 수입/배급사였던 엣나인필름(1996년 설립)에 의해 설립되어 2023년 현재까지 같은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배급사가 운영하다 보니 영화 상영작을 선정하고 배치하는 데 있어서 국내에 수입이 안 된 작품을 구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아트나인이 기획전을 열거나 신인 감독을 발굴하여 상영을 할 때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관의 이름인 아트나인은 엣나인필름의 숫자 9와 같은 정체성을 표명하는 것으로 ‘10점 만점에 9점만 하자, 10을 향한 9의 열정, 완벽으로 가려는 노력’과 같은 뜻을 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트나인의 상영관 2개의 이름도 하나는 0관, 하나는 9관이며 상영관과 함께 극장 안에 있는 레스토랑 이름도 ‘잇나인(EAT 9)’이다. 아트나인 내부의 레스토랑 잇나인 예술영화 전용관이 집중되었던 강북이 아닌 강남에 처음으로 생기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점과 멀티플렉스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 엣나인필름(대표 정상진)이 만들었다는 점,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많은 기대를 받았다. 개관 기념으로 2013년 1월 9일부터 1월 16일까지 총 36편의 작품을 6개 섹션으로 구성하여 ‘엣나인 필름페스티벌(anff: AT NINE FILM FESTIVAL)’을 열었다. 개막작인 < 더 헌트 >(토마스 빈터버그, 2012) [1] 가 한국에서의 정식 개봉에 앞서 엣나인 필름페스티벌에서 먼저 관객들을 만나게 된 점과 아트나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일본 핑크무비(엣나인필름이 수입 배급), 아트나인의 음향 시설을 체험할 수 있는 실황 공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는 점 등이 주목을 받았다. 개관 당시 음향에 있어서 국내 상영관 중 최고 시스템을 갖춰놨다고 자부하며 EV사의 P시리즈 파워앰프를 달았고 이후 꾸준히 공간에 맞게 사운드 시스템을 정비해 왔다. 예술영화관 중 최초로 4K 영사기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후 기술의 급변과 유지 보수 비용 문제 등으로 국내 상영관들 수준이 평준화되었지만, 아트나인의 이런 특색은 당시 독립예술영화인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현재는 테라스 상영관을 제외한 일반 상영관에는 2K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내 상영관 층고가 낮아 4K를 구현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고, 독립예술영화 중 4K 버전으로 들어오는 상영본이 거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이다. 개관 당시 갖춘 실내 상영관 두 개와 오픈 테라스로 이어지는 야외 상영관 한 개, 레스토랑 한 개의 구조는 2023년 현재까지도 동일하다. 2020년 리모델링 공사로 6월 10일부터 6월 12일까지 3일간 임시 휴관을 한 외에는 개관 이후 한 번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관주의” 극장 아트나인은 이와이 슌지, 기타노 다케시, 레오 카락스, 짐 자무쉬, 데이비드 린치 등등 작가주의 감독들의 기획전, 매년 3월에는 재팬무비페스티벌, 4월에는 장국영 기획전을 열거나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밤새 3편의 작품을 묶어서 상영하는 올나잇 상영 등의 기획을 통해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기획전 이외에도 영화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확장하고 있다. 야외테라스에서 비정기적인 특별 상영을 개최하거나 미술 전시, 음악 공연, 토크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매년 한두 차례씩 영화 관련 배급사들과 디자인회사들이 모여 영화 굿즈들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으로 SNS 상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관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시도들 역시 지속해 오고 있는데, ‘정시에 영화 상영, 10분 뒤 입장 금지. 음료 이외의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아트나인 관람문화를 관객들에게 정착시키고, 자주 오는 관객들을 위해 ‘아트나인 X 잇나인 포인트카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아트나이너’라는 이름으로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매년 마지막 날 밤이 되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떡국을 나눠주는 행사와 매달 마지막 날 오전 9시에 그달 상영이 되었던 영화들의 포스터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포스터 대방출 이벤트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아트나인을 이용하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영화인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아트나인 9관 내부 전경 개관 5년째인 2017년 인터뷰 당시 아트나인 관객 점유율이 20%까지 올랐다고 정상진 대표가 답한 바 있으며, 총 2개 관의 200석이 안 되는 규모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국내 예술영화 전용관 매출액 기준 상위권을 항상 유지했다. 2023년 현재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가 CGV보다 약 2배 많은 4.8만 명이다. 아트나인이 표방하는 ‘영화관주의’는 더 많은 독립예술영화들을 소개하고, 영화를 만든 사람의 의도에 가장 가깝게 환경을 구축하고 관객에게 오롯이 영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 부합하게 유지·발전되고 있는 중이다. 영화와 공간 경험을 통합한 복합문화공간 아트나인이 자리한 곳은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의 지하철 이수역 7번 출구 앞 골든시네마타워 12층이다. 해당 건물 8층에는 메가박스 이수점이 있는데, 원래 메가박스 이수점은 독립영화배급사인 엣나인필름이 씨너스를 통해 위탁경영하던 씨너스 이수점이었다. 2011년 씨너스가 메가박스를 인수하면서 메가박스 이수점으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메가박스는 이수점을 직영하게 되고 엣나인필름에서는 2013년 1월 메가박스 이수점이 자리한 골든시네마타워 건물의 12층에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개관한 것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메가박스 이수와 아트나인은 별개 극장이지만 예매시스템을 같이 사용하고 있고, 메가박스 회원 포인트를 아트나인에서도 쓸 수 있게 제휴는 되어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메가박스 이수에 관객을 빼앗기기보다는 오히려 메가박스 이수에서 영화를 보려고 예매를 하는 관객들에게 홍보가 되는 이점도 누리고 있다. 처음 아트나인이 개관할 당시에는 위치가 강남의 역세권이고 입주해 있는 건물도 큰 편인 데다가 같은 건물 안에 멀티플렉스가 있어서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라고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는 찾아가기 편한 역세권의 예술영화 전용관이자 강남의 유일한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시네필들에게 확실히 각인되었다. 야외상영이 이루어지는 오픈 테라스 공간 0관과 9관, 2개 관을 운영하고 있는 아트나인은 총 150석 규모이며 야외 상영관으로 쓰이는 탁 트인 오픈 테라스를 갖추고 있는데 오픈 테라스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 뷰가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극장 안에 카페와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잇나인이 있어서 시네필이 자주 찾는 강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현재는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치의 편리성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특징 이외에도 아트나인의 다양하고 예술적인 상영 프로그램 기획력과 더불어 극장의 상영 시스템 자체도 이러한 입지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아트나인은 개관 초기부터 음향 시스템에 신경을 썼으며 관객들이 화면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스크린을 수직이 아니라 약간 기울게 설치했고 0관 같은 경우는 영화가 끝나면 왼편의 암막 커튼이 열리며 영화관 안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다시 영화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했다. 영화관들이 보통 지하에 있거나 지상에 있다 하더라도 창문이 열리는 영화관이 없는데, 아트나인은 유일하게 고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창밖을 보여줌으로써 12층이라는 고층에 있는 영화관으로서의 특성을 활용하고 있다. 암막 커튼이 열린 0관 내부에서 보이는 외부 풍경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대로 89 (사당동, 골든시네마타워 12층) 2. 설립일 : 2013년 1월 9일 3. 대표자 : 정상진 4. 규모 : 476.48㎡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 2개관, 0관 92석 / 9관 58석상영관 외 잇나인, 테라스, 사무실 6. 운영시간 : 09:00 – 23:00 시네마테라스 등 이벤트 진행 시 연장운영 7. 조직 구성 : 엣나인필름 내 수입배급부서 / 극장사업부서 / 식당(잇나인)운영부서 (극장사업부가 아트나인 기획운영) 8. 구성원 : 8명 (유동적) 대표: 정상진, 이사: 주희, 극장사업부 팀장: 박혜진 필자 : 김문경 사진촬영 : 허성 취재 및 인터뷰 일자 : 2023년 4월 19일 *** [1] 2012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매즈 미켈슨)
[한국영화걸작선]고교얄개: 3월의 영화 Ⅰ
1970년대 한국영화가 청년 문화와 만나면서 하길종 감독의 < 바보들의 행진 >( 하길종 , 1975)을 낳았다면, 그 반대편엔 당대의 하이틴 문화를 담은 < 고교얄개 >( 석래명 , 1976)가 있었다. 전자가 유신 시대와의 불협화음이었다면, 후자는 순응적인 화음에 가까웠다. 반공 영화, 새마을 영화 등 ‘국책 영화’가 창궐했던 1970년대, 이른바 ‘얄개 영화’는 십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명랑 드라마로 사랑 받으면서 한편으론 ‘어른’들의 가치관을 별 저항 없이 수용했다. 여기엔 ‘우수 영화 제도’라는 미끼도 있었다. 좋은 영화로 선정되면 제작사에게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쿼터 하나가 주어졌던 것. 이후 심사 대상에서 하이틴 무비가 제외되자 이 장르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1975년 < 여고 졸업반 >에서 시작해 1978년 옴니버스 영화 < 우리들의 고교시대 >까지, 고등학생들의 로맨스와 일상을 다루었던 그 영화들은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쏟아지다 갑자기 사라졌던 시한부 트렌드였던 셈이다. 그 중심은 임예진 - 이덕화 커플의 '진짜진짜' 시리즈와, 이승현 - 김정훈 콤비의 '얄개' 시리즈였는데, 전자가 순애보라면 후자는 코미디에 가까웠고, 특히 <고교얄개>는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간판 스타 같은 영화였다. 귀여운 반항아들의 요절복통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유신 시대라는 시대 배경을 감안할 때 <고교얄개>는 의외로 복잡한 텍스트다. 이 영화는 1970년대 국가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담아내면서, 한편으론 그 시절 억눌린 청소년들을 위한 작은 해방구 역할을 했다. 체제 선전과 대리 만족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묘한 프로파간다 영화였던 셈이며, 그 어떤 국책 영화보다 순수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첫 신은 예배 장면이다. 주인공 두수(이승현)는 미션 스쿨에 다니는데, 이때 강당을 가득 채운 까까머리 교복 차림 남학생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집단주의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두수는 돌발적 행동을 하는 개인이다. 낙제 때문에 유급을 한 두수는 입시나 교칙 같은 제도를 거부한다. 그저 학교 생활이 지루하기에 매일처럼 장난을 일삼고, 우연히 알게 된 여학생 인숙( 강주희 )과의 로맨스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두수는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 십대이다. 하지만 유신 시대의 세계관에서 두수는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없는 '잘못된' 청소년이다. 그러기에 '교화(敎化)의 서사'가 시작된다. <고교얄개>의 이야기를 추동시키는 원동력은 두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노력이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부모와 국어 교사인 백상도( 하명중 )와 그의 하숙집 딸인 인숙 그리고 같은 반 친구인 호철(김정훈)까지 이 과정에 동원된다. 특히 호철과의 관계는 핵심이다. 두수의 장난으로 안경이 깨진 호철은 다리를 다쳐 학교를 나오지 못한다. 어떤 죄책감을 느낀 두수는 호철의 집을 찾아간다. 이층 양옥에 사는 부잣집 아들 두수와 달리, 가난한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호철. 이때 호철이 두수에게 하는 말은, 영화의 테마를 지나칠 정도의 직설법으로 전한다. “두수야, 저길 좀 봐. 저 장관을 이룬 즐비한 고층 건물들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겠니. 모두가 피와 땀이 이뤄놓은 기적이야. 난 비탈진 언덕 길을 오르내리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어. 발길은 가볍고 마음은 늘 무럭무럭 자라지. 난 열심히 공부해야지, 어서 자라야지, 그리고 저 많은 빌딩 속에 뛰어들어 주인공이 되어야지. 난 늘 이렇게 결심한단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다만 불편할 따름이지. 얄개야, 우리에겐 밝고 희망찬 내일이 있어. 그 풍요한 내일의 세계를 이룩하려면, 학생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이 시기 청소년들을 길들이기 위한 산업화 이데올로기의 성공 신화와 성장주의적 가치 체계를 내화한 호철은, 성인이 되기 전에 '아버지의 법'을 체득한 소년이다. 여기서 <고교얄개>는 호철을 두수가 따라야 할 인간형으로 설정한다. 두수는 호철처럼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하고, 호철처럼 수업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며 '호철화'된다. 이 영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두수를 '유신 청소년'으로 교화하며, 그 대가로 '인숙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이성애적 로맨스의 성공을 선사한다. 두수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물론 <고교얄개>는 밝은 구석이 많은 영화다. 두수가 만들어내는 악의 없는 유머의 에피소드들은 관객을 미소 짓게 하며,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데이트”(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데이트) 같은 대사는 당시 유행어가 될 정도로 재치 있는 언어 유희였다. 남녀 학생들의 하이킹이나 운동회의 차전놀이는 해방감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을 즐기다가도, 학교 건물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표어(“오늘의 안보 없이 내일의 번영 없다”)나 “북괴의 야욕에 맞서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이나 '근대화 연쇄점'이라는 동네 구멍가게 간판을 맞닥트리게 되면, 군대식 사회였던 '1970년대'를 환기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교얄개>는 분열증적이면서도 순응을 요구하는, 당대의 시대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 고교얄개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