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앨리스
- 감독
- 리처드 글레이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줄리안 무어,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헌터 패리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2살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 단편 연출을 끝내고 나서 나는 명확하게 깨달았다. ‘아, 이건 내가 할일이 아니다.’ 신이 나에게 감독에게 필요한 자질들은 애초에 주지 않았을 뿐더러, 낯가림이 꽤 있었던 20대 시절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현장이 너무나 스트레스 였다. 이런 성향의 사람에게 편집 파트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영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서도 현장에서의 그 불꽃튀는 부대낌은 겪지 않아도 됐으니까. 근데 막상 졸업하자마자 편집실에 취직을 하고보니, 이곳도 후반작업의 시작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꽤 많이 만나는 파트였던지라, 초반에 적잖이 당황을 하며 적응을 해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편집실은 하루라는 시간 제한이 있던 현장과는 달리 마감 기한이 훨씬 널널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 나는 사실 편집을 오로지 감으로, 그리고 편집실에서 8년 동안 일하면서 수많은 작업들을 마치 게임 미션을 클리어하듯이 헤쳐 나가면서 오로지 경험으로 배운 케이스이다. 영화과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단지 나랑 결이 맞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는 시간과 그 순간의 공기를 사랑해서 영화를 시작한 케이스였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엔 영화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이게 뭔지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에게 편집 선생님이 누구였냐고 물어본다면, 편집실에서 같이 작업했던 수많은 감독님들이 내 선생님들이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게 쉼없이 달려오다 어느 해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의도치 않게 쉬는 기간이 생겼다. 그때 그동안 본능으로 배운 걸 눈으로 확인 해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때 다시 본 영화가 < 디 아워스(The Hours) >(스테판 달드리, 2002)였다. 편집의 관점에서 영화 전체를 분석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작업하면서 사건이나 스토리가 강한 영화가 아닌 정서나 무드로 밀어붙이는 영화의 편집과 연출이 궁금하던 찰나에 마침 리스트에 있길래 선택을 했었다. <디 아워스>는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사는 세 여자가 나와서 진행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이 이런 접점이 없는 인물들로 펼치는 스토리 라인에서의 편집이 궁금했다. 나는 주어진 숙제는 성실히 하는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 숙제를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 대단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눈앞에 닥친 작업들을 끝내는 것에만 몰두하면서 살기 급급해서 이런 식의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다. 사진: "The Hours", IMDb <디 아워스>에 등장 하는 세 명의 여자들은 소설 『댈러웨이 부인』(버지니아 울프, 1925)으로 묶여 있는 인물들이다. 1923년 영국 시골 도시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있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LA에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임신 6개월 째인 로라(줄리안 무어). 그리고 2002년 미국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출판사 편집장 클래리사(메릴 스트립). ‘댈러웨인 부인’을 쓰고, 읽고, 그렇게 불려지는 이 세 여자들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파티를 준비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단 하루를 통해, 결국 이 여자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고독과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받아들이는지, 영화 안에서 시간을 건너뛰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연출이나 편집을 활용해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교차되는 씬들을 행동으로 이어 받아주든지, 아니면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인물의 나레이션을 이용하거나 음악으로 세 인물을 하나의 분위기로 감싸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씬과 시퀀스를 이어가고 엮어간다. 그렇게 이 주인공들이 결국 같은 불안과 고독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을 쌓아가며 영화의 에너지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때 이런 부분들을 세세히 뜯어 보면서, 나는 편집할 때 설계해야 하는 이미지의 배치나 컷 구성, 그리고 컷팅으로 어떻게 영화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끌고 나가는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영화 속 세 여주인공이 하루 동안 겪는 감정적인 불안의 근원은 결국 자기 모습 그대로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허무함에서 오는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이런 주인공들의 ‘하루’라는 시간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일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 속의 어떠한 균열들이 건드려지게 되고, 그 균열을 감당하고 버티고 해소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투쟁 해야만 내 모습 그대로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건네고 있다. 사진: "The Hours", IMDb (좌 상단부터 시계 방향, 버지니아1 , 버지니아2 , 클래리사 , 로라 ) “삶과의 투쟁없이는 평화도 없어요.” -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영화를 만드는 일은 재밌으면서도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처음 편집을 시작하며 꿈을 키워 갈때는 나도 여느 유명한 편집감독님 들처럼, 이런 저런 다양한 장르를 다 잘 소화하는 편집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을때 좌절도 하고 나에 대한 자책도 많이 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를 편집하면서 느낀 가장 큰 부분은 영화에는 정답이 없고, 다 각자 자기만의 색깔과 방식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집기사는 그 무수히 많은 촬영 소스에서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통해 작품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개성과 매력을 찾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무난하게 5점짜리 씬만 있는 영화보다는 좀 불균질하더라도 3점과 7점이 공존하는 영화가 더 매력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밖에서 바라볼 때 평균 점수가 똑같더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너무나 큰 자본이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고, 수학의 정석처럼 딱 꼬집어 정의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의 규칙들이 이 산업 안에서는 존재한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편집기사라는 이 일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컸던 나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질보다는, 이 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던 ‘그래야만 한다’라는 것들의 기준에 맞춰서 변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잠깐의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가졌던 그때의 나는, 나라는 사람이 거쳐온 시간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해소할 것은 해소하고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나는 편집기사로서의 손연지, 인간 손연지의 장점과 매력은 무엇인지, 편안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영화와 환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쉼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무용한 시간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기가 나에겐 그랬다. “있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가지고 있는 기질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잘할 수 있는 작업과 공부가 필요한 작업에 대한 구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성향적인 부분에서 오는 장점과 한계들... 그때 이 영화를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기사로든 사람으로든. 나는 운명론을 좀 믿는 편인데, 내가 보는 영화나 작업하는 영화가 나에게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2017년의 나에겐 <디 아워스>가 찾아와 편집기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손목이 허락하는 한 할머니가 되어서도 편집을 하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 나이가 들더라도 내가 가진 감각과 감성을 지키면서도 고착화되지는 않는 그런 할머니 편집기사로 늙어가고 싶다. 내가 편집한 작품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말을 건네는 그런 마법같은 순간이 일어나길 기원하며, 오늘 하루도 언제나 그랬듯 마우스를 잡을 것이다. 사진: "The Hours", IMDb 손연지(편집기사) l 극영화, 드라마, 다큐, 뮤지컬 필름 등 스토리 텔링이 들어간 다양한 장르에서 편집을 한다. 눈을 끄는 화려한 편집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편집을 하고 싶다. 영화 < 비밀 >(2023), < 세자매 >(2020),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 이장 > 등 다수,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편집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미투 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전 세계는 물론이고 영화계도 큰 폭의 변화를 맞아왔다. 영화 산업 내부에서 여성들이 노골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드러났고, 그동안 얼마나 적은 수의 영화가 여성의 크레딧을 달고 생산됐는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영화계가 남성들만의 친목과 우정, 그리고 지배 카르텔 안에서 굴러왔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이후 변화는 극적이라 할만하다.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해가 갈수록 더 많이 만들어지고, 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나서는 영화들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영화도 줄어드는 분위기다.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경향은 여성 전기영화 붐이다. 방사능 연구에 혁혁한 공헌을 세워 두 차례 노벨상을 받은 마리 퀴리의 이야기 < 마리 퀴리 >(마르잔 사트라피, 2019), 멜버른컵이라는 경마대회에 우승한 최초의 여성을 다룬 < 라라걸 >(레이첼 그리피스, 2019), 여성의 정체성을 노래로 승화했던 호주 가수 헬렌 레디의 이야기 < 아이 엠 우먼 >(문은주, 2019),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스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삶을 네 배우(주로 줄리안 무어와 알리시아 비칸데르)를 통해 들려주는 <더 글로리아스 The Glorias>(줄리 테이머, 2019), 1960년에서 70년대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했다가 FBI의 무차별 공격에 시달린 영화배우 진 시버그의 이야기 <시버그 Seberg>(베네딕트 앤드류, 2019), 어린 날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주디 갈랜드에 관한 < 주디 >(루퍼트 굴드, 2019) 등이 실존했던 굵직한 여성들의 삶을 되돌아본 전기영화다. 폭스뉴스 사장 로저 에일스의 성추문을 그린 <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제이 로치, 2019)은 전기영화는 아니지만 실존하는 두 여성과 폭스뉴스에서 일했던 여성들을 일체화한 가공의 여성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으며, 1970년 미스 월드 대회 반대 투쟁을 벌였던 여성들의 < 미스비헤비이어 >(필리파 로소프, 2020)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전기영화적 성격을 갖고 있다. 또한 화제의 미국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 Mrs. America>(크리에이터 다비 월러, 연출 안나 보덴, 라이언 플렉, 엠마 아산테, 로르 드 클레르몽-토네르, 자니크자 브라보, 2020)는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걸출한 인물들의 삶을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옴니버스 전기영화'로 볼 수 있다. 이들 전기영화/ 드라마가 중요한 이유는, 당연한 얘기지만 실존했던 인물들을 통해 여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영화는 온갖 제약을 뚫고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주인공을 다루거나(<마리 퀴리> <라라걸>)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 헌신하는 인물을 담아낸다(<아이 엠 우먼> <더 글로리아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미스비헤이비어> <미세스 아메리카>). 상당수가 여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또한 의미 깊다. <라라걸> 같은 경우 여성 스태프들의 힘만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라고 한다. 결국 이들 여성 전기영화는 그 내용 뿐 아니라 생산 방식에서도 미투 운동 이후 세계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2020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수산나 니키아렐리 감독의 < 미스 마르크스 >도 여성 전기영화다. 이 전기의 주인공은 무려 카를 마르크스의 막내딸 엘리노어 마르크스(1855~1898)다. 그 옛날 마르크스주의를 익혔던 사람들조차 채 알지 못했겠지만, 엘리노어는 카를 마르크스의 공식 후계자로 여겨지면서 19세기 중후반 온갖 분야에서 열렬한 활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1855년 런던에서 카를과 예니 폰 베스트팔렌 부부의 일곱째 아이(이중 넷은 사망했다)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도우며 ‘사회주의 신동’의 면모를 드러냈다. ‘투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녀는 14살 때부터 <자본론> 저술을 도왔고 16살 때부터는 아버지의 비서 역할을 하며 여러 투쟁의 현장을 쫓아다녔다. 성인이 된 뒤로 그녀는 당연하게도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나선 최초의 여성 중 하나가 되었으며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 반열에도 올랐다. 또한 맹아 단계에 있던 여성운동에서도 가장 앞줄에 선 인물이었다. <미스 마르크스>는 엘리노어 생애의 후반기인 1883년부터 1898년까지의 삶을 다룬다. 이야기는 카를의 장례식식장에서 시작된다. 이 첫 시퀀스에는 이후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모든 인물이 등장한다. 돌아가신 카를부터 그의 영원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미 사망한 큰 언니 예니첸의 남편 샤를 롱게와 아들 조니, 또 다른 언니 라우라의 남편 폴 라파르그, 가정부 헬레네 데무트, 그리고 엘리노어의 사랑이자 원수가 되는 에드워드 에이블링까지. 이들 인물을 담은 영화는 세 개의 축으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첫 번째는 운동가 엘리노어의 모습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급속히 퍼져감과 동시에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사회주의 사상이 막 퍼지기 시작하던 19세기 중후반, 카를 마르크스의 공식적 계승자는 절친 엥겔스였지만, 아버지로부터 유산 관리권을 물려받으며 사실상 '후계자'로 지명됐던 엘리노어 또한 이 '운동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영화는 엘리노어가 여러 투쟁에 참여하는 모습과 함께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는 모습을 직접 화법으로 보여준다. 엘리노어가 <자본론>의 자본 축적 법칙에 관한 구절을 관객을 똑바로 쳐다보며 읊는다든지 당대로선 매우 급진적이었던 여성 평등에 관한 연설 장면을 꽤 길게 편집하는데, 이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바가 19세기를 넘어 현재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인 듯 보인다. 두 번째는 가족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카를 집에서 오랫동안 가정부로 일했던 데무트에게는 프레데릭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데무트는 죽을 때까지 아들의 아버지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엘리노어는 여자 관계에선 방탕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엥겔스가 프레데릭의 친부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죽기 직전 엥겔스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면서 엘리노어는 혼란에 빠진다. 또한 언니 예니첸이 사망한 뒤 자신이 돌보고 있던 조카 조니가 아버지 롱게에게로 가면서 그녀의 외로움은 더욱 커진다. 세 번째 축은, 어쩌면 그녀의 삶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던 실질적 남편 에드워드 에이블링과의 이야기다. 엘리노어에게 에이블링과의 사랑은 유부남과의 사랑이라는 당대의 틀을 깨는 파격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는다. 마르크스 가문이나 엘리노어 마르크스에 관한 대다수의 전기가 얘기하는 것처럼, 에이블링은 엘리노어에게 아킬레스의 건과 같은 존재였다. 공식적으로 에이블링은 엘리노어와 함께 사회주의 사상을 곳곳에 설파한 운동가로 기록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엄청난 낭비벽과 쉴 줄 모르는 성편력으로 엘리노어의 삶을 자글자글 갉아먹었다. 이 영화에는 간략하게 언급되지만 에이블링은 미국 유세여행에서 고급 와인과 꽃을 마음껏 질러대며 비용을 낭비해 이들을 초청한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곤경에 빠뜨렸고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엘리노어가 물려받은 유산 또한 펑펑 낭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노어는 인생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에이블링을 신뢰하려 애썼고 그것이 그녀 삶 최대의 불운이었다. 영화는 가뜩이나 힘겨운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의 나날을 살아가던 엘리노어가 아버지의 과거사에 배신당하고 에이블링에게 연달아 결정타를 맞으면서도 분투하지만 끝내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사실, <미스 마르크스>에서 아쉬운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워낙 파란만장하고 굴곡이 뚜렷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을 그려서인지 영화는 순간순간 에피소드를 단순 나열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운동가로서의 엘리노어 보다는 한 남성과 가족 관계에 휘둘리는 면모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듯하며, 워낙 많은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다 보니 그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풍부한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감독은 나름의 '필살기'를 보여준다. 한때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앤디 워홀 같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던 전설적 가수 니코가 1980년대를 맞아 독자적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그린 여성 전기영화 < 니코, 1988 >(2017)로 데뷔한 수산나 니키아렐리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전기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펼친다. 전기영화의 한계라 하면 실재했던 인물의 삶이라는 굴레에서 궁극적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일 텐데, 니키아렐리는 여러 장치를 통해 엘리노어 마르크스에게 새로운 '영화적 삶'을 부여하려 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후반부 엘리노어가 펑크록 사운드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갑갑함과 버젓이 자신을 두고도 다른 여성과 결혼한 에이블링을 보는 괴로움에 둘러싸여있던 엘리노어는 이 장면에서 그동안의 고통을 벗어버리려는 듯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도록 몸을 마구 내던진다. 어쩌면 진혼 의식이나 살풀이와도 같은 이 장면을 통해 니키아렐리 감독은 엘리노어 마르크스에게 순간의 해방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 한 장면은 앞서 언급한 여성 전기영화보다 이 영화가 한 발 앞선 지점이며, 어쩌면 이 지점이 앞으로 영화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P.S. 영화 속 ‘살풀이 의식’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미국 밴드 다운타운 보이즈 Downtown Boys의 음악이다. 영화의 문을 여는 장면에서 사용된 'Waves of History'부터 엥겔스가 사망하는 장면 직후에 흘러나오는 '인터내셔널가 L'Internationale'까지 여러 장면에서 곁들여지는, 좌빨 성향 농후한 이 미국 밴드의 거침없는 사운드는 어릴 적부터 "Go Ahead"라는 인생의 모토를 갖고 살아온 엘리노어 마르크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잘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