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스 홀
- 감독
- 켄 로치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배리 워드, 시모네 커비, 앤드류 스캇, 브라이언 F. 오바이런, 짐 노튼, 아이슬링 프란쵸시, 칼 기어리, 데니스 고프
조용한 기사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매우 점잖고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매력적이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런 의구심이 들더군요. 그가 과연 이 스태프들을 지휘할 수 있을까?“ 배우 가브리엘 번이 켄 로치를 처음 만난 건 1987년에 상연될 예정이었던 연극 <퍼디션>의 리허설 현장이었다. 주로 올리버 스톤처럼 패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들과 함께했던 그에게 켄 로치는 감독의 역량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인상이 ‘경이로움’으로 바뀌게 된 건 연극 <퍼디션>이 논란에 휩싸이면서부터였다. 켄 로치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사회주의 극작가 짐 알렌의 대본을 바탕으로 연출된 이 작품은 유대인 시오니스트 지도부가 나치의 아이히만과 협력 관계였음을 폭로하고 논쟁하는 재판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도 전부터 언론과 예술계 일각에서는 켄 로치와 짐 알렌을 반유대주의자로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작품의 정치성을 문제 삼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제작자와 극장 측은 첫 공연을 불과 30여 시간 앞둔 상황에서 제작 철회를 선언해 버린다. 가브리엘 번이 켄 로치를 다시금 인식하게 된 것은 엄청난 비난과 여론 압박, 제작자와의 격론에 대응하는 그를 지켜보는 과정에서였다. 연극을 둘러싸고 많은 이들이 비겁한 겁쟁이가 되거나 배신자가 되었다. 결국 연극이 제작자들에 의해 철회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켄 로치는 침착하고 조용하되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기사와도 같았다. Versus “위대한 투사 vs 혐오스러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 “리얼리즘의 대가 vs 미친 맑시스트” “천재 vs 비열한 자” 영국 사회에서 켄 로치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60년대 BBC에 입사해 방송용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던 시기에서부터 그는 혁신가였다. 부르주아 드라마와 관습적인 세트 촬영이 관행이었던 당시 그는 BBC 내에서 유일하게 영화적인 기법(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정신과 방법 그리고 브레히트적인 스타일의 거리 두기와 관찰)을 방송 드라마에 적용한 감독이었다. 무엇보다도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고 묘사하거나 재현하지 않았던 노동계급의 삶과 사랑, 노동과 현실을 카메라에 포착하기 시작했다. 노동계급 여성의 출산과 육아, 홈리스 문제를 다큐멘터리 적인 방식으로 극화한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1966)은 방영과 함께 논란을 일으켰다. 영국 노동계급이 직면한 사회적인 이슈를 BBC에서 직접 화법으로 다뤘다는 사실 그 자체와 그로 인한 놀라운 시청률 및 여론은 결국 한 편의 드라마가 영국 사회의 제도와 정책에 개입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켄 로치의 초창기 작품들을 도맡아 제작한 제작자 토니 가넷이 그를 만난 것도 이 시기 즈음이었다. 토니 가넷도 처음엔 켄 로치의 작품에 출현하는 배우였다. 가브리엘 번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토니 가넷에게도 켄 로치의 첫인상은 지루했다. “마치 은행원 같았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몹시 수줍고 조용하며 겸손한 이 사람은 매번 논쟁과 파란을 일으켰고, 영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노동계급 출신이었던 켄 로치의 아버지는 명민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이 옥스퍼드 법학과를 졸업했으니 엘리트 법조인이 되길 바랐으나 그는 이미 청소년기부터 연극과 연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고, 졸업 후에는 방송국 연출자로 시작해 BBC의 부르주아적 관행과 제도 그리고 영국 사회의 검열 및 보수주의와 맞서 싸워야 했다. 1979년 신자유주의의 화신, 대처가 장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그는 더욱 궁지로 몰렸다. 토니 가넷 및 짐 알렌과 함께 했던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이 검열 및 정치적 편향성 논쟁에 휘말리면서 방영 금지에 처하곤 하였다. 특히 <리더십의 문제 A Question of Leadership>(1981)에서 노동자 계급을 배신한 노조 간부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좌파 진영 내에서도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대처가 검열을 강화하면서 BBC는 더욱 보수화되었고 그는 대처가 물러난 90년까지 제작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더구나 87년에 준비했던 연극 <퍼디션>이 제작 중단되면서 그는 암묵적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아무도 그와 작업하려 하지 않았다. 이 시기 그는 가족을 위해 맥도날드 햄버거를 비롯한 몇 편의 상업 광고를 찍게 된다. 켄 로치는 이 시기를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소회를 밝힌다. 그가 극영화로 복귀한 것은 대처가 물러난 90년이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오랜 지배 종속의 문제, 정치적 계략의 문제를 인권 변호사 주인공을 통해 풀어낸 < 숨겨진 계략 Hidden Agenda >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게 되지만 정작 영국 내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금 아일랜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으로 200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그리고 은퇴작인 < 지미스 홀 >이 또다시 아일랜드 문제를 지배자의 관점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저항과 사회주의자의 관점으로 풀어냈을 때 영국 언론은 그를 자기 조국을 증오하는 미친 맑시스트로 폄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영국 복지제도의 허점을 다룬 <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가 칸 영화제에서 또다시 황금종려상을 받자 영국 보수당은 의회에서 그를 영국 사회에 먹칠하는 반역자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영화와 정치 그리고 켄 로치 “누군가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의 핵심은 정치학입니다. 사람들의 삶의 드라마와 갈등의 핵심에는 언제나 정치가 존재합니다.”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 켄 로치의 삶과 영화 >(2016)는 그의 개인사와 영화 역사를 교차편집하는 방식으로 인간 켄 로치를 조명한다. 영화계 일각에서 그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추앙받지만 영국 사회 내에서, 심지어 좌파 진영 내에서조차 그는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조국의 문제(영국인으로서 아일랜드 문제를 다루는 방식), 계급의 문제, 신자유주의와 복지제도의 문제.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란과 논쟁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50년이 넘는 영화 인생을 버텨왔다. 영국 미디어 연구자 존 힐은 그의 모든 작품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켄 로치의 작품활동과 영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은 않는다. 이 영화는 그의 지난한 영화적 삶 속에 공존하는 인간 켄 로치의 모습을 포착한다. 노동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그 명민함으로 인해 상류층의 주된 교육기관인 옥스퍼드 법대에 진학하기까지, 젠틀하고 조용하지만 그가 어떻게 굴복하지 않고 후퇴하지 않는 고결한 사회주의 액티비스트 감독으로 존재해 왔는지, 무엇보다도 자식을 잃어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슬픈 아버지였는지, 이 영화는 그의 오랜 동료와 가족들의 입을 빌려 들려준다. 이 작품은 켄 로치가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 >를 연출하던 그 무렵에 촬영되기 시작하였다. 2014년작 < 지미스 홀 >로 은퇴선언을 한지 2년 만이었다. 영화 현장에 들어설 때마다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그가, 다시금 은퇴를 번복하고 추운 현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제작자 토니 가넷은 그가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영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긴축 재정과 복지제도 축소가 영국 노동계급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넣는 상황 속에서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 잘못된 제도와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 그것이 그를 현장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와 최근 20년 동안 함께 작업해온 시나리오 작가 폴 라버티는 그를 이렇게 비유한다. “지난 50년의 영화 인생에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는 정치의 문제였다. 피상적인 문제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이슈로서 그러하다. 그의 작고 마른 몸 안에서 불타오르는 열정과 에너지가 그것을 이끌었다. 그는 그 열정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그에게 던져진 마지막 질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투쟁하는 삶의 한 가운데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마치 무수하게 커다란 목소리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것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질문한다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작가주의’ 타이틀을 거부하며, 영화는 집단 노동의 결실이라 말하는 그는 자신의 영화가 어떠한 성취를 해 왔는가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응답한다. 그러나 토니 가넷과 폴 라버티,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기나긴 그의 필모그라피가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타협하거나 멈춰서지 않으며,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영화들 속 주인공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특히 그의 은퇴작으로 소개됐던 < 지미스 홀 >의 주인공 지미 그랄튼이 그러했던 것처럼, 가난한 노동자들을 연민하고 연대할 줄 아는 예술가이자 액티비스트인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