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
- 감독
-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 제작년도
- 1953
- 출연
- 하세가와 카즈오, 교 마찌꼬, 야마가타 이사오, 쿠로카와 야타로, 반도 코타로, 타자키 준, 센다 코레야, 시미즈 마사오
표현주의적인 세트에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강렬하다. 주인공 이시목( 이예춘 )은 전시회를 찾았으나 작품은 하나도 없고 휑하다. 그런 가운데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데, 그곳에 유일하게 걸려 있는 사별한 아내 애자( 도금 봉 )의 초상화에서 소리가 난 것이다.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그림의 얼굴은 마치 얼음 녹듯 녹아내린다(여기서 첫 번째 충격!). 이윽고 한 남자가 그를 차에 태워 어딘가로 데려간다. 바깥에는 마치 좀비처럼 몰려다니는 귀신들이 쫙 깔려 있어 달아날 수도 없다(여기서 두 번째 충격!). 그렇게 도착하자, 또 다른 낯선 남자가 등장해서는 “잘 오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니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러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여자가 나타나고 두 번째 낯선 남자의 등에 칼을 꽂고 유유히 떠나간다. 시목은 그걸 침대 아래에 숨어 뛰어오르는 여자의 발만 본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모든 동작이 이상하다. 그리고 고양이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비친다(여기서 세 번째 충격!). 맞다, 그녀는 고양이다. 고양이 귀신이다. 한국 장르 영화 팬들에게 이용민 감독의 < 살인 마 >(1965)는 단연 ‘발견’의 영화다. 이미 발견된 지가 오래되어 이런 표현을 덧붙이는 게 다소 민망하긴 하지만, 어쨌건 < 살인마 >는 많은 평자들이 ‘동양과 서양의 괴담이 뒤섞인 한국 공포영화의 초기 대표작’으로 수없이 얘기해왔다. 앞서 얘기한 도입부는 10분 동안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공간 또한 쉴 새 없이 바뀌며 군더더기 없이 꽉 짜여 진행된다. 낯선 남자의 차에 엉겁결에 올라탄 주인공의 두려움에 이입되어 그야말로 정신없이 휩쓸려간다. 그 속도감과 박력이 어마어마하다. 이후 시목은 화가로부터 애자의 초상화를 받게 되는데, 그 초상화를 집에 가져온 이후부터 집에 괴이한 일이 연달아 발생한다. 오래전 죽은 애자가 나타나 아이들을 잡아가고, 어머니 허 씨( 정애란 )에게는 고양이의 혼이 씌어 이상한 행동을 한다. 심지어 재혼한 아내 혜숙( 이빈화 )은 애자의 혼령에게 처절하게 죽임을 당한다. 초상화가 이 모든 사건의 화근이라고 생각하고 없애버리려고 할 때쯤, 화가의 일기를 통해 아내와 애자와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의 전모를 알게 된다. 한국영화감독협회가 기획하고 영화평론가 김종원 이 대표 필자로 참여하여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영화감독사전』에서 이용민 감독은 “일본대학 예술과 영화부를 졸업한, 촬영감독 출신의 영화감독으로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공포영화 감독”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 스타일에 대해서는 “토속적 소재를 바탕으로 해서 정통적 공포영화를 연출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제주도의 풍물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 제주도 풍토기 >(1946)로 영화 작업을 시작했고 최은희 , 김승호 , 김진규 , 구봉서 , 김희갑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코미디영화 < 맹진사댁 경사 >(1962)로 큰 흥행을 거두기도 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공포영화였다. 액션 영화 하면 정창화 감독을 떠올리듯 공포영화 하면 이용민 감독이었다. 사람의 피를 마시는 악의 꽃을 이용해 한을 푼다는 < 악의 꽃 >(1961)을 비롯해 시네마스코프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 지옥문 >(1962), 무려 결혼 첫날 밤 아내의 기이한 행동에 남편이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 < 무덤에서 나온 신랑 >(1963), 이예춘 과 도금봉 이 다시 만난 < 목 없는 미녀 >(1966) 등 제목만으로도 그 필모그래피는 으스스하다. 일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촬영의 대가 이용민 감독은 바로 이 공포영화 장르에서 다양한 카메라 워크와 특수촬영 등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영화 내적으로도 < 살인마 >는 소복을 입은 전통적 ‘여귀’가 등장하는 가운데 ‘흡혈’과 같은 외래적인 요소를 녹여낸 하이브리드한 솜씨가 눈에 띈다. 제작된 시대를 감안하면, 억지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진다.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무서워하듯 염주를 무서워하여 불교에 의해 퇴치된다는 설정도 독특하다. 또한 시어머니에게 고양이가 ‘빙의’하여 손자들의 얼굴을 혀로 핥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게다가 거기에는 고부 갈등과 처첩 갈등이 한데 엮여 있고,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를 떠올리게 하는 부르주아 가정 내부의 뒤틀린 욕망까지 숨어 있다. 『근대성의 유령들-판타스틱 한국영화』를 쓴 김소영 교수에 따르면, 1960년대 공포영화의 주 관객층이 ‘시어머니의 인가를 받아 외출을 시도한 동네 아주머니 부대’였다는 사실에 입각해, < 살인마 >의 경우 압도적으로 여성 관객이 많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월하의 여곡성-여귀로 읽는 한국 공포영화사』에서 백문임 교수는 “희생자인 며느리가 생전에는 조신하고 얌전했다가, 원귀가 된 이후에는 가공할만한 욕망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괴물이 된다”며 “< 살인마 >는 평화로운 가정의 안주인인 ‘(본)처’라는 존재를 더 이상 순응적인 존재로 그리지 않음으로써 가족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와해시킨다”고 쓰고 있다. 더불어 “가장 충격적인 설정은 바로 40대의 시어머니가 자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감히’ 발현할 뿐만 아니라, 외간 남자와의 애정 행각을 은폐하기 위해 며느리를 살해한다는 점”이라고도 덧붙인다. 어쩌면 장르를 초월해 당대 가장 도발적인 영화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복해서 볼 때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처럼 < 살인마 >는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한국 장르영화사(史)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캐릭터 디자인 시안 17-05번입니다.” “음.. 확실히 제일 처음 게 좋네, 01-02번 디자인으로 가시죠” “네... (침묵) 일단 파일명에는 파이널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아! 당연!”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TV용 애니메이션 만들기 두 번째. 프리프로덕션 과정이다. 운 좋게 기획단계에서 투자가 시작되거나, 지원사업에 선정되거나, 아니면 대출에 성공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작품의 디자인 수정과 시나리오 개발과정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예산이 투입되며, 전문인력들의 가시적인 작업 성과가 등장하기 시작된다. 디자인은 작품의 내용과 캐릭터성, 그리고 메인 타깃 분석에 의해 수정되고, 기존의 기획 개발 단계에서의 컨셉아트가 배경 디자인으로 수정되기 시작하며, 작품의 기획 과정에서 갈팡질팡하던 이야기 구조들이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등으로 확정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보통 이때 참여하는 인력은 아트디렉터, 프로듀서, 캐릭터 디자이너, 배경 디자이너, 시나리오 작가 등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예는 돈이 많은 또는 이전 작품에서 수익이 많았던 애니메이션 회사에만 한정된다. 보통 여기서 언급할 ‘우리 같은’ 우리들은 사정이 다르다. 일단 제작비 전체에 대한 투자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으로 대표되는 작은 스튜디오의 감독 또는 프로듀서들은 프리과정에서도 여전히 투자사 미팅과 방송국 미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그 도중에 디자인과 설정에 대한 의견도 등장하기 때문에 매번 디자인 수정과 이야기 구조도 변경된다. 이때부터 다시 지옥문이 열린다. 디자이너들은 수많은 시안들을 내놓는데, 보통 4~5번 정도 수정을 미친 듯이 진행한다. 어떤 경우는 싸그리 새롭게 엎어 버리기도 한다. 사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는 아트디렉터나 디자이너의 꿈은 오토모 가츠히로나 브레드 버드, 아니면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성인 취향의 근사한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우리도 < 아키라 >의 배경 설정과 < 인크레더블 >의 유니크함, < 카우보이 비밥 >의 하드 보일드한 캐릭터 디자인 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적은 예산과 빡빡한 일정의, 어린이 또는 유아를 메인 타깃으로 잡고 있는 TV 시리즈용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야 하는 운명, 이를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취향과 일은 정말로 공유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프리단계의 또 다른 꽃. 시나리오다. 당연히 시나리오는 작가가 작업을 하는데, 보통 작은 스튜디오에서는 풀타임을 근무하는 작가를 두기가 어려워 단기간 또는 프로젝트 단위로 작가를 고용한다. 물론 사장님이 직접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어린이/유아용 애니메이션의 작가들은 전업 애니메이션 작가를 포함해, 동화작가, 방송작가,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 쇼프로그램 작가 등이 있다. 물론 급할 때는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 아트디렉터, 프로듀서, 심지어 인턴들이 쓰는 경우도 있다. 보통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경우 나이가 35세에서 45세 정도의 나이 또래로 세상의 고된 풍파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세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프리랜서라는 미묘한 고용불안 상황까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에 익숙한 그리고 그러한 글에 더욱 자신감을 가진 천성의 글쟁이들이다. 지금 이 세대들이 < 은하철도 999 >를 보았고, < 바다소년 트리톤 >을 보았고, < 에반게리온 >을 철학적으로 분석을 들이밀며 봐온 세대들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러한 준 오타쿠들과 함께 “5세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정말 이런 게 프로정신 아닌가!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회의에서 가끔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시나리오상으로는 착하고 착해빠진 캐릭터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마지막 화에서 우리의 5세 주인공 ○○이 지구인의 반 이상을 대량 살상하고, 우주도 괴멸시키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국내 유아용/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7분 포맷, 15분 포맷, 25분 포맷 등이 주로 포진되어 있으며, 7분의 경우 시즌당 39편, 15분, 25분 분량은 시즌당 26부작 정도로 구성되어있다. 보통 작가들은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6명 정도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이들을 잘 관리하면 TV 시리즈 전체를 일정한 톤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각 에피소드들의 이야기들이 널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가끔 널뛰기 한 에피소드들이 괴작이자 명작들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는 프리과정에서 다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회사의 사정에 따라 20~40% 정도의 시나리오를 제작해 두고 본편 제작을 먼저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일정을 관리하는 제작 담당들과 시나리오 작가와 마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경 세팅과 콘티제작, 애니메틱이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TV 시리즈 제작에서는 시나리오 원고 마감이 곧 일정의 관리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감독, 프로듀서, 대표 작가 1인과 함께 하는 시나리오 회의의 한순간. 커피 4잔과 하품이 이 회의의 진지함을 알려주고 있다. 결국 이 회의는 작가들에게 충격을 줬던 꿈의 시나리오 작품 <비밀결사 매발톱단>(원제:秘密結社 鷹の爪)에 대한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프리프로덕션 단계는 말하자면 작품제작의 근간을 이루는 과정으로 많은 노력과 의지, 열정이 필요하다. 탄탄한 과정이 이후 프로덕션 과정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애니메이션 회사는 이 과정을 통해 스튜디오의 제작 시스템을 정비, 개발하기도 한다. 예의 경우에서는 디자인과 시나리오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만 언급하였지만, 여전히 사장님과 대표님들은 작품 제작에 필요한 제작비를 만드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프로듀서들과 매니저 들은 일정을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다. 콘티팀은 시나리오가 더 이상 황당하지만 않으면 하는 눈치며, 애니메틱을 만들어야 하는 담당자와 감독은 분량 체크와 연출 노트 작성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한 6개월에서 9개월 정도가 흘러간다. 그 사이에 투자사와 이야기도 잘 되었고, 공동 제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파일럿 제작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프리단계가 끝나간다면 이제 제대로 된 팀을 꾸려서 작품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③프로덕션 단계인 것이다. 더 많은 일감들과 마감일정, 그리고 체력전이 시작된다. + 위 사진 설명: 프리프로덕션이 시작되면서 디자이너는 수많은 디자인 시안을 개발하며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우곤’ 한다. 본 이미지는 실제 진행 중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디자인 시안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정작 하나도 선택받지 못했다. 레트로한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디자인을 외쳤던 디자이너는 드디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디자인을 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기획실은 처음 컨셉을 모두 뒤집기로 한다. 그사이 캐릭터 디자이너는 한 10년은 늙었다. ⓒCentral Animation Studio
올해 초 이성부 시인이 세상을 떴다. (완독하지 못한) 고인의 시집 <우리들의 양식>을 꺼내 들었다. ‘광주’라는 시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그보다 다음 장에 실린 ‘10년’이라는 시에 더 마음이 갔다. ‘10년’을 거칠게 풀어 쓰면 대략 이렇다. “피로 맹세하고 피의 말로 사랑하는 길을 가르쳤”던 새벽손님이 있어, “우리는 눈 부릅떠 손에 손을 맞잡고 거리를 밀어뜨렸”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아버지가 되었으며”, “몇 번이고 굴러떨어지는 언덕의 삶”에 굴종하고 있던 어느 날, “잊어버린 새벽손님은 또 나를 찾아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새벽손님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나는 “타락한 자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10년’은 이성부 시인이 197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런데 왜 ‘10년’을 읽자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 > (1999)이 떠오르는 것일까. < 박하사탕 >이 거슬러 오르는 1980년 5월의 광주와 아무런 공통분모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시의 마지막 대목이 일깨우는 어떤 인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또 그 손님을 잊어버렸다./그리고 그 새벽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고 전해졌다./겁보, 어둠, 안간힘, 짜증나는 말,/이런 것들로 뭉쳐진 나는 그 죽음을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겁하게도/멀리서만 그 죽음의 불씨를 보고 있었다.// 시의 화자는 왜 새벽님의 죽음을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그는 악몽처럼 찾아들던 새벽손님과의 10년을 곱씹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0년’의 새벽손님은 <박하사탕>의 기차와 유사하다. <박하사탕>의 기차는 쉬지 않고 악몽을 실어 나른다. 악몽은 죽음보다 무섭다. 영호( 설경구 )는 높다란 철로 위에 올라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라고 으르렁거린다. 영호는 지금 신과 마지막 거래를 하는 중이다. 악몽 이전의 그날로 나를 되돌려달라,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니. 그의 절규는 영혼과 육신을 송두리째 반납할 테니, 단 한순간이라도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죽음이 영호를 덮치는 순간 시간은 멈춰 서고, 악몽의 기차는 갑자기 거꾸로 달린다. 핏발 선 영호의 눈에 야만의 시대, 환멸의 간이역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 박하사탕 >은 1999년의 봄부터 1979년 가을까지 김영호의 20년을 역으로 추적한다. 악몽의 기차는 야유회-사진기-삶은 아름답다-고백-기도-면회-소풍이라는 이름의 정거장을 지나는데, 시간의 결절점들이 불러낸 사건들은 역사(驛舍) 명이 환기하는 이미지를 배반한다. 옛 동료와의 ‘야유회’는 난장판이 되며, 첫사랑의 징표인 ‘사진기’는 팔아도 몇 푼 안 되는 고물에 불과하다. ‘삶은 아름답다’는 영호의 찬탄은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비아냥의 어조로 울려 퍼지고, 영호는 다른 여자를 품고서야 첫사랑을 입 밖으로 ‘고백’한다. 똥과 피로 더럽혀진 영호의 두 손은 ‘기도’로 씻기지 않으며, 영호를 찾아온 첫 번째 ‘면회’ 객은 싸늘한 주검이 된 여고생이다. 이창동 감독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박하사탕의 색깔과 맛 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시간의 역순 구조를 택했다고 말한 적 있다. 순수의 종착역에 가닿기 위한 여정의 고통은 지나온 것보다 곱절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영호가 망각의 천으로 덮어두었던 상처의 환부에는 그토록 회피하고 싶었던 과오와 책임이 종양처럼 자라나 있고, 그래서 그는 매번 기적 소리에 절뚝거린다. 영호의 발작은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지옥문을 통과한 뒤 출발점이었던 ‘소풍’이라는 간이역에 섰을 때 가까스로 멈춰 선다. 이때의 영호는 순진한 더벅머리 청년이고, 첫사랑 순임( 문소리 )은 거짓말처럼 영호에게 말을 건다. 그렇다면 이제 영호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고, 그의 아픔은 말끔히 사라졌는가. < 박하사탕 >을 우리 시대의 <죄와 벌>이라고, 일단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순서대로 장면을 되돌려보자. 영호는 죄를 지었고, 그는 벌을 받았다. 혼자 죽기 억울해서 내 인생 망가뜨린 딱 한 놈만 쏴죽이고 싶었다지만, 어느 놈을 쏴 죽여야 할지 몰랐다고 오열할 때 영호는 이미 알고 있다. 생을 놓아야 할 이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서 이창동 감독은 굳이 시간의 역순으로 이를 재현한 것일까. 가해자인 영호 역시 역사의 피해자였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식의 동정과 연민을 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 박하사탕 >의 마지막 장면. 영호는 천변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잠시 후 그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스무 살의 영호는 이때 누구를 바라보고 눈물짓는가. 마지막 장면을 첫 장면에 이어 붙여보자. 초췌하고 남루한 차림으로 철로에 올라간 영호는 여전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있는가. 혹시 그의 극단적 선택은 윤리적 결단이 아닐까. 젊은 영호는 존재하지 않으며, 순수는 회복되지 않음을, 영호는 그 순간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비단 영호의 자각만은 아니다. 젊은 영호의 눈동자에는 강물을 내려다보는 <시>의 미자(윤정희)도 어른거린다. 미자가 투신하기 전, 황급히 맞았던 이의 이름은 아마도 ‘새벽손님’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