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7인
- 감독
- 이성구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허장강, 윤정희, 김혜정, 이예춘, 이순재, 윤소라, 김석훈, 윤양하, 박근형, 김웅, 손전, 추봉, 윤신옥, 김정옥, 김지영, 이영호, 독우영, 심상현, 유하나, 박예숙, 임소영, 김주오, 태일, 홍동은, 최무웅, 박병기, 원인기, 주일몽, 공시훈, 정동암, 장현호, 이경수, 정영택, 고덕철, 황건일, 민병훈, 신현수, 안상준
엄태웅 , 주원 주연, 황병국 감독의 < 특수본 >(2011)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특별수사본부’의 약자인데 시간을 더 거슬러 1970년대로 가면 설태호 , 이원세 감독이 바통 터치하며 만든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있었다. ‘한국의 CSI 였다!’라고 말하면 너무 거짓말이고, 한국영화사의 대표적인 반공수사물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한국영화사에 에로, 액션 시리즈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나름 진지한 범죄추리(물론 추리는 좀 약하다) 시리즈도 있었던 것. 1편인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1973)을 시작으로 2편 < 특별수사본부: 여대생 이난희 사건 >(1973), 3편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1973), ‘꽃할배’ 이순재 가 출연한 4편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1974), 끝으로 역시 꽃할배 박근형이 출연한 <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1975)에 이르기까지 모두 5편이 만들어졌다(1-2편은 설태호 감독, 3-5편은 이원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2, 4, 5편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VOD 관람이 가능하다). 특별수사본부 시리즈 이 시리즈는 민영방송 ‘라디오 동아방송’(1980년 신군부에 의해 KBS에 통합될 때까지 17년 7개월 동안 이어왔다)에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방송된 라디오 심야프로그램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그 모태다. 이 대공수사실록드라마에서 오제도 검사는 여간첩 김소산 사건, 해군 프락치 허만도 사건, 기생간첩 구자운, 점쟁이간첩 윤길도, 거물간첩 성시백 등을 도맡은 고뇌하는 반공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수임은 광복 후 미군정기에 남조선노동당을 위해 일한 간첩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몇 년 전에는 조명화 감독에 의해 한미합작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1948년, 주한 정보대장인 페이드 대령의 첩, 김수임( 윤소라 )이 특별수사본부에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매 시퀀스마다 회한을 머금은 표정으로 “그 이듬해 봄이었어요...”라는 식의 김수임 멘트로 시작하는 그 구조가, 마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조안 크로포드의 회상으로 불쑥 시작하는 마이클 커티즈의 < 밀드레드 피어스 >(1945)를 연상시킨다. 아무튼 김수임은 남로당에 가입해 자신이 얻은 숱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해오다가 오제도 검사( 이순재 )에게 체포된 것. ‘묻고 따지는’ 이순재에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김수임의 과거는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이화보통여자학교에 입학한 김수임은 이복 오빠인 최만용(북괴공작원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 문오장 ') 때문에 17살의 어린 나이로 농부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시집을 뛰쳐나와 다시 이화여전에 입학한 그녀는 이강국( 신일룡 )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박헌영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이강국은 “좀 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월북하고 만다. 그런 사랑의 실패를 겪으며 페어드 대령과 결혼한 김수임은 아들 ‘밥’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이강국을 미끼로 다시 수임에게 접근한 오빠 최만용의 획책이었던 것. 그렇게 수임은 남로당원으로서 첩보 활동은 물론 페어드에게 이런저런 인사 청탁까지 조종하는 위치에 이른다. 여기서 무엇보다 놀라게 되는 것은 후시녹음으로 완성된 외국인 배우들의 유창한 한국어다. 거의 아나운서 수준으로 얘기하는 페어드 대령은 물론 “엄마, 어디야? 빨리 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혼혈 아이 밥의 언어구사능력도 상당하다. ‘아들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수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오검사가 집으로 전화했다가, 밥이 대뜸 “마미?”라고 영어로 답하자 황급하게 전화를 넘기는 이순재 의 연기 또한 놀랍다. 윤소라 윤소라 는 당시 서구적인 마스크로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그런 외모가 당시로써는 낯설어서인지 김지미 , 남정임 , 문희 , 윤정희 의 자리까지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속 팔도강산 >(1968)으로 데뷔한 이래 제목부터 무언가 그녀의 선명한 캐릭터를 드러내는 < 버림받은 여자 >(1970),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 야녀 >(1974), < 70인의 여죄수 >(1974) 등에 출연하며 남다른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 김수임의 일생 >에서도 인사 청탁을 위해 속옷이 비치는 가운만 걸친 채 페어드 대령의 털 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유혹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물론 이강국을 그리워하는 사랑과 아들 밥을 향한 모성의 굴레 속에서 방황하는 그 깊은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함께 이국적 외모의 글래머 배우로 주목받았던 김혜정의 다소 과잉된 연기와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진다. 물론 그 이국적 외모로 인해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의 미얀마 여자, < 여진족 >(1969)의 여진족이기도 했던 김혜정 또한 유현목 의 < 아내는 고백한다 >(1964), 이성구 의 < 지하실의 7인 >(1969)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에로틱한 매력을 뿜어냈다. 흥미롭게도 <지하실의 7인>에서 윤소라는 말 수가 적은 수녀, 김혜정은 성적 매력을 마구 발산하는 북한 여군으로 출연해 만났다. 역시 외모 하면 빠질 수 없는 남자 신일용도 있다. 수임이 이강국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누구나 한 번쯤 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쾌남아였어요”라고 말할 정도인 신일용 과는, 윤소라의 은퇴작이기도 한 김수용 의 < 아라비아의 열풍 >(1976)에서도 연인으로 출연했다. 그런 두 사람이 마치 <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2005)의 부부처럼 ‘그 사람이 매일 아침 어디로 출근하는지 모르고’ 살아온 그 세월이 허망하다. 김수임의 화장, 그리고 페어드 대령의 유창한 한국말 그래도 김수임과 이강국은 서로를 잊지 않고 살아왔다. 클라이맥스는 이강국을 시골에서 올라온 외삼촌이라 거짓말하고 페어드 대령에게 빼내 달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수임으로 인해 한국식 인사 청탁 문화가 몸에 밴 그는 부탁대로 강국을 집으로 데려오지만, 외삼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잘 생긴 그를 살짝 의심한다. 결국 페어드는 “부인, 난 이제 사무실로 나가 볼 테니 삼촌을 좀 대접해요”라고 출근하는 척 거짓말을 하고는 그들의 뜨거운 포옹을 몰래 훔쳐본다. 그렇게 수임은 사랑에 실패하고 감옥에 이르게 된다. 반공영화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사상이 꼭 일치되어야 하나요. 전 좌익을 사랑한 게 아니에요, 그의 마음과 육체를 사랑했어요.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라는 항변은 가슴 절절하다. 그렇다. 당시 공공의 적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전 죽일 년이에요”라는 마무리 멘트를 들은 오제도 검사는 “사랑의 에고이즘이군요”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마치 제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척척 추리해내는 탐정 엘큘 포와로처럼 고뇌하는 모습으로 소파에 앉은 이순재 의 모습이 그 기나긴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는 윤정희 의 모습이 압권이었다면, < 김수임의 일생 >에서는 페어드 대령의 면회 전 손거울을 보며 눈화장을 고치는 윤소라 의 연기가 심금을 울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페어드 대령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귓전을 울린다. “딸링...” 그 딸링에 덧붙여 확실히 이것 또한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종일 “마미~~~”라는 말이 입에서 내내 맴돌 것이다. 김수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검사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 얼굴을 곱게 화장하겠어요. 추하게 있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서죠. 늙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화장을 하지 않고 남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여자에요.” 이순재 정말 마지막으로 이순재 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 당시 인터뷰했던 그는 가장 존경하는 선배 배우로 최무룡 을 꼽았다. “후시녹음 시절에도 그처럼 자기 대사의 템포를 살려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후시녹음이라 그런 주연급 배우들 중에 대사를 안 외워오고 그냥 입만 벌리거나 조감독이 옆에서 읽어주는 대사를 그대로 따라 읽는 경우가 허다했지. 뭐 나중에 성우가 다 하니까. 그런데 최무룡 선배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내실을 다지는 사람이었지. 메소드 연기의 대가였고 늘 끊임없이 새롭게 변신하는 배우였어. 물론 다른 좋은 선배 배우들이 많았지만 자기만의 확고한 원칙과 ‘폼’이 잡혀 있는 최고의 배우였지. 그래서 한번은 최민수 를 만나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 내가 민수 백일잔치도 가고 어렸을 때부터 쭉 봐왔거든. 이제 작품으로 만날 일은 없고, 전에 무슨 행사장에서 만난 적 있는데 머리에 두건 쓰고 수염 기르고 요란한 청바지 입고 왔기에 ‘야, 너 허리에 도끼만 차면 딱이겠다’고 한 적 있어. (일동 대폭소) 연기자로 치면 ‘성골’ 출신 배우고 또 한때 얼마나 잘했어? 멈추지 말고 좀 더 하면 정말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을 텐데. 마스크도 얼마나 좋아. 참 아쉬워, 한번 만나서 얘기해야지.” 그렇게 그는 한국영화사 최고의 배우로 최무룡을 꼽았다. 그러면서 앞선 시리즈에서 오제도 검사를 연기한 최무룡에 이어 자신이 그 역할을 이어받은 <특별수사본부> 시리즈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로서는 얼마나 감격적인 캐스팅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윤소라 신일룡 이순재 문오장 감독: 이원세 각본: 오재호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11,249명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뉴 웨이브 운동의 중심이자, 1960년대 중반을 휘감은 청춘영화 장르의 효시작을 감독하였고, 1960년대 후반 < 장군의 수염 >이라는 걸출한 모더니즘 영화를 연출한 감독 등의 수식어로 소개할 수 있을 인물이 이성구 감독이다. 1928년에 태어난 이성구 감독은 이병일 감독의 조감독을 거쳐, 1960년 김지헌 이 시나리오를 쓴 청춘 영화 <젊은 표정>으로 감독 데뷔하였다. 데뷔작인 < 젊은 표정 >은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재일교포 출신의 프로듀서 전홍식 과 당시 조감독이던 이강원 , 이성구 등 당시의 젊은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신예 프로덕션’의 창립작으로, 오시마 나기사 등으로부터 시작된 일본 누벨 바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 영화계에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노라는 열정으로, 제작부터 화제가 되었고, 비록 흥행에는 실패하였으나 평단에서는 호의적인 평가를 이끌어낸다. 같은 해 연출한 < 정열 없는 살인 > 또한 역시 김지헌이 시나리오를 쓴 추리물로, ‘한국영화에 없던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대표작으로 꼽히는 1968년의 연출작 <장군의 수염>은 영화 중반에 신동헌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끼어들고, 스토리의 시간이 뒤얽혀 있는 등 형식적 특이성을 지닌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중 한 편으로 꼽히는 영화이다. 이쯤 소개하고 보면, 실험적인 영상과 반항적인 주제의식을 특징으로 지닌 작가이며, 매우 모던한 연출 스타일을 보여주는 예술영화 감독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될 터이나, 실제 이성구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영화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해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영화에서 유행한 거의 모든 장르들을 두루두루 거쳐 왔다. 이성구 감독은 앞서 언급했듯 한국의 뉴웨이브를 표방하며 데뷔했으나, 흥행 면에서의 부진으로 이후의 연출작들은 멜로드라마, 서민가족 코미디, 청춘영화, 고부갈등을 다루는 가족드라마 등 당시 한국영화계와 TV/라디오 방송극에서 유행하던 장르들을 두루 거치며 연출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던 이상구 감독이 다시금 비평적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1960년대 후반 이른바 문예영화 제작이 붐을 이루면서부터이다. 황순원 과 이효석 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1967년작 < 일월 >과 < 메밀 꽃 필 무렵 >에 대해 언론과 평단은 “오랫동안의 슬럼프에서 벗어난 견실한 연출력”, “오랜 침묵이 있은 후의 수확” 등의 문구로 반겼고, 흥행에 있어서도 비교적 성공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68년, 이성구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 장군의 수염 >이 발표된다. 이어령의 동명소설을 김승옥 이 각색한 <장군의 수염>은 한 사진기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두 형사가 추적하며 재구성하는 내용인데, 동시대 프랑스의 누보로망 마냥 시간순서가 뒤엉켜있는 내러티브 구성, 애니메이션과 회화를 이용한 화면구성과 편집이 등장하고, 결국 엔딩에 이르면 미스터리의 범인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우리 사회전체라는 다소 관념적이고 사색적인 주제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는 “국산 최대의 문제작”이라는 평단의 흥분어린 평가를 이끌어 내었고,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무려 37만의 관객을 동원한) < 미워도 다시 한 번 >과 함께 그 해 “방화계의 두 경이”가 된다. 모더니스트, 형식실험가 등 이성구 감독에 대한 후대의 일반적 평가는 거의 이 영화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성구 감독에 대한 그러한 일반적인 평가에 비추어볼 때, 그의 후반기 필모그래피는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이성구 감독의 연출 경력 가운데 후반기의 필모그래피들은 반공영화를 비롯한 프로파간다 성격의 작품들과 기술력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대작영화들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 휴머니즘적 결말을 지향한 반공영화들은 원작소설들을 영화화한 문예영화의 연장인 경우가 많고, 그 중 < 지하실의 7인 >(1969)은 인간의 심리적 갈등과 양심, 전쟁으로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을 제한된 공간 내에서 연출한 작품으로 이성구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영화평론가 이영일과 김종원에 의해 언급되었다. 1970년대 이후 이성구의 관심은 기술력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대작영화로 향한다. 1971년 순수 국내제작 장비와 기술로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70mm 영화를 목표로 하여 의욕적으로 제작에 돌입한 < 춘향전 >은 연일 제작 상황이 지면에 오르내리는 등 화제를 모았지만, 개봉 이후 관람을 방해할 정도의 (특히 사운드 측면에서의 잡음 문제 등) 기술적인 결함들이 발견되었고, 흥행 역시 기대에 미치지는 못 한다. 이어 경제개발 선전의 일환으로 포항제철의 건설과정을 다룬 대형 국책영화 < 해벽 >(1972)은 태풍이 몰아치는 방파제에서 파도와 싸우며 해벽을 건설하는 장면을 스펙터클로 담아내고, 반공 소재의 대형 영화인 < 악마의 제자들 >(1974) 역시 인민군이 탈출해 내려오는 장면을 담은 대규모 군중 신과, 신문기사를 통해 인상적인 자동차 추격 신이 등장한다고 전해지는 < 빨간구두 >(1975) 등 이후의 연출작에서 꾸준히 확인되는 바는 스펙터클과 영화 기술에 대한 관심이다. 이러한 경력들을 인정받아 1970년대 말, 한국, 일본, 할리우드가 함께 제작하던 인천상륙 작전 소재의 전쟁영화인 <오! 인천>(1981)의 한국측 감독을 맡는다. 이 영화는 미국측 감독으로는 007 시리즈로 유명한 테렌스 영이 기용되었으며,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으로 나섰고, 무려 4천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투여된 초대작이었으나, 제작 과정 중 갖가지 난항을 겪은 후, 결국 테렌스 영 감독이 해고되기에 이른다. 이성구 감독은 테렌스 영을 대신하여 그 이후의 추가 촬영과 후반 작업을 맡게 되는데, 이 영화를 마무리하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게 된다. 이 영화를 마무리짓고 난 다음 해인 1982년 브라질에 이민 가 있던 누나를 방문하고서 자신의 영화 < 오인의 건달 >(1966)들에서 주인공들이 꿈꾸던 것처럼 브라질로 이민 간다. 이렇게 다양한 영화들 속에서 이성구 영화를 규정지을 수 있는 키워드를 꼽자면, 흔히 알려진 것처럼 뉴웨이브적인 ‘실험’ 보다는 ‘유려함’이 될 것이다. 스타일은 세련되었지만 언제나 단정하고 주제의식은 타협적이며,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영화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괴함이나 과잉적인 측면을 발견하기 힘들다. 혹은 줄여 말하자면, 이 얼마나 김기영 스럽지 않은 단정함이란 말인가. 이성구는 첫 영화 < 젊은 표정 >을 만들고 난 뒤 한 일간지의 기고문에서 4.19 이후 고무된 어조로 “옛 것과 결별하고 이상을 향해 매진하는 의욕”을 한국영화계에 촉구한 바 있으나,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가인 이영일은 『한국영화전사』에서 <젊은 표정>을 두고 “젊은 세대들의 건강한 모럴을 담았다”라고 평가하였다. 여기서 보이는 그 의욕에 찬 선언과 다소 차분한 평가 사이의 간극을 살펴보면 이성구 감독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컨대 1960년대 한국의 뉴웨이브를 위해 모인 영화 청년들, 그 가운데 한명이었던 이성구 감독이 원했던 이상은 실험과 전복 보다는 유려함과 세련됨이었다. + 사족을 붙이자면, 이성구 감독은 1961년 김기영 감독의 < 하녀 >에서 한국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여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힐 이은심 과 결혼하였으며, 1982년 브라질로 이민을 가서 2005년에 타계하였다. 부인인 이은심 여사는 여전히 브라질에 생존해 있다. / 글: 전민성
< 장군의 수염 >은 당대 문학평론가로 유명하던 이어령의 첫 동명 소설을 역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김승옥이 각색했다. 이 영화는 신문사 사진기자인 한 남자가 죽자 두 형사가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서사 구조로 전개된다. 산동네 하숙집에 살던 주인공 철훈( 신성일 )의 죽음은 일단 연탄가스 중독으로 보이지만 타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형사( 김승호 )와 젊은 형사(김승옥)는 하숙집 주인( 정애란 )과 딸( 여운계 ), 소설가( 김동원 ), 한때 철훈과 동거했던 댄서 출신의 신혜( 윤정희 ), 철훈의 어머니( 한은진 )와 누나( 김신재 ), 동료 기자( 백일섭 ) 등 주위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그들에게서 각각 철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 장군의 수염 >은 마치 오손 웰스의 < 시민 케인 >을 연상시키는 미스터리 구성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의 죽음이 먼저 제시되고, 주변 사람들의 철훈의 과거에 대한 증언들이 그 죽음의 원인을 관객들로 하여금 조금씩 추측하게 하는 것이다. 좌익인 형이 가정을 파괴하면서 몰락한 지주의 아들이란 멍에와 어릴 적 인두 자국 흉터를 안고 어둡게 자란 철훈은 획일화되어가는 현대사회와 삶의 부조리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고 아집과 망상에 사로잡혀 살다가 결국 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장군의 수염 >이란 제목은 철훈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철훈이 중견 소설가( 김동원 )를 만나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난다. 이 만화는 정치권력의 타락한 신경증적 놀이를 보여준다. 조국을 해방시킨 위대한 장군을 추종하는 국민은 모두 장군처럼 수염을 기르지만 주인공만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외톨이가 된다. 철훈은 자신의 소설 주인공처럼 모두가 ‘장군의 수염’을 기르는 사회에서 그 수염을 기르기를 거부하는 아웃사이더이자 현실부적응자인 것이다. 이러한 줄거리는 1960년대 군사정권의 정통성 문제를 암암리에 비판하고 독재 문제를 경계 내지 경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신동우 화백의 형인 신동헌 의 작품으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영화 < 홍길동 >(1967)과 < 호피와 차돌바위 >(1967) 등을 감독한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다. 철훈의 욕망과 일그러진 모습은 그의 일상과 의식을 통해 표출된다.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불안과 고독은 너무 곧고 민감한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가령 미국에서 돌아온 정박사( 곽규석 )와 인터뷰하는 장면은 철훈의 시니컬한 면모를 보여준다. 계속 영어를 섞어가며 한국을 비하하는 말을 하는 정박사에게 비위가 상한 철훈은 “존? 메리? 웰 아 유” 하며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정박사 부인에게 “전 그만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부르시는 걸 개를 부르는 줄 착각을 했어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철훈은 신혜의 발톱 깎는 소리에도 “사람들은 연필을 깎듯이 발톱을 깎고 있단 말이야! 난 그 소리가 아프게만 느껴져!”라고 말할 정도로 예민하다. 철훈의 낭만적 감성에 반했던 신혜도 결국은 그런 그에게 지쳐서 곁을 떠나게 된다. 철훈과 신혜의 고해놀이는 친구를 죽게 만든 전쟁터, 좌익이었던 형의 체포와 지주였던 아버지의 몰락 등 철훈의 아픈 가족사와 기억들을 보여준다. 신혜도 1·4 후퇴 때 순결을 잃는 치욕, 아버지 나목사( 전창근 )가 신앙 때문에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입는 이야기 등 두 사람의 자아와 현실의 초상 이면에 암울한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던 고통이 드러난다. 철훈은 6·25전쟁 이후 실존적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고, 4·19 혁명으로 체제의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개인을 대변한다. 결국 그는 실패한 혁명으로부터 상처와 환멸, 자괴감을 느끼는 자폐적 공간에 자신을 가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가는 김승호 의 모습에 깔리는 내레이션은 이 영화의 주제를 내포한다. “왜 나는 이렇게 자신을 잃고 있을까? 민완형사! 도깨비 잡는 형사! 사람들은 날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뛰어든 이 하찮은 사건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나는 범인을 보았다. 그는 수갑을 채울 수도 없고 법정의 피고석에 앉힐 수도 없다. 고독이라는 놈!” < 장군의 수염 >은 주제 의식의 탐구와 영화 형식적인 면에서 이만희 감독의 < 만추 >, 김수용 감독의 < 안개 > 등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장군의 수염 >은 당시 영화로는 드물게 서술 중심에서 벗어나 치밀한 미장센과 편집, 모노크롬과 애니메이션의 활용 등 영화적 표현과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비판적 묘사가 돋보였다. 그리고 어둡고 난해해서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고, 제7회 대종상(1968)에서 각본상과 제작상, 1969년 제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성구 감독은 < 젊은 표정 >(1960)으로 데뷔 이후 < 길 >(1978)까지 49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 가운데 < 장군의 수염 >을 비롯해서 < 일월 >(1967), < 메밀꽃 필 무렵 >(1968), < 지하실의 7인 >(1969) 등 주로 1960년 후반 작품들이 대표작이었고, 1978년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영화 활동을 중단했고 최근 작고했다. 이성구 감독의 아내는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삶을 냉소하는 듯 한 표정과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하녀 역할을 연기했던 이은심이다. 요즘 리메이크되고 있는 < 하녀 >에서 전도연 이 바로 이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고 하니 사뭇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