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군 - 대전저울항
- 감독
- 화소강, 석위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고월, 류석전, 사위재, 손비호, 노기, 부학성, 소웅, 여충, 손유민, 장장의
코로나가 가장 심각하던 시기,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 간의 교류는 거의 단절되고, 국민들은 일부 격리되며 대부분의 문화 활동은 중지되었다. 많은 영화들은 부쩍 한산해진 극장가를 보며 개봉을 미루던가, OTT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 크리스토퍼 놀란 만큼은 고집을 꺾지 않았는데, 그의 신작 < 테넷 >은 이 시기 유일하게 극장에서만 공개된 텐트폴 영화였다. 놀란과 파트너십을 이어오던 워너는 가장 OTT 공개(및 동시 개봉)에 앞장서던 배급사였고, 그래서 놀란의 결정에 난감했던 게 사실이다. 몇 번의 연기를 거쳐(다른 작품들이 창고 영화가 되거나 TV 영화가 되어가는 속에서도) <테넷>은 코로나 속 극장에서 고군분투 블록버스터로 위용을 보였지만 장렬히 산화하고 만다. 할리우드 메이저에 진입했던 < 인썸니아 >부터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놀란과 워너의 관계에 금이 간 건 바로 이때였다. 놀란은 워너의 소극적인 홍보를 아쉬워했고, 워너는 놀란의 비협조적인 선택에 섭섭해 했다. 결국 놀란은 워너를 떠나 차기작을 유니버셜과 하기로 결정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프로젝트는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실제 인물을 다룬 전기물이었다. 전 세계에 핵이란 새로운 빛을, 그리고 동시에 두려운 공포를 안겨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원작 제목이다)'이자 천하의 둘도 없던 천재, 바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 < 오펜하이머 >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놀란과 유니버셜의 첫 협업물인 <오펜하이머>는 바로 놀란의 전 파트너였던 워너의 최고 기대작인 그레타 거윅의 < 바비 >와 맞붙게 되었고, <바비>가 <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를 넘어 워너의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는 바람에 <오펜하이머>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한번도 1위를 기록하지 못한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역대급 흥행을 찍은 경쟁작의 방해와 3시간이란 상영시간의 압박, 누드와 욕설로 인한 R등급 등 숱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는 < 조커 >의 뒤를 이어 R등급 영화사상 두 번째로 흥행한 작품이 되었고, < 보헤미안 랩소디 >가 가지고 있던 전기물 최고 흥행작 타이틀도 빼앗았으며, < 인셉션 >을 넘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리지널 작품으론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루드비히 고란손 안타깝게도 필생의 소망(!)이던 < 듄 > 작업 위해 자리를 비운 한스 짐머가 이번에도 그 속편을 위해 바쁜 관계로, 놀란은 전작 <테넷>을 함께 했던 루드비히 고란손을 다시 한 번 음악적 파트너로 맞이한다. 스웨덴 출신의 고란손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80년대생 영화음악가들 중 하나로,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베토벤의 이름을 딴(그의 아버지는 블루스 기타의 신 알버트 킹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그의 음악적 소양은 기타 교사였던 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톡홀름 왕립 음악학교를 졸업한 고란손은 미국 USC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의 영화과에 다니던 라이언 쿠글러와 의기투합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고란손은 영화음악가 테오도르 샤피로 밑에서 견습 생활을 이어가며 시트콤 <커뮤니티>로 자신의 첫 음악 크레딧을 얻는데, 여기서 차일디쉬 감비노로 활동하는 배우 도널드 글로버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이 둘과의 만남은 고란손에게 < 블랙 팬서 >의 오스카와 “This Is America”의 그래미라는 영예를 안겨다주었다. 영화음악과 힙합이란 전혀 다른 분야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두며 화려한 커리어를 맞이한 고란손의 다음 스텝은 바로 놀란과의 계속된 협업이었다. 루드비히 고란손은 익숙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데 탁월한 식견과 해석력을 보여 왔다. 그래서 빌 콘티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록키 발보아의 세계에서 힙합 리듬으로 새로운 적자 크리드에게 시선을 돌리는데 성공했고, 마블의 고전적이고 영웅적인 심포니가 득세하는 전장에서도 리얼한 아프리칸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이식했으며, 마에스트로 존 윌리엄스가 굳건히 세워놓은 갤럭시 사가에서 향토적이고 이국적인 베이스 리코더를 내세운 색다른 만달로리안 사운드로 새로운 여정의 진군가를 완성해냈다. 랜디 뉴먼이나 마이클 지아치노가 꽉 잡고 있던 픽사 애니메이션에서도 흥분하면 래서 판다가 되는 틴에이저의 고충을 끌어안은 그의 음악은 반짝반짝 빛났다. 엔트로피와 양자역학이 판을 치는 놀란과의 첫 만남에선 데이빗 줄리앙과 한스 짐머가 구축해놓은 미니멀한 사운드에서 더 나아가 쉽게 시도하지 않는 실험적인 백마스킹을 통해 앞뒤가 똑같은 회문 구조의 인버전 스코어를 현실에 구현해냈다. 고란손은 감독들이 요구한 사항을 받아들이되 기존의 존재하던 스타일을 반복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낸다. 이게 수많은 영화음악가들이 데뷔하고 활동하는 할리우드에서 빠른 시간 안에 그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인셉션>에서의 에디트 피아프, < 인터스텔라 >에서의 파이프오르간, < 덩케르크 >에서의 시계초침과 엘가, 그리고 <테넷>에서의 인버전된 백마스킹이 핵심적인 사운드 키워드로 자리했던 놀란의 영화음악답게 이번 <오펜하이머>에서 놀란이 영화음악가에게 내민 카드는 바로 바이올린이었다. 오펜하이머가 여러 층위를 가진 복잡한 내면의 천재였고, 일반 전기물처럼 쭉 한사람의 일생을 따라가기보단 원자력협회의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스트로스 제독의 인사청문회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일대기까지 세 가지 시간 선을 엮어낸 다층적인 구조라 레이어 쌓기 가장 좋은 악기인 바이올린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고란손 역시 아름답고 환상적인 선율의 비브라토를 연주하다가도 바로 브릿지로 격한 소리를 만들거나 빠르고 예민한 트릴이나 미끄러지는 글리산도로 신경질적이고 공포적인 효과로 돌변할 수 있는 바이올린이야말로 오펜하이머가 핵무기를 만들면서 가졌던 이중적인 측면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악기로 받아들였다. 아내 세레나 맥키니가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고란손은 놀란이 던진 이 아이디어를 맘에 들어 했고, 1인칭으로 묘사된 시나리오 속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바이올린으로 극대화 시킬 방법들을 다양하게 찾았다. 압도적인 건 바로 오펜하이머가 가진 고뇌와 무게감,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천재성과 감정의 기복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한 큐 안에서 스트링 세션이 변화무쌍하게 4마디마다 템포가 변화해 최대 21번의 빠르기가 가중되는 'Can You Hear The Music'이나 'Destroyer Of Worlds'같은 트랙이다. 처음 시작보다 무려 3배나 빨라지는 연주는 한 테이크 안에 라이브가 불가능하다 생각해 후반 믹싱적 테크닉을 시도하려했으나 아내의 격려와 시도로 실제 연주를 사흘에 걸쳐 이뤄냈으며, 이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오펜하이머의 시선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이제는 시작돼 멈출 수 없는 핵 개발의 체인 리액션을 표출한 방식이기도 했다. 더욱이 영화상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트리니티 실험에 흘러나오는 8분에 이르는 대곡 'Trinity'는 폭발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고조되며 심장을 마구 옥죄여오는 킬링 트랙인데, 버나드 허먼이 울고 갈 정도로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현의 비명들 아래 깔리는 웅장한 관악기와 어두운 일렉트릭의 조화는 폭발 순간 침묵에 휩싸이며 먹먹함을 선사한다. 버튼을 누르면 결코 이전으론 되돌아갈 수 없는 결과를 낳는 핵의 운명처럼, 이 모든 소리의 파편들이 쌓여 거대한 침묵을 완성한 건지 모른다. 여기에 가이거 계수기를 비롯한 다양한 펄스파의 소리들과 군중의 발소리를 채집한 효과들이 어우러지는 아방가르드한 공명감은 핵개발 이후의 바뀐, 그리고 멈출 수 없는 세상의 연쇄적인 반응을 담아내는 듯 불길하고 무섭게 다가온다. 간혹 섬세한 하프와 간헐적인 피아노가 덧입혀지며 아내 키티와 동료 과학자들 간의 신뢰를 구축하기도 하지만, 독일과 소련과의 원폭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며(또 작중 후반 증인들의 증언이 거듭됨에 따라 불리해지며) 그 초조한 긴장감을 담아내는 규칙적인 초침소리와 금속성의 엠비언트, 현악 오스티나토의 질주감은 별다른 화려한 비주얼 없이도 청각적으로 스크린을 압도해버린다. 기억에 남는 명징한 테마들은 없지만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며 켜켜이 쌓이는 현악의 구조와 강도는 점점 완성되어가는 원폭을 보듯, 증언이 쌓이며 점점 인물들을 구체화 시키는 청문회를 보듯 단단하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런 강렬함에도 고란손은 스코어에 드럼이나 팀파니 같은 전통적인 타악기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활로 현을 때리거나 샘플링된 소리들로 효과를 주었을 뿐이다. 버나드 허먼의 신경질적이고 풍부한 스트링에 나인 인치 네일의 공감각적인 일렉트릭 사운드를 포용한 채 필립 글래스나 막스 리히터의 미니멀리즘과 요한 요한손의 드론 음악을 결합시켜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현대음악처럼 풀어낸 루드비히 고란손의 추상적이고 과할 정도로 시끄러운 사운드 임팩트는 핵이란 거대 담론이 가진 여러 방향성과 폭발력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층위의 감정 스펙트럼을 방사형으로 내뿜어낸 비장의 OST다. Track List 1. Fission 2. Can You Hear the Music 3. A Lowly Shoe Salesman 4. Quantum Mechanics 5. Gravity Swallows Light 6. Meeting Kitty 7. Groves 8. Manhattan Project 9. American Prometheus 10. Atmospheric Ignition 11. Los Alamos 12. Fusion 13. Colonel Pash 14. Theorists 15. Ground Zero 16. Trinity 17. What We Have Done 18. Power Stays in the Shadows 19. The Trial 20. Dr. Hill 21. Kitty Comes to Testify 22. Something More Important 23. Destroyer of Worlds 24. Oppenheimer
< 수업료 >( 최인규 , 방한준 , 1940)는 종소리로 시작하고, 흥겨운 농악을 마지막에 배치한다. 주인공 영달 ( 정찬조 )은 <애마진군가> 노래를 부른다. 종소리 전 오프닝 크레디트 시퀀스에선 오케스트라 연주가 배경음으로 나오고, 아이들이 공을 차며 내는 함성이 종소리에 연이어 들린다. 이러한 “음향경(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은 규율과 군가와 카니발의 병치와 이접이라는 그로테스크 무드를 조성한다. 마을 농악대의 신명 들린 소리가 이런 음향경의 구성을 끝부분에서 전환시킨다. 교실에서 학생들에 내는 소음까지 더하면 영화는 소란과 함성, 군가를 마지막 농악으로 슬쩍 전환시키는 셈이다.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은 3개월 밀린 수업료다. 내야 할 것을 아직 내지 않았거나 내지 못한 미납 상황. 주인공이 초등학교 4학년이고 아픈 할머니는 지불 능력이 없고 장사하러 마을을 떠난 부모도 기별이 없다. 궁핍한 아동이 처한 이러한 상황은 쉽게 눈물로 얼룩질 수 있다. 소위 “친일국책영화” <수업료>는 그러나 눈물 이상의 것을 영화에 주입한다. 아동 영달은 “고귀”하다. 할머니( 복혜숙 ) 끼니를 챙기느라 자신은 밥을 굶는다. 효심이 지극하다. 애 어른이다. 이 영화에서 고귀한 것은 영달만이 아니다. 주 공간인 수원의 풍경과 장소, 자연이 고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영달과 할머니가 살고 있는 누추한 초가집 뒤 우아한 가지를 내린 소나무 두 그루 , 키 큰 나무들로 은성한 언덕, 수려한 그림자, 그리고 내지 일본의 거울 이미지로서의 제국 외지, 반도 학교의 질서, 집단체조 하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영달의 경탄의 시선 등이 미장센의 우아한 기조다. 가난과 고귀의 이러한 이중주는 한편으로는 일본 제국과 조선의 지정학적 이분법인 내지와 외지를 견지시켜 주지만 동시에 위계적 비대칭성에 부딪힌다. 영화에서 혼용되는 국어(당시는 일본어)와 반도어(조선어)는 내선어, 내선일체를 이루는 듯하지만, 일본 내지에서 검열의 문제등으로 <수업료>의 개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종화는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내선일체 구호와는 달리 조선인 소학교는 일본 내지의 학교와 달리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가 제출한 모순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인 교사의 배려의 근간에는 내지와 외지의 의무 교육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선교환의 기획 영화로서의 <수업료>는 일본 영화인들을 시나리오, 음악, 배우 등으로 기용 내지 수출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내선교환이 내지 상영으로 이어지지 못했으나, 이 영화가 시도하는 것은 외지 조선의 풍속을 담은 지역성의 매핑과 재현이다. 내지를 위해 외지를 조망하고 지역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 마을의 빨래터, 거리의 금붕어 장사, 영달의 부자 친구 한옥의 실내 . 무엇보다도 수원의 풍광과 수원에서 평택으로 갈 때의 신작로, 골목길들. 내지를 위한 외지의 동형성과 이국성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고귀함’의 속내다. 영달이 처한 상황은 궁핍하나, 주변, 통과하는 장소, 목적지의 장소들은 아름답고 풍속은 온화하며 사람들은 온정적이다. 영달의 가난은 오히려 이 식민지의 예외적 사례로 제시되며, 일본인 담임선생과 조선인 이웃( 김신재 ) , 친척의 도움으로 이 문제는 해결된다. 내지와 외지,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는 영화 초반부 4학년 교실의 제국 일본과 조선의 지도, 조선 전도 등이 보여질 때 강조된다. 영달이 수원에서 평택으로 갔다가 다시 수원으로 돌아오고, 아버지, 어머니( 문예봉 )가 장사 때문에 마을을 떠났다 귀환할 때, 그 이동성이 일본 제국 지도의 외지 조선의 동역학(kinetics)이라면, 이러한 운동이 동시 녹음 영화 <수업료>에서 마을 농악대의 몸짓, 소리에서 폭발하거나 수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내/외, 제국/식민지의 비대칭성이 사운드와 이미지의 벡터와 변곡점을 슬쩍 전환해내는 것이다. 아니면 외지, 마을 공동체의 에너지까지도 중일 전쟁, 대동아 전쟁으로 포섭물인가? 원작에 있던 전쟁 이야기가 영화에서 지워지면서, 해석은 전환으로 갈 수 있다. >> 수업료 VOD 보러가기 <<
하라 카즈오 감독이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선배 감독들로부터 배웠다”고.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신작 <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했던 말이다. < 극사적 에로스 >(1974), <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1987) 등을 제작한 일본의 대표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대담은 이렇게 시작했다. 올해 72살인 그는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제작했고, 이 대담을 준비하며 다시 보게 된 그의 전 작품들과 최신작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에 대한 나의 단상을 기술하려한다. 수년 전, 외국의 여러 감독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하라 카즈오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중 한 감독이 그의 영화 <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의 주인공 오쿠자키 겐조를 이야기하면서, “아마도 하라 감독은 여전히 오쿠자키 겐조 같은 사람을 수년째 찾고 있을 것이라고” 했고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음으로 이 말에 반응했다. 추측컨대 당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인물 중심의 영화만을 제작하는 하라 카즈오 감독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등장인물에 큰 비중을 두거나 혹은 이에 크게 의존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배경으로, 주체적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 극사적 에로스 >(1974)의 주인공 미유키가 그랬다. 전쟁의 피해자로서 천황제 폐지를 요구하며 천황에게 파친코 알을 던지는가 하면, 전쟁의 굶주림 당시 인육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하를 처벌한 상관을 찾아가는 <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1987)의 오쿠자키 겐조는 다큐멘터리영화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주인공일 것이다. 요즘은, 같은 인물을 보인다 하더라도 마치 제작자가 그 사람을 다 알고 있다는 전제, 혹은 그러한 태도를 견지한 채 시적인 혹은 에세이 방식으로 이야기를 직조하고 이를 통해 어떤 정서를 전달하려는 영화들이 다수를 이룬다. 특정 등장인물을 통한 이야기의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형태의 영화들이 다수이다. 그리고 이 폐쇄적인 혹은 경직됨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간의 묘사가 그 인물과 분리된 채 영화적 장치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흐름이라면 하라 카즈오 감독의 인물들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과한 이야기가 되기 쉽다. 더불어 그가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은 촌스럽거나 혹은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서사구조로 읽히기 쉽다. 그래서인지 주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온 나에게 하라 카즈오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큰 질문이었다. 그의 영화들은 대상의 이야기를 위해서 대상을 대상화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어떤 식으로 영화의 대상들과 관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물론 이야기의 소재나, 문제의식,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재현방식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과연 내 이야기를 위해 대상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대변자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기록영화 감독은 결국 인물들의 이야기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는가?’ 등의 고민들은 끝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등장인물의 대상화 문제는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제작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하고 싶은 문제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사회는 지루하고 재미없다. 나는 그 지루함을 날려버릴 만한 인물을 찍고 싶다” 재미없는 일본에는 뭔가 충격이 필요하다, 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 하라 카즈오 감독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을 선택하고 그려낸다. 먼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의 카메라, 카메라 뒤의 그, 그리고 카메라가 가지는 권위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찍고 찍히는 사이의 대등한 관계, 혹은 찍고 찍힌다는 계약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동지적 관계가 아닌 계약관계에 있는 이들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 채 탐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하라 카즈오 감독은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일본 사회, 혹은 이를 지탱하고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폭력적인 상황들과 부조리함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는다. 하지만 보여주고 들려주는 영화는 이 주적을 정면으로 향해있지 않다. 오히려 이 주적과 치열한 갈등 관계에 있는 등장인물들을 대면한 채 제작자와 계약관계에 있는 그들의 내부 모순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누구나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들을 부정하고 불확실한 무엇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부 모순의 실체를 추적해가는 과정에, 인물들과의 긴장감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결국 감독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불확정적이고 심지어 모호하기까지 한 하라 카즈오의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을 정의하는 공간과 시간의 현재화된 사회적 문제가 큰 질문으로 다가오게 된다. 영화를 제작하다 보면 여러 질문들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메시지를 잘(?) 숨겨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긴다. 나에게 창작이란 바로 이 구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등장인물이나 사건/상황을 정면 돌파해야 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매우 수줍거나 수동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 <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는다. 러닝타임인 3시간 30분 내내 시종일관 과감하게 정면 돌파다. 영화는 고도의 국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석면의 유해함을 숨기고 무책임함으로 일관했던 일본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오사카 센난 지역 석면 피해자들에 대한 11년의 투쟁기록이다. 보통이라면 피해자들의 아픔과 현실을 그리고 이 싸움의 절심함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국가권력의 폭력을 논리적으로 추적/고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는 최전선에서 투쟁하고 있는 각각의 인물들에 집요하게 집중한다. 처음으로는 이 싸움을 대하는 각 개인의 생애사가 들려진다. 이어서 이 싸움을 대하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을 한다.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가 하면, 석면 피해 당사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던 가해자이기도 하며, 다소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투쟁지도부의 모습, 과격시위를 반대하며 법과 원칙을 지키자는 변호사들, 형식적인 정부의 사과를 눈물로 받아들이는 인물들까지,,, 생동하며 충돌하는 내부의 이야기가 긴 투쟁의 역사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이는 11년의 투쟁과정을 성실하게 기록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을 자극하고 운동의 방향에 대해 논쟁을 불사하는가 하면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논쟁유발자로서의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관객들은 이런 영화적 장치를 통해 고통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왜 이러한 내, 외부의 갈등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지,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문제인지 등, 그 근원의 질문을 갖게 되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었던 일본의 석면 기계들이 한국에 들어와 같은 방식으로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었고 현재 인도네시아로 넘어가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자본과 국가 시스템의 역겨움에 분노하게 된다. 인물 중심의 영화가 지엽적이고 뻔할 것이라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그 영화가 인물 중심의 영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인물의 깊이에 다가갈 용기, 다시 말해 세상을 논쟁하고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주류질서를 부정하며 절대 진리라 여겨지는 세상의 많은 현상과 사유방식을 부정했을 때 만들어지는 존재의 모호함, 이는 새로운 질문들의 시작이 된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과 그 다양함, 그리고 그 심연의 ‘희,노.애.락’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그려낸 하라 카즈오 감독의 영화가 이를 증명해줬다. 부산국제영화제 대담을 준비하면서 큰 기대를 가지고 20여 가지 이상의 질문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 채 1시간가량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청년의 에너지를 넘어서는 기운이자 자신감이었다. 자신의 영화제작 스타일을 신뢰하고 강하게 애정하는 하라 카즈오 감독과의 만남은, 현실 제작환경의 어려움과 삶의 비루함 앞에서 언제나 모종의 타협을 생각하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12년째 기록하고 있다는 감독님의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에 대한 다음 이야기가 더더욱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