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 감독
- 김대진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안하였다. 1969년 9월 14일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3선 개헌안을 변칙 통과시킨 다음 7개월 만의 일이다. 그 해는 모든 것이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시인 김지하가 당시 재벌,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장차관을 (을사보호조약 당시의 매국노에 비유하며) 담시(譚詩) 형식을 빌려 풍자한 시 <五賊>을 발표하자 이 시가 실린 문학지 ‘사상계’ 시판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6월 1일 자에 이 시를 다시 게재하자 미리 정보를 입수한 기관원들이 6월 2일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새벽 1시 50분에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종로경찰서 경찰이 인쇄소에 난입하여 인쇄한 10만 부 전량을 강제 회수하였으며, 6월 20일 시인 김지하와 사상계 대표, 편집장을 “계급의식을 조장하고 북한 선전 선동물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하였다. 7월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 시다공’ 전태일은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다음 분신을 하였다. 그는 그날 저녁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3선 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김대중과의 득표 경쟁에서 이 과정은 몹시 힘겨웠다. 독재를 위한 확고한 지지 세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농촌을 중심으로 산업간 소득격차를 줄여야 할 필요가 대두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감시의 외곽지역에 놓여있었던 지방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 속에서 새마을 운동은 유신 정권의 행정체계 안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사업이 되었다. 아마도, 아마도 이 시기부터 이미 시작된 감시하의 문화예술과 학계에 대대적이고 적극적인 국책지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중들과의 전선에서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 버림받고 다른 한편으로 유혹당했다. 1973년 영화 진흥조합에서 영화진흥공사로 기구 개편을 한 다음 공사는 정부 지시에 따라 “한국영화 진흥을 위한 개선책”이라는 명분 아래 국책영화를 지원하기 위한 우수영화 보상 제도를 부활시켰다. 여기서 우수영화는 반공영화와 새마을 영화, 문예영화로 다시 분류되었다. 한국영화는 (시나리오 사전검열과 제작 검열이라는) 이중검열과 텔레비전 방송국 개국으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매우 제한적인) 외화 수입으로 영화산업을 가까스로 이끌던 국면이었지만 그 와중에조차 정부는 외화수입이 외환을 보유해야 하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화사들의 수입권을 제한하였다. 그런 다음 내세운 당근인 우수영화 제도는 ‘우수영화로 선정된 작품에 한해 제작사에 외화 수입쿼터 권리 1편’을 보상으로 내세웠다. 이 과정은 물론 한국영화의 산업적 몰락을 부추겼다. 영화사들은 ‘쿼터’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우수영화’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좀 더 정확하게는) ‘쿼터를 따기 위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국책지원을 하는) 우수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은 이면의 외설적 진실을 놓친 절반의 사실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착취당한 것이다. 그걸 도대체 누가 본다고? 여기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감독들은 ‘흥행 감독’들이었다. 왜냐하면 ‘우수영화’는 반드시 그 사실을 (문화부의 권고에 따라 ‘강제적으로’) 광고에 표기해야 했으며 관객들에게 ‘우수영화’는 재미없는 ‘국책영화’와 이음동의어였기 때문이다. 반복된 학습의 결과. 거리의 포스터와 신문 기사, 라디오에서 시간마다 울려 퍼지는 (베트남 파월장병들을 위한) 군가, 학교에서 암기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노래, 국민들은 국가정책에 관한 선전에 극도로 피로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걸 극장에 가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학생들과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단체관람을 시켰다. 좀 더 우스꽝스럽게 말할 수 있다. ‘흥행 감독’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며, ‘우수영화 감독’들은 (제작사를 대신해서) 우수 영화에 선정되어 외화 스크린 쿼터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쓰긴 했지만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걸 비웃으면 안 된다. 이건 먹고 사는 문제이다. 그리고 다른 선택이 없었던 상황의 이야기이다. 물론 영화를 그만 두면 된다. 하지만 그런 다음 영화산업 바깥에서 어떤 영화도 만들 수 없는 기술적 산업적 조건 아래에서 영화를 만드는 기술밖에 없던 사람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남아있었을까. 여기는 물샐 틈 없는 감시망으로 이루어진 경찰국가였고, 피비린내 나는 독재정치가 시작되고 있었으며, 한국전쟁의 창백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에는 어떤 미래도 없었다. 박정희는 영원히 살 것만 같았고, 민주주의는 숨을 죽였으며, 사람들은 정신없이 진행되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일상생활 속의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이제 막 독점재벌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었다. 잠시만, 잠시만 멈추어야 한다. 당신은 이 부정적인 연쇄 망 속에서 문득 긍정적인 수사가 출현했을 때 당황스러울 것이다. 나는 지금 거짓 긍정을 말하는 중이다. 자, 여기서부터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새마을 운동이 정권연장을 위한 경제적인 속임수였으며 사실상 실패한 국가주도의 경제계획이었다는 것을 지금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미 파국의 계획에 대해서는 1980년대에 전두환이 이 국가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새마을 운동연합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1970년대에 벌어진 이 기괴한 부의 재분배를 둘러싼 국가사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간단치 않아진다. 나는 지금 외면, 이라는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 새로운 단계. 당신에게 부자라는 (허구적) 타자로부터 (거짓된) 주체에로의 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간의 기회가 도래했다.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어요. 아니,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금융자본과 결탁한 (거짓된) 부의 증식. 하늘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잉여가치. 그걸 국가가 보장하겠다고 나섰을 때 온 사회가 들뜨고 있었다. 아마 정확하게 바란 것은 그 (정치경제학적인) 혼수상태였을 것이다. 박정희의 슬로건이 자본주의를 밑바닥부터 전복시키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타자의 황당무계한 약속을 사람들은 믿었다. 그들은 믿는 척한 것이 아니다. 그때 국가는 실체였으며, 어떤 부(富)도 국가보다 작은,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객관적 정세에 기반을 둔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의 중심부로 들어서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반대로 그 안에 휘말려 들어간 국민들에게 새마을 운동의 유혹이 무엇이었을 지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에(조차,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박정희의 정책과 결과. 그 효과로서의 박근혜의 (유예받은 환상의) 프레임. 반문하고 싶어진다. 새마을 운동을 단순하게 거짓 사기극이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박정희 자신조차 이 근대화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치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논점을 여기서 재빨리 멈추고 영화에로 돌아갈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건드린 논점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혼수상태 안으로 멈추지 않고 들어가는 중이다. 여기서 영화라는 제도는 단순하게 국가 정책을 반영하거나 복제하는 기계가 아니다. 혹은 제도라는 기계는 그렇게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제도가 역사 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건 구체적인 정치사회적인 조건이 그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 조건은 단지 영화를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서도 스스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단순하게 영화 안에서 제도가 요구하는 검열의 방식으로 활동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와 역사 안의 영화 사이의 관계는 종종 경계로 옮겨간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든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흔적은 서로 각자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은 서로에게 역사의 이름으로 기억의 내러티브가 된다. 그때 우리는 말하자면 기억을 다루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이를테면 볼셰비키 혁명과 쿨레쇼프 공장은 1943년 직후 로마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얼마나 서로 같으면서 다른가. 1919년 표현주의 영화와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 ‘직후’의 영화는 또한 얼마나 멀리 있는가.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영화 안에서 자기의 역사, 자기의 조건, 자기의 상황,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힘이 능동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상 각자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존재론적인 대답이다. 대답으로서의 질문. 이때 질문이 대답으로 이동하는 자리를 둘러싼 상황과 조건이 영화 안에서 형식이 될 정도의 특이한 사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건의 모습으로서의 형식이다. < 아내들의 행진 >(1974), < 아내 >(1976), < 옥례기 >(1977) 임권택 은 (이 시기의) 다른 한국영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우수영화에 동원되었으며 세 편의 새마을 영화를 찍었다. 물론 반공영화를 포함하면 그 숫자가 훨씬 많아진다. (그리고 문예영화들이 또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범주의 난점이 있다. 이를테면 < 증언 >과 < 짝코 >가 모두 반공 우수영화라는 제도적인 분류와 그 사이에서 얻게 된 행운이자 위험으로서의 미결정성. 여기서 우리는 제도가 처리하는 방식과 비평이 가져야 할 해석 사이에서 서로 공유하기 힘든 그늘을 본다. 우리의 괄호로 돌아오자. < 아내들의 행진 >과 < 아내 >, 그리고 < 옥례기 >.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예외 없이 세 편 모두 새마을 운동에 자발적으로 헌신한 세 명의 여자에 관한 실화를 찍었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세 명 모두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물론 이 인물의 선택이 임권택의 결정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매번 잘 기억나지가 않아요, 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아내들의 행진>은 영화진흥공사 제작이고 <아내>와 <옥례기>는 우진필름 제작이다.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두 가지이다. 아내의 실화. 우리는 임권택이 그 자신의 영화를 시작했다고 스스로 말한 < 잡초 >가 아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좀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임권택은 아내에 관한 영화를 줄기차게 찍었다. 여자로부터 아내에로의 이행. 딸로부터 아내에로의 치환.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영역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전망. 좀 이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임권택은 여자보다 아내에 훨씬 관심이 많다. 여기에는 그 자리에 대한 몹시 강력하고도 집요한 요구가 있다. 새로운 가족.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가족 안으로의 편입. 그런 다음 그 자리의 책임이라는 문제, 한국 사회 안에서의 그 자리의 독특한 부름과 응답.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삶의 형국. 그런 다음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 드문드문 그러나 계속해서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 어쩌면 임권택은 점점 더 허구의 이야기, 그 안의 인물을 믿지 않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 그렇게 자책하듯이 혐오해오던 장르영화(들)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어쩌면 실화에서 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떠나온 다음 다시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서” 되돌아온 <장군의 아들>에서 조차 김두한이라는 실존 인물을 거의 마지막 방어선처럼 거기 그렇게 배치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홍순혜 김진호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 아내 >의 첫 장면에는 “이 영화는 도시 새마을 운동의 기수 홍순혜 여사의 성공사례를 소재로 한 것이다”는 자막이 뜬다. 홍순혜 씨의 이야기는 「억새풀은 시들지 않는다」라는 자서전으로 출판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KBS에서 <억새풀>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내>가 만들어진 이듬해 홍순혜 씨는 도시 새마을운동 전진대회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실화이지만 여기서는 영화로 쫓아간) 홍순혜 씨의 전기의 요약. <아내>가 영화의 무대로 삼은 시간은 그녀의 삶 거의 전부이다. 이야기가 홍순혜의 22살에서 시작하지만 금방 영화는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과거로 넘어간 다음(flash_back) 태어난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극장 매표직원으로 일하는 홍순혜. 그녀는 지금 막 자신에게 구혼한 남자 김진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중이다. 무대화된 영화 안에서의 수행과 행위. 서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해서 학교에서 창문 너머 배우던 시절.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겨우 손에 쥔 초등학교 졸업장, 끝. 그런 다음 단 한 차례도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만) 진행되는 이야기. 마치 홍순혜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반영과도 같은 시간의 질서. 김진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김진호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으로 장사를 하고 홍순혜는 쌍둥이 아들과 그 아래로 두 딸을 낳고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면서 저택에서 마님 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김진호는 미군 부대 사업을 그만둔 다음 사기를 당하고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하루아침에 시골 달동네로 이사 가야 하는 온 가족. 여전히 큰소리치는 김진호는 집안 살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한다. 홍순혜는 산꼭대기 달동네에서 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나르며 동네방네 돌면서 물장사를 시작한다. 그런 다음 구들장을 고치고, 떡 장사를 하고, 공사장에 나가서 남자 인부들처럼 벽돌을 나르고, 그런 와중에 허세의 잘못을 깨우친 남편이 택시 운전기사를 시작하고, 홍순혜는 재봉 학원에서 새롭게 공부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한 문장으로 썼다. 영화는 그렇게 일사천리로 나아간다. 그런 다음 약간의 일시적 정지. 후일담처럼 덧붙여진 우수영화 제도를 위한 이야기 안의 이야기. 거기서 배운 기술과 타고난 근면으로 사업에 성공한 그녀는 옛 달동네에 찾아가 신세타령만 하면서 화투로 소일하는 부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의 기회를 열어준다. 말하자면 착한 이야기. 약간의 (사회적) 설명을 덧붙이면 홍순혜의 새마을 사업은 하나의 모델이 되어 1980년대에 가정 파출부 직업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 직업은 연변 중국인들, 혹은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여성노동자들로 다시 대체 되어갔다) 변수는 거의 개입하지 않으며 홍순혜는 앞으로만 나아갈 뿐 실패를 알지 못한다. (우)박동룡 임권택 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을 택한다. 디테일은 대부분 홍순혜가 상황이나 내면의 감정을 설명하고 있으며(voice_over_narration) 시퀀스를 대부분 씬으로 압축한 다음 전개하는 대신 배치한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시간의 분배 안에 부정적인 제한을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순간 범주들이 도식적으로 제한받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멈추어선 운동. 치워진 흔적.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충해야 할까. 게다가 가끔 이 경제성은 < 아내 >에서 의심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남편 김진호가 “한탕을 위해서 옛 친구들을 만나”자 친구들이 은밀하게 말을 건넨다. “흑인 존이랑 어디 한번 해보자” 하지만 그런 다음 이 제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게 그냥 영화 안에서 사라진다. 이 영화 안에서의 수많은 불안정한 스타 기호의 출몰과 소멸의 한 예. 박동룡 은 (아마도) 오직 이 씬을 위해서 김진호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 중의 한 사람으로 등장한 다음 내내 영화에서 보이지 않다가 여기서 다시 출연한 다음 마치 영화가 그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사건도 없이 또다시 사라진다. 아마도 이 이름이 낯선 당신에게 약간의 소개. 박동룡은 < 돌아온 팔도 사나이 >로 처음 한국영화에 출연한 다음 단 한 번도 조연조차 하지 못하면서 거의 내내 ‘다찌마와리’ 영화와 공포영화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악한 배역을 떠맡다시피 했다. (박동룡 자신은 인터뷰에서 악역 배우라는 표현 대신 ‘성격파’ 배우라고 불렀다) 그가 남겨놓은 인상은 지나치게 결정적이어서 첫 삼 년 동안 35편의 영화에 악역으로만 출연할 정도였다. (아주 이따금 그가 착한 배역을 맡을 때는, 착하면 착할수록 더욱더,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끝까지 불길하게 남겨 놓았다) 그래서 한국영화에서 박동룡은 등장 자체가 장르적 약속에 따라 악한 기호처럼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표지. 임권택은 한국영화사 전체에서 달리 예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이야기의 경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진행하고 있는 홍순혜의 이야기 전체로부터 김진호가 탈선할지도 모르는 이 장면을 찍은 다음 만일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왜 (말 그대로) 삭제하지 않고 편집에서 남겨두었는지 알 수 없게 이 에피소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스스로 소멸해버린다. 무언가 하나의 행위가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활동했음이 분명한데도 어디에서도 반응이 오지 않고 그저 거기서 마치 우발적인 실수인 것처럼 머물 때 자꾸만 영화 안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게 된다. 설명하기 힘든 잉여. 아무런 반향도 없는 진동. 이런 불균형이 <아내>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방에 남아있다. < 서학일대녀 > 하지만 불균형이 < 아내 >에서 부정적인 표시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재표시의 순간과 마주할 때 임권택 안에서 다른 임권택이 시작되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 순간이 너무 갑자기 나타나서 약간 멍한 상태가 된다. 홍순혜가 김진호를 만나서 결혼을 한 다음, 그러니까 홍순혜의 긴 고백이 끝난 다음 다시 한 번 김진호가 청혼을 하자, 그다음 장면은 결혼식 장면 없이, 이미 네 아이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누리고 있는 씬이다. 임권택은 마치 홍순혜의 행복한 시절에 거의 관심이 없기라도 한 듯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런 다음 김진호가 사기를 당하고 몰락할 때까지 거의 특징 없이 홍순혜의 실화를 장르처럼 다루면서 진행될 때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이기조차 한다. 그런데 홍순혜가 후암동 저택을 팔고 성북구 송천동 달동네로 이사 온 날, 그날 아침 홍순혜는 물을 동네 저 아래서부터 길어오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주인댁이 있는 이웃집에 간다. 거의 이제까지 진행되었던 방법을 무효로 만들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카메라는 약간 뒤로 물러난 다음 홍순혜가 부엌에서 나오는 것을 내려다본다. 처음에는 그저 홍순혜와 그의 가족이 살게 될 이 집의 가난한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master_shot)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부엌문을 열고 나와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를 따라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옆집 아줌마에게 주인댁이 어디 계시냐고 물어본 다음 이웃집에서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화투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생각하다가 대문을 열고 그 집을 나서서 골목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간다. 두 개의 선. 홍순혜의 동선과 카메라의 시선. 홍순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동선을 따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pan) 때로는 가상 수평선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면서 다가갔다가 다시 물러서면서(zoom_in_and_out) 두 개의 선은 하나가 된다. 그런 다음 그 집 안의 방문을 여는 장면(end_point)까지 따라간다. 느린 팬과 재빠른 줌, 약간의 달리, 조심스러운 틸트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낸 이 롱 테이크 장면은 단지 임권택 안의 임권택의 새로운 발견일 뿐만 아니라 임권택 영화 전체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쇼트 중의 하나이다. 그 위에 다시 덧쓰기로서의 방법. 그 순간 즉각적인 영화사적인 연상. 명백히 이 장면은 < 서학일대녀 >의 어떤 쇼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때 임권택은 아직 미조구치 겐지의 어떤 영화도 보기 전의 일이다. 나는 어느 순간 임권택이 미조구치 겐지와 거의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결론의 교집합을 이루는 시간은 < 개벽 >에서 끝났다) 그가 언제 이러한 미학에로 이끌렸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 이런 방법을 발견했는지는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그런 다음 다시 왜 이 방법을 중단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내>의 첫 시작부터 이 순간에 이를 때까지 이상하게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왜 이 영화에 미학적 일관성을 부여하지 않았는지는 누구도 설명하기 어렵다. 혹은 이 동네에 들어서야만 그러한 방법이 가능한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한다. S#_1 S#_2 S#_3 S#_4 나는 이 장면을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홍순혜의 가족이 머무는 이 단칸방 집을 다른 씬의 다른 쇼트에서 방문을 등으로 하여 맞은편을 보면(reverse_shot) 거기엔 마당 말고 다른 것이 없다. 임권택 과 (이 영화를 촬영한) 이석기 는 이 좁은 마당에 짧은 레일을 놓은 다음 줌을 단 카메라를 올려놓고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홍순혜와 카메라 사이의 동선과 이동을 서로 맞추었을 것이다. 홍순혜는 약속된 선을 따라 움직였겠지만 종종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며 줌의 범위를 빠져나가기 쉬운 난처한 장소의 블랙홀들이 사방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가로막은 나뭇가지들. 유감스럽게도 마당이 좁아서 카메라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쇼트는 부엌문에서 나온 홍순혜( S#_1), 둘러본 다음 이웃집 아줌마에게 물어보는 홍순혜( S#_2), 무언가 생각하는 홍순혜( S#_3), 대문을 나서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이웃집에 들어서는 홍순혜( S#_4)를 하나의 쇼트로 찍은 것이다. 물론 디테일을 더 세분해서 나눌 수 있으며 방향과 동선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서트가 필요해질 것이다. 혹은 좀 더 단순하게 찍는 방법이 있다. 이 영화는 1.66 비스타비전 사이즈이다. 그러므로 단지 좀 더 물러나면 된다. 그러면 더 넓은 화면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질문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장면을 하나의 쇼트로 찍을 필요가 생긴 것일까. 여기서 임권택은 홍순혜를 유심히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때 홍순혜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영화적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래서 마치 방향을 돌아서기 위한 일종의 전환처럼 보이는 잉여로서의 순간인, 그러니까 내가 S#_3이라고 지적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잠시 멈춰선 홍순혜의 생각의 시간이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그저 생략해도 괜찮은 순간(dead_time)처럼 보이지만, 혹은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동선의 방향을 틀어보기 위한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이지만,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순하게 나눠 찍어도 괜찮을 이 장면을 그렇게 공들여서 하나의 쇼트(안의 쇼트)로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한다, 는 동사의 쇼트. 비가시적인 생각의 행동. 이 순간은 일시적인 정지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선 안에서 찍어야 할 필요가 생긴 잉여의 시간(dead_time)이다. 말하자면 임권택은 (그의 영화 전체 안에서) 이 부근 어딘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부근 어딘가에서부터 데드 타임을 찍을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 그는 데드 타임의 쇼트를 인서트로 삽입하는 대신 쇼트의 진행 안에서 일종의 푼크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거기 그렇게 존재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노엘 버치의 충고. 모든 쇼트는 언제나 맞은편의 쇼트(reverse_shot)와 어떻게 이음매를 만들 것인가(raccord)라는 문제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좀 더 단정적인 충고를 보충한다. 쇼트 사이의 접합을 논증하는 건 영화에서 진실의 문제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홍순혜가 이웃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었을 때 두 개의 공간이 만나게 될 것이다. 안과 바깥. 그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아니, 차라리 어떻게 접속시킬 것인가. 하나로 귀속시키는 조형력, 서로 간의 사이에서 도식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통일된 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는 원칙. 여기서 임권택 은 공간을 펼쳐놓은 다음 홍순혜로 하여금 그 안의 굴곡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나쳐서 목표에 가 닿도록 이끈 다음 방안에 들어서면 그녀가 바라보는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화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약간의 원을 이루면서 수평으로 앉아있다. 이때 이들이 원형으로 보이는 것은 몸과 머리를 분리한 다음 앉아있는 자세와 시선을 두 개의 방향으로 서로 다르게 연결시켜 놓은 일종의 착시효과이다. 물론 여기서 그렇게 펼쳐놓은 인물의 미장센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 구도를 < 망부석 >에서도 보았다. 그리고 임권택은 이 방법을 (아마도 유일한 스승인) 정창화에게서 가져왔(을 것이)다. 방점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 여기까지 홍순혜를 이끈 바로 그 힘, 우리들이 방금 바라보았던 갑작스러운 일시적인 정지라는 반응에 대해서, 롱 테이크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성립시킬 수밖에 없었던 데드 타임 안의 동작에 대해서, 다음 씬에서는 대사에 의해서건, 제스처를 통해서건, 드라마를 이용해서건, 이웃집 방문을 열고 나면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홍순혜는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미소를(close_up) 짓는다. 임권택은 이 장면을 그저 지나쳐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커다란 얼굴의 쇼트로 다시 보여준다. 별다른 동작도 없이 그저 얼굴 가득히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 표정만이 그 전부이다. 편집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만 다가간다면 여기서 시간은 잠시 중단되고 일종의 과잉된 여백의 상태가 된다. 이 장면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앞으로, 단 한 순간도 물러나지 않고, 잠시의 틈도 없이, 진행되던 리듬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더 인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결코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며, 그렇다고 (부자 동네로부터 가난한 달동네로 추락한 다음 여전히 마님처럼 보이는 그녀를 향해서 이웃들이 보이던 적대감에 대해서) 그녀가 내보이는 (항복하는 것만 같은) 위장의 표시는 더더욱 아니며, 그녀 자신이 짓는 (일시적인) 만족의 표현도 아니다. 이 표정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통과할 수 없는 불투명성. 그리고 그것이 핵심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극장 매표원이 된 다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일시적으로 안정된 경제적 환경에서 살았지만 여기까지 홍순혜는 아직까지 (네 아이의 엄마이자 김진호의 아내) 홍순혜일 뿐이다. 그러나 달동네에 온 첫날 홍순혜는 마치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갑자기 새로운 태도를 획득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 장면이 홍순혜가 달동네로 온 첫날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일깨우고 싶다. 첫날, 새 아침. 여기에 도착하자 문득 그녀는 새로운 주체가 된다. 여기에는 홍순혜에게 던져지는 어떤 질문도 없었다. 조건이 주어지자 그렇게 된다. 그런 다음 그냥 그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간다는 듯이 홍순혜는 새마을 지도자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거기에 없는 전체 안의 과정. 그러므로 그녀가 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마치 실존적 깨달음처럼 주어진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삶. 이 결정적인 첫날의 첫 번째 깨달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일시적인 정지의 생각하는 순간이라는 시간을 찍은 다음 그 공명현상처럼 자리한 쇼트의 자리에서 홍순혜의 커다란 표정으로 짓는 웃음을 찍을 때 임권택은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라는 자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만큼 뒤로 물러난다. 왜 당신은 그렇게 희생적인 자리에 가려고 하나요? 무엇이 당신을 불렀나요?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요? 그런데 그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그런 다음 이렇게 기괴한 웃음을 짓는 홍순혜의 표정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거의 마지못해 임권택은 웃음 짓는 홍순혜가 작은 부처님의 상을 모시는 장면을 찍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서 부처님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은 알리바이를 전시하지만, 홍순혜의 이어지는 행위는 불가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 어떤 연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기괴해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투명한 데 인물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주체의 과정은 정반대로 그만큼 불투명하다. 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임권택 과 홍순혜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간극의 심연이 존재하고 있다. 이때 < 아내 >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영화를 임권택이 찍고 있었을 때 새마을 지도자로서의 홍순혜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이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 홍순혜는 대통령상을 표창받았다) <아내>가 다루는 이야기는 홍순혜가 새마을 지도자가 된다, 라는 단 하나의 진술로 환원되지만 여기에는 임권택의 어떤 포기가 있다. 포기?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거기서 마주치는 간극 안에서 점점 더 음울한 희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네 명의 아이들은 어려서 시작해서 십 대를 지나도록 어머니 홍순혜의 활동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그녀의 성공에 어떤 한순간에도 방해가 되기를 원치 않기라도 하듯이 행동한다. 심지어 이 아이들이 십 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영화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다음 이따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아침마다 씩씩하게 하기 위해서 등장할 뿐이다. 남편 김진호는 홍순혜가 자기 몰래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는 모습을 본 이후 개과천선을 한다. 드라마의 상투적인 반전. 그런데 그런 다음 김진호는 이야기에서 완전히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단지 이것을 가정에서 (경제적) 힘의 새로운 분배에 따른 재배치라고 설명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남편은 거의 사라진다. 홍순혜의 가정이 몹시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 평면적인 외양은 내게 홍순혜의 알 수 없는 미소처럼 보인다. 아마 임권택 도 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이따금 이 단조로운 평면을 뚫고 나오는 흔적들은 여기에 종종 왜상(anamorphosis)의 순간들과 마주치게 만든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편은 힘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집은 아줌마들로 가득 차 넘치면서 재봉틀과 씨름을 하며 넘쳐나는 일감에 돈 버는 재미로 밤 깊은 줄 모른다. 이때 임권택의 관심은 오랜만에 남편에게로 향한다. 그때 김진호는 마치 남의 집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장모가 열어주는 대문 사이로 들어선 다음 거의 조심스러운 자세로 들어선다. 여기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남편 김진호가 마루에 들어섰을 때 일하는 아줌마들 중에서 아무도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위계질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매일처럼 마주쳤을 그들 사이에서 왜 아무런 인사가 없을까. 그건 김진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그녀들. 차라리 우글거린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아줌마들. 그녀들은 깔깔대고 웃으면서 신바람이 나 있지만 정확하게 그만큼 김진호는 그녀들 바깥에 놓여있다. 이 층에 올라서서 눈이 마주쳤을 때야 비로소 이 층의 그녀들은 그에게 인사를 하지만 곧 시선을 돌리고 일감에 매달린다. 김진호는 구태여 계단을 따라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홍순혜를 구석으로 부른 다음 이제 우리들의 가정생활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하지만 홍순혜는 더 기다려달라고 대답한다. 둘 사이의 대화는 너무 상투적이어서 거의 귀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완전히 대화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상투성 자체를 동요하게 만든다. 동시적인 두 개의 장면. 먼저 홍순혜가 김진호의 요구에 대답하는 장면. 분명히 김진호가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순혜는 대답하는 순간 마주 보던 몸을 돌린 다음 자신의 대답이 끝날 때까지 마치 그의 요구에 대한 거절을 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약간 웅변하는 것처럼 말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해도 없다. 또한 둘 사이에서 가능한 일말의 해결도 없다. 홍순혜의 선택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기서 홍순혜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을 독백으로 바꿔칠 때 여기에는 임권택의 포기가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도착적으로 읽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홍순혜와 김진호를 벽 옆에 세워 놓은 다음 카메라를 마름모꼴로 세웠다. 물론 이 위치는 홍순혜가 김진호에게 대답(하는 척하면서 독백을)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얼굴을 보기 위한 자리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서 홍순혜와 김진호의 그림자가 마치 정말 보여주고 싶은 진짜 모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벽에 비쳐 보인다. 이때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은 위험한 해석이다. 과잉진술에는 언제나 어딘가 외설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망설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임권택이 바라는 두 사람 사이의 진실한 행위가 아닐까. 전체의 배치 속에서 괄호를 치는 것은 내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임권택 의 영화 중에서 새마을 영화들이 (볼 때마다 점점 더) 매우 이상한 위치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단지 제도에 한정 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거장’ 임권택을 이야기하다 말고 이 자리에 오면 슬그머니 피해버린다. (아마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아내 >가 < 왕십리 >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비평을 불편하게 만든다. 지레짐작을 하고 ‘이 시기의’ 임권택은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들)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미리 방어선을치기도한다. < 족보 >와 < 짝코 >가 우수영화였다는 사실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임권택 자신은 “우수영화로만 선정되면 되니까 그저 제작자 눈치 보지 않고 관객들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 아내 >에서는 “하고 싶은” 무엇을 “해 본” 것일까. 그 무엇이라는 모순의 미지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이 세 편의 영화, < 아내들의 행진 >과 < 옥례기 >, 그리고 <아내>를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거의 와해 직전까지 간 다음 불화를 무릅쓰고 갑자기 거기서 무언가 환상의 쾌락을 누리려는 듯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게 볼 때마다 몹시 이상하게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잠시만 <아내>의 소재를 옆으로 치운다면, 그래서 그저 하나의 드라마로써 다가가 본다면, 아아, 라고 탄식할 정도로 이 영화에는 임권택 영화로서 보기 드물게 행복한 순간들이 과도할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그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그 자체를 임권택이 잠시라도 망치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물론 (이미 우리가 본 것처럼)임권택은 결코 홍순혜에게 단 한 순간도 동일화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무얼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는 용기를 내서 말하고 싶다. 여기에는 행복에 대한 도착적 기쁨의 왕국이 기다리고 있다. 만일 그걸 내어줄 수 있다면 모든 고난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르는 희생을 치를 용의가 있다는 대답이 거기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쳐다보아도 괜찮은 것일까. 임권택은 이 순간 두 개의 시선 사이의 간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차라리 찢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여기에는 이야기 안에서 오가는 시선과 이야기를 쳐다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서로를 내맡기고 각자의 시선을 갖기 시작한다. 여기서 희생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체로서의 자기의 자리를 잃고 불투명한 타자의 질서에로 밀려나는 반면 주인공의 행동을 쳐다보는 시선은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대신 마치 그것이 자기의 기쁨이기라도 한 양 반대로 타자의 질서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척한다. 그때 기쁨과 희생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임권택의 새마을 영화(들)는 그렇게 매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향해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임권택은 여기서 비로소 임권택이 된다. 그렇지만 여기 머물고 있는 두 명의 임권택. 영화 안에서 무언가 서로 다른 목소리가 웅성거릴 때 우리는 어느 쪽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핵심을 찾으려면 안 된다. 반대로 우리를 무질서에 내맡겨야 한다.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속삭임들이 들려온다. 여러 명의 소리. 기꺼이 질문의 카오스 속에서 부서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재난을 환대한다. (계속) 1976년 99분 컬러 1.66 감독 임권택 우진필림 각본 문상훈 , 박철민 촬영 이석기 조명 차정남 편집 김창순 음악 정인섭 태현실 ... 홍순혜 박근형 ... 김진호
“그때는 최고로 안 팔리는 감독이었어요, 그 무렵은 영화가 불황이었고, 하여튼 없었어요, 영화 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 시기에 크게 열을 내서 하고자 하는 의욕도 잃었고, 그래서 영화가 걸리면 그냥 적당히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던 때였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데서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내 삶을 자각하면서 그래서 만든 첫 번째 영화가 < 잡초 >(1973)일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 처음으로 어떤 공백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건 내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단지 영화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할까” 없었다는 말. 그 말에 감도는 차가운 감정. 거의 희미해진 기억. 마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종 외면하려는 듯한 제스처, 혹은 그로부터 취하려는 일정한 거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멀리. 그렇게 그 이전 영화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대답하다가 <잡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치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씩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문하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50편의 습작을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단연코 습작이었어요” 1973년 그해 임권택 은 50번째 영화 < 잡초 >를 만들었다. 여기서 만들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 모두이다. 하나는 그 자신이 연출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 제작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그 자신이 제작한 첫 번째 영화이다. (그때) 나는 질문을 하다 말고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그런 다음 그 결정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미 49편을 만든 영화감독. 1962년에 첫 영화를 만든 다음 12년이 되던 해. 자신의 삶, 그 삶의 진동, 감독으로서의 자신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성찰해보기 시작한 순간과의 대면. 말 그대로 창조의 새로운 도약. 모든 예술가들이 그 자신이 예술가임을 자각하는 필연적인 시간. 말하자면 절대적인 요구. 그런 다음 자기가 만들어낸 창조의 세계가 홀로 서게 만드는 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 그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 영화의 스틸을 볼 때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어디선가, 이를테면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동시상영을 보던 중에, <잡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몇 차례이고 이 영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 비참한 지경. 그때 임권택 은 놀랍게도 자기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힘을 끌어당겼다. 영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결. 나는 그것이 단번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영화는 비로소 영화가 되는가, 라는 질문. 임권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판결문을 내린 다음 그 질문을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 질문을 꺼내든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지금 자기의 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끌어당긴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공격?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때 그가 공격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까지의 모든 습관. 습관?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종종 집을 세우는 일에 비유된다는 자크 리베뜨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프레임이라는 사각형. 그것 앞에 세워진 네 개의 면.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동선. 그때 어디서 어디를 보느냐의 문제. 방향. 그 안에 세워진 수많은 문들. 어느 문이 열릴 것인가. 어느 문으로 들어올 것인가. 그러나 이때 집이 세워지면 그 집은 동시에 연출의 감옥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일단 갇히면 그때부터 이 집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예술에서 가장 두려운 말, 안주.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종종 자기 집을 불태우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집을 끊임없이 세웠다는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 말하자면 모험. 그러나 대부분 그냥 집에 머물 것이다. 가까스로 세운 집. 자기가 세운 집. 하나의 집이 세워질 때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이때 영화는 그 집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은 곧 습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 좋은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런 건 없다. 오로지 나쁜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 나쁜 습관과 더 나쁜 습관. 그때 더 나쁜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건 자기 집에 살면서 남처럼 살고자 흉내 내면서 자기 집을 남의 집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고치고 부수고 그런 다음 자기의 집 위에 다시 남의 집을 세우면서 그 안에서 남의 집에 사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예속성. 그 무시무시한 힘. 두뇌와 의지 사이의 선을 잘라낸 다음 의지를 복종시키기기 시작하는 구조들. 이미 결정된 방. 임권택은 자기 집에 살면서, 그 집에서 48번, 혹은 49번이나 살면서, 점점 더 지쳐가면서, 이 집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그 자신에게 말했다. 살 수 없다는 말. 그때 그 말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1973년 그 해. < 잡초 >를 만들기로 결심하기 직전. <잡초>앞에 놓여있는, 하지만 같은 해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 대추격 >, 혹은 < 장안명기 오백화 >. 나는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임권택이 48번, 혹은 49번째 살았던 그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가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 영화, 단지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집이 자기를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어쩔 수 없이 만든 영화,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영화. 어떤 기쁨도 없이, 심지어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그 어디서도 힘을 끌어낼 수 없을 때, 그런 다음 삶이 무언가에 복종되어버린 자리. 나는 <장안명기 오백화>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대추격>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진 임권택의 24편의 영화중의 하나. 영화의 줄거리는 일제 강점하 경성의 유명한 요정 명월관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1973년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아무데서나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무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름 명월관. 1909년 경성 종로구 세종로에 세워진 다음 1918년 5월 24일 화재로 소실된 이후 돈의동 139번지에 다시 세워진 요정. 1919년 기미독립선언 이후 종종 독립운동 지사들의 연락처로도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장소. 하지만 사실상 영화 안에서 의미가 없는 지표. 다소 지루할 지라도 나는 약간의 첨언을 더해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아니, 차라리 한국영화사의 저편에서 불러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임권택 자신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사라진 기억. 죽어버린 기호들. 몇 차례이고 질문했을 때마다 심지어 내가 그런 영화를 찍었나요, 라고 반문했던 영화. 오로지 그 시간에만 활동했던 이미지들. 기억으로부터 과거로의 추락. 현재와 공존하기를 포기한 영화.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로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 잡초 >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나는 차라리 여기서 그 포기의 배후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힘을 알고 싶다. 그러므로 다시 이야기 안으로. 그저 이 영화가 요구하는 대로 볼 생각이다. 최칠용과 영국 최칠용과 현주 신운일과 정미 박노운과 기홍 명월관에는 그날 저녁 술시중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안의 한량들에게 자랑거리가 된다는 명기 오백화가 주름잡고 있다. 일제 강점하. 요정, 장안의 다섯 명기. 고백화 기홍, 태백화 정미, 김백화 현주, 최백화, 유백화. 그녀들은 아무나 수청을 들지 않는데 심지어 조선총독부 총독의 부름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그날, 그러니까 이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의 그날, 사이토 경무국장의 술자리 수청을 들기 위해 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다음 위기의 시작. 첫 도미노. 김백화 현주의 오빠 영국은 상해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인데 경성에 잠입해 들어왔다가 그만 체포되어 한국인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고문을 받는다. 독립군과 조선인 형사. 신념을 따른 희생자들과 배신을 한 앞잡이. 역사로부터 장르에로의 이행. 그 사이에 개입하는 균열. 차라리 드라마의 복선. 그런데 최칠용은 원래 학생시절 경성제대 법대를 다니며 훗날 변호사가 되어 조선인을 위해 일하겠다고 맹세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신의 말을 따르면)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고등계 형사가 되었다. 그래서 김백화 현주는 최칠용의 후배이자 음으로 양으로 조선인의 편에서 오백화를 돕고 있는 청년 신운일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다. 하지만 최칠용은 명월관의 술자리에서 그의 양심에 호소하는 신운일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번에는 신운일의 딜레마. 신운일은 친일파인 중추원 원로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분노하며 부끄럽게 여긴다. 아버지와 아들의 분열.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한 쌍처럼 이루어진 대립적인 인물들. 과도하리만큼 민족주의적 열정에 가득 차 있는 인물들. 결국 대의적 관점 아래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또한 그는 오백화 중의 한명인 태백화 정미와 연인 사이이며 그녀에게 결혼을 청하지만 정미는 자신이 기생의 신분이라 지금의 연인 관계에 만족한다면서 완곡하게 거절한다. 신분의 차이. 이제 막 조선시대가 끝났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근대. 물론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중의 곤란함이 여기에 개입하여 이 가련한 연인들의 결정을 재촉한다. 신운일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집안이 친일의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정미는 명월관에 드나드는 사이토 경무국장의 잠자리 수청을 종용받고 있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인물. 이야기의 바깥으로부터, 그런 다음 바깥으로의 새로운 방향.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조선총독부 총독의 생일에 맞춰 창경궁에 모이는 중요인사들과 친일파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띠고 박노훈이 경성에 잠입했다가 총상을 입고 고백화 기홍의 집에 숨어든다. 모든 인물들이 곤궁에 빠져서 거의 빠져나갈 길 없을 것만 같은 일제 강점하의 경성에서 열린 새로운 도주의 선으로서의 상해. 그러자 갑자기 이야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 모두에게 상해로 떠날 구실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장황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우연들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박노훈은 중국인으로부터 폭약을 구해서 신운일과 함께 창경궁에 잠입하고, 그 시간에 정미는 삼엄한 경계를 풀기 위해 책임자인 경무국장 사이토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그를 총으로 사살하고 그녀 자신도 자살을 하고, 최칠용이 사실은 이제까지 그의 고등계 형사 노릇은 조선인의 편에서 돕기 위한 그 자신의 고육지책이었으며 게다가 이 모든 행동이 김백화 현주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지만 그만 (최칠용 자신이 구해준,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현주 오빠 영국의 손에 죽고 만다. 거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사건의 사슬들. 암살에 성공한 박노훈과 신운일은 죽은 정미를 제외한 오백화와 함께 상해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군의 추격 끝에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신운일이 이들 모두를 위해서 대신해서 죽고 박노훈과 남은 네 명의 오백화가 배를 타고 상해로 떠난다. 한 남자와 네 여자. 멀어져가는 배, 혹은 새벽 강물에 실려 사라져가는 배. 말 그대로 난처한 입문. 이 줄거리를 몇 번을 다시 읽고 반복해서 영화를 보아도 결국 남은 인상은 기이하리만큼 그 안에서 서로의 인과관계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 영화의 전술적인 규칙들은 무엇일까. 거기서 무엇이 멈춘 것일까. 아니, 아무 것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고 그런 다음 인물의 위상관계를 달리하여 저기서 여기로 옮겨올 때, 종종 느껴보는 하강과 상승, 추락과 도약 대신, 거의 모험담에 가까운 < 장안명기 오백화 >를 보는 내내 느끼는 거의 일관된 상태는 이 장면이 다음 장면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이 영화를 내려놓는 대신 1969년에 < 황야의 독수리 >를, 그리고 이듬해 < 속눈썹이 긴 여자 >, 그런 다음 1971년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와 < 둘째 어머니 >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즐거움을 생각한다. 이 영화들이 표준적 관점에서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즐거운 영화들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나는 차례로 그 이유를 쓸 것이다) 말하자면 긍정의 힘. 바르뜨라면 누군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며,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종종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 표현을 사랑한다. 이때 이 네 편의 영화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주) 웨스턴. 스릴러. 다찌마와리. 신파 멜로드라마. 네 개의 장르. 네 개의 꼭짓점. 그들 사이의 교차점.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안명기 오백화>는 우리를 단조로운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 여기에는 그 즐거움이 어느 순간 고갈되어 버렸다. 이때 가장 따분한 설명은 여기에 창작의 열정이 고갈되어버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로 말하고 싶다. 혹시 열정이 가져온 의심이 즐거움을 고갈시켜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 그렇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여기서 심리적인 분석의 기법을 빌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본 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의심이다. 무엇에 대한 의심? 설명에 대한 의심.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영화적 효과들. 인물들의 대사. 그 대사를 둘러싼 표정. 표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카메라와 연기 사이의 거리. 이때 내가 인물이라고 말하는 대신 연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 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의 수많은 기호들을 연결하고 종종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개념들을 여러 가지의 경로를 빌려 결합시켜왔다. 말하자면 영화의 규칙 안에서의 활동. 이때 임권택은 문득 여기서 멈춘 다음 이 개념들이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영화를 다루기 시작했다. 갑자기 연결과 결합 사이의 영화적 효과들은 일시적으로 작동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것을 <장안명기 오백화> 안에서 기이한 감정을 안고 바라보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상한 상황. 그 안의 배치를 성립시키는 모든 요소들 사이의 조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건드리면 어떤 효과가 생겨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장인이 갑자기 자포자기 하듯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볼 때 나는 이 행위 자체가 보는 쪽에 고통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사유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것은 <장안명기 오백화>를 위해서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상황을 한편으로는 앞으로 돌아보고, 이를테면 1969년의 영화들, 반대로 저 멀리 1978년 < 족보 >까지 끌어당겨보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했다. 관성적으로 오던 것은 여전히 빨리 가고 갑자기 어떤 것은 필요 이상으로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임권택 은 서둘러 가는 것을 마치 남의 영화를 쳐다보듯이 내버려두고 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무엇이 느리게 갈 수 있는 지를 건드려본다. 이제까지 접속되었던 방식을 바꾸려 하기 전에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를 마치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순간들. 이때 멈춘 것은 다소 불투명하긴 하지만 대부분 장르의 신호들이다. 혹은 그 신호들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호들은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지만 기이하게도 장르의 기호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반응을 멈추었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 이 중단은 단순하게 멈춘 것이 아니다. 자동적 반응의 중단이라는 문제.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제목만 슬쩍 본 다음 장안명기 오백화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섯 명의 기생. 다섯 명의 여자. 다섯 개의 운명. 그녀들 사이에 던져진 사건, 혹은 인물. 던져진 돌. (그렇게 된다면) 원형으로 번져나가는 이야기의 선. 나는 틀렸다. 오백화는 이 영화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오백화 사이에서 어떤 분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오백화가 이 영화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어떤 힘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선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줄거리가 어떤 법칙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기이하게도 그 선이 자꾸만 제자리에로 돌아온 다음 어떤 새로운 차원에로의 이동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기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끊어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어떤 긴장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줄거리의 경제학으로만 본다면 다섯 명의 장안 명기 오백화는 서로 그녀들의 우정을 나누기는 하지만 사실상 줄거리를 위해서라면 고백화와 태백화, 그리고 김백화 세 명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임권택 은 최백화와 유백화를 위해서 거의 어떤 시간도 들이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끝난 다음 최백화와 유백화의 존재 자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다섯 명의 스타의 얼굴의 순환.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이상한 것은 이 순환 자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본 다음 고백화 기홍을 연기하는 고은아 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잊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임권택은 고은아를 영화 안에서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첫 장면에서 중심에 있었던 고은아는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다음 영화가 끝날 때 그녀는 시작할 때와 반대로 단지 오백화 중의 한명이 된다. 사라져가는 무게. 줄어드는 빈도. 스타는 줄거리의 장르이다. 그러나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고은아는 마치 이 영화에서 사라져가는 메시지처럼 점점 뒤로 물러난 다음 화면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렇다고 해서 박노식과 신성일이 그 자리를 탈취하거나, 혹은 옮겨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제 역할을 한 다음 재빨리 물러난다. 여기에는 스타들 사이의 균형이 거의 무너져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인물들 사이의 민주주의적 배치에 따른 것도 아니다. 나는 다소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이들은 마치 공장처럼 작동한다. 기능적으로 배치된 다음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인물들은 상황에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할 뿐 그 어떤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상황이 그 존재에 변수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인물들에 대한 억압. 어떤 억압? 줄거리의 억압. 이때 이 억압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임권택 은 마치 이 억압에 순응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일일까, 라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나는 여기서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향한, 영화에 의한 그 자신의 인정투쟁의 시작을 본다. 그때 줄거리의 무한한 계속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오면 거기서 무엇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삶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온, 또 살아가야 하는 삶.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 다음의 영화, 임권택 자신이 그 ‘이전’의 모든 영화를 ‘습작’이라고 부른 다음 비로소 만든 < 잡초 >가 한 여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신운일과 아키코 박노훈과 기홍 물론 < 장안명기 오백화 >를 좀 더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종종 인물들 사이의 자기 자리의 수행은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이 영화의 이상한 점은 그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어딘가에서 부터 이야기의 결말을 소급해서 올라가서 재구성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기괴한 역설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줄거리의 소급이 사실상 이미 예정된 전제 위에서 진행된 결말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연쇄망의 잠재적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것은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의 이상한 분리이다. 시나리오의 잠재적인 감정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그 줄거리의 행위들만이 차례로 나열된다. 시나리오는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그러니까 고백화와 박노훈, 태백화와 신운일, 김백화와 최칠용을 하나의 짝으로 묶은 다음 다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임권택 은 거의 고의적으로 그들 사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어놓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무리 진행되어도 그것을 잡아당겨서 긴장을 만들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풀려나가서 느슨해진다. 이 영화는 중심이 없는 영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몇 가지 단락의 순간들. 신운일은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기무라 총독의 여식인 아키코와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약혼식. 여기서 이상한 방식으로 구부러지는 분배의 방식. 신운일은 아키코에게 둘 만의 데이트를 청한 다음 갑자기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면서 진정 사랑하는 태백화 정미와 결국 결혼할 것이며 당신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동거는 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떠나가겠다고 말한다. 잠재적인 대립의 수행. 그런데 이때 아키코가 예상치 않게도 신운일을 이해하면서 당신이 나와 같은 일본 여자와 결혼하는 조선인 남자였다면 오히려 경멸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할 때 여기서 진행되어야 할 어떤 긴장도 사라진다. 말하자면 무효. 그런 다음 아키코는 영화에서 어떤 설명도 없이 사라진다. 도대체 아키코라는 등장인물은 이 줄거리에 무엇을 봉사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일까. 혹은 신운일의 이야기와 평행하면서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상해에서 보낸 독립 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영화가 시작된 다음에) 조선총독부 총독 생일에 맞춰 전원 몰살하려 한 폭약을 구입하려던 군자금을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그 돈을 다시 구할 것인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돈이라는 역할의 표면 등록. 역할의 수행에 관한 인물들에 대한 기대. 교활한 중국인은 돈을 먼저 내놓으라고 박노훈에게 말한다. 이때 박노훈의 방법은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다. 고백화 기홍을 찾아가 민족에 대한 사랑에 관해 몇 마디 웅변을 한 다음 그 돈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돈을 구하기 위한 고백화 기홍의 이야기. 생략된 장면. 그런 다음 (고백화가 아니라) 태백화가 경무국장에게 수청을 약속하면서 그 돈을 빌린다. 물론 돈의 순환과정의 아이러니. 총독을 지켜야 할 경무국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암살할 비자금을 구해준다. 궁금한 질문. 그런데 왜 고백화 기홍은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이 빚을 청산하듯이 어떤 요구나 대가없이, 하다못해 박노훈에 대한 사랑의 감정조차 없이, 그 돈을 구해주려는 것일까. 그런 다음 왜 그 임무를 태백화에게 떠넘긴 것일까. 마치 이 행위는 신운일이 자기의 뜻과 관계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여자인 아키코와 약혼을 발표한 다음 그 축하연이 명월관에서, 그것도 태백화 눈앞에서 벌어진 다음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그녀를 완전히 자포자기시키는 요구처럼 보인다. 단지 부조화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 이때 이들 사이의 관계는 오로지 이야기의 골격에 따라 장르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사이의 교환은 어디선가 흩어진 다음 오로지 기능의 액션만을 남겨놓은 채 감정의 분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사라진 씬들이 에매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이를테면 거의 설명과잉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1960년대 임권택 의 사극영화들을 생각해보라. 그때 단지 이것이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장르의 욕망의 경제학에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심층적 구조가 사라진 컨벤션들. 그러므로 어떤 불연속. 무엇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없어진 것은 무엇일까.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거의 완전히 붕괴된 것은 이 영화의 경제성이다. 그렇다면 임권택 은 교환과 분배 없이 무엇으로 이 규칙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임권택은 자기 영화 안에서 목표를 찾아가는 대신 목적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는 목표가 사라진 영화이다. 어떤 목표? 장르에 따라 줄거리가 거두어야 하는 최종 목적지. 이 영화는 그 목적지가 마치 도달할 수 없는 헛된 목표인 것처럼 거기에 갈 수 있는 영화적인 방법의 경제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목표가 헛된 대상이 될 때 이 영화의 모든 쇼트들은 갑자기 장르의 규칙 안에서 자기의 사용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지막 장면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배에 저 많은 사람들, 박노훈과 네 명의 백화가 새벽에 몸을 싣고 정말 그 머나먼 서해 바다를 가로 질로 저 멀리 상해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생겨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어디서도 아니에요, 이건 영화에요, 그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상상해주세요, 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때 상해는 이 영화 전체의 헛된 최종 목적지에 대한 텅 빈 기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적으로 찍힌 유일한 장면. 그건 마치 어떤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지나치게 사후적으로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 잡혀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선언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를 알고 싶은 대신 < 잡초 >를 만들기 직전, 그러니까 이제까지의 영화가 모두 습작이라고 단언해야만 했던 그 상황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새로운 도약을 향한 어떤 약속의 증거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 모든 것의 조화가 어지럽혀진 채 너무 많은 장면들이 스스로 의미를 포기해버린 얼룩들의 거의 망쳐버린 듯한 카오스였다.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의 이상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중이다. 일본군의 추적이 마지막까지 뒤따르고 네 명의 오백화와 박노훈, 신운일을 태운 병원 앰뷸런스 구급차는 그들을 태울 배가 있는 강변 가까이 도착한다. 신운일은 그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자신이 이들을 따돌리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살의 제스처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무사히 탈출을 하지만 마치 예정된 것처럼 신운일은 일본군의 추적 끝에 총에 맞아 죽는다. 그가 죽어가면서 보는 것은 마치 대지가 기울듯이 흔들리는 시선이다. 물론 그것은 신운일이 쓰러지면서 보는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다. 그런 다음 일본군들은 마치 자기들의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돌아간다. 눈 덮인 언덕 아래에서 고백화는 물어본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박노훈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이 대답한다. “녀석은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아니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군” 멀어져가는 일본군. 그때 앰뷸런스 차 안에서 총에 맞아 구멍 뚫리고 금이 간 창문을 통해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 난처한 두 개의 쇼트 사이의 반복적인 쇼트와 상대 쇼트. 말하자면 성립되지 않는 시선의 교차.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사후적인 설명이 동원되어야 할 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다. 마치 배를 타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박노훈처럼. 그때 눈물을 흘리는 박노훈의 얼굴. 눈물. 한 없이 이어지는 무심한 강물. 그들은 무사히 상해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 길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인생을 사랑하는 법. 그건 임권택 그 자신이 습작들과 작별하면서 내게 설명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계속) 1973년 9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림 각본 신봉승 , 윤석훈 촬영 변인집 음악 전정근 미술 노인택 편집 현동춘 박노식 박노훈 신성일 신운일 고은아 고백화 기홍 태현실 태백화 정미 독고성 최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