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 감독
- 권오운, 이기원, 김영근, 김용운, 김청시, 이은표
- 제작년도
- 2008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입봉이 목표인 삶을 살았다. 입봉하면 천국, 입봉 못하면 지옥. 입봉하면 행복, 입봉 못하면 불행. 내 삶이 지금 지옥이고, 내가 불행한 것은 입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입봉만이 희망이었던 시간을 지나, 작년에 ‘입봉’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이제 드디어 천국에 다다른 것인가 했는데, 막상 겪어 본 입봉 후 삶은 천국도, 행복도 아니었다. 입봉만 하면 천국일 줄 알았는데! 입봉만 하면 행복일 줄 알았는데! (‘뭥미’라고 쓰고 싶지만 영자원 원고이니 참기로 한다.) < 미술관 옆 동물원 >(이정향, 1998)은 미술관을 좋아하는 여자 춘희와 동물원을 좋아하는 남자 철수가 뜻밖의 동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철수는 연인 다혜와 재결합하고자 하지만, 다혜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춘희는 보좌관 인공을 짝사랑하지만, 인공은 춘희에게 관심이 없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 빈 문서의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는 춘희를 보자마자 ‘춘희,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했다(물론 얼굴이 ‘심은하’라는 것은 빼고 생각했다). 춘희처럼 나도 밥벌이를 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춘희처럼 나도 내 시나리오 주인공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 그들과 같이 기뻐했다. 같이 고민해주는 철수는 없었지만. ‘심은하 얼굴’과 ‘철수’만 빼면 그때의 나는 딱 춘희였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시나리오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 쓸수록 시나리오가 좋아졌다. 작품을 쓰면서 마음속의 생채기들이 하나씩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설계도이다. 설계도는 건물이 완공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시나리오는 영화가 상영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아무리 많은 시나리오를 써도 컴퓨터 하드에 저장돼 있을 뿐인 시나리오는 온전히 완성될 수 없다. 그렇기에 꼭 입봉하고 싶었다. 내 시나리오가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쉬는 그 순간을 고대했다. ‘스물넷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서른 즈음 되면 길이 보이겠지.’ 착각이었다. ‘어려운 길이지만, 마흔 전엔 되겠지,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다. 이쯤 되니 그렇게 좋아하던 시나리오가 내 고통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이제 정말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 이 지옥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매일매일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든 다혜를 다시 잡고 싶었던 철수는 이미 떠나간 다혜의 마음을 확인하고 좌절한다. 이제는 인공이 관심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춘희는 여전히 관심이 없는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좌절하고 기대한 것을 얻지 못해 실망하느라, 철수는 좋아하는 베개를 양보해주는 춘희를, 춘희는 욕을 먹어가면서 버스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철수를 보지 못한다. 입봉을 하고 나서야, 입봉했지만 그곳도 천국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봉을 하지 못해 좌절했던 그 시간들도 지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만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뿐. 그래서 미처 보지 못했을 뿐. 그때에도 내 곁에는 ‘지옥이 아닌’ 많은 것들이 있었다. 정반합(正反合). 본래 있던 것에 새로운 것이 다가와 충돌한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난다. 본래 있던 주인공의 삶에 새로운 자극이 다가와 주인공의 삶이나 생각을 바꾸는 것. 그 과정이 시나리오의 1, 2, 3 장이다. 3장에서 변화한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설계도를 그린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3장의 깨달음을 작품에 구현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대부분 그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플롯을 구현할 수 있을까. 매일 부딪혔던 의문은 천국과 지옥,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극단의 늪에서 빠져나오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 같은 삶, 이라고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삶의 일부이다. 삶을 넘어서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한 부분을 떼어내 재미있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러한데 이분법의 세상에 갇힌 작가가 어찌 1장에서 2장으로, 2장에서 3장으로 변해가는 삶의 과정을 시나리오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원한 것은 선, 원하지 않은 것은 악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이 어찌 천국과 지옥,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깨달음의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좋아한 이는 인공이었지만, 인공과 이루어지지 못해도 괜찮다. 인공과 다르지만, 그것이 또 좋은 철수가 있으니까. 그토록 그리워한 이는 다혜였지만, 다혜가 떠나갔다고 해도 괜찮다. 다혜와 다르지만, 그것이 또 좋은 춘희가 있으니까.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을 보고자 했지만, 막상 당도한 곳이 미술관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동물원에서도 예상 못 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으니까. 동물원에서 귀여운 동물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막상 당도한 곳이 동물원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미술관에도 예상 못한 만남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앞으로도 뜻대로 되는 일보다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가고자 한 곳에 가게 되는 일보다는 뜻밖의 장소에 당도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짜고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 고개를 들어 표지판을 보자. ‘천국 옆 지옥’, ‘행복 옆 불행’이 아니라 ‘미술관 옆 동물원’이다. 양극단이 아닌 그 사이 어딘가, 그곳에 영화의 진짜 엔딩이 있다. 김정연(시나리오 작가) l 쓰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 < 비공식작전 >(김성훈, 2022), < 밀수 >(류승완, 2023) 각본. < 더 문 >(김용화, 2023) 각색.
초점이 맞지 않은 침침한 화면으로 치도곤을 당하는 한 소년이 보인다. 폭행을 가하는 패거리들 가운데에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두들기는 가해자의 얼굴도 희미하게 드러난다. 폭행에 가담하진 않고 있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가해자로 보이는 두 소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피아 구분이 불분명한 혼란 상(像)은 앞으로 우리들에게 제시될 사건의 성격을 말해준다. 내레이션(Narration)이라는 관점에서 < 파수꾼 >(2011)은 복합적 서사 라인의 겹침과 교차, 미궁에 빠지는 인과율, 내레이션의 시간 조작이라는 현대적인 스토리텔링 장치들에 의해 운항된다. 다성적인 기원을 갖는 인간 행위의 본질에 가까이 가기 위해 이 영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캐릭터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도록 자율성을 부여한다. 앞과 뒤의 서술 내용이 서로를 배반하는 플롯은 서술 주체들의 입장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삽화들을 교차하면서, 부딪히고, 순환하는 관계를 묘사한다. 간단하게 정의될 수 없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이 인물들의 삶에 비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연출자 윤성현은 단일하게 정의할 수 없는 인간 행위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무질서하게 배치된 것처럼 보이는 쇼트와 신, 시퀀스들의 관계를 유기적인 사슬로 엮는다. 한국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십대 드라마는 외부인이나 교사의 관점을 포함하여 청소년의 행태를 극화함으로써 국가 시스템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관찰은 정형화된 스토리 패턴에 종속되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십대 캐릭터를 앞세우는데 모든 사건에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다. 주인공은 대개 결손 가정 출신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쉼터이자 사춘기 이후 악몽의 온상인 학교와 가정의 중층적인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파수꾼>은 십대 드라마의 클리셰를 부분적으로 차용하면서 이와 본질적으로 갈라선다. 장르의 전형을 뛰어넘는 성취는 명백한 인과관계에 의해 성립되는 십대 드라마의 서사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다. <파수꾼>은 한 명의 프로타고니스트에 의해 주관(主管)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복수(複數)의 인물들이 교대로 플롯을 끌고 가며, 시간은 선형성을 도외시한 채 과거와 현재를 어지럽게 오가고, 연대기적 인과관계의 전복을 통해 전통적 스토리텔링의 유습으로부터 탈피하고 있다. 요컨대 플롯이 추구하는 목표 내지는 관객들이 던지는 질문은 국면에 따라 종류를 달리 하고 그때마다 화자가 교체되면서 목표와 질문의 깊이도 달라진다. 서술 주체가 변경될 때마다 내레이션은 미스터리를 해소하고 이야기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기차 선로 마냥 미스터리의 해결은 단일한 결과로 귀결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야심찬 <파수꾼>의 서사는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주인공 기태(이제훈)의 죽음을 추적하는 일종의 탐정 스토리에서 최초로 탐정 역할을 맡은 인물은 희생자의 아버지(조성하)이다. 도입부에 관객들은 미스터리 장르의 관습과 규범에 따라 기태의 아버지가 죽음의 비밀을 밝혀 갈 탐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희준(박정민)을 만난 이후부터 그의 소임은 끝난다. 현재의 탐사자이자 질문자인 아버지는 기태의 죽음과 관련한 피상적인 사실만을 제공할 뿐이다. 누가 죽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이 내려진 이후 그는 서사의 동력을 상실한다. 그때까지 가해자로 보였던 기태가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가해자는 왜 죽음에 이르렀고, 피해자는 그로부터 도피하였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행한다. 덩달아 죽음의 미스터리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희준, 동윤(서준영)에게 초점이 이동한다. 플롯의 효과가 랜덤의 배열이 아니라 치밀한 내레이션의 작용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 질서와 논리에 주목해야만 한다. 기태를 가학적인 악마와 속 깊은 친구로 번갈아 보여주는 도입부의 플래시백은 이 장면이 누구의 관점에서 전달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간 혼란스럽다. 하지만 기태의 죽음을 둘러싸고 희준과 동윤이 용의자로 좁혀지는 순간, 진실이 밝혀지는 것 같다. 죽은 친구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소년들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일치된 행동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비난을 피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두 소년은 기태와 친했던 적이 없다고 부인하거나 다른 친구들이 기태를 더 잘 안다고 질문을 회피한다. 영화의 서사 전개, 갈등과 대단원은 도입부에 제기된 쟁점에 종속된다. 즉, 도입부에서 결과(기태의 죽음)를 먼저 제시함으로써 이것이 내러티브의 모든 국면을 관장하도록 설정하였다. 기태가 희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걸 먼저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기태에게 마음을 주기 어렵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전환되면서 보다 진실에 가까운 기태의 입장(폭력의 원인과 그 내면)이 드러나는 식인데 이 대목에 이르러 관객은 그를 동정하고 깊이 이입하게 된다. 이 순간부터 화자의 교체와 더불어 오인의 매설, 수정은 이 구조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다. 고전적 내레이션의 경우 단선적인 갈등의 유도와 해결이 일반화된 반면, <파수꾼>은 핵심 사건과 갈등이 다중적인 흐름으로 유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내레이션 전략은 사소한 오해와 차이가 누적되어 붕괴하는 관계라는 주제를 견인한다. 질문의 이행과정에서 정보, 심리의 전개 방향을 분명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고전적 내러티브 구조와 달리 이 영화는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지점을 그윽하게 감춘다. 기태의 죽음과 연관된 인물들이 서로 공유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정보는 관객에게 공유됨으로써 누적된다. 그러나 관객들 역시 죽음의 원인을 완벽하게 알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이는 기태와 희준, 동윤의 스토리를 거의 균등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설득력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희준과 동윤은 기태의 아버지를 매개로 하여 기태와의 과거를 회상하지만 이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내용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경험이 자신의 입장에서 나열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서사의 끝에는 말끔한 미스터리의 해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희준이 기태와 함께 보낸 시간을 회상할 때 카메라는 소년들이 공유하는 유쾌함과 웃음을 가까이에서 포착하지만 그들 사이에 심연이 형성됨에 따라 점차 정적인 제스처로 변한다. 친구의 얼굴 사이에서 카메라의 이동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서로 마주보고 위치할 때 멈춘다. 멈춤과 경직은 지속되고 곧 메울 수 없게 된다. 이 균열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 희준과 재호(배제기)가 기태의 콤플렉스인 모성의 부재를 입에 올렸기 때문인지, 짝사랑하는 보경이 기태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아 희준이 질투하는 것인지, 세정(이초희)에 대한 풍문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든 것이 묘연하다. 기태는 회피하는 희준에게 짜증을 내고 절친을 때리는 것으로 좌절감을 표출한다. 또는 희준은 기태가 자신을 위협하는 방식을 싫어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친구인 척한다. 희준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동안에도 기태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소년들은 어른, 작중 인물, 관객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세계 안에서 말하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미묘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소년들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정신분석적, 사회학적, 전지적 관점을 지양한다. 여러 갈래의 관점이 교차하는 이 영화의 구조는 만족할만한 결말, 명쾌한 진실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해석하는 것이 기껏해야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은 퍼즐 조각의 조각난 그림들일 때 더욱 그렇다. 윤성현은 십대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영화적 언어로 효과적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욕설 외에 1분 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완전히 남이 된다. 흔해빠진 십대 성장드라마에 독창성을 부여한 것은 이야기의 형식이 이야기의 성격을 결정하도록 한 스토리텔링의 효과이다. 탐색의 주체가 봉착한 딜레마를 강조하는 조각난 비선형 구조는 악마의 모습으로 등장한 소년이 수줍고 연약한 아이로 귀환하여 위력적으로 마음을 휩쓸고 가도록 만든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올해는 13편을 골랐다.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영화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빈 폴 , 사마에게 인데, 이들은 모두 작년 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빼면 내 리스트는 허망해질 것이고, 사마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에서 공장생산되는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회고조의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이 걱정되는 관객들은 빈 폴이 이 상황에서 얼마나 강력한 치료제인지 알 것이다. 리스트에 오른 영화들을 보자. 남매의 여름밤 은 벌새 의 뒤를 잇는 올해의 한국 영화이다. 하지만 극장 바깥을 보면 난폭하고 정신없고, 충무로 내부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보건교사 안은영 이 질주하고 있다. 인비저블 맨 은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할리우드의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지, 이를 벗어나면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레디 오어 낫 은 호러 영화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고 해서 뻔뻔스러운 장르적 즐거움을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소년시절의 너 는 동아시아 교육 시스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공감과 공포를 모두 느낄 수밖에 없는 폭탄 같은 멜로드라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 에피소드 3: 앱센트 데스티네이션스 오브 데이비드 프라임 을 만들면서 돈 허츠펠트는 21세기의 가장 훌륭한 SF 삼부작 영화를 완성했다. 작은 아씨들 을 빼먹고 오래된 고전의 새로운 재해석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딕 존슨 이즈 데드 에서 영화 만들기의 작업은 감독의 가족사와 아름답고 유쾌한 조화를 이룬다. 퀸스 갬빗 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이전엔 아카데미를 노리고 만들어졌던 훌륭한 드라마들이 넷플릭스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 반쪽의 이야기 를 해보자. 이 작품은 올해 본 영화들 중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 될 텐데, 그건 내 어린 시절 덕질과 관련있다. 어렸을 때 나는 요새 중고등학생들이 아이돌을 파듯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팠다. 실존 인물을 판 게 아니라 에드몽 로스탕이 자신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재창조한 코쟁이 시인을 판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길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건 좀 무의미한 일이다. 어린 시절은 아무 것에나 심장이 찔리기 마련이고 그 상흔은 꽤 오래간다. 그냥 그랬다고 할 수밖에. 반쪽의 이야기는 내가 본 시라노 각색물과 파생물 중 최고다. 그리고 나는 꽤 많은 작품들을 보았다. 장 폴 라프노가 감독하고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나오는 시라노 는 많이들 결정판으로 여기고 있지만 둔중하고 맥빠진 영화라 영 별로다. 호세 페러가 아카데미 상을 받은 마이클 고든의 할리우드 영화는 그보다 낫지만 좀 녹화된 연극 같다. 프레드 셰피시가 감독하고 스티브 마틴이 코쟁이 소방서장으로 나오는 록산느 가 오히려 괜찮다. 마이클 레만의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 은 성별을 뒤집은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은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지만 편지 대필이라는 설정만 남고 캐릭터가 빠져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오페라, 뮤지컬, 텔레비전 드라마, 라디오 각색물들이 있고 이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 멈추기로 하자. 훌륭한 시라노 영화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약만 읽으면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구식 설정을 영화의 현대적인 설정 속에서 이치에 맞아 보일 수 있도록 개조하고 그 안에서 세 주인공들을 바보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시라노를 만들어야 한다. 원작은 큰 문제가 없다. 원작이 나왔을 무렵에도 과거였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무대극, 심지어 대사 대부분이 시인 운문극을 보면서 설정의 사실성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새 시리노 이야기의 배경이 21세기 미국 고등학교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실 반쪽의 이야기에서도 시라노의 설정은 아주 잘 맞지 않는다. 일단 지금은 아무도 종이 편지를 쓰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이건 영화가 대사를 통해 직접 언급하고 넘어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21세기의 변화한 사회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설득력 있는 시라노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의 새 시라노는 편지를 대신 쓰기도 하지만 모바일 문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 시라노를 만들어야 한다. 로스탕의 시라노는 코가 지나치게 컸다.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우린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살고 있으니 외모의 핸디캡은 여전히 먹힌다. 하지만 원작이 백년 넘게 써온 소재 안에서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반쪽의 이야기가 택한 것은 인종과 성별이다. 이 영화의 시라노는 중국계 동성애자 여성이다. 조금 뒤에 역시 넷플릭스에서 풀린 블라이 저택의 유령과 비교할 만 하다. 모두가 아는 고전 이야기의 주인공을 현대 또는 가까운 과거로 데려와 새로운 핸드캡을 주기 위해 퀴어 설정이 도입된 것이다. 단지 여기서 ‘선택’이라는 단어는 잘못 쓰였다. 이 영화를 쓰고 감독한 앨리스 우는 새로운 시라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인종과 성별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인종과 성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라노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에 사는 중국계 퀴어 여성인 감독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알마나 쉽게 시라노가 되는지 알고 있다. 반쪽의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못할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조된 상황을 보자. 엘리 추는 사교성 없는 중국계 학생이다. 동양인은 자신과 아버지밖에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 모범생인 엘리에게 학교 미식축구 선수인 폴 먼스키가 접근해 온다. 폴은 엘리가 자기 대신 짝사랑하는 애스터 플로레스에게 편지를 써주길 바란다. 엘리는 이전부터 돈을 받고 다른 학생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있으니 이건 또다른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 폴이 모르는 건 엘리 역시 애스터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정을 수정하면서 반쪽의 이야기는 원작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간다. 시라노는 자신의 아바타로 잘생긴 크리스티앙을 내세웠다. 둘은 모두 백인 남자로 그들의 차이는 당시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다. 시라노의 정신과 크리스티앙의 외모의 결합이라는 비유도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엘리는 시라노처럼 ‘자신과 같은 부류지만 더 잘생긴 누군가’를 내세우지 못한다. 반쪽의 이야기는 자신 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판으로 ‘나’라고 칠 때 그 ‘나’가 고의적으로 실제 자신을 비껴가는 사람들.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전시하지 못하고 아바타를 빌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대신 아바타로 등장하는 건 이성애자 백인남자다. 자신이 아닌 것의 총집합. 이건 굉징히 잔인하고 날카로운 코미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쪽의 이야기는 그런 영화가 아니고,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길을 간다. 영화는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이 이야기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글도 못쓰고 말도 못하며 생각이 단순한 폴도 어리석지는 않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좁은 생각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폴은 늘 자기 바깥으로 나간다. 처음엔 그냥 대필작가로 머리를 빌리려 했던 엘리와 친구가 되고 결국엔 엘리의 입장을 이해한다. 사기의 희생자로 그려지기 쉬운 록산느 역할의 애스터도 마찬가지다. 후반 설정을 잘 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엘리와 애스터의 대화에는 진짜 소울메이트를 만난 사람들의 흥분이 느껴진다. 디지털 시대가 일방적인 시라노의 편지 공격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로스탕의 시라노는 백인 남자 예술가의 자뻑 이야기다. 아무리 오랜 덕질 대상이라고 해도 그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시라노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예술가자 자의로 감추고 있던 비밀이 죽음 직전에 밝혀지면서, 그 자뻑이 하늘을 찌를 때 끝이 난다. 하지만 남자 예술가의 일방적인 편지가 아닌 세 청소년의 열린 대화를 다룬 반쪽의 이야기는 더 성숙하다. 시라노와는 달리 이들에겐 미래가 열려있다. 그들은 이 소동이 끝난 뒤에도 계속 성장하면서 아직 어디로 흐를 지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엘리 추는 ‘나’가 자기자신인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