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 감독
- 송윤혁
- 제작년도
- 2014
<동두천>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김진아(UCLA 영화과 교수, 영화감독) < 두번째 사랑 >(2007), < 파이널 레시피 >(2013) 등 다섯 편의 장편영화와, 미군 위안부 3부작 < 동두천 >(2017), < 소요산 >(2021), < 아메리칸 타운 >(2023) 등을 연출. 미국 UCLA 대학 종신교수로 시각예술의 재현 윤리, 초국가적 영화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모든 예술매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유배가 필요하다. 편안하고 안락한 나의 공간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이 존재하는 불편한 세상으로 스스로를 떠밀어야 한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새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여정은 너무 고통스러워 한 번에 읽어낼 수 없었다. 눈밭에 굴러 떨어져 혼절하고, 다시 일어나 겨우 도착한 친구의 집에서 죽어 있는 새를 마주하는 그 여정은, 문장마다 숨이 막혀 몇 번이고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쳐야만 했다. 그레이스 조의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2023)에서, 한때 기지촌 여성으로 살아냈고 끝내 조현병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 자신의 어머니의 고통 또한 그러하다. 마치 홀린 사람처럼 야생버섯과 블랙베리를 찾아 숲을 헤매는 그녀의 모습은, 책을 덮고 돌아본 방 안의 벽과 창문조차 낯설게 만들었다. 문학은, 이토록 깊은 몰입 끝에, 언어로 짜인 세계를 읽는 이의 의식 속에 스스로 구축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예술이다. 영화는 어떤가? 공간예술인 동시에 시간예술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영화는 몰입과 감정이입을 위해 편집과 음악 등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주인공이 겪는 아픔은 눈물방울의 클로즈업으로,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처연한 바이올린 소리로 우리에게 주입된다. 얼핏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게 하는 강력한 매체로 보이지만, 그러나 이 공감은 순간적/피상적이고, 고통을 겪는 타자를 철저히 대상화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카메라의 앞에 선 피사체와 뒤에 선 촬영의 주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아무리 몰입되어도 이 보이지 않는 선을 절대로 넘을 수 없다. 이 선은 화면 속 세계를 심리적/물리적으로 관객이 위치한 공간과는 다른 차원으로 완벽하게 분리해낸다. 섹스와 폭력은 물론,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로, 2D 영상매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하고 공공연하게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삼게 되었다. 그 선 덕분이다. 더 큰 문제는 힘의 역학이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실사(實寫, live action) 이미지 제작의 특성상, 전통적으로 카메라의 뒤에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있어 왔고 카메라 앞에 서는 피사체는 그 권력에 의해 대상화되어 왔다. 식민 지배국, 제1세계의 시민, 남성, 자본을 가진 자는 카메라의 뒤에서 이미지를 통제하는 힘과 발언권을 갖고, 식민 피지배국, 제3세계의 빈민, 여성, 자본을 갖지 못한 자는 카메라의 앞에서 피사체로 전락하여 목소리를 잃는다. 결과적으로 이 보이지 않는 선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한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비교되는 전무후무한 권력을 주었다. 우리가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피사체의 목소리는, 실상 카메라 뒤에 선 권력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이, 우리는 실은 타인의 고통을 착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상현실에서는 이 공식들이 교란된다. 카메라의 앞과 뒤를 구분 짓는 그 선이 와해 되기 때문이다. 프레임으로 제한된 세계를 그 세계 밖에서 관망할 수 있는 평면 영화와 달리, 360도 터진 가상현실의 공간은 관객이 그 세계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자발적인 유배 가 장소적 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주1 그 세계 안에 내 자신이 던져진다는 것만으로도 2D 평면 영화의 근본적인 심리적 기제인 ‘관음’이 작동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유배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시선의 주체(관객)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몸을 잃는다. *주2 시선은 성성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처할 물리적 몸이 사라진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못해 악몽에 가위를 눌리는 것 같은 공포스러운 경험이다. <소요산>(좌)과 <아메리칸 타운>(우) 중 이렇게 주권(agency)과 권력을 잃고 상처 입기 쉬워진(vulnerable) 관객 앞에, 고통받는 타자의 모습은 전혀 다른 차원의 울림을 갖는다. 이는 대상화된 타자의 고통에 대한 반응과는 사뭇 다른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밥상머리 텔레비전 속 평면화면에 등장한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은 이미 식상해진 이미지일지 모른다. 그러나 VR 기어를 쓰고 북극해의 빙산 위에 선 내 앞에, 해빙으로 작아진 빙산에 필사적으로 올라타려 애쓰는 북극곰이 있다면, 과연 그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어차피 내 눈앞의 세계가 실재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유난스러울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뇌의 입장에서 보자면 눈앞의 세계가 실재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시신경을 통해 접수된 정보는 실재/가상을 떠나 두뇌를 자극하는 똑같은 전기신호일 뿐이다.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들과 사물들이 실재가 아님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어도, 그 세계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감성(affect)은 우리의 심리를 뒤흔든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이렇게 관객은 몸(physical agency)을 잃고 영상 속에 등장하는 피사체와 같은 차원에 서게 된다. 이는 피사체의 대상화, 타자화를 극복한 새로운 공감기제(empathy-schema)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촬영 주체와 피사체, 즉 관객과 영화 속 대상이 동일한 차원에 존재하게 되는 가상현실 매체의 속성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1992년, 주한미군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영화 이상의 매체가 필요했다. 그녀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대상화된 피해자를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착취할 수 있는 매체는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두천의 쪽방에서 피를 흘리며 수 시간에 걸쳐 죽어간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 감히 입 밖으로 말해질 수 없는 그 처참한 죽음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1992년의 그날을 잊힌 역사 속 한 문장이 아니라,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간 관객에 의해 매번 새롭게 살아나는 현재의 사건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질문들은 궁극의 답을 찾지 못해 머릿속을 맴돌며 < 동두천 >(2017) *주3 을 완성하게 했고, 이후 8년간 3부작을 VR로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두천>, <소요산>, <아메리칸 타운> 포스터 많은 평론가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두고 역사의 은유와 상징, 혹은 화자로 등장하는 유령에 대해 분석해왔다. 일면 타당한 분석이다. 하지만 이 3부작의 진짜 핵심은, 비극이 자행된 공간에서 화자로서의 유령을 ‘보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관객, 곧 우리 자신이 몸을 잃은 시점(視點, point of view), 다시 말해 유령이 ‘되는’ 데 있다. 이는 오직 VR 매체를 통해 가능한 존재론적 유배를 통해 실현된다. 관객이 자신의 존재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동두천>에서, 처음 관객은 무고한 방관자로서 기지촌의 풍경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야의 언저리를 스치는 한 여성의 존재를 느낀다. 지나가는 성 노동자, 미군, 행인들과는 달리 어쩐지 시선을 끄는 그녀를, 관객은 점차 눈으로 좇게 된다. 그러나 발소리만 남긴 채 그녀는 좀처럼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좁디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내 그녀가 관객을 향해 걸어온다. 드디어 그녀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가 들 찰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없는 그 좁은 골목에서, 그녀는 관객을 향해 직진해온다. 관객은 자신의 몸이 있어야 할 자리를 그녀가 그대로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을 경험한다. 그녀가 유령이라면, 관객 또한 이미 유령이 된 것이다. <동두천> 중 미군 ‘위안부’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 소요산 >(2021) *주4 에서는 피사체가 관객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관객은 더 나아가, 피사체인 그녀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몸, 곧 성대가 된다. 낙검자 수용소 곳곳을 거닐며 감금되었던 여성들의 일상을 따라가던 관객은, 어느새 그녀가 짧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뛰어내린 옥상 끝에 선다. 그녀의 몸도, 나의 몸도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가쁜 숨소리는 내 옆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두 귀 사이에서 울린다. 그녀의 숨소리가 멈추고 옥상에서 보이는 산과 하늘에 서서히 밤이 내린다. 수용소의 복도에는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흐느낌은 점차 통곡과 오열로 바뀌고, 관객은 또 한 번 깨닫는다. 그 울음소리가 내 몸 밖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두 귀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소요산> 중 관객과 피사체가 동일한 차원에 위치하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피사체는 더 이상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관람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사체가 관객을 바라보는 역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 < 아메리칸 타운 >(2023) *주5 에서는 관객(보는 자)과 피사체(보이는 자)의 역학관계가 뒤바뀌는 경험을 거울이라는 기호(記號, signifier)를 통해 제시한다. 군산 미 공군기지 주변, 주식회사 형식으로 설립된 기지촌 ‘아메리칸 타운’ 곳곳에는 이 공간의 특수성을 설명하듯, 실내 어디든 시선이 닿는 곳마다 거울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거울 속, 마땅히 내가 비쳐야 할 자리에 정작 ‘나’는 없다. 밤이 내리고, 그녀의 기척이 과거 타운의 번성했던 소리와 함께 되살아난다. 이윽고 거울 속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녀가 대신 등장한다. 거울 속 그녀는 미군 위안부 여성으로서 하룻밤의 일과를 담담히 수행하고 있다. 고단한 밤이 끝나고, 햇살이 비치는 마당으로 나오는 여인. 관객은 이제 빨래를 걷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빨래를 걷던 여인이 관객을 알아본다. 관객에게 다가온 여인이 마침내 말을 건넨다. 피사체가 관객을 알아보고 말을 거는 이 순간, 관객은 존재의 도치(倒置, inversion), 궁극의 유배를 경험한다. <아메리칸 타운> 중 2D 영화가 갖는 넘을 수 없는 한계, 즉 대상화의 문제는 이렇게 가상현실이라는 매체 안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미학적/상징적으로나마 답을 얻는다. 이렇게 보면, 가상현실 영화에서 관람(viewing) 행위를 ‘체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몸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타자의 고통을 ‘몸소’ 체험(體驗)하게 된다는 역설. 신체성(physicality)을 포기하고 유령(幽靈)—즉, 실체 없는 영혼—이 된 관객은, 더 이상 편안하고 익숙했던 자신의 세계에 머무를 수 없다. 관객은 유배된다. 그러나 일단 자아의 물리적 경계인 몸을 잃고 나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사물과 세계의 ‘---되기(becoming)’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몸을 잃고, 오로지 시선과 의식만 남은 가상의 세계 안에서, 나는 당신이, 풀이, 나무가, 고양이가, 바위가, 파도가, 지구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해빙으로 작아진 빙산 위에 위태롭게 선 북극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장소적 유배), 심지어 내가 그 북극곰이 된다면(존재론적 유배)? 주인을 잃고 눈폭풍에 홀로 갇힌 작은 새를 구하러 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화자가 나라면? 새를 포기할 수 없어 눈보라를 헤치고 걷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한다면? 아니, 춥고 어두운 새장에 갇혀 그녀가 구하러 오는 줄도 모르고 차갑게 식어가는 작은 새가 바로 ‘나’라면? 이렇게 내장 깊숙이 파고드는(visceral) 강렬한 감각으로, VR 매체는 타자의 고통을 존재의 유배로 ‘체험’하게 한다. *주6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연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상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VR 기어를 벗고 돌아온 실재의 세계다. 가상의 공간에서 당신은 그들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듣고, 보고, 느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어를 벗은 당신에게는 목소리가, 몸이 있다. 이제 당신이 나설 차례다. *** 주1. VR 실사(實寫, live action) 영화가 평면 영상물과 달리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360도 전체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의도가 배제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드넓은 세계 속에 VR 카메라로 특정 장소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연출자의 명확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사실, VR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활용하는 모든 매체에서 ‘중립적 시선’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Heisenberg Uncertainty Principle)처럼, 관찰자와 대상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완벽히 중립적이고 간섭 없는 관찰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관찰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세계는 이미 관찰자의 개입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주2. 본고에서 논하는 VR 매체의 특성은 실사 촬영 기반의 3D 360 영화적 VR 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사(實寫, live action) 가상현실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위치가 곧 관객의 시점(point of view)이 되며, 360도로 펼쳐진 세계의 중심이 된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3D 360 영화적 가상현실 공간 안에서 관객에게 남는 것은 시선뿐이다. 일부 작품에서 관객에게 아바타 형태로 몸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그 아바타의 행동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주3. 동두천 , 360 3D 시네마틱 VR, 12분, 2017 주4. 소요산 , 360 3D 시네마틱 VR, 12분, 2021 주5. 아메리칸 타운 , 360 3D 시네마틱 VR, 16분, 2023 주6. 모든 미디어는 가치 중립적이며, 가상현실 매체 또한 마찬가지다. 가상현실이라는 매체 자체가 본질적으로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인류애를 증폭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VR 원년’이라 불리던 2016년, 가상현실 매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들 대부분은 공포와 폭력을 피학적 방식으로 변주하는 데 집중했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를 체험하거나, 납치·감금되어 의자에 묶인 채 가해자와 마주하는 설정의 콘텐츠들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품 역시 타자를 향한 폭력과 성을 관음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피학적 서사라는 사실이다. 시선만 남은 관객은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능동적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수동적 피해자 혹은 관찰자로 설정되는 것이 이 매체에 더 적합하다. 이런 관객의 위치성은 실사 다큐멘터리 영역에서는 윤리적 미덕으로 환영받았지만, 오락성과 능동적 서사 전개를 중시하는 기존 영화산업에서는 상업적 활용의 한계로 작용했다. 이는 건전한 자본의 유입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가상현실 매체의 대중화에 제약을 걸었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사진 - " 동두천 ", " 소요산 ", " 아메리칸 타운 ", Gina Kim - 필자 제공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에게 1980년대는 곤란한 시간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박정희의 죽음을 겪고(등굣길에 길에서 우는 수많은 할머니들을 보았다), 3학년 때 5.18이 있었으며(서울 변두리에 살았는데 동네 큰길에 정말 아무도 없었다), 4학년 때 집에 컬러텔레비전이 들어왔던 게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면 1980년대를 제대로 경험한 건 분명하다. 동네 삼류극장의 추억, 올림픽 때문에 샀던 VCR, 학교 앞 만홧가게 쪽방에서 보던 포르노, < 영웅본색 >과 < 천녀유혼 >…. 1980년대는 나에서 문화적 요람기이며, 지금의 취향이 형성된 결정적 계기였다. 그때 따먹은 선악과 때문에 난 아직도 어떤 원죄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며, 이런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무의식의 발로일 거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줌-아웃 하여, 그 시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나에게 ‘1980년대’는 분명 살긴 했지만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10년이기도 하다. 그 시절 영화를 연구해 보겠다고 나선 입장에선 더욱 난점이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처럼 이상한 시기는 없기 때문이다. 10년씩 묶어서 뭉뚱그리는 수사법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영화사는 대충 10년 단위로 어떤 레이블이 붙는다. 1960년대가 황금기로서 한국영화의 모더니즘이 여러 감독에 의해 시도되었다면, 1970년대는 그 모든 성과물들이 ‘유신 체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른바 ‘암흑기’로서, 전 세계 영화계가 ‘뉴 시네마’의 열풍에 휩싸일 때 한국영화는 ‘방화’라는 용어 안에 갇혀 외화 쿼터와 국책 영화라는 당근과 채찍에 길들어 갔다. 그 시기에 이만희와 하길종이 요절했던 건,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시대의 공기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1980년 1월 1일에 개봉된 두 편의 한국영화. < 타인의 방 >( 김문옥 )과 < 어느 여대생의 고백 >( 김선경 ). 모두 이영옥 이 주연을 맡은 멜로드라마다. 1990년대는 ‘기획 영화’가 등장하며 한국영화의 자본 구조가 천지개벽을 겪었고, 이런 물적 토대의 변화를 기반으로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으며, 산업적 팽창은 2010년대 독과점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마치 공란처럼 존재하는 1980년대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물론 이 시기를 대표하는 표제어는 존재한다. 바로 ‘3S 정책’이 그것이다. 신군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 애마부인 >( 정인엽 , 1982)의 심야 상영을 필두로 에로티시즘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는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만약 1980년대를 ‘3S 정책’으로 설명한다면, 이 가설의 장점은 연속성이다. 1970년대 유신에서 1980년대 3S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의 억압적 문화 정책에 의해 한국영화는 긴 침체기에 빠졌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단점은 1990년대와 연결할 때 발생한다. 20년 가까이 침체되었던 한국영화가 1990년대 초 갑작스레 활기를 띨 수 있었던 건 계기는 무엇인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뭔가 다른 시대 규정이 필요한데 아마도 ‘코리아 뉴웨이브’가 그런 시도일 것이다. 이것은 ‘서울의 봄’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충무로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는 가설이다. 1980년대 전반기의 이장호 와 배창호 , 후반기의 장선우 와 박광수 가 그 기수였는데, 그들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는 1990년대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난점은, 당대의 영화가 1970년대와 어떻게 단절을 이룰 수 있었는지의 문제다. 그리고 과연 ‘뉴웨이브’라 부를 만큼의 성과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의외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던 게 1980년대 영화다. 곽경택 감독의 < 챔피언 >(2002)과 박흥식 감독의 < 사랑해, 말순씨 >(2005). 영화 속에서 김득구( 유오성 )는 연인과 함께 심야 상영으로 < 애마부인 >을 보고, 아이들은 동시 상영관에서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정진우 , 1981)를 본다. 197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부정적이고, 1990년대의 전사로 받아들이면 긍정적인 1980년대의 한국영화. 3S와 뉴웨이브가 공존했던 불균질 적이며 돌발적이고 혼란스러우며 규정할 수 없는 시기. 이번 주부터 격주로 이어갈 연재는 바로 그 시대에 대한 글들이다. 명료하게 정리할 야심은 없다. 그럴 수 없는 시대였으며, 그런 ‘쉽게 파악되지 않는 속성’이 이 시대 한국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서 하나. 기존에 이뤄진 이 시기 감독들에 대한 작가 연구에 글 하나를 보탤 생각은 없다. 이 연재는 그 시기 가장 대중적이었던 영화들에 대한 재평가다. 에로 영화, 하이틴 무비, 코미디, SF 아동 영화 등 당시 가장 많이 만들어졌고 휴지처럼 소비되던 영화들이 분석의 대상이 될 것이다. ‘1980년대’라는 시대 구분도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1982년 < 애마부인 >부터 1992년 < 결혼 이야기 >( 김의석 ) 직전까지, 즉 에로 영화가 본격화되고 기획 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영화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 1980년대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졌을까? 1960~70년대의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걸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1980년 한국영화 흥행 1위는 364,538명(이하 모두 서울 관객수)의 < 미워도 다시 한번 1980 - 1부 >( 변장호) 였다. 1981년은 287,929명을 동원한 윤정희 주연의 < 자유부인 >( 박호태 )이었다. 기존의 신파 멜로가 이어지던 형국이었고, 이때 1982년에 < 애마부인 >이 315,738명을 기록하며 그 해 1위 자리에 오르면서 충무로의 풍토를 바꿔 놓았다. 정인엽 감독의 < 애마부인 >과 < 애마부인 2 >(1984).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에로 프랜차이즈다. 그런 점에서 당대의 에로틱 멜로드라마, 이른바 ‘에로 영화’는 돌연변이였다. 1960년대 신파 멜로에서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로 오면서,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가벼운 수준의 노출이 감행되었다면, 1980년대 에로 영화들은 국가 정책의 조장 속에서 영화의 특정 요소를 다소 지나치게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굳이 에로 영화만의 특성은 아니었다. 쉽진 않겠지만 1980년대 대중 영화를 뭉뚱그릴 수 있는 용어가 있다면 그건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 필름’일 것이다. 번역하기 쉽지 않은 이 용어는 풀어서 해석하면 ‘특정 관객의 취향에 호소하는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상업영화’라 할 수 있는데, 1980년대 한국영화는 상당 부분 이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섹슈얼하고 에로틱한 부분에 그치지 않았다. 1970년대 얄개 영화는 1980년대 청춘 영화로 이어지며 로맨스 부분이 대폭 강화됐고, 액션 영화는 수많은 아류 스타일의 영화로 가공되었다. 정식 합작영화도 있었지만 위장 합작영화도 상당했고, 합작과 무관한데 제목만 중국 영화인 척하는 한국영화도 부지기수였다. 이 영화들은 모두 무협 팬들을 위한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으로, 극적 개연성 없이 대결 액션 신으로 꽉꽉 채운 영화들도 등장했다. 저예산 호러도 1980년대 중반까지 심심찮게 이어졌다. 코미디도 마찬가지였다. 이주일 , 김형곤 , 심형래 등 당대의 인기 코미디언과 개그맨의 유행어와 개인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심형래는 <우뢰매> 시리즈를 통해 아동 영화 시장을 붐업 시켰고 수많은 유사작들이 등장했다. < 평양 맨발 >( 남기남 , 1980)의 이주일 과 < 그 사랑 한이 되어 >( 이형표 , 1981)의 조용필 . 이 시기 영화를 더욱 기묘하게 만든 건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이었다. 여기서 요즘 콘텐츠 전략에서 언급되는 ‘원 소스 멀티 유즈’ 같은 개념을 떠올려선 곤란하다. 1980년대에 영화라는 콘텐츠는 타 분야와의 경계선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다. 최근 ‘연기돌’들이 나름 착실한 연기 수업을 바탕으로 연기자에 도전한다면, 1980년대엔 인기 있는 가수는 별 장벽 없이 배우가 되었다. 조용필 , 심수봉 , 인순이 등이 모두 영화를 찍었고, < 마음 약해서 >( 심우섭 , 1980)나 < 모모는 철부지 >( 김응천 , 1980) 처럼 당대 히트곡 제목을 그대로 딴 영화들도 많았다. < 난 이렇게 산다우 >( 남기남 , 1985)처럼 개그맨의 유행어를 그대로 제목에 가져온 영화도 부지기수였다. 만화의 영화화가 본격화된 것도 1980년대이며, 의외로 많은 리메이크와 프랜차이즈(와 외화 표절) 영화들이 있었다. 이처럼 쉽사리 정리되진 않지만, 그 카오스 속에서도 어떤 묘한 질서를 찾아볼 수 있는 1980년대 영화들. 다음 글에선 좀 더 세부적으로 접근해보겠다. 그 첫 대상은 에로 영화로 건너가는 가교 역할을 했던,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 불리었던 영화들이다.
별 탈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면 문득 불안하다. 무사한 나날이 언제 깨질지 두렵고 찾아올 시련에 지레 겁을 먹어 그런 것 같다. 그럴 땐 매일 밤 습관처럼 그날 있었던 사소한 힘겨움을 복기한다. 자잘한 불행을 곱씹는 건 아직 닥쳐오지 않은 그 날을 위한 일종의 예방주사다. 때로 행복은 불행을 통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평온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상처를 통해 선명해진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함부로 내뱉은 말에 입은 자잘한 상처의 욱신거림을 통해 지금 내가 아직 안전한 곳에 있음을 새삼스레 환기한다. 비슷한 이유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최대한 불편한 감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혹여 지금의 내 평온을 확인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타인의 절박함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매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해왔다. < 사람이 산다 >가 반가웠던 첫 번째 이유는 이런 자질구레하고 쓸데없는 고민들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평범한 다큐멘터리는 딱히 기교나 요령을 부리지 않는다. 송윤혁 감독은 쪽방촌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쪽방촌에 들어가 1년 동안 함께 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여기에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저 당연한 작업을 단순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쪽방촌 주민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만 봐도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감독이 얼마나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사실 카메라 저편과 이편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공감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 송윤혁 감독은 그들을 섣불리 동정하거나 위로하는 대신 함께 대책을 고민하고 푸념을 가만히 들었다. 요컨대 대상과 눈높이를 맞췄다. 기본임에도, 아니 그래서 근래엔 쉽게 접하기 드문 미덕이다. 영화는 세 그룹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 이제 막 쪽방 생활을 시작한 남선 씨는 이곳에서부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 계신 남선 씨는 부양의무제도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을 받지 못한다. 폐지 수집을 해보지만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긴 역부족이다. 둘. 쪽방 생활이 1년이 되어가는 창현 씨는 이제 쪽방을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부정수급으로 행여 기초생활수급비를 잃을까 전전긍긍 눈치 보는 상황에서 몰래 하는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이어갈 따름이다. 셋. 쪽방에서 태어나 자란 27살 청년 일수는 젊은 나이에 고혈압, 당뇨, 결핵을 앓고 있다. 역시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비슷한 처지의 반려인 승희를 만나 쪽방촌에선 보기 드물게 가정을 꾸린다. 혼인 신고를 하면 수급비가 줄어들지만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었던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는다. 이제 갓 들어온 사람과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 쪽방이 고향인 사람의 삶을 교차시키며 그려낸 1년의 끝에는 빈곤의 굴레를 덧씌우는 부조리한 시스템이 자리한다. 몇 푼 되지 않는 기초생활수급비는 이들의 생명줄이다. 쪽방촌 주민들은 그저 살기 위해서 좁은 방에 몸을 맞추듯 부조리한 상황에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한다.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증명해야 나오는 돈 앞에 존엄이란 허망한 수사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조차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쪽방에서 천천히 죽어간다. 카메라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큰 목소리로 고발하거나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삶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당사자의 시점에서 담담히 전달하는 것으로 몫을 다한다. 재밌는 건 영화의 주제에 비해 의외로 어둡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의 호흡은 상당히 빠르고 간결하며, 몇몇 순간엔 생기가 감돌고 심지어 따스하기까지 하다. 일수의 에피소드에서는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도 많다. 결혼을 앞두고 “형은 좋겠어요, 총각이어서.”라고 농담을 던지는 일수의 능청은 주변 평범한 이들의 모습과 하나 다를 것 없다. 탈출구 없는 그들의 삶을 암담하게만 그리지 않은 건 그들이 끝내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낙오자가 아닌 쪽방촌 주민이자 ‘한 사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최대한 덜어낸 건 관찰대상 사이로 녹아들어 간 연출자의 공이라 할만하다. 송윤혁 감독은 금방 휘발되어 버릴 눈물 대신 시스템 전반을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동시에 그들 각자의 표정, 보통 사람으로서의 시간들도 놓치지 않았다. 그게 이 무난한 다큐멘터리가 유난히 미덥고 고마운 이유다. 문득 쪽방촌 주민들이 가까스로 짓고 있는 미소가 내가 매일 되새기는 사소한 상처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작은 고민에 매달리며 일상에 안도하는 나와는 반대로 쪽방촌 주민들은 매일매일 사소한 행복과 별거 없는 농담, 폐지를 모아 산 소주 한 잔에 매달리며 오늘을 버틴다. 일견 다른 삶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처럼 붙어 있다. 여기에도 거기에도 사람이 산다. 쪽방촌 주민들이 처한 현실에 분노하고 시스템의 부조리를 질타하는 힘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동시대의 문제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도록, 관객을 친절히 안내할 줄 아는 귀한 영화를 만났다.